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3장 · 실로의 아이 사무엘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알지 못할 때

사무엘상 2장은 한나의 노래로 시작합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강한 자를 낮추시고 약한 자를 높이시며, 배부른 자를 굶주리게 하시고 굶주린 자를 배부르게 하신다고 노래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식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자마자 독자는 뜻밖의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제사장들이 백성의 제물을 강제로 빼앗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선택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제물을 업신여깁니다. 그들에게 하나님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먹을 고기입니다.

이 두 장면은 우연히 나란히 놓인 것이 아닙니다.

한나가 노래한 하나님은 바로 이런 세상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높아진 자가 언제나 높은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한다고 해서 그 권력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읽는 시간 27분소단락 92장 본문 읽기 →

한나의 노래 — 한 사람의 기쁨에서 온 세상의 질서로

사무엘상 2:1–3 본문 →

기쁨의 이유는 아들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다

한나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한나가 기도하며 말했다. 「제 마음이 여호와야훼 안에서 기뻐 뛰고, 제 뿔이 여호와야훼 안에서 높이 들렸습니다. 제 입이 제 원수들을 향해 크게 열렸습니다.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2:1 · 본디새김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을 얻었는데도 노래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아들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한나가 기뻐하는 대상은 여호와야훼입니다.

한나가 경험한 변화가 노래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단순히 개인적인 행운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하기 시작합니다.

뿔은 동물의 힘을 나타내는 신체 부위이므로, 성경에서는 힘과 위엄, 높아진 지위를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됩니다. 한나가 자신의 뿔이 높이 들렸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강해졌고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나는 앞 장에서 자신의 고통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은 그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제사장은 기도하는 그를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나는 입을 크게 엽니다.

이것을 브닌나에게 복수의 말을 쏟아 낸다는 뜻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원수들」을 브닌나 한 사람과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을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나는 자기 힘으로 원수를 이겼다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는 「당신의 구원」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바꾸신 분이 여호와야훼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왜 바위인가

한나의 노래는 곧바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옮겨 갑니다.

「여호와야훼처럼 거룩한 이는 없습니다. 당신 밖에는 아무도 없으며, 우리 하나님 같은 바위는 없습니다.」사무엘상 2:2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거룩하다」는 말은 단지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뜻에 머물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는 다른 어떤 존재와도 같지 않으신 분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분의 능력과 판단은 인간의 능력과 판단에 의해 제한되지 않습니다.

바위는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사람이 그 위에 서거나 그 안에 몸을 피할 수 있는 견고한 대상입니다. 신명기 32:4도 하나님을 바위에 비유하면서 그분의 일과 판단이 올바르다고 말합니다. 한나가 하나님을 바위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변화가 변덕스러운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인간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여기는 질서는 뒤집힐 수 있습니다.

높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3절에서 노래의 말투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거만한 말, 거만한 말을 자꾸 늘어놓지 마라. 너희 입에서 오만한 말이 나오지 않게 하라. 여호와야훼께서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며, 행위는 그분에 의해 저울질되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2:3 · 본디새김

앞에서는 하나님께 말씀드렸지만, 이제는 거만한 사람들을 향해 직접 경고합니다. 히브리어는 「높은, 높은」(⁨גָּבֹהַּ⁩)이라는 표현을 반복합니다. 높다는 말은 본래 좋은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한나의 노래에는 처음부터 높아지는 이미지가 등장했습니다. 한나의 뿔이 높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려는 말이 경고의 대상이 됩니다.

같은 높아짐이라도 그 근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높이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지식은 단순히 모든 정보를 알고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의 말과 행위를 정확하게 판단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나의 노래는 단순한 감사의 노래를 넘어, 이 장 전체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는 「행위가 저울질된다」는 표현에 관한 읽기 차이가 있습니다. 자음으로 기록된 형태와 전통적으로 읽는 형태가 달라 문장의 뜻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하나님의 판단을 강조하는 읽기를 따릅니다. 이 해석은 이어지는 노래 전체의 내용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뒤집으시는 세상

사무엘상 2:4–8 본문 →

무너지는 사람과 일어서는 사람이 바뀐다

한나는 네 부류의 사람들을 차례로 대비합니다.

