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2–16장 · 둘로 나뉜 나라
보지 못하는 예언자와 보려 하지 않는 왕들
여로보암은 아들이 병들자 오래전에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아히야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직접 가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변장하고 가라고 지시합니다.
아히야는 이제 나이가 들어 앞을 보지 못합니다. 왕의 아내는 신분을 감추고 그의 집에 들어갑니다.
이야기는 한 왕의 병든 아들을 살릴 수 있을지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언자의 대답은 아이의 운명을 넘어 왕조의 멸망과 나라 전체의 추방에까지 이릅니다.
북쪽에서는 왕의 집안에 죽음이 선포되고, 남쪽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집과 왕의 집에서 보물이 사라집니다.
두 왕국의 운명은 달랐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판단하시는 기준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왕은 왜 자기 아내를 변장시켰을까?
아들의 병이 드러낸 왕의 두려움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지금 그가 염려하는 것은 자신의 아들입니다. 왕권을 가진 사람도 아이의 병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움을 구하려는 사람이 뜻밖입니다.
여로보암이 아내에게 말했다. 「부디 일어나 변장하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이 여로보암의 아내인 줄 알아보지 못할 것이오. 실로로 가시오. 거기에 예언자 아히야가 있소. 그는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오.」열왕기상 14:2 · 본디새김
아히야는 솔로몬 시대에 새 겉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으며 여로보암이 열 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던 사람입니다(열왕기상 11:29–38).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이 시작된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도 예언자를 직접 찾아가지 않습니다.
아히야가 자신을 좋지 않게 평가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가 자신을 알아보면 아들에 관한 질문보다 왕의 죄를 먼저 지적할까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변장의 동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로보암이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아히야가 아이의 미래를 알려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히야가 누구의 아내가 찾아왔는지는 모르게 하려 했습니다.
왕은 예언자를 통해 하나님의 지식을 얻고 싶어 하지만, 자신에 관한 진실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작은 선물에 담긴 뜻
여로보암은 아내에게 빵 열 개와 부스러지는 빵, 꿀 한 병을 가져가라고 지시합니다.
왕의 아내가 가져가는 선물치고는 소박해 보입니다. 당시 예언자를 방문하면서 음식을 가져가는 것은 낯선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9:7–8에서도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 가져갈 선물을 걱정합니다.
여로보암이 준비시킨 음식은 예언자를 방문하는 사람의 선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변장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본문은 그 목적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왕은 아들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대답은 아들의 미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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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부스러지는 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쿠딤(נִקֻּד)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음식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낱알이 박힌 빵인지, 잘 부서지는 구운 음식인지에 관해 다른 이해가 가능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진실을 밝히다
아히야는 나이가 들어 앞을 보지 못합니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변장하고 찾아갑니다. 아히야가 육체의 눈으로 그녀를 알아볼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 미리 아히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아히야에게 말했다. 「보아라,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에 관한 말을 네게 물으러 온다. 아들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너는 그 여자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여라. 그 여자는 올 때 남인 척할 것이다.」열왕기상 14:5 · 본디새김
아히야가 진실을 아는 까닭은 여호와야훼께서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분을 감출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 감출 수는 없다
여자가 문으로 들어오자 아히야가 말합니다.
아히야는 그 여자가 문으로 들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말했다.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시오. 왜 남인 척하시오? 나는 당신에게 혹독한 말을 전하도록 보내졌소.」열왕기상 14:6 · 본디새김
반대로 여로보암은 자신이 만든 금송아지와 산당을 계속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 광경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눈이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현실을 참되게 알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아히야는 육체의 눈을 잃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왕은 자신의 왕국을 바라보며 그것을 지킬 방법을 찾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왕국에 관해 이미 말씀하신 사실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한 아이의 병에서 왕권의 근본적인 문제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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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말」은 단순히 듣기 불편한 이야기가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엄중한 소식을 가리킵니다.
「내가 너를 높였는데, 너는 나를 등 뒤로 내던졌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남편에게 전할 말씀을 들려줍니다.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하오. 『내가 너를 백성 가운데서 높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고,』」열왕기상 14:7 · 본디새김
여로보암이 왕이 된 것은 그의 역량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백성 가운데서 높이셨습니다. 다윗 집안에서 왕국을 찢어 내어 그에게 주셨습니다.
이러한 출발점을 먼저 상기시키는 이유는 여로보암의 죄가 단순히 왕의 일반적인 잘못이 아니라, 자신을 세우신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기 때문입니다.
주신 분을 등 뒤로 내던지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여로보암과 비교하십니다.
