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왕도 율법 아래에 있습니다

신명기 17장의 마지막에는 뜻밖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습니다. 그는 백성 가운데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군대를 거느릴 수 있고, 나라의 재산을 관리하며, 백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일은 군대를 정비하거나 왕궁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누구의 말씀 아래 있는 사람인지를 배우는 일입니다.

17장에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 우상숭배 혐의를 조사하는 사람, 어려운 사건을 판단하는 제사장과 재판관, 그리고 왕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권한을 가졌지만 한 가지 공통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사람에게 맡겨진 권한은 무엇을 기준으로 행사되어야 하는가?

앞 장에서 모세는 성읍마다 정의로운 재판관을 세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 17장은 그 재판관들이 다루어야 할 중대한 사건과 어려운 판결의 문제를 설명한 다음, 재판관보다 훨씬 큰 권력을 가질 왕에게도 엄격한 한계를 둡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717장 본문 읽기 →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 예배하는 사람이 정할 수 없는 것

신명기 17:1 본문 →

왜 결함이 있는 제물을 금지하는가

17장은 짧은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흠을 비롯하여 어떤 결함이라도 있는 소나 양이나 염소를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 제물로 잡아 바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신명기 17:1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 장 마지막의 아세라와 기둥에 관한 금지 명령과 이어집니다. 거기서는 여호와야훼의 제단 곁에 우상숭배의 상징을 세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서는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제물 자체에 관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레위기 22:17–25에도 제물로 드리는 짐승의 신체적 결함에 관한 규정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신명기 15:21 역시 첫 새끼 가운데 심한 흠이 있는 짐승을 제물로 드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17:1에서 「어떤 결함이라도」라는 말은 앞의 「흠」을 더욱 넓혀 강조합니다. 제물로 바치는 짐승에 부적합한 상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제사 규정 안에서 제물은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에 따라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결함 있는 동물이 생명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서는 안 됩니다. 이 명령은 동물의 존재 가치가 아니라 제물로 바치기에 적합한 조건을 규정합니다.

특히 예배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남겨 두고 싶은 좋은 짐승과 하나님께 바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임의로 구별한다면, 그는 이미 자신의 편의를 예배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예배 행위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드리는 사람의 의도와 별개로,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이 한 절 뒤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제물의 결함을 넘어, 예배의 대상 자체를 바꾸는 문제입니다.

언약을 어긴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신명기 17:2–7 본문 →

죄가 발견되었다는 말과 죄가 입증되었다는 말은 다르다

2–5절은 하나의 긴 조건문처럼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성읍에서 남자나 여자가 여호와야훼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고, 다른 신이나 해와 달과 하늘의 군대에 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소식을 들은 즉시 그 사람을 처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당신에게 알려져 당신이 듣게 되면 철저히 조사하십시오. 조사하여 보니 이스라엘 안에서 이런 역겨운 일이 행해졌다는 것이 사실이고 확실하다면,」신명기 17:4 · 본디새김

본문은 어떤 사람에게 심각한 혐의가 제기되었다는 사실과 그 혐의가 사실로 입증되었다는 사실을 구별합니다. 소문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그 사람을 고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신중한 태도를 권하는 일반적인 교훈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판결에서 따라야 할 절차로 제시됩니다.

왜 해와 달을 섬기는 일도 언약을 어기는 것인가

3절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행위와 함께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절하는 일을 언급합니다. 여기서 하늘의 군대는 문맥상 해와 달을 비롯한 천체들을 가리킵니다. 신명기 4:19에서도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해와 달과 별들에 이끌려 그것들에게 절하고 섬기는 일을 경고합니다.

신명기 4:32–40은 하늘과 땅의 주권이 여호와야훼께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 관점에서 하늘의 천체를 예배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 안의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17:2는 이런 행위를 「그분의 언약을 어기는」 일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고,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명기 5:6–9).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이 다른 신에게 절하는 일은 단순한 개인적 종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언약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로 규정됩니다.

두세 증인이 필요한 이유

「죽임을 당할 사람은 두 증인이나 세 증인의 증언에 따라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한 증인의 증언으로는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신명기 17:6 · 본디새김

하지만 증인이 두세 명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앞의 4절은 철저한 조사와 사실의 확실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증인의 숫자와 사건의 진실성은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19:15–21은 이 문제를 더욱 발전시킵니다. 거기서는 두세 증인의 원칙을 다시 제시하면서, 거짓 증언이 드러난 경우 증인에게 책임을 묻는 규정까지 설명합니다.

