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6장

이 장의 자리 · 22–29장 · 성전 준비와 솔로몬

하나님의 집은 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역대상 26장은 성전의 문을 지키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누가 동쪽 문을 맡고, 누가 북쪽과 남쪽을 지킬 것인지 정합니다. 서쪽의 큰길과 물건을 모아 두는 창고에도 경비 인원을 배치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20절부터는 보물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을 관리하고 재판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심지어 요단강 동쪽의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맡은 사람들까지 기록됩니다.

성전의 문을 지키는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왜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의 행정과 재판을 이야기할까요?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526장 본문 읽기 →

오벳에돔의 집에 찾아온 복

역대상 26:1–11 본문 →

문지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본문은 고라 자손인 므셀레먀후와 그의 일곱 아들을 소개합니다. 이어 오벳에돔의 자손들이 길게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므라리 자손인 호사와 그의 아들들을 기록합니다.

오벳에돔의 아들 스마야에게도 아들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힘과 능력이 뛰어나 자기 집안을 이끌었습니다.역대상 26:6 · 두루새김
이들은 모두 오벳에돔의 자손이었습니다. 이들과 그 아들들과 친족들은 모두 능력이 있고 맡은 일을 할 힘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벳에돔 집안에 속한 이들은 모두 62명이었습니다.역대상 26:8 · 두루새김

본문은 그들이 맡은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장에서는 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자질을 설명하므로,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보다 맡은 일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적절합니다. 본문은 두 표현을 사용하여 이들에게 필요한 능력과 실제로 일을 해낼 힘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성소의 문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건물의 문을 열고 닫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3:38은 성막 앞에서 일을 맡은 사람들이 성소를 지키도록 하며,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책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성소의 경계는 단순히 건물을 나누는 선이 아니라 거룩함과 관련된 경계였습니다. 역대상 9:17–27에서도 문을 지키는 사람들은 성소의 출입을 맡고,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며, 성소의 방과 보물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따라서 문을 지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몸의 힘이 아닙니다. 맡은 자리를 지키는 능력, 거룩한 장소에 대한 책임감, 공동체가 정한 질서를 따르고 지키는 능력이 함께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벳에돔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습니다.

여섯째 암미엘, 일곱째 잇사갈, 여덟째 브울래대였습니다. 오벳에돔에게 이렇게 많은 아들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역대상 26:5 · 두루새김

다른 문지기 집안을 소개할 때는 나오지 않는 설명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던 중 웃사가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두려워하여 궤를 다윗성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역대상 13:14은 그 일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머물렀고, 하나님께서 오벳에돔의 집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에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궤가 한 사람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집안이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자리에 놓입니다.

오벳에돔의 집에 찾아온 복은 많은 자손을 얻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집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로 등장한다는 데서 더욱 깊은 의미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단순히 성실하게 일하면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와 재산을 주신다는 공식으로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런 보상 법칙을 본문이 제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맏아들이 아닌 시므리가 우두머리가 되다

므라리의 자손 호사에게도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시므리가 우두머리였습니다. 시므리는 맏아들이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그를 우두머리로 세웠습니다.역대상 26:10 · 두루새김

본문은 왜 호사가 시므리를 선택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형제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이유를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사람들의 역할은 단순히 태어난 순서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벳에돔 집안에서는 능력과 맡은 일을 할 힘이 강조되고, 호사의 집안에서는 맏아들이 아닌 사람이 우두머리로 세워지는 일이 기록됩니다. 이렇게 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족보는 단순한 혈통 명단을 넘어, 성소의 책임이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맡겨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두 본문의 오벳에돔이 정확히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완전한 족보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대기 안에서 반복되는 이름과 하나님의 복이라는 표현은 두 장면을 연결하여 읽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문을 지키는 사람들

역대상 26:12–19 본문 →

성소의 문은 왜 지켜야 하는가

12절부터는 문을 지키는 집안들의 실제 배치가 시작됩니다.

