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9–16장 · 예후와 왕조의 교체

승리한 왕의 몰락과 악한 왕을 통한 구원

열왕기하 14장에는 두 왕의 승리가 나옵니다.

유다 왕 아마샤는 에돔을 무찌릅니다.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빼앗겼던 이스라엘의 영토를 되찾습니다.

그런데 두 승리를 바라보는 열왕기의 시선은 놀랍도록 다릅니다.

아마샤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을 했다고 평가받은 왕입니다. 하지만 그는 에돔을 무찌른 뒤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다가 참패합니다. 반면 여로보암은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고 평가받은 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어떻게 올바른 일을 한 왕은 치욕적인 패배를 맞고, 악한 일을 한 왕은 나라를 회복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장에는 두 왕의 성공과 실패보다 더 깊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책임의 경계를 지키다가 전쟁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께 충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의 경계를 회복합니다.

열왕기하 14장은 왕들이 얼마나 많은 땅을 차지했는가보다, 왕들이 차지한 성공과 권력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614장 본문 읽기 →

아버지의 죄를 아들에게 묻지 않은 왕

열왕기하 14:1–6 본문 →

다윗과 같지는 않았지만 옳은 일을 했다

유다 왕 아마샤는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스물아홉 해 동안 다스립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을 했다. 다만 자기 조상 다윗과 같지는 않았고, 자기 아버지 요아스가 한 모든 일을 그대로 했다.열왕기하 14:3 · 본디새김

이는 그를 완전히 악한 왕으로 평가하지 않으면서도, 아무런 한계가 없는 이상적인 왕으로 제시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다윗은 열왕기에서 유다 왕들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열왕기상 15:5는 다윗이 우리야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일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같지 않았다는 말에는 단순히 정치적 업적이 부족했다는 것보다 여호와야훼께 대한 충성의 정도에 관한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산당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백성은 여전히 산당들에서 제물을 바치고 태웠다.열왕기하 14:4 · 본디새김

이것은 그의 아버지 시대에도 계속되었던 문제였습니다(왕하 12:4). 산당은 지역의 제의 장소를 가리키며, 반드시 모두 바알 숭배의 장소였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열왕기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도 산당 제사가 유지되는 일을 반복해서 문제로 지적합니다. 신명기 12:5–14에서 요구하는,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신 장소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 질서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사건에서는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는 중요한 증거가 나타납니다.

왕을 죽인 사람들의 자녀를 살려 두다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는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었습니다(왕하 12:21–22).

왕권이 그의 손에서 굳건해지자 그는 자기 아버지인 왕을 쳐 죽인 신하들을 쳐 죽였다.열왕기하 14:5 · 본디새김

왕위 계승이 곧바로 안정적인 권력 행사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가 행한 처벌에는 경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왕을 쳐 죽인 자들의 아들들은 죽이지 않았다.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였다. 여호와야훼는 이렇게 명령했다. 「아버지들은 아들들 때문에 처형되어서는 안 되고, 아들들은 아버지들 때문에 처형되어서는 안 된다. 각자는 오직 자기 죄 때문에 처형되어야 한다.」열왕기하 14:6 · 본디새김

고대 왕실에서 반역은 왕 개인의 죽음에 그치지 않는 위협이었습니다. 반역자의 친족이나 후손들이 다시 정치적 위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까지 제거하려는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24:16을 직접 인용한 것입니다. 열왕기는 다른 성경 본문을 연상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명령임을 밝히며 그 내용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책임을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물론 신명기 24:16이 모든 사회적 결과는 오직 당사자에게만 미치며 자녀에게는 어떤 영향도 남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족과 공동체는 한 사람의 행동 때문에 실제로 피해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 처형의 책임을 혈연만을 근거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왕의 분노에도 경계가 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처벌할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경계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원한이 크다고 해서 처벌의 대상을 마음대로 넓히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앞서 열왕기하 10장에서 예후가 유다 왕실의 친족 마흔두 명까지 죽인 장면과도 대조됩니다. 두 사건의 상황과 법적 성격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왕이 자신의 적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왕도 자신의 원한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높은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마샤가 처음 보여 준 올바름입니다.

아마샤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행동으로 시작하지만, 곧 전쟁에서 얻은 승리 때문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에돔에서 얻은 승리가 왜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어졌는가?

열왕기하 14:7–10 본문 →

소금 골짜기에서 거둔 승리

7절은 아마샤의 군사적 성공을 기록합니다.

