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왕이 된 솔로몬

지혜로운 왕은 무엇을 듣는가

열왕기상 3장은 이집트 왕의 딸로 시작하여 이름 없는 두 여자로 끝납니다.

처음 등장하는 여자는 강대국의 공주입니다. 솔로몬은 그와 혼인하여 이집트 왕실과 관계를 맺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매춘부입니다. 그들에게는 왕실과 연결되는 신분도,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줄 증인도 없습니다.

그 사이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받은 지혜는 어디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납니까? 외교 관계를 맺는 능력에서입니까, 거대한 제사를 드리는 경건함에서입니까, 아니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뛰어난 지성에서입니까?

본문은 왕이 두 여자의 말을 듣고 살아 있는 아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장면을 통해 대답합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73장 본문 읽기 →

여호와야훼를 사랑하는 왕에게 붙은 두 번의 「다만」

열왕기상 3:1–4 본문 →

솔로몬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첫 장면은 예배가 아니라 결혼입니다.

솔로몬은 이집트 왕 파라오와 혼인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다. 그는 파라오의 딸을 아내로 맞아 다윗 성으로 데려왔고, 자기 집과 여호와야훼의 집과 예루살렘 둘레의 성벽을 다 지을 때까지 그곳에 두었다.열왕기상 3:1 · 본디새김

고대 왕국들 사이에서 왕실의 혼인은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이집트 왕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는 것은 그의 왕국이 주변 강대국과 왕실 차원의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집트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립적인 이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백성이었고,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파라오의 딸과 혼인하여 정치적 관계를 맺습니다.

본문은 이 결혼 자체를 여기서 직접 정죄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결혼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신명기 17:16–17은 왕이 이집트와의 관계를 통해 말과 군사력을 늘리거나,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돌아서는 일을 경계합니다. 열왕기상 11:1–8에서는 파라오의 딸을 비롯한 외국 여자들과 맺은 관계가 솔로몬의 신앙적 실패를 설명하는 이야기 속에 다시 등장합니다. 다만 3장에서는 아직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없는 시대의 예배

이어지는 두 절에는 같은 의미의 제한 표현이 반복됩니다.

다만 백성은 산당들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때까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한 집이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열왕기상 3:2 · 본디새김
솔로몬은 여호와야훼를 사랑하여 자기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살았다. 다만 그도 산당들에서 제사를 지내며 제물을 태워 연기를 올렸다.열왕기상 3:3 · 본디새김

솔로몬은 여호와야훼를 사랑하고 다윗의 길을 따랐지만, 그의 예배는 아직 산당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에서 산당은 나중에 반복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여러 왕이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을 했다고 평가받으면서도 산당들을 없애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습니다(열왕기상 15:14; 22:43).

그러나 이 시점의 산당 예배를 모두 우상숭배라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자체가 아직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한 집이 지어지지 않았다는 사정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1:3–6에 따르면, 기브온에는 모세가 만든 회막과 브살렐이 만든 번제단이 있었습니다. 반면 언약궤는 이미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았습니다(사무엘하 6:17; 역대하 1:4).

그러나 예배 장소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성전이 건축되면서 달라질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신명기 12:5–14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실 장소를 선택하시고, 이스라엘이 그곳에서 예배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솔로몬의 시대는 그 변화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기입니다.

솔로몬의 사랑은 진실하게 묘사되지만, 그 사랑이 표현되는 모든 방식이 최종적인 기준에 도달했다고 선언되지는 않습니다.

천 마리의 제물 뒤에 찾아온 밤

솔로몬은 기브온으로 가서 번제물 천 마리를 바칩니다.

그 수는 왕실 차원의 제사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줍니다. 솔로몬은 천 마리의 제물을 바쳤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시는 이유는 제물을 많이 바쳤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히브리어 동사 형태는 한 번의 방문에서 제물을 바치는 행위로도, 그곳에서 거듭 바치던 행위로도 읽힐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소요 기간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왕

열왕기상 3:5–9 본문 →

하나님의 질문에는 제한이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브온에서 여호와야훼가 밤에 꿈속에서 솔로몬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이 말했다. 「청해 보아라.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열왕기상 3:5 · 본디새김

그런데 솔로몬은 자신의 필요를 곧바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말했다. 「당신의 종인 제 아버지 다윗이 신실함과 의로움과 당신을 향한 올곧은 마음으로 당신 앞에서 걸었으므로, 당신은 그에게 큰 호의를 베푸셨습니다. 당신은 그를 위해 이 큰 호의를 지켜 주시고, 오늘 이처럼 그의 왕좌에 앉아 있는 아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열왕기상 3:6 · 본디새김