이 우두머리들이 이끄는 조들은 문을 지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들도 다른 친족들처럼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섬기며 맡은 일을 했습니다.역대상 26:12 · 두루새김

문을 지키는 일을 가리키면서도 본문은 단순히 경비 업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며 맡은 일을 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성소의 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있습니다.

문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입니다. 동시에 정해진 질서 없이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경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을 지키는 사람은 이 두 가지 기능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사람들을 막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해진 질서에 따라 출입이 이루어지도록 맡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문을 지키는 사람의 역할은 공동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속합니다.

제비로 결정되지만 능력도 언급된다

그들은 집안별로 어느 문을 맡을지 제비를 뽑았습니다. 나이가 적은 사람과 많은 사람이 모두 똑같이 제비를 뽑았습니다.역대상 26:13 · 두루새김

제비뽑기 자체는 앞 장에서도 나타났지만, 여기서는 제사장이나 음악가가 섬기는 순서가 아니라 성소의 공간을 배정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동쪽을 맡는 제비는 셀레먀후에게 돌아갔습니다. 그의 아들 스가랴는 지혜롭게 조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가랴를 위해서도 제비를 뽑았는데, 북쪽을 맡는 제비가 나왔습니다.역대상 26:14 · 두루새김

그러나 본문은 스가랴가 조언을 잘했기 때문에 북쪽 문을 배정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배정 방식은 분명히 제비뽑기입니다. 최소한 역대기 기록자가 문을 지키는 일을 맡은 사람의 능력과 자질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문을 지키는 사람은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맡은 일을 위해 판단력과 분별력도 필요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제비뽑기는 그 자질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닙니다.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에서 섬길 것인지를 정하는 방식입니다.

각 문마다 경비 인원이 다르다

본문은 제비뽑기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 동쪽은 셀레먀후가 맡고, 북쪽은 그의 아들 스가랴가 맡습니다.

· 남쪽은 오벳에돔이 맡고, 그의 아들들은 물건을 모아 두는 창고를 맡습니다.

· 서쪽과 살레겟 문은 숩빔과 호사가 맡습니다.

16절에서는 서쪽 문이 「올라가는 큰길」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경비 조들은 서로 마주 보게 배치되었습니다」라고 기록합니다.

동쪽에는 여섯 명, 북쪽과 남쪽에는 각각 네 명이 배치됩니다. 창고들에는 각각 두 명씩, 서쪽의 큰길에는 네 명, 파르바르에는 두 명이 배치됩니다. 그렇지만 동쪽이 여섯 명인 이유가 출입량이 가장 많았기 때문인지, 특별히 중요한 문이었기 때문인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소의 문들은 막연하게 관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집안에 담당 구역이 주어지고, 구역마다 정해진 사람들이 배치됩니다.

더욱이 당시의 이야기 속에서는 솔로몬의 성전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앞으로 세워질 하나님의 집을 위한 섬김의 조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이지만 그곳에서 맡을 책임은 구체적으로 정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질서를 지키는 일은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끝나는 부수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 질서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속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안에서 드리는 제사와 찬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이루어지도록 문과 통로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찬양의 내용에 등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기록자는 그들의 이름과 맡은 자리를 기록에서 빠뜨리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경비 조들이 서로 마주 본다는 표현은 원문상 여러 가지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마주 보는 위치에 경비 조들이 배치되었다는 뜻일 수 있고, 서로 짝을 이루는 경비 조나 교대 근무 관계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만으로 문 양쪽에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이 서 있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18절의 「파르바르」도 정확한 뜻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소 서쪽과 관련된 장소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어떤 건물이나 공간이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보물 창고 —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누구의 소유인가

역대상 26:20–28 본문 →

문에서 창고로 시선이 옮겨 가다

20절에서 본문은 새롭게 맡은 일을 소개합니다.

레위 사람들 가운데 아히야는 하나님의 집 보물 창고와 하나님을 위해 따로 바친 물건들을 두는 창고를 맡았습니다.역대상 26:20 · 두루새김

이제 관심의 대상은 출입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관되는 물건입니다.