증언은 단순히 재판을 돕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행위입니다.

7절은 그 책임을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그를 죽일 때에는 증인들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그 뒤에 온 백성이 손을 대야 합니다. 당신 가운데서 악을 없애십시오.」신명기 17:7 · 본디새김

자신의 증언으로 누군가가 죽게 된다면, 증인은 그 판결의 결과에 직접 관계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의 독자는 이 사형 규정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단락의 처벌은 매우 엄중합니다.

우상숭배가 사실로 확정되면 돌로 쳐서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현대 독자는 종교적 행위에 사형을 부과한다는 사실에서 강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긴장을 없애기 위해 본문이 말하는 형벌을 단순한 상징이나 비유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이 규정을 오늘날의 개인이나 종교 공동체가 그대로 집행할 권한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와 맺은 언약을 중심으로 공동체 전체의 종교적·법적 질서를 구성하던 상황에서 주어진 규정입니다. 오늘의 국가나 종교 공동체가 이스라엘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지닌다는 전제는 본문에 없습니다.

본문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사실 확인을 생략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3절의 「내가 명령하지 않은 일을 한 경우」라는 표현에는 흥미로운 인칭 변화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여호와야훼를 주로 삼인칭으로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갑자기 「내가」라는 일인칭이 나타납니다. 이를 모세가 자신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로 읽을 수도 있고, 모세의 선포 안에서 여호와야훼 자신의 목소리가 직접 드러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금지의 궁극적인 근거가 인간의 취향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명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 — 재판관도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할 수 없다

신명기 17:8–13 본문 →

재판관이 모른다고 인정해야 하는 순간

8절은 앞의 재판 규정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당신의 성문 안에서 피 흘림과 피 흘림 사이, 소송과 소송 사이, 상처와 상처 사이를 가리는 다툼의 사안이 당신이 판결하기에 너무 어려우면, 일어나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십시오.」신명기 17:8 · 본디새김

앞의 사건에서는 충분한 조사를 통해 사실을 확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조사를 하더라도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납니다.

모세는 재판관이 반드시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재판관에게는 판결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한이 무제한적인 지혜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피 흘림과 피 흘림 사이」는 생명이나 피에 관련된 사건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고의적인 살인과 의도하지 않은 죽음의 구별도 이러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9:4–13은 실제로 의도하지 않은 살인과 고의적인 살인을 구별합니다.

「소송과 소송 사이」는 서로 다른 주장과 법적인 다툼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상처와 상처 사이」에 사용된 히브리어 네가(⁨נֶגַע⁩)는 상처뿐 아니라 타격, 재앙, 피부나 물건에 나타나는 병변 등을 가리킬 수 있는 말입니다. 레위기 13장에서는 피부와 의복에 나타나는 병변을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마지막 표현을 사람 사이의 폭행이나 상해에 관한 사건으로 읽을 수도 있고, 의례적 정결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병변의 문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그 범위를 정확히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 사건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곳으로 가져가는가

「레위 사람 제사장들과 그 당시에 있는 재판관에게 가서 물으십시오. 그들이 당신에게 판결을 알려 줄 것입니다.」신명기 17:9 · 본디새김

여기에는 지역의 재판관과 더 높은 수준의 판단을 담당하는 권위 사이의 관계가 나타납니다. 각 성읍에는 재판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그곳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삶의 종교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을 오늘날의 제도처럼 완전히 분리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10:10–11에서 제사장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별하며 이스라엘에게 규정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명기 33:10에서도 레위 사람들의 역할에는 여호와야훼의 규정과 가르침을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일이 포함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가서 의견을 듣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맡아 가르치는 사람들과 재판관을 통해 사건을 판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재판관에게 주어진 권한은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고집할 권리가 아니라, 올바른 판결을 얻기 위해 더 나은 판단을 구할 책임을 포함합니다.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말라

10–11절에서는 내려진 판결에 따라야 한다는 명령이 반복됩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가르치는 가르침과 당신에게 말하는 판결에 따라 행하십시오. 그들이 당신에게 알려 주는 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마십시오.」신명기 17:11 · 본디새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마십시오」라는 표현은 신명기에서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났습니다. 신명기 5:32과 28:14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르는 백성에게 이와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17:11에서는 제사장들과 재판관이 알려 주는 판결에 적용됩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무관하게 마음대로 새로운 법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맥에서 그들의 판단은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다루는 직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내려진 권위 있는 판결을 개인이 자기 판단에 따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아무리 신중하게 판단해도 누군가는 자신이 불리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공동체가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판결의 권위를 인정하게 합니다.

