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왕이 된 다윗
다윗에게 모여드는 사람들
역대상 12장은 한 사람의 고립에서 시작하여 온 나라의 기쁨으로 끝납니다.
첫 장면에서 다윗은 시글락에 있습니다. 아직 사울 때문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왕으로 선택받았지만 왕좌는 없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스라엘 전체의 지지를 얻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역대상 12장은 다윗의 세력이 얼마나 커졌는가보다,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한마음으로 모이게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 과정은 처음부터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충성의 대상이 달랐고,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며,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분별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사울의 동족이 다윗을 찾아오다
12장은 다윗이 아직 시글락에 있을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음은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 때문에 아직 발이 묶여 있던 때에 시글락으로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쟁에서 그를 도운 용사들 가운데 있었다.역대상 12:1 · 본디새김
시글락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닙니다.
사무엘상 27:5–6에 따르면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해 블레셋 지역으로 들어갔고, 가드 왕 아기스에게 시글락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오랜 적이었던 블레셋 사람의 보호 아래 머무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불안정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이들은 활로 무장하고 오른손과 왼손을 가리지 않고 돌을 던지고 활로 화살을 쏠 수 있었으며, 사울의 동족인 베냐민 사람들이었다.역대상 12:2 · 본디새김
사울의 정치적 기반과 관련된 집단 안에서도 다윗을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사울의 동족’이라는 표현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윗이 이미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뒤에야 찾아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윗이 아직 도망자로 살아가던 때에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사용하는 베냐민 사람들
사사기 20:16에서도 베냐민 지파에는 왼손을 잘 사용하는 물매 전사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돌을 던질 때 매우 정확한 솜씨를 보였습니다.
역대상 12장은 그들의 능력을 조금 다르게 설명합니다. 왼손만 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과 왼손을 가리지 않고 돌과 화살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기록은 베냐민 지파와 관련하여 뛰어난 투사 능력이 기억되었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그러나 두 본문의 전사들이 동일한 훈련 전통에 속했다고까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다윗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혈연이나 지파의 경계에 따라 단순하게 나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사울과 같은 지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다윗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3–8절은 아히에셀과 요아스, 여시엘과 벨렛 등 그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기브아와 기브온, 아나돗 같은 출신지도 등장합니다.
이름이 길게 나열되지만, 본문은 그들이 각각 어떤 이유로 다윗을 찾아왔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에게 개인적인 불만이 있었는지, 다윗의 군사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는지,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어서 본문은 훨씬 더 먼 곳에서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넌 사람들
9절에서는 갓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갓 사람들 가운데서도 따로 나와 광야의 요새에 있는 다윗에게 합류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힘센 용사들로, 큰 방패와 창을 갖추고 싸우는 전사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사자의 얼굴 같았고, 빠르기는 산 위의 가젤 같았다.역대상 12:9 · 본디새김
갓 지파는 요단강 동쪽에 거주하던 지파였습니다. 민수기 32장에 따르면 갓과 르우벤 지파는 가축을 기르기 좋은 요단강 동쪽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따라서 갓 사람들이 다윗에게 합류하려면 자기들의 거주지를 떠나 요단강 서쪽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사자의 얼굴과 가젤의 속도는 전사의 용맹함과 민첩함을 나타내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전투에서 상대를 두렵게 하는 모습과 산악 지형에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능력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16절에 이르면 그들의 용맹이 더욱 구체적인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이들은 첫째 달에 요단강이 모든 강둑을 넘쳐흐를 때 그 강을 건넌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동쪽과 서쪽 골짜기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달아나게 했다.역대상 12:16 · 본디새김
누가 그들과 싸웠는지, 왜 충돌이 일어났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기억하는 것은 이들이 단순히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이 아니라, 어려운 이동과 전투를 감당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용맹한 사람들이 찾아간 다윗은 여전히 광야의 요새에 있습니다.
