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아담에서 이어진 족보
왕의 시대가 끝나도 남는 이름들
역대상 8장은 베냐민의 자손들을 기록한 족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베냐민의 족보는 이미 7장 6–12절에 등장했습니다. 왜 역대기는 같은 지파를 다시 소개하며 한 장 전체를 할애할까요?
처음에는 벨라와 아스벨 같은 오래된 조상의 이름들이 나오고, 중간에는 강제로 거처를 옮긴 사람들과 성읍을 건설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다가 33절에서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입니다.
역대상 8장의 중심에는 사울이 있지만, 이 장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것은 사울의 왕권이 아니라 베냐민 자손들의 계속되는 삶입니다.
이미 소개한 베냐민을 다시 소개하다
8장은 베냐민의 다섯 아들을 열거하며 시작합니다.
베냐민은 맏아들 벨라와 둘째 아스벨과 셋째 아하라, 넷째 노하와 다섯째 라바를 낳았다.역대상 8:1–2 · 본디새김
그런데 바로 앞 장에서는 베냐민의 아들로 벨라와 베겔과 여디아엘, 세 사람을 소개했습니다(7:6). 두 족보는 아들의 숫자부터 다릅니다. 창세기 46:21이나 민수기 26:38–41에 나오는 베냐민 계보와 비교해도 이름과 배열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성경의 족보를 현대적인 가족관계등록부처럼 읽지 않아야 합니다.
고대의 지파 족보는 실제 혈연관계를 기억하는 동시에, 여러 씨족이 어떤 조상에게 속해 있는지 보여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족보의 ‘아들’은 직접 낳은 아들뿐 아니라 후손이나 그에게서 유래한 씨족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명단은 각기 다른 가문의 계통이나 전승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격만으로 두 명단의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름이 같은 인물의 다른 이름인지, 실제로 서로 다른 계보가 보존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7장의 베냐민 족보는 다른 지파들과 나란히 놓여 있고, 특히 가문의 우두머리와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기록합니다(7:7, 9, 11). 반면 8장은 여러 가문의 거주지와 이동을 지나 사울의 집안으로 향합니다.
두 족보가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하면서, 베냐민이라는 지파를 훨씬 넓게 보여 주는 셈입니다.
3–5절에서는 벨라의 후손들이 소개됩니다. 게라라는 이름이 두 차례 나오는데, 이것이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인지, 전승의 중복인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6절에 나오는 에훗을 사사기 3장의 사사 에훗과 동일 인물로 볼 만한 확실한 근거도 없습니다.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 모압에서 태어난 자녀들
6절부터 족보에 뜻밖의 사건이 들어옵니다.
에훗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았다. 이들은 게바 주민들의 조상 집안 우두머리들이었다. 이들은 마나핫으로 강제로 옮겨졌다.역대상 8:6 · 본디새김
게바의 집안 우두머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주시킨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 우두머리들이 강제로 옮겨진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옮겨진 사람들을 앞세워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해석을 택하든, 본문에는 게바에서 마나핫으로 거주지가 바뀐 사건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어느 시대에 발생한 일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동을 바벨론 유배나 특정 전쟁과 직접 연결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어서 8절에는 사하라임이 등장합니다.
사하라임은 자기 아내 후심과 바아라를 내보낸 뒤 모압 땅에서 자녀들을 낳았다.역대상 8:8 · 본디새김
여기서는 지파의 역사에 국경을 넘어선 삶이 나타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의 동쪽에 있던 지역으로, 이스라엘과 친족 관계의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때로 적대적인 관계에 놓였던 곳입니다(창세기 19:36–37; 민수기 22–25장).
