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벨과 큰 뱀
먹는 신들과 먹이시는 하나님
바벨론의 왕은 자기 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신전에는 엄청난 양의 음식이 차려지고, 다음 날이면 모두 사라집니다. 왕에게 이것은 충분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웃습니다.
왕이 살아 있는 신이라고 믿는 것은 속이 진흙이고 겉이 청동인 물건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한 번도 음식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이 장은 누가 살아 있는 신인가를 묻는 이야기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먹고 누가 먹이는가를 통해 그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에 고레스 왕은 처음 벨에게 외쳤던 고백을 다니엘의 하나님께 드립니다. 무엇이 왕의 눈을 열었을까요?
벨의 신전 — 보이는 것을 믿는 왕
이야기는 왕권의 변화로 시작합니다.
아스티아게스 왕이 조상들 곁으로 갔고, 페르시아 사람 고레스가 그의 왕권을 이어받았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1 · 본디새김
아스티아게스는 메대의 마지막 왕이고, 고레스는 그를 제압한 페르시아 왕입니다. 고대 바벨론의 나보니두스 연대기는 고레스가 아스티아게스를 무찌르고 붙잡은 사건과, 나중에 바벨론을 정복한 사건을 구별하여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실제 사건들을 자세히 나열한 역사적 연대기라기보다, 이야기를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통치 아래에 놓는 간결한 도입으로 읽는 편이 적절합니다.
다니엘은 왕과 가까운 벗이며 다른 벗들보다 명망이 높습니다. 앞 장에서 소년으로 등장했던 다니엘이 이번에는 왕의 신임을 받는 인물로 소개됩니다. 다만 두 이야기의 현재 배열만으로 그 사이의 시간적 경과를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어 다니엘 전승에서 이야기들의 배치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왕은 날마다 벨에게 절합니다. 다니엘은 자기 하나님께 절합니다.
겉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종교적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대상이 다릅니다.
벨은 바벨론의 대표적인 신 마르두크를 가리키는 이름 또는 칭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6:1에서도 벨과 느보가 바벨론의 신들로 함께 언급됩니다. 예레미야 51:44 역시 벨을 바벨론과 연결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그에게 바치는 음식은 막대한 양입니다. 날마다 고운 밀가루 열두 아르타바, 양 마흔 마리, 포도주 여섯 메트레테스가 들어갑니다. 본문의 번역 노트가 제시한 단위에 따르면 밀가루는 대략 600리터 이상에 해당하는 부피이고, 포도주는 약 234리터에 해당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신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바칩니다. 그리고 음식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신이 그것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왕이 말하는 살아 있는 신
왕이 다니엘에게 왜 벨에게 절하지 않느냐고 묻자, 다니엘은 대답합니다.
다니엘이 말했다. 「저는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받들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받들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모든 육신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5 · 본디새김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단순히 움직이거나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왕이 그에게 말했다. 「너는 벨이 살아 있는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아니면 그가 날마다 얼마나 많이 먹고 마시는지 보지 못하느냐?」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6 · 본디새김
두 사람은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만 의미가 다릅니다.
왕에게 살아 있음의 증거는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날마다 보는 현상으로 신의 존재를 판단합니다. 반면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은 창조와 통치의 능력에 근거합니다.
다니엘이 웃으며 말했다. 「왕이시여, 속지 마십시오. 이것은 속이 진흙이고 겉이 청동입니다.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7 · 본디새김
왕은 살아 있는 신의 증거라고 여겼던 것을 사실 확인 없이 믿었습니다. 다니엘이 보기에 그것은 처음부터 살아 있을 수 없는 물건입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과, 사람이 진흙과 청동으로 만든 신이 서로 대립합니다.
이것은 이사야 44:9–20의 우상 비판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이 나무를 가져다가 일부는 불을 피우고 음식을 준비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로 신상을 만들어 절하는 어리석음이 드러납니다.
사람이 만든 물건이 어떻게 그 사람의 창조주가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왕은 아직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왕은 제사장들에게 벨이 먹는다는 증거를 요구합니다.