「『다윗 집안에서 왕국을 찢어 내어 네게 주었는데도, 너는 내 명령들을 지키고 온 마음으로 나를 따라 내가 보기에 옳은 일만 행한 내 종 다윗과 같지 않았고,』」열왕기상 14:8 · 본디새김
여기서 다윗은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제시된다기보다 여호와야훼께 대한 충성의 기준으로 제시됩니다. 사무엘하 11–12장은 다윗의 죄를 명백하게 기록합니다. 따라서 14:8의 평가를 다윗이 평생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는 역사적 진술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열왕기의 문맥에서 다윗과 여로보암을 가르는 결정적인 문제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왕의 기준으로 제시됩니다. 반면 여로보암은 금속을 부어 만든 형상들을 세워 이스라엘의 예배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너보다 앞선 모든 사람보다 더 악하게 행하고, 가서 너 자신을 위해 다른 신들과 금속을 부어 만든 형상들을 만들어 나를 분노하게 하고, 나를 네 등 뒤로 내던졌기 때문에,』」열왕기상 14:9 · 본디새김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앞에 둡니다. 바라보고, 기억하고, 그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자신에게 왕국을 주신 하나님을 등 뒤로 내던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잠시 잊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밀어냈다는 평가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을 버리고 전혀 다른 종교를 시작한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 때에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신에 관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열왕기상 12: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행동을 자신을 등 뒤로 내던진 것으로 평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구원 역사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자신의 결정에서 밀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주신 왕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과 충돌하는 예배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결국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이 왕으로 남는 일이었습니다.
왕의 집안 전체에 선포된 심판
하나님의 판결은 매우 엄중합니다.
「『그러므로 보아라, 내가 여로보암 집안에 재앙을 가져오겠다. 여로보암에게 속하여 벽에 오줌을 누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매인 자든 풀려난 자든 모두 끊어 버리겠다. 똥을 하나도 남지 않게 치우듯 여로보암 집안을 남김없이 쓸어 버리겠다.』」열왕기상 14:10 · 본디새김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왕조가 조금 약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 집안 자체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도록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어 시신이 개와 새의 먹이가 되리라는 말씀도 나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장례 관습에서 가족과 공동체가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시신이 들판이나 성읍에 버려져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은 심각한 수치와 파멸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왕조의 심판을 구성원 개개인이 모두 같은 정도의 죄를 지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왕의 잘못과 왕조 전체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지만, 본문은 집안의 모든 사람에 대한 개별적인 도덕적 평가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곧이어 등장하는 병든 아들 아비야는 예외적으로 선한 것이 발견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바로 그 사실이 이 심판의 이야기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조금 더 깊이
「벽에 오줌을 누는 자」는 남자를 가리키는 노골적인 표현입니다. 「매인 자든 풀려난 자든」이라는 말은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 남김없이 끊어 버리겠다는 전면적인 심판의 범위를 강조합니다.
유일하게 선한 것이 발견된 아이가 먼저 죽는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아이가 병들었기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들은 것은 왕조 전체에 관한 심판이었습니다. 이제 아히야는 마침내 아이의 운명을 말합니다.
「당신은 일어나 당신의 집으로 가시오. 당신의 발이 성읍에 들어설 때 그 아이가 죽을 것이오.」열왕기상 14:12 · 본디새김
그녀는 아이가 살아날 수 있을지 알아보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면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죽음의 시점까지 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히야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통곡하고 그를 묻을 것이오.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 가운데 이 아이만 무덤에 들어갈 것이오. 여로보암 집안에서 그에게서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향한 선한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오.」열왕기상 14:13 · 본디새김
왜 집안에서 유일하게 선한 것이 발견된 아이가 죽어야 합니까?
죽음과 매장을 구별하는 말씀
앞에서는 여로보암 집안 사람들이 개와 새의 먹이가 되는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비야는 그렇지 않습니다. 왕조 전체에 내려진 참혹한 심판 속에서 이 아이에게는 정당한 장례와 공동체의 애도가 허락됩니다.
이것은 아비야에게서 하나님을 향한 선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평가와 연결됩니다. 하지만 그 선한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였는지, 이미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어떤 행동이나 태도에서 그 선함이 드러났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은 아이의 죽음과 장례, 그에게 발견된 선함을 연결하지만, 선한 아이가 왜 병들고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선한 사람은 고통 없이 먼저 죽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일반 원칙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선한 것을 발견하셨다는 사실과, 그 아이가 죽는다는 사실은 함께 놓여 있습니다.
