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6장
이 장의 자리 · 22–29장 · 성전 준비와 솔로몬
하나님의 집은 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역대상 26장은 성전의 문지기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누가 동쪽 문을 맡고, 누가 북쪽과 남쪽을 지킬 것인지 정합니다. 서쪽의 큰길과 저장품을 두는 곳에도 경비 인원을 배치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문지기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20절부터는 보물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을 감독하고 재판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심지어 요단강 동쪽의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맡은 사람들까지 기록됩니다.
성전의 문을 지키는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왜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의 행정과 재판을 이야기할까요?
이 장에는 제사장의 제사나 음악가의 찬양처럼 눈에 띄는 예배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문과 창고와 관리와 재판이 등장합니다.
오벳에돔의 집에 찾아온 복
문지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본문은 고라 계열의 므셀레먀후와 그의 일곱 아들을 소개합니다. 이어 오벳에돔의 자손들이 길게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므라리 계열의 호사와 그의 아들들을 기록합니다.
그의 아들 스마야에게도 아들들이 태어났다. 이들은 자기 아버지의 가문을 다스리는 사람들이었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역대상 26:6 · 본디새김
스마야의 아들들은 오드니와 르바엘과 오벳과 엘사바드였다. 그의 형제들인 엘리후와 스마갸후도 역량 있는 사람들이었다.역대상 26:7 · 본디새김
이들은 모두 오벳에돔의 자손이었다. 그들과 그들의 아들들과 형제들은 모두 역량이 있고 섬기는 일을 할 힘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오벳에돔에게 속한 이들은 예순두 명이었다.역대상 26:8 · 본디새김
므셀레먀후에게는 역량 있는 아들들과 형제들이 열여덟 명 있었다.역대상 26:9 · 본디새김
이 장에서는 문지기들의 자질을 설명하므로,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보다 직무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적절합니다. 8절은 이들이 역량뿐 아니라 섬기는 일을 할 ‘힘’도 갖추었다고 덧붙입니다. 본문은 두 표현을 사용하여 이들에게 필요한 능력과 실제 직무 수행의 힘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성소의 문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건물의 문을 열고 닫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3:38은 성막 앞에서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 성소를 지키도록 하며,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책임을 명시합니다. 성소의 경계는 단순한 건축상의 구분이 아니라 거룩함과 관련된 경계였습니다.
역대상 9:17–27에서도 문지기들은 성소의 출입을 맡고,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며, 성소의 방과 보물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따라서 문지기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완력이 아닙니다. 맡은 자리를 지키는 능력, 거룩한 장소에 대한 책임감, 공동체가 정한 질서를 수행하는 역량이 함께 요구됩니다.
그런데 이 문지기들의 명단 한가운데에서 뜻밖의 설명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오벳에돔에게 복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벳에돔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습니다.
여섯째 암미엘, 일곱째 잇사갈, 여덟째 브울래대였다. 하나님이 오벳에돔에게 복을 주었기 때문이다.역대상 26:5 · 본디새김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던 중 웃사가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윗은 두려워하여 궤를 다윗성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역대상 13:14은 그 일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머물렀고, 여호와야훼께서 오벳에돔의 집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에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궤가 한 사람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가문이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위치에 놓입니다.
오벳에돔의 집에 임한 복은 많은 자손을 얻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집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로 등장한다는 데서 더욱 깊은 의미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단순히 성실하게 일하면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와 재물을 주신다는 공식으로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런 보상 법칙을 본문이 제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맏아들이 아닌 시므리가 우두머리가 되다
므라리의 자손인 호사에게도 아들들이 있었다. 시므리가 우두머리였다. 그는 맏아들이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그를 우두머리로 세웠다.역대상 26:10 · 본디새김
본문은 왜 호사가 시므리를 선택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형제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이유를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사람들의 역할은 단순히 출생 순서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벳에돔 가문에서는 역량과 섬기는 힘이 강조되고, 호사의 가문에서는 맏아들이 아닌 사람이 우두머리로 세워지는 일이 기록됩니다. 이렇게 문지기들의 족보는 단순한 혈통 명단을 넘어, 성소의 책임이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맡겨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두 본문의 오벳에돔이 정확히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완전한 계보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대기 안에서 반복되는 이름과 하나님의 복이라는 표현은 두 장면을 연결하여 읽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문을 지키는 사람들
성소의 문은 왜 지켜야 하는가
12절부터는 문지기 가문들의 실제 배치가 시작됩니다.
