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8–15장 · 첫 왕이 된 사울
짐들 사이에 숨은 왕
사무엘상 10장에는 이상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까지 바꾸십니다.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택이 확인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여호와야훼께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보아라, 그가 짐들 사이에 숨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장은 사울이 왕이 되었다는 사실만 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왕으로 세우실 때 무엇을 주시며, 그 선택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선택하셨다는 사실과 사울이 어떤 왕이 될 것인가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왕의 머리에 기름을 붓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
「여호와야훼께서 자네에게 기름을 부어」
앞 장의 마지막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멈춰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말씀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그에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네에게 기름을 부어 그분의 소유를 다스릴 지도자로 세우신 것이 아닌가?」사무엘상 10:1 · 본디새김
사무엘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기름을 붓지 않습니다. 이 장면에는 사무엘과 사울만 등장합니다. 공개적인 왕위 선포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름 부음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기름을 붓는 행위는 특별한 직무를 위해 사람이나 물건을 구별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29:7에서는 아론이 제사장으로 세워질 때 기름을 붓고, 사무엘상 16:13에서는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입을 맞추는 행동도 그를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표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름을 붓는 사람은 분명 사무엘입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자네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네에게 기름을 부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행동의 주체는 사무엘이지만, 그를 지도자로 세우시는 궁극적인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사무엘은 그 선택을 전달하고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왕이 다스릴 백성은 누구의 소유인가
사무엘은 사울이 다스리게 될 이스라엘을 특별한 말로 부릅니다. 「그분의 소유」
보통 구약에서 ‘상속 재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반대로 이스라엘 자체가 여호와야훼의 소유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신명기 32:9에도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여호와야훼의 상속 몫으로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은 사울에게 주어진 사유 재산이 아닙니다. 사울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더라도 백성의 궁극적인 주인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울에게 주어진 것은 백성을 소유할 권리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을 다스릴 책임입니다.
하지만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사울 자신이 그 의미를 모두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은 곧이어 사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경험하게 될 일들을 자세히 알려 줍니다.
세 가지 표징이 사울에게 보여 주는 것
첫 번째 표징 — 찾던 것은 이미 발견되었다
사무엘은 사울이 돌아가는 길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자네가 나를 떠나가면, 베냐민 경계의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무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이네. 그들이 자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네. 『자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은 발견되었네. 그런데 자네 아버지께서는 암나귀 일은 그만 생각하시고, 자네들을 걱정하고 계시네. 자신의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말씀하시네.』」사무엘상 10:2 · 본디새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울도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입니다. 새로운 지위를 얻었다고 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앞 장에서 암나귀를 찾는 일은 사울을 사무엘에게 데려왔습니다. 이제 그 일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은 사무엘의 말을 신뢰할 근거가 됩니다.
두 번째 표징 —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다
사무엘은 사울이 다볼의 테레빈나무에 이르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새끼 염소 세 마리, 빵 세 덩이,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네에게 안부를 묻고 빵 두 덩이를 줄 것이니, 그들의 손에서 받게.」사무엘상 10:4 · 본디새김
이 대목에서 사울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는 빵을 받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숫자들이 이 사건을 확인할 수 있는 표징으로 만들어 줍니다. 세 사람이 나타나고, 각각 정해진 물건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사울에게 빵 두 덩이를 준다면, 사울은 사무엘이 전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울이 빵을 요구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들은 사울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들이 가진 것 가운데 일부를 줍니다.
세 번째 표징 —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하다
세 번째 표징은 앞의 두 가지와 성격이 다릅니다.
처음 두 표징에서는 사울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소식을 듣거나 빵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표징에서는 사울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뒤에 자네는 하나님의 언덕에 이를 것이네.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초소들이 있네. 자네가 그 성읍에 들어서면 산당에서 내려오는 예언자 무리를 만날 것이네. 그들 앞에는 하프와 소고와 피리와 수금이 있고, 그들은 예언하고 있을 것이네.」사무엘상 10:5 · 본디새김
구약의 다른 본문에서도 음악과 예언 활동이 연결됩니다. 열왕기하 3:15에서는 악사가 연주할 때 여호와야훼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미 사울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9:16). 사울이 하나님의 영을 받게 될 장소에 블레셋의 세력이 있다는 사실은 그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사무엘이 예고한 첫 번째 행동은 블레셋과 싸우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자네에게 세차게 임하고, 자네도 그들과 함께 예언하며 다른 사람으로 바뀔 것이네.」사무엘상 10:6 · 본디새김
사울이 해야 할 일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하실 일이 나옵니다.
