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3–12장 · 세 사람의 찬양
불가마 한가운데서 시작된 찬양
세 사람은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불타는 가마에 던져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했지만, 그 충성이 고난을 막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어 다니엘서는 이 장면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 사람이 불가마에서 살아 나왔다는 사실을 서둘러 알리는 대신, 그들이 불길 한가운데서 드린 긴 기도와 찬양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아사랴는 자신들을 불 속에 던진 왕의 악행부터 고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의로우시며, 자기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백성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이 장은 하나님이 세 사람을 불에서 건지셨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불길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은 아람어 다니엘서 3:23과 3:24 사이에 들어가는 그리스어 전승의 확장 부분입니다. 앞의 이야기에서는 세 사람이 묶인 채 불가마에 떨어지고, 다음 장면에서 느부갓네살이 놀라 일어납니다. 그리스어 본문은 그 두 장면 사이에 머물면서, 세 사람의 기도와 찬양을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불길 속에 열리는 또 하나의 이야기
세 사람은 불길 한가운데를 거닐면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주를 찬양했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24 · 두루새김
세 사람의 찬양은 단순히 고난이 끝난 뒤의 감사가 아닙니다. 고난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25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아사랴입니다. 앞의 아람어 이야기에서 그는 바벨론 이름인 아벳느고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니엘서 1:6–7에 나오는 본래의 히브리 이름이 사용됩니다.
그 이름의 변화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안에서 그 효과는 분명합니다. 왕의 궁정에서는 바벨론이 붙인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에서는 자기 조상들의 신앙에 속한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바벨론 왕은 그들의 몸을 불 속에 던질 수 있지만, 그들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이제 아사랴는 입을 열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작됩니다.
불의한 왕 앞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고백하다
26–27절에서 아사랴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이 모든 일에서 올바르시다고 선언합니다.
「주님께서는 하신 모든 일에서 올바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모든 일은 참되고, 주님의 길은 곧으며, 주님의 모든 판결은 진실합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27 · 두루새김
지금 아사랴가 서 있는 곳은 불의한 왕이 마련한 처형장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올바르시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을 이해하려면 아사랴가 두 가지 서로 다른 문제를 구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바벨론 왕이 저지르는 불의입니다. 세 사람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박해가 정당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아사랴는 예루살렘에 닥친 재앙을 돌아보면서, 그 뒤에 자기 백성의 불순종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저희는 주님의 명령을 듣지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가 잘되도록 명령하셨지만, 저희는 그 명령대로 살지 않았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30 · 두루새김
율법은 이스라엘을 억누르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생명을 누리도록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길을 떠났고, 그 결과 자신들이 의지하던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아사랴는 세 사람 각자의 죄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저희」라고 말합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이 세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아사랴는 자신을 민족의 역사와 떼어 놓지 않습니다.
다니엘서 9:4–19에서 다니엘이 드리는 기도도 같은 흐름을 보여 줍니다. 다니엘은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백성 밖에 세우지 않고, 백성과 함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열왕기상 8:46–50에서 솔로몬이 내다본 포로 생활 중의 회개와 간구도 이와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이 기도를 모든 고난이 당사자의 죄 때문에 일어난다는 주장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민족이 겪는 역사적 재앙에 대해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세 사람이 박해받을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으로 바꿀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사랴는 하나님이 올바르시다는 고백과 바벨론 왕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판단을 동시에 유지합니다. 32절은 자신들을 넘겨받은 왕을 「올바르지 못하고 온 땅에서 가장 악한 왕」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는 사실은 그 심판이 이루어지는 역사 속에서 악을 행하는 인간까지 의롭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33절에서 기도는 절망의 깊은 곳에 도달합니다.