이 우두머리들에게 속한 문지기 조들은 그들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섬기는 직무를 맡았다.역대상 26:12 · 본디새김
문을 지키는 일을 가리키면서도 본문은 단순히 경비 업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라고 부릅니다.
문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입니다. 동시에 정해진 질서 없이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경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지기는 이 두 가지 기능 사이에 서 있습니다.
민수기에서 성막은 아무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무와 접근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습니다(민 3:5–10, 38).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을 만나시는 일이 인간의 임의적인 방식에 맡겨져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문지기의 역할은 공동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속합니다.
제비로 결정되지만 능력도 언급된다
그들은 작은 이나 큰 이나 똑같이, 가문별로 각 문을 맡을 제비를 뽑았다.역대상 26:13 · 본디새김
제비뽑기 자체는 앞 장에서도 나타났지만, 여기서는 제사장이나 음악가의 봉사 순서가 아니라 성소의 공간을 배정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누가 어느 문을 지킬 것인지 정하는 것입니다.
동쪽 제비는 셀레먀후에게 돌아갔다. 그의 아들 스가랴후는 분별력 있게 조언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제비를 뽑자 그의 제비는 북쪽으로 나왔다.역대상 26:14 · 본디새김
그러나 본문은 스가랴후가 조언을 잘했기 때문에 북쪽 문을 배정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배정 방식은 분명히 제비뽑기입니다.
문지기는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맡은 일을 위해 판단력과 분별력도 필요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이 점은 앞의 ‘역량 있는 사람들’이라는 설명과 연결됩니다.
제비뽑기는 그 자질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닙니다.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에서 봉사할 것인지를 정하는 방식입니다.
각 문마다 경비 인원이 다르다
본문은 제비뽑기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 동쪽은 셀레먀후가 맡고, 북쪽은 그의 아들 스가랴후가 맡습니다.
· 남쪽은 오벳에돔이 맡고, 그의 아들들은 저장품을 두는 곳을 맡습니다.
· 서쪽과 살레겟 문은 숩빔과 호사가 맡습니다.
16절에서는 서쪽 문이 「올라가는 큰길」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경비대가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경비대가 서로 마주 본다’는 표현은 원문상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마주 보는 위치에 경비대가 배치되었다는 뜻일 수 있고, 서로 대응하는 경비조나 교대 근무 관계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만으로 문 양쪽에 정확히 어떤 형태로 사람들이 서 있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동쪽에는 여섯 명, 북쪽과 남쪽에는 각각 네 명이 배치됩니다. 저장품을 두는 곳에는 각각 두 명씩, 서쪽의 큰길에는 네 명, 파르바르에는 두 명이 배치됩니다.
그렇지만 동쪽이 여섯 명인 이유가 출입량이 가장 많았기 때문인지, 특별히 중요한 문이었기 때문인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18절의 「파르바르」도 정확한 뜻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소 서쪽과 관련된 장소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어떤 건물이나 공간이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열왕기하 23:11에도 관련된 형태의 낱말이 나타나지만, 이 구절만으로 역대상 26장의 파르바르(פַּרְבָּר)가 어떤 구조물이었는지를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성소의 문들은 막연하게 관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가문에 담당 구역이 주어지고, 구역마다 정해진 사람들이 배치됩니다.
더욱이 당시의 서술 장면에서는 솔로몬의 성전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앞으로 세워질 하나님의 집을 위한 봉사 조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이지만 그곳에서 수행할 책임은 구체적으로 정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질서를 지키는 일은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끝나는 부수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 질서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에 속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안에서 드리는 제사와 찬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이루어지도록 문과 통로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찬양의 내용에 등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는 그들의 이름과 맡은 자리를 기록에서 빠뜨리지 않습니다.