두 창고가 실제로 서로 다른 건물에 있었는지, 같은 시설 안에서 관리하는 영역만 달랐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일반적인 성소의 재산 관리와 특별히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의 관리를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구약에서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일반적인 용도에서 구분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정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창고에 보관된 물건들은 단순히 왕이나 제사장들이 필요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사용 방법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관리하는 사람은 그것을 자기 것처럼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맡겨진 것은 소유권이라기보다 보관하고 관리할 책임입니다.

모세의 후손이 보물 창고를 맡다

모세의 아들 게르솜의 자손 스부엘은 보물 창고들을 맡은 책임자였습니다.역대상 26:24 · 두루새김

긴 세대의 흐름을 모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집안의 대표적인 계보를 간추려 소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백성을 인도한 가장 중요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역대상 26장은 모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그 후손이 맡은 일을 성소 재산의 관리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람은 제사를 직접 드리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그 목적에 맞게 사용되도록 책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울과 아브넬과 요압이 바친 물품까지

26–28절에서는 창고에 보관될 물건들의 출처가 등장합니다.

먼저 다윗 왕과 집안의 우두머리들, 군대 지휘관들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들이 소개됩니다. 27절은 그 물건 가운데 일부가 어디에서 왔는지 밝힙니다.

다윗과 이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의 집을 튼튼하게 하려고 전쟁에서 빼앗은 물건 가운데 일부를 하나님을 위해 따로 바쳤습니다.역대상 26:27 · 두루새김

다윗의 왕국은 여러 전쟁을 거치며 넓어졌습니다. 사무엘하 8:11–12도 다윗이 여러 민족에게서 얻은 은과 금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18:11에는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선견자 사무엘과 기스의 아들 사울, 넬의 아들 아브넬,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하나님을 위해 따로 바친 모든 물건도 슬로밋과 그의 친족들이 맡았습니다. 누가 바쳤든 이렇게 바친 물건은 모두 이들이 관리했습니다.역대상 26:28 · 두루새김

사무엘은 사사이자 선견자로 활동했고,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습니다. 아브넬은 사울과 관련된 군사 지도자였으며, 요압은 다윗의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이들의 관계가 언제나 평화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고, 아브넬과 요압 사이에는 피비린내 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요압은 아브넬을 죽였습니다(삼하 3:27).

그런데 이 장에서는 그들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공유하는 사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 따로 바친 물건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울과 요압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해 보존되는 물건은 다윗 한 사람의 시대에만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

그 창고에는 이스라엘의 여러 시대를 거쳐 하나님을 위해 따로 바친 물건들이 모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달랐고, 그들의 삶과 정치적 관계도 복잡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친 물건들은 모두 하나님의 집을 위해 따로 정해진 것으로 관리됩니다.

이러한 관리의 책임이 없다면, 거룩하게 바쳤다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의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바친 사람이 죽고, 왕이 바뀌고, 세대가 달라져도 그 물건이 원래의 목적을 위해 남아 있도록 하는 일.

그것이 보물 창고를 맡은 사람들의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당시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솔로몬의 성전이 아직 세워지기 전입니다. 따라서 27절의 「여호와야훼의 집을 튼튼하게 하려고」라는 표현을 이미 완성된 솔로몬 성전의 특정한 벽이나 지붕을 수리했다는 뜻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전쟁에서 얻은 물건을 성소를 세우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으로 바쳤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축이나 보강 작업을 가리키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요단강 건너편까지 이어진다

역대상 26:29–32 본문 →

갑자기 성소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

29절은 이 장의 마지막 전환점입니다.