「용사들의 활은 부서졌고,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을 허리에 둘렀습니다.」사무엘상 2:4 · 본디새김

활은 전쟁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무기입니다. 활을 가진 용사는 자신의 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 활이 부서지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강한 사람이 조금 약해지고 약한 사람이 조금 강해진 정도가 아닙니다. 그들의 처지가 역전됩니다.

「배부르던 이들은 빵을 얻으려고 품을 팔았고, 굶주리던 이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났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자는 일곱을 낳기에 이르렀고, 아들이 많던 여자는 쇠약해졌습니다.」사무엘상 2:5 · 본디새김

이 구절은 한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한나는 여기서 자신이 일곱 자녀를 낳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1절에 따르면 한나는 사무엘 외에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았습니다. 모두 여섯 자녀입니다. 따라서 「일곱을 낳기에 이르렀다」는 표현은 한나의 출산 기록을 정확한 숫자로 예언한 말이 아니라, 불임의 처지가 풍성함으로 바뀐 것을 표현하는 시적 언어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함이나 충만함을 나타내는 수로 자주 사용됩니다. 또한 「아들이 많던 여자는 쇠약해졌습니다」라는 말을 브닌나가 실제로 자녀를 잃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브닌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한나의 노래는 개인적인 경쟁 상대가 불행해졌다는 보고가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안전과 가치를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영원한 보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기와 힘, 음식과 재산, 자녀의 수까지도 한 사람의 미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죽음과 삶의 경계까지 다스리신다

한나의 노래는 이제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스올로 내려보내기도 하시고 끌어 올리기도 하십니다.」사무엘상 2:6 · 본디새김

「스올」은 고대 이스라엘의 언어에서 죽은 자들이 내려가는 영역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인간이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깊이를 나타냅니다.

이 표현을 죽은 사람의 육체적 부활에 관한 직접적인 가르침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심각한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받는 상황을 포함한 시적 표현으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이를 만큼 깊은 인간의 무력함도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지 않습니다.

7절에서는 같은 주제가 경제적·사회적 처지로 이어집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십니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사무엘상 2:7 · 본디새김

이 구절들은 하나님이 모든 가난을 특정한 죄에 대한 처벌로 내리신다거나, 모든 부유함을 신앙에 대한 보상으로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부와 지위, 심지어 생명 자체를 인간이 궁극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흙먼지에서 왕좌로

「가난한 이를 흙먼지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쓰레기 더미에서 들어 올리셔서, 귀인들과 함께 앉히시고 영예로운 왕좌를 차지하게 하십니다. 땅의 기둥들이 여호와야훼의 것이며, 그분께서 그 위에 세상을 놓으셨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2:8 · 본디새김

누군가가 낮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그가 본래 낮은 가치를 지녔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도 그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을 가졌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시편 113:7–8에도 가난한 사람을 흙먼지에서 일으키고 궁핍한 사람을 들어 올려 귀인들과 함께 앉히신다는 매우 가까운 표현이 등장합니다. 두 본문은 하나님이 낮은 사람을 높이시는 모습을 거의 같은 언어로 찬양합니다.

고대의 시적 표현에서 땅의 기둥은 세상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토대를 나타냅니다. 여기서는 지구의 물리적 구조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탱하고 다스리는 권한이 여호와야훼께 있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세우신 분이라면, 인간 사회의 현재 질서가 그분의 능력을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누가복음 1:46–55에 기록된 마리아의 노래가 한나의 노래와 뚜렷한 주제적 연결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낮은 사람을 높이시고 강한 자의 지위를 뒤바꾸신다는 고백이 다시 등장합니다. 두 노래의 관계는 직접적인 한 문장의 인용보다는 언어와 구조, 신학적 주제가 함께 울리는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아직 왕이 없는데, 왕을 위해 기도하다

사무엘상 2:9–10 본문 →

한나의 노래는 마지막에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에게 충실한 이들의 발을 지키시지만, 악인들은 어둠 속에서 잠잠해질 것입니다. 사람이 힘으로 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2:9 · 본디새김

지금까지는 주로 사회적 처지의 역전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제 한나는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과 악인의 차이를 말합니다. 「발을 지키신다」는 표현은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보존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지키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거만한 자들의 입에서 오만한 말이 나오지 않게 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말이 잠잠해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하고, 사울이 왕이 되고, 다윗이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외모와 신체적 크기, 군사적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무엘상 16:7에서 여호와야훼는 사무엘에게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나의 노래는 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판단 기준을 알려 줍니다.

