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3장 · 수산나와 두 장로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사람들이 믿는 것

수산나 이야기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두 장로가 정원에서 수산나를 위협하는 장면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백성 앞에서 증언하고, 사람들이 그 말을 믿어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순간입니다. 그때 공동체는 자신들이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거짓말하고 있으며, 수산나는 죄가 없습니다. 독자가 알고 있는 진실과 등장인물들이 믿는 사실 사이의 간격이 이 이야기 전체의 긴장을 만듭니다.

이 세 장면을 연결하는 것은 보는 행위입니다. 두 장로는 수산나를 바라보지만 하늘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백성은 두 장로의 권위를 보지만 증언의 진실성은 확인하지 않습니다.

수산나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아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이야기는 다니엘서의 히브리어·아람어 본문에는 없고, 그리스어 다니엘 전승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전해지는 주요 그리스어 본문에는 고대 그리스어역과 흔히 테오도티온역이라고 부르는 형태가 있는데, 두 본문은 이야기의 구성과 세부 묘사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여기서 읽는 본디새김 본문은 테오도티온 계열입니다.

이 전승에서는 수산나 이야기가 다니엘서 첫머리에 놓이기도 하며, 다니엘이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는 점도 그 배치와 잘 어울립니다. 따라서 13장이라는 현재의 장번호를 반드시 이야기 속 사건의 시간적 순서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713장 본문 읽기 →

정원을 드나들던 두 장로 — 진실을 판단할 사람들이 눈을 돌리다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1–14 본문 →

이야기는 수산나를 소개할 때 두 가지 특징을 나란히 놓습니다.

그는 힐기야의 딸 수산나라는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수산나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주를 경외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 · 본디새김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고, 주를 경외하는 마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곧 이 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킵니다.

수산나는 의로운 부모에게서 모세의 율법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남편 요야김은 부유하고 명망 있는 사람으로, 그의 집에는 유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바벨론에 살고 있지만 이 공동체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살아가려 합니다.

바로 그 공동체 안에서 두 사람이 재판관으로 임명됩니다.

그해에 백성 가운데서 장로 두 사람이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주가 이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바벨론에서 불법이 나왔다. 백성을 다스린다고 여겨지던 장로 재판관들에게서 나왔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 · 본디새김

다니엘서에서 바벨론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을 지켜야 하는 이방 제국의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장의 악행은 바벨론 왕이나 이방 관리들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린다고 여겨지는 유대인 장로들에게서 나옵니다.

바벨론의 위험이 공동체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을 보호하도록 세워진 사람들이 오히려 백성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장의 첫 번째 경고입니다.

5절의 주의 말씀은 현존하는 구약의 다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예레미야 29:21–23에서 바벨론에 있는 백성 가운데 간음과 거짓말을 저지른 지도자들이 고발되는 장면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두 본문 모두 유배지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공동체의 신뢰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드러냅니다.

정원이 위험한 장소가 되는 과정

두 장로는 요야김의 집에 머물며 재판 업무를 수행합니다. 사람들이 한낮에 돌아가면 수산나는 정원에서 거닙니다. 그녀에게 정원은 일상적인 생활공간입니다.

그러나 장로들에게는 그곳이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8절에서 그들은 수산나가 거니는 모습을 날마다 지켜봅니다. 12절에서는 그녀를 볼 기회를 열심히 엿봅니다. 두 구절 사이에 놓인 9절이 이 변화의 본질을 밝힙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비뚤게 하고, 하늘을 바라보지도 의로운 판결을 기억하지도 않으려고 눈을 돌렸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9 · 본디새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의로운 판결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재판관의 책임을 되새기는 일입니다. 그들은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이 두 가지를 의식적으로 외면합니다.

이들의 타락은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옳음을 외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자기 욕망을 감춥니다. 서로 부끄러워 털어놓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가는 척했다가 같은 장소로 되돌아온 것을 발견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알게 된 사람이 상대를 말리는 대신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수산나를 혼자 만날 기회를 정합니다.

