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2장

이 장의 자리 · 22–29장 · 성전 준비와 솔로몬

짓지 못하는 왕이 준비하는 집

역대상 22장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것을 준비하지만, 정작 그 집을 지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말씀을 듣고 성전 건축에서 손을 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죽기 전까지 준비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일과 하나님을 위해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 흐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전 건축의 주도권입니다. 다윗이 모든 일을 준비하고 있지만, 건축할 장소와 사람과 때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권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읽는 시간 14분소단락 522장 본문 읽기 →

아직 없는 성전을 가리키며 「바로 이곳이」라고 말하다

역대상 22:1–5 본문 →

심판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는 성전

22장은 다윗의 짧고 단호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다윗이 말했다. 「바로 이곳이 여호와야훼 하나님의 집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번제를 위한 제단이다.」역대상 22:1 · 본디새김

그런데 이 시점에는 아직 성전 건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앞으로 지어질 건물을 가리켜 이미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이 선언이 가리키는 장소는 바로 앞 장에 등장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입니다. 다윗의 인구 조사로 이스라엘에 재앙이 닥쳤을 때, 하나님은 그곳에 제단을 쌓도록 명하셨습니다. 다윗이 제물을 바치자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로 응답하셨고, 천사는 칼을 칼집에 넣었습니다(대상 21:18–27).

성전 건축의 출발점에 놓인 것은 인간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당시 모세가 만든 성막과 번제단은 기브온에 있었습니다(대상 21:29). 언약궤는 이미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았습니다(대상 15:1–16:1). 이스라엘의 예배와 관련된 중요한 장소와 기물이 아직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22장 첫머리의 선언은 새로운 건물의 위치만 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어디에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중심으로 예배할 것인지를 밝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준비하는 것은 돌만이 아니다

다윗은 곧바로 건축 준비에 착수합니다.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을 모으게 하고, 돌을 캐는 사람들을 세워 다듬은 돌을 마련합니다. 대문의 문짝에 필요한 철물과 청동을 준비하고, 시돈과 두로에서 가져온 백향목도 확보합니다(2–4절).

이 대목은 성전 준비에 이스라엘 왕실 밖의 노동력이 동원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성전 건축은 처음부터 여러 지역의 사람들과 물자가 참여하는 큰 사업이었습니다.

다윗이 말했다.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여리다. 여호와야훼를 위해 지을 집은 모든 나라에 명성과 영광을 떨칠 만큼 더없이 웅장해야 한다. 내가 그를 위해 준비해 두어야겠다.」 그래서 다윗은 죽기 전에 많은 것을 준비했다.역대상 22:5 · 본디새김

‘어리고 여리다’는 표현은 솔로몬의 정확한 나이를 알려 주기보다, 그가 감당해야 할 과업에 비해 아직 미숙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같은 평가가 역대상 29:1에도 나타납니다.

여기서 다윗의 준비는 단순히 많은 재물을 물려주는 행위보다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꿈꾸는 성전의 영광도 자신에게 돌아갈 왕실의 명예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집을 분명히 「여호와야훼를 위해 지을 집」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나라가 보게 될 웅장함도 이 목적 아래 놓입니다.

왜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인가

역대상 22:6–10 본문 →

피를 흘린 왕과 안식을 누릴 왕

다윗은 솔로몬을 불러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바로 건축 방법을 설명하지 않고, 먼저 자신의 과거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들려줍니다.

다윗에게 성전 건축은 오래전부터 품어 온 소망이었습니다. 역대상 17장에서는 이미 다윗이 하나님의 궤가 천막에 있는 현실을 보고 성전을 건축하려 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일을 직접 맡기지 않으시고, 뒤를 이을 아들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대상 17:11–12).

그런데 22장에서는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내게 왔다. 『너는 피를 많이 흘렸고 큰 전쟁들을 치렀다. 너는 내 이름을 위한 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 네가 내 앞에서 땅에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역대상 22:8 · 본디새김

하나님은 다윗이 실제로 많은 피를 흘린 전쟁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성전 건축을 맡기지 않으시는 이유로 명시하십니다.

「『보아라, 네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 그는 안식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며, 내가 그에게 사방의 모든 원수로부터 안식을 주겠다. 곧 그의 이름은 솔로몬이 될 것이며, 나는 그의 시대에 이스라엘에 평화와 평온을 주겠다.』」역대상 22:9 · 본디새김

다윗에게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신 이유와 솔로몬에게 건축을 맡기시는 이유는 서로 연결됩니다.