한나의 노래에 등장하는 뜻밖의 왕

「여호와야훼와 다투는 자들은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늘에서 그들을 향해 천둥을 울리실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땅끝까지 심판하시고, 자신의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신이 기름 부은 이의 뿔을 높이 드실 것입니다.」사무엘상 2:10 · 본디새김

이스라엘에는 아직 왕이 없는데, 한나는 왜 왕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사무엘이 태어났을 당시 이스라엘은 아직 왕정 체제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8장에 이르러서야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이야기에서 이 표현이 앞으로 등장할 왕권의 문제를 미리 열어 놓는다는 점입니다.

이 구절에서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지칭하는 직접적인 예언을 읽어 내는 것은 본문의 역사적 맥락을 지나치게 건너뛰는 해석입니다. 우선 이 표현은 이스라엘에 세워질 왕과 그 왕에게 힘을 주시는 여호와야훼의 관계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1절에서 한나는 자신의 뿔이 높이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10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이 기름 부으신 이의 뿔을 높이 드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한나의 뿔이었고, 마지막에는 왕의 뿔입니다.

한나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앞으로 왕에게 요구될 힘의 근원을 설명하는 데까지 확장됩니다.

왕은 스스로 높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이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왕권을 언급한 노래가 사울의 즉위보다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 노래의 정확한 형성 시기까지 이 한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하는 사무엘상 17:45–47에서도 승리는 칼과 창에 달려 있지 않으며 전쟁은 여호와야훼께 속했다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이는 한나가 2:9에서 노래한 「사람이 힘으로 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는 선언과 깊이 연결됩니다. 또한 사무엘하 22:51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왕에게 큰 구원을 베푸시고 기름 부은 자에게 인애를 베푸신다는 고백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2장의 마지막 부분과 사무엘하 22장의 표현은 사무엘서 전체의 왕권 이야기를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무엘상 2:11–17 본문 →

어린 사무엘과 엘리의 두 아들

노래가 끝나면 한 문장이 등장합니다.

엘가나는 라마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야훼를 섬기고 있었다.사무엘상 2:11 · 본디새김

이제 이야기는 사무엘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곧바로 엘리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했다.사무엘상 2:12 · 본디새김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입니다. 그들은 성소에서 제물을 다루고 예배를 주관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거나 종교적인 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행동을 다스리시는 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에 관한 정보를 소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인정하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그 직무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는 무시했습니다.

사무엘은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이미 제사장으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사람은 어린 사무엘입니다.

제사장이 제물을 빼앗는 두 가지 방식

13–16절은 엘리의 아들들이 저지르는 악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들은 희생제물의 고기를 삶는 동안 시종을 보내 갈고리로 고기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더 심각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기름을 태워 연기로 올리기도 전에 제사장의 시종이 와서 제물을 바치는 사람에게 말했다.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놓아라. 제사장께서는 네게서 삶은 고기를 받지 않고 날고기만 받으신다.」사무엘상 2:15 · 본디새김

레위기 7:31–34는 화목제의 특정 부분이 제사장에게 돌아가도록 규정합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몫을 공급받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정하신 순서와 몫을 무시했다는 데 있습니다.

레위기 3:3–5와 7:31에 따르면 제물의 지방은 여호와야훼께 태워 올리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지방을 바치기도 전에 자신들이 원하는 고기를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돌아가야 할 것을 자신들의 욕구 뒤로 밀어낸 것입니다.

백성이 그 순서를 지켜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들의 대답은 더욱 노골적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시종에게 「지금 기름부터 반드시 태워 올리게 해 주시오. 그런 뒤에 원하는 대로 가져가시오」라고 말하면, 시종은 이렇게 대답했다. 「안 된다. 지금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강제로 빼앗겠다.」사무엘상 2:16 · 본디새김

본문은 이런 일이 실로에 오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행해졌다고 말합니다. 한 번의 실수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반복되는 관행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빼앗길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성소를 지키도록 맡겨진 사람들이 오히려 예배자들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의 죄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매우 컸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야훼의 제물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사무엘상 2:17 · 본디새김

「업신여겼다」는 말은 나중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전하는 심판 선언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업신여겼고, 결국 하나님 자신을 업신여겼습니다.

