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8–23장 · 홀로 남은 유다

되돌아간 그림자와 다가오는 날들

히스기야는 죽음을 선고받았지만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의 눈물을 보셨으며, 그의 생명에 십오 년을 더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구원을 경험한 이 왕의 이야기는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히스기야에게 이사야는 다시 찾아와, 이번에는 그의 후손과 왕궁의 모든 재물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열왕기하 20장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보여 주면서, 동시에 구원받은 사람이 그 뒤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말은 ‘집’입니다. 처음에 히스기야는 자기 집안일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어서 회복되면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약속을 듣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절들에게는 자기 집의 보물을 모두 보여 주고, 결국 그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한 왕의 생명을 둘러싼 이야기가 그의 집안과 나라의 미래를 묻는 이야기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20장 본문 읽기 →

죽음 앞에서 왕은 얼굴을 벽으로 돌린다

열왕기하 20:1–3 본문 →

히스기야의 병은 그가 악한 왕이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왕기하 18:3–6은 그를 다윗의 길을 따라 여호와야훼께 충실했던 왕으로 평가합니다. 그는 우상 숭배를 제거하고 여호와야훼를 의지했으며, 계명들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왕이 이제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습니다.

그 무렵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안일을 정리해 두어라. 너는 죽을 것이며 살지 못할 것이다.』」열왕기하 20:1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왕입니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생명이 끝나는 사건인 동시에 왕실과 왕위 계승에 영향을 주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명령에는 자기 죽음을 준비하고 집안의 일을 바로잡으라는 실제적인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죽음을 준비하기보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 여호와야훼여, 제가 당신 앞에서 진실하게,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온 것과 당신 눈에 좋은 일을 했던 것을 부디 기억해 주십시오.」 히스기야는 크게 울었다.열왕기하 20:3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자신이 완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보다, 그동안 여호와야훼를 향해 살아왔던 관계를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기억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시편의 기도들과도 통합니다(시 25:6–7; 106:4).

국가를 다스리는 왕에게도 죽음 앞에서는 왕권이나 군사력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무언가를 명령하는 대신,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자기 삶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장에서 히스기야의 가장 중요한 행동은 왕궁에서 명령을 내린 일이 아니라, 얼굴을 벽으로 돌린 일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기도는 얼핏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사용하는 표현은 열왕기가 앞서 그의 통치를 평가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특히 ‘온전한 마음’은 마음에 아무런 결함이나 죄가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마음을 나누지 않고 하나님께 향하는 충실함을 가리킵니다. 솔로몬도 백성에게 여호와야훼를 향해 온전한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했습니다(왕상 8:61). 그러나 솔로몬 자신의 마음은 나중에 다른 신들을 향해 돌아섰습니다(왕상 11:4).

아직 뜰을 벗어나지 않은 예언자

열왕기하 20:4–7 본문 →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알리고 떠납니다. 그런데 아직 가운데 뜰을 벗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합니다.

「돌아가 내 백성의 지도자 히스기야에게 말하여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보아라, 내가 너를 낫게 하겠다. 셋째 날에 너는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올라갈 것이다.』」열왕기하 20:5 · 본디새김

기도는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눈물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말로 표현한 간청뿐 아니라 말로 다 담지 못한 슬픔에도 응답하십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의 첫 선언이 히스기야의 기도 이후 새로운 선언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십오 년을 더해 주시면서 또 하나의 약속을 덧붙이십니다.

「『내가 네 수명에 십오 년을 더하겠다.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너와 이 성읍을 구해 내겠다. 내가 나를 위해, 또 내 종 다윗을 위해 이 성읍을 지키겠다.』」열왕기하 20:6 · 본디새김

여기서 한 사람의 회복은 예루살렘의 구원과 연결됩니다.

