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왕이 된 다윗

왕을 세운 사람들, 마시지 않은 물

다윗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까요?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었고, 마침내 사울의 왕권이 끝나자 왕권은 다윗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11장은 조금 다른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윗이 왕좌에 앉아 사람들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그에게 찾아와 자신들이 한 몸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다윗이 이미 수행해 온 역할을 기억하고,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목자로 세우셨다는 말씀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 장의 대부분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데 사용됩니다. 성읍을 점령한 요압, 보리밭을 지켜 낸 용사들, 적진을 뚫고 물을 길어 온 세 사람, 이름조차 낯선 수많은 전사들이 등장합니다.

역대상 11장은 왕이 세워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왕을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711장 본문 읽기 →

왕이 되기 전에 먼저 한 몸이 되다

역대상 11:1–3 본문 →

역대상 11장은 다윗의 왕위 계승을 매우 압축적으로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2–5장에 따르면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먼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헤브론에서 유다를 다스렸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을 다스리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전쟁과 정치적 갈등도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은 그 과정을 거의 모두 생략합니다.

10장에서 사울의 죽음을 기록한 뒤, 11장에서 곧바로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모이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역대상 11:1–3은 사무엘하 5:1–3에 해당하는,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는 사건을 다룹니다. 다만 역대기는 그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갈등보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왕 아래 모이는 결과를 먼저 보여 줍니다.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으로 다윗에게 모여들어 말했다. 「보십시오. 저희는 임금님의 뼈이며 살입니다.」역대상 11:1 · 본디새김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가까운 혈연과 공동체적 유대를 나타냅니다. 창세기 29:14에서 라반은 야곱에게 그가 자신의 뼈와 살이라고 말합니다. 사사기 9:2에서도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뼈와 살이라는 사실을 내세웁니다.

사울의 죽음 이후 갈라져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와서, 그를 자기들과 분리된 외부의 지배자가 아니라 같은 백성에 속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왕과 백성의 관계가 지배와 복종만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먼저 공동체적 소속이 선언됩니다.

그런데 백성은 혈연만을 근거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이미 백성을 이끌었던 사람

「전에도,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가고 이끌고 들어온 분은 임금님이셨습니다. 임금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임금님께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목자로서 돌볼 것이며,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역대상 11:2 · 본디새김

사무엘상 18:5, 13–16에는 다윗이 전쟁에서 성공을 거두고 백성의 인정을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끌고 나가고 이끌고 들어오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사람들을 이동시켰다는 뜻이 아닙니다. 군대를 이끌어 전쟁에 나가고 돌아오는 지도자의 역할을 나타냅니다.

민수기 27:16–17에서 모세는 자신을 대신해 회중 앞에 나가고 들어오며, 백성을 이끌고 나가고 들어올 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여호와야훼께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야훼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누구의 목자인가

목자는 양을 이끄는 사람이지만, 양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양이 먹을 것과 안전하게 머물 곳을 살피고, 위험 앞에서 보호하는 책임을 맡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다윗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두 차례나 자신의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다윗은 그 백성을 맡아 돌볼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주인은 다윗이 아닙니다.

다윗은 왕이 되면서 백성을 소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을 돌볼 책임을 받았습니다.

선택과 동의가 만나는 헤브론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으로 왕에게 왔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사무엘을 통해 한 말대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역대상 11:3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의 선택과 백성의 인정이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이유로 장로들과 맺는 언약이 불필요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백성이 다윗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선택을 대신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언약의 구체적인 조항을 설명하지 않지만, 그 언약이 ‘여호와야훼 앞에’ 맺어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왕과 백성의 관계는 두 집단 사이의 정치적 타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맺어진 관계입니다.

