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22–29장 · 성전 준비와 솔로몬

왕도 제비 앞에 서는 거룩한 직무

역대상 24장은 제사장들의 이름 스물네 개를 차례로 기록합니다. 첫째는 여호야립, 둘째는 여다야, 셋째는 하림입니다. 그렇게 스물넷째 마아시야후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명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 자체보다 이름이 결정된 방식입니다.

다윗은 이미 왕입니다. 제사장들의 계보도 확인되어 있고, 각 가문의 우두머리도 정해져 있습니다. 누가 더 큰 가문을 대표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봉사의 순서를 결정할 때는 왕이 직접 순위를 정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직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므로, 그 직무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사람의 권한이 절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앞 장에서 레위 사람들의 직무가 전반적으로 정리되었다면, 이제 24장은 제사장들의 봉사 순서와 다른 레위 가문들의 배정 방식에 초점을 맞춥니다.

읽는 시간 14분소단락 524장 본문 읽기 →

네 아들로 시작하지만 두 가문만 남는다

역대상 24:1–4 본문 →

족보의 첫머리에 기록된 두 사람의 죽음

본문은 아론의 네 아들을 소개합니다.

아론 자손의 여러 반은 다음과 같았다.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었다.역대상 24:1 · 본디새김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사라집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고, 그들에게는 아들들이 없었다. 그래서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 일을 했다.역대상 24:2 · 본디새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레위기 10:1–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불을 가지고 분향하다가 여호와야훼 앞에서 나온 불로 죽었습니다.

레위기에서 이 사건은 제사장 직무의 엄중함을 보여 줍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특별한 책임을 맡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권한까지 얻은 것은 아닙니다.

역대상 24장은 그 사건을 자세히 반복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두 사람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으며 아들들이 없었다는 사실만 밝힙니다. 이 때문에 제사장 직무를 이어받을 계열은 엘르아살과 이다말로 좁혀집니다.

앞으로 제사장들의 직무를 매우 체계적으로 조직할 것이지만, 그 모든 조직의 바탕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식으로 그분을 섬겨야 한다는 원칙이 놓여 있습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두 계열 모두 제사장이다

3절에서 다윗은 두 사람과 함께 제사장 조직을 정비합니다.

다윗은 엘르아살 자손인 사독과 이다말 자손인 아히멜렉과 함께, 아론 자손을 그들이 섬기는 일에서 맡을 직무에 따라 나누었다.역대상 24:3 · 본디새김

여기서 본문은 왕이 혼자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실제 제사장 계열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함께 직무를 나눕니다.

그런데 두 계열의 규모는 같지 않습니다.

엘르아살 자손 가운데 남자들의 우두머리가 이다말 자손 쪽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을 나누니, 엘르아살 자손의 조상 집안 우두머리는 열여섯 명이었고, 이다말 자손의 조상 집안 우두머리는 여덟 명이었다.역대상 24:4 · 본디새김

다윗은 양쪽의 규모가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열두 반씩 똑같이 나누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가문 우두머리의 수를 고려하여 조직을 구성합니다.

하지만 가문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엘르아살 계열이 모든 중요한 순서를 독점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제비뽑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서 공정함은 모든 차이를 없애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실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가 모든 권한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아히멜렉이라는 이름에는 다른 성경 본문과 비교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22:20에서는 아비아달을 아히멜렉의 아들이라고 부르지만, 역대상 24:6에서는 아히멜렉을 아비아달의 아들이라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18:16에도 이와 관련된 다른 이름 형태가 나타납니다. 이 차이가 동일한 인물의 이름과 부자 관계에 관한 전승 차이인지, 다른 인물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제비뽑기 앞에 함께 선 두 제사장 가문

역대상 24:5–6 본문 →

왜 왕이 순서를 정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양쪽을 함께 제비 뽑아 나누었다. 엘르아살 자손과 이다말 자손 양쪽에 성소의 책임자들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책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역대상 24:5 · 본디새김

구약에서 제비뽑기는 낯선 제도가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제비를 사용했고(수 18:6–10), 레위기 16:8에서는 속죄일에 사용할 두 염소를 구분하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역대상 24장에서 제비가 결정하는 것은 누가 제사장 자격을 얻을 것인가가 아닙니다. 그 자격은 이미 아론의 후손이라는 계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비는 그 제사장들이 어떤 순서로 봉사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엘르아살의 후손과 이다말의 후손은 모두 아론의 자손입니다. 본문은 어느 쪽이 더 거룩하거나 하나님께 더 가까운 혈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5절의 「성소의 책임자들」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책임자들」이라는 두 표현이 서로 다른 직급을 가리키는지, 비슷한 역할을 다른 측면에서 표현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쪽은 더 높은 성소 직무를, 다른 쪽은 낮은 직무를 맡았다고 나눌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이 밝히는 것은 양쪽 계열 모두에 그러한 책임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잠언 16:33은 사람이 제비를 뽑더라도 그 결정이 여호와야훼께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성경적 이해 속에서 제비는 단순히 인간의 이해관계나 선호에 맡기지 않는 결정 방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역대상 24장이 제비의 모든 결과에 대해 별도의 신적 계시가 내려왔다고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본문에서 확인되는 것은 사람들이 제비를 사용해 봉사 순서를 정했으며, 그 과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기록하는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들

6절에는 긴 참석자 명단이 등장합니다.