이 약속은 앞 장에서 아시리아의 위협에 맞서 예루살렘을 지키겠다고 선언하신 말씀과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왕하 19:34). 따라서 히스기야의 병과 회복 이야기는 아시리아의 위협이라는 더 큰 역사적 상황에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개인의 신실함만을 근거로 예루살렘을 지키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윗을 위해 지키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다윗에게 주신 왕조의 약속과 연결됩니다(삼하 7:12–16). 히스기야의 생명이 중요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삶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다윗 왕조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무화과를 뭉친 덩어리를 종기 위에 놓게 하고, 히스기야는 낫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치유 선언과 사람들이 실제로 시행한 처치를 나란히 기록합니다. 기적과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을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병상에서 벽을 바라보던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회복 약속의 첫 번째 목적지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가운데 뜰’은 본문의 전승에 따라 읽기가 갈립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자음으로 기록된 형태를 따르면 성읍의 가운데 부분으로 읽을 수 있고, 전통적으로 낭독하도록 제시된 형태를 따르면 뜰로 읽습니다. 본디새김은 후자를 따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기도 후에는 낫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결정이 바뀐 것일까요? 성경의 예언에는 다가올 일을 확정적으로 알리는 기능뿐 아니라, 사람을 회개와 기도로 이끌어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18:7–10은 한 민족에 대한 심판이나 복의 선언과 그 민족의 반응이 어떻게 관계하는지 설명합니다. 요나서 3:10에서도 니느웨에 선포된 재앙은 그들의 돌이킴 이후 그대로 시행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원리를 모든 예언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열왕기하 20장이 직접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연장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문제, 곧 하나님의 영원한 뜻과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응답이 정확히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20장은 19장 다음에 놓였지만, 20:1의 ‘그 무렵’은 두 사건이 반드시 기록된 순서대로 일어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20:6에서 아시리아의 위협을 여전히 구원의 대상으로 언급한다는 점은 이 사건들이 같은 위기의 시기에 속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거꾸로 움직인 그림자

열왕기하 20:8–11 본문 →

히스기야는 자신이 회복되어 셋째 날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약속의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사야는 그를 꾸짖지 않고 표징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실제로 이루실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표징입니다.

이사야가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실 것이라는 표징으로, 여호와야훼께서 왕께 이것을 주십니다. 그림자가 열 계단을 나아갈까요, 아니면 열 계단을 되돌아갈까요?」열왕기하 20:9 · 본디새김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자의 움직인 거리보다 방향입니다.

히스기야가 말했다. 「그림자가 열 계단을 기울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오. 아니오, 그림자가 뒤로 열 계단을 되돌아가게 하시오.」열왕기하 20:10 · 본디새김

이사야가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그림자를 뒤로 되돌리십니다.

왕에게 남은 시간이 다한 것처럼 보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십오 년을 더해 주셨습니다. 뒤로 움직이는 그림자는 이 선물의 의미를 눈에 보이게 드러냅니다.

그런데 열왕기는 이 놀라운 장면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왕이 그다음에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아하스의 계단이 정확히 어떤 구조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계단에 드리운 그림자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가늠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대적인 해시계와 같은 장치였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림자가 열 계단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열 시간이나 일정한 분량의 시간이 지났다는 뜻으로 바꾸어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시간이 실제로 거꾸로 흘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태양이나 지구의 움직임에 어떤 물리적 변화가 일어났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관심은 천문 현상의 원리를 밝히는 데 있지 않고,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표징에 있습니다. 아하스는 히스기야의 아버지입니다. 열왕기하 16장에서 그는 아시리아의 위협에 직면하자 여호와야훼를 신뢰하기보다 아시리아 왕에게 도움을 구하고 성전의 질서를 훼손했던 왕으로 묘사됩니다. 이사야 7:10–12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아하스에게 표징을 구하라고 하셨지만 아하스가 거절합니다. 그런 아하스의 이름이 붙은 계단에서 히스기야는 표징을 받습니다. 이 대조가 의도적으로 배치되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관련 장면과 함께 읽으면 두 왕의 반응이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병문안을 온 먼 나라의 사절들

열왕기하 20:12–13 본문 →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서신과 선물을 보냅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브로닥발라단은 아시리아의 지배에 저항했던 바벨론의 통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사절단 방문에는 정치적 관심이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는 그가 실제로 어떤 동맹이나 군사 협정을 제안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 창고 전체를 보여 주었다. 은과 금과 향료와 좋은 기름, 또 자기 기물 창고를 보여 주었고, 저장고들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 자기 집과 온 통치 영역 안에서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보여 주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열왕기하 20:13 · 본디새김

본문은 사절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대신 히스기야가 보여 준 것을 길게 열거합니다. 하나하나 열거하다가 마지막에 아무것도 남김없이 보여 주었다고 말하는 방식은 이 행동의 전면성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부와 권세를 자랑하려 했을 수 있습니다. 외교 관계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우방에게 유다의 역량을 알리려 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는 히스기야의 속마음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앞부분에서 히스기야는 자기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반면 이제 그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왕처럼 행동합니다.