「이제 저희는 입을 열 수도 없습니다. 주님의 종들과 주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사람들이 부끄러움과 모욕을 당했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33 · 두루새김
아사랴는 실제로 입을 열어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말을 할 능력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변호하거나 무엇을 요구할 자격조차 주장할 수 없는 처지를 나타냅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붙드는 것은 언약이다
아사랴의 기도는 34절에서 방향을 바꿉니다.
「부디 주님의 이름을 위해 저희를 아주 버리지 마시고, 주님의 언약을 깨뜨리지 마십시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34 · 두루새김
그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 시작할 때에는 자신들의 선행이나 자격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35–36절에서 아사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부르며,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창세기 15:5와 22:17의 언약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희의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보다 작아졌습니다. 저희가 지은 죄 때문에 오늘 온 땅에서 낮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37 · 두루새김
아사랴가 이 약속을 꺼내는 이유는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비참한 모습과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약은 현실을 부정하는 수단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은 아니라고 간구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저희의 주님」이라는 호칭은 지금 이야기의 권력 관계를 뒤집습니다. 겉으로 보면 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주인은 바벨론 왕입니다. 그러나 아사랴는 그 왕보다 높은 주인이 계시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38절에서는 민족의 몰락이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지금은 다스리는 사람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습니다. 번제도 다른 제사도 없고, 바칠 예물도 향도 없습니다. 주님 앞에 제물을 바치고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38 · 두루새김
다스리는 사람과 지도자는 백성을 이끌어 왔고,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왔습니다. 제사와 예물과 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전 예배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런데 아사랴는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이 기도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기도를 바벨론 포로기의 상황에 맞추어 읽으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민족의 정치적 독립 상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편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호소는 후대에 성전이 더럽혀지고 제사가 중단된 일, 곧 마카베오기 상권 1:54–59에 기록된 상황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만으로 기도가 쓰인 시기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언자도 없다는 말 역시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 안에서 모든 예언 활동이 문자 그대로 사라졌다는 역사적 진술로만 읽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는 백성 전체가 정상적인 신앙생활의 중심을 잃어버린 현실을 표현합니다.
제단이 사라진 자리에서 드리는 제사
39절은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부서진 마음과 겸손한 영을 지닌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39 · 두루새김
성전도 제사도 없다는 탄식 뒤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방법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사랴는 자신들을 받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가 이제 제물로 내놓는 것은 숫양이나 황소가 아니라 부서진 마음과 겸손한 영입니다.
이것은 시편 51:16–17과 깊이 연결됩니다. 그 시편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부서진 영과 마음으로 표현됩니다. 제사 자체를 무가치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 없이 제물만 드리는 일이 충분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아사랴의 경우에는 한 가지 사정이 더 있습니다. 그는 정상적인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제사를 거부하는 선언이 아니라, 제단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의 회개와 헌신을 받아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입니다.
40절에서는 숫양과 황소, 살진 어린양 수만 마리를 바치는 제사를 언급합니다. 그만큼 풍성한 제사를 드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자신들이 드릴 수 있는 것은 낮아진 마음뿐입니다. 그런데 아사랴는 그 마음이 값비싼 제물과 똑같은 값을 지닌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렇게 받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41절에서 아사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저희는 온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며,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의 얼굴을 찾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41 · 두루새김
