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왕이 된 다윗
왕은 쓰러졌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왕국 역사를 뜻밖의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왕이 세워지는 장면도, 화려한 즉위식도 아닙니다. 첫 번째 왕 사울이 전쟁터에서 죽는 장면입니다.
앞선 아홉 장에 걸쳐 수많은 조상의 이름을 기록한 역대기는, 이제 사울의 죽음으로 본격적인 역사 서술을 시작합니다. 사울의 생애를 길게 들려주는 사무엘상과 달리, 역대기는 그가 왕으로 선택된 과정이나 초기의 업적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마지막 전투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사울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맨 마지막에야 나옵니다.
역대상 10장은 사울이 어떻게 죽었는지 먼저 보여 준 뒤, 그가 왜 왕의 자리를 잃었는지 설명합니다. 이 순서 덕분에 독자는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비극을 함께 보게 됩니다.
특히 이 장은 하나의 질문을 남깁니다. 사울의 실패는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의 생애 전체도 실패라는 한마디로만 기억해야 할까요?
길보아산에서 무너진 왕국
10장은 전투가 이미 시작된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달아났고, 길보아 산에서 죽어 쓰러졌습니다.역대상 10:1 · 두루새김
전투의 원인도, 병력의 규모도, 사울의 작전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있습니다.
길보아 산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남동쪽에 자리한 산지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북부와 요단 골짜기를 연결하는 지역과 가까워, 그 주변에서 벌어진 전쟁은 여러 성읍의 안전과도 관련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8:4–5에 따르면 블레셋 군대가 수넴에 진을 치고 사울은 길보아에 진을 쳤을 때, 사울은 적군을 보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10장은 그 전투 전날 밤의 이야기를 생략합니다. 독자는 두려움에 빠진 왕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나중에 알게 됩니다.
먼저 보이는 것은 죽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바싹 뒤쫓았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쳐 죽였습니다.역대상 10:2 · 두루새김
요나단은 사무엘상에서 단순히 사울의 아들로만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블레셋과 싸울 때 용감하게 행동했고(사무엘상 14:1–15), 다윗과 깊은 우정을 맺었으며(18:1–4),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적대하는데도 다윗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20장).
그런데 이 전투에서는 요나단도 죽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았다는 평가는 뒤에서 분명하게 나오지만, 그 전쟁에서 죽은 모든 사람이 사울과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요나단의 죽음은 한 왕의 실패가 그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까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노래합니다. 그 노래에서 요나단의 용기와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무엘하 1:17–27에서 더욱 뚜렷해집니다.
우리는 지도자의 실패 때문에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그 지도자의 실패에 동참한 사람들로 쉽게 묶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것은 본문이 구분하는 책임까지 존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울은 화살에 맞았는가, 두려움에 떨었는가?
3절은 사울의 마지막 순간에 가까워집니다.
사울을 향한 공격이 거세졌습니다. 활을 쏘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냈고, 사울은 그들 때문에 몸을 떨었습니다.역대상 10:3 · 두루새김
사울은 더 이상 군대 전체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존조차 결정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왕의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의 바야헬은 해석이 갈리는 표현입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은 사울이 활을 쏘는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었다고 이해하고, 다른 번역은 그들이 자신을 찾아낸 것 때문에 두려워했다고 이해합니다. 칠십인역은 그가 활을 쏘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는 방향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사울에게 화살이 몇 발 맞았는지, 그 부상이 치명적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인가
사울은 자기 무기를 맡은 사람에게 말합니다.
사울이 자기 무기를 맡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모욕하며 괴롭히지 못하도록 네 칼을 뽑아 나를 찔러라.」 그러나 무기 담당자는 몹시 두려워서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칼을 잡고 그 위로 몸을 던졌습니다.역대상 10:4 · 두루새김
여기에는 두 사람의 두려움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사울은 적군에게 모욕과 괴롭힘을 당할까 두려워합니다. 무기 담당자는 사울을 찌르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칼 위로 몸을 던져 죽습니다.
