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왕이 된 솔로몬
왕의 식탁과 백성의 기쁨
열왕기상 4장에는 눈에 띄는 사건이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 죽을 위기에 놓이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왕이 놀라운 판결을 내리는 장면도 없습니다. 대신 고관들의 이름과 직책이 이어지고, 지방관들이 다스리는 지역이 길게 열거됩니다.
솔로몬이 지혜롭다는 것은 한 번의 재판에서 뛰어난 판단을 내렸다는 뜻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수많은 사람을 다스리고, 군대를 유지하고, 왕궁을 운영하고, 넓은 영토에서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올바르게 재판하는 일과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다른 차원의 지혜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명단을 자세히 읽으면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왜 열두 지방관이 각자 한 달씩 왕실의 양식을 책임져야 했을까요? 왜 어떤 지방관들은 이름 대신 아버지의 이름으로만 소개될까요? 왜 고관들 가운데 강제 노역을 감독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열두 행정 구역의 명단에는 왜 유다가 분명하게 등장하지 않을까요? 이 장은 왕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행정 조직을 길게 설명한 뒤, 백성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다는 말로 끝납니다.
왕의 식탁과 백성의 식탁, 바로 그 두 식탁 사이에서 열왕기상 4장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것
본문은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솔로몬 왕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었다.열왕기상 4:1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앞선 왕위 계승 이야기를 짧게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주제로 들어갑니다. 솔로몬은 이제 왕좌를 차지하려는 경쟁자들과 다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곧바로 그의 명령이나 업적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기록합니다. 제사장, 서기관, 기록관, 군대 지휘관, 지방관 감독관, 왕의 벗, 왕궁 살림 담당자, 강제 노역 감독관이 등장합니다.
왕의 권한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나라의 실제 운영은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맡겨져 있습니다. 이 명단은 왕국이 개인적인 충성 관계만으로 움직이는 단계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직무와 행정 조직을 갖춘 나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왕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시사의 아들들인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입니다.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기록관입니다. 이들은 왕국의 문서와 기록을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사밧은 이미 다윗 시대에 기록관으로 등장했던 인물입니다(사무엘하 8:16; 20:24). 이 사실은 솔로몬의 통치가 다윗 시대의 모든 조직을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군대 지휘관으로 등장하는 브나야도 앞 장과 연결됩니다. 그는 요압을 대신해 군대 지휘관이 되었습니다(열왕기상 2:35). 왕위 계승 과정에서 이루어진 인사 변화가 이제 공식적인 통치 조직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반면 제사장 명단에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대를 지휘했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었다.열왕기상 4:4 · 본디새김
아비아달은 앞 장에서 솔로몬에게 쫓겨나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열왕기상 2:26–27, 35). 그런데 왜 여기에 다시 등장하는가요?
이 명단이 솔로몬 통치의 한 시점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기에 활동했던 고관들을 함께 반영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아비아달이 실제 직무에서 배제된 뒤에도 제사장이라는 신분이나 칭호로 기억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어느 설명이 옳은지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아비아달이 복직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왕의 고관 명단이 반드시 어느 한 날짜에 재직하고 있던 사람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단일한 인사 명부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왕에게 가까운 사람들과 왕국의 조직
5절에는 나단의 아들 아사랴와 사붓이 등장합니다. 아사랴는 지방관들을 감독하고, 사붓은 제사장이자 왕의 벗으로 소개됩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아버지 나단이 예언자 나단인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인지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에게도 나단이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5:14).
‘왕의 벗’이라는 표현도 단순한 사적인 친구 관계만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왕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신임을 받는 궁정 내 지위나 역할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직무의 구체적인 권한까지 본문에서 알 수는 없습니다.
솔로몬의 통치는 왕궁 안의 관계와 왕국 전역의 행정 조직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 조직의 또 다른 면이 드러납니다.