훗날 이들이 법정에서 두 명의 증인으로 등장할 때, 독자는 이미 그들의 증언이 독립적인 목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전에 결탁한 두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닫힌 정원 문 — 수산나에게 남겨진 선택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15–27 본문 →

수산나는 무더운 날 정원에서 목욕하려고 합니다. 하녀들에게 기름과 몸 씻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고, 정원 문들을 닫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장로들은 이미 숨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정원 문은 독특한 역할을 합니다. 수산나는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문을 닫지만, 장로들은 그 닫힌 문을 그녀를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말했다. 「보아라, 정원 문들은 닫혀 있고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너를 몹시 원한다. 그러니 우리 뜻을 받아들여 우리와 자라.」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0 · 본디새김

9절에서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눈까지 없으니 자신들의 뜻을 마음대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짓말을 이용한 협박

수산나가 거절하면 그들은 거짓 증언을 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수산나의 곁에 젊은 남자가 있었으며, 그 남자와 만나기 위해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주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장로는 무엇보다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합니다. 수산나가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가보다,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바로 율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율법을 무기로 만듭니다. 수산나가 성적 요구를 거절하면 간음 혐의를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하겠다는 위협입니다.

수산나가 깊이 탄식하며 말했다. 「어느 쪽으로도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 죽음이고, 하지 않으면 두 분의 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2 · 본디새김

수산나가 두 장로의 요구에 굴복하더라도 그것은 자유로운 동의가 될 수 없습니다. 죽음과 거짓 고발을 내세워 강요하는 관계에는 진정한 동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23절에서 수산나는 주 앞에서 죄짓기보다 두 사람의 손에 떨어지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녀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선택을 설명하는 것이지, 폭력에 굴복한 피해자에게 죄가 있다고 판단할 근거가 아닙니다. 성폭력을 당하거나 협박에 순응한 사람이 그 폭력의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책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해자인 두 장로에게 있습니다.

수산나가 보여주는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녀는 깊이 탄식합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판단이 자신을 정죄하더라도 하나님 앞의 진실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결정합니다.

같은 외침, 다른 의미

24절은 수산나와 두 장로가 모두 큰 소리로 외쳤다고 말합니다. 수산나의 외침은 도움을 구하는 소리입니다. 장로들의 외침은 자신들이 꾸며 낸 이야기를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장로 중 하나는 달려가 정원 문을 엽니다. 집안 사람들이 뛰어들어오고, 장로들은 미리 준비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말을 들은 노예들은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수산나에 관해 그런 말이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정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압니다. 그러나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그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두 장로의 설명뿐입니다.

그 설명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정원에서 벌어진 사건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수산나 이야기는 성경의 여러 이야기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그 연결을 곧바로 동일한 사건이나 직접적인 문학적 의존 관계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요구하는 관계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합니다. 수산나도 성적 요구를 거절한 뒤 거짓 고발을 당합니다. 수산나는 다니엘의 심문으로 죽음을 면하지만, 요셉은 그 자리에서 무죄가 밝혀지지 않은 채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은 언제나 즉시 억울함이 풀린다는 일반 법칙을 이 두 이야기로부터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이 곧 거짓 증인이 되다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8–41 본문 →

이튿날 사람들이 요야김에게 모였을 때 두 장로도 찾아옵니다.

이튿날 백성이 수산나의 남편 요야김에게 모였을 때, 두 노인도 왔다. 그들은 수산나를 죽이려는 불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백성 앞에서 말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8 · 본디새김

전날 이들이 바라던 것은 수산나와 동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목표가 바뀝니다. 이제는 그녀를 죽이려 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중심은 사적인 폭력에서 공적인 불의로 옮겨 갑니다.

