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9장

이 장의 자리 · 22–29장 · 성전 준비와 솔로몬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

역대상은 다윗의 성전 준비로 끝나지만, 마지막 장에는 정작 성전을 짓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막대한 재물이 모이고, 백성이 기뻐하며, 다윗이 기도하고, 솔로몬이 왕좌에 앉습니다. 성전의 기초를 놓거나 벽을 세우는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에는 성전 건축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집을 지을 왕은 누구의 왕좌에 앉는가?

궁전은 여호와야훼를 위한 것이고, 왕좌는 여호와야훼의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다윗은 모든 재물도 여호와야훼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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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왕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다

역대상 29:1–5 본문 →

다윗은 온 회중 앞에서 솔로몬을 소개합니다.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단 한 사람인 내 아들 솔로몬은 아직 어리고 여리오. 그러나 이 일은 크오. 이 궁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오.」역대상 29: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담대하게 일하라고 권면했습니다(28:20). 그러나 이제 백성 앞에서는 아들의 부족함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이 얼마나 큰지 먼저 밝힙니다.

솔로몬의 정확한 나이는 이 구절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어리고 여리다」라는 표현은 그의 젊음과 경험의 부족함, 그리고 맡겨진 책임의 무게를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대한 일을 경험이 부족한 솔로몬에게 맡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윗은 그것이 하나님의 선택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라는 사실보다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앞세웁니다.

「궁전」은 왕궁이나 견고한 궁성을 가리킬 수 있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집을 뜻하는 표현보다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궁전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왕궁은 보통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건물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준비하는 궁전의 주인은 인간 왕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건축을 맡아도, 그 건축물이 솔로몬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훗날 솔로몬 자신이 성전 봉헌 기도에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을 담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열왕기상 8:27). 성전은 하나님을 가두는 건물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을 위해 구별된 예배의 중심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준비한 재료를 상세히 열거합니다.

금과 은과 청동과 철과 나무, 여러 보석과 장식용 돌까지 등장합니다(29:2). 일부 돌의 정확한 광물학적 종류는 원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목록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장식에 쓰이는 귀중한 재료에서 건축에 필요한 기본 자재까지 폭넓게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합니다.

「더구나 나는 내 하나님의 집을 기뻐하므로, 거룩한 집을 위해 준비한 모든 것에 더하여 내가 개인 재산으로 가진 금과 은을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내놓았소.」역대상 29:3 · 본디새김

여기에는 의무를 넘어서는 자발성이 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성전 건축을 준비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위해 개인적으로도 참여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백성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금은 금으로 만들 것에, 은은 은으로 만들 것에, 또 장인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작업에 쓰려는 것이오. 그러니 누가 오늘 여호와야훼에게 기꺼이 자신을 바치겠소?」역대상 29:5 · 본디새김

‘그의 손을 채우다’라는 관용구는 제사장 위임식에서도 사용됩니다(출애굽기 28:41; 29:9). 손을 채운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무를 위해 자신을 구별하여 바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헌금자가 제사장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성전을 위한 기여가 재물을 내놓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것은 재료이지만, 다윗이 회중에게 요청하는 것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참여입니다.

백성은 바친 재물보다 기꺼이 바쳤다는 사실을 기뻐한다

역대상 29:6–9 본문 →

다윗의 초청에 지도자들이 응답합니다.

가문의 우두머리들과 지파 지도자들, 군대 지휘관들과 왕의 일을 맡은 관리들이 나섭니다(29:6). 왕이 준비한 일에 이스라엘의 여러 지도층이 함께 참여합니다.

그들이 내놓은 재물의 양은 엄청납니다. 금 오천 달란트와 일만 아다르콘, 은 일만 달란트, 청동 일만 팔천 달란트, 철 십만 달란트가 기록됩니다(29:7).

보석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게르손 사람 여히엘을 거쳐 여호와야훼의 집의 보물 창고에 내놓습니다(29:8). 재물이 단순히 왕의 손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위한 보물 창고에 맡겨집니다. 다윗의 개인 재산에서 시작된 기여가 이제 공동체가 관리하는 성전의 자원으로 넘어가는 모습입니다.

백성은 기꺼이 바친 일을 두고 기뻐했다. 그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여호와야훼에게 기꺼이 바쳤기 때문이다. 다윗 왕도 크게 기뻐했다.역대상 29:9 · 본디새김

「온전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 뜨겁다는 의미보다는 나뉘지 않고 온전히 향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많은 재물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압력이나 과시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장면에서 그것이 기꺼운 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특별히 강조합니다.

본문은 자발성과 온전한 마음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이용하여 타인에게 재정적인 압박을 가하거나 헌금액으로 신앙의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본문의 강조점과 어긋납니다.