군사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인물에게 합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과 같은 지파에 속한 사람도 있고, 요단강 동쪽에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군사적 기술도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다윗에게는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믿을 수 있을까요?
조금 더 깊이
15절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조차 백 명에 맞먹고, 가장 강한 사람은 천 명에 맞먹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백 명이나 천 명에 맞먹는 전투 능력을 가졌다는 과장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고, 백 명이나 천 명을 지휘하는 군사 조직의 규모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원문이 ‘하나가 백에, 큰 자가 천에’라는 압축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어느 의미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의 첫째 달은 봄철에 해당합니다. 요단강은 이 시기에 물이 불어나곤 했습니다. 여호수아 3:15에서도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널 당시, 곡식을 거두는 시기에는 강물이 언덕에 넘쳤다고 설명합니다. 두 본문의 사건은 시대도 상황도 다릅니다. 여호수아 3장에서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과 함께 이스라엘이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역대상 12장에서는 갓 지파의 용사들이 다윗에게 합류하기 위해 강을 건넙니다.
「내 마음도 너희와 하나가 될 것이다」
17절에서는 베냐민과 유다 자손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다윗이 있는 요새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이 먼저 그들 앞으로 나갑니다.
다윗이 그들 앞으로 나가 말했다. 「너희가 나를 도우려고 우호적인 뜻으로 내게 왔다면, 내 마음도 너희와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손에 폭력이 없는데도 나를 속여 내 적들에게 넘기려고 왔다면,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보시고 판결하시기를 바란다.」역대상 12:18 · 본디새김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3:19–24에서는 지프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의 은신처를 알려 주겠다고 나섭니다. 사무엘상 26:1에서도 지프 사람들이 다윗의 위치를 사울에게 알립니다.
다윗에게 누군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도우러 온 사람인지, 사울에게 넘기려는 사람인지 분별해야 했습니다.
첫째는 우호적인 뜻입니다. 단순히 함께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의도로 찾아왔는지를 묻습니다. 둘째는 신의를 지키는 관계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속여 적들에게 넘기는 일을 문제 삼습니다.
물론 「내 손에 폭력이 없는데도」라는 말은 다윗이 자신의 모든 삶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이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이 그들에게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배신한다면 그것은 부당하다는 뜻입니다.
한마음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자리
다윗은 우호적인 뜻으로 온 사람들이라면 「내 마음도 너희와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이 중요한 까닭은 39절에서 다시 온 이스라엘이 ‘한마음’이었다는 말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18절에서는 다윗이 아직 마음을 합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39절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마음을 합쳐 헤브론에 모여 있습니다.
한마음은 처음부터 주어진 상태가 아닙니다. 서로의 의도를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 가는 과정 속에서 형성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의 말만으로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새를 감싼 영
영이 장교들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자 그가 말했다. 「다윗이여, 저희는 당신 편입니다. 이새의 아들이여, 저희는 당신과 함께합니다. 평화, 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 당신을 돕는 이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들을 받아들여 부대의 우두머리들로 세웠다.역대상 12:19 · 본디새김
그에게 임한 영의 작용이 그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자신들이 적대적인 의도로 온 것이 아니라, 다윗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왔다는 선언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윗은 배신을 염려했습니다.
아마새는 평화를 선언합니다.
다윗을 돕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하나님의 도우심과 연결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마새의 선언은 그들이 다윗을 돕는 일이 단순한 정치적 계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이해했음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그들의 의도를 확인하고, 그들은 우호적인 관계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선언합니다. 그런 다음 다윗은 그들을 받아들입니다.
신뢰가 확인된 뒤에 책임이 주어집니다.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이 단순히 숫자로 추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관계를 맺고, 공동체 안에서 맡은 자리를 얻습니다.