보물 창고 —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누구의 소유인가
문에서 창고로 시선이 옮겨 가다
20절에서 본문은 새로운 직무를 소개합니다.
레위 사람들 가운데 아히야는 하나님의 집 보물 창고와 거룩하게 구별해 바친 물품의 창고를 맡았다.역대상 26:20 · 본디새김
이제 관심의 대상은 출입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관되는 물품입니다.
두 창고가 실제로 서로 다른 건물에 있었는지, 같은 시설 안의 다른 관리 영역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일반적인 성소의 재산 관리와 특별히 하나님께 바쳐진 물품의 관리를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구약에서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일반적인 용도에서 구분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정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창고에 보관된 물품들은 단순히 왕이나 제사장들이 필요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사용 방법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쳐진 물품을 관리하는 사람은 그것을 자기 것처럼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맡겨진 것은 소유권이라기보다 보관하고 관리할 책임입니다.
모세의 후손이 보물 창고를 맡다
모세의 아들 게르솜의 아들 스부엘은 보물 창고들을 맡은 책임자였다.역대상 26:24 · 본디새김
이 명단이 말하는 스부엘은 모세의 아들 게르솜에게서 이어진 계열에 속합니다. 긴 세대의 흐름을 모두 기록한 것이 아니라 가문의 대표적인 계보를 압축하여 소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백성을 인도한 가장 중요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역대상 26장은 모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그 후손의 직무를 성소 재산의 관리로 소개합니다.
모세의 후손도 하나님의 집에서 구체적인 책임을 맡아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돈과 물품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람은 제사를 직접 수행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그 목적에 맞게 사용되도록 책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울과 아브넬과 요압이 바친 물품까지
26–28절에서는 창고에 보관될 물품들의 출처가 등장합니다.
다윗 왕과 우두머리들과 지휘관들은 여호와야훼의 집을 튼튼하게 하려고 전쟁에서 얻은 것과 전리품 가운데 일부를 거룩하게 구별해 바쳤다.역대상 26:27 · 본디새김
사무엘하 8:11–12도 다윗이 여러 민족에게서 얻은 은과 금을 여호와야훼께 바쳤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18:11에는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은 전리품을 성소의 건립과 유지에 필요한 자원으로 바쳤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축이나 보강 작업을 가리키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선견자 사무엘과 기스의 아들 사울과 넬의 아들 아브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거룩하게 구별해 바친 모든 것을 비롯해 누구든 거룩하게 구별해 바친 물품은 모두 슬로밋과 그의 형제들이 맡았다.역대상 26:28 · 본디새김
사무엘은 사사이자 선견자로 활동했고,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습니다. 아브넬은 사울과 관련된 군사 지도자였으며, 요압은 다윗의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이들의 관계가 언제나 평화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고, 아브넬과 요압 사이에는 피비린내 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요압은 아브넬을 죽였습니다(삼하 3:27).
그런데 이 장에서는 그들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공유하는 사실은 자신들이 거룩하게 구별해 바친 물품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울과 요압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창고에는 이스라엘의 여러 시대를 거쳐 하나님께 구별해 바친 물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달랐고, 그들의 삶과 정치적 관계도 복잡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친 물품들은 모두 하나님의 집을 위해 구별된 것으로 관리됩니다.
슬로밋과 그의 형제들은 자기 세대가 만든 재산만 맡은 것이 아닙니다. 이전 세대로부터 이어진 물품까지 맡고 있습니다.
바친 사람이 죽고, 왕이 바뀌고, 세대가 달라져도 그 물품이 원래의 목적을 위해 남아 있도록 하는 일.
그것이 보물 창고를 맡은 사람들의 직무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당시 서술의 흐름에서는 솔로몬의 성전이 아직 건축되기 전입니다. 따라서 27절의 「여호와야훼의 집을 튼튼하게 하려고」라는 표현을 이미 완성된 솔로몬 성전의 특정한 벽이나 지붕을 수리했다는 뜻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요단강 건너편까지 이어진다
갑자기 성소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
29절은 이 장의 마지막 전환점입니다.
