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3장 · 수산나와 두 장로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사람들이 믿는 것

수산나 이야기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두 장로가 정원에서 수산나를 위협하는 장면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백성 앞에서 증언하고, 사람들이 그 말을 믿어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순간입니다. 그때 공동체는 자신들이 올바른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명의 증인이 있고, 그들은 그해에 재판관으로 임명된 장로들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거짓말하고 있으며, 수산나는 죄가 없습니다. 독자가 알고 있는 진실과 등장인물들이 믿는 사실 사이의 간격이 이 이야기 전체의 긴장을 만듭니다.

이 세 장면을 연결하는 것은 보는 행위입니다. 두 장로는 수산나를 바라보지만 하늘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백성은 두 장로의 권위를 보지만 증언이 사실인지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수산나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아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이야기는 다니엘서의 히브리어·아람어 본문에는 없고, 그리스어로 전해지는 다니엘서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읽는 두루새김 본문은 테오도티온 계열입니다. 이 전승에서는 수산나 이야기가 다니엘서 첫머리에 놓이기도 하며, 다니엘이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는 점도 그 배치와 잘 어울립니다. 따라서 13장이라는 현재의 장번호를 반드시 이야기 속 사건의 시간적 순서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713장 본문 읽기 →

정원을 드나들던 두 장로 — 진실을 판단할 사람들이 눈을 돌리다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1–14 본문 →

이야기는 수산나를 소개할 때 두 가지 특징을 나란히 놓습니다.

그는 힐기야의 딸 수산나와 결혼했습니다. 수산나는 매우 아름다웠고 주를 두려워하며 섬겼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 · 두루새김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고, 주를 두려워하며 섬기는 마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곧 이 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킵니다.

수산나는 올바르게 사는 부모에게서 모세의 율법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남편 요야김은 부유하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그의 집에는 유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바벨론에 살고 있지만 이 공동체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살아가려 합니다.

바로 그 공동체 안에서 두 사람이 재판관으로 임명됩니다.

그해에 백성 가운데서 장로 두 사람이 재판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주께서 이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법을 어기는 악한 짓이 바벨론에서 나왔다. 백성을 다스린다고 여겨지던 장로 재판관들에게서 나왔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 · 두루새김

다니엘서에서 바벨론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을 지켜야 하는 이방 제국의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장의 악한 짓은 바벨론 왕이나 이방 관리들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린다고 여겨지는 유대인 장로들에게서 나옵니다.

바벨론의 위험이 공동체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을 보호하도록 세워진 사람들이 오히려 백성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장의 첫 번째 경고입니다.

5절의 주의 말씀은 지금 남아 있는 구약의 다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예레미야 29:21–23에서 바벨론에 있는 백성 가운데 간음과 거짓말을 저지른 지도자들이 고발되는 장면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두 본문 모두 유배지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공동체의 신뢰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드러냅니다.

정원이 위험한 장소가 되는 과정

두 장로는 요야김의 집에 머물며 재판 일을 맡습니다. 사람들이 한낮에 돌아가면 수산나는 정원에서 거닙니다. 그녀에게 정원은 일상적인 생활공간입니다.

그러나 장로들에게는 그곳이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8절에서 그들은 수산나가 거니는 모습을 날마다 지켜봅니다. 12절에서는 그녀를 볼 기회를 부지런히 엿봅니다. 두 구절 사이에 놓인 9절이 이 변화의 핵심을 밝힙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비뚤게 만들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지도 올바른 판결을 기억하지도 않으려고 눈을 돌렸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9 · 두루새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올바른 판결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재판관의 책임을 되새기는 일입니다. 그들은 욕심을 이루기 위해 이 두 가지를 일부러 외면합니다.

이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은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옳음을 외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자기 욕심을 감춥니다. 서로 부끄러워 털어놓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가는 척했다가 같은 장소로 되돌아온 것을 발견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알게 된 사람이 상대를 말리는 대신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수산나를 혼자 만날 때를 정합니다.

훗날 이들이 재판 자리에서 두 명의 증인으로 등장할 때, 독자는 이미 그들의 증언이 각자 따로 목격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미리 뜻을 맞춘 두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수산나의 믿음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 앞에서 드러납니다. 두 장로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이사야 1:16–17에서는 악을 그치고 정의를 배우며 억압받는 사람을 도우라고 요구합니다. 미가 6:8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정의를 행하고 한결같은 사랑을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닫힌 정원 문 — 수산나에게 남겨진 선택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15–27 본문 →

수산나는 무더운 날 정원에서 목욕하려고 합니다. 하녀들에게 기름과 몸을 씻을 때 쓰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고, 정원 문들을 닫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장로들은 이미 숨어 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보아라, 정원 문들은 닫혀 있고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너를 원한다. 그러니 우리 뜻을 받아들여 우리와 잠자리를 같이해라.」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0 · 두루새김

수산나는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문을 닫지만, 장로들은 그 닫힌 문을 그녀를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9절에서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눈까지 없으니 자신들의 뜻을 마음대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짓말을 이용한 협박

수산나가 거절하면 그들은 거짓 증언을 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수산나의 곁에 젊은 남자가 있었으며, 그 남자와 만나기 위해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주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수산나가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가보다,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바로 율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율법을 무기로 만듭니다. 수산나가 성적 요구를 거절하면 간음 혐의를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하겠다는 위협입니다.