이 이야기는 룻기를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룻기에서도 이스라엘 가족이 모압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이루어진 가족관계가 훗날 이스라엘의 중요한 족보와 연결됩니다(룻기 1:1–5; 4:13–22). 그러나 두 본문의 관계는 주제적 유사성에 머뭅니다. 역대상 8장은 사하라임이 왜 모압으로 갔는지, 그곳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하라임은 후심에게서 아비둡과 엘바알을 낳았다.역대상 8:11 · 본디새김
8절에서는 후심을 내보냈다고 했는데, 11절에서는 다시 후심에게서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후심을 내보내기 전에 태어난 자녀를 뒤늦게 기록한 것인지, 별도의 가족 전승을 이어 붙인 결과인지, 혹은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후심이 되돌아왔다거나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족보는 가족관계의 모든 사연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출생과 이혼, 이주처럼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사건조차 몇 마디로 압축해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 6절의 바야글룸은 문자적으로 ‘그들이 그들을 옮겼다’는 능동형입니다. 그런데 누가 옮겼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7절에는 게라가 그들을 옮겼다는 단수형 표현이 등장합니다. 7절의 게라가 이 이동의 주도자로 등장하지만, 정확히 누구를 옮겼는지 역시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름들이 땅 위에 자리를 잡다
12절에서는 사람의 이름만 이어지던 족보에 도시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엘바알의 아들들은 에벨과 미스암과 사멧이었다. 사멧은 오노와 롯과 롯에 딸린 마을들을 건설했다.역대상 8:12 · 본디새김
여기서 롯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아니라, 히브리어 로드(לֹד)로 불리는 성읍입니다. 오노와 롯은 베냐민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던 성읍들로, 후대의 느헤미야 11:35에도 함께 등장합니다. 느헤미야서에서는 이 두 성읍이 유배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한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역대상 8:12의 건설 사건을 유배 이후의 재건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건설 시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설했다’는 표현도 아무것도 없던 곳에 처음 도시를 세웠다는 뜻인지, 기존 성읍을 재건하고 확장했다는 뜻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족보는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어느 가문이 어떤 성읍을 세우고 그곳에 정착했는지도 기억합니다.
13절에는 또 다른 사건이 등장합니다.
엘바알의 아들들로는 또 브리아와 세마가 있었다. 이들은 아얄론 주민들의 조상 집안 우두머리들이었다. 이들이 가드 주민들을 달아나게 했다.역대상 8:13 · 본디새김
아얄론은 이스라엘의 산지와 서쪽 평야가 만나는 지역에 있었고, 가드는 블레셋의 주요 성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여호수아 10:12; 사무엘상 6:17). 베냐민의 일부 가문은 단지 한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변 지역과 충돌했고, 자기들의 거주 공간을 확보하거나 지키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다만 이 전투가 어느 시대에 일어났는지, 가드 주민들과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뒤에 나오는 사울이나 다윗 시대의 전쟁과 동일한 사건으로 연결할 근거도 없습니다.
모두 ‘어디에서 살아갈 것인가’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땅을 잃거나 떠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거처를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후 14–27절은 다시 긴 명단으로 돌아갑니다. 브리아와 엘바알, 시므이, 사삭, 여로함의 후손들이 이어집니다.
14–16절에서는 이름들이 나열된 뒤 마지막에 브리아의 아들들이라는 설명이 붙습니다. 이 마감 표현이 앞의 이름들을 정확히 어디까지 묶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이 단락이 여러 씨족의 구성원들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28절에서 명단은 하나의 문장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들은 조상 집안의 우두머리들로서, 그 계보에 따른 우두머리들이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살았다.역대상 8:28 · 본디새김
여러 가문을 나열하던 시선이 그 가문들의 대표자에게 모입니다. ‘우두머리들’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은 족보가 단지 개인들의 혈연관계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은 가문의 구조를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양한 거주지를 오가던 기록이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와 관계된 성읍이었습니다(여호수아 15:8; 18:28). 훗날 다윗이 이곳을 왕국의 중심지로 삼았고, 성전도 예루살렘에 세워졌습니다.
역대기의 독자에게 베냐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살았다는 기록은 단순한 지리 정보에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유다 지파만의 도시가 아닌,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심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역대상 9:3은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 가운데 유다와 베냐민,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들을 함께 언급합니다.