29절에서는 「주님을 떠나」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따르며」라고 말합니다. 기도 전체가 하나의 돌아섬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아사랴는 하나님께 다시 가까이 나아가는 일을 미래의 형편이 나아진 뒤로 미루지 않습니다. 성전이 회복되고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된 다음에야 하나님을 찾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42–45절에서는 구원을 간청합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단지 자신들의 생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사랴는 자신들을 해치는 자들의 권세가 무너지기를 구하면서, 그들이 하나님만이 주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분이심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만이 주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분이심을 그들이 알게 하십시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45 · 두루새김
이것은 다니엘서 3장 전체에 걸쳐 제기된 문제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앞서 자기 손에서 세 사람을 구해 낼 신이 누구겠느냐고 물었습니다(다니엘서 3:15). 아사랴는 그 질문에 직접 왕을 향해 대답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왕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40절 후반에는 번역상 어려움도 있습니다. 테오도티온 계열의 그리스어 표현 엑텔레사이 오피스텐 수는 직역하면 「당신 뒤에서 온전히 이루다」에 가깝습니다. 이를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에 대한 청원으로 읽을 수도 있고, 앞에서 말한 제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바로 뒤의 41절과 연결하여 「또 저희가 주님을 온전히 따르게 해 주십시오」로 옮겼습니다. 두루새김은 39절에서 「부서진 마음」, 44절에서 「그들의 힘이 꺾이게」라고 옮겼습니다. 원문에서는 이 두 자리에 같은 「부수다」(συντρίβω)라는 동사 어근이 사용됩니다. 앞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회개의 모습이고, 뒤에서는 남을 억누르는 힘이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불가마 안에 불어온 이슬 머금은 바람
기도가 끝나자 이야기는 갑자기 불가마 밖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왕의 부하들은 여전히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석유와 역청, 삼 섬유 찌꺼기와 덩굴 가지를 계속해서 넣습니다. 불길은 가마 위로 마흔아홉 규빗까지 솟아오르고, 가마 둘레에 있던 칼데아 사람들을 불사릅니다.
그런데 49절에서 사건을 이끄는 이가 바뀝니다.
그러나 주의 천사가 아사랴 일행과 함께 가마 안으로 내려가, 가마에서 불길을 떨쳐 냈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49 · 두루새김
그는 멀리서 불을 끄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직접 내려갑니다.
천사는 가마 한가운데를 이슬 머금은 바람이 솔솔 부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불은 그들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고, 그들을 아프게 하거나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50 · 두루새김
「이슬 머금은 바람이 솔솔 부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은 불가마의 극심한 열기와 정면으로 대조됩니다.
하나님은 왕이 준비한 처형 도구가 자신의 종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만드십니다.
여기서 구원은 고난이 일어나지 않게 막는 모습이 아니라, 고난이 이미 시작된 자리에서 그 파괴적인 힘을 제한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다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바람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는 진술이 아니라, 천사가 가마 안에 만들어 낸 시원하고 부드러운 환경을 그려 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43:2의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물과 불을 지나더라도 그 가운데서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천사가 세 사람과 함께 있다는 설명은 아람어 다니엘서 3장의 네 번째 인물에 관한 장면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다니엘서 3:25에서 왕은 불 속에 네 사람이 있음을 보고 놀라며, 3:28에서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종들을 구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어 확장 본문은 구원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천사의 행동으로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 천사의 정체를 특정한 신약의 인물과 같다고 볼 근거까지 본문이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사를 드릴 성전은 없어도, 하나님의 왕좌는 무너지지 않는다
51절은 세 사람이 「한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전합니다.
앞서 아사랴는 자신들이 입을 열 수도 없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 사람은 함께 목소리를 모아 하나님을 높입니다.
이 찬양은 52절에서 아사랴가 처음 기도했던 말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됩니다.
「저희 조상들의 하나님이신 주님, 주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영원히 찬양받으시고 드높임을 받으십니다. 주님의 영광스럽고 거룩한 이름은 찬양을 받으며, 영원무궁히 더없이 찬양받고 드높임을 받습니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52 · 두루새김
아사랴의 기도와 세 사람의 찬양은 서로 독립된 노래처럼 보이면서도, 같은 고백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구원 이전에도 찬양받으실 분이셨고, 구원 이후에도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 그분을 경험한 사람들의 상황입니다.
이어서 찬양은 하나님의 성전과 왕좌를 향합니다.
53절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깃든 성전을 말하고, 54–55절은 깊은 곳들을 내려다보시며 그룹들 위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왕좌를 찬양합니다. 56절은 시선을 하늘의 궁창까지 높입니다.
