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1–8장 ·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되찾은 집과 빼앗은 왕위, 꺼지지 않는 등불
열왕기하 8장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세 이야기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한 여자가 잃어버린 집과 밭을 되찾습니다. 한 신하가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왕들이 잇따라 등장하지만, 여호와야훼는 그 왕조를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세 이야기에는 공통된 질문이 흐릅니다. 사람의 삶과 나라의 앞날은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일곱 해가 지나 다시 왕 앞에 선 여자
한때 왕의 도움이 필요 없었던 여자
8장은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살려 준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 수넴 여자는 엘리사를 정성껏 대접했고, 엘리사의 말대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여자는 엘리사를 찾아갔고,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다시 살렸습니다(왕하 4:8–37).
그런데 8장에서 여자가 왕에게 호소하는 장면은 4장의 한 대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엘리사는 여자가 자신을 위해 베푼 호의에 보답하려고 왕이나 군대 지휘관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자기 백성 가운데 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왕하 4:13). 왕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자기 삶의 터전이 안정되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여자가 이제 왕에게 직접 호소하러 갑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야훼가 일곱 해 동안 기근을 부르셨다고 말하며, 여자에게 가족을 데리고 떠나라고 권했습니다. 여자는 그 말에 따라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가서 일곱 해를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언제나 어려움을 없애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 피할 길을 알려 주시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녀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에 기근을 견딜 수 있었지만, 그 선택에도 대가가 있었습니다. 일곱 해 뒤 돌아온 그녀는 자기 집과 밭을 되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본문은 그동안 누가 재산을 차지했는지, 어떤 법적 문제가 생겼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자가 왕에게 호소해야 했다는 사실에서,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던 사람에게 귀향은 곧바로 옛 생활의 회복을 뜻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왕과 이야기가 된 여자
여자가 왕에게 도착했을 때, 왕은 게하시에게 엘리사가 행한 큰일들을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게하시가 엘리사가 죽은 사람을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침 엘리사가 아들을 살려 준 여자가 자기 집과 밭에 관해 왕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게하시가 말했다. 「저의 주인이신 왕이시여, 이 여자가 바로 그 여자이고, 이 아이가 엘리사가 살려 준 아들입니다.」열왕기하 8:5 · 본디새김
열왕기하 4장에서 엘리사가 살린 것은 한 아이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8장에서 그 아이의 생존은 어머니가 잃어버린 집과 밭을 되찾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앞선 구원이 새로운 회복의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왕이 그 여자에게 묻자 여자는 그에게 이야기했다. 왕은 그 여자를 위해 내시 한 사람을 붙여 주며 말했다. 「이 여자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여자가 이 땅을 떠난 날부터 지금까지 그 밭에서 난 모든 소출을 돌려주어라.」열왕기하 8:6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현재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나아간 조치입니다. 여자가 부재했던 기간에 발생한 경제적 손실까지 회복하려는 결정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바로 그 순간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타나고, 왕은 그 사람의 삶을 회복시키는 판결을 내립니다. 독자는 이 절묘한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이 인간의 판단과 제도를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왕이 한 가정의 재산을 돌려주는 장면 다음에, 한 신하가 왕의 생명과 왕위를 빼앗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한 가지 시간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5:27에서 게하시는 나아만의 선물을 탐낸 일로 차라아트를 겪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왕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게하시가 벌을 받기 이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고, 본문의 순서가 반드시 실제 사건의 연대순만을 따르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8장 자체가 엘리사가 과거에 여자에게 말해 두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다만 정확한 시점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엘리사가 다마스쿠스에서 흘린 눈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묻는 아람 왕
엘리사가 다마스쿠스에 도착했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은 병들어 있었습니다.
아람은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충돌해 온 나라였습니다. 열왕기하 6–7장에서는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를 포위해 극심한 기근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왕이 하사엘에게 말했다. 「네 손에 예물을 들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라. 그를 통해 여호와야훼에게 『제가 이 병에서 살아나겠습니까?』 하고 물어라.」열왕기하 8:8 · 본디새김
아람 왕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적이지만, 자신의 생사가 걸린 문제에서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를 찾습니다. 왕은 하사엘을 보내면서 예물을 가져가게 합니다. 그 양은 낙타 마흔 마리에 실을 만큼 많았습니다. 이는 왕이 엘리사의 대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사엘은 엘리사 앞에서 벤하닷을 「당신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8:9). 실제 혈연관계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예언자 앞에서 왕을 낮추어 표현한 외교적이고 공손한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은 수많은 사람을 지휘할 수 있고 막대한 재물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지 못합니다. 반면 정치적 권력을 가진 왕이 아닌 엘리사는 여호와야훼께서 보여 주신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왕이 많은 것을 지배할 수 있어도 자기 생명의 마지막까지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살아나지만, 반드시 죽는다
엘리사는 하사엘에게 말합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말했다. 「가서 그에게 『반드시 살아나실 것입니다』라고 말하시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가 반드시 죽을 것임을 내게 보여 주었소.」열왕기하 8:10 · 본디새김
엘리사는 벤하닷의 죽음을 알고 있었고, 하사엘은 그 말을 들은 뒤 왕에게 돌아갔습니다.