그렇다고 28절의 모든 사람이 같은 시대에 예루살렘에 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족보가 여러 세대의 기록을 모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문은 예루살렘에서 시선을 옮겨 기브온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울의 집안에 도착합니다.
사울의 이름에 도착한 족보
2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기브온에는 기브온의 아버지가 살았다. 그의 아내 이름은 마아가였다.역대상 8:29 · 본디새김
여기서 아버지는 어떤 성읍의 시조 또는 그곳과 관련된 중요한 가문의 조상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같은 족보를 다시 기록한 역대상 9:35에서는 ‘기브온의 아버지’에게 여이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8:29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그 이름이 없지만, 9:35에는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두 족보는 상당 부분 일치하면서도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9:36에는 넬이라는 이름이 자녀 명단에 등장하지만, 8:30–31의 해당 명단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를 모두 하나의 원래 형태로 복원하기는 어렵습니다.
8장은 사울의 조상과 후손을 자세하게 다룹니다. 9장은 유배 이후 예루살렘에 거주한 공동체의 명단을 소개한 다음, 끝부분인 35–44절에서 사울의 족보를 다시 기록합니다. 그리고 10장에서 사울의 죽음이 서술됩니다.
따라서 사울의 족보는 역대기의 긴 계보 기록과 왕들의 역사 사이에 놓인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넬은 기스를 낳았고, 기스는 사울을 낳았다.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다.역대상 8:33 · 본디새김
여기에는 사울이 왕이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역대기는 사울을 다른 조상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아버지였는지를 기록할 뿐입니다.
이것이 사울의 왕권을 의도적으로 낮추기 위한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족보라는 문학 형식 자체가 인물의 직책보다 혈연관계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사울이 왕으로 부름받고, 전쟁을 수행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며, 결국 왕권을 잃는 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모든 역사적 사건이 일단 뒤로 물러납니다.
사울은 한 가문의 아들이자 아버지로 나타납니다.
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이었다. 므립바알은 미가를 낳았다.역대상 8:34 · 본디새김
사울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습니다. 에스바알은 사울이 죽은 뒤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했습니다(사무엘하 2:8–10).
그렇지만 역대상 8장은 에스바알의 왕권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대신 요나단의 후손을 따라갑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바알은 사무엘하에서 이스보셋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동일시됩니다(사무엘하 2:8). 또 요나단의 아들 므립바알은 사무엘하에서 므비보셋이라고 불립니다(사무엘하 4:4; 9:6). 역대기의 이름에는 히브리어 바알, 주인 또는 주군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고, 사무엘하의 이름에는 보셋, 수치 또는 부끄러움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이스라엘의 전승 과정에서 바알이라는 이름 요소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바알은 일반적으로 주인이나 주군을 뜻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가나안의 신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바알이 들어 있는 개인 이름이 반드시 그 사람의 우상숭배를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후대 전승에서 바알이라는 요소를 수치를 뜻하는 표현으로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두 이름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달라졌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요나단의 아들로부터 이어지는 생명
요나단과 므립바알의 관계는 사무엘서를 읽은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었지만 다윗을 사랑하고 그와 언약을 맺은 인물이었습니다(사무엘상 18:1–4; 20:12–17). 그는 다윗이 자신을 대신해 왕이 될 가능성을 알고 있었고, 다윗과 맺은 관계를 자신의 집안까지 이어 가기를 바랐습니다. 사무엘상 20:15에서 요나단은 자기 집안에서 인자와 신실한 사랑을 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후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요나단의 어린 아들 므비보셋은 피신하는 도중 사고를 당하여 두 발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사무엘하 4:4). 왕의 손자로 태어난 아이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고, 몸의 장애까지 안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9장에서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관계를 기억하며 사울의 집안에 남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땅을 돌려주고 자신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다윗에게 향했다는 사실과, 다윗이 사울의 후손에게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왕이 이전 왕가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맺은 언약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대상 8장이 이러한 사건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나단의 계보가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통해 사무엘서의 이야기를 새롭게 돌아보게 합니다.