역대기는 이 장면을 영웅적인 최후로 찬양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 자체를 마지막에 내리는 신앙적 판단의 직접적인 근거로 삼지도 않습니다. 13–14절에서 사울의 죽음을 설명할 때 역대기가 지목하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일과 영매에게 물은 일입니다.
「온 집안도 함께 죽었습니다」라는 말의 무게
6절은 충격적인 문장으로 전투를 마무리합니다.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죽었고, 그의 온 집안도 함께 죽었습니다.역대상 10:6 · 두루새김
바로 앞 장인 역대상 9:39–44에서는 사울의 아들 에스바알과 요나단의 아들 므립바알, 그리고 여러 세대의 후손을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역대상 10:6을 사울과 혈연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은 날 죽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길은 「온 집안」을 사울의 왕가 전체가 입은 파멸을 강조하는 넓은 표현으로 보는 것입니다. 물론 6절 자체가 이 구별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온 집안」이 정확히 어느 범위까지 가리키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울의 후손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울을 중심으로 세워진 왕의 권력은 결정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을 구별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할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지였고(창세기 17:9–14), 블레셋 사람들은 성경에서 자주 할례받지 않은 자들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등장한다고 해서 사울의 마지막 선택이 신앙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직접 밝히는 그의 동기는 모욕과 괴롭힘을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왕이 쓰러지자 백성이 고향을 잃다
사울의 죽음은 전쟁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골짜기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달아나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 자기 성읍들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성읍들에 살았습니다.역대상 10:7 · 두루새김
앞에서는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달아났습니다. 이제는 주민들이 자기 집과 성읍을 떠납니다. 이 두 번의 도주는 전쟁의 피해가 군인들에게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왕을 요구하면서, 왕이 자신들을 다스리고 앞장서서 전쟁을 치르기를 원했습니다(사무엘상 8:19–20). 왕은 백성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기를 기대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마지막 전투에서는 그 기대가 무너집니다.
왕의 몰락은 왕궁에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 왕의 다스림 아래 살던 사람들의 일상까지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았던 일은 그의 개인적인 종교 문제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왕이라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실패는 공동체 전체와 얽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기서 패배한 백성의 사연을 더 들려주지 않습니다. 시선을 전쟁터에 남겨진 왕의 시신으로 돌립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전한 「승리 소식」
전투가 끝난 다음 날, 블레셋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옷을 벗겨 가려고 길보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무기를 가져갔습니다. 또 블레셋 땅 곳곳에 사람을 보내, 자기들의 우상들과 백성에게 승리 소식을 알렸습니다.역대상 10:9 · 두루새김
이스라엘에게는 비극이지만 블레셋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처럼 원문에서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말은 그 소식을 듣는 사람과 그 내용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사야 52:7에서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시온을 향해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합니다. 두 본문은 같은 어근을 사용하지만, 그 소식의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역대상 10장에서 승리 소식을 받는 대상은 블레셋 사람들과 그들의 우상들입니다. 이것은 전쟁의 승리가 자기들의 신들과 관련된 사건이라고 이해했던 고대의 종교적 세계를 보여 줍니다.
다곤 신전에 박힌 사울의 머리뼈
그들은 사울의 무기를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의 신전에 두었습니다. 또 그의 머리뼈를 다곤 신전에 박아 두었습니다.역대상 10:10 · 두루새김
이는 패배한 왕을 모욕하는 동시에, 전쟁에서 빼앗은 물건을 자기들의 신들에게 바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곤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신입니다.
사무엘상 5:1–5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야훼의 궤를 다곤 신전으로 가져갔을 때, 다곤의 신상이 여호와야훼의 궤 앞에 엎어지고 머리와 두 손이 떨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무엘상 5장의 사건과 역대상 10장의 사건이 일부러 서로 대비되도록 쓰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을 함께 읽으면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다곤의 신전에서 모욕당하고 있다면, 블레셋의 신들이 여호와야훼보다 강하다는 뜻일까요?
