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왕이 된 다윗

왕은 쓰러졌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왕국 역사를 뜻밖의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왕이 세워지는 장면도, 화려한 즉위식도 아닙니다. 첫 번째 왕 사울이 전쟁터에서 죽는 장면입니다.

앞선 아홉 장에 걸쳐 수많은 조상의 이름을 기록한 역대기는, 이제 사울의 죽음으로 본격적인 역사 서술을 시작합니다. 사울의 생애를 길게 들려주는 사무엘상과 달리, 역대기는 그가 왕으로 선택된 과정이나 초기의 업적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마지막 전투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사울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맨 마지막에야 나옵니다.

역대상 10장은 사울이 어떻게 죽었는지 먼저 보여 준 뒤, 그가 왜 왕권을 잃었는지 설명합니다. 이 순서 덕분에 독자는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비극을 함께 보게 됩니다.

특히 이 장은 하나의 질문을 남깁니다. 사울의 실패는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의 생애 전체도 실패라는 한마디로만 기억해야 할까요?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10장 본문 읽기 →

길보아산에서 무너진 왕국

역대상 10:1–3 본문 →

10장은 전투가 이미 시작된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달아났고, 길보아산에서 죽어 쓰러졌다.역대상 10:1 · 본디새김

전투의 원인도, 병력의 규모도, 사울의 작전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있습니다.

길보아산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남동쪽에 자리한 산지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북부와 요단 골짜기를 연결하는 지역과 가까워, 그 주변에서 벌어진 전쟁은 여러 성읍의 안전과도 관련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8:4–5에 따르면 블레셋 군대가 수넴에 진을 치고 사울은 길보아에 진을 쳤을 때, 사울은 적군을 보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10장은 그 전투 전야의 이야기를 생략합니다. 독자는 두려움에 빠진 왕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나중에 알게 됩니다.

먼저 보이는 것은 죽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바싹 뒤쫓았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쳐 죽였다.역대상 10:2 · 본디새김

요나단은 사무엘상에서 단순히 사울의 아들로만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블레셋과 싸울 때 용감하게 행동했고(사무엘상 14:1–15), 다윗과 깊은 우정을 맺었으며(18:1–4), 자기 아버지의 적대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20장).

그런데 이 전투에서는 요나단도 죽습니다.

사울의 불신실함에 대한 평가는 뒤에서 분명하게 나오지만, 그 전쟁에서 죽은 모든 사람이 사울과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요나단의 죽음은 한 왕의 실패가 그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까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며 노래합니다. 그 노래에서 요나단의 용맹과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울은 화살에 맞았는가, 두려움에 떨었는가?

싸움이 사울을 거세게 압박했다. 활을 쏘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냈고, 그는 그들 때문에 몸을 떨었다.역대상 10:3 · 본디새김

사울은 더 이상 군대 전체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존조차 결정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왕의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의 바야헬은 해석이 갈리는 표현입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은 사울이 활 쏘는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었다고 이해하고, 다른 번역은 그들이 자신을 찾아낸 것 때문에 두려워했다고 이해합니다. 칠십인역은 그가 활 쏘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는 방향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사울에게 화살이 몇 발 맞았는지, 그 부상이 치명적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이 ‘몸을 떨었다’고 옮긴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남겨 둔 선택입니다.

마지막까지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인가

역대상 10:4–6 본문 →

사울은 무기 담당자에게 말합니다.

사울이 자기 무기 담당자에게 말했다. 「네 칼을 뽑아 그것으로 나를 찔러라. 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능욕할까 두렵다.」 그러나 무기 담당자는 몹시 두려워했으므로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울은 칼을 잡고 그 위로 엎어졌다.역대상 10:4 · 본디새김

여기에는 두 사람의 두려움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사울은 적군에게 능욕당할까 두려워합니다. 무기 담당자는 사울을 찌르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칼 위에 엎어져 죽습니다.

역대기는 이 장면을 영웅적인 최후로 찬양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울의 자결 자체를 마지막에 제시하는 신학적 판결의 명시적인 근거로 삼지도 않습니다. 13–14절에서 사울의 죽음을 설명할 때 역대기가 지목하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일과 영매에게 물은 일입니다.