병상에서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눈이 자신을 향해 있는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궁에서 그의 행동은 외국 사절들의 눈앞에 자기 재물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차이가 이사야의 다음 질문을 준비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39:2의 병행 본문은 히스기야가 사절들을 기쁘게 맞이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하 32:25는 히스기야가 자신에게 베풀어진 은혜에 합당하게 응답하지 못하고 마음이 높아졌다고 평가하며, 32:31은 바벨론 사절들의 방문을 그의 마음이 드러나는 시험으로 설명합니다. 이 내용들을 함께 읽으면, 사절들을 맞는 히스기야의 태도에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역대하는 히스기야의 마음과 겸손의 문제를 직접 평가하는 반면, 열왕기는 그의 말과 행동을 보여 주는 데 더 많은 공간을 사용합니다.

「그들이 왕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열왕기하 20:14–18 본문 →

이사야가 다시 히스기야를 찾아옵니다.

앞부분에서는 죽음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가 생명의 약속을 전하러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외국 사절단이 다녀간 뒤에 찾아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와서 말했다.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으며, 어디에서 왕께 왔습니까?」 히스기야가 말했다. 「먼 나라, 바벨론에서 왔소.」열왕기하 20:14 · 본디새김

그다음 질문은 더욱 구체적입니다.

이사야가 말했다. 「그들이 왕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히스기야가 말했다. 「내 집에 있는 것을 모두 보았소. 내 저장고들에서 내가 그들에게 보여 주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소.」열왕기하 20:15 · 본디새김

이 대답은 13절의 서술과 거의 일치합니다. 서술자가 먼저 독자에게 알려 준 사실을 히스기야가 자신의 입으로 다시 확인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반복된 사실이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보아라, 날들이 오고 있다. 네 집에 있는 모든 것과 네 조상들이 이날까지 쌓아 둔 것이 바벨론으로 실려 갈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열왕기하 20:17 · 본디새김

히스기야가 보여 준 것과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 정확히 대응합니다.

13절에서는 보여 주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17절에서는 남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보여 준 보물은 그가 혼자 벌어들인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조상들이 이날까지 쌓아 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된 왕국의 재산과 역사가 그의 집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른 나라의 소유가 된다는 선언은 왕국의 역사적 연속성이 무너질 것을 뜻합니다.

한때 예루살렘을 위협하던 나라는 아시리아였습니다. 열왕기하 18–19장에서 아시리아 왕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굴복시키려 했지만 여호와야훼께서 성읍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등장하는 나라는 바벨론입니다.

당장 바벨론은 선물을 보내고 친근하게 접근하는 먼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바로 그 나라가 훗날 유다의 보물을 가져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예언이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네게서 나올 아들들, 곧 네가 낳을 아들들 가운데 일부를 사람들이 데려갈 것이다. 그들은 바벨론 왕의 궁전에서 환관이 될 것이다.』」열왕기하 20:18 · 본디새김

이것은 왕권의 역전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루살렘을 다스려야 할 사람들이 다른 나라 왕의 궁전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히스기야의 왕궁에 있던 보물은 바벨론으로 가고, 그의 후손들 역시 바벨론으로 가게 됩니다.

열왕기하 24:13–15은 훗날 실제로 바벨론이 왕궁과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보물을 가져가고 왕실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다만 이사야의 선언을 바벨론 사절들에게 재산을 보여 준 행위 하나에 대한 기계적인 처벌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훗날 유다의 멸망은 왕들과 백성의 오랜 불순종이라는 더 넓은 역사 속에서 설명됩니다(왕하 21:10–15; 23:26–27; 24:3–4).

