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1–8장 ·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성문 밖에서 시작된 좋은 소식

사마리아 성문 밖에 네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차라아트에 걸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성 안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었고, 성 밖에는 아람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네 사람에게는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죽음이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사마리아를 구할 소식을 가장 먼저 발견합니다.

아무도 싸우지 않았는데 포위가 풀렸고, 아무도 구원을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구원의 소식이 발견되었습니다.

앞 장의 마지막에서 사마리아는 극심한 기근에 빠졌고, 왕은 더 이상 여호와야훼를 기다릴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6:33). 이 장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합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77장 본문 읽기 →

「내일 이맘때」 — 굶주린 성읍에 선포된 약속

열왕기하 7:1–2 본문 →

엘리사는 왕에게 말합니다.

엘리사가 말했다. 「여호와야훼의 말을 들으십시오.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 이맘때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될 것이다.』」열왕기하 7:1 · 본디새김

이 말씀은 구원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위로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식량의 양과 가격을 제시합니다. 앞 장에서 사마리아는 이미 식량 부족이 극에 달했습니다. 나귀 머리 하나가 은 여든에 거래될 정도였습니다(6:25). 그런데 엘리사는 하루 뒤에는 상당한 양의 곡식을 훨씬 낮은 가격에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왜 하필 성문인가?

고대 이스라엘의 성문은 단순히 성 안팎을 오가는 출입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거래와 재판, 공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룻기 4:1–11; 아모스 5:10–15).

그런데 지금 사마리아의 성문은 외부로부터 구원이나 식량이 들어오는 통로가 아닙니다. 포위된 성읍의 경계입니다.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고, 성 밖에는 적군이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엘리사는 바로 그 성문에서 곡식이 거래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 안의 비참한 상황이 끝날 것이라는 뜻일 뿐 아니라, 닫혀 있던 성읍과 바깥 세계 사이에 다시 왕래가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하늘에 창을 만든다 해도 가능하겠는가?

왕이 의지하던 부관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반문합니다.

왕이 그의 손에 몸을 기대던 부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했다. 「보십시오. 여호와야훼가 하늘에 창들을 만든다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가 말했다. 「보시오. 당신은 자신의 눈으로 보겠지만, 거기서 먹지는 못할 것이오.」열왕기하 7:2 · 본디새김

사마리아는 오랫동안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성 안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었고, 식량 가격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솟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일이면 곡식이 넉넉해질 것이라고 한다면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관의 말은 단순히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넘어섭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엘리사의 「당신은 자신의 눈으로 보겠지만, 거기서 먹지는 못할 것이오」라는 말은 첫 번째 예언과 짝을 이룹니다.

이제 독자는 두 가지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지켜보게 됩니다. 굶주린 성읍에 어떻게 하루 만에 식량이 생길 것입니까? 그리고 그 일을 눈으로 보는 사람이 왜 먹지 못하게 될 것입니까?

그 대답은 왕궁이 아니라 성문 밖에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한 스아는 곡식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본문에 제시된 가격대로라면 같은 한 세겔로 고운 가루는 한 스아, 보리는 두 스아를 살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이 수치만으로 당시의 평상시 곡물 가격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하늘의 창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창세기 7:11에서는 홍수가 시작될 때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하늘에 창을 내어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 내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하는 표현입니다.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 것이다」

열왕기하 7:3–4 본문 →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는 차라아트에 걸린 남자 네 명이 있었습니다.

차라아트는 현대의 한센병과 동일시할 수 없는 피부 질환의 범주입니다. 본문은 이 네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을 겪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 안에 들어가 식량을 구하거나, 성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 생계를 이어 가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포위당한 성읍의 경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였습니다.

성문 어귀에 차라아트에 걸린 남자 네 명이 있었다. 그들이 서로 말했다. 「우리가 왜 죽을 때까지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느냐?」열왕기하 7:3 · 본디새김

그들은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읍으로 들어가자고 하면, 성읍에는 기근이 있으니 거기서 죽을 것이다.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 것이다. 이제 가자. 아람 진영에 투항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우리가 살 것이고,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다.」열왕기하 7:4 · 본디새김

이 말에는 특별한 영웅적 결의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들을 살려 주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전한 예언을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적군에게 투항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가능성에 기대고 있을 뿐입니다.