수산나는 부모와 자녀들과 친척들을 데리고 재판 자리에 나옵니다. 이 세부 묘사는 그녀가 한 개인일 뿐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보여줍니다. 잘못된 판결이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을 독자는 느끼게 됩니다.

재판 자리에서도 멈추지 않는 욕망

그는 너울을 쓰고 있었는데, 불법을 저지르는 그자들은 그의 아름다움을 실컷 보려고 너울을 벗기라고 명령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32 · 본디새김

정원에서는 몰래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적인 권위를 사용해 그녀의 얼굴을 드러내게 합니다. 불의한 권력은 장소가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원에서의 욕망이 재판 자리에서는 정당한 명령의 형식을 얻었을 뿐입니다.

34절에서 두 노인은 수산나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시선의 방향이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수산나는 울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마음이 주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35 · 본디새김

두 장로는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수산나는 자신을 심판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두 장로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무엇을 보았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고, 수산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알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두 증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가

36–41절에서 장로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정원에서 거닐고 있었고, 수산나가 하녀들을 내보냈으며, 숨어 있던 젊은 남자가 그녀와 동침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이 달려가자 남자는 힘이 세서 달아났고 수산나만 붙잡았다고 말합니다.

수산나가 정원에 들어온 것도 사실이고, 하녀들을 내보낸 것도 사실이고, 문들이 닫혔던 것도 사실입니다. 장로들은 사실에 해당하는 세부 사항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젊은 남자를 끼워 넣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소. 우리는 이 일들을 증언하오.」 모인 사람들은 그들이 백성의 장로이며 재판관이었으므로 그 말을 믿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1 · 본디새김

사람들은 증언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닙니다. 증언하는 사람들이 장로이며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신명기 19:15는 두세 증인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그 규정은 증인이 두 사람이기만 하면 그들의 모든 말을 무조건 믿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장 18절은 재판관들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수산나의 재판에서는 증인의 수를 충족했다는 외형이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가려 버렸습니다.

조금 더 깊이

수산나의 머리에 손을 얹는 모습은 레위기 24:14에서 증인들이 처벌받을 사람에게 손을 얹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수산나 이야기에서 이 동작이 정확히 어떤 법적 절차였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일을 아시는 하나님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2–50 본문 →

사형 선고가 내려졌을 때 수산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수산나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말했다. 「영원하신 하나님, 감추어진 것들을 아시고 모든 것이 생겨나기도 전에 그것들을 아시는 분이여,」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2 · 본디새김

정원에서는 두 장로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욕망과 계획도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수산나가 협박을 당한 실제 사정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로들은 자기들 외에는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하지 않았는지 하나님은 아신다고 말합니다.

다니엘 2:22에서 하나님은 깊고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는 분으로 찬양받으십니다. 느부갓네살이 감추어진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 비밀을 드러내십니다(다니엘 2:19–23). 수산나 이야기에서도 인간이 알지 못하는 진실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이 중심에 놓입니다. 다만 여기서 감추어진 것은 왕의 꿈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거짓과 한 사람의 억울함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시는가

주가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어주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4 · 본디새김

그런데 하나님은 장로들을 즉시 쓰러뜨리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음성을 내려 보내지도 않으십니다.

수산나가 죽임을 당하러 끌려갈 때, 하나님이 다니엘이라는 어린 소년의 거룩한 영을 일깨웠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5 · 본디새김

다니엘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나타나 모든 일을 막아 주는 인물이 아닙니다. 잘못된 판결이 이미 내려지고 집행되려는 순간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처음 하는 말은 수산나가 결백하다는 자세한 설명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이 여자의 피에 대한 죄가 없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6 · 본디새김

이 표현은 단순히 개인의 무관함을 주장하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내린 판결에 문제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 판결을 다시 살피도록 요구합니다.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서서 말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여,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심문하지도 않고 사실을 분명히 알아보지도 않은 채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까?」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8 · 본디새김

다니엘의 질문은 수산나의 성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수산나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것과 별개로, 누구도 충분한 심문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진실을 확인하는 일은 약한 사람에게 끝없이 자기 결백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수산나의 경우 이미 공동체의 잘못된 절차와 장로들의 지위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습니다. 다니엘이 바로잡은 것은 그녀의 태도가 아니라 재판의 잘못입니다.