‘온 집안도 함께 죽었다’는 말의 무게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죽었고, 그의 온 집안도 함께 죽었다.역대상 10:6 · 본디새김

세 아들의 죽음은 단순한 가족의 비극이 아닙니다. 사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왕권과 군사적 권력이 무너지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을 구별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할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지였고(창세기 17:9–14), 블레셋 사람들은 성경에서 자주 할례받지 않은 자들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등장한다고 해서 사울의 마지막 선택이 신앙적 행동이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직접 밝히는 그의 동기는 능욕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무기 담당자가 왜 그렇게 두려워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자기 왕을 죽여야 한다는 명령이 두려웠을 수도 있고, 전투 상황 자체가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앞 장인 역대상 9:39–44에서는 사울의 아들 에스바알과 요나단의 아들 므립바알, 그리고 여러 세대의 후손을 기록했습니다. 또 사무엘하 2:8–10에 따르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곧 에스바알은 사울이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이스라엘의 일부를 다스렸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역시 살아 있었습니다(사무엘하 4:4). 그렇다면 역대상 10:6을 사울과 혈연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은 날 죽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사무엘상 31:6의 평행본문에는 사울과 세 아들, 무기 담당자와 그의 사람들이 그날 함께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기는 여기서 ‘그의 온 집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길은 ‘온 집안’을 사울의 왕가 전체가 입은 파멸을 강조하는 포괄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입니다. 물론 6절 자체가 이 구별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온 집안’이 정확히 어느 범위까지 가리키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왕이 쓰러지자 백성이 고향을 잃다

역대상 10:7 본문 →

사울의 죽음은 전쟁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골짜기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달아나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 자기 성읍들을 버리고 달아났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성읍들에 살았다.역대상 10:7 · 본디새김

앞에서는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달아났습니다. 이제는 주민들이 자기 집과 성읍을 떠납니다. 이 두 번의 도주는 전쟁의 피해가 군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왕을 요구하면서, 왕이 자신들을 다스리고 앞장서서 전쟁을 수행하기를 원했습니다(사무엘상 8:19–20). 왕은 백성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기를 기대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마지막 전투에서는 그 기대가 무너집니다.

왕의 몰락은 왕궁에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 왕권 아래 살던 사람들의 일상까지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사울의 불신실함은 그의 개인적인 종교 문제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왕이라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실패는 공동체 전체와 얽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기서 패배한 백성의 사연을 더 들려주지 않습니다. 시선을 전쟁터에 남겨진 왕의 시신으로 돌립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전한 '기쁜 소식'

역대상 10:8–10 본문 →

전투가 끝난 다음 날, 블레셋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물건을 빼앗기 위해 길보아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들은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무기를 가져갔다. 또 블레셋 땅 사방에 전갈을 보내 자신들의 우상들과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역대상 10:9 · 본디새김

이스라엘에게는 비극이지만 블레셋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처럼 ‘기쁜 소식(⁨בָּשַׂר⁩)’이라는 표현은 그 소식을 듣는 사람과 그 내용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사야 52:7에서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시온을 향해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합니다. 두 본문은 동일한 어근을 사용하지만, 그 소식의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은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알리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합니다. 그들은 왕의 죽음을 자신들의 신들에게 알립니다. 이것은 전쟁의 승리가 자기들의 신들과 관련된 사건이라고 이해했던 고대의 종교적 세계를 보여 줍니다.

다곤 신전에 박힌 사울의 두개골

그들은 사울의 무기를 자신들의 신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두개골을 다곤 신전에 박아 두었다.역대상 10:10 · 본디새김

이는 패배한 왕을 모욕하는 동시에, 승리의 전리품을 자기들의 신들에게 바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승리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공을 돌렸다는 사실과, 성경이 그 승리의 궁극적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이 모욕의 장면 뒤에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다곤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신입니다. 사무엘상 5:1–5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야훼의 궤를 다곤 신전으로 가져갔을 때, 다곤의 신상이 여호와야훼의 궤 앞에 엎어지고 머리와 두 손이 떨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역대상 10장에서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왕의 두개골이 다곤의 신전에 놓입니다. 사무엘상 5장의 사건과 역대상 10장의 사건이 의도적인 문학적 대조로 배열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을 함께 읽으면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다곤의 신전에서 모욕당하고 있다면, 블레셋의 신들이 여호와야훼보다 강하다는 뜻일까요? 이야기의 마지막인 13–14절에서야 사울의 죽음이 여호와야훼의 판단 아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역대상 10:11–12 본문 →