히스기야는 자기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미래에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환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리스(⁨סָרִיס⁩)는 궁정에서 봉사하는 환관을 가리킬 수 있지만, 문맥에 따라 고위 궁정 관리나 왕실 관원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그들이 모두 신체적으로 거세될 것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과 왕위에 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다윗의 후손들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모든 역사적 결과에서 면제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왕들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마지막 장인 25:27–30에서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던 다윗 왕가의 후손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나 왕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기록됩니다. 그것이 곧 왕국의 회복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도 다윗 왕가의 역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여지를 남깁니다. 신약에서는 이 다윗 왕조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과 연결되어 읽힙니다(눅 1:32–33). 이는 열왕기하 20장의 직접적인 예언이라기보다, 구약 전체에 이어지는 다윗 왕조의 약속에 대한 정경적 연결입니다.

「내가 사는 동안 평화와 안정이 있다면」

열왕기하 20:19 본문 →

이사야의 예언을 들은 히스기야가 대답합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말했다. 「당신이 전한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좋소.」 그는 또 말했다. 「내가 사는 동안 평화와 안정이 있다면 좋지 않겠소?」열왕기하 20:19 · 본디새김

본문은 히스기야의 동기를 완전히 밝혀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처음 기도와 마지막 대답 사이의 간격을 독자가 바라보게 합니다.

처음에 그는 자기 생명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다음 세대의 운명이 선포되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묻는 장면이 없습니다.

이 침묵은 히스기야의 내면을 단죄할 근거라기보다, 열왕기가 독자에게 남겨 놓은 질문으로 읽는 편이 신중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한 가지 읽기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심판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예언자의 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 역대하 32:26은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을 낮추었고 그 결과 그의 생애에는 진노가 임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다른 읽기는 히스기야가 자기 생애의 평화에 지나치게 만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는 크게 울며 기도했지만, 후손들의 상실을 예고받았을 때는 그들을 위한 간청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기 생애의 평화를 언급합니다. 두 읽기 가운데 하나만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요소는 반드시 서로 배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말씀에 담긴 다음 세대의 고통까지 충분히 헤아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처음 기도할 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걸어왔다고 말했습니다(20:3). 마지막에 그가 바란다고 말하는 ‘안정’(20:19)에도 같은 히브리어 에메트(⁨אֶמֶת⁩)가 사용됩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진실, 신실함, 확실성, 지속적인 안정 등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낱말의 반복이 반드시 의도적인 문학 장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읍 안으로 물을 끌어들인 왕

열왕기하 20:20–21 본문 →

본문은 히스기야의 나머지 행적을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그가 못과 수로를 만들어 성읍 안으로 물을 끌어들였다고 기록합니다.

고대 성읍이 적군에게 포위되면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물이었습니다. 성 밖의 수원에 의존하는 성읍은 적이 접근을 차단할 경우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역대하 32:2–4, 30은 히스기야가 아시리아의 공격에 대비하여 성 밖으로 흐르는 물을 통제하고 성읍 안으로 물을 공급하도록 했다고 기록합니다.

그가 건설한 수로는 실제적인 통치 능력과 위기에 대비하는 지혜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필요한 준비와 책임을 없애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9장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20장 마지막에서는 그가 실제로 성읍을 위해 이루어 낸 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로가 아무리 튼튼하더라도 왕국의 미래를 보증하지는 못합니다.

히스기야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누웠다. 그의 아들 므낫세가 그를 이어 왕이 되었다.열왕기하 20:21 · 본디새김

더해진 십오 년은 죽음의 폐지가 아니라 생명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된 생애 뒤에는 새로운 왕이 등장합니다.

다음 장에서 므낫세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열왕기하 21장은 그가 우상 숭배를 되살리고 심각한 악행을 저질렀으며, 유다의 장래에 심판을 가져오는 통치자가 되었음을 기록합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시간은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물만으로 다음 세대의 신실함이 보장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시간

열왕기하 20:1–21 본문 →

그래서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히스기야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만이 아닙니다. 더 주어진 시간을 자신의 생애보다 넓게 바라볼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본문은 히스기야의 십오 년이 얼마나 잘 사용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시간을 실패한 시간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 두 장면 사이에서 아하스의 계단에 드리운 그림자가 뒤로 열 계단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지나가 버린 것 같던 시간을 다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오직 히스기야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림자는 뒤로 돌아갔지만, 그의 생애는 다시 앞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에는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