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8장

이 장의 자리 · 22–29장 · 성전 준비와 솔로몬

하나님의 집을 짓는 사람의 마음

역대상 28장에서 다윗은 마침내 성전의 설계도를 솔로몬에게 건넵니다. 현관과 방들의 배치, 보물 창고와 성소 안쪽의 구조, 각종 기구에 필요한 금과 은의 무게까지 세밀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다윗은 설계도를 건네기 전에 긴 연설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 앞에서 자신이 왜 성전을 지을 수 없는지 설명하고, 하나님께서 왜 솔로몬을 선택하셨는지 밝힙니다. 그런 다음 백성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으로 섬기라고 당부합니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인데, 건물을 짓는 방법보다 먼저 마음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이미 하나님께 합당한 마음을 가졌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사람 역시 하나님을 알고, 찾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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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일어선 왕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말하다

역대상 28:1–3 본문 →

모든 지도자를 모은 이유

28장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소집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지파 지도자들, 군대 지휘관들, 천인대장과 백인대장들, 왕실 재산과 가축을 맡은 관리들, 내시들과 용사들까지 모입니다. 이들은 바로 앞 장에서 다윗 왕국을 운영하는 사람들로 소개되었던 여러 집단과 연결됩니다.

성전 건축은 솔로몬 개인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참여해야 할 일이며, 무엇보다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왕권이 이어지는 때에 공동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과업입니다.

다윗 왕이 두 발로 일어서서 말했다. 「나의 형제들과 나의 백성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여호와야훼의 언약궤와 우리 하나님의 발판을 위해 안식처가 될 집을 지을 뜻을 품고, 건축할 준비를 했소.」역대상 28:2 · 본디새김

확실한 것은 다윗이 이 말을 위해 정식으로 일어섰다는 사실입니다. 왕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준비해 온 일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장면입니다.

그는 왕이지만 백성을 단지 자신의 명령을 수행할 대상으로만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을 자신의 형제이자 백성으로 부릅니다.

신명기 17:20은 이스라엘의 왕이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다윗의 이 호칭을 그 규정의 직접 인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왕과 백성의 관계를 형제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왕은 공동체 위에 아무런 제약 없이 군림하는 소유자가 아닙니다. 자신 역시 하나님께 속한 백성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성전은 왜 「하나님의 발판」을 위한 집인가

다윗이 말하는 집은 여호와야훼의 언약궤를 위한 안식처입니다.

광야에서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이동할 때 함께 옮겨졌습니다. 민수기 10:33–36에서는 언약궤가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며 쉴 곳을 찾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궤가 떠날 때와 머물 때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께 말씀드리는 장면이 기록됩니다.

오랫동안 이동하던 언약궤가 이제 정해진 장소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곳을 「우리 하나님의 발판」과 연결합니다. 발판은 왕이 앉은 자리와 관련된 물건입니다. 성경에서도 여호와야훼의 발판이라는 표현은 그분의 왕권과 거룩한 임재를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시편 99:5는 여호와야훼의 발판 앞에서 경배하라고 권하고, 시편 132:7–8은 그분의 발판 앞에서 경배하는 일과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안식처로 들어오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연결합니다. 특히 시편 132편은 언약궤와 다윗의 성전 준비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역대상 28:2와 깊이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시며, 성전과 언약궤는 이스라엘 가운데 그분의 통치와 임재를 나타내는 특별한 장소와 기물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는 다윗의 소망은 하나님을 자신의 왕국 안에 소유하려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왕국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드러내야 하는 일입니다.

좋은 소망이 하나님의 선택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다윗은 자신이 건축을 위해 준비했다고 말한 뒤, 곧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소. 『너는 내 이름을 위한 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 너는 전쟁을 치르는 사람이고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역대상 28:3 · 본디새김

그에게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실제로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자신이 해도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다윗의 전쟁과 피 흘림이 성전 건축을 맡지 못하게 된 이유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만으로 다윗이 치른 모든 전쟁이 부당했다거나,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음 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맡기지 않으신 일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말씀을 백성 앞에서 숨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했지만 허락받지 못한 일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하셨는지 설명합니다.