11절은 새로운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야베스 길르앗의 모든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한 일을 모두 들었다.역대상 10:11 · 본디새김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의 성읍입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사울의 죽음에 특별하게 반응했을까요?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초기, 암몬 사람 나하스가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했습니다. 나하스는 주민들에게 오른쪽 눈을 모두 뽑는 조건으로만 항복을 받아들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사무엘상 11:1–2). 야베스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사울이 행동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암몬 군대를 공격했고, 야베스 길르앗을 구해 냈습니다(사무엘상 11:6–11). 사무엘상 11:13에서 사울은 그날 이스라엘에 구원을 이루신 분이 여호와야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역대상 10장에서는 상황이 뒤집힙니다.

과거에는 사울이 야베스 길르앗을 구했습니다.

이제는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위해 행동합니다.

용사들이 모두 일어나 사울의 시신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갔다.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뼈들을 야베스의 테레빈나무 아래에 묻고 이레 동안 금식했다.역대상 10:12 · 본디새김

앞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달아났습니다. 성읍의 주민들도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용사들은 일어납니다.

사울의 잘못을 알면서도 그를 존중할 수 있는가

사울은 여호와야훼에게 불신실했던 왕입니다. 역대기는 그 사실을 마지막에서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 행동을 사울의 모든 선택에 대한 지지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한때 자신들을 위해 싸웠던 사람에게 마지막 예의를 지키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공적이 그의 불신실함을 없애 주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사울의 불신실함 때문에 그가 과거에 행한 모든 좋은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테레빈나무 아래의 일곱 날

고대 이스라엘에서 금식은 슬픔이나 애도를 표현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무엘하 1:11–12에서도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사울과 요나단,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 때문에 울고 금식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죽음을 기쁜 소식으로 전했습니다. 그의 무기와 두개골을 승리의 전리품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 사람들은 그의 유해를 거두어 묻고 금식했습니다.

한때 야베스 길르앗에 구원을 가져다주었던 왕이, 이제는 그곳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마지막 안식을 얻습니다.

바로 그 장면 다음에 역대기는 사울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31:12는 이들이 밤새 이동하여 벧산 성벽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가져왔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은 밤새 이동한 일과 벧산 성벽에 관한 설명을 생략하지만, 시신을 거두어 야베스로 옮겼다는 사실은 그대로 전합니다. 사무엘상 31:12–13에는 그 시신들을 불태운 뒤 뼈를 묻었다는 내용이 있지만, 역대상은 그 과정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역대상 본문만을 해설할 때 생략된 처리 과정을 자연스럽게 끼워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울은 왜 죽었는가

역대상 10:13 본문 →

13–14절은 앞의 전투 이야기와 성격이 다릅니다.

앞에서는 누가 싸우고 도망쳤으며, 누가 죽고 시신을 거두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사건의 원인을 해석합니다.

사울은 여호와야훼에게 저지른 배신 행위 때문에 죽었다. 곧 여호와야훼의 말을 지키지 않았고, 또 응답을 구하려고 영매에게 물었다.역대상 10:13 · 본디새김

역대기는 사울 왕권의 몰락과 훗날 유다의 멸망을 설명할 때 모두 여호와야훼에 대한 불신실함을 중요한 문제로 다룹니다. 그런데 13절은 그 배신의 내용을 두 가지로 구체화합니다.

첫째,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이 말은 사무엘상에 기록된 사울의 여러 행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무엘상 13:8–14에서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자신이 번제를 드리고, 사무엘에게 책망받습니다.

또 사무엘상 15장에서는 아말렉과 관련해 받은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았고, 사무엘은 그에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중요하다고 말합니다(15:22–23). 특히 사무엘상 15:26에서 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야훼도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선언합니다. 역대상 10:13의 짧은 문장은 이러한 긴 이야기를 압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강력한 지도자이지만, 자신의 판단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은 자리에 둘 수 있는 절대적인 통치자가 아닙니다. 신명기 17:18–20에서도 왕은 율법을 가까이 두고 읽으며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키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왕이라는 지위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둘째, 영매에게 물었다

이 사건은 사무엘상 28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의 위협 앞에서 두려워하던 사울은 엔돌의 영매를 찾아갑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무엘을 불러 달라고 요구합니다.

사무엘상 28:3에 따르면 사울은 과거에 영매와 점쟁이들을 나라에서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극심한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금지했던 방식으로 응답을 구합니다.