봉인된 신전과 바닥의 발자국
왕은 다니엘의 말을 듣고 화를 냅니다.
그는 벨의 제사장들을 불러 누가 음식을 먹어 치우는지 밝히라고 명령합니다. 벨이 정말 먹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제사장들이 죽을 것이고, 증명하면 벨을 모독한 다니엘이 죽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제사장들은 왕에게 신전 안에 음식을 차려 놓고 문을 닫은 뒤 왕의 반지로 봉인하라고 합니다. 아침에 문을 열었을 때 음식이 사라져 있다면 벨이 먹은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상 아래에 숨겨진 출입구를 만들어 놓고, 늘 그곳으로 들어가 음식들을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13 · 본디새김
봉인은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출입구를 막지 못합니다. 그들은 왕이 신전의 문만 확인하리라는 사실을 이용합니다. 왕에게 봉인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제사장들에게 봉인은 오히려 자신들의 속임수를 더 믿을 만하게 만들어 주는 수단입니다.
진실을 보증해야 할 장치가 거짓을 보호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왜 재를 뿌렸을까
다니엘은 제사장들이 나간 뒤 어린 종들에게 재를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왕만 보는 가운데 신전 전체에 재를 흩뿌리게 합니다.
제사장들의 계획은 음식이 없어졌다는 결과만 왕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왕이 음식의 소멸과 벨의 식사를 곧바로 연결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다니엘은 그 두 사건 사이에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드러낼 증거를 마련합니다.
음식이 사라지는 것과 벨이 음식을 먹는 것은 같은 사실이 아닙니다.
왕은 재를 뿌리는 장면을 직접 지켜보았으므로, 나중에 재 위의 흔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왕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준비합니다.
다음 날 아침, 왕은 봉인이 온전한지 묻습니다. 다니엘은 온전하다고 대답합니다.
문들이 열리자마자 왕이 상을 바라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벨이여,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당신에게는 속임수가 하나도 없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18 · 본디새김
왕은 봉인이 온전하고 음식이 없어졌다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에서 내린 결론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속임수가 조금도 없다고 선언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가장 큰 속임수에 넘어가 있습니다.
다니엘이 웃으며 왕을 붙잡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말했다. 「자, 바닥을 보시고 이것들이 누구의 발자국인지 알아보십시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19 · 본디새김
왕에게 중요한 것은 음식이 없어졌다는 결과였습니다. 다니엘은 그 결과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확인하게 합니다. 왕은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의 발자국을 발견합니다.
신을 먹여 살리던 사람들
21절에서는 제사장들이 아내들과 자녀들과 함께 숨겨진 문을 이용해 드나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동안 벨이 먹었다고 믿었던 음식은 제사장들의 가족들이 먹은 것입니다.
벨을 위해 바쳐진 막대한 음식은 실제로 제사장들의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사람들은 신을 먹인다고 믿었지만, 그 제도는 신의 이름을 이용해 사람들에게서 자원을 공급받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예레미야 51:44의 벨에 대한 심판 선언과 흥미롭게 연결됩니다. 그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벨이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나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본문이 직접적인 문학적 의존 관계에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벨이 무엇을 삼키는 존재로 묘사되는가 하는 공통된 이미지가 있습니다.
수산나 이야기에서 다니엘이 거짓 증언을 무너뜨렸다면, 이번에는 신을 둘러싼 속임수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번 장의 초점은 재판의 정의보다 더 넓습니다. 살아 있다고 주장되는 신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22절에서 왕은 제사장들을 죽이고 벨을 다니엘에게 넘깁니다. 다니엘은 벨과 신전을 무너뜨립니다.
