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5–10장 · 예루살렘과 언약궤
은혜를 적의로 받아들였을 때
전쟁은 때로 칼을 뽑기 전에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적대 행위가 이미 일어난 일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아버지를 잃은 아들을 위로하려던 일이 국가 간 전쟁으로 바뀌었을까요?
이야기를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다윗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하눈은 다윗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확신하면서 파국을 일으킵니다. 반면 전쟁터에 선 요압은 자기들이 싸워야 할 이유를 말하면서도, 마지막 결과에 대해서는 확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이 두 태도의 차이가 사무엘하 10장의 전쟁 이야기 전체를 관통합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왕과 의도를 의심하는 신하들
암몬의 왕이 죽고 아들 하눈이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왕의 죽음은 단순한 가족의 슬픔이 아닙니다. 왕위 계승은 주변 나라들과 맺어 온 관계가 다시 확인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왕이 기존의 우호 관계를 유지할지, 적대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말했다. 「나하스가 내게 은혜를 베푼 것처럼, 나도 그의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겠다.」 다윗은 아버지를 잃은 하눈을 위로하려고 자기 신하들을 보냈다.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도착했다.사무엘하 10:2 · 본디새김
다윗은 자기 집안이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신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이방 왕과의 관계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나하스가 다윗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사무엘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이 확인시켜 주는 것은 다윗 자신이 나하스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은혜를 나하스의 죽음과 함께 끝내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응답하려 합니다.
그런데 암몬의 지도자들은 이 행동을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암몬 자손의 우두머리들이 자기들의 주인 하눈에게 말했다. 「다윗이 왕을 위로할 사람들을 보냈다고 해서 왕의 아버지를 공경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이 신하들을 왕께 보낸 것은 이 성읍을 살피고 정탐하여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닙니까?」사무엘하 10:3 · 본디새김
그런데 본문은 다윗이 사절들에게 정탐을 명령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보낸 목적을 위로라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암몬 지도자들의 말은 본문에서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그들의 의심입니다.
다윗은 이미 블레셋과 모압, 아람 등을 상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 왕이 새로 즉위한 하눈에게 사절단을 보냈다면,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이유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계할 이유가 있다는 것과 상대가 실제로 적대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들은 다윗이 무엇을 하려는지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의심을 사실처럼 제시하고, 하눈에게 그 의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듭니다. 하눈이 그 말을 얼마나 깊이 검토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그는 그들이 제시한 의심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낳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11장에는 나하스라는 암몬 왕이 야베스 길르앗을 위협하다가 사울에게 패배한 사건이 나옵니다. 이 인물이 다윗이 언급한 나하스와 동일 인물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약 동일 인물이라면, 사울과 적대 관계였던 나하스가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에게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한 역사적 재구성이지, 성경이 직접 전하는 사실은 아닙니다. 사무엘하 8장에서는 암몬도 다윗이 정복한 민족들의 명단에 등장합니다(8:12). 다만 8장이 여러 전쟁을 요약하고 있으므로, 그 기록을 근거로 10장의 사건보다 먼저 암몬이 정복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절단의 수염과 옷을 자르다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그들의 수염을 절반씩 깎고, 그들의 옷을 엉덩이 높이에서 반으로 잘라 낸 뒤 돌려보냈다.사무엘하 10:4 · 본디새김
하눈이 사절단의 수염과 옷을 함께 훼손한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모욕적인 모습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외교 사절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낸 왕을 대표합니다. 사절을 모욕하는 것은 사절 개인에게 수치를 주는 동시에 그들을 보낸 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 다윗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은 뜻밖입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 일을 알리자,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맞이하게 했다. 그들이 몹시 수치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왕이 말했다. 「너희 수염이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러 있다가 돌아오너라.」사무엘하 10:5 · 본디새김
다윗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군대를 소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그런 모습으로 왕궁과 사람들 앞에 즉시 나타나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눈은 자기 나라에 온 사람들의 의도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들의 수염을 깎았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돌아오는 사람들의 수치심을 살피고 그 수염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게 했습니다.
이 장에서 다윗이 처음 보호하려 한 것은 자신의 명예보다 모욕당한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신하들 사이의 개인적인 수치 문제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당시 수염은 남성의 외모와 명예에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수염을 자르거나 깎는 일이 언제나 모욕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15:2나 예레미야 48:37에서는 수염을 깎는 일이 애도의 표현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하눈이 한 행동은 애도나 자발적인 몸단장이 아닙니다. 여리고는 요단강 서쪽에 있는 성읍으로, 암몬에서 이스라엘 중심부로 돌아오는 길과 연결되는 지역입니다. 다만 본문은 다윗이 여리고를 선택한 구체적인 지리적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다
암몬 자손은 자기들이 다윗에게 역겨운 존재가 된 것을 알았다. 암몬 자손은 사람을 보내 아람 벳르홉과 아람 소바의 보병 이만 명, 마아가 왕과 그의 군사 천 명, 돕 사람 만 이천 명을 고용했다.사무엘하 10:6 · 본디새김
이것은 암몬 사람들이 다윗에게 심하게 미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암몬 사람들은 다윗이 자신들을 적대할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그 의심 때문에 다윗의 사절들을 모욕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으로 다윗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처음에 그들이 두려워했던 관계가 실제로 생겨난 것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다른 길을 모색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록된 행동은 군사력 확보였습니다. 기록된 병력만 합해도 33,000명입니다. 이 수치는 고용한 병력의 합계이며, 암몬 자체의 군대를 포함한 전체 병력 수는 아닙니다.