다윗은 전쟁을 치른 왕이고, 솔로몬은 안식을 누릴 왕입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두 왕의 도덕적 우열보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시대에 맡기시는 역할의 차이입니다. 다윗의 시대에는 전쟁을 통해 왕국이 세워지고 외부의 적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솔로몬의 시대에는 그 뒤에 찾아올 평화와 안식 가운데 하나님의 집이 세워질 것입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약속

9절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십니다.

「내가 그에게 사방의 모든 원수로부터 안식을 주겠다」, 「나는 그의 시대에 이스라엘에 평화와 평온을 주겠다」라는 두 문장의 주어는 모두 하나님입니다. 솔로몬은 평화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왕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왕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시대에 전혀 안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에 사방의 안식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시대에 이루어진 안정이 솔로몬 시대의 평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의 전쟁과 솔로몬의 건축은 완전히 끊어진 두 사건이 아닙니다. 두 세대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계획의 완성은 한 사람에게 모두 맡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집보다 먼저 약속하신 것

10절에서는 성전 건축에 관한 말이 왕권에 관한 약속으로 확장됩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한 집을 지을 것이다.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좌를 영원히 굳게 세우겠다.』」역대상 22:10 · 본디새김

이 약속은 역대상 17장에 나오는 다윗 언약을 다시 들려줍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의 집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대상 17:4–14).

여기서 ‘집’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위해 짓는 성전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에게 약속하신 왕조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인간이 먼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 드려서 그 대가로 얻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약속하시고 세워 주신 관계 안에서 지어지는 집입니다.

또한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솔로몬의 왕권을 하나님과의 특별한 언약 관계 속에 둡니다. 왕은 권력을 가진 개인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영원히’라는 약속도 단순히 솔로몬 개인이 끝없이 왕위에 앉아 있으리라는 뜻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역대상 17장의 약속과 함께 보면, 이는 솔로몬을 통해 이어질 다윗 왕조와 왕권에 관한 언약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상은 다윗의 전쟁과 승리를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전쟁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기록합니다(대상 18:6, 13). 따라서 22:8을 다윗이 치른 모든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정죄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내 앞에서 땅에 많은 피를 흘렸다’는 표현의 무게를 없애 버려서도 안 됩니다.

성전을 지을 아들에게 먼저 율법을 말하다

역대상 22:11–16 본문 →

건축을 위한 축복이 왜 순종으로 이어지는가

다윗은 이제 솔로몬에게 직접 당부합니다.

「이제 내 아들아, 여호와야훼께서 너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그분이 너에 관해 말씀하신 대로 네가 성공을 거두어 네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집을 짓기를 바란다.」역대상 22:11 · 본디새김

여기서 다윗의 말은 명령만이 아니라 축복의 기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라며, 그분의 약속이 솔로몬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뜻밖입니다.

「다만 여호와야훼께서 네게 분별력과 이해력을 주시고 이스라엘을 맡기셔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지키게 되기를 바란다.」역대상 22:12 · 본디새김

여기서 다윗은 성전 건축과 왕의 통치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집을 지을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필요한 분별력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웅장한 성전을 지어도 왕과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떠난다면, 건물의 화려함 자체가 올바른 예배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네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 관해 모세에게 명령하신 규정과 법도를 삼가 실천하면, 그때 성공을 거둘 것이다. 굳세고 용감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겁에 질리지 마라.」역대상 22:13 · 본디새김

여기서 성공은 무조건 보장되는 결과가 아닙니다. 율법을 삼가 실천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윗이 말하는 율법은 자신이 새롭게 만들어 낸 왕실 규칙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명령하신 규정과 법도」입니다. 새로운 왕이 등장하고 새로운 성전이 지어지더라도, 이스라엘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전 세대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굳세고 용감하여라」 — 새로운 일을 맡는 사람에게 주는 오래된 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책임을 넘겨줄 때에도 비슷한 명령이 주어졌습니다(신 31:7–8, 23).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실 때에도 굳세고 용감하라는 말씀과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이 함께 나타납니다(수 1:6–9).

역대상 22장에서도 같은 두 요소가 결합됩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백성을 이끌었던 것처럼, 솔로몬도 다윗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본문이 요구하는 용기는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자세입니다.

셀 수 없을 만큼 준비했지만,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다

다윗은 다시 준비된 재료와 인력을 이야기합니다.

