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27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사울의 손을 벗어나 누구의 손으로

사무엘상 27장에는 놀라운 성공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은 오랫동안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의 추격을 마침내 멈추게 합니다. 자기 사람들과 가족들이 함께 살 성읍도 얻습니다. 적국의 왕에게 신임까지 받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동안, 본문은 다윗이 여호와야훼께 기도하거나 그분의 뜻을 묻는 장면을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대신 두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들려줍니다.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가면 사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 백성에게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영원히 자신의 종으로 남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 장의 긴장은 다윗의 계획이 실패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이 성공하면서 그가 점점 더 위험한 관계에 얽혀 들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읽는 시간 14분소단락 627장 본문 읽기 →

「언젠가 사울의 손에 죽고 말 것이다」 — 다윗은 왜 다시 블레셋으로 갔는가

사무엘상 27:1–4 본문 →

이 장은 다윗이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다윗은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제 나는 언젠가 사울의 손에 죽고 말 것이다. 내게는 블레셋 땅으로 도망쳐 버리는 것보다 나은 길이 없다. 그러면 사울은 이스라엘 온 땅에서 나를 더 찾으려는 생각을 포기할 것이고,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날 것이다.」사무엘상 27:1 · 본디새김

이 말은 앞 장에서 다윗이 했던 기도와 강한 긴장을 이룹니다. 다윗은 사울의 목숨을 살려 준 뒤, 자기 목숨도 여호와야훼의 눈에 귀하게 여겨지고 모든 곤경에서 건짐받기를 바랐습니다(26:24).

그런데 지금은 언젠가 사울에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변화만으로 다윗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반복되는 추격 속에서 현실적인 위험을 판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다가 여러 차례 실패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다시 다윗을 추격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도 삼천 명의 정예병을 데리고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사울의 약속을 더 이상 안전의 근거로 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는 사울과 싸워 이기겠다고 결심하지 않습니다. 사울을 암살하거나 반란을 일으켜 왕권을 차지하겠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울이 더 이상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을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다윗이 선택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탈출입니다.

첫 번째 가드 방문과 무엇이 다른가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로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앞서 그는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피신했다가, 그곳 사람들이 다윗을 알아보자 두려워하며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사무엘상 21:11–16). 그때의 다윗은 혼자 도망친 사람으로 등장했습니다. 적국의 왕 앞에서 자신을 보호할 안정적인 위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다윗은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 육백 명과 함께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 건너갔다.사무엘상 27:2 · 본디새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저마다 가족과 함께 가드에서 아기스와 살았다. 다윗은 두 아내, 곧 이스르엘 출신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출신 아비가일과 함께 살았다.사무엘상 27:3 · 본디새김

따라서 가드로 이동한 사람은 육백 명의 무장한 남자들만이 아닙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까지 포함된 공동체입니다. 다만 전체 인원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이 계속 광야를 떠도는 동안 가족들도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블레셋 땅에서 정착할 수 있다면 이러한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판단에 신중함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 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가족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계산은 실제로 맞아떨어진다

다윗이 가드로 달아났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해졌다. 사울은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사무엘상 27:4 · 본디새김

어떤 계획이 의도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과 그 계획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옳았다는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다윗의 탈출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 블레셋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여호와야훼께서 그 선택을 직접 책망하셨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행동을 명백한 불순종이라고 확정할 근거도,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에 따른 이동이라고 확정할 근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추격이 멈춘 자리에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23장에서 다윗은 그일라를 구하러 갈지 여호와야훼께 물었습니다. 위험에 빠졌을 때도 아비아달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하고, 자기 판단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진술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과 실제로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다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기간 동안 다윗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명시적인 개입이나 평가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시글락을 얻다 — 피난처인가, 새로운 종속인가

사무엘상 27:5–7 본문 →

가드에 머물던 다윗은 아기스에게 새로운 요청을 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말했다. 「제가 임금님의 호의를 얻었다면, 부디 사람들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에 제게 자리를 내주도록 해 주십시오. 제가 거기서 살겠습니다. 임금님의 종이 어찌 임금님과 함께 왕도에서 살아야 하겠습니까?」사무엘상 27:5 · 본디새김