조금 더 깊이
19절은 문법적으로는 ‘영이 아마새를 입었다’고 직역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보통은 사람이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영이 사람을 입는 것처럼 표현됩니다. 사사기 6:34에서도 여호와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감싸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 뒤 기드온은 나팔을 불고 사람들을 모읍니다. 두 본문은 같은 동사로 영이 사람을 감싸는 장면을 표현합니다. 다만 역대상 12:19에는 그 영이 여호와야훼의 영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문맥과 표현의 유사성을 근거로 하나님의 영의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본문이 밝히지 않은 말을 직접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어느 편에 서 있었는가
20절은 독자를 조금 불편한 역사적 상황으로 데려갑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사울과 싸우러 갔을 때, 므낫세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다윗 편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돕지 않았다. 블레셋 통치자들이 의논한 뒤 「그가 우리 머리를 대가로 자기 주인 사울 편으로 넘어갈 것이다.」 하며 그를 돌려보냈기 때문이다.역대상 12:20 · 본디새김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블레셋 군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믿지 못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심 때문에 다윗은 사울과 직접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여호와야훼께서 블레셋 통치자들의 마음을 직접 움직여 다윗을 구하셨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정치적 판단을 설명할 뿐입니다.
므낫세 사람들이 합류하다
21절에서는 므낫세 사람들의 이름이 소개됩니다. 이들은 천인대장들이었습니다. 곧 일정한 군사 조직에서 지휘 책임을 맡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윗을 도와 약탈대와 맞서 싸웠다. 모두 힘센 용사들이었으며, 군대의 지휘관들이 되었다.역대상 12:22 · 본디새김
사무엘상 30장에는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성읍을 약탈하고 가족들을 사로잡아 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약탈대와 맞서 싸운 사건을 사무엘상 30장과 연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12장은 그 약탈대가 누구였는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건이 정확히 동일한 전투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소규모 합류의 기록이 이어지다가 23절에서 시야가 갑자기 넓어집니다.
날마다 사람들이 다윗을 도우러 그에게 왔고, 마침내 하나님의 군대 같은 큰 군대가 되었다.역대상 12:23 · 본디새김
날마다 모여드는 사람들
이 구절에서 중요한 말은 ‘날마다’입니다. 다윗의 군대가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 이 구절에는 ‘돕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 장의 처음부터 사람들은 다윗을 돕는 이들로 소개되었고, 아마새도 다윗을 돕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이제 그 도움의 규모가 커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 같은 큰 군대’라는 표현은 압도적인 규모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군대의 모든 행동이 자동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군대가 커졌다는 사실과 그 군대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는 평가는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다윗이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점점 많은 사람이 그에게 합류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합니다. 이제 본문은 그들이 최종적으로 어디에 모였는지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이 처음부터 블레셋을 배신하려고 계획했는지, 실제로 사울과 싸울 생각이 있었는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사무엘상 29장에서도 다윗이 전투에 참여했다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끝내 드러나지 않습니다. 창세기 32:2–3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고 그곳을 하나님의 진영이라고 부릅니다. 역대상 12장과 같은 표현 계열이지만, 두 사건 사이에 직접적인 문학적 인용 관계가 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대상에서는 다윗을 돕는 사람들이 큰 군대를 이루었다는 뜻이 중심입니다.
여러 지파가 헤브론으로 모이다
24절은 새로운 명단의 목적을 밝힙니다.
다음은 여호와야훼가 한 말대로 사울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기려고 헤브론으로 그를 찾아온, 전쟁에 나설 무장 병력의 수다.역대상 12:24 · 본디새김
앞에서는 다윗이 아직 피신 중일 때 찾아온 사람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기 위해 헤브론에 모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유다보다 많은 병력을 보낸 지파들
다윗 자신의 지파인 유다에서는 육천팔백 명이 왔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에서는 칠천백 명, 에브라임에서는 이만 팔백 명, 므낫세 반 지파에서는 만 팔천 명이 왔습니다. 다윗의 출신 지파가 모든 지파 가운데 가장 큰 병력을 보낸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역대기가 다윗의 왕권을 유다 지파만의 군사적 세력 확장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왕은 유다 출신이지만, 그를 왕으로 세우러 온 사람들은 여러 지파에 속해 있습니다.