이렇게 다윗의 연설은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그 한계를 밝히는 말로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앞서 역대상 23:1은 다윗이 늙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을 노년의 다윗이 힘겹게 일어난 장면으로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28장은 그가 신체적으로 일어서기 어려웠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언약궤 자체가 하나님의 발판이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언약궤가 놓일 성소를 하나님의 발판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두 방향 모두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언약궤와 발판을 함께 언급하지만, 그 둘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지 명시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왜 많은 아들 가운데 솔로몬을 선택하셨는가

역대상 28:4–7 본문 →

선택이 점점 한 사람에게로 좁혀지다

4–6절에서는 한 낱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바로 ‘선택하다’입니다. 다윗의 말을 따라가면 선택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유다를 지도자의 지파로 선택하셨습니다. 유다 안에서는 다윗의 아버지 집안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안의 아들들 가운데 다윗을 기쁘게 여기셔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다음으로 다윗에게 주신 많은 아들 가운데 솔로몬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자신의 아들로 선택하셨다는 말씀까지 이어집니다.

「여호와야훼는 내게 많은 아들을 주셨소. 그 모든 아들 가운데 내 아들 솔로몬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여호와야훼 왕국의 왕좌에 앉게 하셨소.」역대상 28:5 · 본디새김

더욱이 사무엘하 13–20장을 보면 다윗의 가정 안에서 왕위와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의 왕권 자체를 위협했습니다.

역대상 28장은 그 복잡한 사건들을 다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택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다윗의 연설은 솔로몬 개인을 위한 격려를 넘어 왕국의 모든 지도자를 향한 선언이 됩니다.

솔로몬이 앉을 왕좌는 누구의 것인가

다윗은 솔로몬이 자신의 왕좌에 앉는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다윗을 이어 왕이 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왕좌를 「여호와야훼 왕국의 왕좌」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에는 다윗이라는 왕이 있었고, 이제 솔로몬이라는 왕이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왕권은 궁극적으로 여호와야훼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독립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질서 안에서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이 의미는 역대상 29:23에서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곳에서도 솔로몬이 앉은 왕좌를 여호와야훼의 왕좌라고 부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께 거대한 건물을 바치는 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정하신 예배의 중심을 건축할 책임을 받은 왕입니다.

왕권과 성전 건축은 모두 하나님의 선택에서 출발합니다.

아들이라는 약속에는 책임이 따른다

6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분이 내게 말씀하셨소. 『네 아들 솔로몬, 바로 그가 내 집과 내 뜰들을 지을 것이다. 내가 그를 내 아들로 선택했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역대상 28:6 · 본디새김

왕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특별한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 약속은 역대상 17:13의 다윗 언약과 직접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뒤를 이을 아들에 대해 자신이 그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는 자신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오늘처럼 내 계명과 내 규례를 행하는 데 굳건하다면, 나는 그의 왕권을 영원히 굳게 세우겠다.』」역대상 28:7 · 본디새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선택하셨다는 사실과 솔로몬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함께 놓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집안과 왕조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대상 17:11–14). 이것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언약적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받은 왕은 하나님께 불순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역대상 28:7은 솔로몬의 왕권을 굳게 세우는 일과 그의 지속적인 순종을 분명히 연결합니다. 두 본문의 약속과 조건이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함께 실현되는지는 역대기가 이후의 왕들을 통해 계속 보여 줄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실제적이며, 왕에게 주어진 순종의 책임도 실제적입니다.

다윗은 지금 솔로몬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행하는 데 굳건한 모습을 전제하며, 그 태도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왕으로 선택되는 순간의 신실함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왕위에 오른 뒤에도 그 신실함을 계속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

역대상 28:8–10 본문 →

온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가운데

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설명을 마치고 모인 지도자들에게 직접 말합니다.

「이제 여호와야훼의 회중인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는 가운데, 그대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모든 계명을 지키고 힘써 살피시오. 이는 그대들이 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그대들 뒤에 올 자손들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게 하려는 것이오.」역대상 28:8 · 본디새김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선택을 백성에게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그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충성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힘써 살피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좋은 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땅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좋은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땅에서 하나님을 잊지 말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가르쳤습니다(신 8:7–20).