이렇게 헤브론에서 왕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헤브론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다윗 혼자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가다

역대상 11:4–9 본문 →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곧 여부스로 갔다. 그곳에는 그 땅의 주민인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역대상 11:4 · 본디새김

헤브론에서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모여들었다면, 이제 그들은 다윗과 함께 새로운 중심지를 향해 움직입니다. 이것은 앞 단락에서 이루어진 결속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왜 예루살렘인가

여호수아 15:63에 따르면 유다 자손은 예루살렘에 살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사사기 1:21에서도 베냐민 자손이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했지만, 이스라엘이 온전히 지배하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이 성읍은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 지역과도 관계가 있었습니다(여호수아 15:8; 18:28). 다윗이 예루살렘을 중심지로 삼은 결정에는 이러한 위치가 중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다의 전통적인 중심지인 헤브론과 달리, 예루살렘은 새롭게 통합된 왕국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11장은 다윗이 왜 예루살렘을 선택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이나 방어상의 이점 등을 다윗의 명시적인 동기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다윗은 시온 요새를 점령했다. 그곳이 다윗성이다.역대상 11:5 · 본디새김

이 대비를 통해 성읍의 지배자가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예루살렘에 살던 여부스 사람들의 관점까지 포함한 완전한 사건 설명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들이 겪은 전쟁의 피해나 점령 이후의 삶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올라간 사람

다윗이 말했다. 「누구든 맨 먼저 여부스 사람들을 치는 사람은 우두머리와 지휘관이 될 것이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맨 먼저 올라가 우두머리가 되었다.역대상 11:6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사무엘하 5:6–10의 평행본문보다 요압의 역할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다윗은 왕으로 세워졌지만,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일은 혼자 수행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나아가야 했고, 요압이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무엘하 3:26–30에서는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하고, 사무엘하 20:9–10에서는 아마사도 죽입니다. 역대상 11장은 그 사건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요압은 예루살렘 점령에 참여하고 성읍을 복구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그의 군사적 공적을 인정하는 것과 그의 생애 전체를 도덕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다윗이 건설하고 요압이 복구하다

다윗은 요새에 살기 시작하고, 성읍은 다윗성이라고 불립니다. 이어 다윗은 밀로에서부터 성읍을 건설하고, 요압은 나머지 부분을 복구합니다.

다윗은 점점 강대해졌고, 만군의 여호와야훼가 그와 함께했다.역대상 11:9 · 본디새김

이 문장은 다윗의 성공을 오직 그의 군사적 능력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했고, 요압은 선두에서 싸웠으며, 사람들이 성읍을 건설했습니다. 이 모든 인간의 활동이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윗은 혼자 왕국을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역대기는 그의 왕권을 사람들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로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두 관점이 다음 단락에서 하나로 만납니다.

조금 더 깊이

‘밀로’가 정확히 어떤 구조물이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성읍의 방어 시설이나 인공적으로 조성한 축대와 관련된 시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5:9과 열왕기상 9:15, 24에도 등장합니다. 8절의 ‘복구했다’는 동사는 본래 살리거나 되살린다는 뜻을 지닌 말로, 문맥에 따라 주민들을 살려 두었다는 방향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성읍 건설의 문맥을 따라 시설을 복구했다는 뜻으로 옮겼습니다.

다윗의 왕권을 세운 사람들

역대상 11:10–14 본문 →

10절은 이후 등장할 긴 용사 명단의 의미를 먼저 밝힙니다.

다음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의 우두머리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야훼의 말대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고 온 이스라엘과 함께 그의 편에 굳게 서서 그의 왕권을 뒷받침했다.역대상 11:10 · 본디새김

따라서 여기서 용사들은 다윗 개인의 군사적 성공을 위한 도구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왕권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한 번에 삼백 명을 죽인 야소브암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의 명단은 이러했다. 하그모니의 아들 야소브암은 장교들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창을 휘둘러 한 번에 삼백 명을 죽였다.역대상 11:11 · 본디새김

전투에서 삼백 명을 죽였다는 기록은 대단한 전공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전투였는지, 혼자서 싸운 것인지,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일인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12–14절에서는 엘르아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다윗과 함께 바스담밈에 있었고, 블레셋 사람들이 전투를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곳에는 보리가 가득한 밭이 있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지자 백성은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밭뙈기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그곳을 지켜 내고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 여호와야훼는 큰 구원을 이루었다.역대상 11:14 · 본디새김