수산나가 깊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어느 쪽으로도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이 일을 하면 저는 죽게 되고, 하지 않으면 두 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2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히 옳은 일과 그른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심각한 피해를 입도록 만들어 놓은 강압적인 상황입니다.

수산나가 두 장로의 요구에 굴복하더라도 그것은 자유로운 동의가 될 수 없습니다. 죽음과 거짓 고발을 내세워 강요하는 관계에는 진정한 동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23절에서 수산나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느니 두 사람의 손에 걸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녀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선택을 설명하는 것이지, 폭력에 굴복한 피해자에게 죄가 있다고 판단할 근거가 아닙니다. 성폭력을 당하거나 협박에 따른 사람이 그 폭력의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책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해자인 두 장로에게 있습니다.

그녀가 붙잡는 것은 자신이 반드시 살아남으리라는 확신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신앙적 결단입니다.

같은 외침, 다른 의미

24절은 수산나가 큰 소리로 외쳤고, 두 장로도 수산나에게 맞서 소리를 질렀다고 말합니다. 수산나의 외침은 도움을 구하는 소리입니다. 장로들의 외침은 자신들이 꾸며 낸 이야기를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같은 행동이지만 목적은 정반대입니다.

장로 중 하나는 달려가 정원 문들을 엽니다. 집에 있던 사람들이 뛰어들어오고, 장로들은 미리 준비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말을 들은 종들은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수산나에 관해 그런 말이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정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압니다. 그러나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그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두 장로의 설명뿐입니다.

그 설명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정원에서 벌어진 사건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먼저 창세기 39장의 요셉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요구하는 관계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합니다. 수산나는 다니엘의 심문으로 죽음을 면하지만, 요셉은 그 자리에서 죄가 없음이 밝혀지지 않은 채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은 언제나 즉시 억울함이 풀린다는 일반 법칙을 이 두 이야기로부터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이 곧 거짓 증인이 되다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8–41 본문 →

이튿날 사람들이 요야김에게 모였을 때 두 장로도 찾아옵니다.

이튿날 사람들이 수산나의 남편 요야김에게 모였을 때 두 장로도 왔습니다. 그들은 수산나를 죽이려는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말했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28 · 두루새김

전날 이들이 바라던 것은 수산나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목표가 바뀝니다. 욕심을 채우려던 시도가 거절당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살인에 이를 수 있는 거짓 증언을 준비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중심은 사적인 폭력에서 공적인 불의로 옮겨 갑니다.

수산나는 부모와 자녀들과 친척들과 함께 재판 자리에 나옵니다. 이 세부 묘사는 그녀가 한 개인일 뿐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보여줍니다. 잘못된 판결이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을 독자는 느끼게 됩니다.

재판 자리에서도 멈추지 않는 욕망

수산나는 얼굴을 가리는 천을 쓰고 있었습니다. 악한 두 장로는 수산나의 아름다움을 실컷 보려고 그 천을 벗기라고 명령했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32 · 두루새김

정원에서는 몰래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적인 권위를 사용해 그녀의 얼굴을 드러내게 합니다. 정원에서의 욕심이 재판 자리에서는 정당한 명령의 형식을 얻었을 뿐입니다.

34절에서 두 장로는 수산나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수산나를 죄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시선의 방향이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수산나는 울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마음으로 주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35 · 두루새김

9절에서 장로들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습니다. 두 장로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무엇을 보았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고, 수산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알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두 증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가

36–41절에서 장로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정원에서 거닐고 있었고, 수산나가 하녀들을 내보냈으며, 숨어 있던 젊은 남자가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이 달려가자 남자는 힘이 세서 달아났고 수산나만 붙잡았다고 말합니다.

