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왕이 된 다윗
왕을 세운 사람들, 마시지 않은 물
다윗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까요?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었고, 마침내 사울의 왕권이 끝나자 왕권은 다윗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11장은 조금 다른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윗이 왕좌에 앉아 사람들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그에게 찾아와 자신들이 한 핏줄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다윗이 이미 해 온 일을 기억하고,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목자로 세우셨다는 말씀을 인정합니다.
역대상 11장은 왕이 세워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왕을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왕이 되기 전에 먼저 한 몸이 되다
역대상 11장은 다윗이 왕위를 이어받는 일을 매우 짧게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2–5장에 따르면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먼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헤브론에서 유다를 다스렸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을 다스리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전쟁과 정치적 갈등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역대상은 그 과정을 거의 모두 생략합니다.
10장에서 사울의 죽음을 기록한 뒤, 11장에서 곧바로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모이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역대상 11:1–3은 사무엘하 5:1–3에 해당하는,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는 사건을 다룹니다. 다만 역대기는 그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갈등보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왕 아래 모이는 결과를 먼저 보여 줍니다.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모여 말했습니다. 「저희는 임금님과 한 핏줄입니다.」역대상 11:1 · 두루새김
두루새김의 「한 핏줄」은 원문에서 「뼈와 살」(עֶצֶם)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혈연과 같은 공동체에 속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창세기 29:14에서 라반은 야곱에게 그가 자신의 뼈와 살이라고 말합니다. 사사기 9:2에서도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뼈와 살이라는 사실을 내세웁니다.
사울의 죽음 이후 갈라져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와서, 그를 자기들과 분리된 외부의 지배자가 아니라 같은 백성에 속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왕과 백성의 관계가 지배와 복종만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먼저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런데 백성은 혈연만을 근거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이미 백성을 이끌었던 사람
「전에도,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이끌고 싸우러 나갔다가 돌아온 분은 임금님이셨습니다. 임금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임금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목자처럼 돌볼 것이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역대상 11:2 · 두루새김
사무엘상 18:5, 13–16에는 다윗이 전쟁에서 성공을 거두고 백성의 인정을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싸우러 나갔다가 돌아온」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사람들을 이동시켰다는 뜻이 아닙니다. 군대를 이끌어 전쟁에 나가고 돌아오는 지도자의 역할을 나타냅니다.
민수기 27:16–17에서 모세는 자신을 대신해 회중 앞에 나가고 들어오며, 백성을 이끌고 나가고 들어올 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여호와야훼께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야훼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역대상 11:2에서도 백성을 이끌고 싸우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지도자의 역할이 곧바로 「목자처럼 돌볼」이라는 표현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누구의 목자인가
목자는 양을 이끄는 사람이지만, 양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양이 먹을 것과 안전하게 머물 곳을 살피고, 위험 앞에서 보호하는 책임을 맡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다윗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두 차례나 자신의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다윗은 그 백성을 맡아 돌볼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주인은 다윗이 아닙니다.
다윗은 왕이 되면서 백성을 소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을 돌볼 책임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뒤에 나오는 베들레헴 우물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다윗이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목자라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걸어 그의 개인적인 바람을 이루어 줄 때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선택과 동의가 만나는 헤브론
이스라엘을 이끄는 어른들이 모두 헤브론에 있는 왕에게 왔습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사무엘을 통해 하신 말씀대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역대상 11:3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의 선택과 백성의 인정이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을 이끄는 어른들과 맺는 언약이 불필요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백성이 다윗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선택을 대신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언약의 구체적인 조항을 설명하지 않지만, 그 언약이 「여호와야훼 앞에」 맺어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왕과 백성의 관계는 두 집단 사이의 정치적 타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맺어진 관계입니다.