왜 하필 보리밭인가

보리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곡물이었습니다. 그 밭은 누군가의 식량과 생계에 관계된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단순히 전사들이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을 넘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제적인 공간이 전쟁의 현장이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밭의 소유자가 누구였는지, 용사들이 어떤 개인의 재산을 지키려고 싸웠는지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밭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의미 있는 것은 한 사람의 독무대처럼 읽기 쉬운 전투가, 역대상에서는 함께 버틴 사람들의 행동으로 서술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싸웠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위험을 감당하고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그 승리를 여호와야훼께서 이루신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의 강대함은 여호와야훼의 함께하심 아래 설명되고, 용사들의 승리는 여호와야훼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설명됩니다.

왕의 능력도, 용사의 용맹도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왕과 용사의 관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험받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하 23:8의 평행본문은 대응하는 용사의 전공을 팔백 명으로 기록합니다. 두 본문 사이에 숫자와 이름의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생긴 정확한 과정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23:11–12에서는 삼마라는 용사가 렌즈콩이 가득한 밭에 서서 블레셋을 물리칩니다. 반면 역대상에서는 엘르아살의 이야기와 보리밭 전투가 연결되어 있고, 14절의 동사도 복수형입니다. 두 기록이 서로 연관된 전승을 보존한다고 볼 수 있지만, 원래 하나의 사건이었는지 혹은 여러 전투 이야기가 다르게 결합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본디새김이 ‘그들은’이라고 옮긴 것은 이러한 복수 표현을 반영한 것입니다.

다윗은 왜 물을 마시지 않았는가

역대상 11:15–19 본문 →

다윗의 바람, 용사들의 헌신, 그 헌신을 받아들이는 왕의 책임이 서로 맞닿습니다.

베들레헴의 우물을 향한 그리움

15–16절에서 다윗은 요새에 머물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고, 베들레헴에는 블레셋 수비대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간절히 바라며 말했다.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의 물을 내게 마시게 해 줄까?」역대상 11:17 · 본디새김

이 말은 명령이라기보다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는 말로 들립니다. 다윗에게 베들레헴은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그는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었고, 사무엘상 16장에서 그곳에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의 물을 바랐다는 말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다윗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그 우물의 물을 특별히 좋아했을 수도 있고, 당시의 상황에서 그 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정확한 심리는 알 수 없습니다.

평범한 물 한 모금이 위험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말 한마디가 불러온 위험

다윗은 그들에게 직접 적진을 뚫고 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행동합니다. 그들은 적군이 차지한 지역으로 들어가 물을 길어 옵니다.

본문은 세 사람을 어리석다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9절 끝에서 이 일을 세 용사가 행한 특별한 일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그 물을 마시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야훼께 부어 바치다

그 세 사람은 블레셋 진영을 뚫고 들어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길어 다윗에게 가져왔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마시려 하지 않고 여호와야훼에게 부어 바쳤다.역대상 11:18 · 본디새김

처음 읽으면 그들의 수고를 무시하는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구절에서 다윗은 이유를 밝힙니다.

그가 말했다. 「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 내가 이 사람들의 목숨을 대가로 그들의 피를 마시겠느냐? 이들이 자기 목숨을 걸고 이 물을 가져왔는데.」 그는 그 물을 마시려 하지 않았다. 세 용사가 이런 일들을 했다.역대상 11:19 · 본디새김

그 물을 얻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다윗이 피라는 강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을 마시는 행위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물은 세 사람의 생명이 위험에 노출되는 과정을 거쳐 다윗 앞에 놓였습니다.

다윗은 물 한 모금보다 세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인정합니다.

다윗의 행동은 물을 함부로 버린 것과 구별됩니다. 이는 세 사람의 헌신이 무가치하다고 선언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비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으로 대하는 행동입니다.