이 숫자들이 실제로 한 시점에 집결한 병력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지는 독립적인 자료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당시 이스라엘의 전체 인구나 병력 동원 비율을 정밀하게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레위 자손 사천육백 명에 이어 아론 가문의 여호야다와 그를 따르는 삼천칠백 명, 사독의 집안 지휘관 스물두 명이 따로 등장하기 때문에 명단의 모든 수를 단순하게 합산하여 중복 없는 총병력으로 만드는 데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역대기가 분명하게 보여 주려는 것은 병력의 통계적 정확성 자체보다 여러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제사장 가문도 이 자리에 있었다
27–29절에는 레위 자손과 아론 가문의 지도자들이 등장합니다. 여호야다와 사독의 이름은 특히 중요합니다. 이들은 제사장 계통과 관련된 인물들로 소개되지만, 여기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이들이 각각 어떤 무기를 들고 어떤 전투에 참여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윗의 왕위 인정이 군사 지휘관들만의 문제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복잡한 충성
사울의 동족인 베냐민 자손 가운데서는 삼천 명이 왔다. 그때까지도 그들 대부분은 사울 집안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역대상 12:30 · 본디새김
여기서 본문은 그들이 모두 악한 의도로 사울을 지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사울 집안에 대한 오래된 충성의 관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지파 출신 왕에 대한 의무를 중시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 개인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윗에게 합류하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다윗을 지지하는 흐름은 점차 확대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전 왕가에 대한 충성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39절의 ‘한마음’을 이해하려면 이 30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마음은 갈등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충성의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결국 하나의 결정을 향해 모였다는 뜻입니다.
때를 분별하는 사람들과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들
33절은 긴 병력 명단 가운데 매우 독특한 구절입니다.
잇사갈 자손 가운데서는 때를 분별하여 이스라엘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우두머리 이백 명이 왔다. 그들의 모든 동족은 그들의 지시를 따랐다.역대상 12:33 · 본디새김
다른 지파들은 대부분 병력의 규모와 전투 능력으로 소개됩니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이해력과 판단 능력이 강조됩니다.
‘때를 분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때’는 단순히 시계로 측정하는 시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시기나 상황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을 곧바로 천문학적 지식이나 점성술적 능력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잇사갈 사람들이 특정한 절기나 달력 계산에 능숙했다는 해석도 가능성이 논의되는 읽기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구절 자체는 그들의 구체적인 전문 분야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음 문장인 「이스라엘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이 그 이해력의 방향을 밝혀 줍니다. 잇사갈의 우두머리들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그들의 판단이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투를 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잘 조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역대기는 이러한 판단 능력을 군사적 능력과 나란히 기록합니다.
다만 잇사갈 지파 전체가 특별한 예언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본문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또 이 구절을 오늘날 모든 사회 변화나 미래 사건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의 근거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두 마음과 한마음
34절에서는 스불론 지파가 등장합니다.
스불론에서는 온갖 전쟁 무기를 갖추고 전열을 짜서 출전하는 오만 명이 왔다. 이들은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도우러 왔다.역대상 12:34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는 스불론 사람들이 다윗을 돕는 일에 분열된 의도를 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군사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을 사용하려는 의도도 분명했습니다. 이 표현은 39절의 ‘온전한 마음’, ‘한마음’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를 밝히고, 함께 행동하며, 마침내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의 결정을 향해 모입니다. 이 장에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은 단지 동일한 지도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선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일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35–38절에서는 납달리와 단, 아셀, 그리고 요단강 동쪽 지파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요단강 동쪽의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에서는 십이만 명이 왔다고 기록합니다.
처음에 갓 사람들이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너 다윗에게 합류했던 장면을 기억하면, 이제 요단강 동쪽 사람들이 훨씬 큰 규모로 헤브론에 모였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역대기는 서로 다른 단계의 합류를 하나의 장 안에 배열하면서, 다윗을 향한 지지가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왕을 세우다
39절은 긴 명단을 하나의 문장으로 묶습니다.