이스할 계열에서는 그나냐후와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관리와 재판관으로서 바깥일을 맡았다.역대상 26:29 · 본디새김
여기서 ‘바깥일’이라는 표현은 앞에서 다룬 문지기와 보물 창고의 직무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지금까지는 성소와 직접 관계된 공간과 물품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행정과 재판을 맡는 사람들입니다.
헤브론 계열에서는 하사뱌후와 그의 형제들, 곧 역량 있는 사람 천칠백 명이 요단 건너 서쪽 이스라엘을 감독하며 여호와야훼의 모든 일과 왕을 섬기는 일을 맡았다.역대상 26:30 · 본디새김
물론 이것이 이스라엘 왕의 모든 행정 명령을 곧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왕국의 특정한 제도를 오늘날의 모든 국가 행정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26장이 보여 주는 이상적인 조직에서는 하나님의 일과 왕국의 행정이 완전히 무관한 영역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와 언약을 맺은 백성이며, 그들의 공동체 생활은 하나님의 율법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신명기 16:18–20에서는 이스라엘의 성읍마다 재판관과 관리들을 세우고, 공정하게 재판하며 정의를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재판은 단순히 분쟁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따라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적 책임입니다.
그들은 성소의 기물을 관리하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관련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도 참여합니다.
요단강 서쪽과 동쪽을 모두 맡기다
31–32절에서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다윗의 통치 사십 년째에 헤브론 계열의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길르앗 야셀에서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여리야와 그의 형제들 이천칠백 명이 르우벤 계열과 갓 계열과 므낫세 반 지파를 감독하도록 임명됩니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동쪽에 기업을 받은 지파들입니다(민 32장; 수 13:8–33). 그러므로 역대상 26장의 마지막 부분은 이스라엘의 서쪽과 동쪽을 나누어 행정 책임을 배치하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도 요단강 동쪽 지파들과 서쪽 지파들 사이에는 공동체의 결속과 예배에 관한 긴장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22장에서 동쪽 지파들이 제단을 쌓았을 때, 서쪽 지파들은 그 제단이 이스라엘의 공동 예배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동쪽 지파들은 자신들이 다른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도 같은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수 22:24–29). 역대상 26장에는 그런 갈등이 직접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절에서 요단강 동쪽 지파들이 하나님의 일과 왕의 일을 담당하는 감독 체계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은 한곳에 세워지지만,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삶은 그 한곳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다윗의 통치 사십 년째
헤브론 계열에서는 족보와 가문에 따라 여리야가 헤브론 계열의 우두머리였다. 다윗이 왕으로 다스린 지 사십 년째에 그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길르앗 야셀에서 그들 가운데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발견되었다.역대상 26:31 · 본디새김
이 기록은 다윗이 성소의 봉사를 정비하면서 수도와 성전 주변의 사람들만 살펴보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멀리 떨어진 지역의 가문도 조사하고, 그곳에서 필요한 사람을 찾아 책임을 맡깁니다.
그의 형제들, 곧 역량 있는 가문 우두머리들은 이천칠백 명이었다. 다윗 왕은 그들을 르우벤 계열과 갓 계열과 므낫세 반 지파 위에 세워 하나님의 모든 일과 왕의 일을 맡겼다.역대상 26:32 · 본디새김
물론 모든 직무가 동일한 종교적 의미나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성소를 관리하는 일과 왕의 행정을 수행하는 일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역대상 26장은 두 영역을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다룹니다.
맺음 — 예루살렘의 문에서 길르앗 야셀까지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일은 그 문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집에 속한 것을 바르게 지키고, 성소 밖의 공동체에서도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장면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길르앗 야셀로 옮겨 갑니다.
다윗의 통치 사십 년째, 그곳에서도 역량 있는 사람들이 발견됩니다. 그들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감독하도록 임명됩니다.
성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것을 지키고, 관리하고, 공동체를 돌볼 사람들은 이미 정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책임은 예루살렘의 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책임은 성소의 문을 지나 보물 창고로 이어지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야셀에까지 이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