수산나가 정원에 들어온 것도 사실이고, 하녀들을 내보낸 것도 사실이고, 문들이 닫혔던 것도 사실입니다. 장로들은 사실에 해당하는 세부 사항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젊은 남자를 끼워 넣습니다. 완전히 꾸며 낸 이야기보다, 실제로 일어난 행동에 거짓된 이유를 붙이는 이야기가 듣는 사람에게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증언합니다.」 두 사람이 백성의 장로이며 재판관이었으므로, 모인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1 · 두루새김

사람들은 증언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닙니다. 증언하는 사람들이 장로이며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수산나의 재판에서는 증인의 수를 채웠다는 겉모습이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가려 버렸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 장로가 수산나의 머리에 손을 얹는 모습은 레위기 24:14에서 증인들이 처벌받을 사람에게 손을 얹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수산나 이야기에서 이 동작이 정확히 어떤 법적 절차였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신명기 19:15는 두세 증인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그 규정은 증인이 두 사람이기만 하면 그들의 모든 말을 무조건 믿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장 18절은 재판관들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일을 아시는 하나님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2–50 본문 →

사형 선고가 내려졌을 때 수산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수산나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이 생기기도 전에 다 아시는 분,」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2 · 두루새김

정원에서는 두 장로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욕심과 계획도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수산나가 협박을 당한 실제 사정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로들은 자기들 외에는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수산나는 바로 이 감추어진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시는가

주께서 수산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4 · 두루새김

그런데 하나님은 장로들을 즉시 쓰러뜨리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음성을 내려 보내지도 않으십니다.

수산나가 죽임을 당하러 끌려갈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이라는 어린 소년의 거룩한 영을 일깨우셨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5 · 두루새김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행동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는 이 여자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6 · 두루새김

이 표현은 단순히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내린 판결에 문제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 판결을 다시 살피도록 요구합니다.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서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심문도 하지 않고 사실을 분명히 알아보지도 않은 채 이스라엘의 딸에게 죄가 있다고 판결했습니까?」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48 · 두루새김

다니엘의 질문은 수산나의 성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수산나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것과 별개로, 누구도 충분한 심문 없이 죄가 있다는 판결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다니엘의 심문은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내고, 그 사람을 죽음에서 보호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 진실을 확인하는 일은 약한 사람에게 끝없이 자기 결백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이 바로잡은 것은 그녀의 태도가 아니라 재판의 잘못입니다.

소년이 장로의 자리에 앉다

장로들이 다니엘에게 자신들 가운데 앉아 말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장로의 자격을 주셨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나이 든 장로들을 재판관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공정한 판단을 요구하는 사람은 어린 소년입니다. 다니엘은 나이 때문에 장로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셨고, 공동체가 그에게 판단의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일으키신 결과는 새로운 권위자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일이 아니라, 중단되었던 사실 확인을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다니엘 2:22에서 하나님은 깊고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는 분으로 찬양받으십니다. 수산나 이야기에서도 인간이 알지 못하는 진실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이 중심에 놓입니다. 다만 여기서 감추어진 것은 왕의 꿈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거짓과 한 사람의 억울함입니다. 45절을 반드시 소년에게 영이 처음 주어졌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두루새김이 「장로의 자격」으로 옮긴 원문의 표현은 프레스베이온으로, 나이 든 사람의 지위나 장로에게 속한 권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50절의 장로들이 고발한 두 사람인지 다른 장로들인지는 본문이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앞서 두 사람을 거짓 증인으로 지목한 다니엘에게 그들이 스스로 심문을 맡긴다는 것은 어색하므로 다른 장로들로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이를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나무 아래에서 드러난 거짓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1–59 본문 →

다니엘은 먼저 두 장로를 서로 멀리 떼어 놓으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모든 일을 함께 계획하고, 함께 행동하고, 함께 증언했습니다. 그들의 말이 일치하는 것은 진실을 함께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바로 그 연결을 끊습니다.

첫 번째 장로 — 악한 나날 속에서 늙어 버린 사람

두 사람이 서로 떨어지자 다니엘이 그중 하나를 불러 말했습니다. 「악한 짓을 하며 늙어 온 자야, 이제 네가 전에 저지른 죄를 심판받을 때가 왔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2 · 두루새김

53절은 그가 과거에도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며 죄 없는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고 하고 죄 있는 사람들은 풀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수산나의 사건은 우연히 생긴 한 번의 잘못이 아닙니다. 재판관으로서 권력을 오랫동안 잘못 사용한 삶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여기서 다니엘은 출애굽기 23:7을 인용합니다. 「죄 없는 사람과 올바르게 사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장로들은 모세의 율법을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수산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다니엘은 바로 그 율법으로 장로들의 행동을 판단합니다.

율법이 본래 보호하려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다시 드러나는 것입니다.