목자로 세워진 왕의 첫 번째 시험

여호와야훼는 다윗에게 자신의 백성을 목자로서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가 처음에 물을 바랐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큰 위험을 수반했는지 알게 된 뒤, 그 결과를 자신의 즐거움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왕의 군사적 책임에는 실제로 위험한 전투를 지휘해야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지도자는 부하들에게 어떤 위험도 감수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인 원칙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다윗이 거절한 것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바람을 위해 사람들이 목숨을 걸어 가져온 물을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역대기는 다윗의 행동을 기록한 뒤에도 세 사람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그들의 헌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윗이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한 일이 무의미해지지 않습니다.

세 사람의 용맹과 다윗트의 거절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충성을 받는 왕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은 단지 부하들의 충성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충성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했는지 아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본문이 이 일을 정규 제사 규정에 따른 공식적인 전제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물을 바친 행위가 사람들의 생명을 실제로 희생 제물로 삼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열왕기상 12장에서는 르호보암이 백성의 무거운 짐을 덜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고 더 무겁게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결과 왕국은 분열됩니다. 또 에스겔 34:2–4에서는 자기 자신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책망받습니다. 그들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으며, 상처 입은 자를 고쳐 주지 않았습니다. 이 본문들은 역대상 11장과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해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도자를 목자에 비유하며 그 책임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주제적 연결을 이룹니다. 특히 에스겔 34:23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위에 한 목자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그 목자를 ‘내 종 다윗’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다윗의 왕권이 후대의 이스라엘에서 이상적인 목자 통치에 대한 기대와 연결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부르시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10:11). 이는 역대상 11장에 대한 직접 인용이라기보다, 구약의 목자 통치라는 주제가 신약에서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용맹한 사람들에게도 서로 다른 자리가 있다

역대상 11:20–25 본문 →

이후 본문은 다시 용사들의 공적으로 돌아갑니다.

요압의 형제 아비새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창을 휘둘러 삼백 명을 죽였고, 그 세 사람 가운데 이름을 떨쳤다.역대상 11:20 · 본디새김

그다음에는 아비새가 다른 용사들보다 더 존중받았지만, 최상위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은 원문의 인원 구분과 표현에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세 사람’이 어느 집단을 가리키는지, 아비새가 어떤 수준의 명예를 얻었는지 명확히 재구성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용사들 사이의 공적과 지위에 차이가 있었다고 기록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음으로 브나야가 등장합니다.

모압의 두 아리엘을 죽이고, 눈이 내린 날 구덩이에 내려가 사자를 죽였습니다. 또 키가 다섯 규빗이나 되는 이집트 사람과 싸웠습니다. 상대는 긴 창을 들고 있었지만, 브나야는 막대기를 가지고 접근해 그 창을 빼앗고 상대의 무기로 그를 죽입니다.

브나야는 높은 명예를 얻고 다윗의 호위대를 맡게 됩니다. 다윗의 왕국에서는 전투에서 능력을 드러낸 사람들이 중요한 군사적 책임을 맡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의 능력주의를 정당화하는 일반 원칙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 인물들의 공적과 직무를 기록할 뿐, 공적이 크면 언제나 더 높은 지위를 받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규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제 역대기는 몇몇 특별한 용사의 공적에서 벗어나, 훨씬 많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아리엘’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름이나 칭호로 볼 수 있지만, 그 두 사람이 형제였다는 설명은 본문에 없습니다. 브나야의 이집트 사람과의 전투 장면은 사무엘상 17장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골리앗의 창도 베틀의 가로대에 비유되며(사무엘상 17:7), 다윗은 상대적으로 약한 무장을 하고 거대한 상대를 맞섭니다. 두 본문은 강한 무장을 한 적에게 용감하게 맞선다는 주제적 유사성을 보여 줍니다.

다윗의 왕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가

역대상 11:26–47 본문 →

26절부터는 긴 명단이 이어집니다.

이 명단은 얼핏 보면 앞에서 다룬 족보와 비슷합니다. 이름과 출신 지역이 반복해서 나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명단은 혈연보다 함께 수행한 군사적 활동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묶습니다.