이야기의 마지막인 13–14절에서야 사울의 죽음이 여호와야훼의 판단 아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승리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공을 돌렸다는 사실과, 성경이 그 승리의 궁극적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이 모욕의 장면 뒤에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11절은 새로운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소식을 듣습니다. 그들은 한때 자신들을 위해 싸웠던 왕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됩니다.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의 성읍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초기, 암몬 사람 나하스가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했습니다. 나하스는 주민들에게 오른쪽 눈을 모두 뽑는 조건으로만 항복을 받아들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사무엘상 11:1–2). 야베스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사울이 행동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암몬 군대를 공격했고, 야베스 길르앗을 구해 냈습니다(사무엘상 11:6–11). 사무엘상 11:13에서 사울은 그날 이스라엘에 구원을 이루신 분이 여호와야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역대상 10장에서는 상황이 뒤집힙니다.
과거에는 사울이 야베스 길르앗을 구했습니다.
이제는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위해 행동합니다.
그곳의 용사들이 모두 나서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뼈를 야베스의 테레빈나무 아래에 묻고, 칠 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역대상 10:12 · 두루새김
앞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달아났습니다. 성읍의 주민들도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용사들은 나섭니다.
사울의 잘못을 알면서도 그를 존중할 수 있는가
사울의 공적이 그가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았던 일을 없애 주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사울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가 과거에 행한 모든 좋은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행동을 사울의 모든 선택에 대한 지지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한때 자신들을 위해 싸웠던 사람에게 마지막 예의를 지키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테레빈나무 아래의 일곱 날
역대기가 특별히 남기는 장면은 나무 아래에 묻힌 뼈와 칠 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은 일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금식은 슬픔이나 애도를 표현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무엘하 1:11–12에서도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사울과 요나단,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 때문에 울고 금식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죽음을 승리 소식으로 전했습니다. 그의 무기와 머리뼈를 승리의 증거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거두어 뼈를 묻고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죽음을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 죽음 앞에서 슬퍼합니다.
바로 그 장면 다음에 역대기는 사울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사울은 왜 죽었는가
13–14절은 앞의 전투 이야기와 성격이 다릅니다.
앞에서는 누가 싸우고 도망쳤으며, 누가 죽고 시신을 거두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사건의 원인을 해석합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야훼를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또 답을 얻으려고 영매에게 물었습니다.역대상 10:13 · 두루새김
여기서 「배신했기 때문입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에 쓰인 마알(מַעַל)은 맡겨진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 말은 바로 앞 장인 역대상 9:1에서 유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일을 설명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13절은 그 배신의 내용을 두 가지로 구체화합니다.
첫째,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이 말은 사무엘상에 기록된 사울의 여러 행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무엘상 13:8–14에서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자신이 번제를 드리고, 사무엘에게 꾸지람을 듣습니다.
또 사무엘상 15장에서는 아말렉과 관련해 받은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고, 사무엘은 그에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중요하다고 말합니다(15:22–23). 특히 사무엘상 15:26에서 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야훼도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선언합니다. 역대상 10:13의 짧은 문장은 이러한 긴 이야기를 압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강력한 지도자이지만, 자신의 판단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은 자리에 둘 수 있는 절대적인 통치자가 아닙니다. 신명기 17:18–20에서도 왕은 율법을 가까이 두고 읽으며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키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왕이라는 지위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대한 책임을 없애 주지 않습니다.
둘째, 영매에게 물었다
이 사건은 사무엘상 28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의 위협 앞에서 두려워하던 사울은 엔돌의 영매를 찾아갑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무엘을 불러 달라고 요구합니다.
사무엘상 28:3에 따르면 사울은 과거에 영매와 점쟁이들을 나라에서 없앴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극심한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금지했던 방식으로 답을 구합니다.
