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7–22장 · 엘리야와 아합

불보다 먼저 약속된 비

갈멜산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순간일까요?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이 온종일 부르짖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엘리야가 기도하자 여호와야훼의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삼켜 버립니다. 백성은 땅에 엎드려 여호와야훼께서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갈멜산에서 불이 내리기 전에 이미 비를 내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백성이 아직 돌이키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바알의 예언자들이 아직 모이지도 않았고, 제단에 불이 내려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는 먼저 가뭄을 끝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갈멜산의 대결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하나님을 설득해서 비를 얻어 내기 위한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비를 내리기로 말씀하신 분이 누구인지 이스라엘이 알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구를 하나님으로 알고, 누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것입니까?

그 질문 앞에 왕도, 예언자도, 백성도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리는 대답에 앞서 여호와야훼께서 먼저 말씀하시고 행동하십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1018장 본문 읽기 →

삼 년째에 주어진 말씀: 가뭄을 끝내기로 하신 분

열왕기상 18:1–2 본문 →

가뭄의 끝은 왕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결정하십니다

17장에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자신의 말이 있기 전까지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많은 날이 지나 삼 년째가 됩니다. 그동안 땅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가뭄을 끝내는 첫 움직임은 아합의 궁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삼 년째에 여호와야훼의 말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가서 아합에게 모습을 드러내라.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열왕기상 18:1 · 본디새김

엘리야에게 주어진 명령은 아합에게 모습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께서 하시겠다고 선언하신 일은 비를 내리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뭄을 일으키고 끝내는 권한이 그에게 독립적으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알은 고대 가나안과 페니키아 지역에서 폭풍과 비, 농경의 풍요와 관련된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비가 돌아올 것을 선언하시는 분은 바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이십니다.

이 약속 때문에 엘리야는 숨었던 자리에서 나와 아합에게 갑니다.

그리고 그가 왕을 만나기 전에, 독자는 왕궁 안에 살고 있던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오바댜: 아합의 궁전에서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던 사람

열왕기상 18:3–16 본문 →

같은 기근 속에서 서로 다른 생명을 지킵니다

아합은 왕궁을 관리하는 오바댜를 부릅니다.

아합이 왕궁을 관리하는 오바댜를 불렀다. 오바댜는 여호와야훼를 매우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열왕기상 18:3 · 본디새김

여기서 「두려워하다」는 말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며 그분께 충실하려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세벨이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들을 죽일 때 오바댜는 예언자 백 명을 쉰 명씩 굴에 숨기고 빵과 물을 공급했습니다.

이 사실은 앞 장의 엘리야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서 공급받았던 빵과 물을, 오바댜는 숨어 있는 예언자들에게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엘리야는 왕에게서 멀리 떨어져 숨었습니다. 오바댜는 바로 그 왕을 섬기는 자리에서 예언자들을 보호했습니다. 그의 행동이 발각된다면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었습니다.

아합이 오바댜에게 말했다. 「이 땅의 모든 샘과 모든 시내로 가 보아라. 어쩌면 우리가 풀을 찾아 말과 노새를 살리고 가축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열왕기상 18:5 · 본디새김

말과 노새는 왕국의 운송과 군사 활동에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따라서 왕이 가축의 생존을 걱정하는 것은 당시 통치자로서 현실적인 관심사였습니다. 본문은 아합이 백성의 굶주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뭄 속에서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바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언자들에게 빵과 물을 공급했습니다. 아합은 가축을 살릴 풀과 물을 찾고 있습니다.

같은 기근 속에서 두 사람이 지키려는 대상이 다르게 제시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19절에서는 이세벨의 식탁에서 먹는 아세라의 예언자들이 등장합니다. 한쪽에서는 왕실이 특정 종교 집단을 지원하고, 다른 쪽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들이 굴에 숨어 살아갑니다.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들은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제 주인이신 엘리야」와 「당신의 주인」

오바댜가 길을 가는데, 엘리야가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 오바댜는 그를 알아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했다. 「제 주인이신 엘리야가 맞으십니까?」열왕기상 18:7 · 본디새김
그가 오바댜에게 말했다. 「접니다. 가서 당신의 주인에게 엘리야가 여기 있다고 말하십시오.」열왕기상 18:8 · 본디새김

오바댜에게 아합은 자신이 섬기는 왕입니다. 동시에 그는 엘리야를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로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 두 관계가 충돌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엘리야의 말을 왕에게 전해야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아합이 엘리야를 찾기 위해 여러 민족과 왕국에 사람을 보냈으며, 찾지 못했다는 맹세까지 요구했다고 설명합니다.