판결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엄한 형벌을 부과하는가

12절은 판결을 거부하는 사람에 관한 엄격한 규정을 제시합니다.

「거기 서서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말이나 재판관의 말을 듣지 않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악을 없애십시오.」신명기 17:12 · 본디새김

본문이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질문을 하거나, 어떤 판단에 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공동체가 따라야 할 권위 있는 판결을 고의로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이 규정의 형벌 역시 매우 무겁습니다. 현대의 법적 관점에서 재판의 권위에 대한 불복종을 이렇게 처벌하는 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를 제기합니다. 다만 신명기 자체에서 이 불복종은 하나님의 율법을 중심으로 세워진 공동체의 사법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행위로 간주됩니다.

「그러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더는 거만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신명기 17:13 · 본디새김

여기서 두려움은 판결을 자의적으로 거부하는 행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판결의 엄격함만이 아니라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책임도 함께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단락에 이르면, 모세는 재판관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왕을 세우겠다는 백성 — 왕정은 허용되는가, 명령되는가

신명기 17:14–15 본문 →

「다른 민족처럼」이라는 말에 담긴 위험

14절에서 모세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내다봅니다.

「당신이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 살면서, 『내 둘레의 모든 민족처럼 내 위에 왕을 세우겠다.』 하고 말하면,」신명기 17:14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런데 땅에 정착한 뒤에는 다른 민족과 같은 정치적 제도를 원할 수 있습니다.

왕을 두려는 마음 자체가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는지 본문은 아직 확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왕을 원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다른 민족들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은 긴장을 만들어 냅니다.

「반드시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사람을 당신 위에 왕으로 세우십시오. 당신의 형제들 가운데서 당신 위에 왕을 세우십시오. 당신의 형제가 아닌 외국 사람을 당신 위에 세워서는 안 됩니다.」신명기 17:15 · 본디새김

모세는 반드시 왕을 세워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백성이 왕을 세우겠다고 할 경우 지켜야 할 조건을 알려 주는 것일까요?

14절은 「왕을 세우겠다」고 말하는 상황을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이 단락을 모든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무조건 왕을 세우라고 명령하는 말씀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왕정을 금지하는 명령도 아닙니다. 왕을 세우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반드시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시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명기 17장은 왕정의 존재 자체보다 왕정이 어떤 기준 아래 놓여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사무엘상 8장과 연결하면 무엇이 보이는가

사무엘상 8:5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표현은 신명기 17:14과 매우 가깝습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처럼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원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8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연결하여 말씀하십니다(8:7). 그리고 사무엘은 왕이 백성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경고합니다.

왕은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와 말을 위해 일하게 하고, 딸들을 데려다가 왕을 위해 일하게 하며, 밭과 포도원을 차지하고, 재산과 노동의 일부를 자기 통치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사무엘상 8:11–18).

백성은 왕을 통해 강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가르침은 왕이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왕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왕이 자기 권력을 무엇보다 높이는 통치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왕은 형제들 가운데서 나와야 한다

15절에는 「형제」라는 말이 두 번 등장합니다. 여기서 형제는 같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왕의 자격은 단지 군사적으로 강하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언약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명령은 왕을 다른 민족 출신의 통치자에게 맡기지 말라는 정치적 제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맥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언약과 율법 아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15절은 왕이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지 말하고, 20절은 왕이 어떤 마음으로 통치해야 하는지 말합니다.

왕은 형제들 가운데서 세워지고, 형제들 가운데서 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왕이 늘려서는 안 되는 세 가지 — 말과 아내와 은금

신명기 17:16–17 본문 →

왕은 왜 말을 많이 두어서는 안 되는가

16절에서 모세는 왕에게 첫 번째 제한을 둡니다.

