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5장

이 장의 자리 · 22–29장 · 성전 준비와 솔로몬

찬양하는 사람들을 예언자라 부르다

역대상 25장은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할 사람들을 조직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아들들이 등장하고, 수금과 하프와 제금이 언급됩니다. 음악을 배운 사람들의 수를 확인한 뒤, 스물네 반으로 나누어 봉사의 순서를 정합니다.

그런데 이 장은 예상과 다른 말로 시작합니다.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예언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이어 아삽도 예언했다고 하고, 여두둔도 수금으로 여호와야훼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예언했다고 합니다. 헤만에게는 아예 「왕의 선견자」라는 칭호가 붙습니다.

왜 음악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설명하면서 예언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이 장에서 음악은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부수적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노래로 드러내는 거룩한 직무입니다.

앞 장에서 제사장들의 봉사 순서가 정해졌다면, 이제 그 예배에서 울려 퍼질 노래를 맡은 사람들의 질서가 세워집니다.

읽는 시간 14분소단락 525장 본문 읽기 →

수금과 하프와 제금으로 예언하는 사람들

역대상 25:1–2 본문 →

예언이라는 말이 음악과 만날 때

다윗과 군대 지휘관들은 섬기는 일을 위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아들들을 따로 세웠다. 이들은 수금과 하프와 제금으로 예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일을 맡아 섬길 사람들의 수는 다음과 같았다.역대상 25:1 · 본디새김

사무엘상 10:5–6에서는 예언자들의 무리가 악기를 앞세우고 내려오며 예언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또 열왕기하 3:15에서는 엘리사가 연주자를 데려오게 하고, 그가 연주할 때 여호와야훼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합니다. 이 본문들은 음악과 예언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무관한 활동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구약에서 예언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분의 행위를 해석하며,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미래를 알리지만, 현재의 삶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밝히는 일도 예언에 속합니다.

실제로 역대상 16장에서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뒤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맡긴 찬양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여러 민족 가운데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대상 16:8–36). 그 노래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의 언약, 그분의 통치와 신실하심이 선포됩니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이 하나님께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밝히고, 그분의 행위를 기억하게 하며, 듣는 사람에게 합당한 응답을 요청하는 노래입니다.

시편 50편과 73–83편의 머리말에는 아삽의 이름이 나타납니다. 이 표제들이 역사적 아삽 개인의 저작을 모두 가리키는지, 아삽 계열에 속한 노래의 전승을 가리키는지는 각각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삽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의 찬양 전승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시편 50편을 보면, 찬양 전승에 속한 시가 단순히 하나님께 아름다운 말을 올려 드리는 내용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불러 말씀하시며, 형식적인 제사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감사와 올바른 삶을 요구하십니다(시 50:7–23).

본문은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곡이 직접적인 계시로 주어졌다고 말하거나, 각 연주자가 예언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새로운 말씀을 전달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 군대 지휘관들이 음악가를 구별했을까

왜 성전의 음악가들을 조직하는데 군대 지휘관들이 등장할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다윗 혼자 음악가를 선정한 것이 아니라, 왕국의 중요한 지도자들이 이 조직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성전의 음악은 개인이 원할 때 자유롭게 연주하는 사적인 활동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예배를 위해 공식적으로 마련된 직무입니다. 그 직무가 왕국의 중요한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정해졌다는 사실은 음악 봉사가 공적인 책임으로 여겨졌음을 보여 줍니다.

왕과 지휘관들이 조직을 마련하지만, 그 조직이 지향하는 대상은 왕 자신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이십니다.

왕의 지휘를 받는 예언자

2절은 아삽의 네 아들을 소개합니다.

아삽의 아들들로는 삭굴과 요셉과 느다냐와 아사렐라가 있었다. 이 아삽의 아들들은 아삽의 지휘를 받았으며, 아삽은 왕의 지휘 아래 예언했다.역대상 25:2 · 본디새김

예언한다는 사람들이 왕의 지휘 아래 있다는 표현은 다소 뜻밖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때로 왕의 뜻에 반대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왕의 지휘는 성전 음악 봉사의 조직과 운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이 음악가들의 실제 예언 내용까지 결정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5절은 헤만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하는 왕의 선견자로 소개합니다. 이 표현을 함께 고려하면, 이들의 직무에는 왕의 조직적 감독과 하나님을 향한 종교적 책임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두 관계를 무조건 충돌한다고 볼 필요도 없지만, 왕의 명령이 곧 하나님의 말씀과 같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절의 히브리어에는 기록된 형태와 전통적으로 읽는 형태의 차이가 있습니다. 기록된 형태는 ‘예언자들’이라는 명사로 읽을 수 있고, 전통적인 읽기는 ‘예언하는 사람들’이라는 분사입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점은 같습니다. 본문은 이들을 단순히 연주자가 아니라 예언과 관련된 사람들로 소개합니다.

세 아버지와 그 자녀들 — 노래를 이어 가는 가문들

역대상 25:3–6 본문 →

다섯 이름 뒤에 적힌 「여섯 명」

여두둔의 자손을 소개하는 3절에는 작은 불일치가 있습니다.