아히살은 왕궁 살림을 맡았고,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을 감독했다.열왕기상 4:6 · 본디새김
솔로몬의 왕국은 서기관과 제사장과 군대 지휘관만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왕실과 국가가 추진하는 일을 위해 사람들의 노동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체계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국의 성장에 필요한 조직이면서 동시에 백성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권력이기도 합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정의 위험을 경고할 때, 왕이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와 군대에서 일하게 하고 여러 노동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사무엘상 8:11–18). 그 경고가 이 구절에서 모두 실현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왕국의 조직이 확대될수록 왕의 필요를 위해 백성의 노동과 생산물을 동원할 수 있는 힘도 커진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솔로몬의 통치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성취이면서, 그 힘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낳습니다.
열두 지방관은 왜 한 달씩 왕실을 책임졌는가?
솔로몬에게는 온 이스라엘을 관할하는 열두 지방관이 있어 왕과 왕의 집안에 양식을 공급했다. 각 사람이 해마다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았다.열왕기상 4:7 · 본디새김
각 지역이 언제 얼마만큼의 물자를 제공해야 하는지 정해 두면, 왕실은 지속적으로 필요한 공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왕국을 운영하는 방식이 이전보다 체계화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왕은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먹을 수 있습니다. 군대 지휘관과 서기관과 제사장들도 각자 맡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식량과 물자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왕실의 안정은 지방의 생산 활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왕의 식탁을 채우는 사람들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은 「왕과 왕의 집안」입니다. 왕의 집안은 단순히 솔로몬 개인과 그의 아내들만을 가리키는 말로 제한하기 어렵습니다. 궁정 전체와 그곳에 속한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문제와 관련됩니다.
왕실은 지방에서 생산한 물자를 공급받습니다. 지방은 왕국의 행정과 군사적 질서 안에 속합니다. 중앙의 통치 조직과 지방의 생산 활동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공동 기능을 유지하려면 일정한 물자와 노동이 필요합니다. 지방에서 왕실을 공급한다는 사실 자체가 곧 불의한 제도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열두 지역이 부담을 나누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부담이 공정하고 가벼웠다고 결론 내려서도 안 됩니다. 한 달씩 맡는다는 것이 모든 지역이 생산량이나 인구에 비례하여 동등한 부담을 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각 지역의 생산력이나 실제 공급량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이 제도가 얼마나 질서 있게 설계되었는가와, 그 질서가 백성에게 얼마나 공정하게 작용했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조직은 어떤 방식으로 이스라엘 전역을 연결하고 있었을까요?
지명 목록이 보여 주는 새로운 나라의 지도
8절부터 19절까지는 지방관들과 그 관할 지역이 이어집니다.
열두 지방관이 곧 열두 지파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열둘이라는 숫자는 자연스럽게 열두 지파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열두 지방관이 맡은 구역은 열두 지파의 영토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역은 지파의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에브라임 산지, 납달리, 아셀, 잇사갈, 베냐민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성읍들과 그 주변의 땅으로 설명됩니다. 마가스와 사알빔, 벧세메스, 아룹봇, 도르 고지대, 다아낙과 므깃도, 벧스안 등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거쳐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은 백성입니다(여호수아 13–21장). 그런데 이제 왕국은 여러 지파와 지역을 하나의 중앙 행정 조직 안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파별 땅 분배가 백성의 소속과 상속을 보여 주었다면, 여기서의 지역 구분은 왕국의 운영과 물자 공급을 위한 행정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다만 이 구역들이 정확히 어떤 원칙에 따라 설정되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인구와 생산량을 균등하게 나누기 위해서였는지, 기존의 지역적 경계를 활용한 것인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조정한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왕국의 필요에 맞춰 지역들이 행정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명단이 예루살렘 밖으로 시선을 넓힌다
이 목록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이스라엘의 여러 지형을 가로지릅니다. 에브라임 산지는 중앙 산악 지역과 연결됩니다. 도르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다아낙과 므깃도, 벧스안은 이스르엘 평야와 그 주변 지역의 중요한 성읍들입니다.