엘리사는 왜 하사엘을 바라보다 울었을까?
엘리사는 하사엘을 오래 바라봅니다. 그리고 웁니다.
하사엘이 말했다. 「주인님, 어찌하여 우십니까?」 그가 대답했다. 「당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저지를 악을 내가 알기 때문이오. 당신은 그들의 요새들을 불태우고, 그들의 젊은이들을 칼로 죽이고, 그들의 어린아이들을 메어쳐 산산이 으스러뜨리고, 그들의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가를 것이오.」열왕기하 8:12 · 본디새김
여기서 예언은 추상적인 국가의 패배를 말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사람들의 몸과 가정에 남길 구체적인 상처를 보여 줍니다.
이 장면에서 예언자의 모습은 앞선 이야기들과 크게 다릅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 그는 죽은 아이의 생명을 회복시켰습니다. 6장에서는 아람 군대를 포로로 잡았을 때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고 먹여 돌려보내게 했습니다(왕하 6:21–23).
그런 엘리사가 이제 아람의 미래 통치자를 바라보며 울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지만, 그 일에 무감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말씀 속에서 고통당할 사람들의 운명을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예언자가 어떤 사건을 예고했다고 해서 그 사건에 담긴 모든 인간의 행동이 선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사엘의 왕위 등극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과 하사엘이 앞으로 저지를 잔혹한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서로 구별해야 합니다.
하사엘은 자신의 미래를 몰랐을까?
하사엘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반문합니다.
하사엘이 말했다. 「개에 불과한 당신의 종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엘리사가 말했다. 「여호와야훼가 내게 당신이 아람의 왕이 되는 것을 보여 주었소.」열왕기하 8:13 · 본디새김
그가 정말 그런 악행을 상상할 수 없어서 놀란 것인지, 왕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겸손한 말투로 자신의 야망을 감춘 것인지는 본문만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긴장은 오히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드러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는 기름을 붓는 의식이 없습니다. 엘리사는 하사엘이 왕이 될 것을 알려 줄 뿐, 벤하닷을 죽이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예언을 들은 다음 날
하사엘은 왕에게 돌아가 엘리사가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이튿날 덮개를 물에 적셔 벤하닷의 얼굴 위에 펼쳐 덮습니다.
벤하닷은 죽고, 하사엘이 왕이 됩니다.
여기서 예언과 인간의 행동 사이에 불편한 질문이 남습니다. 하사엘은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행동했습니까, 아니면 이미 품고 있던 생각을 실행했습니까?
본문은 그의 마음속 동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언이 하사엘의 야망을 처음 만들어 냈다고도, 그가 이전부터 모든 일을 계획했다고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첫 이야기에서 여자는 엘리사의 말을 듣고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하사엘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돌아간 뒤 왕을 죽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미래에 관한 말을 들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행동은 극명하게 다릅니다.
그리고 이제 하사엘이 왕이 되었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에 가져올 위협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전해지는 히브리어 본문의 자음으로 기록된 형태인 케티브는 로, ‘아니다’이고, 전통적으로 읽도록 지시된 케레는 로, ‘그에게’입니다. 두 형태는 소리가 비슷하지만 문장의 의미를 크게 바꿉니다. 케레를 따르면 엘리사는 벤하닷에게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고 전하라고 말하면서, 그가 결국 죽을 것이라고 밝힙니다. 반면 케티브를 따르면 살아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답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이 이 차이를 어느 방향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긍정적인 읽기를 따르면 병 자체로는 회복할 수 있지만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어지는 15절에서 하사엘이 왕의 죽음에 직접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병이 나을 가능성과 살해에 의한 죽음을 명시적으로 구별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부정적인 읽기를 따르면 엘리사는 처음부터 왕의 죽음을 예고했지만, 하사엘이 그 사실을 왕에게 숨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절은 매우 기이한 장면을 묘사합니다. 본문의 히브리어는 누가 얼굴을 굳혔고 누가 민망해졌는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하사엘을 응시하여 그를 무안하게 했다는 읽기와, 엘리사 자신이 불편해질 정도로 그 시선을 유지했다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하사엘은 자신을 개라고 부릅니다. 고대의 이런 자기 비하 표현은 상대방 앞에서 자신의 지위를 낮추는 말입니다. 여기서 열왕기상 19:15와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는 오래전에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주어진 말씀이 이제 엘리사의 입을 통해 하사엘에게 전해집니다. 본문은 젖은 덮개가 왕의 죽음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일반적으로 질식에 의한 살해로 이해되지만, 구체적인 생리적 과정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악한 왕 아래에서도 꺼지지 않는 등불
유다의 왕은 왜 이스라엘 왕처럼 행동하는가?