솔로몬은 자신의 왕위가 아버지의 업적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시고 지켜 오신 호의의 결과라고 이해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아버지가 완전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집안에 베푸신 호의가 오늘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제 저의 하나님 여호와야훼, 당신께서 당신의 종을 제 아버지 다윗 대신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린아이여서 나가고 들어올 줄도 모릅니다.」열왕기상 3:7 · 본디새김

솔로몬이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부르는 말은 문자 그대로 그의 나이를 알려 주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왕으로서 자신의 미숙함을 나타내는 말로 읽는 것이 문맥에 더 적절합니다. 본문은 이 구절만으로 솔로몬의 정확한 나이를 확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나가고 들어오다’는 지도자가 백성 앞에서 활동하고 그들을 이끄는 일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입니다. 민수기 27:16–17에서 모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기도하면서, 백성 앞에 나가고 들어오며 그들을 이끌 사람을 요청합니다. 솔로몬의 말은 그 기도와 매우 가까운 맥락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자신에게 충분한 능력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왕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백성」이라는 표현

「당신의 종은 당신께서 선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습니다. 그 백성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큽니다.」열왕기상 3:8 · 본디새김

왕은 솔로몬이지만 백성을 선택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왕이 백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한다면, 통치의 중심에는 자신의 권위와 이익이 놓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이해한다면, 왕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3:16). 이제 솔로몬은 자신이 다스려야 할 백성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이루어져 백성이 많아졌지만, 그것은 왕에게 감당하기 벅찬 책임이 되기도 합니다.

약속의 성취가 곧 인간에게 쉬운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보다 먼저 구한 것, 듣는 마음

솔로몬은 마침내 자신의 요청을 말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하도록 당신의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 누가 당신의 이 감당하기 벅찬 백성을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열왕기상 3:9 · 본디새김

그러므로 ‘듣는 마음’은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판단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그는 지혜를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백성의 문제를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한다(⁨בִּין⁩)’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는 ‘선과 악 사이를 이해하다’라는 구조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선과 악은 단순한 도덕적 지식의 목록이 아닙니다. 재판 상황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려내는 분별의 대상입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모든 선과 악을 완벽하게 아는 신적인 전지성이 아닙니다. 서로 충돌하는 주장들 사이에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점에서 솔로몬의 기도는 신명기 17:18–20이 제시하는 왕의 모습과도 통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 위에 마음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백성 가운데서 맡겨진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왕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를 압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지혜 자체보다 지혜를 구한 이유였습니다

열왕기상 3:10–15 본문 →

솔로몬이 이것을 청한 일이 주의 눈에 좋았다.열왕기상 3:10 · 본디새김

하나님은 솔로몬이 지혜라는 고귀한 능력을 선택했다는 사실만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이것을 청하고, 너 자신을 위해 긴 수명을 청하지도 않고, 너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을 죽여 달라고 청하지도 않고, 너 자신을 위해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능력을 청했으므로,」열왕기상 3:11 · 본디새김

오래 살아야 통치할 수 있습니다. 재물이 있어야 왕국을 부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적대자를 제거해야 왕권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 장에서 솔로몬은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인물들을 제거하면서 나라를 굳게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솔로몬이 자신을 위해 원수들의 죽음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앞 장의 모든 처벌을 부정하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러한 직접적인 평가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은 왕이 자기 생존과 부와 권력을 넘어 백성을 위한 판단 능력을 구했다는 사실입니다.

주어진 선물과 조건부 약속

「보아라, 내가 네 말대로 했다. 보아라, 내가 네게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마음을 주었다. 너보다 앞서 너 같은 사람이 없었고, 네 뒤에도 너 같은 사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열왕기상 3:12 · 본디새김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구했고, 하나님은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가 구한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보여 주는 응답입니다.

그다음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와 영예까지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수명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네 아버지 다윗이 걸었던 것처럼 네가 내 길을 걸으며 내 규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네 수명을 늘려 주겠다.」열왕기상 3:14 · 본디새김

지혜와 부와 영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선언됩니다. 그러나 긴 수명은 하나님의 길을 걷고 그 명령을 지킨다는 조건과 연결됩니다.

그가 지혜로운 마음을 받았다는 사실과, 앞으로 그 지혜를 따라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책임은 구별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솔로몬의 모든 미래 행동을 자동으로 올바르게 만든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후 열왕기상 11장은 솔로몬의 마음이 다른 신들에게 돌아섰다고 기록합니다(열왕기상 11:4–6).

꿈에서 깨어난 뒤 어디로 갑니까?