다윗은 아기스의 권위를 인정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실제로 아기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스는 그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육백 명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거점을 얻었습니다. 다윗은 그곳을 기반으로 이동하고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그 성읍을 준 사람은 아기스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지배 영역을 떠나 블레셋 왕에게서 땅을 받았습니다. 사울에게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 자신의 거주지와 안전이 다른 왕과의 관계에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다윗이 정식으로 어떤 충성 조약을 맺었는지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을 아기스의 종이라고 부르고, 아기스에게서 성읍을 받으며, 뒤에서 정기적으로 그에게 군사 활동을 보고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의 새로운 안전은 정치적 관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다 왕들의 소유로 남아 있다」는 짧은 설명

그날 아기스는 그에게 시글락을 주었다. 그래서 시글락은 오늘날까지 유다 왕들의 소유로 남아 있다.사무엘상 27:6 · 본디새김

이야기를 전하는 서술자가 훗날의 관점에서 덧붙이는 설명입니다. 이 표현은 사무엘서의 현재 장면보다 뒤의 왕정 역사를 바라보는 서술자의 시점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 한 구절만으로 사무엘서 전체가 언제 최종적으로 집필되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지금 블레셋 왕의 종이라는 위치에서 땅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훗날 유다 왕들의 소유로 기억됩니다. 독자는 다윗이 블레셋 왕에게 종속된 상태로 영원히 머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스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한 해 넉 달의 생활

다윗이 블레셋 땅에서 산 기간은 한 해 넉 달이었다.사무엘상 27:7 · 본디새김

다윗의 블레셋 생활은 잠시 몸을 숨기고 곧바로 돌아온 단기 피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살아갔는지가 다음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남쪽 지역의 습격 — 다윗은 누구와 싸웠는가

사무엘상 27:8–9 본문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시글락에 정착한 뒤 주변 지역을 습격합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올라가 그술 사람들과 기스리 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을 습격했다. 그들은 예부터 수르로 가는 길에서 이집트 땅에 이르는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었기 때문이다.사무엘상 27:8 · 본디새김

본문은 다윗이 이번에 아말렉과 다른 집단들을 공격하도록 여호와야훼께 직접 명령받았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술 사람들과 기스리 사람들까지 아말렉과 동일한 심판의 대상이었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15장의 아말렉 전쟁 명령을 가져와 사무엘상 27장에 기록된 다윗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습격은 단순한 전투였는가

다윗은 그 땅을 칠 때마다 남자든 여자든 살려 두지 않았다. 양과 염소, 소와 나귀와 낙타와 옷을 빼앗고 돌아가 아기스에게 이르곤 했다.사무엘상 27:9 · 본디새김

9절의 행동은 뒤의 11절에서 다윗이 블레셋 땅에 머무는 동안 계속 행한 방식으로 정리됩니다. 즉, 다윗이 습격할 때마다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다윗은 적대 세력으로 알려진 집단들을 공격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죽인 일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행동과도 연결됩니다.

누구를 공격했는가의 문제와,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공격했는가의 문제는 구별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그술 사람들은 이 문맥에서 수르와 이집트로 이어지는 남쪽 지역의 주민들로 소개됩니다. 따라서 사무엘하 3:3 등에 등장하는 북쪽 그술 왕국과 자동으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기스리 사람들은 정확한 정체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자음과 전통적인 읽기에도 차이가 있어, 이 집단을 특정한 다른 민족이나 도시 주민으로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해석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오랜 적들을 공격하여 남쪽 지역의 위협을 약화시켰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말렉과의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은 이러한 읽기를 뒷받침하는 요소가 됩니다. 출애굽기 17:8–16에서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신명기 25:17–19에서는 그들이 이스라엘이 지쳐 있을 때 뒤처진 사람들을 공격한 일을 기억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장은 습격의 주요 결과로 사람들의 죽음과 재산의 약탈을 기록하며,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사람들을 살려 두지 않은 이유가 자신들의 실제 행동을 아기스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정당한 군사 행동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쪽에서는 습격하고, 다른 쪽에는 거짓 보고하다

사무엘상 27:10–11 본문 →

다윗이 습격에서 돌아올 때마다 아기스는 묻습니다.

