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9–16장 · 예후와 왕조의 교체

왕좌를 차지하고 땅을 잃는 나라

열왕기하 15장에는 유난히 많은 왕이 등장합니다. 유다에서는 아사랴가 쉰두 해 동안 다스립니다. 그런데 그 긴 통치 기간의 후반부에 이스라엘에서는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가 차례로 왕좌에 오릅니다.

왕좌를 차지하는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정작 그 왕좌가 다스려야 할 나라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왕이 왕을 죽입니다. 다음에는 왕이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외국 왕에게 은을 바칩니다. 마침내 그 외국 왕이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끌고 갑니다.

앞 장에서 여로보암 시대의 이스라엘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았습니다. 당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셨고, 그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14:25–27). 그런데 불과 한 장 뒤, 이스라엘은 되찾았던 땅의 상당 부분을 잃기 시작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구원은 무엇을 의미했으며, 사람들은 그 구원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15장은 이 질문에 답하면서 동시에 남유다를 바라봅니다. 북쪽의 나라가 무너져 가는 동안 남쪽의 왕조는 이어지지만, 남쪽이라고 해서 역사의 격랑에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15장 본문 읽기 →

아사랴 — 쉰두 해의 통치와 왕궁 밖의 왕

열왕기하 15:1–7 본문 →

아사랴는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 쉰두 해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이 장에 등장하는 다른 왕들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 긴 기간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을 했다. 자기 아버지 아마샤가 한 모든 일을 그대로 했다.열왕기하 15:3 · 본디새김
그러나 산당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백성은 여전히 산당들에서 제물을 바치고 태웠다.열왕기하 15:4 · 본디새김

열왕기에서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이라는 평가는 왕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판단하는 기본적인 기준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올바른 길을 걸은 왕이지만, 백성의 예배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산당은 단순히 산꼭대기에 세운 제단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러 지역에 설치된 제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곳에서의 예배가 모두 여호와야훼가 아닌 다른 신을 향한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하도록 하는 신명기의 규정(신명기 12:5–14)과 지역 산당의 지속적인 사용 사이에 긴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뒤에 등장할 북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평가와 대조를 이룹니다. 유다에는 개혁이 불완전한 왕들이 이어지는 반면, 북이스라엘에서는 나라의 출발 때부터 굳어진 잘못된 예배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왕들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왕이지만 왕궁을 다스리지 못하다

여호와야훼가 왕을 쳤으므로 그는 죽는 날까지 차라아트에 걸린 채 따로 떨어진 집에서 살았다. 왕의 아들 요담은 왕궁을 맡아 그 땅의 백성을 다스렸다.열왕기하 15:5 · 본디새김

앞에서는 그가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했는데, 이번에는 여호와야훼가 그를 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열왕기 본문에는 여호와야훼가 왜 아사랴를 치셨는지가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왕권의 한계를 뜻밖의 방식으로 보여 줍니다. 쉰두 해라는 긴 통치 기간, 왕이라는 높은 지위, 예루살렘의 궁궐이 그를 여호와야훼의 판단에서 보호하지 못합니다.

아사랴가 왕궁을 떠났지만 유다의 왕권이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 요담이 통치를 맡았고, 아사랴가 죽은 뒤 정식으로 왕위를 계승합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조금 뒤 정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왕이 죽으면 그 아들이 왕권을 이어받는 대신, 왕을 죽인 사람이 왕좌를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먼저 차라아트는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한센병과 그대로 일치하는 병명이 아닙니다. 레위기 13–14장에서 차라아트는 피부와 관련된 여러 증상뿐 아니라 옷이나 집에서 나타나는 이상 현상에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아사랴가 정확히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 현대의 질병명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대하 26:16–21은 이 사건을 더 자세히 서술합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웃시야는 강해진 뒤 교만해져 제사장의 직무인 분향을 직접 행하려 했고, 제사장들의 제지를 받으면서 분노하다가 차라아트가 발생했습니다. 역대기는 왕의 교만과 성전의 거룩함을 침범한 행위에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열왕기는 그 원인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고, 왕이 왕궁 밖으로 물러나고 아들이 통치를 맡았다는 결과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아사랴와 웃시야는 같은 왕을 가리키는 두 이름입니다. 본문은 1절에서 아사랴라고 부르다가 13절에서는 웃시야라고 부릅니다.