특히 므깃도와 다아낙은 주요 이동 경로와 연결되는 위치에 있었고, 벧스안은 이스르엘 지역에서 요단 계곡 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지역들의 이름이 지방관 명단에 등장한다는 것은 왕국의 행정망이 단순히 예루살렘 주변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요단강 동쪽에서도 같은 일이 나타납니다.
게벨의 아들은 라못길르앗을 맡았다.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마을들이 그의 관할이었고, 바산에 있는 아르곱 지역도 그의 관할이었다. 그곳에는 성벽과 청동 빗장을 갖춘 큰 성읍 예순 개가 있었다.열왕기상 4:13 · 본디새김
왜 다른 지역에서는 성읍의 이름만 열거하면서 여기에서는 성벽과 빗장까지 언급할까요? 그 지역에 견고한 성읍들이 여럿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이 묘사는 민수기 32:41과 신명기 3:4–5를 떠올리게 합니다. 바산의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요단강 동쪽에서 차지한 땅의 일부로 기억되었습니다. 열왕기상 4장은 그 땅이 이제 솔로몬 왕국의 행정적 질서 안에 들어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약속의 땅을 얻는 이야기에서, 이미 얻은 땅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는 이야기로 중심이 옮겨 왔습니다.
왜 어떤 지방관은 자기 이름이 없는가?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훌의 아들은 에브라임 산지를 맡았다.열왕기상 4:8 · 본디새김
데겔의 아들은 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을 맡았다.열왕기상 4:9 · 본디새김
헤셋의 아들은 아룹봇을 맡았다. 소고와 헤벨 땅 전체도 그의 관할이었다.열왕기상 4:10 · 본디새김
이들은 각자의 개인 이름 대신 누구의 아들이라는 형태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왜 어떤 인물들은 부칭으로만 기록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당시에 사용하던 일상적인 호칭이었는지, 명단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개인 이름이 생략되었는지, 특정 가문과의 연결이 중요했기 때문인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모든 지방관의 개인적 삶을 알려 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맡은 자리와 관할 지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 왕국과 맺는 관계는 모두 같지 않았습니다.
왕의 딸들이 등장하는 이유
긴 지방관 명단 사이에는 눈에 띄는 가족 관계가 두 번 등장합니다.
아비나답의 아들은 도르 고지대 전역을 맡았다. 솔로몬의 딸 다밧이 그의 아내였다.열왕기상 4:11 · 본디새김
아히마아스는 납달리를 맡았다. 그도 솔로몬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았다.열왕기상 4:15 · 본디새김
어느 지역을 맡았는가 하는 설명은 행정적인 정보입니다. 그러나 누구의 딸과 혼인했는가 하는 설명은 그 사람이 왕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왕은 행정적 명령으로 사람들을 조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족 관계는 그보다 더 지속적이고 개인적인 연결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혼인들이 지방관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혼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혼인의 동기나 시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왕국에 안정성을 줄 수 있는 요소입니다. 동시에 왕의 가족과 가까운 관계가 국가의 중요한 직책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왕권과 행정 조직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혼자 통치하지 않습니다.
그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직무와 가족 관계, 지역적 권한이 맞물려 있습니다. 따라서 왕이 어떤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에 두고, 그들에게 어떤 책임을 맡기는가는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열두 지방관의 명단에 유다가 보이지 않는 이유
이 명단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제 중 하나는 유다입니다.
4장 1절은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말합니다. 4장 7절도 열두 지방관이 온 이스라엘을 관할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열두 지방관의 지역을 하나씩 읽어 보면 유다가 명확한 행정 구역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왕실의 양식 공급 의무에서 제외되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19절의 마지막 문장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우리라는 사람의 아들 게벨은 길르앗 땅, 곧 아모리 사람들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땅을 맡았다. 그 땅을 맡은 지방관은 그 한 사람이었다.열왕기상 4:19 · 본디새김
히브리어 원문의 마지막 구절은 우느치브 에하드 아셰르 바아레츠입니다. 직역하면 ‘그리고 그 땅에 있는 한 지방관’이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문제는 ‘그 땅’이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바로 앞에서 언급된 길르앗 일대를 가리킬 수도 있고, 다른 범위의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 읽기는 이 표현을 유다 지역의 별도 행정과 연결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문장 자체에 ‘유다’라는 지명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절을 근거로 유다에 특별한 지방관이 있었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명단에 유다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유다가 왕실의 물자 공급에서 완전히 면제되었다고 결론 내려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는 해석이지만, 본문이 직접 말하는 사실은 아닙니다.