그는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쳐 죽이고, 전쟁에서 셀라를 점령했다. 그는 그곳의 이름을 욕드엘이라 불렀고, 그 이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열왕기하 14:7 · 본디새김

에돔은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갔습니다(삼하 8:13–14). 그러나 유다 왕 여호람 시대에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왕을 세웠습니다(왕하 8:20–22). 아마샤가 에돔을 공격한 사건은 그러한 역사적 관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고대의 왕이 정복한 장소에 새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지역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아마샤가 에돔 전체를 완전히 복속시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중요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특정 성읍을 점령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승리 다음에 일어납니다.

왜 갑자기 형제 왕국에 싸움을 걸었는가?

아마샤는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스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그때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이며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에게 사자들을 보내 말했다. 「오시오. 서로 맞서 봅시다.」열왕기하 14:8 · 본디새김

두 왕이 맞서 싸우자는 도전입니다.

그런데 아마샤는 왜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을까요? 열왕기하 14장 자체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야기의 초점은 이스라엘 왕이 아마샤의 도전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놓여 있습니다.

가시나무가 백향목에게 혼인을 청하다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전갈을 보내 말했다.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 『그대 딸을 내 아들에게 아내로 주시오.』라고 했소. 그런데 레바논의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소.」열왕기하 14:9 · 본디새김

가시나무는 작고 약하며 쉽게 짓밟힐 수 있습니다. 반면 레바논의 백향목은 크고 장엄한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혼인 요청은 두 집안이 동등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제안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우화의 끝은 더욱 뜻밖입니다.

백향목이 가시나무를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가시나무를 짓밟습니다. 가시나무는 자신이 백향목과 대등한 상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지나가는 짐승 하나에도 짓밟힐 만큼 약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여호아스는 이 우화를 통해 아마샤의 도전이 얼마나 무모한지 조롱합니다.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유로 북이스라엘과도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아스의 관점에서 그 승리는 아마샤가 두 왕국의 힘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이 우화가 실제로 유다의 군사력이 이스라엘보다 어느 정도 약했는지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낮추어 표현하는 이스라엘 왕의 말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전투 결과는 아마샤가 적어도 이번 대결에서는 상대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대 집에 머무르시오」

「그대가 에돔을 무찌른 것은 분명하오. 그래서 그대 마음이 우쭐해졌소. 명예를 누리며 그대 집에 머무르시오. 어찌하여 재앙을 자초하오? 그러면 그대도 쓰러지고 유다도 그대와 함께 쓰러질 것이오.」열왕기하 14:10 · 본디새김

문제는 그 승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아마샤에게는 실제로 기뻐하고 명예를 누릴 만한 승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가 또 다른 전쟁을 벌여도 된다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집」은 단순히 왕의 개인적인 거처만을 가리키기보다 자기 나라에 머물며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의 결정은 왕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앞에서 아마샤는 반역자들의 자녀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형벌을 무고한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시작하려는 전쟁은 온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 두 상황은 법적 처벌과 전쟁의 결과라는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의 결정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연결됩니다.

신명기 17:18–20은 왕이 율법을 읽고 지키며 백성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아마샤가 정말 승리 때문에 교만해졌는지는 여호아스의 평가이며, 열왕기 저자가 직접 그의 내면을 묘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가 경고를 듣지 않고 전쟁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제 두 왕은 실제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소금 골짜기는 일반적으로 사해 남쪽과 연결되는 지역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본문만으로 전투의 정확한 장소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셀라(⁨סֶלַע⁩)는 히브리어로 바위를 뜻하는 셀라와 동일한 형태입니다. 이 때문에 에돔의 바위 지형과 연결되는 요새 또는 성읍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후대의 페트라와 연결하는 해석도 있지만, 이 구절만으로 두 장소가 동일하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8절의 「서로 맞서 봅시다」는 원문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보자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얼굴을 마주한다는 말은 문맥에 따라 실제로 만나거나 대결하는 일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후 전쟁이 일어나므로 군사적 대결의 의미가 분명합니다. 역대하 25:6–10, 13에는 관련 배경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샤는 에돔과 싸우기 위해 북이스라엘에서 용사들을 고용했지만,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자 돌아간 이스라엘 군사들이 분노하여 유다 성읍들을 공격하고 사람들을 죽이며 재물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이 기록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과 갈등을 겪게 된 구체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4장은 그 사건을 말하지 않습니다.