스가랴 —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 왕조가 끝나다

열왕기하 15:8–12 본문 →

8절에서 무대는 북이스라엘로 옮겨 갑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지만, 그의 통치는 여섯 달 만에 끝납니다. 살룸이 반역을 모의하여 그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가 예후에게 「네 자손이 사 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것이다.」라고 한 말이었다. 그대로 이루어졌다.열왕기하 15:12 · 본디새김

왕이 암살되었는데,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합니다.

이 말의 배경은 열왕기하 10:30에 있습니다. 예후는 아합 집안에 대한 심판을 수행했고, 여호와야훼는 그의 자손이 사 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 왕좌는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손자 요아스, 증손자 여로보암, 그리고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에게 이어졌습니다. 예후 자신 다음으로 네 세대가 왕좌에 앉은 것입니다.

스가랴의 죽음은 그 약속의 마지막 세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열왕기하 10:31은 예후가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온 마음으로 따르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그의 후손들도 같은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왕조가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그 왕조의 모든 행동을 승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동시에 왕조의 실패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무효가 되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는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지만, 그 약속을 받은 왕조가 영원히 보호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왜 계속 등장하는가?

그는 자기 조상들이 한 것처럼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열왕기하 15:9 · 본디새김

여기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은 스가랴의 아버지인 여로보암과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남북 왕국이 갈라진 뒤 북이스라엘의 첫 왕이 된 여로보암입니다.

열왕기상 12:26–33에 따르면 그는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면 남유다의 왕에게 마음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배 체계를 새롭게 조직했습니다. 왕권을 지키려는 정치적 계산이 예배의 질서를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그 뒤 북이스라엘 왕들은 서로 다른 가문에서 나오고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지만, 이 기본적인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왕의 이름은 계속 바뀌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선택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 왕조의 끝이지만, 이스라엘의 잘못된 길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살룸과 므나헴 — 왕을 죽이는 사람이 백성을 죽이다

열왕기하 15:13–16 본문 →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된 살룸은 사마리아에서 한 달 동안 다스립니다.

여섯 달 만에 죽은 왕의 뒤를 이어 한 달 만에 죽는 왕이 등장합니다. 살룸을 죽인 사람은 가디의 아들 므나헴입니다.

므나헴은 디르사에서 올라와 사마리아에서 살룸을 죽입니다. 디르사는 한때 북이스라엘의 왕궁이 있던 도시였습니다(열왕기상 15:33; 16:8–10). 이후 오므리가 사마리아를 건설하면서 왕국의 중심이 옮겨졌습니다(열왕기상 16:23–24).

여기까지는 왕궁 내부의 권력투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6절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잔혹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때 므나헴은 디르사에서 나아가 딥사와 그 안의 모든 사람과 그 주변 지역을 쳤다. 그곳 사람들이 문을 열어 주지 않았으므로 므나헴은 그곳을 쳤고, 그곳의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모두 갈랐다.열왕기하 15:16 · 본디새김

이 행동은 당시의 전쟁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극단적인 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성읍의 현재 주민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생명까지 공격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잔혹합니다.

이 장면을 읽을 때 아모스서가 떠오르는 이유

아모스 1:13에서 여호와야훼는 암몬 사람들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이 영토를 넓히려고 길르앗의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갈랐기 때문입니다. 아모스가 고발한 것은 인간의 생명을 영토 확장의 수단으로 희생시키는 폭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5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그와 같은 잔혹한 행동을 합니다.