16절부터 이야기는 갑자기 왕들의 통치 기록으로 바뀝니다.
여기에는 이름 때문에 혼동하기 쉬운 두 왕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왕 요람은 아합의 아들이고, 유다 왕 여호람은 여호사밧의 아들입니다.
16절은 이스라엘 왕 요람의 통치 오 년째, 여호사밧이 아직 유다의 왕으로 있던 때에 여호람이 유다 왕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를 여호사밧과 여호람의 공동 통치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한 연대와 즉위 연도의 계산은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아합 집안이 한 것처럼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걸었다.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열왕기하 8:18 · 본디새김
이 혼인은 단순히 두 왕가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 주는 기록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 혼인이 유다 왕의 신앙적 방향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분열되어 있었지만, 유다는 다윗 왕조를 통해 별도의 통치 계보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왕조의 후손이 아합 집안의 행동을 따라 하면서, 북왕국을 향한 비판이 남왕국에도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여호람은 혈통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행위로는 아합 집안을 닮았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야훼는 유다를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자기 종 다윗 때문에 유다를 멸망시키려 하지 않았다. 다윗에게 그의 아들들을 위한 등불을 언제나 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열왕기하 8:19 · 본디새김
여기서 「그러나」가 중요합니다.
유다 왕이 악을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멸망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정반대의 사실을 말합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여호와야훼는 다윗의 뒤를 이을 후손의 왕권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손이 잘못하면 징계하겠지만, 다윗에게 베푸신 신의를 거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1:36에서는 다윗을 위한 등불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8:19에서는 그 등불이 다윗의 아들들과 연결됩니다. 등불은 밤을 밝히는 작은 빛입니다. 여기서는 다윗의 왕조가 이어지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다윗의 후손이 왕위를 지킬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의 변함없는 충성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다윗에게 하신 약속에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의 약속 자체가 잘못에 대한 징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열왕기하 8장에서도 유다의 왕권은 곧 심각한 위기를 겪습니다. 따라서 등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보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인간의 잘못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간의 잘못이 하나님의 약속을 즉시 무효로 만들지도 못합니다.
이 긴장이 바로 다음 사건에서 드러납니다.
왕은 전투를 치렀지만 나라의 지배권은 잃었다
20절은 에돔이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기 왕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에돔은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왔고(삼하 8:13–14), 이후 유다 왕국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22:47은 여호사밧 시대 에돔에 독립된 왕이 없고 왕을 대신하는 관리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여호람은 병거를 거느리고 출정하여 밤에 에돔 군대와 싸웁니다. 21절에는 왕이 에돔 사람들을 쳤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뒤이어 백성이 자기 천막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에돔은 유다에 반역하여 그 지배에서 벗어났고, 오늘까지 그 상태를 유지해 왔다. 바로 그 시기에 립나도 반역했다.열왕기하 8:22 · 본디새김
여호람이 전투에서 에돔 사람들을 쳤더라도, 유다는 에돔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립나는 유다 영토 안에 있었고, 여호수아 21:13에서는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성읍 가운데 하나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반역은 유다의 대외 지배권만이 아니라 내부 통치에도 균열이 발생했음을 보여 줍니다.
역대하 21:10은 립나의 반역을 여호람이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버린 것과 명시적으로 연결합니다. 열왕기하 8장은 직접적인 원인 설명 대신 왕의 악행과 이어지는 정치적 쇠퇴를 나란히 배치합니다.
다윗 왕조는 계속되지만, 그 왕조가 다스리는 나라의 힘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여호람은 결국 죽고, 다윗성에 묻힙니다.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잇습니다.
등불은 한 세대 더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새 왕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에는 왕이 에돔 사람들을 쳤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뒤이어 백성이 자기 천막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도망친 백성이 어느 편인지, 병거 지휘관들이 누구 편에 속하는지에 관해서는 원문을 달리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다윗 왕조를 위한 등불의 약속은 후대에 좋은 왕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읽히게 됩니다. 시편 89편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면서도 왕조가 겪는 굴욕을 탄식합니다. 예레미야 23:5–6은 다윗에게서 의로운 후손이 일어나 정의와 공의를 행할 날을 말합니다. 이러한 본문들은 다윗 왕조의 지속이 단순히 왕족의 혈통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왕에게 기대되는 것은 올바른 통치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소개하고 그의 왕권을 말하는 본문들(눅 1:32–33 등)은 이러한 구약의 기대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8장 자체의 관심은 먼저, 다윗의 후손들이 악을 행하는 현실 속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거두지 않으셨다는 데 있습니다.