출애굽기 35:21–29에서도 성막을 위한 예물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이고 자원하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광야의 성막과 다윗 시대의 성전은 규모와 형태가 다르지만, 하나님을 위한 거처를 준비하는 공동체의 응답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

이제 다윗은 백성의 응답을 보고 찬송을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에 등장하는 아다르콘은 주화의 명칭으로 이해되지만, 정확히 어떤 주화나 단위를 가리키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이런 화폐 명칭은 역대기 서술자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단위로 과거의 재물을 기록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을 곧바로 다윗 시대에 동일한 명칭의 주화가 유통되었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달란트의 무게와 고대 금속의 가치를 현대 화폐로 정확하게 환산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본문이 전달하려는 것은 오늘날의 시장 가격이 아니라 공동체가 내놓은 자원의 규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역대상 29:10–16 본문 →

다윗은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야훼를 찬송합니다.

「여호와야훼, 위대함과 권능과 영광과 탁월함과 위엄은 당신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 왕국은 당신의 것이며, 당신은 모든 것의 머리로 높이 계십니다.」역대상 29:11 · 본디새김

이 찬송에서 반복되는 것은 소유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자신이 소유한 것을 말하지 않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말합니다.

성전을 짓는다는 말은 자칫 하나님께 무언가를 제공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집이 없으므로 사람이 집을 마련해 드리고, 하나님께 필요한 재물을 사람이 모아 드린다는 생각입니다.

다윗의 기도는 그런 이해를 거꾸로 뒤집습니다.

「부와 영예는 당신에게서 나오며, 당신은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당신의 손에 힘과 권능이 있으며, 모두를 크게 하고 강하게 하는 일이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역대상 29:12 · 본디새김

그렇다면 다윗과 백성은 하나님께 무엇을 더해 드릴 수 있습니까?

「제가 누구이며 제 백성이 누구이기에 이처럼 기꺼이 바칠 힘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당신에게서 나왔으므로, 저희는 당신의 손에서 받은 것을 당신께 바쳤을 뿐입니다.」역대상 29:14 · 본디새김

다윗은 하나님께 바칠 재물이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선물로 이해합니다. 사람은 실제로 선택하고, 수고하고, 자신의 소유를 내놓습니다. 다윗과 백성의 행동은 분명 그들의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 행동이 가능했던 조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의 공급과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없던 것을 만들어 드리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그분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저희는 저희의 모든 조상처럼 당신 앞에서 나그네이며 몸붙여 사는 이들입니다. 땅 위에서 저희의 날들은 그림자 같고, 희망이 없습니다.」역대상 29:15 · 본디새김

앞에서는 엄청난 재물이 등장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이 가득했고, 왕은 강대했으며,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도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들과 백성이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그림자」라는 표현은 인간 생애의 짧음과 덧없음을 나타냅니다. 이어지는 「희망이 없습니다」는 모든 미래의 소망이 부정된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땅 위에서 지나가는 인간의 생애 자체에는 영구히 머물 수 있는 보장이 없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문맥에 어울립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받으시는 분으로 불렸습니다(29:10).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생애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다윗은 오래 남을 건물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 건물을 준비한 자신의 생애는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인간이 남기는 일의 가치는 인간이 영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향해 있기 때문에 의미를 얻습니다.

「저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당신께 집을 지어 드리려고 저희가 준비한 이 많은 것은 모두 당신의 손에서 나왔으며,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역대상 29:16 · 본디새김

장인들의 손이 일하고(29:5), 사람들이 보석을 맡기며(29:8), 하나님의 손은 힘과 권능의 근원으로 묘사됩니다(29:12). 마침내 다윗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고백합니다(29:14, 16).

일하는 것은 사람의 손입니다. 그러나 그 손이 일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24:1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여호와야훼의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나그네」라는 표현은 레위기 25:23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땅이 자신의 것이므로 이스라엘이 그분 앞에서 나그네와 거류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땅의 궁극적인 소유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거주하는 백성입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왕국을 세우고 재물을 축적했지만, 왕국의 궁극적인 소유자도 아니고 자기 생명의 주인도 아닙니다. 신약과의 연결은 이 구약의 의미를 먼저 인정한 뒤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우선되는 것(마태복음 6:9–10)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권자이시라는 다윗의 고백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이는 역대상 29장을 직접 인용한 사례는 아닙니다.

다윗이 마지막으로 구하는 것은 더 많은 재물이 아니라 마음이다

역대상 29:17–19 본문 →

기도는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라는 고백으로 옮겨 갑니다.