여두둔 쪽에서는 여두둔의 아들들인 그달랴후와 스리와 여사야후와 하사뱌후와 맛디댜후, 여섯 명이 자기 아버지 여두둔의 지휘를 받았다. 여두둔은 수금으로 여호와야훼에게 감사하고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며 예언했다.역대상 25:3 · 본디새김

그런데 뒤의 제비뽑기 목록에 가면 열째 차례를 받은 시므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17절). 앞의 세 가문에서 나와야 할 스물네 명을 모두 계산하려면 여두둔 계열에 여섯 명이 있어야 하므로, 시므이가 3절의 명단에서 빠졌다고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록을 서로 비교하여 제시하는 설명입니다. 3절의 본문 자체에 여섯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름이 전승 과정에서 누락된 것인지, 처음부터 목록이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었던 것인지는 본문만으로 최종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예언의 내용 또는 목적이 감사와 찬양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이 말하는 예언적 음악은 단순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노래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일을 백성 앞에서 선포하는 활동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헤만의 열네 아들과 세 딸

4절에서는 헤만의 아들들이 길게 나열됩니다.

북기야후부터 마하시옷까지 열네 명입니다. 그리고 5절은 이들의 아버지 헤만을 특별히 소개합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뿔을 높이는 왕의 선견자 헤만의 아들들이었다. 하나님은 헤만에게 아들 열네 명과 딸 세 명을 주었다.역대상 25:5 · 본디새김

이 칭호는 헤만의 음악 봉사가 단순한 연주 능력에만 근거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는 왕과 관련된 특별한 종교적 직무를 맡은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구약에서 뿔은 종종 힘과 권세, 승리를 상징합니다. 한나의 노래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뿔이 높아졌다는 표현이 나옵니다(삼상 2:1).

따라서 여기서 뿔을 높인다는 말도 권세나 영광을 높이는 의미로 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누구의 뿔을 가리키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헤만의 선견자 역할과 관련된 표현으로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가리키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자녀는 대부분 이름만 나열되는데, 헤만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주셨다는 사실이 특별히 언급됩니다. 헤만의 자녀들이 음악 봉사에 참여하게 되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기자는 그 가족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의 선물로 바라봅니다.

한편 딸 세 명에 관해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헤만에게 주어진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밝히지만, 뒤의 스물네 반 명단에서 그들에게 어떤 직무가 배정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딸들이 전혀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거나, 반대로 이들이 정식 성전 음악 봉사자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문의 이름을 물려받는 것과 노래를 배우는 것

6절은 세 가문의 음악 봉사자들을 다시 하나로 묶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아버지의 지휘 아래 제금과 하프와 수금으로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노래하며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일을 했다. 그들의 아버지 아삽과 여두둔과 헤만은 왕의 지휘를 받았다.역대상 25:6 · 본디새김

여기서 가문은 단순한 혈통의 단위가 아닙니다. 음악을 전수하고 직무를 준비시키는 공동체의 역할도 합니다. 이렇게 성전 음악 봉사는 개인의 독립적인 연주가 아니라 여러 세대와 책임자가 연결된 활동으로 그려집니다.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책임이 있지만, 그 책임을 감당하려면 자신이 직접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악기만 물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와 그 직무를 수행하는 기술, 정해진 질서 안에서 함께 봉사하는 방법을 전합니다.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이어도 그들이 영원히 봉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배우고 숙련되어야 하며, 이후에도 그 일을 감당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역대상 25장은 바로 그런 지속성을 위해 조직을 마련하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세 가문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목적 아래 모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노래하며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배운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 서다

역대상 25:7–8 본문 →

숙련된 음악가 이백팔십팔 명

7절은 성전 음악가들의 능력을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들과 그들의 형제들은 여호와야훼를 위한 노래를 배운 사람들이었으며, 모두 숙련된 이들로 그 수가 이백팔십팔 명이었다.역대상 25:7 · 본디새김

‘배우다’라는 표현은 음악 봉사가 훈련과 습득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 ‘숙련된’이라는 말은 이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연주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강조합니다.

한쪽에는 예언이라는 특별한 종교적 활동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배우고 익히는 인간의 노력이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 둘을 서로 모순된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음악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뿐 아니라,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배우고 익히는 과정도 포함합니다.

숙련된 이도 배우는 이와 함께 제비를 뽑다

그들은 직무를 나누려고 작은 이나 큰 이나 똑같이, 숙련된 이도 배우는 이와 함께 제비를 뽑았다.역대상 25:8 · 본디새김

7절은 288명이 모두 노래를 배운 숙련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8절은 숙련된 이와 배우는 이가 함께 제비를 뽑았다고 말합니다.