오바댜가 걱정하는 것은 엘리야가 여호와야훼의 영에 의해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겨질 가능성입니다. 그가 왕에게 엘리야가 있다고 알렸는데 정작 그 자리에서 엘리야를 찾을 수 없다면, 아합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백 명의 예언자를 숨기고 먹여 살린 사람입니다.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이번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여호와야훼를 경외한다는 사실이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도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추상적인 충고만 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약속합니다.

엘리야가 말했다. 「제가 그 앞에 서서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는 반드시 오늘 아합에게 모습을 드러내겠습니다.」열왕기상 18:15 · 본디새김

그 약속을 듣고 오바댜는 움직입니다.

그는 아합에게 가서 엘리야의 소식을 전합니다. 엘리야는 왕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바댜는 왕궁 안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숨기고 보호합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두 사람 모두 여호와야훼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괴롭혔는가

열왕기상 18:17–20 본문 →

아합의 첫마디

마침내 아합이 엘리야를 만납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보고 그에게 말했다. 「네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냐?」열왕기상 18:17 · 본디새김

엘리야가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오랜 기근이 찾아왔으니 아합의 입장에서는 엘리야가 재앙을 가져온 사람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대답은 문제의 방향을 바꿉니다.

그가 말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사람은 제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집안입니다. 당신들이 여호와야훼의 명령들을 저버렸고, 당신은 바알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열왕기상 18:18 · 본디새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여호와야훼와 맺은 관계를 깨뜨리는 사람이 오히려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화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따지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온 이스라엘을 갈멜산으로 모으라고 요구합니다. 이 문제는 왕과 예언자 두 사람 사이의 갈등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백성 전체가 누구를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괴롭히다」는 혼란이나 재앙을 불러오고 공동체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여호수아 7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간이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어기고 전쟁에서 금지된 물건을 취했을 때, 여호수아는 그가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렸다고 말합니다(여호수아 7:25).

갈멜산: 두 생각 사이에서 절뚝거리는 백성

열왕기상 18:21–24 본문 →

왜 갈멜산인가

갈멜산은 지중해 연안과 가까운 이스라엘 북서부의 산악 지대에 있습니다.

비와 풍요를 상징하는 바알 신앙이 왕실의 지원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갈멜산에서 벌어지는 대결은 누가 비와 자연을 다스리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 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백성을 모아 놓고 처음 묻는 것은 누가 더 강한 기적을 행할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누구를 따를 것인가입니다.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두 생각 사이에서 절뚝거리겠습니까? 여호와야훼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백성은 그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열왕기상 18:21 · 본디새김

절뚝거림이 두 번 등장합니다

백성은 두 생각 사이에서 절뚝거리고, 바알의 예언자들은 제단 곁에서 절뚝거립니다.

바알 예언자들의 행동은 제단 주변에서 이루어진 의례적 움직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백성의 절뚝거림은 어느 하나님을 따를지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해서만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알면서도 다른 신을 함께 따르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판단은 실제로 누구를 따르느냐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명기 6:4–5의 고백이 배경으로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알고, 마음을 다해 사랑하도록 부름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백성

그들이 왜 침묵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와 바알 사이에서 정말 판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왕실이 지원하는 바알 신앙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기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라는 제안을 내놓자 그들은 대답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저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온 백성이 대답했다. 「좋은 말씀입니다.」열왕기상 18:24 · 본디새김

그들은 여호와야훼를 따르겠다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하나님인지 드러내는 시험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판단을 드러내야 할 자리로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정말 혼자였는가

22절에서 엘리야는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로 자기 혼자 남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오바댜가 예언자 백 명을 숨겼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이스라엘에 여호와야훼의 예언자가 문자 그대로 엘리야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객관적인 조사 결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갈멜산의 공개적인 대결에서 엘리야가 홀로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로 서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엘리야 자신이 얼마나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는지도 이 표현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19절에는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뿐 아니라 이세벨의 식탁에서 먹는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도 언급됩니다. 그러나 이후 대결의 상세한 장면에는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만 등장합니다. 아세라 예언자 사백 명이 실제로 갈멜산에 왔는지, 왔다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집중하는 것은 바알의 예언자들과 엘리야 사이의 대조입니다.