물론 아모스의 말씀을 므나헴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으로 볼 근거는 없습니다. 두 사건을 동일한 사건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정경 안에서 두 본문을 나란히 읽으면 날카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다른 민족의 잔혹함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같은 잔혹함을 행한다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왕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특권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적군을 상대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지 않습니다. 왕좌를 차지하려고 전임자를 죽인 뒤, 자신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왕이 백성을 보호하기보다 왕권을 위해 백성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신명기 17:14–20에서 왕은 자기 권력을 무한히 확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가르침 아래 머무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는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이 무제한적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후 아시리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므나헴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나라의 올바른 질서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차지한 왕좌를 유지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는 표현은 성읍이 그의 진입이나 지배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문을 닫았는지, 므나헴이 정확히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딥사의 위치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디르사가 므나헴의 출발점인지 공격 지역의 범위를 설명하는 말인지에도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정확한 지리적 범위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므나헴 — 자신의 왕좌를 지키려고 나라의 은을 바치다

열왕기하 15:17–22 본문 →

므나헴은 열 해 동안 다스립니다.

살룸이 한 달 만에 죽은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긴 통치입니다. 그러나 이 안정에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아시리아 왕 불이 그 땅을 치러 왔다. 므나헴은 불이 자기편이 되어 자기 손에 왕권을 굳혀 주도록 그에게 은 천 달란트를 주었다.열왕기하 15:19 · 본디새김

북이스라엘 내부의 왕권 다툼은 이제 국제정치의 문제로 확대됩니다.

아시리아는 당시 서아시아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행사하며 주변 나라들의 복종과 조공을 요구하던 제국이었습니다. 작은 왕국의 통치자들은 아시리아에 맞서 싸우거나, 조공을 바치고 지배를 인정하거나, 다른 나라들과 동맹을 맺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므나헴은 그 제국의 힘을 자기 왕권을 유지하는 데 이용하려 했습니다.

왕의 안정을 위해 누가 값을 치르는가?

므나헴은 아시리아 왕에게 주려고 그 은을 이스라엘의 재력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한 사람당 은 오십 세겔씩 거두었다. 아시리아 왕은 돌아갔고 그 땅에 머무르지 않았다.열왕기하 15:20 · 본디새김

표면적으로 보면 정책이 성공한 셈입니다. 왕은 자리를 지켰고, 외국 군대도 물러갔습니다.

므나헴은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쳤지만, 동시에 아시리아의 힘에 의지해야만 안정되는 왕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가 돈으로 산 것은 독립적인 안전이 아니라 당장의 정치적 안정이었습니다.

므나헴은 실제로 자기 아들에게 왕좌를 넘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불은 고대 왕명록 자료를 대조할 때 일반적으로 뒤에 등장하는 디글랏빌레셀과 같은 통치자로 이해됩니다. 바빌로니아 왕명록의 풀루와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을 연결하는 역사적 식별입니다. 다만 열왕기하 15장 자체는 두 이름이 동일 인물임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재력 있는 사람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은 군사적 능력이나 경제적 힘을 지닌 유력자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문맥상 이들은 왕이 상당한 금액의 은을 징수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지만, 정확히 어떤 신분 집단이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브가히야 — 왕궁 성채에서도 안전하지 않은 왕

열왕기하 15:23–26 본문 →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는 두 해 동안 다스립니다.

그는 아버지의 왕권을 계승했지만, 아버지가 확보하려 했던 안정까지 물려받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부관인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그를 거슬러 반역을 모의하고, 사마리아의 왕궁 성채에서 그와 아르곱과 아리에를 쳤다. 베가에게는 길르앗 사람 오십 명이 함께했다. 그는 브가히야를 죽이고 그를 이어 왕이 되었다.열왕기하 15:25 · 본디새김

왕국의 통치 중심부이자 왕이 가장 안전해야 할 장소에서 왕이 죽습니다.

앞서 스가랴는 살룸에게 죽었고, 살룸은 므나헴에게 죽었습니다. 브가히야는 베가에게 죽습니다. 처음에는 왕조가 바뀌는 일이 두드러졌지만, 이제는 왕국을 지탱해야 할 군사 조직 자체가 왕권을 위협하는 힘이 됩니다.