고기를 빼앗는 제사장들과 작은 겉옷을 만드는 어머니

사무엘상 2:18–21 본문 →

엘리의 아들들이 저지른 죄를 묘사한 직후, 이야기는 다시 사무엘에게 돌아옵니다.

사무엘은 어린아이로서 아마포 에봇을 두르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섬기고 있었다.사무엘상 2:18 · 본디새김

아마포 에봇은 성소에서 섬길 때 착용하던 옷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입는 복잡한 예복과 같은 지위를 나타낸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작은 겉옷을 만들어, 남편과 함께 해마다 희생제물을 바치러 올라갈 때마다 그에게 가져다주었다.사무엘상 2:19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사무엘의 성장에 관한 짧은 기록이면서 한나의 계속되는 돌봄을 보여 줍니다. 사무엘은 실로에서 자라지만, 어머니와의 관계가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한쪽에는 직분을 이용해 무엇을 더 가져갈지 궁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쪽에는 자신이 맡긴 아이를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같은 성소 안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누군가는 사랑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 줍니다.

한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선물

엘리는 해마다 올라오는 엘가나와 한나에게 복을 빌어 줍니다.

엘리는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복을 빌며 말했다. 「여호와야훼께 내어 드린 아이 대신에, 여호와야훼께서 이 여자를 통해 네게 자손을 주시기를 바란다.」 그 뒤 그들은 엘가나의 처소로 돌아가곤 했다.사무엘상 2:20 · 본디새김

그리고 21절에서 그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와야훼가 한나를 돌보았으므로, 한나는 임신하여 아들 셋과 딸 둘을 낳았다.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야훼 곁에서 자랐다.사무엘상 2:21 · 본디새김

하나는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풍성함이고, 다른 하나는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입니다. 이 두 이야기를 동시에 기록함으로써 본문은 한나의 서원이 그의 삶에서 단순한 상실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면 반드시 더 많은 것을 돌려받는다는 일반적인 약속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한나의 구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돌보셨는지를 증언합니다.

아들들의 악행을 알면서도 막지 못한 엘리

사무엘상 2:22–26 본문 →

이제 성소의 문 앞에서도 악행이 벌어진다

22절은 새로운 문제를 드러냅니다.

엘리는 매우 늙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저지르는 모든 일과, 그들이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봉사하는 여자들과 동침한다는 말을 들었다.사무엘상 2:22 · 본디새김

사무엘상 2장은 이 여자들과 엘리의 아들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동의 여부가 어떠했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근거로 구체적인 강압의 형태를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성소와 관련해 봉사하는 여자들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악행의 일부로 기록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종교적 지위의 차이와 권한의 불균형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은 단순한 사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성소 안에서 이루어진 심각한 권한 남용의 문제로도 읽힙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존중하지 않았고, 성소에서 섬기는 사람들을 대하는 데서도 자신들의 지위를 악용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의 말은 옳았지만, 왜 심판을 피하지 못했는가

엘리는 아들들을 불러 책망합니다.

엘리가 그들에게 말했다. 「어째서 너희는 이런 짓을 하느냐? 내가 이 모든 백성에게서 너희의 악한 행실에 관한 말을 듣고 있다.」사무엘상 2:23 · 본디새김

엘리의 책망은 내용상 옳습니다. 이어지는 25절에서는 죄의 심각성을 지적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중재하시겠지만, 사람이 여호와야훼께 죄를 지으면 누가 그를 위해 간구하겠느냐?」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사무엘상 2:25 · 본디새김

사람 사이의 잘못도 심각하지만, 하나님의 제물을 맡은 사람이 하나님을 거슬러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더욱 중대한 문제라는 뜻입니다. 엘리의 말은 여기서 제사장들의 죄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드러내는 경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자라고, 엘리의 집안은 무너진다

바로 다음 절은 다시 사무엘에게 돌아옵니다.