아기스가 말했다. 「오늘 너희는 어디를 습격했느냐?」 다윗이 말했다. 「유다의 네게브와 여라므엘 사람들의 네게브와 겐 사람들의 네게브를 습격했습니다.」사무엘상 27:10 · 본디새김

그런데 다윗이 대답한 세 지역은 앞서 실제로 습격했다고 기록된 집단들과 다릅니다.

네게브는 남쪽의 건조한 지역을 가리키는 지리적 명칭입니다. 여라므엘 사람들은 유다의 계보와 연결되는 집단입니다(역대상 2:9, 25). 겐 사람들 역시 이스라엘과 오랜 관계를 가진 집단입니다.

다윗은 이미 사울에게 쫓겨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 이제 자신의 백성과 그들과 가까운 집단들까지 공격하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아기스의 눈에는 다윗이 이스라엘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증인이 살아 있으면 계획이 무너진다

11절은 다윗이 습격할 때마다 사람들을 살려 두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다윗은 남자든 여자든 살려 두어 가드로 데려오는 일이 없었다. 「그들이 우리를 두고 『다윗이 이런 일을 했다』 하고 알릴지 모른다」고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가 블레셋 땅에 사는 동안 늘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사무엘상 27:11 · 본디새김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드로 가서 다윗이 실제로 습격한 대상을 알린다면, 아기스에게 한 보고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아기스가 자신을 이스라엘의 적이 된 사람으로 믿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기스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군사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윗의 안전을 위한 계략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5장에서 다윗은 자신을 모욕한 나발의 집안을 몰살하려다가 아비가일의 개입으로 멈추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피를 흘려 죄를 짓는 일을 막아 주셨다고 여호와야훼를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에서는 다윗이 남자와 여자를 살려 두지 않았다고 기록됩니다.

두 사건의 상황과 상대방은 다릅니다. 나발의 집안과 아말렉 등의 집단을 동일한 도덕적·역사적 위치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25장에서 자신의 손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보호받았다고 고백한 사람이, 이번에는 왜 반복적인 살육을 통해 자기 계획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해 다윗의 변명이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평가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의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고, 사울을 죽이지 않을 만큼 절제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동시에 자기 안전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그의 모든 행동을 의로운 것으로 바꾸어 주지 않습니다.

살아남으려는 목적이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과, 살아남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방법이 옳다는 판단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는 확신이 자신에게 유리한 모든 상황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0절의 질문의 히브리어 표현에는 본문상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전해진 자음 그대로 읽으면 평범한 의문문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지역의 이름으로 대답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아기스가 그 대답을 근거로 다윗의 충성을 판단한다는 점을 보면, 습격한 대상이나 지역을 묻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잘 맞습니다. 사사기 1:16에서는 모세의 장인과 관련된 겐 사람들의 후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이동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무엘상 15:6에서도 사울은 겐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선대했던 일을 언급합니다.

「영원히 내 종이 되겠구나」 — 아기스는 왜 다윗을 완전히 믿었는가

사무엘상 27:12 본문 →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아기스의 생각이 소개됩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믿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단단히 미움을 샀으니, 영원히 내 종이 되겠구나.」사무엘상 27:12 · 본디새김

아기스가 보는 정보만으로는 다윗이 이스라엘과 결별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아기스의 확신은 잘못된 정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다윗이 얻은 신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관계는 겉으로 안정되어 보여도,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아기스의 신뢰가 커질수록 다윗에게 더 큰 충성을 요구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이 장은 그 요구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아직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은 앞으로의 갈등을 예상하게 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영원히 자기 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자는 다윗이 영원히 블레셋 왕의 종으로 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아기스의 확신은 다윗의 미래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과 충돌합니다.

결말 — 시글락에서 바라본 두 사람의 미래

사무엘상 27:1–12 본문 →

이 장에는 두 사람의 확신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에서 살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영원히 자신의 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계산이 하나님의 뜻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글락에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머물 자리가 생겼습니다.

겉으로 보면 오랜 도피 생활 끝에 찾아온 안정입니다.

하지만 그 안정은 매번 돌아와야 하는 거짓 보고와, 그 보고를 지키기 위해 살려 두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 위에 놓여 있습니다.

다윗은 마침내 자신을 쫓는 왕에게서 벗어났지만, 이제 자신을 믿는 왕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27장은 그 불안한 평온 속에서 끝납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영원히 자기 종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글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믿는 미래 사이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놓여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