레위기 19:31은 영매와 점쟁이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명령하며, 신명기 18:10–12 역시 죽은 자에게 묻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행동은 단순히 잘못된 조언자를 선택한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금지하신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답을 얻으려 했습니다.

누가 사울을 죽였는가 — 마지막 문장의 전환

역대상 10:14 본문 →

14절의 마지막은 강한 선언으로 끝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에게는 응답을 구하지 않았다. 여호와야훼는 그를 죽이고 왕권을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겼다.역대상 10:14 · 본디새김

인간의 행동만을 따라가면 사울의 죽음에는 블레셋 군대의 공격과 사울 자신의 마지막 선택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역대기는 전투의 구체적인 과정과 그 사건의 신학적 의미를 서로 다른 층위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야훼가 그를 죽이셨다’는 진술은 사울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를 다시 설명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그 죽음을 여호와야훼의 심판 아래에서 해석하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모든 전쟁의 패배나 개인의 비극을 곧바로 그 사람의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처벌로 이해하도록 허용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대상 10장에는 사울에 관한 특별한 신학적 평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평가를 다른 모든 죽음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근거는 없습니다.

사울은 정말 여호와야훼께 묻지 않았는가?

사무엘상에서는 사울이 여호와야훼께 물었다고 말하고, 역대상에서는 묻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차이를 무시하거나, 사무엘상 28:6에 기록된 시도가 실제로 없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의 문제는 응답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자신이 원하는 응답을 얻으려고 여호와야훼께서 금지하신 길로 향했다는 데 있습니다. 사울이 두려워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배신은 아닙니다. 전쟁을 앞두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그의 두려움은 실제였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선택한 길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왕권을 ‘넘겼다’는 말

히브리어에서 ‘넘겼다(⁨סָבַב⁩)’는 표현은 왕권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의미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문장의 주어는 여호와야훼입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15:28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선언한 내용과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사울의 왕권을 찢어 다른 사람에게 주셨다는 선언입니다. 또 사무엘상 16:1–13에서는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왕권의 궁극적인 소유자는 사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받은 지위는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무관하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왕권이 끝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28:6에서는 사울이 여호와야훼께 물었으나, 여호와야훼께서 꿈이나 우림이나 예언자들을 통해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10:13은 사울이 영매에게 응답을 구한 일을 서술할 때 ‘묻다’라는 뜻의 샤알을 사용하면서, 이어 ‘찾다·구하다·문의하다’라는 뜻의 다라쉬를 사용합니다. 14절에서는 같은 다라쉬를 사용하여 사울이 여호와야훼를 찾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동사의 반복은 두 대상을 선명하게 대비합니다. 이 긴장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사무엘상이 사울의 실제적인 문의 행위를 기록하고, 역대기가 그의 지속적인 태도와 최종적인 선택을 평가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8장에 따르면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응답을 얻지 못하자 영매에게 향했습니다. 역대기는 이러한 선택을 여호와야훼를 참되게 찾는 행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두 기록을 함께 읽어 얻는 해석입니다. 두 본문이 ‘묻다’라는 동사를 엄격하게 서로 다른 의미로 정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상 28:6의 실제 문의와 역대상 10:14의 부정적인 평가 사이에는 문학적·신학적 긴장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역대상 10장의 마지막 문장을 다윗이 사울의 죽음과 동시에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즉위했다는 시간적 설명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 2–5장에 따르면 사울의 죽음 이후에도 왕권을 둘러싼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으로 세워졌고, 다윗은 먼저 유다를 다스린 뒤 나중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역대기는 이러한 과정을 모두 소개하지 않습니다. 대신 왕권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 넘어간 사건을 여호와야훼의 결정이라는 관점에서 압축합니다.

맺음 — 길보아에서 야베스의 나무 아래로

역대상 10:1–14 본문 →

이 장의 마지막에서 역대기는 사울의 불신실함과 여호와야훼의 심판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왕권은 다윗에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선언이 앞의 장례 장면을 지워 버리지는 않습니다.

한 왕의 왕권은 끝났습니다. 그의 잘못에 대한 평가도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과거에 구해 주었던 사람들은 그를 기억했습니다.

사울의 실패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사울에게 받았던 도움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길보아산에서는 왕이 쓰러졌습니다.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사람들이 일어나 그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테레빈나무 아래에서, 그들은 이레 동안 슬퍼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