소년이 장로의 자리에 앉다

장로들이 다니엘에게 와서 자신들 가운데 앉아 말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장로의 자격을 주셨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나이 든 장로들을 재판관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공정한 판단을 요구하는 사람은 어린 소년입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지혜로운 것은 아니며, 직분을 가졌다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일으키신 결과는 새로운 권위자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일이 아니라, 중단되었던 사실 확인을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의 표현은 하나님이 소년의 거룩한 영을 일깨우셨다는 형태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소년에게 영이 처음 주어졌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행동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50절의 장로들이 고발한 두 사람인지 다른 장로들인지는 본문이 명시하지 않습니다. 앞서 두 사람을 거짓 증인으로 지목한 다니엘에게 그들이 스스로 심문을 맡긴다는 것은 어색하므로 다른 장로들로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이를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나무 아래에서 드러난 거짓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1–59 본문 →

다니엘은 먼저 두 장로를 서로 멀리 떼어 놓으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모든 일을 함께 계획하고, 함께 행동하고, 함께 증언했습니다. 그들의 진술이 일치하는 것은 진실을 함께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바로 그 연결을 끊습니다.

첫 번째 장로 — 악한 나날 속에서 늙어 버린 사람

두 사람이 서로 떨어지자 다니엘이 그중 하나를 불러 말했다. 「악한 나날 속에서 늙어 버린 자야, 네가 전에 저지르던 죄들이 이제 닥쳐왔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2 · 본디새김

53절은 그가 과거에도 불의한 판결을 내리며 죄 없는 사람을 정죄하고 죄 있는 사람을 풀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수산나의 사건은 우연히 생긴 한 번의 일탈이 아닙니다. 재판관으로서 권력을 오랫동안 잘못 사용한 삶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여기서 다니엘은 출애굽기 23:7을 인용합니다.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 이 인용은 칠십인역 출애굽기 23:7의 표현과 직접 연결됩니다.

장로들은 모세의 율법을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수산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다니엘은 바로 그 율법으로 장로들의 행동을 판단합니다.

율법이 본래 보호하려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다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네가 정말 이 여자를 보았다면 말해 보아라. 그들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서로 동침하는 것을 보았느냐?」 그가 대답했다. 「유향나무 아래입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4 · 본디새김

다니엘은 그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찢어 가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장로 — 가나안의 씨라고 불리는 유다 사람

다니엘은 그를 물러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유다의 씨가 아니라 가나안의 씨인 자야, 아름다움이 너를 속였고 욕망이 네 마음을 비뚤게 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6 · 본디새김

여기서 다니엘이 그의 실제 혈통을 조사하여 가나안 사람이라고 판정했다는 뜻으로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문맥에서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라는 그의 정체성과 실제 행실 사이의 모순을 고발하는 말입니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딸들에게 이렇게 해 왔고, 그들은 두려워서 너희와 동침했다. 그러나 유다의 딸은 너희의 불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7 · 본디새김

다니엘의 고발 대상은 일관되게 장로들의 불법이며, 다른 여성들에 대한 처벌이나 비난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 가해진 위협 뒤에,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침묵시켜 온 오랜 불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두 번째 장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합니다. 어느 나무 아래에서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떡갈나무 아래였다고 대답합니다.

왜 나무의 이름이 결정적인가

다니엘은 복잡한 법률 논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비교했습니다. 두 장로는 함께 목격했다고 주장한 사건의 장소를 서로 다르게 말합니다.