「보아라, 나는 고난 가운데서 여호와야훼의 집을 위해 금 10만 달란트와 은 100만 달란트를 준비했다. 청동과 철은 너무 많아서 무게를 달 수 없다. 목재와 돌도 준비했으니, 너는 거기에 더 보태어라.」역대상 22:14 · 본디새김

그는 그 준비를 자신의 수고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직접적인 인상은 다윗이 상상을 넘을 만큼 풍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준비는 풍성하지만 완결된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에게 단지 준비된 물자를 사용하라고만 하지 않고, 거기에 자신의 몫을 더하라고 합니다.

더욱이 다윗은 재료뿐 아니라 기술자들까지 준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돌과 나무를 다루는 장인들, 다양한 작업에 능숙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15–16절). 성전은 한 사람의 명령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기술과 노동이 필요한 건축물입니다.

이 모든 준비를 확인한 뒤 다윗은 명령합니다.

「금과 은과 청동과 철은 셀 수 없이 많다. 일어나 일을 해라. 여호와야훼께서 너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역대상 22:16 · 본디새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 때문에, 솔로몬은 일어나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고난’으로 번역된 표현은 어려움과 궁핍의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다윗이 겪은 고난 속에서 준비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준비 과정에서 들인 수고와 고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어느 하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금과 은의 수량 또한 매우 큽니다. 이를 실제 역사에서 확보한 재물의 정확한 총량으로 검증할 독립적인 근거는 이 본문에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왕 혼자 짓는 것이 아니다

역대상 22:17–19 본문 →

아들에게서 지도자들에게로

16절까지의 대화는 다윗과 솔로몬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17절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성전 건축은 솔로몬이 맡은 특별한 사명이지만, 솔로몬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명은 아닙니다.

앞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왕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도자들에게 곧바로 노동력과 재정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먼저 질문을 던집니다.

「그대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대들과 함께 계시지 않소? 그대들이 사방에서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시지 않았소? 그분이 이 땅의 주민들을 내 손에 넘겨주셨고, 이 땅이 여호와야훼와 그분의 백성 앞에 정복되었기 때문이오.」역대상 22:18 · 본디새김

두 질문 모두 이미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이 앞서 솔로몬에게 축복으로 빌었던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여기서는 공동체가 이미 경험한 현실로 제시됩니다.

이미 함께하시며 안식을 주신 하나님께 응답하는 일이 성전 건축입니다.

마지막 명령은 건축보다 먼저 마음을 향한다

다윗은 지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이제 그대들의 마음과 온 존재를 다해 그대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으시오.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해 지어질 집에 여호와야훼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거룩한 기물들을 들여놓기 위해 일어나 여호와야훼 하나님의 성소를 지으시오.」역대상 22:19 · 본디새김

성전 건축에 참여하면서도 사람의 관심은 왕의 업적이나 건물의 규모에 머물 수 있습니다. 화려한 건물을 짓는 일에 몰두하면서 그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외적인 건축에 앞서 내적인 방향을 바로 세우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중심에는 무엇이 들어가는가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와 맺은 언약과 그분의 임재를 상징하는 중심 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언약궤와 속죄소에 관한 지시를 주실 때, 그곳에서 이스라엘에게 하실 말씀을 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 25:10–22).

또한 본문은 성전을 반복해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한 집」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장소를 말씀하신 것과 연결됩니다(신 12:5, 11).

그렇다고 하나님의 존재가 그 건물 안에 갇힌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훗날 성전을 봉헌할 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대하 6:18).

성전은 하나님을 인간이 소유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분이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백성의 예배와 기도를 받으시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다윗은 장의 시작에서 번제를 위한 제단이 있는 장소를 가리켰습니다. 장의 마지막에서는 그곳에 세울 집으로 언약궤와 거룩한 기물들을 들여놓으라고 명령합니다.

마침내 심판이 멈추었던 제단의 자리와 이스라엘의 언약과 예배를 상징하는 기물들이 하나의 성소 안에서 연결될 것입니다.

맺음 — 아직 세워지지 않은 집 앞에서

역대상 22:1–19 본문 →

이 장에서 다윗의 위대함은 성전을 완성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이 성전을 완성할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일을 다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의 생애보다 크다는 사실이 다윗에게는 물러나야 할 이유이면서 동시에 끝까지 준비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역대상 22장의 첫 문장은 이미 완성된 건물을 가리키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아직 완성된 성전이 없습니다.

있는 것은 제단과 앞으로 성전을 지을 장소, 준비된 돌과 목재와 금속들, 그리고 아들에게 그 일을 맡기는 늙어 가는 왕입니다. 다윗은 그곳에 자신이 꿈꾸었던 성전을 직접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따라 다음 세대를 준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직접 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집이 지어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사용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