‘숙련된 이’와 ‘배우는 이’가 서로 다른 수준의 음악가를 가리키며, 7절의 숙련됨은 기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8절은 그 안에서 더 경험 많은 사람과 배우는 사람을 구별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7절의 288명을 숙련된 중심 봉사자들로 보고, 8절의 제비뽑기에는 그들과 함께 일할 학습자들까지 참여했다고 이해하는 길도 있습니다. 본문은 이 두 표현의 정확한 관계를 설명하지 않으므로 어느 한쪽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전의 노래는 이미 완성된 실력을 가진 사람들만의 활동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하는 전수의 과정이 존재합니다.

또한 8절은 「작은 이나 큰 이나 똑같이」라고 말합니다. 작고 크다는 표현이 나이를 뜻하는지, 지위나 경력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직무를 정할 때 그 차이를 이유로 제비뽑기에서 제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제비는 음악가의 실력을 판정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음악 봉사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어떤 차례와 집단으로 봉사할지를 결정하는 절차입니다. 그러므로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반드시 첫 번째 차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음악을 섬기는 일은 개인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한 경쟁으로 조직되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공동의 봉사에 참여하도록 질서를 세웁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288명이라는 숫자는 뒤의 조직과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9절부터 31절까지는 스물네 반이 등장하며, 각 반은 열두 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만 첫째 제비를 받은 요셉의 경우에는 본디새김 본문에 열두 명이라는 숫자가 따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뒤의 스물세 반에는 각각 열두 명이 기록되어 있고, 전체 합계가 288명이므로 첫째 반 역시 열두 명으로 구성되었으리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대상 23:5에서는 찬양을 맡은 레위 사람이 4천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288명만 등장합니다. 두 숫자는 반드시 모순되지 않습니다. 288명을 더 큰 찬양 봉사 조직 가운데 특별히 훈련되고 조직된 집단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23장의 4천 명과 25장의 288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포함 관계에 있었는지 본문은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물네 반, 그리고 반복되는 열두 명

역대상 25:9–31 본문 →

첫째는 요셉, 마지막은 로맘디에셀

9절부터는 제비뽑기의 결과가 기록됩니다.

첫째는 아삽 쪽의 요셉입니다. 둘째는 그달랴후, 셋째는 삭굴, 넷째는 이스리입니다. 그렇게 스물네 번째 로맘디에셀까지 이어집니다.

앞의 2–4절에서는 아삽, 여두둔, 헤만의 자녀들을 각각 한데 모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제비뽑기의 결과에서는 서로 다른 가문의 사람들이 섞여 등장합니다.

첫째 요셉은 아삽 계열입니다. 둘째 그달랴후는 여두둔 계열이고, 셋째 삭굴은 다시 아삽 계열입니다. 여섯째 북기야후는 헤만 계열입니다.

이러한 배열은 각 가문이 자기들만의 독립된 봉사 영역을 차지하기보다, 전체 성전 음악 봉사의 질서 안에 함께 들어가도록 합니다. 서로 다른 계열의 사람들이 같은 성전에서 같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배치되는 것입니다.

열두 명씩 함께 봉사하는 조직

각 반의 설명에는 거의 동일한 표현이 반복됩니다.

셋째는 삭굴에게 돌아갔다. 그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은 열두 명이었다.역대상 25:10 · 본디새김

한 사람의 이름이 그 반을 대표하지만, 실제 봉사는 그 사람 혼자 수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들들과 형제들이 함께합니다. 여기서 열두 명은 이름이 오른 지도자 자신을 포함하는 수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수금과 하프와 제금을 사용하는 음악가들이 개별적으로만 활동하지 않고, 정해진 반에 속해 함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각 반의 모든 사람이 항상 동시에 같은 곡을 연주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노래하고 어떤 사람이 악기를 맡았는지, 합창의 구성과 연주의 순서가 어떠했는지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름의 차이가 남아 있는 명단

이 긴 목록에는 앞부분과 이름 형태가 다른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3절에서는 여두둔의 아들로 스리를 기록하지만, 11절에서는 넷째 제비를 받은 사람을 이스리라고 부릅니다. 2절의 아사렐라와 14절의 여사렐라 사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4절의 헤만 자손 명단에 나오는 웃시엘과 18절의 아사렐 사이에는 이름을 서로 연결해 읽으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형태 자체는 다릅니다.

이러한 차이들이 모두 동일한 원인에서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름의 다른 형태가 전해진 것일 수도 있고, 기록 과정의 변화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숫자와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모든 세부 사항을 기계적으로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것과, 여러 목록을 비교하여 재구성하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맺음 — 스물네 번째 제비가 떨어진 뒤

역대상 25:1–31 본문 →

이제 모든 반의 차례가 정해졌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선포와 인간의 체계적인 봉사가 서로 배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장 처음에서 밝혔듯이, 그들은 수금과 하프와 제금으로 예언하며 여호와야훼께 감사하고 찬양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노래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며, 그분의 이름을 공동체 가운데 선포할 사람들입니다.

아직 그 노래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를 부를 사람들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스물네 번째 제비가 떨어지고 마지막 이름이 기록된 자리에서, 역대상 25장은 멈춥니다.

노래의 내용은 아직 들리지 않지만, 여호와야훼를 찬양할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