특히 사무엘하 9:12는 므비보셋에게 미가라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8:34가 바로 그 사실을 이어받습니다.
사무엘하에서는 미가의 이름이 짧게 언급된 뒤, 이야기가 므비보셋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역대상에서는 바로 그 미가가 새로운 족보의 출발점이 됩니다. 35절은 미가의 네 아들을 소개하고, 36–37절은 아하스와 여호앗다, 시므리와 모사, 비느아에서 아셀에 이르는 후손들을 기록합니다.
사무엘서는 왕가의 몰락 속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을 보여 주고, 역대상은 그 사람에게서 계속 이어진 후손들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사울 가문의 생존을 곧바로 사울 왕권의 회복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므립바알의 후손들이 왕위를 되찾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윗이 사울 집안에 베푼 신실한 사랑이 모든 후손의 삶을 직접 보장했다는 설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150명
38절에서는 아셀에게 여섯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어서 39절에서는 에섹의 세 아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족보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습니다.
울람의 아들들은 활을 당기는 용맹한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아들과 손자들을 많이 두었는데, 그 수는 150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베냐민의 자손들이었다.역대상 8:40 · 본디새김
여기서 150명은 문맥상 울람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로 이루어진 가문의 규모를 가리킵니다. 이들이 모두 동시에 활동한 전사 150명이었다고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사기 20:15–16에는 베냐민 지파의 전투 능력, 특히 물매를 잘 사용하는 전사들이 등장합니다. 역대상 12:2에서도 사울과 같은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활과 물매를 사용하는 전사들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사사기 20–21장을 기억한다면, 마지막 구절에는 더욱 깊은 역사적 대조가 있습니다.
사사기 20장에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 전쟁을 벌이다 거의 멸망할 지경에 이릅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극히 적었고, 다른 지파들은 베냐민이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을 염려했습니다(사사기 21:3, 6).
그런데 역대상 8장의 마지막에는 베냐민의 후손들이 아들과 손자들을 많이 두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두 본문이 하나의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를 서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이에는 긴 역사가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베냐민의 역사를 함께 읽는 독자에게는 뚜렷한 대조가 생깁니다.
사사기 21장은 베냐민 지파가 보존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역대상 8장은 훗날까지 이어진 그 지파의 여러 계보를 기록합니다.
사울을 심판하는 하나님과 사울의 후손을 기억하는 족보
역대상 8장에는 주목할 만한 침묵이 있습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명령하시거나 복을 선언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일반 서술 속에 명시적으로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수많은 인간의 이름과 그들이 살았던 장소가 기록됩니다.
역대상 8장만으로 하나님이 각각의 가문을 어떤 방식으로 보호하셨는지, 특정한 이주나 출생이 어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를 모든 이름에 일일이 부여한다면, 오히려 족보의 침묵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전체의 흐름 안에서는 분명한 신학적 대조가 드러납니다.
역대상 10:13–14에서 사울의 죽음은 그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여호와야훼께 묻지 않았던 불신실함과 연결됩니다. 역대기는 그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간 사실을 하나님의 판단 아래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사울의 불신실함이 베냐민 지파 전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울의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역대기의 다음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판단을 그의 후손들이 역사에서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한 왕의 실패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의 운명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왕의 이름보다 오래 남는 것
이스라엘의 역사는 왕과 전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자녀를 낳고, 가족을 이루고, 성읍에 거주하며 살아간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울의 잘못을 분명히 말하면서도 그의 후손들을 사울의 실패에 관한 설명만으로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의 이름을 족보 속에 남깁니다.
이들의 구체적인 삶은 대부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모두 훌륭한 신앙의 인물로 묘사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삶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알 수는 없습니다.
첫 번째 왕 사울의 이름이 지나가고, 요나단과 므립바알의 이름도 지나갑니다. 왕좌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활을 당기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들, 손자들이 있습니다.
한 가문에는 왕이 있었고, 그 왕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족보의 마지막 문장은 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베냐민의 자손들이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