하나님께서 주신 땅은 이스라엘이 마음대로 살아도 반드시 유지되는 무조건적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 땅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문제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자신들의 시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 뒤에 올 자손들이 땅을 유산으로 이어받는 일과도 관련됩니다. 성전을 짓는 일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준비이듯,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도 다음 세대가 살아갈 공동체의 미래와 연결됩니다.

건물이 세워지는 일과 백성이 살아가는 방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이제 다윗의 말은 온 이스라엘에서 솔로몬 한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너, 내 아들 솔로몬아,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꺼운 뜻으로 그분을 섬겨라. 여호와야훼는 모든 마음을 살피시고 생각 속의 모든 의도를 헤아리신다. 네가 그분을 찾으면 그분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분을 버리면 그분은 너를 영원히 물리치실 것이다.」역대상 28:9 · 본디새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섬기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온전한 마음’은 마음이 완전무결하여 어떠한 잘못도 범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좁힐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나뉘지 않은 마음, 하나님께 충실하게 향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기꺼운 뜻’은 억지로 끌려가는 태도와 구별됩니다. 솔로몬에게는 왕이 되라는 명령과 성전을 지으라는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단순히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으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전의 건축자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같아야 하지만, 건축하는 행위만으로 그 관계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같은 낱말이 가리키는 두 방향의 찾음

하나님께서 모든 마음을 살피신다는 말과 솔로몬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이 같은 낱말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찾으려는 하나님은 이미 솔로몬의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뿐 아니라 생각 속에 있는 의도까지 헤아리십니다.

사람은 화려한 성전을 지으면서도 그 일에 자신의 명예를 세우려는 욕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백성의 눈에는 열심히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마음속에는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이 어떤 성전을 짓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어떤 마음으로 그 집을 짓는지도 아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약속과 경고를 함께 전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는 그분을 만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버리는 일에는 엄중한 결과가 따릅니다.

이 표현을 모든 종류의 일시적인 실패에 대해 하나님께서 회복의 가능성을 영원히 닫으신다는 일반적인 공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왕 솔로몬에게 주어진 언약적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성전을 지을 왕으로 선택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살펴보아라」

10절에서 다윗은 다시 성전 건축을 명령합니다.

「이제 살펴보아라. 여호와야훼가 너를 선택하여 성소가 될 집을 짓게 하셨다. 굳세게 마음먹고 실행하여라.」역대상 28:10 · 본디새김

하나님을 찾기 위해 맡겨진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일을 열심히 수행하느라 하나님을 찾는 일을 잊어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전 건축은 그 관계를 대신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수행해야 할 과업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설계도가 등장합니다.

성전의 설계도 — 인간이 품은 뜻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

역대상 28:11–19 본문 →

설계도에는 건물만 들어 있지 않다

11절에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설계도를 건넵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현관과 그에 딸린 건물들, 보물 창고들, 다락방들, 안쪽 방들, 속죄판을 두는 방의 설계도를 주었다.역대상 28:11 · 본디새김

지금까지 다윗은 말로 하나님의 선택과 솔로몬의 책임을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건축 계획을 전달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조 편성, 여호와야훼의 집을 섬기는 모든 일, 여호와야훼의 집을 섬기는 데 쓸 모든 기구에 관한 계획도 주었다.역대상 28:13 · 본디새김

건물은 공간을 제공하지만, 그 공간에서 실제로 예배가 이루어지려면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담당하고, 레위 사람들이 여러 봉사를 수행하며, 정해진 기구들이 그 목적에 따라 사용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건물의 설계와 봉사의 질서를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정비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조직은 이제 성전의 전체 계획 안에 포함됩니다. 성전의 설계도는 단지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계획이 아닙니다. 그 공간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관한 계획이기도 합니다.

가장 안쪽 방에 있는 속죄판

11절의 여러 공간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속죄판을 두는 방」입니다.

출애굽기 25:17–22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속죄판을 만들고 그것을 언약궤 위에 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 속죄판 위에는 그룹들이 있었으며, 하나님은 그곳에서 모세와 만나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실 말씀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6장에서는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속죄판 앞에서 피를 사용하는 의식이 규정됩니다.

