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장 · 수산 왕궁의 잔치
한 사람의 거절 앞에서 흔들리는 왕
아하수에로 왕은 인도에서 구스까지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립니다. 그의 왕궁에는 금과 은이 넘치고, 제국의 높은 관리들이 모이며, 그의 명령은 여러 민족의 말로 번역되어 제국 전체에 전달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거대한 권력을 가진 왕이 자기 왕후 한 사람을 잔치 자리에 데려오지 못합니다.
더욱 뜻밖인 것은 이 장에 에스더도, 모르드개도, 유다인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이야기를 들려줄 책이 이방 제국의 화려한 잔치와 왕실의 갈등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리는 왕 — 권력의 크기를 먼저 보여 주는 이유
에스더의 첫 문장은 왕의 이름과 다스리는 영역을 강조합니다.
아하수에로가 왕이던 때의 일입니다. 그는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개 지방을 다스리던 왕이었습니다.에스더 1:1 · 두루새김
아하수에로는 일반적으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와 같은 인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인도와 구스는 제국이 동서남북으로 얼마나 넓게 펼쳐져 있는지 떠올리게 하는 지리적 표현입니다. 구스는 성경에서 대체로 이집트 남쪽, 누비아 일대와 관련된 지역을 가리킵니다.
독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한 왕실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민족과 지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의 중심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중심이 수산 성채입니다. 수산은 페르시아 왕권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였고, 본문은 왕이 그곳의 왕좌에 앉아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고 말합니다(1:2).
왕이 된 지 삼 년째에 아하수에로는 높은 관리와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엽니다.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군대, 귀족들, 각 지방의 높은 관리들이 왕 앞에 모입니다(1:3). 제국을 지탱하는 군사력과 행정 권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왕은 자기 나라의 부가 얼마나 눈부신지, 자기 권세가 얼마나 위대하고 화려한지 무려 180일 동안 드러내 보였습니다.에스더 1:4 · 두루새김
이 장의 왕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하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는 재물을 소유하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 재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른 사람들이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백팔십 일은 여섯 달에 가까운 기간입니다. 본문은 이 기간 내내 잔치가 계속되었다고 분명히 밝히기보다, 왕이 오랫동안 자신의 부와 권세를 뽐냈다고 말합니다. 그 후에 별도의 이레 잔치가 이어집니다(1:5).
히브리어 원문은 왕의 위엄을 묘사할 때 영예를 뜻하는 여카르(יְקָר)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대목을 「자기 권세가 얼마나 위대하고 화려한지」로 풀어 옮겼습니다. 그런데 원문에서는 이 말이 20절에서 모든 아내가 남편에게 바쳐야 한다는 존중을 표현할 때 다시 등장합니다. 두루새김의 「존중할 것입니다」에 해당하는 자리입니다.
왕이 자신의 영예를 드러내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모든 가정의 남편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명령으로 끝납니다. 왕 자신의 위엄을 지키려는 문제가 어떻게 제국 전체 남성의 권위를 지키려는 문제로 확대되는지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아하수에로의 권력은 이미 거대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그 권력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복종을 필요로 합니다.
원하는 대로 마셔도 되는 잔치 — 그러나 누구의 뜻이 존중되는가
백팔십 일이 끝나자 왕은 수산 성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다시 이레 동안 잔치를 엽니다.
첫 잔치가 제국의 높은 관리들을 중심으로 왕의 위엄을 드러냈다면, 두 번째 잔치는 수산에 있는 지위가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아우릅니다. 흰 면직물과 푸른빛 천, 은 막대와 설화석 기둥, 값비싼 돌로 꾸민 바닥, 금과 은으로 만든 긴 의자들이 등장합니다(1:6). 일부 돌 이름은 정확히 어떤 광물을 가리키는지 확정하기 어렵지만, 장면 전체가 귀한 재료로 채워진 화려한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술은 금잔에 담겨 나옵니다. 흥미로운 것은 금잔의 모양이 저마다 달랐다는 사실입니다(1:7). 왕궁의 부유함은 잔 하나하나를 다르게 만들 만큼 넘쳐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화려한 물건들의 목록 끝에 뜻밖의 규정이 등장합니다.