「저의 하나님, 당신은 마음을 시험하시고 올곧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는 올곧은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쳤습니다. 이제 여기 있는 당신의 백성도 기뻐하며 당신께 기꺼이 바치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역대상 29:17 · 본디새김

사무엘상 16:7에서 여호와야훼는 사무엘에게 사람이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선택되는 이야기의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다윗은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완전했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 내놓은 헌신이 올곧은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기서 기도를 끝내지 않습니다.

「저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 당신의 백성이 마음에 품는 생각 속에 이 뜻을 영원히 지켜 주십시오. 그들의 마음을 당신께로 굳게 향하게 해 주십시오.」역대상 29:18 · 본디새김

방금 백성은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다윗은 그 모습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한 번의 열심이 지속적인 신실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결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지속되는 일은 결단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백성에게 더 강한 의지를 가지라고 명령하는 대신, 하나님께 그들의 마음을 굳게 붙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이 기도를 솔로몬에게까지 확장합니다.

「제 아들 솔로몬에게 온전한 마음을 주셔서, 당신의 계명과 증언과 규례를 지키고 그 모든 것을 행하며, 제가 준비한 궁전을 짓게 해 주십시오.」역대상 29:19 · 본디새김

29장 9절에서는 백성의 온전한 마음이 칭찬받았습니다. 19절에서는 솔로몬에게 온전한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미 기꺼이 바친 백성의 마음과 앞으로 성전을 지어야 할 왕의 마음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성전을 잘 짓게 해 달라고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계명과 증언과 규례를 지키고 행하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건축의 성공보다 순종하는 삶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지어도 그 집을 맡은 왕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건축의 본래 목적은 흔들리게 됩니다. 훗날 역대하 7:17–22에서 하나님은 솔로몬과 그의 후손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며, 하나님을 버릴 경우 성전도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고 경고하십니다. 성전이 완성된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동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재물을 마련하는 일은 마치면서도, 다음 세대의 마음에 관한 기도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아직 성전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한다

역대상 29:20–22 본문 →

다윗이 기도를 마치고 온 회중에게 말합니다.

다윗이 온 회중에게 말했다. 「부디 그대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찬송하시오.」 온 회중이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찬송하고, 몸을 굽혀 여호와야훼와 왕 앞에 엎드렸다.역대상 29:20 · 본디새김

여기서 하나님과 왕을 향한 몸짓이 함께 언급된다고 해서 왕이 하나님과 동일한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고대 왕에게 몸을 굽히는 것은 왕권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왕에 대한 존경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 속에 놓여 있습니다.

다음 날에는 대규모 제사가 이어집니다.

수송아지 천 마리, 숫양 천 마리, 어린양 천 마리가 번제로 드려지고, 그에 딸린 부어 바치는 제물과 많은 희생 제물이 함께 바쳐집니다(29:21). 성전 건축을 위한 재물을 모았다는 사실이 단순히 경제적 성취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일은 찬송으로 이어지고, 제사로 이어지며, 공동체의 식탁으로 이어집니다.

그날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여호와야훼 앞에서 먹고 마셨다. 그들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두 번째로 왕으로 삼았다. 여호와야훼를 위해 그에게 기름을 부어 지도자로 삼고,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으로 삼았다.역대상 29:22 · 본디새김

성전 건축이 완성된 뒤에야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찬송하고,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십니다.

따라서 성전 건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처음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언약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응답하며, 앞으로의 예배를 위해 거룩한 장소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역대기 저자가 이 장면에서 특별히 드러내는 것은 온 회중의 참여 속에 이루어지는 왕권 계승입니다. 새 왕의 통치와 성전 예배를 맡을 제사장직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준비한 것은 단순히 건축 자재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왕권과 예배의 질서가 이어지는 장면까지 기록됩니다.

조금 더 깊이

번제는 제물이 제단에서 온전히 불살라지는 제사이므로, 번제 자체를 백성이 나누어 먹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에 함께 기록된 여러 희생 제물과 공동체의 제사 잔치라는 맥락에서 이 식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라는 표현은 독자의 주의를 끕니다. 역대상 23:1에서는 다윗이 늙어 나이가 많아졌을 때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다고 이미 기록했습니다. 29장의 표현은 그 앞선 임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편 열왕기상 1장에는 아도니야의 왕위 시도와 그에 대응하는 솔로몬의 기름 부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열왕기상 1:5–40). 역대기에는 그 갈등이 자세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책의 기록을 종합하면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역대상 23장과 29장의 장면을 열왕기상 1장의 어느 사건과 정확히 일치시킬 것인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열왕기상 2:35는 솔로몬이 아비아타르를 대신해 사독을 제사장으로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29장은 사독의 기름 부음을 솔로몬의 즉위와 함께 놓습니다.