레위기 19:31은 영매와 점쟁이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명령하며, 신명기 18:10–12 역시 죽은 사람에게 묻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행동은 단순히 잘못된 조언자를 선택한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금지하신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답을 얻으려 했습니다.
사울이 두려워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배신은 아닙니다. 전쟁을 앞두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또한 여호와야훼께서 즉시 답하지 않으셨다는 사실만으로 사울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도 없습니다.
그의 두려움은 실제였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선택한 길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누가 사울을 죽였는가 — 마지막 문장의 전환
14절의 마지막은 강한 선언으로 끝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는 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사울을 죽이시고 왕의 자리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기셨습니다.역대상 10:14 · 두루새김
1–5절에 따르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사울은 적에게 붙잡혀 모욕과 괴롭힘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칼 위로 몸을 던졌습니다. 역대기는 전투의 구체적인 과정과 그 사건의 신앙적 의미를 서로 다른 차원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야훼께서 사울을 죽이시고」라는 진술은 사울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를 다시 설명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그 죽음을 여호와야훼의 심판 아래에서 해석하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모든 전쟁의 패배나 개인의 비극을 곧바로 그 사람의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처벌로 이해하도록 허용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대상 10장에는 사울에 관한 특별한 신앙적 평가가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그 평가를 다른 모든 죽음에 똑같이 적용할 근거는 없습니다.
왕의 자리를 「넘기셨습니다」라는 말
여기서 문장의 주어는 여호와야훼입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15:28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선언한 내용과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사울의 왕권을 찢어 다른 사람에게 주셨다는 선언입니다. 또 사무엘상 16:1–13에서는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왕의 권력은 궁극적으로 사울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받은 지위는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무관하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왕의 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에게 왕의 자리가 넘어갑니다.
사울은 정말 여호와야훼께 묻지 않았는가?
사무엘상에서는 사울이 여호와야훼께 물었다고 말하고, 역대상에서는 「여호와야훼께는 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곳에서는 사울이 여호와야훼께 물었으나, 여호와야훼께서 꿈이나 우림이나 예언자들을 통해 답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긴장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사무엘상이 사울이 실제로 물었던 행동을 기록하고, 역대기가 그의 지속적인 태도와 최종적인 선택을 평가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8장에 따르면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답을 얻지 못하자 영매에게 향했습니다. 역대기는 이러한 선택을 여호와야훼를 참되게 찾는 행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두 기록을 함께 읽어 얻는 해석입니다. 두 본문이 묻다는 동사를 엄격하게 서로 다른 의미로 정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상 28:6에서 사울이 실제로 물었다는 기록과 역대상 10:14의 부정적인 평가 사이에는 서술과 신앙적 해석에서 오는 긴장이 남아 있습니다.
사울의 문제는 답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으려고 여호와야훼께서 금지하신 길로 향했다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역대상 10장의 마지막 문장을 다윗이 사울의 죽음과 동시에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다는 시간적 설명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 2–5장에 따르면 사울의 죽음 이후에도 왕의 자리를 둘러싼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으로 세워졌고, 다윗은 먼저 유다를 다스린 뒤 나중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역대기는 이러한 과정을 모두 소개하지 않습니다. 대신 왕의 자리가 사울에게서 다윗에게 넘어간 사건을 여호와야훼의 결정이라는 관점에서 압축합니다.
맺음 — 길보아에서 야베스의 나무 아래로
한 왕의 다스림은 끝났습니다. 그의 잘못에 대한 평가도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과거에 구해 주었던 사람들은 그를 기억했습니다.
사울의 실패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사울에게 받았던 도움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을 악이라고 말씀하시는 판단이지만, 그 판단을 읽는 사람이 다른 인간의 비극 앞에서 슬퍼할 이유마저 잃어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의 잘못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죽은 왕을 되살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당한 모욕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길보아 산에서는 왕이 쓰러졌습니다.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사람들이 나서서 그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테레빈나무 아래에서, 그들은 칠 일 동안 슬퍼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