아이 사무엘은 점점 자라면서 여호와야훼에게도 사람들에게도 더욱 호감을 얻었다.사무엘상 2:26 · 본디새김

제사장의 직분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자기 직무를 훼손하는 동안, 어린 사무엘은 그 직무가 이루어져야 할 자리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다음 세대의 제사장들이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소의 미래는 오히려 그들 밖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8:8에도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봉사하는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성소와 관련된 일을 맡았던 사람들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직무의 구체적인 범위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25절의 히브리어의 첫 문장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중재하신다는 뜻으로도, 하나님 또는 재판관이 판단한다는 뜻으로도 이해되어 왔습니다. 본디새김은 하나님이 중재하신다는 읽기를 택합니다. 이것을 여호와야훼께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나 중재의 가능성이 없다는 절대적인 신학 명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 32:30–32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본문은 이미 그들이 오랫동안 악행을 저질렀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하나님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악하게 만드셨다는 뜻으로 읽는 것은 앞의 이야기와 맞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계속되는 악행과 완고함 속에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의지와 행동에 관여하셨는지까지 본문이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를 완전히 해명할 수 있는 자료는 이 구절 안에 없습니다.

「너는 나보다 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다」

사무엘상 2:27–30 본문 →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묻다

27절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는 처음부터 엘리의 죄를 나열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엘리의 조상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상기시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네 조상을 나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내 제단에 올라가고 향을 피우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불에 태워 바치는 모든 제물을 네 조상의 집안에 주었다.』」사무엘상 2:28 · 본디새김

엘리의 집안이 제사장인 것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얻어 낸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맡기신 자리였습니다.

출애굽기 28:1에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맡도록 구별됩니다. 민수기 18:8–20에서는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 가운데 일정한 몫을 받도록 규정됩니다. 제사장의 직분에는 특별한 권한과 공급이 함께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권한과 공급은 하나님께 속한 일을 맡도록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이 관계를 거꾸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맡기신 직무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하나님께 속한 제물을 자기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묻습니다.

「『어째서 너희는 내가 거처에서 바치라고 명령한 나의 희생제물과 나의 제물을 발로 차느냐? 너는 나보다 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바치는 모든 제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를 살찌웠다.』」사무엘상 2:29 · 본디새김

「발로 차느냐」는 표현은 경멸을 나타내는 강한 이미지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을 소중하게 여기기는커녕 발로 차 버릴 만큼 하찮게 취급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아들들만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엘리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엘리는 아들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 더 깊은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엘리는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아버지일 뿐 아니라 성소를 책임지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아들들의 행동을 알고 있었으며, 그 악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집안을 하나님보다 우선했습니다.

엘리의 실패는 옳고 그름을 전혀 몰랐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도, 자신의 집안이 누리는 지위와 이익을 그보다 더 중히 여겼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무겁게 여기시는가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나는 네 집안과 네 조상의 집안이 영원히 내 앞에서 걸으리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나를 중히 여기는 이들을 내가 중히 여기고, 나를 업신여기는 이들은 하찮게 여겨질 것이다.』」사무엘상 2:30 · 본디새김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단순히 부모가 자녀를 지나치게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랑의 양이 아니라 우선순위와 책임입니다.

엘리는 아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이유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빼앗고 백성을 해치는 행동을 사실상 용인할 수는 없습니다. 성소를 맡은 제사장이 자신의 가정과 직분 사이에서 무엇을 먼저 존중해야 하는지가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영원히」라는 약속이 취소되는 이유

하나님이 전에 하신 말씀을 이제 바꾸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아론 가문에 대한 제사장직의 선택과 엘리 집안의 제사장직 유지가 반드시 같은 범위의 약속은 아닙니다. 이 구절은 엘리 가문이 누려 온 지위가 그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제사장직 자체를 폐지하시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실제로 35절에서 새로운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직무를 사유화한 집안이 그 특권을 계속 독점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가 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29절과 30절 사이에는 중요한 히브리어 연결이 있습니다. 「더 중히 여겨」(⁨כָּבַד⁩)의 어근은 본래 무겁다는 의미와 관련되며, 누군가를 존중하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30절의 「중히 여기다」는 같은 어근을 사용합니다. 반대로 「하찮게 여겨지다」는 가볍게 되는 이미지를 지닙니다.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제물을 빼앗던 집안이 빵 한 조각을 구하게 되다

사무엘상 2:31–36 본문 →

제사장 집안의 힘이 끊어진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선포됩니다.