두 왕가가 한 길을 걷다
악한 길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다
유다의 새 왕 아하시야는 스물두 살에 왕위에 올라 한 해 동안 다스립니다.
본문은 그의 어머니 아달랴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딸이라고 소개합니다. 앞의 18절에서는 여호람의 아내를 아합의 딸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아달랴를 오므리의 딸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딸이라는 말이 반드시 바로 다음 세대만을 뜻하지 않고 후손을 가리킬 수 있으므로, 아달랴를 오므리 왕조의 후손이라는 의미에서 소개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대하 21:6에서도 여호람의 아내를 아합의 딸이라고 합니다. 다만 열왕기하 8:26 자체는 오므리의 딸이라고 기록하므로, 본문이 그 정확한 세대 관계를 명시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아합 집안의 길을 걸었으며, 아합 집안처럼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 그가 혼인으로 아합 집안과 맺어져 있었기 때문이다.열왕기하 8:27 · 본디새김
이 문장은 18절의 여호람에 대한 평가와 거의 같은 구조입니다. 아버지가 아합 집안의 길을 걸었고, 아들도 아합 집안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반복은 단순히 두 왕이 모두 나빴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한 세대의 선택이 다음 세대의 삶과 통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왕실의 혼인은 정치적 안정과 외교적 협력을 위해 맺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는 그러한 관계가 신앙적 방향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장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는 단순히 에돔의 독립이나 영토의 상실이 아닙니다.
다윗 왕조를 이어 가는 사람들이 그 왕조가 세워진 신앙적 토대를 잃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맹을 맺은 두 왕이 하사엘과 싸우다
28절에서는 두 왕국의 정치적 결합이 실제 군사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엘리사가 눈물을 흘리며 장차 이스라엘을 해칠 것이라고 말했던 하사엘이 실제로 아람의 왕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사엘을 상대로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이 연합하여 싸웁니다.
전쟁의 장소는 라못 길르앗입니다. 이곳은 이전에도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의 분쟁 지역이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서는 아합이 라못 길르앗을 되찾으려 전쟁에 나섰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아들 요람이 같은 지역에서 아람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습니다.
그때 아합과 함께 전쟁에 나선 왕은 유다의 여호사밧이었습니다(왕상 22:2–4). 이번에 함께 출정한 왕은 여호사밧의 후손인 아하시야입니다. 북왕국과 남왕국의 왕들이 함께 아람을 상대한다는 구도가 다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두 왕국이 협력한다는 사실 자체가 곧 선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어떤 왕조의 영향을 받고, 누구의 길을 따라 통치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12절에서 예고된 모든 잔혹행위가 여기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전투에서 본문이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요람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사엘이 이스라엘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엘리사의 말이 현실의 정치와 전쟁 속으로 들어왔음은 분명합니다.
병든 왕을 찾아가는 또 한 사람의 방문자
요람 왕은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던 중 라마에서 아람 사람들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왔다.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요람이 앓고 있었으므로 그를 보러 이스르엘로 내려갔다.열왕기하 8:29 · 본디새김
앞에서는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왕은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내 자신의 생사에 관해 물었습니다. 하사엘이 돌아온 다음 날 왕은 죽었습니다.
두 왕의 병이 같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8장은 요람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든 왕과 그를 찾아오는 인물이라는 장면의 유사성은 독자의 주의를 끕니다.
벤하닷의 병상은 왕권이 바뀌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요람의 병상에는 아합 집안과 다윗 집안의 두 왕이 함께 있게 됩니다.
맺음 — 이스르엘로 내려간 두 왕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사람들은 미래를 바꾸려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장면의 배후에는 여호와야훼가 이미 하신 말씀과 앞으로 이루실 약속이 놓여 있습니다. 권력을 차지했다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 아니며, 고난을 겪는다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나 약속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들의 선택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이스르엘입니다.
아합 집안의 길을 따르는 두 왕이 한곳에 있습니다. 그들을 공격한 하사엘은 이미 아람의 왕이 되었고,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하던 엘리사는 이 장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왕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알지 못합니다.
독자는 다만 그들의 왕권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그리고 그런 왕들의 시대에도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르엘에는 상처 입은 왕이 누워 있고, 또 한 왕이 그를 찾아와 있습니다. 다윗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그 빛 아래 서 있는 왕들이 걷는 길은 어둡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