왕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 왕을 죽입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의 이스라엘 영토입니다. 이 지명은 뒤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때 길르앗은 왕을 세우는 사람들의 출신지가 아니라, 아시리아에 점령당하는 땅 가운데 하나로 나옵니다.

베가는 길르앗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왕이 되었지만, 그의 시대에 길르앗은 외국 제국의 손에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베가는 왕의 부관이었습니다. 그의 지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직책이었는지 모든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군사적 힘과 접근성을 가진 인물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아르곱과 아리에의 정체, 그들이 베가의 편이었는지 브가히야와 함께 공격당했는지는 히브리어 표현 때문에 해석이 갈립니다.

베가 — 왕좌는 차지했지만 백성을 잃어버리다

열왕기하 15:27–31 본문 →

베가는 스무 해 동안 다스린 왕으로 기록됩니다.

이스라엘 왕 베가 시대에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 곧 납달리의 온 땅을 점령하고, 그곳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유배했다.열왕기하 15:29 · 본디새김

이전에는 누가 이스라엘의 왕좌를 차지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에 속한 땅과 백성이 외국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명이 길게 나열되는 이유

이욘과 아벨벳마아가는 북쪽 변경에 가까운 지역이고, 게데스와 하솔은 갈릴리의 주요 지역과 연결됩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이며, 갈릴리와 납달리는 북쪽 이스라엘의 넓은 지역을 가리킵니다.

본문은 디글랏빌레셀이 어느 한 성읍만 공격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북쪽 변경에서 갈릴리와 요단강 동쪽에 이르는 여러 지역이 아시리아에 넘어갔다고 기록합니다.

열왕기하 14:25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때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땅이 다시 넓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15:29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앞 장에서는 되찾은 경계를 기록했고, 이 장에서는 빼앗긴 지역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토의 상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나타나는 유배의 장면

29절의 「그곳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유배했다」는 아시리아 왕이 정복한 지역의 주민들을 자신이 통제하는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정복민을 이주시켜 기존의 지역적 기반과 정치적 결속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 방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왕국에는 왕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 있고, 가문과 공동체가 있으며,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삶의 터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땅을 떠나 강제로 다른 나라로 옮겨집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은 처음부터 땅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셨고(창세기 12:7),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땅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땅에서 무조건 안전하리라는 보증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28:36, 64에는 언약에 불순종한 백성이 다른 나라로 끌려가고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지게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열왕기하 15:29는 아직 북이스라엘 전체의 멸망을 기록하는 구절은 아닙니다.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왕국 전체가 끝나는 일은 17장에서 기록됩니다.

아직 사마리아에는 왕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일부 백성은 이미 다른 나라로 끌려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사마리아가 함락되는 단 한 장면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땅과 백성이 빼앗기는 과정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베가의 스무 해와 호세아의 반역

베가도 결국 반역으로 죽습니다.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거슬러 반역을 모의하고 그를 쳐 죽였다. 그는 웃시야의 아들 요담 이십 년째에 베가를 이어 왕이 되었다.열왕기하 15:30 · 본디새김

왕권을 얻었던 방식이 다시 자신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이제 이런 왕위 교체를 이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새 왕이 등장해도 이미 아시리아에 빼앗긴 땅과 끌려간 백성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의 등장은 왕좌의 새로운 주인을 알리지만, 이스라엘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희망의 선언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15:30은 호세아가 요담 이십 년째에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는 반면, 15:33은 요담의 통치 기간을 열여섯 해로 기록합니다. 두 숫자는 단순하게 이어 붙이면 맞지 않습니다. 왕과 아들의 공동 통치 기간, 공식 통치 기간과 연대 계산의 차이 등으로 설명하려는 방법이 있지만, 이 장 자체가 정확한 계산법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의 숫자를 임의로 고쳐서는 안 되며, 어느 한 설명을 확정된 사실로 제시하기도 어렵습니다.

요담 — 올바른 왕의 시대에도 전쟁이 시작되다

열왕기하 15:32–38 본문 →

북이스라엘의 혼란을 길게 서술한 뒤, 본문은 다시 남유다로 돌아옵니다.