「『보아라, 그런 날들이 오고 있다. 내가 네 팔과 네 조상 집안의 팔을 잘라 버려, 네 집안에 늙은 사람이 없게 하겠다.』」사무엘상 2:31 · 본디새김

여기서 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엘리 집안의 힘과 지속성이 꺾인다는 뜻입니다. 특히 후손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는 가문의 미래가 끊임없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심판입니다.

이스라엘에 좋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엘리 집안은 그 복을 함께 누리는 안정된 제사장 가문으로 남지 못할 것입니다. 34절에서는 곧 일어날 사건이 표징으로 주어집니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닥칠 일이 네게 표징이 될 것이다. 그 둘은 같은 날에 죽을 것이다.』」사무엘상 2:34 · 본디새김

이 예고는 사무엘상 4:11에서 실현됩니다. 두 아들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우는 날 함께 죽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확인하는 사건입니다.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시겠다는 약속

심판의 말씀이 끝나기 전에 하나님은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나는 나를 위해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겠다. 그는 내 마음과 내 뜻에 맞게 행할 것이다. 나는 그를 위해 굳건한 집안을 세우겠고, 그는 내가 기름 부은 이 앞에서 언제나 걸을 것이다.』」사무엘상 2:35 · 본디새김

엘리의 아들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사장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행동할 것입니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습니다. 새로운 제사장은 하나님을 위해 세워질 것입니다.

엘리의 집안은 무너질 것입니다. 새로운 제사장에게는 굳건한 집안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충실한 제사장은 누구일까요?

이렇게 볼 때 사무엘은 새로운 지도력의 시작을 보여 주고, 사독 가문의 등장은 제사장직의 교체가 제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본문 자체가 35절에서 새 제사장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으므로, 처음부터 특정 인물 한 사람에게만 모든 내용을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10절에서 한나는 하나님이 기름 부은 이의 뿔을 높이 드실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충실한 제사장이 그 기름 부은 이 앞에서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왕과 제사장이라는 두 직무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것인지 미리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빵

「『네 집안에 남은 사람은 누구나 은으로 받는 품삯과 빵 한 덩이를 얻으려고 그에게 와서 엎드려 절하며, 「부디 저를 제사장 직무 가운데 하나에 붙여 주십시오. 빵 한 조각이라도 먹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사무엘상 2:36 · 본디새김

앞에서는 「지금 내놓아라」라고 명령하던 집안이었습니다.

이제는 「부디 저를 제사장 직무 가운데 하나에 붙여 주십시오」라고 부탁해야 하는 집안이 됩니다.

앞에서는 강제로 빼앗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제는 작은 몫이라도 얻기를 구해야 합니다.

한나가 노래한 배부른 자의 몰락이 엘리 집안의 미래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처지를 뒤바꾸신다는 선언이 단순한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32절의 「거처가 곤경에 빠진 것」은 해석이 어려운 표현입니다. 성소 자체가 고통을 겪는 상황을 뜻하는지, 성소와 관련된 경쟁자를 보게 된다는 뜻인지 해석이 갈립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어떤 구체적 사건이 일어날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장에서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들과 계속 대조됩니다. 그는 어린아이지만 여호와야훼 앞에서 섬기고 있고, 다음 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이런 점에서 사무엘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새로운 충실한 지도자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러나 35절이 말하는 「굳건한 집안」과 지속되는 제사장직까지 사무엘 개인에게 모두 대응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열왕기상 2:27은 솔로몬이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한 사건을 실로에서 엘리 집안에 관해 하신 말씀의 성취와 연결합니다. 이어지는 2:35에서는 사독이 아비아달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따라서 제사장 가문의 교체라는 차원에서는 사독과 그의 후손들이 이 약속의 중요한 역사적 성취로 이해됩니다.

맺음 — 빵 한 조각을 구하는 제사장의 집안

사무엘상 2:1–36 본문 →

사무엘상 2장은 어린 사무엘의 성장과 엘리 집안의 몰락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그들이 누렸던 힘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었고, 그들이 빼앗았던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으며, 그들이 업신여겼던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알고 계셨습니다. 한나가 노래한 말은 누구를 향한 막연한 경고가 아니었습니다. 성소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동안 엘리의 아들들은 고기 솥 앞에서 자신들의 권한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집안이 빵 한 조각을 구하게 될 날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 것처럼 빼앗던 사람들의 마지막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먹을 것을 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한나의 노래는 바로 그런 역전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