그에게 맡겨질 책임은 크지만, 그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오직 사울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직무를 맡기실 뿐 아니라, 그 직무를 위해 자신의 영을 주십니다.
사사기 6:34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고, 그는 사람들을 소집합니다. 사사기 14:6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합니다. 이러한 본문들에서 하나님의 영은 특정한 사명을 수행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행동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영이 임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이후 모든 판단과 행동을 의롭게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드온과 삼손의 이야기만 보아도, 하나님께 능력을 받은 사람이 언제나 올바른 선택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러나 기다려라
사무엘은 표징들이 이루어진 뒤 사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알려 줍니다.
「이 표징들이 자네에게 일어나면, 자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나님께서 자네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네.」사무엘상 10:7 · 본디새김
‘자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라는 말은 행동의 여지를 넓게 열어 둡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주어진 상황에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다음 명령이 이어집니다.
「자네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게. 나도 번제물을 바치고 화목제물을 잡아 제사하려고 자네에게 내려가겠네. 내가 자네에게 갈 때까지 이레 동안 기다리게. 그러면 자네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겠네.」사무엘상 10:8 · 본디새김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사울은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사울에게 모든 일을 자기 판단대로 결정할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고, 말씀을 기다려야 할 때 기다려야 합니다.
왕의 자유와 왕의 순종이 함께 제시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예언자들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노래로 예언했는지, 어떤 특별한 심리 상태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음악과 예언이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황홀경이나 무아지경을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초소들’로 옮긴 표현은 블레셋의 주둔 세력이나 관리들을 가리킨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성격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이 장소를 블레셋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으로 묘사합니다. 사무엘상 13:8–14에서도 사울이 길갈에서 이레를 기다리다가 사무엘이 오기 전에 제사를 드리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두 본문은 장소와 기다리는 기간, 사무엘의 도착이라는 요소를 공유하므로 서로 연결하여 읽을 근거가 있습니다. 다만 10:8의 명령이 정확히 언제 실행될 상황을 가리키는지, 13장의 사건과 어떤 시간적 관계에 놓이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10장의 이야기에서 사울이 즉시 길갈로 내려가 이레를 기다렸다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셨지만, 사람들은 사울을 알아보지 못한다
등을 돌리는 순간, 마음이 바뀌다
사무엘의 말을 듣고 사울이 길을 떠납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떠나려고 등을 돌렸을 때,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다른 마음으로 바꾸었다. 그날 이 모든 표징이 일어났다.사무엘상 10:9 · 본디새김
사무엘은 6절에서 사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9절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다른 마음’으로 바꾸셨다고 합니다.
구약에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곳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며 뜻을 품는 사람의 내적 중심을 나타냅니다.
어제까지 사울은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변화 앞에서 그에게 필요한 내적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왕으로 선택된 사울의 새로운 출발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에서가 아니라, 그에게 먼저 일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예언하는 사울을 보고 놀란 사람들
사울이 언덕에 이르자 사무엘의 말대로 예언자 무리를 만납니다.
그들이 그 언덕에 이르자, 마침 예언자 무리가 사울과 마주하여 오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세차게 임했고, 그는 그들 가운데서 예언했다.사무엘상 10:10 · 본디새김
본문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사울이 어떤 내용을 예언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서술자의 관심은 예언의 내용보다 사울에게 일어난 변화에 있습니다.
전부터 사울을 알던 사람들이 모두 그가 예언자들과 함께 예언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이 서로 말했다.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사울도 예언자들 가운데 있나?」사무엘상 10:11 · 본디새김
사람들은 사울을 ‘기스의 아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는 익숙한 집안의 청년입니다. 사울에게 일어난 변화가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던 그의 모습과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곳의 한 사람이 대답했다. 「그럼 그들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그래서 「사울도 예언자들 가운데 있나?」라는 말이 속담이 되었다.사무엘상 10:12 · 본디새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울을 기준으로 그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사울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시고, 그에 따라 그의 마음을 바꾸십니다.
사울에게 일어난 변화의 근원은 그의 집안이나 과거의 명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들의 아버지’는 예언자 무리의 아버지를 가리킬 수도 있고, 그들을 이끄는 사람이나 그들의 영적 배경을 묻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사울이 기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예언자가 되는 일이 반드시 아버지의 신분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되묻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이런 의미가 됩니다. 사울이 기스의 아들이기 때문에 예언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맥만으로 어느 해석이 확실한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바뀐 마음을 가진 사람이 왕권에 대해서는 침묵하다
사울은 예언을 마치고 산당으로 갑니다. 그 뒤 삼촌이 사울과 종에게 어디에 다녀왔는지 묻습니다.