조금 더 깊이

「절뚝거리다」는 이 문맥에서는 두 갈래의 생각 사이에서 이쪽저쪽으로 움직이거나 주저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같은 동사가 26절에서 다시 사용됩니다. 이 둘이 동일한 동작을 뜻한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같은 동사를 사용하여 두 장면을 연결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알의 예언자들: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열왕기상 18:25–29 본문 →

아침부터 한낮까지

바알의 예언자들이 먼저 제물을 준비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건네준 수소를 가져다 준비하고, 아침부터 한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바알이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었고 응답하는 이도 없었다. 그들은 만들어 놓은 제단 곁에서 절뚝거렸다.열왕기상 18:26 · 본디새김

바알의 예언자들은 실제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소리를 높여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열심과 응답 사이에는 아무 연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조롱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한낮이 되자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들을 조롱합니다.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며 말했다. 「큰 소리로 불러라. 그가 신이니 말이다. 생각에 잠겼거나 자리를 비웠거나 길을 떠났을 것이다. 어쩌면 자고 있어서 깨어나야 할지도 모른다.」열왕기상 18:27 · 본디새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정작 불러도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인간적인 한계에서 찾는 척하는 것입니다. 이 조롱은 시편 115:4–7의 우상 비판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우상들이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몸에서 피가 흐르도록

28절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베고 찌릅니다.

그들의 몸에서는 피가 흐릅니다. 본문은 이러한 행위를 그들의 관습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모든 고대 바알 숭배자들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의식을 행했다는 일반적인 설명으로 확대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낮이 지나고도 그들은 제물을 올릴 때까지 예언 행위를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었고, 응답하는 이도 없었고, 귀 기울이는 이도 없었다.열왕기상 18:29 · 본디새김

이 반복은 단순히 바알의 예언자들이 제물을 불태우는 데 실패했다는 말보다 더 깊은 뜻을 지닙니다. 그들의 부름에 응답할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응답의 근거는 기도하는 사람의 열심 자체가 아니라,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신가에 있습니다.

이제 엘리야가 앞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기도하지 않습니다. 허물어진 제단을 고칩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에 잠겼거나」와 「자리를 비웠거나」에 해당하는 말들은 드물게 사용되는 표현이므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이 인간처럼 어떤 일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이동하거나, 잠을 자느라 응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열두 개의 돌: 둘로 나뉜 나라를 하나의 이스라엘로 부르다

열왕기상 18:30–35 본문 →

제단을 새로 만들기 전에 고칩니다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말했다. 「제게 가까이 오십시오.」 온 백성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그는 허물어진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고쳤다.열왕기상 18:30 · 본디새김

이 장에서 구체적으로 누가 그 제단을 허물었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아합 시대의 종교적 상황을 고려하면 여호와야훼 예배가 억압되던 현실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지만, 파괴의 직접적인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제단을 고치는 일을 기록하면서 특별히 돌의 개수를 밝힙니다.

왜 열두 개의 돌인가

엘리야는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나온 지파들의 수에 따라 돌 열두 개를 가져왔다. 앞서 야곱에게는 「네 이름은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라는 여호와야훼의 말이 임했다.열왕기상 18:31 · 본디새김

그런데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이미 왕국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야는 북왕국의 지파 수에 맞춘 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굳이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사건을 언급합니다. 창세기 32:28과 35:10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이 단순히 정치적으로 형성된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관계를 맺으신 백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왕국은 둘로 갈라졌지만,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스라엘이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근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알을 따르는 문제는 단순히 종교적 취향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아합의 백성이기 전에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신 백성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사실을 열두 개의 돌로 드러냅니다.