얼굴을 마주하자는 도전이 성벽의 붕괴로 끝나다

열왕기하 14:11–16 본문 →

아마샤는 듣지 않았다

11절은 아주 짧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듣지 않았다.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가 올라왔고, 그와 유다 왕 아마샤는 유다에 속한 벳세메스에서 서로 맞섰다.열왕기하 14:11 · 본디새김

앞에서 아마샤는 모세의 율법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에게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서 여호아스는 하나님의 예언자가 아니라 상대 왕국의 왕입니다. 따라서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샤는 「서로 맞서 봅시다」라고 도전했습니다. 그가 원했던 만남이 실제로 성사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와 다릅니다.

유다는 이스라엘 앞에서 패배했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장막으로 달아났다.열왕기하 14:12 · 본디새김

이것은 전쟁에서 군대가 흩어져 각자의 거처로 돌아가는 패주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처음에는 왕이 자신의 명예를 더 높이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 전쟁을 감당해야 했던 것은 유다의 군사들과 백성이었습니다.

여호아스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왕이 포로가 되고 성벽이 무너지다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벳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이며 여호아스의 아들인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았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 모퉁이 문까지 사백 큐빗에 걸쳐 허물었다.열왕기하 14:13 · 본디새김

왕이 포로가 되었다는 것은 한 나라의 정치적 권위가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은 수도의 방어 능력까지 손상되었다는 뜻입니다. 여호아스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았지만, 수도를 방어하는 시설을 손상시켰습니다.

아마샤는 에돔의 셀라를 점령하고 그곳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지만, 이제 자기 나라의 수도에서 성벽이 허물어지는 일을 겪습니다.

성전의 보물과 인질들

여호아스는 성벽을 허무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집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금과 은과 온갖 기물을 모두 가져가고, 인질들도 데리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다.열왕기하 14:14 · 본디새김

인질은 보통 패배한 쪽이 이후의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하거나 정치적 복종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이 인질들이 누구였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마리아에 머물렀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데리고 갔다는 사실은 이 전쟁의 결과가 금은보화를 잃는 데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까지 정치적 압박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아마샤는 한때 원수를 처벌할 때 죄 없는 자녀들에게까지 형벌을 확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전쟁은 여러 사람의 삶을 위험하게 만들고, 실제로 인질들이 끌려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2장에서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는 아람 왕 하사엘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내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마샤가 시작한 전쟁의 결과로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깁니다. 두 사건의 원인과 성격은 다릅니다. 그러나 두 세대에 걸쳐 성전과 왕궁의 보물이 외부 세력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은 유다의 왕권과 군사력이 처한 불안정한 현실을 보여 줍니다.

왕은 살아남았지만 통치의 상처는 남았다

열왕기는 아마샤가 언제 어떻게 포로 상태에서 벗어났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7절에서 그가 여호아스보다 열다섯 해를 더 살았다고 기록하므로, 포로가 된 사건으로 그의 생애가 즉시 끝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왕 개인의 생존은 나라의 온전한 회복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군사적 성공을 근거로 새로운 전쟁을 선택했고, 그 결과 온 나라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은 그 사람의 명예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맡은 사람들의 안전까지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의 선택이 가져온 가장 인상적인 결과는 자기 몸에 난 상처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벽에 생긴 커다란 빈틈이었습니다.

라기스로 달아난 왕과 백성이 세운 새 왕

열왕기하 14:17–22 본문 →

아버지와 아들의 마지막이 닮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가 죽은 뒤에도 아마샤는 열다섯 해를 더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전쟁터가 아니라 자기 나라 안에서 찾아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그를 거슬러 반역을 모의하자 그는 라기스로 달아났다. 그들은 라기스로 사람들을 보내 그를 뒤쫓게 하고, 거기서 그를 죽였다.열왕기하 14:19 · 본디새김

요아스도 자기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었습니다(왕하 12:21–22). 아마샤는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처형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을 물었던 아들이 아버지와 비슷한 마지막을 맞이한 것입니다.

열왕기하 14장은 아마샤에 대한 반역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의 생애는 처음의 올바름이나 한 차례의 승리만으로 마지막까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온 유다 백성」이 왕을 세웁니다

온 유다 백성이 열여섯 살인 아사랴를 데려다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이어 왕으로 세웠다.열왕기하 14:21 · 본디새김

열왕기는 왕위 계승을 기록할 때 흔히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백성이 아사랴를 데려다가 왕으로 세웠다고 명시합니다. 이 표현은 왕권의 계승이 단지 왕가 내부의 일이 아니라 유다 백성의 참여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를 현대적인 선거 제도나 국민주권의 원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백성이 어떤 절차를 거쳐 아사랴를 세웠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마샤가 반역으로 죽었지만, 유다 백성이 그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 다윗 왕조의 계승을 이어 갔다는 사실입니다.

