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8 베타

로마서 10장

이 장 풀어 읽기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마음 깊이 바라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다는 것을 나는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올바른 앎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 애쓰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끝이셔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을 통해 의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를 두고 이렇게 기록합니다.

「율법의 규정들을 실천한 사람은 그 규정들로 살 것이다.」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라고 말하지 마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려온다는 뜻입니다. 또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끝없이 깊은 곳에 내려가겠느냐?』라고 말하지 마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모셔 올라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에서 오는 의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말씀이 네 가까이에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이것은 우리가 전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마음의 믿음과 입의 고백

곧 여러분이 입으로 예수께서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 사이에 구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주님은 같은 분이시며,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넉넉히 베푸십니다. 성경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듣는 일

그렇다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믿겠습니까? 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보냄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하겠습니까?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모두가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도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가 전한 소식을 누가 믿었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되고, 그 소식을 듣는 데서 믿음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에게 전해진 말씀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듣지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들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에 퍼졌고, 그들의 말은 온 세상 끝까지 이르렀다.」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습니까? 먼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민족도 아닌 이들을 통해 너희가 시샘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을 통해 너희를 화나게 하겠다.」

이사야는 대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를 찾지 않던 이들이 나를 발견했고, 나에게 묻지 않던 이들에게 내가 드러났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두고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순종하지 않고 말로 맞서는 백성에게 온종일 두 손을 펼쳐 내밀었다.」

10장 해설 모두 보기 9
10:3 자기 의를 세우려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9장 끝에서는 이스라엘이 행동으로 의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구했다고 했어요. 여기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 하는 일과 연결해요. 열심이 없다는 지적이 아니라, 그 열심이 무엇을 알고 무엇에 의지하는지를 묻고 있어요.

10:4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끝이시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끝이라고 옮긴 말은 어떤 것이 끝나는 지점과 도달하는 목표를 나타낼 수 있어요. 어느 쪽에 무게를 두더라도, 이 절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의와 연결해요. 앞에서는 율법이 거룩하다고도 했으므로, 이 한마디를 율법에 관한 모든 설명을 대신하는 말로 읽지는 않아요.

10:7 하늘에 올라가거나 깊은 곳에 내려가는 일은 왜 나오나요?

하늘에 올라간다는 말에는 그리스도를 모셔 내려오는 일을, 깊은 곳에 내려간다는 말에는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모셔 올라오는 일을 연결해요. 8장 34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고 했어요. 이어지는 설명은 우리가 전해진 말씀을 믿고 고백하는 데로 향해요.

10:9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바울은 입으로 하는 고백과 마음으로 하는 믿음을 함께 말해요. 9절에서는 고백을 먼저, 10절에서는 믿음을 먼저 말하므로, 두 행동의 순서를 정하는 설명으로 읽을 필요는 없어요.

10:13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다음 절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느냐고 물어요. 따라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름의 소리를 내는 일만을 말하지 않아요. 누구든 주님을 믿고 부를 때 구원받는다는 약속을,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의 구별이 없다는 설명에 연결해요.

10:14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직접 목소리를 듣는다는 뜻인가요?

바울은 믿음에 필요한 들음을 말한 뒤, 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보내는 일을 차례로 물어요. 그래서 이 들음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연결돼요. 원문의 표현을 ‘그분에 관해 듣다’로 옮기는 가능성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분의 말씀을 듣다’로 읽었어요.

10:15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발이 왜 아름답다고 하나요?

발의 생김새를 평가하는 말이 아니라, 소식을 전하려고 오는 발걸음을 기쁘게 여기는 비유예요. 바울은 이 인용을 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보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설명에 붙여요.

10:19 민족도 아닌 이들은 누구인가요?

9장 끝에서는 의를 구하지 않던 이방 사람들이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고 했어요. 여기서는 그들을 통한 이스라엘의 시샘을 말하고, 다음 절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해요. 바울은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이런 말씀들을 근거로 제시해요.

10:18 온 땅에 퍼진 ‘그들의 소리’는 누구의 소리인가요?

이 인용은 원래 하늘을 묘사하던 시편 19편의 말이에요. 바울은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듣는 일을 말한 뒤 이 표현을 가져와요. 따라서 시편에서 묘사하는 대상과 바울이 여기서 그 말을 적용하는 대상을 구별해 읽을 필요가 있어요. 본문의 ‘그들’을 특정 인물들의 이름으로 바꾸지는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