레위 사람인 느다넬의 아들 서기관 스마야가 왕과 지도자들,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조상 집안 우두머리들 앞에서 그들을 기록했다. 엘르아살 쪽에서 조상 집안이 하나씩 뽑혔고, 이다말 쪽에서도 한 집안씩 뽑혔다.역대상 24:6 · 본디새김

제사장은 한 집안의 사적인 종교 활동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위한 예배의 직무를 맡습니다. 따라서 그 직무의 순서를 정하는 일 역시 공동체의 신뢰와 관련됩니다.

기록은 그때 결정된 순서가 이후에도 확인될 수 있도록 합니다. 어떤 가문이 어느 차례를 맡았는지 분명히 남기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조직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모든 순서를 왕의 개인적 판단에 맡기지 않습니다.

왕도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제비뽑기의 결과를 지켜보는 자리에 있습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까지 질서 안에 두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제비를 담았는지, 손으로 꺼냈는지, 몇 차례에 걸쳐 뽑았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6절을 고쳐 읽어 엘르아살 계열에서 두 집안을 뽑고 이다말 계열에서 한 집안을 뽑는 절차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추첨 순서에 대해서는 다른 읽기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제비뽑기의 구체적인 진행 방식을 복원하기보다는, 본문이 분명하게 강조하는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공개성과 기록입니다.

스물네 이름이 말하는 것

역대상 24:7–19 본문 →

이름보다 앞에 놓인 숫자

7절부터 18절까지는 제비뽑기의 결과가 이어집니다.

첫째 제비는 여호야립에게, 둘째는 여다야에게 돌아갔다.역대상 24:7 · 본디새김
스물셋째는 들라야후에게, 스물넷째는 마아시야후에게 돌아갔다.역대상 24:18 · 본디새김

여기서 본문은 각 제사장 가문의 업적이나 뛰어난 능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더 오래 봉사했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 더 훌륭한 제사장이 될 것인지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제비뽑기로 결정된 순서를 기록합니다.

각 가문은 정해진 순서 안에서 여호와야훼의 집에 들어가 섬길 책임을 받습니다. 순서의 앞뒤가 곧 인격의 우열이나 거룩함의 등급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첫째인 여호야립의 이름이 특별히 더 영광스럽다고 설명되지 않으며, 스물넷째인 마아시야후가 덜 중요한 일을 맡는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모두 같은 전체 조직에 속하며, 각자 배정된 차례가 있습니다.

그 순서는 예배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합니다. 다만 이 장에는 각 반이 정확히 며칠씩 봉사했는지, 일 년에 몇 번 차례가 돌아왔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름이 이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 명단에 등장하는 이름 가운데 일부는 역대기의 다른 부분과 포로기 이후 성경 기록에도 나타납니다. 역대상 9:10에는 여다야와 여호야립과 야긴이 등장합니다. 에스라 2:36–39에는 여다야와 하림과 임멜을 비롯한 제사장 가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동일한 인물이거나 정확히 동일한 계보가 중단 없이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은 제사장 가문의 이름들이 이스라엘의 후대 예배 공동체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에스라 6:18은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에서 성전 봉사를 다시 조직할 때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각자의 반에 따라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왕조와 성전의 역사는 큰 변화를 겪었지만,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일에 정해진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이어졌습니다.

이름만 남기면 누가 어떤 가문에 속했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서까지 기록하면 그들이 어떻게 봉사하도록 조직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역대상 24장은 사람들의 이름뿐 아니라 그들에게 맡겨진 책임의 질서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왕이 만든 제도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도인가

이것이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집에 들어가 섬기도록 배정된 직무였다. 그 직무는 그들의 조상 아론을 통해 주어진 규례에 따랐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아론에게 명령한 대로였다.역대상 24:19 · 본디새김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보면 스물네 반의 조직은 다윗이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3절은 다윗이 사독과 아히멜렉과 함께 제사장들을 나누었다고 명시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 시대에 스물네 반을 모두 정해 놓으셨다는 뜻일까요?

출애굽기와 레위기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제사장 직무와 성소의 규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역대상 24장에 나오는 스물네 반의 명단이나 제비 순서를 그대로 명령하신 기록은 없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두 층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는 아론과 그의 후손에게 맡겨진 제사장의 기본 직무와 규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직무를 다윗 시대의 상황에 맞게 스물네 반으로 편성한 조직 방식입니다. 이것은 다윗과 제사장 대표자들이 마련한 것입니다.

본문은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질서는 하나님의 오래된 말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실제로 지키기 위한 질서여야 합니다.

제비뽑기와 서기관의 기록, 여러 가문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조직 과정은 모두 제사장들이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조직이 목적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수단입니다.