아사랴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립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을 했다. 자기 아버지 웃시야가 한 모든 일을 그대로 했다.열왕기하 15:34 · 본디새김
그러나 산당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백성은 여전히 산당들에서 제물을 바치고 태웠다. 요담은 여호와야훼의 집의 윗문을 세웠다.열왕기하 15:35 · 본디새김

이 반복은 유다 왕조의 지속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왕은 아버지에게서 왕좌를 이어받았고, 아버지가 걸어간 올바른 길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시대부터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역대하 27:3–6은 요담의 여러 건축 활동과 군사적 성과를 더 자세히 전하지만, 열왕기는 여호와야훼의 집에 윗문을 세운 일만 간략히 남깁니다. 이 기록은 요담이 예루살렘 성전을 위해 실제로 일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성전 건물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사실과 백성의 예배 질서가 온전히 바로잡혔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왜 올바른 왕의 시대에 적들이 다가오는가?

요담의 이야기는 예상 밖의 문장으로 끝을 향합니다.

그 무렵 여호와야훼는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유다를 치도록 보내기 시작했다.열왕기하 15:37 · 본디새김

우리는 흔히 올바른 왕이 다스리면 나라가 평안하고, 악한 왕이 다스리면 나라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5장은 그렇게 단순한 관계를 보여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37절은 이 전쟁이 요담 개인의 어떤 죄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담의 신앙이 부족해서 적군이 왔다거나, 특정한 건축 사업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왕이 올바르게 행동하는 시대에도 위기는 찾아올 수 있으며, 그 위기는 여호와야훼의 통치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는 각각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행동하는 통치자들입니다. 그런데 열왕기는 그들의 행동이 여호와야훼의 역사적 통치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르신과 베가가 하는 모든 일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나라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과 그 나라의 폭력이나 교만을 승인하신다는 것은 구별됩니다. 이사야 10:5–15에 나오는 아시리아에 대한 말씀에서도 이러한 구별이 드러납니다.

마지막에 이스라엘 왕이 유다의 적으로 등장하다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압박 속에서 영토를 잃고 있으면서, 동시에 남유다를 향한 군사적 행동에 가담합니다. 형제 왕국인 이스라엘과 유다는 한때 같은 왕국에 속했지만, 이제 북이스라엘 왕이 유다를 위협하는 연합 세력의 한 축이 된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갈등이 아하스 시대에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기록됩니다(열왕기하 16:5–9). 이사야 7:1–9 역시 르신과 베가가 유다를 위협하던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사야는 그 위기 속에서 아하스와 다윗 왕조에 여호와야훼를 신뢰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38절은 요담이 죽고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유다의 왕조는 다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물려받는 것은 왕좌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시작된 위협도 함께 물려받습니다.

조금 더 깊이

유다는 북이스라엘보다 안정된 왕위 계승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사무엘하 7:12–16에서 다윗에게 주어진 왕조의 약속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윗의 집은 이스라엘 왕조들과 구별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5장은 다윗 왕조의 지속을 아무런 위협도 없는 평안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다윗 왕조에 주어진 약속이 있다고 해서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가르침을 떠나도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왕좌는 남아 있지만

열왕기하 15:1–38 본문 →

북이스라엘에서는 왕들이 왕좌를 차지하는 동안 땅과 백성이 빼앗겼습니다. 남유다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왕좌를 넘기지만, 그 왕좌를 둘러싼 위협이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이스라엘의 이후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거나, 앞으로의 심판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사실을 인간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말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15장에는 전쟁에서 죽임당한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그들의 고통을 중요하지 않게 만드는 설명이 아닙니다.

열왕기하 15장은 유다 왕 요담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처럼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을 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집에 윗문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 자기 조상 다윗의 성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왕좌는 여전히 다윗의 집에 있습니다.

요담이 세운 여호와야훼의 집 윗문과 유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두 나라의 군대. 열왕기하 15장은 그 두 모습을 나란히 남긴 채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