이렇게 헤브론에서 왕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헤브론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주제는 다윗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반복됩니다. 열왕기상 12장에서는 르호보암이 백성의 무거운 짐을 덜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고 더 무겁게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결과 왕국은 갈라집니다. 또 에스겔 34:2–4에서는 자기 자신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책망받습니다. 그들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으며, 상처 입은 자를 고쳐 주지 않았습니다. 이 본문들은 역대상 11장과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해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도자를 목자에 비유하며 그 책임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주제로 연결됩니다. 특히 에스겔 34:23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위에 한 목자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그 목자를 「내 종 다윗」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다윗의 왕권이 후대의 이스라엘에서 이상적인 목자의 다스림에 대한 기대와 연결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부르시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10:11). 이는 역대상 11장에 대한 직접 인용이라기보다, 구약에서 목자의 다스림을 말하던 주제가 신약에서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다윗 혼자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가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곧 여부스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그 땅의 주민인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역대상 11:4 · 두루새김
헤브론에서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모여들었다면, 이제 그들은 다윗과 함께 새로운 중심지를 향해 움직입니다. 이것은 앞 단락에서 이루어진 하나 됨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왜 예루살렘인가
여호수아 15:63에 따르면 유다 자손은 예루살렘에 살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사사기 1:21에서도 베냐민 자손이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했지만, 이스라엘이 온전히 지배하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이 성읍은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 지역과도 관계가 있었습니다(여호수아 15:8; 18:28). 다윗이 예루살렘을 중심지로 삼은 결정에는 이러한 위치가 중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다의 전통적인 중심지인 헤브론과 달리, 예루살렘은 새롭게 하나가 된 왕국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11장은 다윗이 왜 예루살렘을 선택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느 지파에도 치우치지 않는 위치나 방어에 유리한 점 등을 다윗이 선택한 분명한 이유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여기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다윗은 시온 요새를 차지했습니다. 그곳이 다윗 성입니다.역대상 11:5 · 두루새김
이 대비를 통해 성읍의 지배자가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예루살렘에 살던 여부스 사람들의 관점까지 포함한 완전한 사건 설명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들이 겪은 전쟁의 피해나 성읍을 빼앗긴 이후의 삶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올라간 사람
다윗이 말했습니다. 「누구든 맨 먼저 여부스 사람들을 공격하는 사람은 우두머리와 지휘관이 될 것이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맨 먼저 올라가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역대상 11:6 · 두루새김
이 구절은 같은 사건을 다루는 사무엘하 5:6–10보다 요압의 역할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다윗은 왕으로 세워졌지만,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일은 혼자 해내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나아가야 했고, 요압이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무엘하 3:26–30에서는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고, 사무엘하 20:9–10에서는 아마사도 죽입니다. 역대상 11장은 그 사건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요압은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일에 참여하고 성읍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그가 전투에서 세운 공을 인정하는 것과 그의 생애 전체가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다윗이 건설하고 요압이 복구하다
다윗은 요새에 살기 시작하고, 성읍은 다윗 성이라고 불립니다. 이어 다윗은 밀로에서부터 성읍을 건설하고, 요압은 나머지 부분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밀로」가 정확히 어떤 구조물이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성읍의 방어 시설이나 사람이 쌓아 올린 축대와 관련된 시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5:9과 열왕기상 9:15, 24에도 등장합니다.
8절의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חָיָה)에 해당하는 원문의 동사는 본래 살리거나 되살린다는 뜻을 지닌 말로, 문맥에 따라 주민들을 살려 두었다는 방향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성읍 건설의 문맥을 따라 성읍의 나머지 부분을 다시 세웠다는 뜻으로 옮겼습니다.
다윗은 점점 더 강해졌고,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그와 함께하셨습니다.역대상 11:9 · 두루새김
이 문장은 다윗의 성공을 오직 그의 군사적 능력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했고, 요압은 선두에서 싸웠으며, 사람들이 성읍을 건설했습니다. 이 모든 사람의 활동이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윗은 혼자 왕국을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역대기는 그의 왕권을 사람들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로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두 관점이 다음 단락에서 하나로 만납니다.
다윗의 왕권을 세운 사람들
10절은 이후 등장할 긴 용사 명단의 의미를 먼저 밝힙니다.