한 아이를 구별하여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집안을 심판하시면서도 그 집안의 모든 사람을 구별 없이 하나의 악한 집단으로만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그 가운데 아비야에게서 선한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왕조 전체가 심판받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보십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세운 왕으로 기억되고, 그의 집안은 심판받을 왕조로 기록됩니다. 그런데 아비야는 그 집안에서 여호와야훼를 향한 선한 것이 발견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그가 죽은 뒤 온 이스라엘이 통곡한다는 사실은 그 평가가 이야기 안에서 지닌 무게를 더합니다.
이제 아히야의 말씀은 한 아이와 왕조를 넘어 북이스라엘 전체의 미래로 확장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어떤 해석은 아이가 다가올 왕조의 심판을 겪지 않도록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이해합니다. 그의 죽음이 역설적으로 장래의 수치와 파멸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본문이 직접 밝히는 이유는 아닙니다. 아히야는 아이가 나중에 겪을 고난을 피하도록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죽음을 앞당기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 집안의 멸망에서 이스라엘의 추방으로
아히야는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집안을 끊어 버릴 왕을 세우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호와야훼가 자신을 위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을 세울 것이오. 그 왕이 바로 이날 여로보암 집안을 끊어 버릴 것이오. 무엇이라 하겠소? 바로 지금이오.」열왕기상 14:14 · 본디새김
따라서 14장의 예언은 당장의 아이의 죽음과 이후 왕조 전체의 멸망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의 사건들을 포함합니다.
물속의 갈대와 뿌리 뽑힌 나무
이제 심판의 대상이 여로보암 집안에서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됩니다.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쳐서 물속의 갈대가 흔들리듯 흔들리게 할 것이오.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이 좋은 땅에서 이스라엘을 뿌리째 뽑아 강 건너로 흩어 버릴 것이오. 그들이 자기들의 아세라 상들을 만들어 여호와야훼를 분노하게 했기 때문이오.」열왕기상 14:15 · 본디새김
강한 왕국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서는 물속의 갈대처럼 흔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것과 뿌리째 뽑히는 것은 다릅니다.
갈대는 흔들리면서도 뿌리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째 뽑히면 더 이상 그 자리에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잠시 불안정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강 건너」는 이스라엘 동쪽의 큰 강인 유프라테스강 너머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먼 이방 땅으로 흩어질 것이라는 심판의 방향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신명기 29:27–28에서 언약을 저버린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뽑혀 다른 땅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한 말씀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쫓겨날 땅은 본래 악한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좋은 땅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단순히 새로운 땅을 찾아 이주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잃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열왕기하 17:6–23에서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주민들이 끌려가는 이야기와 큰 흐름에서 연결됩니다. 다만 14장은 그 일이 정확히 언제, 어떤 왕의 통치 아래 이루어질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열왕기 전체를 따라가며 그 예언이 가리키는 역사의 전개를 보게 됩니다.
왕이 지은 죄가 백성의 죄가 되다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내버릴 것이오. 여로보암이 스스로 짓고 이스라엘도 짓게 한 죄들 때문이오.」열왕기상 14:16 · 본디새김
한 개인이 그릇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권력으로 예배 장소를 만들고, 제사장을 세우며, 절기의 날짜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개인의 잘못이 공동체의 제도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이 만든 예배를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계속 따르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왕의 선택은 한 세대의 개인적 실수에 머물지 않고, 여러 세대에 걸쳐 공동체의 삶을 형성하는 죄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책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여로보암이 그들을 죄짓게 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들 자신도 아세라 상들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왕의 영향력과 백성의 행동이 함께 심판의 이유로 제시됩니다.
이제 예언은 끝났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합니다. 그녀가 돌아가면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말씀도 이미 들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의 시간 표현은 곧 닥칠 심판의 긴박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히 무엇을 「이날」이라고 부르는지, 뒤의 짧은 말이 어떤 문법적 관계를 이루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읽기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여로보암의 집안이 바로 그날 전부 멸망한다고 확정하는 예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본문은 곧이어 여로보암이 스물두 해 동안 왕으로 다스렸고, 그의 아들 나답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14:20). 그리고 열왕기상 15:27–30에 이르면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여로보암 집안을 멸망시키는 사건이 나옵니다. 열왕기는 그 사건을 아히야를 통해 하신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연결합니다.
문턱을 넘는 순간, 예언이 이루어지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일어나 길을 떠나 디르사에 이르렀다. 그 여자가 집 문턱에 들어설 때 아이가 죽었다.열왕기상 14:17 · 본디새김
이 구절은 거의 아무런 감정 표현 없이 사건을 기록합니다.