믿음의 영웅이 아니라 굶주린 사람들

그들은 그저 죽고 싶지 않아서 움직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움직임이 사마리아 전체를 살리는 소식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언제나 인간의 절박한 선택을 기적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일반적인 법칙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특정한 사건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일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성 안의 권력자들에게서 성문 밖의 사람들에게 옮겨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네 사람이 아람 진영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계산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싸우지 않았는데 군대가 사라졌다

열왕기하 7:5–7 본문 →

네 사람은 해 질 무렵 아람 진영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진영 끝에 도착해 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독자는 네 사람과 함께 이 광경을 처음 발견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곧바로 아람 진영에서 이미 일어난 일을 설명합니다.

주가 아람 군대에게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말했다. 「보아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고 헷 사람들의 왕들과 이집트 왕들을 우리에게 쳐들어오도록 고용했구나.」열왕기하 7:6 · 본디새김

본문은 실제로 새로운 군대가 나타나 아람군을 공격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람군이 큰 군대의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아람군은 자신들이 들은 소리의 원인을 잘못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해 질 무렵에 일어나 달아났다. 자기들의 천막과 말들과 나귀들을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둔 채, 목숨을 건지려고 달아났다.열왕기하 7:7 · 본디새김

군대를 움직이고 물자를 운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도망친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목숨을 건지는 일이었습니다.

누구에게는 들리고 누구에게는 들리지 않았는가?

아람군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람군이 달아났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습니다.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네 사람은 하나님의 행동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그 발견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먼저 먹고 숨기다가, 마침내 좋은 소식을 전하다

열왕기하 7:8–11 본문 →

네 사람은 빈 진영의 천막 하나에 들어갑니다.

차라아트에 걸린 그 사람들은 진영 끝에 이르러 천막 하나에 들어가 먹고 마셨다. 그들은 거기서 은과 금과 옷을 가지고 가서 숨겼다. 그런 다음 돌아와 다른 천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물건을 가지고 가서 숨겼다.열왕기하 7:8 · 본디새김

이 장면은 네 사람을 이상적인 구원의 전달자로 미화하지 않습니다.

성 안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 사람은 처음에 그들에게 소식을 알리기보다 자신들이 발견한 재물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인데」

네 사람은 서로 말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인데, 우리가 잠자코 있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닥칠 것이다. 이제 가자. 가서 왕궁에 알리자.」열왕기하 7:9 · 본디새김

그들이 발견한 것은 자신들만을 위한 재물이 아니라, 성읍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소식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자신들만 알고 있다면 성 안의 사람들은 계속 죽어 갈 것입니다.

침묵에도 책임이 있는가?

그들은 지금 잠자코 있는 일이 옳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자신들이 발견한 소식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먹고 숨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좋은 소식을 발견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소식이 자기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와서 성읍의 문지기에게 소리쳐 알렸다. 「저희가 아람 진영에 가 보니, 거기에는 아무도 없고 사람 소리도 없었습니다. 다만 말과 나귀가 매여 있고 천막들이 그대로 있었습니다.」열왕기하 7:10 · 본디새김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아람군을 달아나게 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본 것만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확인한 사실에 근거한 보고입니다.

서술자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아람군에게 소리를 듣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네 사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원인을 상상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발견한 일을 정확히 전달합니다.

그렇게 좋은 소식이 문지기들에게 전해지고, 다시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벌」로 옮긴 히브리어 아본(⁨עָוֺן⁩)은 죄나 잘못을 뜻하기도 하고, 그 잘못으로 인해 받는 벌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그들이 자기들의 침묵을 단순한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왕은 왜 좋은 소식을 믿지 못했는가?

열왕기하 7:12–15 본문 →

왕은 밤중에 일어나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왕이 밤에 일어나 자기 신하들에게 말했다. 「아람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꾸몄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그들은 우리가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진영을 떠나 들에 숨으러 간 것이다. 그들은 『저들이 성읍에서 나오면 산 채로 붙잡고, 우리는 성읍으로 들어가자』라고 한 것이다.」열왕기하 7:12 · 본디새김

사마리아는 오랫동안 포위당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이 빈 진영에 음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성 밖으로 몰려 나갈 수 있습니다. 아람군이 그 순간을 노린 것이라면, 사마리아는 성문을 열었다가 적에게 점령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자신의 해석을 먼저 확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늘의 창을 부정한 부관과 함정을 의심한 왕

부관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반문했습니다. 반면 왕은 새로운 소식의 진위를 의심하고, 적군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왕이 엘리사의 예언을 다시 떠올렸는지, 그 예언 자체를 부정하려 했는지는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판단은 지나치게 비관적일 수 있지만, 위험한 상황에서 정보를 확인하려는 필요까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신하는 성읍에 남아 있는 말들을 데려가 정찰대를 보내자고 제안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논리는 절박합니다. 성읍에 남아 있는 말들도 어차피 죽을 처지라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위험이 사라졌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함정일 가능성까지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확인해 보자고 말합니다.