38절은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지상의 예배 질서를 바라봅니다. 반면 53–56절의 찬양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더 넓은 현실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거룩한 영광이 깃든 성전」은 지상의 성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읽힐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거처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시편 11:4에서도 하나님의 성전과 하늘의 왕좌가 함께 언급됩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정상적인 제사를 드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왕좌에서 내려오신 것은 아닙니다. 백성의 예배 제도가 무너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다스림까지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지금 이 찬양이 울려 퍼지는 장소는 바벨론의 불가마입니다.
그곳은 성전이 아니고, 제단도 없으며, 제사장도 없습니다. 왕이 준비한 처형장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장소를 빼앗긴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않으시는 장소는 없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불러 모으는 찬양
57절에서 노래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세 사람은 하나님을 직접 부르며 「주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향해 말을 건넵니다.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을 영원히 노래로 찬양하고 드높여라.」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57 · 두루새김
노래는 하늘에서 시작합니다. 하늘들, 천사들, 물들과 하늘 위에 있는 모든 것들, 온 군대, 해와 달과 별들이 차례로 부름을 받습니다. 이어서 비와 이슬, 바람과 더위, 서리와 눈, 밤과 낮, 빛과 어둠, 번개와 구름이 등장합니다.
그런 다음 74절에서 시선은 땅으로 내려옵니다. 산과 언덕,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 샘, 바다와 강, 큰 바다 짐승들과 물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 새, 들짐승과 집짐승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 배열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편 148편도 하늘과 땅의 피조물을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온 세계는 스스로 신과 같은 권세를 지닌 존재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피조물의 세계입니다.
다니엘서 3장 앞부분에서 느부갓네살은 금 신상을 세우고 모든 민족과 언어의 사람들에게 절하라고 명령합니다(3:4–7). 여러 악기가 울리면 사람들은 왕이 만든 형상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의 찬양은 왕이 부르는 모임보다 훨씬 넓은 무리를 향합니다. 왕이 불러 모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제국의 백성들이지만, 이 노래는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을 부릅니다. 그 차이는 규모에만 있지 않습니다. 왕의 신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세 사람이 찬양하는 하나님은 그 신상을 만든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불과 타는 더위도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는다
「불과 타는 더위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을 영원히 노래로 찬양하고 드높여라.」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66 · 두루새김
세 사람은 불 속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이 선하다는 선언도 아니고, 불에 의한 처형이 정당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불조차 하나님의 다스림 밖에 있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불을 명령하는 왕은 불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가마 둘레의 칼데아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 불이 세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불은 왕의 절대적인 권세를 증명하는 도구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불마저 창조주께 속해 있음을 드러내는 배경이 됩니다.
이 대목은 64–65절의 비와 이슬과 바람, 69–70절의 추위와 서리와 눈과도 어울립니다. 50절에서 세 사람을 보호한 이슬 머금은 바람이 이제 온 자연을 향한 찬양 속에서 다시 떠오릅니다. 뜨거움과 차가움, 밝음과 어둠, 낮과 밤은 모두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 속합니다.
자연을 사람처럼 부르는 시적인 표현을 통해 창조 세계 전체가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반복되는 후렴도 이런 목적에 어울립니다. 같은 말이 계속 돌아오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찬양에 참여합니다. 마치 하나의 노래가 점점 더 넓은 세계로 퍼져 나가는 듯합니다.
처음에는 세 사람의 목소리뿐이었습니다. 이제 그 노래는 하늘과 땅을 가득 채웁니다.
온 피조물의 찬양이 다시 세 사람에게 돌아오다
82절부터는 마침내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을 영원히 노래로 찬양하고 드높여라.」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82 · 두루새김
하늘과 땅의 피조물을 모두 부른 뒤에 사람을 부른다는 순서도 의미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 세계와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의 한 부분입니다.