21절에서 왕은 제사장들뿐 아니라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붙잡았고, 22절은 왕이 ‘그들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문법과 바로 앞 문맥을 따르면 가족들까지 처형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구체적인 책임을 따로 심문하거나 판정하는 장면을 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현대 독자가 그대로 따라야 할 정의로운 형벌의 모범으로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왕이 제사장들을 처형하고 우상 숭배의 중심지를 파괴한 사건을 서술하지만, 그 모든 처벌 방식에 관한 독립적인 윤리적 논증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곧바로 또 다른 신을 제시합니다.
살아 있는 뱀이 살아 계신 하나님일 수 있는가
벨이 무너진 뒤 왕은 다니엘에게 커다란 뱀을 보여 줍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 뱀도 받들고 있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말합니다.
왕이 다니엘에게 말했다. 「너는 이것이 살아 있는 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이것에게 엎드려 절하여라.」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24 · 본디새김
벨의 경우에는 음식을 먹는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우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뱀은 다릅니다. 그것은 진짜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말했다. 「저는 제 하나님이신 주께 엎드려 절하겠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25 · 본디새김
다니엘은 뱀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뱀이 생명을 가진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그것을 신으로 받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왕에게 권한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칼이나 막대기 없이 그 뱀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역청과 기름과 털을 가져다가 한데 끓여 덩이들을 만들고, 뱀의 입에 넣어 주었다. 뱀이 그것을 먹고 터져 버렸다. 다니엘이 말했다. 「너희가 받드는 것들을 보아라.」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27 · 본디새김
앞에서는 왕이 다니엘에게 벨이 먹는 것을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니엘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받드는 것을 보라고 합니다.
벨은 먹지 못했으므로 신이 아니었습니다.
뱀은 먹을 수 있었지만 죽을 수 있었으므로 하나님과 같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처음부터 내세웠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모든 육신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5절). 뱀은 살아 있는 육신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창조 세계 안에 속한 생명입니다.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창조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115:4–8은 우상에게 입이 있지만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하박국 2:18–20 역시 사람이 만든 우상에게 숨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성전에 계신다고 선언합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생명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그리스어 드라콘(δράκων)은 큰 뱀이나 용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음식을 먹고 죽는 존재로 묘사되므로, 반드시 날개가 달리거나 불을 내뿜는 상상의 용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혼합물이 뱀의 몸에서 정확히 어떤 작용을 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이 지킬 수 없는 사람
벨은 무너졌고 뱀은 죽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의 주장이 옳았다는 사실이 왕에게 드러난 듯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왕에게 맞서 모여들었다. 그들이 말했다. 「왕이 유대 사람이 되었다. 벨을 허물고 뱀을 죽이고 제사장들을 베어 죽였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28 · 본디새김
그들은 벨이 실제로 음식을 먹었다고 다시 주장하지도 않고, 죽은 뱀이 정말 신이었다는 논증을 내놓지도 않습니다. 대신 왕이 유대 사람이 되었다고 비난합니다.
문제가 바뀐 것입니다.
처음에 왕과 다니엘은 살아 있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논쟁했습니다. 이제 바벨론 사람들에게 문제는 자신들의 신과 종교적 질서가 무너졌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왕이 실제로 유대교로 개종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유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격분한 바벨론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그들은 왕이 다니엘에게 벨을 파괴하도록 허락하고 제사장들을 처형했다는 사실을 배신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 위에 있는 왕도 두려워하다
그들이 왕에게 와서 말했다. 「다니엘을 우리에게 넘겨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너와 네 집안을 죽이겠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29 · 본디새김
그는 다니엘과 가까운 벗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앞선 사건에서 다니엘의 말이 옳았다는 사실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왕은 그들이 자기를 몹시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그들에게 넘겼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30 · 본디새김
왕은 제사장들을 죽일 권한이 있었습니다. 벨의 신전을 무너뜨리도록 허락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자신과 가족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자신의 벗을 넘겨줍니다.
