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장 · 수산 왕궁의 잔치

한 사람의 거절 앞에서 흔들리는 왕

아하수에로 왕은 인도에서 구스까지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립니다. 그의 왕궁에는 금과 은이 넘치고, 제국의 고관들이 모이며, 그의 명령은 여러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제국 전체에 전달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거대한 권력을 가진 왕이 자기 왕후 한 사람을 잔치 자리에 데려오지 못합니다.

더욱 뜻밖인 것은 이 장에 에스더도, 모르드개도, 유다인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이야기를 들려줄 책이 이방 제국의 화려한 잔치와 왕실의 갈등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읽는 시간 13분소단락 61장 본문 읽기 →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리는 왕 — 권력의 크기를 먼저 보여 주는 이유

에스더 1:1–4 본문 →

에스더의 첫 문장은 왕의 이름과 통치 영역을 강조합니다.

아하수에로 시대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는 인도에서 구스까지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리던 바로 그 아하수에로였다.에스더 1:1 · 본디새김

아하수에로는 일반적으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와 동일시됩니다. 여기서 인도와 구스는 제국의 광대한 동서남북 범위를 떠올리게 하는 지리적 표현입니다. 구스는 성경에서 대체로 이집트 남쪽, 누비아 일대와 관련된 지역을 가리킵니다.

독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한 왕실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민족과 지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의 중심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중심이 수산 성채입니다. 수산은 페르시아 왕권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였고, 본문은 왕이 그곳의 왕좌에 앉아 있다고 말합니다(1:2). 이야기는 제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째에 아하수에로는 고관과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풉니다. 페르시아와 메대의 군대, 귀족들, 지방 고관들이 왕 앞에 모입니다(1:3). 제국을 지탱하는 군사력과 행정 권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왕은 자기 왕국의 찬란한 부와 자기 위엄의 빛나는 영예를 여러 날 동안, 곧 백팔십 일 동안 드러내 보였다.에스더 1:4 · 본디새김

이 장의 왕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하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는 재물을 소유하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 재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른 사람들이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백팔십 일은 여섯 달에 가까운 기간입니다. 본문은 이 기간 내내 잔치가 계속되었다고 명시하기보다, 왕이 오랫동안 자신의 부와 위엄을 과시했다고 말합니다. 그 후에 별도의 이레 잔치가 이어집니다(1:5).

왕이 자신의 영예를 드러내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모든 가정의 남편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명령으로 끝납니다.

아하수에로의 권력은 이미 거대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그 권력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복종을 필요로 합니다.

원하는 대로 마셔도 되는 잔치 — 그러나 누구의 뜻이 존중되는가

에스더 1:5–9 본문 →

백팔십 일이 끝나자 왕은 수산 성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다시 이레 동안 잔치를 베풉니다.

첫 잔치가 제국의 고관들을 중심으로 왕의 위엄을 드러냈다면, 두 번째 잔치는 수산에 있는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아우릅니다. 흰 면포와 보랏빛 천, 은 막대와 돌기둥, 값비싼 돌로 꾸민 바닥, 금과 은으로 만든 긴 의자들이 등장합니다(1:6). 일부 돌 이름은 정확히 어떤 광물을 가리키는지 확정하기 어렵지만, 장면 전체가 귀한 재료로 채워진 화려한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포도주는 금잔에 담겨 나옵니다. 흥미로운 것은 금잔의 모양이 모두 같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1:7). 왕궁의 부유함은 잔 하나하나를 다르게 만들 만큼 넘쳐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화려한 물건들의 목록 끝에 뜻밖의 규정이 등장합니다.

술을 마시는 데는 규정에 따라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왕이 궁의 모든 책임자에게 각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주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에스더 1:8 · 본디새김

이것은 왕이 베푸는 잔치의 후함을 나타내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을 읽고 나면 이 규정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왕은 잔치 참석자들에게는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지 않지만, 왕후에게는 자신의 뜻을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술잔을 드는 일에는 강제가 없는데, 왕후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에는 거절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본문이 이 대조를 직접 해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두 장면이 나란히 놓였기 때문에 독자는 왕이 인정하는 자유가 어디까지인지를 묻게 됩니다.

그사이 왕후 와스디도 여자들을 위해 별도의 잔치를 베풀고 있습니다(1:9).

서술자는 왕이 잔치를 열었다고 말한 것처럼 왕후도 잔치를 열었다고 말합니다. 와스디는 처음부터 왕의 명령을 거절하는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왕실에서 자신의 잔치를 주관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배치 덕분에 10절의 명령은 더욱 갑작스럽게 느껴집니다. 왕후는 자기 잔치의 주관자로 소개되었는데, 곧바로 다른 잔치에서 왕의 위엄을 보여 주는 대상으로 불려 나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보여 달라는 명령과 왕후의 거절

에스더 1:10–12 본문 →

잔치의 마지막 날, 왕은 포도주로 마음이 흥겨워집니다.