사울은 암나귀를 찾아다니다가 사무엘에게 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삼촌은 사무엘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히 알려 달라고 합니다.
사울이 삼촌에게 말했다. 「암나귀들이 발견되었다고 저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이 말한 왕권에 관한 일을 삼촌에게 알리지 않았다.사무엘상 10:16 · 본디새김
서술자는 사울이 무엇을 말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도 기록합니다. 사울에게 왕권에 관한 말씀이 주어졌지만, 아직 그 왕권은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서술자는 사울의 사적인 경험을 떠나 온 이스라엘이 모인 자리로 이동합니다.
이제 사울의 선택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왜 사울은 왕권에 관한 일을 숨겼을까요? 그가 두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공개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침묵을 겸손의 증거로 칭찬하거나, 사명을 거부하는 불순종으로 비판하는 것은 모두 성급합니다.
왕을 세우는 날, 구원의 역사를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
왜 하필 미스바인가
사무엘은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야훼 앞에 모았다.사무엘상 10:17 · 본디새김
사무엘상 7장에서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모여 죄를 고백하고 여호와야훼께 돌아섰습니다. 그곳에서 블레셋의 위협이 찾아왔을 때,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앞에서는 여호와야훼께 돌아오기 위해 모였고, 이제는 왕을 세우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그러한 장소에서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의식을 곧바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선포합니다.
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의 손과 너희를 억누르던 모든 왕국의 손에서 건져 냈다.』」사무엘상 10:18 · 본디새김
「그런데 여러분은 오늘 여러분의 모든 재앙과 고난에서 여러분을 구해 주시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께 『저희 위에 반드시 왕을 세워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지파별로, 천인대별로 여호와야훼 앞에 서십시오.」사무엘상 10:19 · 본디새김
18절은 이스라엘이 과거에 구원받은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19절은 하나님을 지금도 그들의 모든 재앙과 고난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지나간 역사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왕을 세워 주시면서도 거부를 거부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사울에게 기름을 붓도록 사무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사울의 마음도 바꾸셨고, 그에게 자신의 영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온 백성 앞에서는 왕을 요구한 일이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사울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태도에는 자신들을 구원해 오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시면서도, 그 요구를 받아 왕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선택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이 그 선택에 이르게 된 인간의 모든 동기까지 옳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왕을 얻더라도 자신들을 구원하신 분이 누구인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왕 역시 자신의 권력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선택된 사람을 찾을 수 없다
한 사람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선택
사무엘은 모든 지파를 여호와야훼 앞에 나오게 합니다.
그 결과 베냐민 지파가 뽑힙니다. 베냐민 지파 안에서는 마드리 씨족이 뽑히고, 마침내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힙니다.
독자는 이미 사울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무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은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이 과정은 독자에게 새로운 인물을 발견하는 사건이라기보다, 이미 사적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선택이 공동체 앞에서 확인되는 과정입니다.
이제 모든 시선이 사울에게 향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왕으로 뽑혔는데 어디에도 없다
그가 베냐민 지파를 씨족별로 가까이 나오게 하자 마드리 씨족이 뽑혔고,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다. 사람들이 그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사무엘상 10:21 · 본디새김
9장에서 사울은 암나귀들을 찾아 여러 지역을 다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사울을 찾지만 찾지 못합니다.
찾는 사람과 찾히지 않는 대상이 뒤바뀌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야훼에게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이 벌써 이곳에 와 있습니까?」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보아라, 그가 짐들 사이에 숨어 있다.」사무엘상 10:22 · 본디새김
백성은 왕이 될 사람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왕이 될 사람을 백성 앞에 드러내는 마지막 행동까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의존합니다.
가장 키 큰 사람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이 달려가 그를 거기서 데려왔다. 그가 백성 가운데 서자,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키가 더 컸다.사무엘상 10:23 · 본디새김
이 모습은 9:2에서 사울을 처음 소개할 때와 같은 표현입니다. 그때는 독자에게 사울의 외모를 설명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제는 백성 앞에 선 사울의 모습이 됩니다.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택하신 사람을 보았습니까? 온 백성 가운데 이 사람 같은 이는 없습니다.」 온 백성이 함성을 지르며 말했다. 「왕께서 오래 사시기를.」사무엘상 10:24 · 본디새김
본문은 사울의 키와 외모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울이 재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전쟁을 얼마나 잘 이끌 것인지, 여호와야훼께 얼마나 충실할 것인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왕이 된 사울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환호하는 순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외모입니다.