「다만 왕은 자신을 위해 말을 많이 두어서는 안 되며, 말을 많이 두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아가게 해서도 안 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여러분에게 『너희는 이 길로 다시는 돌아가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신명기 17:16 · 본디새김

고대 서아시아의 왕들에게 말과 병거는 중요한 군사적 자원이었습니다. 왕이 많은 말을 소유한다는 것은 군사력을 확대하고 강력한 왕국을 세울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집트로 돌아간다는 말은 말 거래나 군사적 자원 확보를 위한 실제적인 왕래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본문이 그러한 왕래를 곧바로 이집트에서 다시 종살이하는 행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집트는 단순한 외국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종살이하던 땅이며,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곳입니다. 이제 왕이 자기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시 그곳에 의존하려 한다면, 출애굽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긴장이 생깁니다.

이것은 왕이 군대를 전혀 가질 수 없다는 명령이 아닙니다. 본문은 말을 많이 확보하려는 행위와 그로 인한 이집트로의 회귀를 금지합니다.

왜 아내를 많이 두는 것도 금지하는가

17절은 두 번째 제한을 제시합니다.

「왕은 자신을 위해 아내를 많이 두어서는 안 되며, 그의 마음이 돌아서서도 안 됩니다. 자신을 위해 은과 금을 지나치게 늘려서도 안 됩니다.」신명기 17:17 · 본디새김

고대 왕의 혼인은 개인적인 가정생활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왕실 사이의 혼인은 국가 간 관계를 맺고 정치적 결속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이런 관계를 지나치게 늘린다면, 그의 마음과 충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가 경계하는 것은 아내의 숫자 자체만이 아닙니다. 많은 아내를 두는 일이 왕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할 위험입니다.

왕의 문제는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는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소유가 왕의 마음을 어디로 이끄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은과 금은 왜 지나치게 늘려서는 안 되는가

세 번째 제한은 재산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왕이 가진 재산 전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왕이 자신을 위해 지나치게 재산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말이 많으면 군사적인 힘을 강화할 수 있고, 아내가 많으면 여러 정치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은과 금이 많으면 경제적 권력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왕에게 바로 이 세 가지를 무제한으로 늘리지 말라고 합니다.

왕은 자신을 위해 말을 많이 두어서는 안 되고, 자신을 위해 아내를 많이 두어서는 안 되며, 자신을 위해 은과 금을 지나치게 늘려서도 안 됩니다. 이 반복을 통해 문제의 중심이 드러납니다. 왕이 공동체를 다스리기 위해 권한을 부여받았는데, 그 권한을 자기 자신의 힘과 소유를 확대하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왕에게 주어진 권력은 왕 자신을 끝없이 크게 만드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읽는 세 가지 금지

열왕기상을 읽으면 이 세 명령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열왕기상 10:26–29에서는 솔로몬이 병거와 말을 많이 모으고, 이집트와 관련된 말과 병거의 거래가 등장합니다. 같은 장의 앞부분에서는 솔로몬이 많은 금과 은을 소유한 모습이 상세하게 묘사됩니다(열왕기상 10:14–25). 그리고 열왕기상 11:1–8에서는 솔로몬이 많은 외국인 아내를 사랑했고,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로 돌렸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신명기 17:17은 왕의 마음이 돌아서는 일을 경고하고, 열왕기상 11:4은 솔로몬이 늙었을 때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로 돌렸다고 서술합니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왕에게 주어진 경고가 실제 왕국의 역사에서 어떻게 중요한 문제가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강력한 군대와 풍부한 재산, 넓은 정치적 관계를 갖춘 왕이 반드시 하나님께 충실한 왕은 아닙니다.

왕국의 외적인 성공과 왕의 언약적 충실성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왕은 율법을 써서 곁에 두어야 한다 — 권력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

신명기 17:18–20 본문 →

왕좌에 앉는 날 해야 할 일

18절은 말합니다.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으면,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율법을 바탕으로 이 율법의 사본을 자신을 위해 두루마리에 써야 합니다.」신명기 17:18 · 본디새김

앞에서는 왕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많이 가져서는 안 되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왕이 자신을 위해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이 나옵니다.