이곳은 이후 솔로몬 성전의 가장 안쪽 성소와 연결됩니다(왕상 6:19; 8:6–7). 여기서 속죄판은 단순한 금 장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죄 있는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기물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분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를 잊은 채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는 예배의 중심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있던 설계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설계인가

또 그가 마음에 품고 있던 모든 것의 설계도, 곧 여호와야훼의 집의 뜰들과 그 둘레의 모든 방들, 하나님의 집의 보물 창고들과 거룩하게 바친 물건들의 창고들에 관한 설계도를 주었다.역대상 28:12 · 본디새김

그런데 19절에 이르면 다윗이 설계도에 관해 직접 설명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손에서 내게 온 글을 통해 그분이 이 모든 것, 곧 이 설계에 따른 모든 작업을 깨닫게 해 주셨다.」역대상 28:19 · 본디새김

다윗에게는 실제로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과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설계가 오직 자신의 생각과 능력에서 나왔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깨닫게 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성막을 세울 때 모세에게 모형이 주어졌듯이, 성전을 세우는 일을 준비하는 다윗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설계를 솔로몬에게 전달합니다. 이는 성막과 성전이 서로 무관한 두 예배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연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직접 성전을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전을 지을 사람에게 필요한 설계를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자신의 소유로 붙들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솔로몬에게 넘겨줍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도 다윗에게 맡겨진 중요한 책임이 됩니다.

「기구 하나하나」라는 반복

14–17절에는 금과 은에 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집니다.

금 기구에 대해서는 섬기는 일마다 쓰일 모든 기구의 금을 무게대로 주었고, 모든 은 기구에 대해서도 섬기는 일마다 쓰일 모든 기구의 은을 무게대로 주었다.역대상 28:14 · 본디새김
금 등잔대들과 그 등잔들에 쓸 금을 등잔대 하나하나와 그 등잔들에 필요한 무게대로 주었다. 은 등잔대들에 대해서도 등잔대 하나하나의 쓰임에 따라 각 등잔대와 그 등잔들에 쓸 은을 무게대로 주었다.역대상 28:15 · 본디새김
빵을 차려 놓는 상들에 쓸 금도 상 하나하나에 필요한 무게대로 주었고, 은으로 만들 상들에 쓸 은도 주었다.역대상 28:16 · 본디새김
갈고리들과 대야들과 단지들에 쓸 순금도 주었다. 금 대접들에 대해서는 대접 하나하나에 필요한 무게대로 주었고, 은 대접들에 대해서도 대접 하나하나에 필요한 무게대로 주었다.역대상 28:17 · 본디새김

성전의 기구들은 모두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귀중한 물품이지만, 그 재료를 아무렇게나 배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기구의 용도와 설계에 맞게 필요한 분량이 정해집니다.

이것은 성전의 화려함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 화려함이 무질서한 사치로만 표현되지 않도록 합니다. 다윗은 단순히 금과 은을 많이 쌓아 놓고 솔로몬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각 기구의 목적에 따라 재료의 분량까지 구별합니다.

여기서 무게의 반복은 거룩한 일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구체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다만 이 목록이 모든 기구의 실제 크기와 무게를 알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금과 은을 무게에 따라 배정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각 기구에 정확히 몇 달란트나 몇 세겔이 사용되었는지는 28장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준비에는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언약궤 위의 그룹들을 왜 병거라고 부를까

설계도 목록은 18절에서 특별한 장면에 이릅니다.

분향 제단에 쓸 정련한 금도 무게대로 주었다. 또 날개를 펴서 여호와야훼의 언약궤를 덮는 금 그룹들로 이루어진 병거의 설계도 주었다.역대상 28:18 · 본디새김

그룹들은 이미 성막의 언약궤와 관련하여 등장했던 존재들입니다. 출애굽기 25:18–22에서는 두 그룹이 속죄판 양 끝에 자리하고,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도록 규정합니다.

솔로몬 성전의 가장 안쪽에도 날개를 편 큰 그룹들이 세워집니다(왕상 6:23–28). 언약궤가 성전 안쪽에 놓일 때 그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있게 됩니다(왕상 8:6–7).