이 차이는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와 백성이 왕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앞으로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제비뽑기와 같은 방식으로 선택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0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도구나 절차를 사용했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왜 사울은 숨었을까요? 그가 두려웠다는 해석은 자연스럽습니다. 갑자기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릴 왕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앞서 사울은 자신의 지파와 씨족이 보잘것없다며 사무엘의 말을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사울의 내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의 숨음을 겸손이라고 칭찬하는 것도, 비겁함이라고 단죄하는 것도 본문이 직접 내리는 판단은 아닙니다.
왕을 세운 뒤에도 왕권을 말씀 아래에 두다
백성의 함성이 끝난 뒤 사무엘은 중요한 일을 합니다.
사무엘은 백성에게 왕정의 규례를 말하고, 그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여호와야훼 앞에 두었다. 그런 다음 사무엘은 온 백성을 저마다 집으로 돌려보냈다.사무엘상 10:25 · 본디새김
히브리어로 ‘왕정의 규례’는 미슈파트 함멜루카(מִשְׁפָּט)입니다. 8장에서 사무엘이 경고했던 ‘왕의 관행’은 미슈파트 함멜레크였습니다. 두 표현은 비슷하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앞의 표현은 왕이 백성에게 행사할 수 있는 행동들을 설명하는 경고의 문맥에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왕정이라는 제도의 규례가 소개됩니다.
본문은 그 규례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무엘이 왕의 권한과 의무를 정확히 몇 가지로 규정했는지, 그 규례가 신명기 17:14–20과 어느 정도 일치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신명기 17:18–20에서도 왕은 율법을 기록하여 곁에 두고, 평생 그것을 읽으며 여호와야훼를 경외하고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두 본문을 완전히 같은 규정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하나의 신학적 원칙을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법과 말씀을 만들어 내는 절대적인 주인이 아니라, 자신도 그 말씀 아래에 있는 사람입니다.
신명기 17:20은 왕이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않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왕의 권위는 백성과 자신 사이에 절대적인 간격을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왕을 세우는 의식은 왕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왕정의 규례를 여호와야훼 앞에 놓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왕이 되었지만 아직 모두의 왕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일하신다
사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사울도 기브아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갔다.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인 용사들이 그와 함께 갔다.사무엘상 10:26 · 본디새김
이 장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사울의 마음을 다른 마음으로 바꾸셨습니다(9절). 이제 끝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사울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일하셨다고 말합니다.
왕에게는 개인적인 부르심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할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직 스스로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거나 왕실의 관리 체계를 갖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마음이 사울을 향한 것은 아닙니다.
「이자가 어떻게 우리를 구하겠느냐?」
마지막 절에서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불량한 자들은 「이자가 어떻게 우리를 구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들은 사울을 업신여기며 그에게 예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사울은 못 들은 듯이 잠자코 있었다.사무엘상 10:27 · 본디새김
사울은 아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없고, 왕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들이 단순히 능력을 검증하려 했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불량한 자들이라고 부르고, 사울을 업신여기며 예물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예물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행동은 사울에게 왕으로서의 존중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이 환호한 새로운 왕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질문은 앞서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사울의 사명과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사울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9:16). 그들은 사울이 맡게 될 사명의 핵심을 질문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사명이 여호와야훼의 선택과 약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울은 선택받았지만, 그의 통치는 이제 시작입니다.
마지막에 침묵하는 사울
사울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그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지도 않고, 자신의 왕권을 내세워 처벌하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울이 인내와 절제를 보여 주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막 왕으로 세워진 사람이 모든 비판에 즉시 힘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의 동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침묵을 완전한 겸손의 증거로도, 나약한 지도력의 증거로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도 남아 있는 질문
그가 어떤 왕이 될 것인가는 그에게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 능력을 주신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사울이 받은 왕권과 그가 지켜야 할 말씀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나귀를 찾던 젊은이가 이제 이스라엘의 왕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왕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과 왕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직 같은 일이 아닙니다.
그의 머리에는 기름이 부어졌고, 그의 마음에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그가 받은 말씀을 따라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은 그렇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백성의 환호와 사람들의 의심이 남아 있는 가운데, 사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