「네가 정말 이 여자를 보았다면 말해 보아라.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을 보았느냐?」 그 장로가 대답했습니다. 「유향나무 아래입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4 · 두루새김

다니엘은 그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둘로 가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장로 — 가나안의 후손이라고 불리는 유다 사람

다니엘은 그를 물러나게 하고 다른 장로를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유다의 후손이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자야, 아름다움이 너를 속이고 욕심이 네 마음을 비뚤게 만들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6 · 두루새김

문맥에서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라는 그의 신분과 실제 행동 사이의 모순을 고발하는 말입니다. 유다의 백성을 다스린다는 사람이 그 백성의 율법과 정의를 저버렸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딸들에게 이렇게 해 왔다. 그 여자들은 두려워서 너희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너희의 악한 짓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57 · 두루새김

다니엘의 고발은 그들의 행동이 반복되어 왔다고 밝힙니다. 다니엘의 고발 대상은 일관되게 장로들의 악한 짓이며, 다른 여성들에 대한 처벌이나 비난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두 번째 장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합니다. 어느 나무 아래에서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떡갈나무 아래였다고 대답합니다.

왜 나무의 이름이 결정적인가

다니엘은 복잡한 법률 논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비교했습니다.

두 장로는 함께 목격했다고 주장한 사건의 장소를 서로 다르게 말합니다. 이야기 안에서는 이 모순이 그들의 증언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물론 실제 재판에서 목격자들이 어떤 작은 세부 사항을 다르게 기억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증언이 반드시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산나 이야기는 독자에게 두 사람이 함께 거짓을 꾸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 주며, 나무에 관한 말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그 거짓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합니다.

거짓을 무너뜨린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같은 사실을 각자에게 확인한 질문이었습니다.

열왕기상 3:16–28에서 솔로몬이 두 여인의 재판을 맡는 이야기에서도 두 여인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합니다. 솔로몬은 그들의 말만 듣고 곧바로 한쪽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드러낼 방법을 사용합니다. 두 이야기의 구체적인 방법은 다르지만, 지혜로운 재판이 무엇인지에 관해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죄 없는 사람과 올바르게 사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인용은 칠십인역 출애굽기 23:7의 표현과 직접 연결됩니다. 「가나안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에스겔 16:3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그 근본이 가나안 땅에 있다고 책망하는 표현과 주제적으로 비슷합니다. 두 경우 모두 단순히 어느 민족의 후손인지보다 언약 백성의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이 문제입니다. 원문에서는 나무 이름과 심판을 나타내는 동사가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그가 증언에 사용한 나무의 이름이 곧 그 자신에 대한 심판의 말이 됩니다. 두 번째 장로 역시 자기 입으로 말한 나무의 이름과 연결된 심판을 듣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수산나 이야기가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쓰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언어의 이야기를 그리스어로 옮기거나 다듬는 과정에서 이러한 표현이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구별해야 합니다.

뒤집힌 판결 — 율법이 다시 죄 없는 사람을 보호하다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60–64 본문 →

거짓 증언이 드러나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외칩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외치며, 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들을 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60 · 두루새김

이 문장에서 하나님은 감추어진 것을 아시는 분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들을 구하시는 분으로 고백되십니다. 하나님이 수산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다는 사실이 공동체의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거짓 증인이 받는 판결

61–62절에서는 두 장로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이 받는 형벌은 신명기 19:16–21의 율법 규정의 적용으로 제시됩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두 장로를 죽였습니다. 그날 죄 없는 한 사람이 목숨을 건졌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62 · 두루새김

「죄 없는 한 사람이 목숨을 건졌습니다」라는 말은 수산나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전하는 동시에, 공동체가 죄 없는 사람을 죽일 뻔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합니다. 처음에는 율법이 수산나를 죽이는 도구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율법이 거짓 증인들을 심판하고 죄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이 수산나에게 사과했다거나, 자신들의 성급한 판단을 구체적으로 반성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공동체가 바로잡은 판결은 분명하지만, 그동안 수산나가 겪은 공포와 수치가 어떤 방식으로 회복되었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63절에서는 수산나의 부모와 남편, 친척들이 함께 찬양합니다. 64절에서는 다니엘이 그날부터 백성에게 큰 인물로 인정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수산나의 구원 이야기는 다니엘의 등장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9:16–21의 법은 거짓 증인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을 경우, 그가 그 사람에게 하려고 했던 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규정합니다. 수산나의 사건에서 두 장로는 거짓 증언으로 그녀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것은 독자가 그대로 현대의 처벌 방식으로 옮겨 적용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그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법적 질서 안에서 어떤 반전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하늘을 바라본 사람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13:1–64 본문 →

그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까지 하나님이 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하나님이 하신 일은 바로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감추어진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억울한 사람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고, 사람들이 잘못된 확신 속에서 내린 판결을 다시 살피게 하셨습니다.

정원에서 두 장로는 아무도 자신들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힘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감추어 두었다고 생각한 진실은 마침내 드러났습니다.

한 소년이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고 물었습니다.

어느 나무 아래였느냐고.

그 질문 앞에서 두 장로의 거짓은 무너졌고, 죽음으로 끌려가던 수산나는 살아났습니다.

그날 죄 없는 한 사람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