이야기 안에서는 이 모순이 그들의 증언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물론 실제 재판에서 목격자들이 어떤 부수적인 세부 사항을 다르게 기억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증언이 반드시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산나 이야기는 독자에게 두 사람이 공모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 주며, 나무에 관한 진술의 불일치를 그 거짓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합니다.

거짓을 무너뜨린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같은 사실을 각자에게 확인한 질문이었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다니엘의 지혜는 단순한 재치와 다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가 요구하는 일을 재판의 과정 속에서 수행합니다.

조금 더 깊이

나무 이름과 심판을 나타내는 동사가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그가 증언에 사용한 나무의 이름이 곧 그 자신에 대한 심판의 언어가 됩니다. 두 번째 장로 역시 자기 입으로 말한 나무의 이름과 연결된 심판을 듣습니다. 이 두 쌍의 말놀이는 그리스어 이야기의 문학적 특징입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수산나 이야기가 최초부터 그리스어로 창작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언어의 이야기를 그리스어로 옮기거나 다듬는 과정에서 이러한 표현이 형성되었을 가능성도 구별해야 합니다.

뒤집힌 판결 — 율법이 다시 죄 없는 사람을 보호하다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60–64 본문 →

거짓 증언이 드러나자 온 회중이 큰 소리로 외칩니다.

앞서 수산나가 외쳤고 장로들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외침은 서로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소리였습니다.

이제 온 회중의 외침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됩니다.

모인 사람들이 모두 큰 소리로 외치며, 자신에게 희망을 거는 이들을 구하는 하나님을 찬양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60 · 본디새김

이 문장에서 하나님은 감추어진 것을 아시는 분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을 구하시는 분으로 고백되십니다. 처음부터 수산나의 믿음이 이 이야기의 한 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공동체 전체가 인정합니다.

거짓 증인이 받는 판결

61–62절에서는 두 장로가 죽임을 당합니다.

처음에는 율법이 수산나를 죽이는 도구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율법이 거짓 증인들을 심판하고 죄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렇게 행하여 그들을 죽였다. 그날 죄 없는 피가 구해졌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62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수산나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전하는 동시에, 공동체가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릴 뻔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합니다. 그들은 처음에 장로들의 말을 믿고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제는 그 판결을 뒤집고 거짓 증인들을 처벌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이 수산나에게 사과했다거나, 자신들의 성급한 판단을 구체적으로 반성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공동체가 바로잡은 판결은 분명하지만, 그동안 수산나가 겪은 공포와 수치가 어떤 방식으로 회복되었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63절에서는 수산나의 부모와 남편, 친척들이 함께 찬양합니다. 64절에서는 다니엘이 그날부터 백성 앞에서 큰 인물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수산나의 구원 이야기는 다니엘의 등장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니엘이 등장하기 전부터 수산나는 이미 주를 경외하며 살아왔습니다. 장로들이 그녀를 위협할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다니엘은 그녀의 결백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진실이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신명기 19:16–21을 살펴야 합니다. 그 법은 거짓 증인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을 경우, 그가 그 사람에게 하려고 했던 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규정합니다. 수산나의 사건에서 두 장로는 거짓 증언으로 그녀를 죽이려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받는 형벌은 이 율법 규정의 적용으로 제시됩니다. 이것은 독자가 그대로 현대의 처벌 방식으로 옮겨 적용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그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법적 질서 안에서 어떤 반전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하늘을 바라본 사람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1–64 본문 →

그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까지 하나님이 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하나님이 하신 일은 바로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감추어진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억울한 사람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사람들이 잘못된 확신 속에서 내린 판결을 다시 살피게 하셨습니다.

정원에서 두 장로는 아무도 자신들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힘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감추어 두었다고 생각한 진실은 마침내 드러났습니다.

한 소년이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고 물었습니다.

어느 나무 아래였느냐고.

그 질문 앞에서 두 장로의 거짓은 무너졌고, 죽음으로 끌려가던 수산나는 살아났습니다. 그날 죄 없는 피가 구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