솔로몬이 잠에서 깨어 보니 꿈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주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를 바치고 화목제를 드렸다. 또 자기의 모든 신하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열왕기상 3:15 · 본디새김

기브온과 예루살렘이라는 두 장소의 이동이 뚜렷합니다. 이 행동을 기브온의 제사가 잘못이었다는 자각이나 회개의 표시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말씀에 대한 솔로몬의 응답이 예루살렘의 언약궤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적인 꿈에서 받은 선물이 공동체의 예배와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선물을 받기 전에도 제사를 드렸고, 선물을 받은 뒤에도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두 번째 장면에서는 신하들과 함께 나누는 기쁨까지 기록됩니다.

이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장소로 옮겨 갑니다.

증인이 없는 집에서 일어난 일

열왕기상 3:16–22 본문 →

그때 매춘부인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섰다.열왕기상 3:16 · 본디새김

앞 장들에서 왕을 둘러싼 사람들은 대체로 왕자와 제사장, 예언자와 군대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남편도 소개되지 않습니다. 왕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운 유력한 인물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 앞에 서서 직접 자신의 문제를 말합니다.

그는 파라오의 딸과 혼인할 만큼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재판해야 할 백성에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처지의 여자들도 포함됩니다.

본문이 그들의 직업을 밝힌 이유를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매춘부라는 사실이 그들의 증언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야기는 두 사람의 말을 매우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모든 사실이 한 사람의 주장으로만 전해집니다

먼저 말한 여자는 자신과 다른 여자가 한집에서 함께 살았다고 설명합니다. 두 사람은 사흘 간격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다른 여자의 아이가 죽었는데, 그 여자가 죽은 아이와 자신의 살아 있는 아이를 바꿔 놓았다고 주장합니다.

「이 여자의 아들이 밤에 죽었습니다. 이 여자가 그 위에 누웠기 때문입니다.」열왕기상 3:19 · 본디새김

본문의 서술자가 실제로 그 여자가 아이를 눌러 죽였다고 확인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처음 말한 여자 자신도 그 일이 벌어질 때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다른 여자가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관한 설명에는 직접 목격하지 못한 일을 추론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제 아들에게 젖을 먹이려고 일어나 보니 아이가 죽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그 아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제가 낳은 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열왕기상 3:21 · 본디새김

그녀에게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알아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관에게는 그 확신만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여자가 그 말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여자가 말했다. 「아니야. 살아 있는 아이가 내 아들이고, 죽은 아이가 네 아들이야.」 그러자 처음 말한 여자가 말했다. 「아니야. 죽은 아이가 네 아들이고, 살아 있는 아이가 내 아들이야.」 두 여자는 왕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열왕기상 3:22 · 본디새김

두 사람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만, 왕에게는 어느 쪽의 주장이 거짓인지 가려낼 증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이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는 말을 강조합니까?

「제가 아이를 낳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이 여자도 아이를 낳았습니다. 저희는 함께 있었고, 집에는 저희 말고 다른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에는 저희 둘뿐이었습니다.」열왕기상 3:18 · 본디새김

사건 당시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는 진술이 사실이라면, 두 여자의 말을 확인해 줄 독립적인 목격자가 없습니다. 죽은 아이와 살아 있는 아이는 모두 갓난아기입니다. 그들이 어떤 말을 하거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명기 19:15는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사건을 확정하지 않고 둘 이상의 증언을 요구하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각자 상반된 주장을 하는 두 사람만 있습니다. 그들은 같은 사건에 대한 공동의 증인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당사자들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언제나 진실을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충분히 들어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가 남습니다.

솔로몬은 이제 두 사람의 말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칼을 가져오라는 명령 — 지혜는 어떻게 진실을 드러내는가?

열왕기상 3:23–27 본문 →

솔로몬은 먼저 두 여자의 주장을 정리합니다.

왕이 말했다. 「이 여자는 『이 살아 있는 아이가 내 아들이고, 죽은 아이가 네 아들이야.』 하고, 저 여자는 『아니야. 죽은 아이가 네 아들이고, 살아 있는 아이가 내 아들이야.』 하는구나.」열왕기상 3:23 · 본디새김

왕은 한쪽의 말을 듣고 즉시 판결하지 않습니다. 그는 두 사람의 주장을 나란히 놓고 정확히 무엇이 다투어지고 있는지 밝힙니다. 차이는 아이에 대한 권리 주장에 있지만, 두 사람이 사용하는 문장만으로는 진실을 가릴 수 없습니다.

그다음 솔로몬은 칼을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왕이 말했다.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잘라라. 반은 한 여자에게 주고, 반은 다른 여자에게 주어라.」열왕기상 3:25 · 본디새김

외형적으로는 공평한 분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쟁의 대상인 생명을 파괴하는 결정입니다. 두 사람이 모두 아이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아이를 소유하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 보려는 것입니다.