전열을 갖춘 이 모든 전사는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고 온전한 마음으로 헤브론에 왔다. 이스라엘의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는 한마음이었다.역대상 12:39 · 본디새김
‘온전한 마음’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분열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한마음’은 여러 사람이 동일한 목적을 향해 뜻을 모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나뉘지 않는 것과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유다 사람은 여전히 유다 사람이고, 갓 사람은 여전히 갓 사람입니다. 그들의 출신과 역사, 역할이 서로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결정에 참여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출신을 지우지 않은 채 동일한 목적을 향해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선택
24절은 이들이 「여호와야훼가 한 말대로 사울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기려고」 왔다고 설명합니다. 39절에서는 그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고 온전한 마음으로 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로 하셨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판단과 참여를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이 누구를 도울지 결정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이동했고, 어떤 경우에는 이전의 충성 관계를 바꾸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이 장은 사람들의 모든 선택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왕권이 실제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형성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 많은 사람이 한 지도자에게 복종하면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역대상 12장에서 그들의 일치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왕권을 주시겠다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의 한마음을 오늘날 어떤 지도자나 조직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역대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역대기는 뜻밖에도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전사들의 명단이 잔치로 끝나는 이유
그들은 그곳에서 다윗과 함께 사흘 동안 먹고 마시며 지냈다. 그들의 동족이 그들을 위해 준비했기 때문이다.역대상 12:40 · 본디새김
이 구절을 주의 깊게 보면, 다윗의 왕권을 세우는 데 참여한 사람들이 무기를 든 전사들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가 크면 클수록 그 군대를 먹이는 일도 커집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식량 공급을 단순한 군사적 보급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동족’이 그들을 위해 준비했다고 기록합니다. 헤브론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지파와 지역 출신이었지만, 서로를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까이 사는 사람들부터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 사람들까지도 나귀와 낙타와 노새와 소에 식량을 실어 가져왔다. 먹을 것으로 곡식 가루와 눌러 뭉친 무화과와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가져왔고, 소와 양과 염소도 많이 가져왔다. 이스라엘에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역대상 12:41 · 본디새김
헤브론에서 비교적 먼 북쪽 지역의 사람들까지 식량을 가져옵니다. 이 물품들은 한 번의 식사를 위한 음식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여러 날 동안 머무는 데 필요한 식량입니다.
역대기는 사람들이 음식을 많이 가져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기쁨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표현은 오히려 풍성한 음식이 이스라엘에 있던 기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기쁨은 단순한 개인 감정이 아닙니다. 공동체 전체의 역사적 변화와 관련된 기쁨입니다. 왕권을 둘러싼 불안정한 시기가 지나고, 여러 지파의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무기에서 음식으로
처음에는 활과 물매가 등장했습니다. 이어서 큰 방패와 창을 든 사람들이 등장했고, 강을 건너 전투를 벌이는 용사들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후반부에는 각 지파의 무장 병력과 전열을 갖춘 군사들이 길게 열거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전쟁 무기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귀와 낙타와 노새와 소가 등장합니다. 그 위에 실린 것은 창이나 방패가 아니라 음식입니다. 전쟁에서 싸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일에는 싸울 수 있는 힘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전투의 승리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먹어야 하고, 서로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하며,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맺음 — 시글락에서 시작된 모임이 헤브론의 잔치가 되다
숨어 있는 다윗을 찾아온 작은 무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온 이스라엘이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로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함께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장면이야말로 이 장에서 이스라엘의 일치가 가장 일상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나귀와 낙타와 노새와 소가 헤브론으로 향했습니다. 그 위에는 곡식 가루와 무화과,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이 실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함께한 사흘의 끝에 역대기는 전쟁의 승리를 선언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권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도 다시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스라엘에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장을 마칩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의심하며 서 있지 않았습니다.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