왕이 소유해야 할 것은 단순히 권력의 상징물이 아닙니다.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고 바르게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왕은 자기에게 유리한 내용만 골라 새로운 법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자신과 공동체에 주어진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사람입니다.

왕은 통치하지만, 율법의 근원이 아닙니다.

왕은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왜 왕은 직접 율법의 사본을 마련해야 하는가

본문은 왕이 사본을 마련하는 행위와 그것을 평생 읽는 행위를 함께 명령합니다. 왕에게 율법은 궁전에 보관해 두는 귀중한 물건으로만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본을 자기 곁에 두고 평생 날마다 그것을 읽어야 합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야훼 자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고,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정들을 지켜 행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신명기 17:19 · 본디새김

왕은 즉위할 때 한 번 율법을 읽고 그 내용을 모두 배운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통치 경험이 많아졌다고 해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왕도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자동으로 주지 않습니다. 권력을 맡았다는 사실이 올바른 판단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뜻에 머물지 않습니다. 신명기 10:12–13에서는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일이 그분의 길을 걷고, 사랑하며, 명령을 지키는 삶과 함께 나타납니다. 신명기 17:19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은 율법을 읽고 지켜 행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왕이 율법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많이 쌓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읽은 말씀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열왕기하 23:1–3에서 요시야는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의 말씀을 백성 앞에서 읽고, 여호와야훼를 따르며 그 명령과 규정을 지키기로 언약을 세웁니다. 왕이 율법을 자기 마음대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앞에서 자신과 백성의 삶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왕은 왜 자기 형제들보다 마음을 높여서는 안 되는가

20절은 이 명령의 마지막 목적을 밝힙니다.

「또 그의 마음이 자기 형제들보다 높아지지 않고 그가 명령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 그와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왕으로 다스리는 날들이 길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신명기 17:20 · 본디새김

앞에서는 왕이 많은 아내를 두면 마음이 돌아설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제는 또 다른 마음의 위험이 나타납니다.

자기 형제들보다 높아지는 마음입니다.

왕은 실제로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권한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외적인 높이가 마음의 높이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남들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모세는 왕에게 바로 그 둘을 구별하도록 합니다.

왕은 형제들 가운데서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된 후에도 형제라는 관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맡겨진 권한은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이지, 공동체 위에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세울 근거가 아닙니다.

재판관에게 주어진 명령이 왕에게도 주어진다

여기서 이 장의 처음 부분과 끝부분이 뜻밖의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11절에서 모세는 어려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알려 주는 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마십시오.」 20절에서는 왕에게 말합니다. 「그가 명령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

앞에서는 판결을 따라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이었습니다.

이제는 왕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자신보다 높은 권위의 판결을 받아들이라는 원칙이 왕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입니다.

왕국이 오래 지속되는 조건

20절은 왕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왕으로 다스리는 날들이 길어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끝맺습니다. 여기서 왕의 오랜 통치는 단순히 군사력이 강하거나 왕실의 재산이 많기 때문에 보장되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지키고, 형제들보다 마음을 높이지 않는 삶과 연결됩니다.

물론 이 구절이 순종하는 모든 왕에게 개인적인 장수나 안정적인 왕위 계승이 기계적으로 보장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왕의 통치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르는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왕이 의지해야 할 최종적인 기준은 자기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맺음 — 왕좌 곁에 놓인 두루마리

신명기 17:1–20 본문 →

이스라엘에서는 누구도 자기 판단이나 권력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판결을 받아야 하고, 누군가는 판결을 내려야 하며, 누군가는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위치에 있든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졌습니다.

그는 왕좌에 앉았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이 그의 명령을 듣고, 그의 결정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에게 먼저 율법의 사본을 마련하라고 말합니다.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율법을 바탕으로 두루마리를 기록하고, 그것을 자기 곁에 두라고 합니다. 그리고 평생 날마다 읽으라고 명령합니다.

그가 두루마리를 펼칠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왕좌에 앉았어도 여전히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백성을 다스리지만 여전히 그들과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높은 자리에 올라왔지만 마음까지 높아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왕좌는 그에게 권한을 주지만, 두루마리는 그 권한이 누구의 말씀 아래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은 자신이 앉은 왕좌보다, 그 곁에 놓인 말씀을 더 두려워하는 법을 평생 배워야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