다음은 다윗을 따르던 용사들의 우두머리들입니다. 이들은 온 이스라엘과 함께 다윗의 편에 굳게 섰고, 그의 왕위를 든든하게 해 주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 관해 하신 말씀대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는 것이었습니다.역대상 11:10 · 두루새김
따라서 여기서 용사들은 다윗 개인의 군사적 성공을 위한 도구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왕권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한 번에 삼백 명을 죽인 야소브암
다윗의 용사 명단은 이러합니다. 하그모니의 아들 야소브암은 장교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는 창을 휘둘러 한 번에 삼백 명을 죽였습니다.역대상 11:11 · 두루새김
전투에서 삼백 명을 죽였다는 기록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전투였는지, 혼자서 싸운 것인지,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일인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12–14절에서는 엘아자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다윗과 함께 바스담밈에 있었고,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그곳에는 보리가 가득한 밭이 있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지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엘아자르는 그 밭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밭을 지켜 내고 블레셋 사람들을 쳤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역대상 11:14 · 두루새김
왜 하필 보리밭인가
보리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곡물이었습니다. 그 밭은 누군가의 식량과 생계에 관계된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단순히 용사들이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을 넘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제적인 공간이 전쟁의 현장이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밭의 소유자가 누구였는지, 용사들이 어떤 개인의 재산을 지키려고 싸웠는지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의미 있는 것은 한 사람만의 활약처럼 읽기 쉬운 전투가, 역대상에서는 함께 버틴 사람들의 행동으로 서술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싸웠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위험을 감당하고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그 승리를 여호와야훼께서 이루신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왕의 능력도, 용사의 용맹도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왕과 용사의 관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험받습니다.
조금 더 깊이
같은 용사를 다루는 사무엘하 23:8은 그가 세운 공을 팔백 명으로 기록합니다. 두 본문 사이에 숫자와 이름의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생긴 정확한 과정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23:11–12에서는 삼마라는 용사가 렌즈콩이 가득한 밭에 서서 블레셋을 물리칩니다. 반면 역대상에서는 엘아자르의 이야기와 보리밭 전투가 연결되어 있고, 원문에서 14절의 동사도 여러 사람이 한 행동을 나타냅니다. 두 기록이 서로 연관된 이야기를 전한다고 볼 수 있지만, 원래 하나의 사건이었는지 혹은 여러 전투 이야기가 다르게 합쳐졌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두루새김은 함께 행동한 사람들을 「다윗과 엘아자르」라고 밝혀 옮겼습니다.
다윗은 왜 물을 마시지 않았는가
다윗의 바람, 용사들의 헌신, 그 헌신을 받아들이는 왕의 책임이 서로 맞닿습니다.
베들레헴의 우물을 향한 그리움
15–16절에서 다윗은 요새에 머물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고, 베들레헴에는 그곳을 지키는 블레셋 군대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물을 간절히 마시고 싶어 하며 말했습니다.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내게 마시게 해 줄까?」역대상 11:17 · 두루새김
이 말은 명령이라기보다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는 말로 들립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바랐던 물이 적군이 지키고 있는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물 한 모금이 위험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말 한마디가 불러온 위험
다윗은 그들에게 직접 적진을 뚫고 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행동합니다. 그들은 적군이 차지한 지역으로 들어가 물을 길어 옵니다.
본문은 세 사람을 어리석다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9절 끝에서 이 일을 세 용사가 한 특별한 일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그 물을 마시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야훼께 부어 바치다
그 세 사람은 블레셋 진영을 뚫고 들어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길어 다윗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마시려 하지 않고 여호와야훼께 부어 바쳤습니다.역대상 11:18 · 두루새김
처음 읽으면 그들의 수고를 무시하는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구절에서 다윗은 이유를 밝힙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내 하나님 앞에서 나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목숨을 건 이 사람들의 피를 내가 마실 수 있겠느냐? 이들은 자기 목숨을 걸고 이 물을 가져왔다.」 다윗은 그 물을 마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 세 용사가 한 일입니다.역대상 11:19 · 두루새김
그 물을 얻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다윗이 피라는 강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을 마시는 행위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물은 세 사람의 생명이 위험에 놓이는 과정을 거쳐 다윗 앞에 놓였습니다.