왕 앞에 실제로 칼이 가져와졌습니다. 왕의 말에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이 실려 있습니다. 그 위협이 믿을 만하게 들리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반응도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여자는 아이를 포기하고, 다른 여자는 아이를 죽이려 한다

두 여자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갈라집니다.

살아 있는 아들을 둔 여자는 자기 아들을 향한 연민이 뜨겁게 솟구쳐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의 주 임금님, 간청합니다. 살아 있는 아기를 그 여자에게 주십시오. 절대로 죽이지 마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자는 말했다. 「내 것도 네 것도 되지 못할 거야. 자르십시오.」열왕기상 3:26 · 본디새김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독자는 어느 여자가 살아 있는 아이의 어머니인지 서술자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됩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자 그 주장을 계속 밀고 나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보다 아이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권리보다 아이의 생명을 앞세우고, 다른 사람은 아이의 생명보다 자신의 주장을 앞세웁니다.

「연민이 뜨겁게 솟구쳐」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순간 깊은 연민이 솟구쳐, 그녀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연민이 실제 행동을 바꾸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가 진실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말은 ‘이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라는 주장만이 아닙니다. ‘그 여자에게 주십시오. 절대로 죽이지 마십시오’라는 간청입니다.

솔로몬은 두 여자의 감정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만이 아닙니다. 그 감정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분별했습니다.

솔로몬의 마지막 명령은 첫 명령을 뒤집는다

왕이 대답했다. 「그 여자에게 살아 있는 아기를 주어라. 절대로 죽이지 마라. 그 여자가 그 아이의 어머니다.」열왕기상 3:27 · 본디새김

칼이 등장한 이유는 결국 칼이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두 주장을 듣고, 그 주장들이 같은 무게로 충돌하는 상황을 확인한 뒤, 새로운 반응을 이끌어 내어 판단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모든 진실을 설명 없이 즉각적으로 아는 초능력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고, 인간의 행동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분별하여 결정을 내리는 능력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모든 재판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절차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별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한 재판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위협을 이용한 심문이 언제나 진실을 보장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물론 현실의 모든 사건에서 누가 더 희생적인 행동을 하는지만으로 친자 관계나 법적 권리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에서 공의로운 재판은 특별히 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신명기 10:18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해 공의를 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16:18–20은 재판관들이 백성을 공정하게 재판해야 하며 정의를 따라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열왕기상 3장은 이러한 원칙을 설명하는 법조문은 아니지만, 이름 없는 두 여자의 분쟁을 왕이 직접 판단하는 이야기로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따라서 26절에서 진짜 어머니가 드러났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 여자가 앞에서 먼저 말했던 사람인지, 나중에 말했던 사람인지는 히브리어 본문만으로 분명하게 고정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한 순서가 아니라, 이제 두 여자의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본 것은 무엇인가?

열왕기상 3:28 본문 →

재판이 끝나자 이야기는 두 여자에게서 온 이스라엘로 시선을 넓힙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이 내린 판결을 듣고 왕을 두려워했다. 그가 재판을 행하도록 하나님의 지혜가 그 안에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열왕기상 3:28 · 본디새김

꿈에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현실의 판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기서 백성의 반응은 왕의 뛰어난 지혜에 대한 경외와, 그의 판단이 지닌 권위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왕에게는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이 있습니다. 권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권력을 사용하는 왕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아는 것입니다.

왕에게 있던 권력과 하나님께 받은 지혜

앞 장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나라는 솔로몬의 손안에서 굳게 섰다.」 (열왕기상 2:46)

그런데 이번 장의 마지막 문장은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의 안에 있음을 백성이 보았다고 말합니다.

왕국을 손에 넣는 것과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솔로몬은 이미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문제였습니다.

지혜를 받은 사람은 솔로몬이지만, 그 지혜를 통해 생명을 보호받은 사람은 힘없는 여자와 갓난아기입니다. 왕의 지혜가 참으로 백성을 위한 것이라면, 그 지혜의 가치는 왕이 얼마나 위대해지는가보다 그가 다스리는 사람들이 어떤 보호를 받는가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끝맺음 — 칼 앞에서 살아남은 아이

열왕기상 3:1–28 본문 →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지혜는 왕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왕 앞에 선 작은 생명이 살아남도록 하는 판단으로 드러났습니다.

왕의 명령으로 칼이 왕 앞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명령은 그 칼로 아이를 죽이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죽이지 마라.」

열왕기상 3장은 하나님의 지혜가 왕 안에 있음을 보여 주는 바로 그 말로 재판을 마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