옳음을 아는 것과 옳은 사람을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모든 육신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왕 역시 사람들을 다스리지만 자신의 생명조차 완전히 통제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우상만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도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사자 굴로
바벨론 사람들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습니다. 31–32절은 다니엘이 엿새 동안 사자 굴에 있었고, 그곳에 사자 일곱 마리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자들에게는 날마다 사람의 몸 두 구와 양 두 마리가 먹이로 주어졌지만, 이번에는 다니엘을 먹도록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벨에게는 날마다 막대한 음식이 바쳐졌습니다. 뱀에게는 다니엘이 음식을 주었습니다. 이제 사자들은 먹이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다니엘을 사자들의 먹이로 삼으려 합니다. 그들에게 다니엘은 이제 제거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 다니엘을 위해 하나님은 전혀 다른 음식을 준비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시체 두 구’에 해당하는 표현은 뒤오 소마타, 곧 ‘몸 둘’입니다. 이를 시체로 이해할 수 있지만, 산 사람을 사자에게 먹이로 주었다는 뜻으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그 두 경우를 명확하게 구별하지는 않습니다.
사자 굴로 배달된 한 끼의 음식
이야기의 무대가 갑자기 바뀝니다.
하박국 예언자가 유대에 있었다. 그는 음식을 끓이고 빵을 잘게 떼어 큰 그릇에 넣은 뒤, 추수꾼들에게 가져다주려고 들로 가고 있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33 · 본디새김
신을 위한 거대한 제물도 없고, 왕의 명령도 없고, 종교적 대결도 없습니다. 이 평범한 일상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다니엘을 구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것이 바로 이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박국이 등장하는가
하박국은 구약의 열두 소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하박국서에서는 바벨론 세력이 일으키는 폭력과 불의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합니다. 예언자는 하나님께 왜 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삼키는 것을 보고 계시느냐고 묻습니다(하박국 1:12–17).
하박국서에서 제기된 질문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삼키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수많은 먹는 장면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에서 하박국은 먹힐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음식을 가져오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은 하박국에게 이미 있는 것
주의 천사가 하박국에게 말했다. 「네가 가진 음식을 바벨론의 사자 굴에 있는 다니엘에게 가져다주어라.」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34 · 본디새김
하박국이 처음부터 다니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추수꾼들에게 가져다주려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이미 준비해 놓은 것을 다니엘에게 보내라고 하십니다.
하박국이 말했다. 「나리, 저는 바벨론을 본 적이 없고 그 굴도 모릅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35 · 본디새김
그가 목적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천사는 하박국의 정수리를 붙잡고 머리털을 들어 올린 뒤, 그를 바벨론의 사자 굴 위에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은 거리를 가로질러 다니엘을 돌보십니다.
‘하나님, 참으로 저를 기억하셨습니다’
하박국이 외쳤다. 「다니엘, 다니엘,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보내신 음식을 받으시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37 · 본디새김
처음에는 사람이 신에게 음식을 가져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음식을 보내십니다.
다니엘이 말했다. 「하나님, 참으로 저를 기억하셨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38 · 본디새김
성경에서 하나님이 누군가를 기억하신다는 말은 그 사람을 위해 행동하시는 장면과 자주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표현은 그들의 형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나타냅니다.
그는 사자 굴에 던져진 뒤 엿새 동안 그곳에 있었습니다. 왕은 그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추상적인 위로나 설명이 아니라, 굶주린 사람에게 전달된 실제 음식으로 나타납니다.
다니엘이 일어나서 먹었다. 하나님의 천사는 하박국을 곧바로 그가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39 · 본디새김
왕은 벨이 먹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벨은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아무도 자신을 먹이지 못할 것 같은 장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음식을 먹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음식을 받아야 살아 있는 분이 아니라, 죽음의 위기에 놓인 사람을 먹이시는 분으로 드러나십니다.