아사랴는 뒤에 웃시야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하는 왕입니다(왕하 15:1–7; 대하 26:1–3). 아버지가 반역으로 죽은 상황에서 아직 어린 왕이 왕권을 이어받았습니다.

아마샤 왕이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든 뒤에, 아사랴는 엘랏을 건설하고 그곳을 유다에 되돌렸다.열왕기하 14:22 · 본디새김

엘랏은 아카바만 북쪽 끝 부근에 있던 중요한 거점으로, 홍해로 이어지는 교역로와 관련된 곳이었습니다. 열왕기상 9:26에서는 솔로몬이 에돔 지역의 에시온게벨 부근에서 배들을 건조한 일이 기록됩니다.

아사랴가 엘랏을 건설하고 유다에 되돌렸다는 말은 남쪽의 중요한 거점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건설했다」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는 뜻인지, 기존의 도시를 재건하고 정비했다는 뜻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한 왕의 실패가 나라의 모든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의 정치적 상처를 물려받으면서도 새로운 회복을 이루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북이스라엘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라기스는 유다의 주요 요새 성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여호수아 10:31–32에도 등장하며, 유다 왕국의 역사에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정치적 지지를 잃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본문이 밝히지는 않습니다. 역대하 25:27은 아마샤가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데서 돌아선 뒤 사람들이 반역을 모의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하 25:14–16에서는 그가 에돔에서 돌아온 뒤 에돔의 신들을 가져와 섬기고 예언자의 책망을 거절한 일도 설명합니다. 이 기록들은 아마샤의 통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입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4장은 그러한 종교적 타락의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의 전쟁과 패배, 마지막 반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악한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다

열왕기하 14:23–29 본문 →

여로보암은 누구의 길을 걸었습니까?

23절은 여로보암의 즉위를 기록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이며, 사마리아에서 마흔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이 왕은 북이스라엘을 처음 세웠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과 이름이 같습니다. 14장에 등장하는 왕은 일반적으로 여로보암 2세라고 구별해서 부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열왕기하 14:24 · 본디새김

이름뿐 아니라 그가 걸은 길도 첫 번째 여로보암과 같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 예배로 대표되는 여로보암의 죄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평가를 읽고 나면 여로보암 2세의 통치에도 곧바로 심판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25절은 정반대의 소식을 전합니다.

요나가 전한 말씀대로

그는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이스라엘의 영토를 되찾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가드헤벨 출신인 자기 종, 아밋대의 아들 예언자 요나를 통해 한 말대로였다.열왕기하 14:25 · 본디새김

하맛 어귀는 이스라엘 땅의 북쪽 경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아라바 바다는 사해를 가리킵니다(신 3:17; 수 3:16). 그러므로 이 말은 북쪽의 하맛 접근 지역에서 남쪽의 사해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영토 회복을 묘사합니다. 이전 장들에서 아람에게 짓밟혀 군사력과 성읍들을 잃었던 북이스라엘이 다시 세력을 회복한 것입니다.

요나서 1:1에서도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 소개됩니다. 따라서 두 본문은 같은 이름과 부친의 이름으로 이 예언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요나서에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반면 열왕기하 14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영토 회복을 예고한 예언자로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14장은 요나가 니느웨에 갔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가 이스라엘의 영토 회복에 관해 정확히 어떤 문장으로 예언했는지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단지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짧은 언급은 요나가 요나서의 니느웨 이야기에서만 활동한 예언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와도 연결된 인물로 전해지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여로보암의 군사적 성공이 단순히 그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군사적 성과를 거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과가 하나님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왕의 공로가 아니라 백성의 고난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의 고난이 몹시 혹독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매인 자도 없고 풀려난 자도 없었으며,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었다.열왕기하 14:26 · 본디새김

이것은 열왕기하 13:4에서 하나님께서 아람의 억압을 보시고 여호아하스의 간청을 들으셨다는 설명과 연결됩니다. 두 본문 모두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공로보다 그분의 긍휼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무력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여호와야훼께서 행동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고통을 보신다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를 모르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가 하나님의 긍휼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을 지워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야훼는 하늘 아래에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지워 버리겠다고 말하지 않았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그들을 구원했다.열왕기하 14:27 · 본디새김

여기서 「이름을 지워 버리다」는 표현은 한 사람이나 민족의 존재와 기억을 없애는 심판을 가리킵니다. 신명기 9:14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죄를 두고 그들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14:27에서는 그와 같은 완전한 제거가 이스라엘에게 선언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어떤 죄를 지어도 결코 멸망할 수 없다는 무조건적인 보장을 뜻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7장에서는 실제로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하는 사건이 기록됩니다. 따라서 14:27은 영원히 심판을 면한다는 약속이라기보다,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 아직 이스라엘을 완전히 지워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로보암이 나라를 구원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하셨기 때문에 여로보암을 그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다마스쿠스와 하맛을 되돌렸다는 어려운 기록

28절은 여로보암의 다른 군사적 성과를 언급합니다.