왜 제단에 물을 붓는가

엘리야는 제물을 준비한 뒤 물을 부으라고 명령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입니다. 물은 제물과 장작을 적시고 제단 주변으로 흘러 도랑까지 채웁니다.

가장 직접적인 의미는 불이 자연적으로 붙거나 사람이 몰래 불을 붙였다는 설명을 어렵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불이 내려오는 사건이 인간의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불이 내려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기도합니다.

조금 더 깊이

네 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워 부었으므로, 본문에 기록된 절차를 따르면 모두 열두 항아리 분량의 물을 부은 셈입니다. 다만 본문은 이 열두 항아리와 열두 지파 사이에 상징적 대응이 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의 정확한 출처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갈멜산이 바다와 가깝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바닷물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본문은 그 물이 바닷물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엘리야의 기도: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알게 하십시오

열왕기상 18:36–39 본문 →

「제가 당신의 종이며」

제물을 올릴 때가 되자 예언자 엘리야가 다가가 말했다. 「여호와야훼,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오늘 당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해 주십시오.」열왕기상 18:36 · 본디새김

엘리야의 기도는 바알 예언자들의 기도와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바알 예언자들은 아침부터 오랜 시간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비교적 짧습니다. 바알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몸을 해치지 않고 말씀을 따라 행한 사실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기도의 길이나 동작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 예언자인지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또한 자신이 여호와야훼의 종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한 모든 일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종을 통해 행하신 일이라는 것이 기도의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되돌리신다는 말

「제게 응답해 주십시오, 여호와야훼. 제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면 이 백성이 여호와야훼이신 당신이 하나님이시며, 당신이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셨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열왕기상 18:37 · 본디새김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백성의 마음에 관여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엘리야는 백성에게 누구를 따를 것인지 결정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일까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인간에게는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동시에 그 응답이 가능하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믿음이 기도에 담겨 있습니다.

불이 내려오다

여호와야훼의 불이 떨어져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흙을 삼켰고, 도랑에 있는 물까지 핥아 버렸다.열왕기상 18:38 · 본디새김

바알의 예언자들이 오랫동안 부르짖었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자 불이 내려왔습니다. 이 장면은 여호와야훼의 권능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분이 실제로 말씀하시고 들으시며 행동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침묵이 고백으로 바뀌다

온 백성이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했다. 「여호와야훼가 하나님이다. 여호와야훼가 하나님이다.」열왕기상 18:39 · 본디새김

이 고백은 21절과 정면으로 대응합니다. 처음에 엘리야가 여호와야훼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고 말했을 때 백성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백성의 침묵을 고백으로 바꾼 것입니다.

공개적인 고백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고백이 모두의 영구적인 변화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열왕기서는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가 계속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들을 붙잡으라고 명령합니다.

조금 더 깊이

37절에서 핵심은 「마음을 뒤로 돌리셨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여호와야훼께서 백성의 마음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리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갈멜산의 목적이 백성을 여호와야훼께 돌아오게 하는 데 있다고 보면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반면 백성의 마음이 이전에 등을 돌리게 된 일과 하나님의 주권을 연결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문장에 완료형이 사용되었다는 점 때문에,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행동을 가리키는지, 이 기도에 응답하실 때 그 의미가 드러나는지를 두고도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기손 시내: 승리의 환호 뒤에 이어지는 폭력

열왕기상 18:40 본문 →

엘리야가 그들에게 말했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붙잡으십시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들이 예언자들을 붙잡자, 엘리야는 그들을 기손 시내로 데리고 내려가 거기서 도살했다.열왕기상 18:40 · 본디새김

신명기 13:1–5는 다른 신들을 따르도록 백성을 유혹하는 예언자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의 언약 질서 안에서 다른 신을 따르도록 공동체를 이끄는 일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떠나게 하는 중대한 배신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더욱이 열왕기상 18장의 바알 예언자들은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들이 살해되고 숨어 지내야 했던 상황 속에서 왕실의 지원을 받은 집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과 이 장면의 모든 폭력을 무비판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나 이 절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엘리야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직접 명령하셨다는 별도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포로가 된 사람들 각각의 행위에 대한 재판 절차를 상세히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모든 시대에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폭력으로 제거하라는 보편적인 명령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기손 시내에서 일어난 일은 갈멜산 대결이 단순히 흥미로운 기적의 경쟁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충성, 왕실의 권력, 예언자들의 생사가 걸린 충돌이었습니다.