그다음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 종들, 의로운 사람들의 영과 혼, 거룩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이 차례로 부름을 받습니다. 세계 전체에서 시작한 찬양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에게 집중되는 것입니다.
특히 84절의 「제사장들아」라는 부름은 앞의 기도와 묘한 관계를 이룹니다. 38절에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다고 탄식했지만, 여기서는 제사장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부릅니다. 찬양은 잃어버린 성전의 현실을 모른 체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 제사가 중단되어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의 부르심까지 끝내지는 못한다고 노래합니다.
87절에서는 「거룩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아」라는 부름이 나옵니다. 이것은 39절에서 아사랴가 드렸던 「부서진 마음과 겸손한 영」의 기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처음에는 낮아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제 그처럼 낮아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88절에 이르면 긴 노래가 마침내 세 사람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냐야, 아사랴야, 미사엘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을 영원히 노래로 찬양하고 드높여라. 그분께서 우리를 죽은 이들의 세계에서 건져 내시고, 죽음의 손에서 구하셨기 때문이다. 불길이 타오르는 가마 한가운데서 우리를 건져 내시고, 불 한가운데서 우리를 건져 내셨기 때문이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88 · 두루새김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순간, 거대한 창조 세계를 향해 퍼져 나갔던 찬양이 다시 불가마 한가운데로 모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온 피조물과 함께 부르던 노래에 스스로도 응답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지만, 찬양을 받을 대상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세 사람은 그 불 가운데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찬양은 막연한 신앙의 선언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사건에 근거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89–90절에서 노래는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를 찬양하며 끝납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기 때문이다.」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3:89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시편 136:1의 찬양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시편 136편은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분의 자비가 영원하다는 후렴을 반복합니다.
아사랴는 처음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내리신 판결이 올바르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세 사람은 그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며, 그 자비가 영원하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움과 자비는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려두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90절의 「신들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도 시편 136:2와 연결됩니다. 이것은 여러 신의 존재를 같은 수준에서 인정하는 신앙고백이라기보다, 신과 같은 권세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하나님이 높으시다는 찬양의 언어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과 왕의 권세 앞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제 하나님만이 높으시다는 고백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86절의 「의로운 사람들의 영과 혼아」에서 그리스어에서 영과 혼을 가리키는 말이 함께 등장하지만, 이 구절만으로 죽음 이후 인간의 상태에 관한 구체적인 교리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의로운 사람들의 내면까지 찬양의 부름 속에 포함시키는 시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88절에서 두루새김이 「죽은 이들의 세계」로 옮긴 말은 원문에서 하데스(ᾅδης)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 히브리어 「스올」을 옮길 때 사용되는 표현으로, 죽음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이 문장은 세 사람이 실제로 죽어서 죽은 이들의 세계에 내려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죽음의 손」이라는 표현과 나란히, 죽음에 사로잡힐 위험에서 구원받았음을 노래합니다.
이 장이 보여 주는 예배와 구원
제단이 없다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마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권세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그 권세가 세상의 마지막 주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은 자신만을 위한 감사에서 끝나지 않고, 온 피조물을 찬양으로 초대하는 노래가 됩니다.
이 사건이 주는 소망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험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난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특정한 세 사람에게 일어난 구원을 증언합니다. 다만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권세가 인간의 폭력보다 크며, 그분의 자비가 자신의 백성에게 미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장소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불가마에 갇힌 세 사람의 세계는 극도로 좁아졌습니다. 왕은 그들이 살아갈 공간을 없애려 했고, 그들을 불 속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세계는 오히려 끝없이 넓어집니다.
가마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은 채 하늘과 땅을 부르고, 해와 달을 부르고, 바다와 강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마침내 자신들을 죽이려던 불까지 부릅니다. 「불과 타는 더위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불은 여전히 가마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는 이슬 머금은 바람이 솔솔 불고 있습니다.
왕이 세 사람을 가두기 위해 만든 공간에서, 세 사람은 온 창조 세계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