다윗은 물 한 모금보다 세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인정합니다.
다윗의 행동은 물을 함부로 버린 것과 구별됩니다. 그는 자신이 마실 수 없다고 판단한 물을 여호와야훼께 바칩니다. 이는 세 사람의 헌신이 가치 없다고 선언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개인적으로 마셔 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으로 대하는 행동입니다.
목자로 세워진 왕의 첫 번째 시험
여호와야훼는 다윗에게 자신의 백성을 목자처럼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가 처음에 물을 바랐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 사람의 행동에 얼마나 큰 위험이 따랐는지 알게 된 뒤, 그 결과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왕의 군사적 책임에는 실제로 위험한 전투를 지휘해야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지도자는 부하들에게 어떤 위험도 감수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인 원칙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다윗이 거절한 것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바람을 위해 사람들이 목숨을 걸어 가져온 물을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역대기는 다윗의 행동을 기록한 뒤에도 세 사람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그들의 헌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윗이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한 일이 무의미해지지 않습니다.
세 사람의 용맹과 다윗의 거절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충성을 받는 왕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은 단지 부하들의 충성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충성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했는지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충성을 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에게 베들레헴은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그는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었고, 사무엘상 16장에서 그곳에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의 물을 바랐다는 말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다윗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그 우물의 물을 특별히 좋아했을 수도 있고, 당시의 상황에서 그 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정확한 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부어 바쳤습니다」(נָסַךְ)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나사크와 관련되며, 제물과 함께 액체를 붓는 전제의 행위를 나타낼 때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본문이 이 일을 정해진 제사 규정에 따른 공식적인 전제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물을 바친 행위가 사람들의 생명을 실제로 희생 제물로 삼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용맹한 사람들에게도 서로 다른 자리가 있다
이후 본문은 다시 용사들이 세운 공으로 돌아갑니다.
요압의 형제 아비새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는 창을 휘둘러 삼백 명을 죽였고, 그 세 사람 가운데 이름을 떨쳤습니다.역대상 11:20 · 두루새김
그다음에는 아비새가 그 세 사람 가운데서 두 배로 존중을 받아 지휘관이 되었지만, 세 용사에게는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은 원문에서 사람들의 집단을 나누는 방식과 표현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그 세 사람」이 어느 집단을 가리키는지, 아비새가 어느 정도의 명예를 얻었는지 분명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용사들 사이에 세운 공과 지위의 차이가 있었다고 기록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음으로 브나야가 등장합니다.
그는 뛰어난 일을 많이 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모압의 두 아리엘을 죽이고, 눈이 내린 날 구덩이에 내려가 사자를 죽였습니다. 또 키가 다섯 규빗이나 되는 이집트 사람과 싸웠습니다.
상대는 베틀의 가로대 같은 창을 들고 있었지만, 브나야는 막대기를 가지고 접근해 그 창을 빼앗고 상대의 무기로 그를 죽입니다. 브나야는 높은 명예를 얻고 다윗의 호위대를 맡게 됩니다.
다윗의 왕국에서는 전투에서 능력을 드러낸 사람들이 중요한 군사적 책임을 맡습니다. 본문은 이 인물들이 세운 공과 맡은 일을 기록할 뿐, 공이 크면 언제나 더 높은 지위를 받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규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제 역대기는 몇몇 특별한 용사가 세운 공에서 벗어나, 훨씬 많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아리엘」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름이나 칭호로 볼 수 있지만, 그 두 사람이 형제였다는 설명은 본문에 없습니다. 브나야가 이집트 사람과 싸우는 이 장면은 사무엘상 17장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골리앗의 창도 베틀의 가로대에 비유되며(사무엘상 17:7), 다윗은 상대적으로 약한 무장을 하고 거대한 상대를 맞섭니다. 두 본문은 강한 무장을 한 적에게 용감하게 맞선다는 주제가 비슷합니다.
다윗의 왕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가
26절부터는 긴 명단이 이어집니다.
이 명단은 얼핏 보면 앞에서 다룬 족보와 비슷합니다. 이름과 출신 지역이 반복해서 나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명단은 혈연보다 함께한 군사적 활동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묶습니다.