성문 밖의 네 사람과 성 안의 신하

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죽고, 성 안으로 들어가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 아람 진영으로 향했습니다. 신하는 남아 있는 말들도 어차피 죽을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부를 보내 확인하자고 제안합니다.

두 경우 모두 모든 것이 안전하다는 확신에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정보와 처지 안에서 가능성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직접 확인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 행동을 믿음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네 사람이나 신하가 특별한 신앙의 확신을 품고 있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은 정찰대를 보냅니다.

그들이 그 뒤를 따라 요단강까지 가 보니, 온 길에 아람 군대가 황급히 내버린 옷과 물건들이 가득했다. 사자들은 돌아와 왕에게 알렸다.열왕기하 7:15 · 본디새김

아람 진영만 비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망친 흔적이 길을 따라 이어져 있습니다. 이제 성문 밖 네 사람의 말은 정찰대가 확인한 사실과 일치합니다.

성 안의 사람들은 마침내 아람군이 떠났다는 소식을 신뢰할 만한 근거와 함께 듣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성문이 열립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다섯 마리의 말을 언급하지만, 이어서 실제로 말이 끄는 병거 두 대를 보냈다고 기록합니다. 두 숫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편성과 대응하는지 원문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문을 통과한 사람들과 먹지 못한 부관

열왕기하 7:16–20 본문 →

백성은 성문 밖으로 나가 아람 진영을 약탈합니다.

이야기는 다시 엘리사가 처음 전했던 가격으로 돌아갑니다.

백성이 나가 아람 진영을 약탈했다. 여호와야훼의 말대로 고운 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었다.열왕기하 7:16 · 본디새김

사마리아에서 곡식이 사라진 이유는 포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포위하던 군대가 갑자기 사라지고, 그들이 남겨 놓은 식량과 물자가 성읍 사람들에게 공급됩니다.

엘리사는 식량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일 이맘때 성문에서 곡식이 얼마에 거래될 것인지를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경로로 그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부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런데 성읍 전체가 구원의 소식을 누리는 순간, 한 사람에게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왕은 자신이 의지하던 부관에게 성문을 맡깁니다. 그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성문을 관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백성이 성문으로 몰려 나가면서 그를 짓밟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엘리사가 처음에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부관은 실제로 곡식이 넘쳐나는 광경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식량을 먹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가 굶어 죽은 것은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먹을 것이 생겼기 때문에 몰려 나온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었습니다.

그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장에서 그의 생명이 끝난 것입니다.

왜 같은 말씀이 세 번 반복되는가?

이 장은 같은 내용을 거듭 기록합니다.

1절에서 엘리사는 곡물 가격이 하루 뒤에 달라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2절에서 부관은 그 말씀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엘리사는 그가 보지만 먹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16절에서 곡물 가격이 실제로 달라졌다고 기록합니다. 17절에서 부관이 성문에서 짓밟혀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18–20절은 앞서 전해진 두 예언과 그 성취를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독자는 이미 두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엘리사가 무엇을 말했고, 부관이 어떻게 대답했으며, 그 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합니다.

사마리아의 경제적 회복과 부관의 죽음이 같은 말씀의 성취 안에 놓입니다.

이 사건을 근거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죽음이나 재앙을 당한다는 일반적인 규칙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부관이 죽은 것은 이 특정한 사건에서 엘리사가 전한 말씀의 성취로 기록됩니다. 그가 왜 그토록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는지, 그의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이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초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경험이나 계산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성문에서 끝나는 이야기

열왕기하 7:1–20 본문 →

열왕기하 7장은 성문에서 시작해 성문에서 끝납니다.

처음 엘리사의 말씀은 내일 이맘때 곡식이 얼마에 거래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날 때 독자에게 남는 것은 곡식의 가격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가장 뜻밖의 사람들이 그 소식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우리는 다시 사마리아 성문을 보게 됩니다.

그곳에는 이제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오늘 음식을 얻었습니다. 성문 밖에 버려진 아람의 물자들이 사마리아의 식량이 되었습니다. 백성은 그곳을 드나들며 곡식을 얻습니다.

그러나 성문 한가운데에는 왕의 부관이 짓밟혀 죽어 있습니다. 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구원을 눈으로 보았지만, 그 구원의 식탁에는 앉지 못했습니다.

성문은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나가서 먹을 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처음 전했던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