이 충돌의 결과는 무겁습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장면이 지나간 뒤, 이야기의 시선이 다시 하늘로 향합니다.

이제 처음에 약속된 비가 내릴 차례입니다.

사람의 손바닥만 한 구름: 불에서 비로

열왕기상 18:41–46 본문 →

비가 내리기 전에 들린 소리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했다. 「올라가서 먹고 마시십시오.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립니다.」열왕기상 18:41 · 본디새김

그런데 43절에서 엘리야의 시종이 바다 쪽을 바라보았을 때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먼저 비를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그 말씀을 받은 사람으로서 비의 도래를 알립니다.

왕은 먹고 마시고, 엘리야는 몸을 굽히다

42절에서 두 사람의 행동이 나뉩니다.

아합은 먹고 마시려고 올라갑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 땅을 향해 몸을 굽히고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넣습니다. 본문은 이 자세를 취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앞뒤 문맥에서 엘리야가 비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17–18도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했고 다시 기도하자 비가 내렸다고 회고합니다. 이것은 열왕기상 17–18장의 사건에 대한 신약의 직접적인 연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기다림이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 돌아간 시종

엘리야는 시종에게 바다 쪽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시종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엘리야는 다시 가 보라고 합니다. 이 일이 일곱 번 반복됩니다.

엘리야는 한 번 보고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기다림을 끝내지 않습니다. 시종은 다시 올라가고, 다시 살핍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에 처음으로 변화가 나타납니다.

일곱 번째에 시종이 말했다. 「보십시오. 사람의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 올라옵니다.」 엘리야가 말했다. 「올라가 아합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비가 당신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병거에 말을 매고 내려가십시오.』」열왕기상 18:44 · 본디새김

이것은 제단을 삼킨 불처럼 압도적인 광경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그 작은 구름을 심각한 비의 징후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잠시 뒤 하늘은 구름으로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며 큰비가 내립니다.

아합의 병거 앞에서 달리는 엘리야

마지막 절은 뜻밖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여호와야훼의 손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그는 허리를 동여매고 이스르엘 어귀까지 아합 앞에서 달렸다.열왕기상 18:46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의 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강력한 작용이 사람에게 임한 상황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이 절에서도 엘리야가 자신의 보통 능력만으로 달리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특별한 능력을 받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릿 시냇가와 사르밧에서 숨고 머물던 엘리야가 이제는 왕의 병거 앞에서 공개적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은 여전히 여호와야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엘리야가 실제로 빗소리를 먼저 들었는지, 비가 올 것을 확신하는 예언적 표현을 사용한 것인지는 본문이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엘리야가 아합 앞에서 달렸는지 그 구체적인 목적은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왕을 인도하는 행렬처럼 이해할 수도 있고, 왕과 함께 이스르엘로 이동하는 특별한 장면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합과 엘리야의 관계가 이 한 장면으로 완전히 화해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갈멜산의 불을 본 뒤 아합이 어떻게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이 장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맺음말 — 작은 구름에서 시작된 큰비

열왕기상 18:1–46 본문 →

갈멜산의 불은 여호와야훼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회복은 갈멜산의 결과를 보고 나서야 하나님께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미 비를 내리겠다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믿음이 강한 사람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기적을 경험한다는 약속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언약 위기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입니다. 오늘의 독자가 붙들어야 할 것은 자신도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을 내릴 수 있다는 기대가 아닙니다.

자신이 의지하는 대상이 무엇이며, 그 대상에게 자신의 삶을 맡길 만한 이유가 있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살피고, 그 약속을 자신의 욕망과 혼동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는 곳은 불타는 제단이 아닙니다.

갈멜산 꼭대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한 시종의 눈앞입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아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에 작은 구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 작은 구름을 보고 엘리야는 왕에게 서둘러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더니 큰비가 쏟아졌습니다.

처음에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이 마침내 땅 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랫동안 메말랐던 땅 위로, 여호와야훼께서 약속하신 비가 마침내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