여자가 어떤 마음으로 실로를 떠났는지, 돌아가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붙들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알려 주는 상황만으로도 그 길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여자는 아히야의 집 문으로 들어갔습니다(14:4–6). 그곳에서 자신의 신분이 밝혀지고, 아이와 왕조에 관한 심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 문턱 사이에 한 어머니의 여정이 놓여 있습니다.
아히야의 집 문에서는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자기 집 문에서는 선포된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한 아이의 죽음이라는 구체적인 현실과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이를 묻었고,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통곡했다. 여호와야훼가 자기 종 예언자 아히야를 통해 한 말대로였다.열왕기상 14:18 · 본디새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일에 포함된 인간의 슬픔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다릅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을 강조하면서도 아이의 죽음 앞에서 이스라엘이 통곡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남겨 둡니다.
여로보암의 죽음과 끝나지 않은 심판
여로보암의 통치는 짧게 정리됩니다.
그가 전쟁을 벌이고 나라를 다스린 일은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가 스물두 해 동안 왕으로 다스렸고, 그의 아들 나답이 왕위를 이었다고 기록합니다.
그의 집안에 대한 판결은 내려졌지만, 그 실행은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집니다.
왕이 죽고 아들이 왕위를 잇는 것은 겉으로 보면 정상적인 왕위 계승입니다. 그러나 그 왕조의 미래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이제 서술자는 북이스라엘의 왕조에서 남유다의 왕조로 시선을 옮깁니다.
북이스라엘은 잘못된 예배로 심판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야훼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과 다윗의 왕조는 어떤 모습입니까?
여호와야훼께서 이름을 두신 성읍에서도 악이 자라다
르호보암은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에서 왕으로 다스렸다. 르호보암은 왕이 되었을 때 마흔한 살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열일곱 해 동안 다스렸다. 예루살렘은 여호와야훼가 자기 이름을 두려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선택한 성읍이었다. 르호보암의 어머니 이름은 나아마였으며, 암몬 여자였다.열왕기상 14:21 · 본디새김
왜 왕의 통치 연수를 소개하면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성읍이라는 사실을 굳이 덧붙일까요? 그다음 구절과 비교해 보면 그 효과가 드러납니다.
유다는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악한 일을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로 조상들이 한 모든 일보다 더 여호와야훼의 질투를 일으켰다.열왕기상 14:22 · 본디새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성읍에서, 그분이 보시기에 악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조가 유다의 죄를 더욱 심각하게 만듭니다.
올바른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올바르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유다의 죄는 르호보암 개인의 죄로만 서술되지 않는다
본문은 르호보암 한 사람이 저지른 모든 악행을 열거하지 않습니다. 유다 공동체 전체의 행동을 평가합니다.
여로보암에 관해서는 그가 스스로 죄를 짓고 이스라엘도 죄짓게 했다고 명시했습니다. 반면 유다에 관해서는 백성 전체가 여호와야훼의 질투를 일으키는 악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왕의 책임을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르호보암은 그 공동체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유다의 문제를 왕 한 사람에게만 돌리지 않습니다.
높은 언덕과 무성한 나무 아래
그들도 모든 높은 언덕 위와 모든 무성한 나무 아래에 자기들을 위해 산당들과 기둥들과 아세라 상들을 세웠다.열왕기상 14:23 · 본디새김
높은 언덕과 무성한 나무 아래라는 표현은 신명기 12:2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이 높은 산과 언덕, 무성한 나무 아래에서 섬기던 신들의 예배 장소들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는 바로 그런 장소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둥들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 세워진 돌들을 가리킬 수 있고, 아세라 상들은 아세라와 관련된 예배 대상이나 상징물을 가리킵니다. 모든 경우에 정확히 어떤 형태의 물건이었는지는 본문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단락은 그러한 시설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예배와 연결합니다.
「신전 남창」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뜻하는가
24절은 그 땅에 신전 남창도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카데시(קָדֵשׁ)는 ‘거룩하다’는 말과 관련된 어휘지만, 실제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지는 논의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신전에서 성적 행위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소속된 특정한 남성 종교 종사자를 가리키며, 성적 행위의 구체적인 형태까지 이 단어 하나로 입증할 수는 없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을 근거로 당시 유다의 모든 관련 종교 의식에 조직적인 성매매가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그 땅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고, 서술자가 이를 다른 민족들의 역겨운 관습을 따르는 일과 연결하여 비판한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의 금방패가 사라지고 청동 방패가 남다
르호보암이 왕이 된 지 오 년째에 이집트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집에 있는 보물과 왕의 집에 있는 보물을 가져갔다. 모든 것을 가져갔다.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도 모두 가져갔다.열왕기상 14:26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열왕기상 10장과 강하게 대조됩니다. 그때 솔로몬의 왕궁에는 금이 넘쳐났습니다. 그는 금으로 수백 개의 방패를 만들어 레바논 숲의 집에 두었습니다(10:16–17). 왕이 사용하는 그릇은 모두 금이었고, 은은 돌처럼 흔하다고 묘사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시대에는 먼 나라에서 금이 들어왔습니다.