왕의 역사로 들어왔지만, 역대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다윗의 고향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명단에는 요압의 형제 아사헬과 베들레헴 출신 엘하난이 등장합니다. 이후 드고아, 아나돗, 느도바, 비라돈 등 여러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베냐민 자손의 기브아 출신인 리배의 아들 잇대, 비라돈 사람 브나야,역대상 11:31 · 본디새김

기브아는 사울과 깊이 관련된 성읍입니다(사무엘상 10:26; 11:4). 그런데 그곳 출신의 베냐민 사람이 다윗의 용사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군대가 그의 출신 지파인 유다 사람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다만 잇대가 정확히 언제 다윗에게 합류했는지, 사울의 집안과 어떤 개인적 관계가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의 존재만으로 모든 베냐민 사람이 다윗을 곧바로 지지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르우벤 사람 시사의 아들 아디나였다. 아디나는 르우벤 사람들의 우두머리였고, 그와 함께 서른 명이 있었다.역대상 11:42 · 본디새김

아디나와 함께한 서른 명이 앞서 언급된 유명한 서른 용사와 같은 집단인지, 그가 별도로 지휘하거나 함께했던 사람들인지는 본문이 확정해 주지 않습니다. 다윗의 왕권을 지탱한 사람들은 유다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이 장의 첫머리에 등장한 ‘온 이스라엘’이 추상적인 구호만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밖에서 온 사람들의 이름

39절에는 암몬 사람 셀렉이 있습니다. 41절에는 헷 사람 우리야가 있습니다. 46절에는 모압 사람 이드마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 출신과 나란히 다윗의 용사 명단에 기록됩니다.

특히 ‘암몬 사람’, ‘헷 사람’, ‘모압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과 관련된 출신 또는 소속을 나타냅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각각의 인물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경로로 다윗의 군대에 들어왔으며, 어떤 법적 지위를 가졌는지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명단이 다윗의 군사적 동료를 혈통적으로 단일한 집단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야라는 이름이 남기는 불편함

헷 사람 우리야, 아흘래의 아들 사밧,역대상 11:41 · 본디새김

사무엘하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그냥 지나가기 어렵습니다. 우리야는 밧세바의 남편이었으며, 다윗은 밧세바와 관계를 맺은 뒤 그 일을 숨기려 했고, 결국 우리야를 전투 중에 죽게 하도록 명령했습니다(사무엘하 11:2–17). 우리야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군인이었지만, 다윗 자신에게서 치명적인 배신을 당한 사람입니다.

역대기는 이 장에서 우리야의 죽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뒤에서도 사무엘하 11장의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상세히 서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의 이야기를 아는 독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긴장이 생깁니다.

앞에서 다윗은 세 사람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생명을 대가로 얻은 물을 자기 갈증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다윗은 우리야의 생명을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데 이용했습니다.

이것은 역대상 11장이 명시적으로 설정한 대조라기보다, 사무엘하까지 함께 읽는 독자가 발견하는 정경적 긴장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의 행동을 한 번의 훌륭한 선택으로 모두 설명할 수도 없고, 훗날의 심각한 죄 때문에 이전에 행한 올바른 행동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다윗을 단순한 영웅의 모습으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왕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려면, 왕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는 왕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왕에게 배신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명단은 다윗의 영광을 장식하기 위한 이름들의 나열만이 아닙니다. 그 왕권에 실제로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남기는 기록입니다.

맺음 — 세 사람이 가져온 물 한 모금

역대상 11:1–47 본문 →

다윗의 왕권은 여호와야훼의 선택에 근거하고 많은 사람의 헌신으로 세워집니다. 그러나 그 헌신을 받는 왕조차 사람들의 생명을 자기 욕망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 앞에 놓인 물 한 모금입니다.

그 물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길어 온 물이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그 물을 가져오기 위해 블레셋 진영을 뚫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물이 다윗 앞에 놓였을 때, 다윗은 그것을 단순한 물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목숨을 건 행동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여호와야훼께 부어 바쳤습니다.

다윗은 왕이 될 사람이었고, 그들은 그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다윗은 왕에게 향한 충성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들의 생명은 왕이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길어 온 물은 결국 다윗의 입술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 물은 여호와야훼 앞에 부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