열왕기상 4장은 왕국의 통일과 질서를 보여 주면서도 그 질서가 각 지역에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질문을 남겨 둡니다.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진 백성
긴 명단이 끝나고 나면 서술자의 시선은 갑자기 넓어집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그 수가 많았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다.열왕기상 4:20 · 본디새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떠오르는 장면
‘바닷가의 모래’라는 표현은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22:17). 야곱 역시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기억하며 기도했습니다(창세기 32:12).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처음에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긴 기다림이 필요했고, 그의 후손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했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서술자는 그 후손들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인구 통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셨던 약속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물론 이 말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약속이 이 시점에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왕국의 번영은 솔로몬이 뛰어난 행정 조직을 세웠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셨던 약속의 역사 안에 놓여 있습니다.
백성은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다
먹을 것이 있고, 마실 것이 있으며,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왕실의 식탁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백성 역시 삶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서술자가 제시하는 왕국의 모습입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번영의 주인공은 왕이 아니라 백성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왕을 위해 노동하고 왕실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스스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삶의 주체들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의 문장이 모든 문제를 없애지는 않는다
20절은 백성의 번영을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실제로는 모두 고통받고 있었는데 서술자가 거짓으로 행복하다고 기록한 것이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동시에 이 한 문장으로 모든 백성이 차별 없이 똑같은 풍요를 누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지역별 생활 수준이나 노동 조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까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즐거워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솔로몬 시대의 번영에 대한 서술자의 전체적인 묘사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 번영이 이후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지속되었는지는 열왕기의 다음 이야기들이 보여 줄 것입니다.
명단 속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책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것은 단순히 한 지배자에게서 다른 지배자에게로 옮겨 가기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땅을 주시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려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백성이 땅에서 번성하고 먹고 마시며 기뻐하는 것은 출애굽 이후 이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번성을 약속하셨다고 해서 왕이 어떤 행정 조직을 만들든 그것이 모두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지, 백성을 마음대로 소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3장에서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당신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라고 부르며 그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할 능력을 구했습니다. 4장에서는 바로 그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실제 조직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위대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렇다면 행정 조직의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그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는 ‘온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표현 대신 ‘유다와 이스라엘’이라는 두 이름이 함께 나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통일 왕국 안에서도 유다와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을 구별하여 부를 수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사무엘서에서도 유다와 이스라엘이 구별되어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사무엘하 19:41–43). 따라서 이 표현이 곧 이미 나라가 둘로 나뉘어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훗날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 시대에 왕국은 실제로 분열됩니다. 그때 북쪽 지파들은 솔로몬 시대에 부과되었던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열왕기상 12:4). 그렇다고 이 장의 행정 구역 구분이 훗날의 분열을 직접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12:7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먹고 자신들의 수고에 대해 기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14:26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물론 열왕기상 4:20은 성소에서 열리는 제사 잔치를 직접 묘사하는 문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이 평안과 풍요를 누리는 모습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끝맺음 — 이름들은 사라지고, 백성의 기쁨이 남는다
왕궁의 관점에서 나라를 바라보면, 지방관들은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 양식을 공급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의 관점에서 나라를 바라보면, 그 지방에는 실제로 살아가며 먹고 마시고 기뻐하는 수많은 백성이 있습니다. 왕국의 질서는 왕의 집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번영은 왕의 집안보다 훨씬 넓은 백성의 삶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긴 목록이 끝나면 서술자는 더 이상 고관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백성이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전투의 승리도 없고, 왕의 명령을 찬양하는 환호도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왕국의 행정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에 관한 긴 설명 끝에, 서술자는 그 왕국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