이스할 자손 가운데 그나냐와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관리와 재판관으로서 성전 밖의 일을 맡았습니다.역대상 26:29 · 두루새김

여기서 「성전 밖의 일」이라는 표현은 앞에서 다룬 문을 지키는 일과 보물 창고를 맡은 일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지금까지는 성소와 직접 관계된 공간과 물건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헤브론 자손 가운데 하사뱌와 그의 친족들, 곧 능력 있는 사람 1,700명은 요단강 서쪽의 이스라엘을 관리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야훼를 위한 모든 일과 왕을 섬기는 일을 맡았습니다.역대상 26:30 · 두루새김

성소 밖에서 이루어지는 관리와 재판도 「여호와야훼를 위한 모든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이스라엘 왕의 모든 행정 명령을 곧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26장이 보여 주는 이상적인 조직에서는 하나님의 일과 왕국의 행정이 완전히 무관한 영역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며, 그들의 공동체 생활은 하나님의 율법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왕국의 특정한 제도를 오늘날의 모든 국가 행정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16:18–20에서는 이스라엘의 성읍마다 재판관과 관리들을 세우고, 공정하게 재판하며 정의를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재판은 단순히 다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맡는 책임입니다.

그들은 성소의 물건을 관리하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관련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도 참여합니다.

요단강 서쪽과 동쪽을 모두 맡기다

31–32절에서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다윗이 왕으로 다스린 지 사십 년째에 헤브론 자손들을 조사했는데, 길르앗의 야셀에서 힘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그 가운데 여리야와 그의 친족들 이천칠백 명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를 관리하도록 임명됩니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동쪽에 땅을 받은 지파들입니다(민 32장; 수 13:8–33). 그러므로 역대상 26장의 마지막 부분은 이스라엘의 서쪽과 동쪽을 나누어 행정 책임을 맡기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도 요단강 동쪽 지파들과 서쪽 지파들 사이에는 공동체의 결속과 예배에 관한 긴장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22장에서 동쪽 지파들이 제단을 쌓았을 때, 서쪽 지파들은 그 제단이 이스라엘의 공동 예배를 갈라놓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동쪽 지파들은 자신들이 다른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도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수 22:24–29).

역대상 26장에는 그런 갈등이 직접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절에서 요단강 동쪽 지파들이 하나님을 위한 일과 왕의 일을 맡는 관리 체계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은 한곳에 세워지지만,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삶은 그 한곳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다윗의 통치 사십 년째

31절에는 시간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옵니다.

헤브론 자손을 족보와 집안에 따라 나누었을 때, 그들의 우두머리는 여리야였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다스린 지 40년째에 이들을 조사해 보니, 길르앗의 야셀에서 힘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찾았습니다.역대상 26:31 · 두루새김

그들은 왕궁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길르앗의 야셀이라는 지역에서 조사하여 찾은 사람들입니다. 이 기록은 다윗이 성소를 섬기는 일을 정비하면서 수도와 성전 주변의 사람들만 살펴보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여리야의 친족들은 2,700명이었으며, 모두 능력이 있고 집안을 이끄는 우두머리들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들에게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를 관리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한 모든 일과 왕의 일을 맡았습니다.역대상 26:32 · 두루새김

본문은 더 이상 성소의 출입문이나 창고의 물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땅과 그곳에서 공동체가 함께 맡는 책임을 향합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이 왕으로 다스린 기간은 전체 사십 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대상 29:27). 따라서 이 조사는 그가 다스리던 마지막 시기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본문은 단순히 오래전에 정해 놓은 명단을 다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다스리던 말기에 실제로 사람들을 조사하고 필요한 일에 배치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맺음 — 예루살렘의 문에서 길르앗 야셀까지

역대상 26:1–32 본문 →

문을 지키는 사람이 지키는 성소는 자신의 집이 아닙니다. 창고 관리자가 보관하는 물건은 자신의 재산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관리하는 사람 역시 이스라엘을 자기 소유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이를 위해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길르앗의 야셀로 옮겨 갑니다.

다윗이 왕으로 다스린 지 사십 년째, 그곳에서도 힘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들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관리하도록 임명됩니다.

성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것을 지키고, 관리하고, 공동체를 돌볼 사람들은 이미 정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책임은 예루살렘의 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책임은 성소의 문을 지나 보물 창고로 이어지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의 야셀에까지 이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