왕의 역사로 들어왔지만, 역대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다윗의 고향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명단에는 요압의 형제 아사헬과 베들레헴 출신 엘하난이 등장합니다. 이후 드고아, 아나돗, 느도바, 비라돈 등 여러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또 리배의 아들로 베냐민 자손의 땅에 있는 기브아 출신인 잇대, 비라돈 사람 브나야,역대상 11:31 · 두루새김
기브아는 사울과 깊이 관련된 성읍입니다(사무엘상 10:26; 11:4). 그런데 베냐민 자손의 땅에 있는 그곳 출신의 사람이 다윗의 용사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군대가 그의 출신 지파인 유다 사람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다만 잇대가 정확히 언제 다윗에게 합류했는지, 사울의 집안과 어떤 개인적 관계가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의 존재만으로 모든 베냐민 사람이 다윗을 곧바로 지지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르우벤 사람 시사의 아들 아디나가 있었습니다. 아디나는 르우벤 사람들의 우두머리였고, 그와 함께 서른 명이 있었습니다.역대상 11:42 · 두루새김
아디나와 함께한 서른 명이 앞서 언급된 유명한 서른 용사와 같은 집단인지, 그가 따로 지휘하거나 함께했던 사람들인지는 본문이 확정해 주지 않습니다. 다윗의 왕권을 지탱한 사람들은 유다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이 장의 첫머리에 등장한 「온 이스라엘」이 막연한 구호만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밖에서 온 사람들의 이름
39절에는 암몬 사람 셀렉이 있습니다. 41절에는 헷 사람 우리야가 있습니다. 46절에는 모압 사람 이드마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 출신과 나란히 다윗의 용사 명단에 기록됩니다.
특히 「암몬 사람」, 「헷 사람」, 「모압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과 관련된 출신 또는 소속을 나타냅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각각의 인물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다윗의 군대에 들어왔으며, 법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명단이 다윗의 군사적 동료를 모두 같은 혈통의 사람들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야라는 이름이 남기는 불편함
헷 사람 우리야, 아흘래의 아들 사밧,역대상 11:41 · 두루새김
우리야는 밧세바의 남편이었으며, 다윗은 밧세바와 관계를 맺은 뒤 그 일을 숨기려 했고, 결국 우리야를 전투 중에 죽게 하도록 명령했습니다(사무엘하 11:2–17). 우리야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군인이었지만, 다윗 자신에게서 목숨을 잃게 하는 배신을 당한 사람입니다.
역대기는 이 장에서 우리야의 죽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뒤에서도 사무엘하 11장의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자세히 서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의 이야기를 아는 독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긴장이 생깁니다.
한때 부하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물을 거절했던 왕이, 다른 때에는 부하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었습니다. 이것은 역대상 11장이 뚜렷하게 설정한 대조라기보다, 사무엘하까지 함께 읽는 독자가 성경 안에서 발견하는 긴장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의 행동을 한 번의 훌륭한 선택으로 모두 설명할 수도 없고, 훗날의 심각한 죄 때문에 이전에 행한 올바른 행동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다윗을 단순한 영웅의 모습으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왕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려면, 왕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는 왕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왕에게 배신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명단은 다윗의 영광을 장식하기 위한 이름들의 나열만이 아닙니다. 그 왕권에 실제로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남기는 기록입니다.
맺음 — 세 사람이 가져온 물 한 모금
다윗의 왕권은 여호와야훼의 선택에 근거하고 많은 사람의 헌신으로 세워집니다. 그러나 그 헌신을 받는 왕조차 사람들의 생명을 자기 욕망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 앞에 놓인 물 한 모금입니다.
그 물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길어 온 물이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그 물을 가져오기 위해 블레셋 진영을 뚫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물이 다윗 앞에 놓였을 때, 다윗은 그것을 단순한 물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목숨을 건 행동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될 사람이었고, 그들은 그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다윗은 왕에게 향한 충성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들의 생명은 왕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길어 온 물은 결국 다윗의 입술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 물은 여호와야훼 앞에 부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