잔치 규정에 따라 누구에게도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왕궁의 모든 책임자에게 사람마다 원하는 대로 해 주라고 지시했기 때문입니다.에스더 1:8 · 두루새김
이것은 왕이 베푸는 잔치가 얼마나 넉넉한지를 나타내는 장치입니다. 참석자들은 왕의 풍요를 누리면서 자기 뜻에 따라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을 읽고 나면 이 규정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왕은 잔치 참석자들에게는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지 않지만, 왕후에게는 자신의 뜻을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술잔을 드는 일에는 강제가 없는데, 왕후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에는 거절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본문이 이 대조를 직접 해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두 장면이 나란히 놓였기 때문에 독자는 왕이 인정하는 자유가 어디까지인지를 묻게 됩니다.
그사이 와스디 왕후도 여자들을 위해 별도의 잔치를 열고 있습니다(1:9).
서술자는 왕이 잔치를 열었다고 말한 것처럼 왕후도 잔치를 열었다고 말합니다. 와스디는 처음부터 왕의 명령을 거절하는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왕실에서 자신의 잔치를 이끄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아름다움을 보여 달라는 명령과 왕후의 거절
잔치의 마지막 날, 왕은 포도주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왕관을 쓴 와스디 왕후를 자기 앞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왕후가 아름다웠으므로, 왕은 잔치에 온 사람들과 높은 관리들에게 왕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에스더 1:11 · 두루새김
앞서 왕은 자신의 재물과 권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는 왕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왕이 사람들 앞에 드러내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여성 한 사람이 아니라, 왕실의 영광을 나타내는 왕후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와스디가 왜 거절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와스디 왕후는 내시들이 전한 왕의 명령을 듣고도 가기를 거절했습니다. 왕은 몹시 화가 났고, 속에서 분노가 불타올랐습니다.에스더 1:12 · 두루새김
더욱이 와스디는 왕의 명령에 항의하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습니다. 본문이 기록한 행동은 「가기를 거절했습니다」라는 것뿐입니다. 왕의 감정이 바뀌자 왕궁 전체의 분위기도 바뀝니다. 화려한 잔치의 마지막 날이 정치적 위기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위엄을 보여 주려던 왕은,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명령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잔치에서 법과 정치의 세계로 이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와스디가 왕관만 쓰고 벌거벗은 채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해석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히브리어 본문에는 그런 요구가 분명히 적혀 있지 않습니다. 본문이 직접 말하는 것은 왕관을 쓴 왕후를 데려와 그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모욕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술에 취한 왕 앞에 서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신이 이끄는 잔치를 떠나기 어려웠기 때문인지, 본문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거절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읽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와스디가 직접 밝힌 동기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왕실의 한 사건이 제국 전체의 위기로 바뀌다
왕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들은 「상황을 잘 판단하는」 사람들이며 「법과 재판에 밝은」 사람들입니다(1:13). 왕 곁에 있는 높은 관리 일곱 명은 「왕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1:14).
원문에서는 이들이 왕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표현합니다. 왕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특별한 지위와 특권을 나타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왕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로 풀어 옮겼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내시들이 전한 나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와스디 왕후가 따르지 않았다. 법에 따라 왕후를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에스더 1:15 · 두루새김
왕의 질문은 법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집중됩니다. 왕에게는 이미 문제가 정해져 있습니다. 왕후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자 므무간이라는 높은 관리가 뜻밖의 주장을 펼칩니다.
므무간이 왕과 높은 관리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와스디 왕후는 왕께만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모든 높은 관리와 왕께서 다스리시는 모든 지방의 모든 민족에게도 잘못했습니다.」에스더 1:16 · 두루새김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퍼지면 모든 여자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러면 아내들이 각자 자기 남편을 업신여길 것입니다. 특히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지위 높은 부인들이 먼저 남편들에게 반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왕후의 행동은 왕 개인의 체면뿐 아니라 제국 전체의 가정 질서를 위협한다는 것입니다(1:17–18).
와스디가 명령을 거절한 것은 서술자가 전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모든 여자가 남편을 업신여기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므무간이 예측하는 미래입니다. 므무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심각한 위협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의 논리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왕의 개인적인 분노를 모든 남성의 공통된 불안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자 왕의 문제는 곧 높은 관리들의 문제가 됩니다.