이 선택은 작은 갈등을 더 큰 전쟁으로 확대합니다.
처음의 사건은 다윗의 사절들을 모욕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암몬만이 아니라 북쪽의 여러 아람계 세력까지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입구에 전열을 갖추었다. 소바와 르홉의 아람군, 돕 사람들과 마아가군은 따로 들판에 있었다.사무엘하 10:8 · 본디새김
성문 가까이에 있는 군대는 성읍과 연결되어 있지만, 들판에 있는 군대는 열린 공간에서 움직이며 싸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암몬의 성읍을 향해 진군했다면, 성문을 지키는 암몬군과 바깥에 배치된 연합군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요압과 용사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보냅니다. 본문은 아직 어느 쪽이 유리한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요압이 마주한 상황을 통해 이 전쟁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보여 줍니다.
앞뒤에 적이 있을 때 — 요압과 아비새의 약속
요압은 앞뒤로 적의 진이 자신을 향해 펼쳐진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모든 정예병 가운데서 일부를 뽑아 아람군에 맞서 전열을 갖추었다.사무엘하 10:9 · 본디새김
이 상태에서는 한쪽 적에게 집중하다가 다른 쪽에서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전열이 무너지면 퇴각하는 길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요압은 병력을 둘로 나눕니다.
자신은 정예병을 데리고 아람군을 상대하고, 나머지 병력은 형제 아비새에게 맡겨 암몬군을 상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군대를 나누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두 부대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무너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압이 말했다. 「아람군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구해 다오.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구하겠다.」사무엘하 10:11 · 본디새김
요압은 자신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비새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 모두 패배할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문장의 구조도 정확하게 대칭을 이룹니다. 이 대칭은 두 지휘관이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단순한 형제애의 표현이 아니라 두 부대를 연결하는 구체적인 전술적 약속입니다.
그런데 요압은 곧이어 전쟁터의 동료들에게 훨씬 넓은 목적을 제시합니다.
「힘을 내라.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해 힘을 내자.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시기를 바란다.」사무엘하 10:12 · 본디새김
힘을 내되, 결과를 소유하지 않는다
요압은 아비새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같은 위험 속에 서 있음을 인정합니다. 전투의 의미를 지휘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백성과 하나님께 속한 성읍들의 안전에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을 수행하는 요압 자신이 제시한 명분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군사 행동이 실제로 이 목적에 완전히 부합했는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합니다.
요압은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결과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습니다. 그는 싸울 준비를 하면서도 마지막 판단과 결과를 여호와야훼께 맡깁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자신의 계획 안에 가두지 않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어떤 결과를 주셔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하눈의 지도자들은 다윗의 사절단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자신 있게 판단했습니다. 그 확신은 실제로 확인되지 않은 의심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요압은 오히려 자신이 처한 위험을 정확히 보고, 자신이 할 일을 계획하면서도 최종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전쟁을 일으킨 쪽에서는 불확실한 의도를 확신했고, 전쟁터에 선 요압은 불확실한 결과를 인정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먼저 요압은 두 차례 힘을 내라고 말합니다. 앞의 명령은 상대에게 강해지라고 요구하는 표현이고, 뒤의 표현은 함께 힘을 내자는 뜻입니다. 이런 태도는 사무엘상 3:18에서 엘리가 사무엘을 통해 여호와야훼의 심판 말씀을 들은 뒤 보인 응답과도 닮아 있습니다. 엘리 역시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눈에 좋은 일을 행하시리라는 뜻으로 말합니다. 두 상황은 다릅니다. 엘리는 이미 선포된 심판을 받아들이고, 요압은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의 판단이 인간의 소망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달아나는 두 군대 — 첫 전투의 결말
요압의 말이 끝나자 전투가 시작됩니다.
요압과 그와 함께한 병사들이 아람군과 싸우려고 다가가자, 아람군은 요압 앞에서 달아났다.사무엘하 10:13 · 본디새김
그런데 본문은 치열한 백병전이나 긴 전투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장면도 비슷합니다.
암몬 자손은 아람군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아비새 앞에서 달아나 성읍으로 들어갔다. 요압은 암몬 자손들에게서 물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사무엘하 10:14 · 본디새김
두 적군이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앞뒤에서 공격하려 했지만, 한쪽이 무너지자 다른 쪽도 물러섭니다. 암몬이 고용한 군대는 이스라엘을 위협하기 위한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군대가 먼저 달아나면서 암몬은 성읍 안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아람군은 달아났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암몬군은 성읍 안으로 들어갔지만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지만, 암몬과의 갈등 자체가 해결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적군이 다시 모입니다.