이것은 시편 50:7–15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배고프시더라도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의 본래 관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이고, 다니엘서 14장은 우상 숭배의 허위를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두 본문은 하나님이 인간의 공급에 의존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이해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하박국 3:17–19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를 제시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더라도 예언자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은 하나님이 항상 즉각적으로 먹을 것을 주실 것이라는 보장 위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의 구체적인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믿음과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하박국서의 예언자와 이 장의 인물이 역사적으로 동일한 사람인지, 이 사건이 실제로 언제 일어났는지까지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옛 그리스어 본의 표제는 이 이야기를 하박국의 예언과 관련짓고, 두 본문 모두 하박국을 이 마지막 장면에 등장시킵니다. 36절의 표현에는 해석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자기 영의 세찬 기세’에서 그리스어 프뉴마(πνεῦμα)는 영, 바람, 숨을 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의 능력으로 이동하는 장면으로 읽을 수도 있고, 세찬 바람 같은 움직임으로 표현된 장면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모습은 에스겔 8:3에서 영이 예언자를 들어 올려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데려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스겔의 경우는 환상 속 이동이라는 점이 명시되지만, 여기서는 하박국이 실제 음식을 다니엘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서술됩니다. 창세기 8:1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있는 생명들을 기억하시자 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30:22에서는 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시고 그의 태를 여십니다. 출애굽기 2:24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신음을 들으시고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왕이 다시 외친 고백
일곱째 날이 됩니다.
왕은 일곱째 날에 다니엘을 애도하러 왔다. 굴가로 와서 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 다니엘이 앉아 있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40 · 본디새김
왕은 다니엘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니엘의 생존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왕이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주님, 다니엘의 하나님,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당신 말고는 다른 이가 없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4:41 · 본디새김
같은 외침이지만 다른 근거
처음에 왕은 음식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보고 벨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 음식은 제사장들이 먹어 치운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왕은 다니엘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8절에서 왕은 벨에게 속임수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벨의 신전은 속임수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41절에서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 말고는 다른 이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처음의 고백은 벨이 참된 신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마지막 고백은 하나님이 유일한 분이시라는 인정입니다.
다만 왕의 이 고백이 이후의 모든 삶에서 지속적인 신앙적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이 장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가 다니엘의 구원을 보고 한 고백을 기록합니다.
마지막 반전과 그 한계
42절에서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끌어 올립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던 자들을 그 굴에 던져 넣습니다. 그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곧바로 사자들에게 잡아먹힙니다.
이 장면은 다니엘서 6장의 사자 굴 이야기와 매우 비슷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구원받고, 그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결국 사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결말을 갖습니다(다니엘 6:24).
다만 두 이야기의 결말에 나타나는 보복적 처벌을 오늘날의 개인적 복수나 종교적 폭력에 대한 허가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고대 이야기의 형식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운명이 뒤바뀌는 심판을 서술합니다. 그것이 모든 시대의 인간에게 동일한 폭력적 대응을 명령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두 외침의 시작은 그리스어로 같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동일한 사건을 그대로 다시 서술한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서 6장에서 다니엘은 왕이 아닌 다른 신에게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금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고발됩니다. 왕은 다리오스이고, 다니엘은 하룻밤을 사자 굴에서 보낸 뒤 살아 나옵니다. 이 장에서는 벨과 뱀을 무너뜨린 일이 다니엘에 대한 적대의 원인이 됩니다. 왕은 고레스이고, 다니엘은 엿새 동안 사자 굴에 있습니다. 또한 하박국이 음식을 가져오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이야기를 억지로 하나의 사건으로 합치기보다, 다니엘서 전승이 반복해서 보여 주는 신학적 주제가 서로 다른 이야기 안에 구현되었다고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결론 — 사자 굴 안에 앉아 있는 사람
처음에는 신이 먹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을 찬양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신이 사람을 살리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단지 놀라운 기적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과 참으로 하나님이라는 것의 차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을 마련할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왕도 그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유대 땅에서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하박국은 그저 추수꾼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음식이 다니엘에게 도착했습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받아먹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저를 기억하셨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 왕이 죽은 사람을 애도하러 왔을 때 다니엘은 굴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자들은 그를 먹지 못했습니다.
왕이 넘겨준 사람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생명을 받아 유지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시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날 왕이 사자 굴 안에서 본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이 돌보신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