여로보암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싸움에서 보인 그의 무용과 다마스쿠스와 하맛을 이스라엘 안에서 유다에 되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열왕기하 14:28 · 본디새김

다마스쿠스와 하맛을 되돌렸다고 하면서, 「유다에」와 「이스라엘 안에서」라는 표현이 함께 나타납니다. 원문의 리후다 베이스라엘은 두 전치사가 어떤 관계로 사용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를 유다에 속했던 지역을 이스라엘이 회복했다는 뜻으로 읽거나,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통치권을 다시 회복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가능성으로 지명이나 본문의 전승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읽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해석을 따르든 다마스쿠스쿠스와 하맛의 정치적 지위 및 유다와의 관계를 이 구절만으로 상세히 재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여로보암이 두 도시 전체를 직접 통치했는지, 그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한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같은 시대를 바라보는 두 시선 — 열왕기와 아모스

아모스 1:1은 아모스가 활동한 시대를 유다 왕 웃시야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시대라고 소개합니다. 열왕기하 14장은 이스라엘이 잃었던 영토를 되찾았다고 말합니다. 아모스서는 그 시대에 이스라엘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압제받고, 정의가 무너지고,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당연하게 여기던 현실을 고발합니다.

아모스 5:11–12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지우고 뇌물을 받으며 성문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일을 책망합니다. 아모스 6:1에서는 사마리아에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고합니다.

나라의 경계는 넓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정의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국가의 군사적 성공과 백성의 올바른 삶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열왕기하 14:25는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의 영토 회복을 말합니다. 아모스 6:14는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의 시내에 이르는 압제를 경고합니다. 두 구절의 남쪽 지리 표현은 완전히 같지 않지만, 하맛 어귀에서 남쪽 아라바 지역까지라는 넓은 범위를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 본문에서는 회복된 영토의 범위를 나타내는 지리적 표현이, 다른 본문에서는 장차 압제가 미칠 범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시편 72편은 왕이 가난한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고, 궁핍한 사람을 구원하며, 압제하는 사람을 꺾기를 구합니다(시 72:2–4, 12–14). 그 시편의 관점에서 보면 왕의 영광은 단순히 정복한 땅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 왕 아래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합니다.

신약은 예수를 다윗의 후손인 왕으로 소개하며(눅 1:32–33), 그의 다스림을 구원과 연결합니다. 이는 열왕기하 14장이 예수를 직접 예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구약에서 계속 제기되는 의로운 왕의 통치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가 신약에서도 이어진다는 정경적 연결입니다.

마침내 그가 죽고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잇습니다. 긴 통치가 끝나지만, 이스라엘의 미래를 둘러싼 질문은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매인 자도 없고 풀려난 자도 없었으며」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아추르 베아주브는 짝을 이루는 표현으로, 아무도 남지 않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전혀 없는 절박한 상태를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이 두 낱말이 정확히 어떤 신분이나 처지의 사람들을 구별하는지에 관해서는 해석이 갈립니다. 그러나 이 절의 의미는 뒤따르는 말에서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었다.」 여기서 열왕기하 9:8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같은 짝의 표현이 아합 집안에 대한 심판을 선언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9장에서는 아합의 집안에 아무도 남기지 않겠다는 심판의 문맥이었습니다. 그런데 14장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도울 자가 없을 만큼 형편이 절박하다는 문맥에서 등장합니다.

맺음 — 무너진 성벽과 넓어진 국경

열왕기하 14:1–29 본문 →

아마샤의 첫 행동은 올바르지만, 그것이 이후의 무모한 전쟁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여로보암의 영토 회복은 실제 성과지만, 그것이 그의 우상숭배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성공에는 인간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먼저 있었습니다.

아마샤가 넓히려던 자신의 영광은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회복한 넓은 국경 뒤에는,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그들의 이름을 아직 지워 버리지 않으신 여호와야훼의 긍휼이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