「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와스디가 다시는 아하수에로 왕 앞에 오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리십시오. 이 명령을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법에 기록하여 없애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왕후의 자리는 와스디보다 나은 다른 여자에게 주십시오.」에스더 1:19 · 두루새김
왕은 와스디에게 자기 앞으로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와스디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은 와스디가 다시는 자기 앞으로 오지 못하도록 명령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오기를 원했지만, 나중에는 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명령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되돌릴 수 없으니, 왕이 그 관계를 끊을 권한만큼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법으로 확정하려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와스디보다 나은」이라는 평가는 므무간의 말이지, 서술자가 와스디의 인격을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의 논리 안에서는 왕에게 더 적합한 왕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다음 장에서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와스디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으로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에스더 8:8에서는 왕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왕의 반지로 봉인한 문서를 거두어들일 수 없다는 문제가 직접 제시됩니다. 유다인들을 멸하라는 조서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서가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1장에서 왕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사용된, 한번 정하면 되돌릴 수 없는 법의 성격이 뒤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발전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이 장에서는 누구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예언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나 기적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다른 역사서들이 사건을 하나님의 말씀이나 행동과 직접 연결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에스더서는 독자가 이어지는 사건들을 끝까지 따라가면서 그 의미를 발견하도록 합니다.
와스디가 거절하도록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셨다는 말도, 왕이 분노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말도 본문에 없습니다. 왕과 높은 관리들의 결정에는 그들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과 판단이 드러납니다.
와스디가 왕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사건은 다음 장에서 새로운 왕후를 찾는 일로 이어집니다(에스더 2:1–4).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일은 훗날 유다인들이 멸망의 위협을 받을 때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특히 에스더 4:14에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가 왕후의 자리에 이른 것이 바로 그때를 위한 일인지 누가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알 수 없는 부분을 남겨 둔 채, 에스더가 처한 자리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에서 요셉은 형들의 악한 행동으로 이집트에 팔려 갑니다. 그러나 긴 이야기가 끝난 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해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말합니다(창세기 50:20). 악한 선택이 악한 선택으로 남으면서도, 그 결과가 하나님의 더 큰 목적 안에서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에스더서는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더욱 간접적인 방식으로 다룹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설명해 주는 서술자의 목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왕실의 체면을 지키려고 모든 가정에 명령을 내리다
왕과 높은 관리들은 므무간의 제안을 좋게 여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와스디의 설명이나 변론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을 놓고 왕과 높은 관리들이 판단하고, 그 판단이 제국 전체의 규범으로 확대됩니다.
왕은 자기가 다스리는 모든 지방에 문서를 보냈습니다. 각 지방의 글자와 각 민족의 말로 쓴 문서였습니다. 남자마다 자기 집을 다스리고 자기 민족의 말로 말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에스더 1:22 · 두루새김
므무간은 와스디의 이야기가 제국 전체에 퍼지면 남편들의 권위가 흔들릴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와스디의 거절이 제국 전체에 알려지는 데 가장 확실한 수단은 왕이 보낸 바로 그 문서가 됩니다.
왕의 체면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오히려 왕이 겪은 일을 공식적으로 널리 알리는 셈입니다.
성경은 이 명령이 내려졌다고 기록하지만, 그것이 곧 이 명령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장에서는 아하수에로와 높은 관리들이 결정하고 명령합니다. 그 결정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창세기 1:27이 남자와 여자를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 소개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에스더 1장의 명령은 더욱 분명히 제국의 통치 논리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두 본문을 직접적인 논쟁 관계로 묶을 필요는 없지만,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출발점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명령을 모든 지방에 전달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명령을 통해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자기 민족의 말로 말하라는」 표현을 가족 모두가 남편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제했다는 뜻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어 문장에서 다스리고 말하는 행위의 주체는 각 집의 남자이며, 그 이상으로 가족 구성원에게 어떤 언어를 강요했는지는 분명히 적혀 있지 않습니다. 가정 안에서 남편의 권위를 제국의 명령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입니다.
맺음말 — 왕후 한 사람을 부르지 못한 왕의 명령이 온 제국으로 퍼져 나가다
왕은 그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언자들은 그것을 제국 전체의 위기로 확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거대한 제국의 행정력이 동원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소란 끝에도 해결되지 않은 사실이 하나 남습니다.
와스디는 오지 않았습니다.
왕은 와스디를 자신의 잔치에 데려오지 못했고, 이제는 그가 다시 오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왕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명령은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한편 와스디가 더 이상 왕후의 자리에 머물 수 없게 되면서, 아직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은 다른 여인이 그 자리에 들어올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화려한 왕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왕은 자신의 명령이 얼마나 멀리 전달되는지 알고 있지만, 그 명령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의 시작이 될지는 알지 못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