솔로몬이 앉은 왕좌는 누구의 것인가

역대상 29:23–25 본문 →

솔로몬은 이제 왕좌에 앉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으로서 여호와야훼의 왕좌에 앉았고 번영했다. 온 이스라엘이 그의 말을 따랐다.역대상 29:23 · 본디새김

역대상 28:5에서 다윗은 솔로몬이 「여호와야훼의 왕국의 왕좌」에 앉도록 선택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29장은 그것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인간 왕이며, 그 왕권은 여호와야훼의 통치 아래 놓여 있습니다. 왕좌가 여호와야훼의 것이라는 표현은 왕의 권위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선언입니다.

다윗의 기도에서는 왕국이 여호와야훼의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야기 속에서는 왕좌가 여호와야훼의 것입니다.

왕이 바뀌어도 왕국의 궁극적인 주인은 바뀌지 않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의 말을 따르고, 지도자들과 용사들과 다윗의 모든 아들이 충성을 약속합니다(29:23–24). 특히 「다윗의 모든 아들」이 언급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왕위 계승에서 경쟁의 가능성이 있는 왕실 구성원들까지 솔로몬의 통치를 인정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의 마지막 주어는 다시 여호와야훼가 됩니다.

여호와야훼는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솔로몬을 매우 크게 높였고, 그보다 앞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어떤 왕에게도 없었던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었다.역대상 29:25 · 본디새김

이것은 다윗이 12절에서 고백한 것과 일치합니다. 「부와 영예는 당신에게서 나오며, 당신은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다윗의 찬송 속에 있었던 신학이 솔로몬의 즉위 장면에서 이야기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선택과 높이심이 이후 솔로몬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그를 위해 계명을 지킬 온전한 마음을 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왕에게도 지속적인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왕좌가 여호와야훼의 것이라면, 그 자리에 앉는 왕은 결코 무제한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권위를 하나님 앞에서 사용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깊이

24절의 「충성을 약속했다」는 표현은 원문에서 ‘손을 주다’라는 관용적인 말로 나타납니다. 이는 솔로몬의 권위 아래 들어가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다윗의 왕권은 사무엘하 7:12–16에서 약속된 다윗 왕조의 지속성과 연결됩니다. 역대상 29장에서는 그 약속이 솔로몬에게 왕권이 계승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기독교 정경 전체에서는 다윗에게 약속된 왕권의 궁극적인 성취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읽습니다(누가복음 1:32–33). 그러나 역대상 29장 자체의 초점은 먼저 솔로몬의 실제 즉위와 여호와야훼께 속한 이스라엘의 왕권에 있습니다.

다윗의 죽음으로 역대상은 무엇을 남기는가

역대상 29:26–30 본문 →

이제 다윗의 생애가 짧게 정리됩니다.

다윗은 마흔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통치했습니다(29:27).

그는 좋은 노년을 누리고, 수명과 부와 영예에 만족한 채 죽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역대상 29:28 · 본디새김

여기에 나오는 「부와 영예」는 앞서 다윗의 찬송에서도 등장한 말입니다. 다윗이 마지막까지 누린 부와 영예는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고백했던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생애가 아무런 문제 없이 완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역대상 자체도 다윗의 인구 조사와 그로 인한 재앙을 기록합니다(21장). 사무엘서는 그의 더 많은 실패를 전합니다.

역대기 저자는 여기서 그 모든 역사를 다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통치와 부와 영예, 그리고 솔로몬에게 이어진 왕권을 강조합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두 절은 사무엘과 나단과 갓의 기록을 언급합니다. 저자는 다윗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과, 그가 다스리던 시대에 이스라엘 및 주변 왕국들이 겪은 일들도 기록되어 있다고 덧붙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성공담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여러 나라의 역사 속에서 펼쳐진 통치의 역사였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과 나단과 갓은 모두 다윗의 생애와 관련된 예언자들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의 왕권이 시작되는 역사와 연결되고, 나단은 다윗에게 주어진 왕조의 약속과 그의 죄를 책망하는 사건에 등장하며, 갓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인물입니다(사무엘상 16:13; 사무엘하 7:4–17; 12:1–15; 24:11–19). 다만 29절이 언급하는 기록들의 정확한 형태나 오늘날의 사무엘서와 맺는 문헌적 관계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

역대상 29:1–30 본문 →

이렇게 역대상 29장은 성전과 왕권과 재물이라는 세 가지를 하나의 고백으로 묶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역대상 29장이 끝날 때, 다윗이 준비한 성전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제 죽음을 맞습니다. 자신이 준비한 집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생애를 마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거대한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고백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에게서 나왔으므로, 저희는 당신의 손에서 받은 것을 당신께 바쳤을 뿐입니다.」 이 고백을 마친 왕은 이제 왕좌를 아들에게 넘깁니다. 그의 손이 준비한 금과 은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쌓여 있고, 새로운 왕은 그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