일곱째 날, 왕은 포도주로 마음이 흥겨워지자 아하수에로 왕 앞에서 시중들던 일곱 내시 므후만, 비스다, 하르보나, 빅다, 아박다, 세타르, 가르가스에게 백성들과 고관들에게 왕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고 왕관을 쓴 와스디 왕후를 왕 앞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왕후는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에스더 1:10–11 · 본디새김

앞서 왕은 자신의 재물과 위엄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는 왕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왕이 사람들 앞에 드러내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여성 한 사람이 아니라, 왕실의 영광을 나타내는 왕후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와스디가 왜 거절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와스디 왕후는 내시들이 전한 왕의 명령에도 오기를 거절했다. 왕은 몹시 화를 냈고, 그의 속에서 분노가 불타올랐다.에스더 1:12 · 본디새김

앞서 왕의 마음은 포도주로 흥겨웠습니다. 이제 그의 속에서는 분노가 불타오릅니다. 왕의 감정이 바뀌자 왕궁 전체의 분위기도 바뀝니다. 화려한 잔치의 마지막 날이 정치적 위기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위엄을 보여 주려던 왕은,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명령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잔치에서 법률과 정치의 세계로 이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와스디가 왕관만 쓰고 벌거벗은 채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해석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히브리어 본문에는 그런 요구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이 직접 말하는 것은 왕관을 쓴 왕후를 데려와 그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모욕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술에 취한 왕 앞에 서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신이 주관하는 잔치를 떠나기 어려웠기 때문인지, 본문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거절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읽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와스디가 직접 밝힌 동기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왕실의 한 사건이 제국 전체의 위기로 바뀌다

에스더 1:13–20 본문 →

왕은 지혜자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들은 ‘때를 분별하는’ 사람들이며 법과 판결을 아는 사람들입니다(1:13). 이 표현이 정확히 어떤 전문 직책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들이 왕실의 중요한 결정을 논의하는 조언자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왕의 가까이에 있는 일곱 고관은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왕국의 으뜸가는 자리에 앉는 사람들입니다(1:14). 여기서 왕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이 아닙니다. 왕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특별한 지위와 특권을 나타냅니다.

「내시들을 통해 전해진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와스디 왕후를 법에 따라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느냐?」에스더 1:15 · 본디새김

왕의 질문은 법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집중됩니다. 왕에게는 이미 문제가 정해져 있습니다. 왕후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자 므무간이라는 고관이 뜻밖의 주장을 펼칩니다.

므무간이 왕과 고관들 앞에서 말했다. 「와스디 왕후는 왕께만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모든 지방에 있는 모든 고관과 모든 백성들에게도 잘못을 저질렀습니다.」에스더 1:16 · 본디새김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퍼지면 모든 여자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러면 아내들이 각자 자기 남편을 업신여길 것입니다. 특히 페르시아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먼저 남편들에게 반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왕후의 행동은 왕 개인의 체면뿐 아니라 제국 전체의 가정 질서를 위협한다는 것입니다(1:17–18).

와스디가 명령을 거절한 것은 서술자가 전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모든 여자가 남편을 업신여기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므무간이 예측하는 미래입니다. 본문 어디에도 실제로 제국의 아내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므무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심각한 위협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왕이 겪은 일은 특별한 왕실 사건이지만, 므무간은 그것을 모든 남편이 겪을 수 있는 일로 일반화합니다. 그렇게 하자 왕의 문제는 곧 고관들의 문제가 됩니다.

그는 해결책까지 제시합니다.

「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와스디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 오지 못하도록 왕명을 내리시고, 페르시아와 메대의 법에 기록하여 폐기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왕께서는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다른 여자에게 주십시오.」에스더 1:19 · 본디새김

왕은 와스디에게 자기 앞으로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와스디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은 와스디가 다시는 자기 앞으로 오지 못하도록 명령하려 합니다. 명령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되돌릴 수 없으니, 왕이 그 관계를 끊을 권한만큼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법으로 확정하려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더 나은 여자’라는 평가는 므무간의 말이지, 서술자가 와스디의 인격을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의 논리 안에서는 왕에게 더 적합한 왕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다음 장에서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와스디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으로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므무간은 이 칙령을 페르시아와 메대의 법에 기록하고 폐기되지 않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이처럼 한번 기록된 왕의 명령을 바꾸기 어려운 법적 체계는 에스더 이야기에서 나중에 훨씬 심각한 문제로 등장합니다.