조금 더 깊이
왜 요압이 성읍을 함락하지 않고 돌아갔을까요? 본문은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이미 전투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성읍을 공격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확인된 사실로 말할 수 없습니다.
더 큰 전쟁으로 번지다
아람군은 자기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 것을 보고 함께 모였다.사무엘하 10:15 · 본디새김
여기서 주어는 암몬이 아니라 아람군입니다. 처음에 아람 세력은 암몬이 고용한 병력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들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전쟁의 중심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닷에셀은 사람을 보내 강 건너편의 아람군을 불러냈다. 그들은 헬람으로 왔고, 하닷에셀의 군대 지휘관 소박이 그들 앞에 섰다.사무엘하 10:16 · 본디새김
하닷에셀은 사무엘하 8장에서도 등장한 소바 왕입니다. 8장에서는 다윗이 그를 무찌르고 많은 병력과 전리품을 얻었다고 기록했습니다. 10장에서는 그가 다시 등장하여 더 넓은 지역에서 군대를 불러 모읍니다.
이제 다윗은 요압에게 군대를 맡기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온 이스라엘을 모아 요단강을 건너 헬람으로 갔다. 아람군은 다윗에 맞서 전열을 갖추고 그와 싸웠다.사무엘하 10:17 · 본디새김
이 표현은 군사적 동원의 규모가 커졌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왕이 국가적인 규모로 군대를 소집했다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앞선 전투와 같습니다.
아람군은 이스라엘 앞에서 달아났다. 다윗은 아람군 가운데 병거 칠백 대에 탄 병사들과 기병 사만 명을 죽였다. 또 그 군대의 지휘관 소박을 쳤고, 소박은 거기서 죽었다.사무엘하 10:18 · 본디새김
그리고 전쟁의 마지막 결과는 단순한 군사적 패배를 넘어 정치적 관계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하닷에셀을 섬기던 모든 왕은 자기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 것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고 이스라엘을 섬겼다. 아람 사람들은 암몬 자손을 다시 돕는 것을 두려워했다.사무엘하 10:19 · 본디새김
화친은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여기서는 이어지는 ‘이스라엘을 섬겼다’는 표현 때문에 단순히 대등한 동맹을 맺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군사적 패배가 정치적인 종속 관계의 변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10장 마지막에서 아람 세력은 굴복하지만, 암몬이 항복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11:1에서는 요압이 다시 암몬 자손을 공격하고 랍바를 포위합니다. 따라서 10장의 승리는 아람의 개입을 끝내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암몬과의 전쟁 자체는 다음 장으로 이어집니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사무엘하 10장은 전쟁을 기록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을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보내는 군대에 특별한 계시가 임했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물론 8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선언은 다윗 왕권의 신학적 배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의 전쟁에 대한 모든 판단을 그 선언 하나로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지우거나, 그것을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처럼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암몬의 모욕과 군사적 준비, 이스라엘의 대응, 아람의 패배를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일어난 모든 죽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셨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자기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책임 있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면서도, 자기 판단을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을 반드시 8장의 승리 이후에 하닷에셀이 다시 세력을 회복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8장은 다윗의 여러 전쟁을 압축하여 보여 주는 요약적 성격을 지닙니다. 반면 10장은 특정 전쟁이 어떤 사건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확대되었는지를 상세히 기록합니다. 따라서 두 장의 기록은 일부 같은 전쟁이나 군사 활동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확한 연대 관계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강 건너편’은 앞서 언급된 유프라테스강 일대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16 자체는 강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므로, 그 위치를 이 절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대상 19:18은 같은 전투에서 아람의 병거 칠천 대에 탄 병사들과 보병 사만 명이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10:18의 병거 칠백 대, 기병 사만 명과 다릅니다. 전승 과정의 숫자 변화나 병종을 기록하는 방식의 차이 등으로 설명할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설명이 옳은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두 수치를 임의로 합하거나, 어느 한쪽을 원래의 기록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위로의 사절단에서 전쟁터로
하눈의 잘못은 위험을 의식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의심을 이미 밝혀진 사실처럼 취급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는 데 있습니다. 요압의 말은 그와 다른 태도를 보여 줍니다. 인간의 판단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 안에서도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눈은 다윗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의심 때문에 적을 만들었고, 그 적을 상대하려고 군대를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군대마저 패배하자, 아람 사람들은 이제 암몬을 돕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처음에는 은혜를 의심했던 나라가, 마지막에는 도움을 잃어버린 나라로 남습니다.
그렇게 사무엘하 10장은 처음에 보내졌던 위로의 사절단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끝납니다. 암몬의 성문 뒤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 남아 있고, 그들을 돕기 위해 들판으로 나왔던 아람군은 더 이상 그 싸움에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