제사장이 아닌 레위 사람들도 제비를 뽑다

역대상 24:20–31 본문 →

「나머지 레위 자손」이라는 표현

20절에서 본문은 방향을 바꿉니다.

나머지 레위 자손은 다음과 같았다. 아므람의 자손 가운데는 수바엘이 있었고, 수바엘의 아들들로는 예드야후가 있었다.역대상 24:20 · 본디새김

앞의 열아홉 절은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에게 집중했습니다. 이제 다른 레위 사람들의 가문이 등장합니다.

이름들은 앞 장의 레위 족보와 상당 부분 겹칩니다. 그러나 24장에서는 족보 자체를 소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31절에서 그들도 제비를 뽑았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그 절차에 참여할 집안들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아론의 후손은 스물네 반으로 조직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하지만, 20–30절에 나오는 다른 레위 사람들을 동일하게 스물네 반으로 나누었다고 이 장이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제비를 뽑았지만, 정확한 반의 수와 각 가문의 봉사 순서는 이 대목에 따로 열거되어 있지 않습니다.

23절은 본디새김에서 「헤브론의 아들들은」이라고 옮겼지만, 실제 히브리어 본문에는 그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뒤의 족보와 역대상 23:19를 근거로 보충하여 읽은 것입니다.

26–27절의 야아시야후 계보에도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27절에서 「그의 아들」이라고 옮긴 표현을 사람 이름으로 읽는 전통도 있으며, 앞뒤 이름들의 정확한 관계 역시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의 족보를 근거로 각 집안의 완전한 혈통 구조를 재구성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아들이 없었던 엘르아살의 집안

마흘리에게는 엘르아살이 있었으나, 엘르아살에게는 아들들이 없었다.역대상 24:28 · 본디새김
기스 쪽에서는, 기스의 아들들로 여라므엘이 있었다.역대상 24:29 · 본디새김

이것은 앞부분의 제사장 엘르아살 계열과는 다른, 므라리 자손 안의 엘르아살에 관한 기록입니다. 앞 장에서는 이 엘르아살이 아들 없이 딸들만 두고 죽었으며, 친족인 기스의 아들들이 그 딸들과 혼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대상 23:21–22).

왜 이런 정보가 직무 조직의 명단에 남아 있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상 집안별로 레위 사람들을 확인하는 기록이기 때문에, 후손 관계가 일반적인 부계 계보와 달라지는 경우에도 그 사실을 남겼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장의 족보는 추상적인 집단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각기 다른 가족사를 가진 실제 집안들을 봉사의 조직 안에 배치합니다.

가장 높은 사람도, 작은 사람도 같은 제비 앞에 선다

이들도 자기 형제들인 아론 자손과 마찬가지로, 다윗 왕과 사독과 아히멜렉,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조상 집안 우두머리들 앞에서 제비를 뽑았다. 조상 집안의 우두머리도 그보다 어린 형제와 똑같이 제비를 뽑았다.역대상 24:31 · 본디새김

이는 다른 레위 사람들의 직무 배정도 제사장들의 직무 배정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본문은 우두머리와 그보다 작은 사람이 같은 절차에 참여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모든 레위 사람이 동일한 권한을 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족보는 분명히 집안의 우두머리를 구별하고, 성소의 직무에도 서로 다른 책임이 존재합니다. 다만 봉사의 배정에서 기존의 권위나 서열이 절차 자체를 대신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원문의 ‘작은 쪽’을 가리키는 표현은 나이가 어린 사람을 뜻할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히 나이의 차이를 강조하는지, 서열과 지위의 차이를 강조하는지는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공통된 의미는 있습니다. 우두머리라고 해서 제비뽑기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맺음 — 스물네 번째 이름까지 기록한 이유

역대상 24:1–31 본문 →

본문은 첫째로 뽑힌 사람에게 특별한 찬사를 보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뽑힌 사람에게 안타까움을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각자 배정된 차례에 여호와야훼의 집에 들어가 섬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질서는 사람마다 맡은 자리를 구별하면서도, 그 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도록 세워집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장의 제비뽑기는 현대의 어떤 의사결정 방식이든 그대로 대체해야 할 절대적 제도를 제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제비뽑기의 기술적 우월성이 아닙니다. 왕과 지도자들, 서로 다른 가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만으로 봉사의 순서를 정하지 않고, 함께 인정한 질서에 따라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순서가 정해진 뒤에도 기록은 끝나지 않습니다. 다른 레위 가문들이 등장하고, 그들 역시 같은 사람들 앞에서 제비를 뽑습니다.

마지막에는 집안의 우두머리와 그보다 어린 형제가 나란히 제비 앞에 섭니다.

다윗 왕이 그 자리에 있고, 제사장들의 대표가 지켜보며, 여러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함께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의 이름도 제비뽑기의 절차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역대상 24장이 남기는 마지막 장면은 왕이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절차 앞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정해진 이름들이 하나씩 기록됩니다. 첫째 여호야립부터 스물넷째 마아시야후까지, 각자 자신에게 맡겨진 차례를 받아 여호와야훼의 집을 섬기도록.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