에스더 8:8에서는 왕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왕의 반지로 봉인한 문서를 철회할 수 없다는 문제가 직접 제시됩니다. 유다인들을 멸하라는 조서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서가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1장에서 왕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사용된 법률의 불가역성이, 뒤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발전합니다.

지혜자들이 모여 있지만 그 결정이 참으로 지혜로운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왕이 분노하자 조언자들은 분노를 가라앉히기보다 정당화하는 해결책을 마련합니다. 그 해결책은 사건의 실제 원인을 살피기보다, 비슷한 거절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억제하는 데 집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16:32는 분노를 다스리는 사람이 성읍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에스더 1장의 왕은 수많은 성읍과 지방을 다스리지만, 자신의 분노는 다스리지 못합니다. 와스디가 왕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사건은 다음 장에서 새로운 왕후를 찾는 일로 이어집니다(에스더 2:1–4).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일은 훗날 유다인들이 멸망의 위협을 받을 때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특히 에스더 4:14에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가 왕후의 자리에 이른 것이 바로 그때를 위한 일인지 누가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알 수 없는 부분을 남겨 둔 채, 에스더가 처한 자리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왕실의 체면을 지키려고 모든 가정에 명령을 내리다

에스더 1:21–22 본문 →

왕과 고관들은 므무간의 제안을 좋게 여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와스디의 설명이나 변론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을 놓고 왕과 고관들이 판단하고, 그 판단이 제국 전체의 규범으로 확대됩니다.

왕은 자기의 모든 지방에 문서를 보냈는데, 각 지방에는 그 지방의 문자로, 각 민족에게는 그 민족의 말로 보냈다. 남자마다 자기 집을 다스리고 자기 민족의 말로 말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에스더 1:22 · 본디새김

처음에는 제국의 광대함이 왕의 위엄을 보여 주었습니다. 끝에서는 그 광대한 행정망이 왕실에서 일어난 한 사건의 결과를 전달하는 데 동원됩니다. 그것도 모든 가정에서 남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므무간은 와스디의 이야기가 제국 전체에 퍼지면 남편들의 권위가 흔들릴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와스디의 거절이 제국 전체에 알려지는 데 가장 확실한 수단은 왕이 발송한 바로 그 조서가 됩니다.

왕의 체면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오히려 왕이 겪은 일을 공식적으로 널리 알리는 셈입니다.

여기서 독자가 구별해야 할 것은 서술과 승인입니다.

성경은 이 조서가 내려졌다고 기록하지만, 그것이 곧 이 조서를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장에서는 아하수에로와 고관들이 결정하고 명령합니다. 그 결정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이야기는 왕의 조서가 실제로 가정 안에 존중을 만들어 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명령을 모든 지방에 전달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명령을 통해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조금 더 깊이

왕의 문서는 각 민족의 문자와 언어로 전달됩니다. 여러 민족이 살아가는 제국의 행정적 현실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자기 민족의 말로 말하도록’ 한다는 표현을 가족 모두가 남편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제했다는 뜻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어 문장에서 다스리고 말하는 행위의 주체는 각 집의 남자이며, 그 이상으로 가족 구성원에게 어떤 언어를 강요했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창세기 1:27이 남자와 여자를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 소개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에스더 1장의 조서는 더욱 분명히 제국의 통치 논리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두 본문을 직접적인 논쟁 관계로 묶을 필요는 없지만,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출발점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 왕후 한 사람을 부르지 못한 왕의 명령이 온 제국으로 퍼져 나가다

에스더 1:1–22 본문 →

왕은 그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언자들은 그것을 제국 전체의 위기로 확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거대한 제국의 행정력이 동원됩니다.

와스디가 거절하도록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셨다는 말도, 왕이 분노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말도 본문에 없습니다. 왕과 고관들의 결정에는 그들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과 판단이 드러납니다. 왕의 분노, 고관들의 과장된 두려움, 변경할 수 없도록 기록된 조서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소란 끝에도 해결되지 않은 사실이 하나 남습니다.

와스디는 오지 않았습니다.

왕은 와스디를 자신의 잔치에 데려오지 못했고, 이제는 그가 다시 오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왕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조서는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한편 와스디가 더 이상 왕후의 자리에 머물 수 없게 되면서, 아직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은 다른 여인이 그 자리에 들어올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화려한 왕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왕은 자신의 명령이 얼마나 멀리 전달되는지 알고 있지만, 그 명령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의 시작이 될지는 알지 못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