역대상 13:6에서도 여호와야훼는 그룹들 위에 자리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십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함께 읽으면 그룹들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적 임재와 관련된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병거라는 말이 여기서 실제로 어떤 구체적인 구조를 가리켰는지, 그 형상이 바퀴를 포함했는지까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룹들이 이루는 형상을 하나님의 보좌 또는 병거와 관련된 상징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성전 내부에 실제로 움직이는 병거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 다윗은 성전을 「우리 하나님의 발판」을 위한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설계도 목록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왕적 임재를 떠올리게 하는 그룹들의 병거가 등장합니다.

성전의 중심에는 다윗의 왕좌가 놓이지 않습니다.

언약궤와 속죄판, 그리고 그 위를 덮는 그룹들의 형상이 놓입니다. 이는 성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건물의 가장 안쪽에서 드러냅니다.

이렇게 설계도는 건축의 세부 사항을 나열하다가, 마침내 그 건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보여 주는 가장 깊은 곳에 이릅니다.

조금 더 깊이

12절의 ‘마음에 품고 있던’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루아흐(⁨רוּחַ⁩)와 관련됩니다. 루아흐는 문맥에 따라 바람, 숨, 영, 사람의 정신이나 내적 의지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그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영’이라고 밝혀 주는 표현이 없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자기 마음이나 생각에 품고 있던 계획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감동이나 깨달음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길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이 두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12절은 다윗이 품고 있던 계획을 말하고, 19절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깨닫게 하신 일을 말합니다. 19절의 「여호와야훼의 손에서 내게 온 글」이라는 표현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물리적인 문서를 써서 다윗에게 건네셨는지, 하나님의 작용으로 다윗이 설계를 기록하고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다윗이 이 설계의 근본적인 출처를 하나님께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설계도를 받은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

역대상 28:20–21 본문 →

「굳세고 담대하게 마음먹고 실행하여라」

설계도를 모두 전달한 뒤 다윗은 솔로몬에게 다시 말합니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말했다. 「굳세고 담대하게 마음먹고 실행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낙담하지 마라. 여호와야훼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야훼의 집을 섬기는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그분은 너를 놓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역대상 28:20 · 본디새김

평생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윗은, 이제 그 하나님께서 솔로몬과도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집을 섬기는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라는 말은 성전 건축이라는 구체적인 과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약속을 솔로몬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모든 결과가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보장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다윗은 계명을 지키는 일과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일의 중요성을 분명히 강조했습니다. 여기서는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과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분의 함께하심을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사람들의 협력

마지막 21절은 또 다른 종류의 함께함을 보여 줍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모든 일을 위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조들이 있다. 온갖 섬기는 일에 필요한 기술을 갖추고 기꺼이 나서는 모든 이가 모든 작업에서 너와 함께할 것이다. 지도자들과 온 백성도 네 모든 말에 따를 것이다.」역대상 28:21 · 본디새김

다윗은 단순히 기술을 가진 사람들만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기술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앞에서 솔로몬에게 「기꺼운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당부했던 것과 어울립니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기꺼운 마음이고, 함께 일할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참여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기술과 자발적인 참여가 함께 강조되는 것입니다.

왕이 건축을 지휘하더라도 실제로 일할 사람들은 여럿입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성전의 봉사를 담당하고, 여러 기술자는 건축과 기구 제작에 참여할 것이며, 지도자들과 백성은 그 일을 뒷받침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사람들의 협력이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은 이미 준비된 사람들의 도움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일할 용기를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굳세고 담대하게’라는 표현은 신명기 31장과 여호수아 1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을 이끌 책임을 넘겨줄 때에도 굳세고 담대하라는 말이 주어졌습니다(신 31:7–8). 여호수아 1:5–9에서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역대상 28장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나타납니다.

맺음 — 설계도를 건넨 뒤, 다윗이 마지막으로 가리킨 것

역대상 28:1–21 본문 →

다윗은 아들에게 성전의 설계도만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 동안 누구를 찾고 의지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습니다. 성전 건축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성전을 짓는 왕이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게는 아직 지어야 할 성전이 남아 있습니다.

그 앞에 설계도가 있고, 곁에는 함께 일할 사람들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다윗의 손에 들린 설계도가 아니라, 이제 그 설계도를 받아 일어나야 할 솔로몬입니다.

이제 준비는 솔로몬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집을 실제로 세우는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