르호보암의 시대에는 이집트 왕이 예루살렘의 금을 가져갑니다.
재물의 흐름이 반대 방향으로 바뀐 것입니다.
성전과 왕궁이 함께 약탈당하다
솔로몬의 통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성전과 왕궁은 왕국의 영광을 대표하는 두 건물이었습니다. 이제 그 두 건물이 함께 외국 왕의 약탈 대상이 됩니다.
열왕기상 9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면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성전이라도 심판에서 제외하지 않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9:6–9). 14장에서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보물들은 빼앗깁니다.
금 대신 청동을 사용하다
르호보암 왕은 그 대신 청동 방패들을 만들어, 왕의 집 입구를 지키는 호위병들의 지휘관들에게 맡겼다.열왕기상 14:27 · 본디새김
이 행동 자체는 빼앗긴 왕실 물품을 대신할 새로운 물건을 마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이 방패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까지 자세히 알려 줍니다.
왕이 여호와야훼의 집에 들어갈 때마다 호위병들이 그 방패들을 들고 갔다가 호위병 방으로 돌려놓았다.열왕기상 14:28 · 본디새김
겉으로 보이는 왕실의 의식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방패의 재료는 달라졌습니다.
이 장면을 왕실이 완전히 거짓된 겉치레만 유지하고 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청동 방패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만의 의도를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왕실의 형식은 계속되지만, 그 형식이 드러내던 영광은 이미 줄어들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하 12:5–8은 이 사건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곳에서는 예언자 스마야가 등장하여 유다의 불순종 때문에 시삭이 공격해 왔다고 선포합니다. 르호보암과 지도자들이 자신을 낮추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열왕기상 14장은 그 대화와 회개의 장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침공과 약탈, 그리고 그 이후 왕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 왕은 죽었지만 두 왕국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르호보암의 나머지 행적은 유다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는 줄곧 전쟁이 있었다.열왕기상 14:30 · 본디새김
이 말은 12장에서 하나님께서 형제끼리 싸우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돌아간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12:21–24). 12장은 르호보암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군대를 모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계획을 중단한 특정한 사건을 기록합니다. 14장은 두 왕의 통치 기간에 양국 사이의 적대 관계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전체적으로 정리합니다.
따라서 처음의 대규모 전쟁 계획을 중단했다는 사실이 이후 두 왕국 사이에 아무런 군사적 충돌도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기록은 왕국의 분열이 단번에 해결되지 않은 갈등으로 남았음을 보여 줍니다.
르호보암은 죽고 다윗 성읍에 묻힙니다. 그의 아들 아비얌이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여기서 르호보암의 어머니 나아마가 암몬 여자였다는 사실이 다시 언급됩니다. 이미 21절에 소개되었던 정보인데, 장의 마지막에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 반복은 왕조의 계보에서 왕의 어머니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유다의 우상숭배가 나아마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녀가 어떤 종교적 행동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이 비판하는 대상은 유다 공동체 전체의 잘못된 예배입니다.
마지막에 르호보암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았다는 기록은 남쪽의 다윗 왕조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반면 북쪽 여로보암의 집안에는 멸망의 판결이 내려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시면서도 유다의 악을 심판하십니다. 여로보암에게는 왕권을 주셨지만 그의 불순종 때문에 그 왕조의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두 문턱과 두 종류의 집
이 장은 결국 서로 다른 두 집안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왕이 감추려는 사실을 아시고, 왕조의 죄를 심판하시며, 선한 것이 발견된 한 아이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선택은 인간의 불순종을 덮어 주는 장치가 아니며, 그분의 심판은 단순히 왕국의 규모와 부를 줄이는 정치적 사건으로만 이해될 수도 없습니다.
열왕기상 14장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청동 방패를 든 호위병들입니다.
왕의 행렬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행렬이 지나가는 나라의 형편은 달라져 있습니다. 한때 솔로몬의 왕궁을 빛내던 금은 사라졌고, 르호보암은 청동 방패를 앞세워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 장면에서 열왕기상 14장은 말을 멈춥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