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2장 · 왕후가 된 에스더
에스더의 왕관과 모르드개의 공로
에스더 2장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고,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두 사건의 결말은 정반대입니다. 에스더는 왕관을 쓰고 온 제국이 함께하는 잔치의 주인공이 됩니다. 모르드개의 공로는 왕실 기록에 남을 뿐, 그에게 아무런 보상이 주어졌다는 말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다른 한 사람의 공로는 기록 속에 조용히 묻힙니다.
이 두 사건이 나란히 놓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스더 2장은 한 유다인 여성이 우연히 왕의 눈에 들어 왕후가 되었다는 성공담만은 아닙니다. 왕궁의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여성들의 제한된 처지, 자기 민족을 밝히지 못하는 에스더의 불안정한 신분, 그리고 당장은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는 모르드개의 행동을 함께 보여 줍니다.
왕의 분노가 가라앉자, 다시 시작되는 왕후 찾기
이런 일이 있은 뒤, 아하수에로 왕은 화가 가라앉자 와스디와 그가 한 일, 그리고 그에게 내려진 결정을 떠올렸습니다.에스더 2:1 · 두루새김
이 세 가지를 나란히 놓은 표현은 왕의 마음이 단순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본문은 왕이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와스디를 그리워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화가 가라앉은 뒤 그 일이 다시 왕의 마음에 떠올랐다는 사실만 알려 줍니다.
왕 곁에서 시중들던 젊은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왕을 위해 젊고 아름다운 처녀들을 찾게 하십시오.」에스더 2:2 · 두루새김
젊은 신하들은 왕에게 와스디와 화해하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왕이 내렸던 결정을 다시 살펴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여자를 찾아 왕후로 삼자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개인적인 소개나 만남이 아닙니다. 제국 전체의 행정조직을 동원하는 대규모 선발입니다. 각 지방에 관리들을 세우고, 젊고 아름다운 처녀들을 수산 성채로 데려와 여자들이 머무는 궁에 모읍니다. 그곳에서 몸을 가꾸는 데 필요한 물품을 주고 정해진 관리를 받게 한 뒤 왕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왕후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 제안에서 여성들에게 어떤 선택권이 주어지는지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왕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여자들이 왕궁에 들어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없습니다. 아름다움이 선발 기준이고, 왕의 마음에 드는 것이 최종 기준입니다. 한 사람의 결혼과 신분이 왕의 권력과 궁중 제도에 의해 결정되는 과정입니다.
「그 가운데 왕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여자가 와스디 대신 왕후가 되게 하십시오.」 왕은 이 제안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했습니다.에스더 2:4 · 두루새김
왕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여자」가 왕후가 되고, 왕은 그 제안도 「마음에 들어」 그대로 합니다. 원문에서도 두 번의 좋게 여겨짐이 이어집니다. 앞으로 에스더 역시 여러 사람에게 좋게 여겨지고 좋은 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왕의 마음에 드는 것과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수산 성채에 살던 유다인 — 두 이름을 가진 고아 소녀
이제 이야기는 왕궁에서 시선을 돌려 수산 성채에 살고 있는 한 유다인 남자를 소개합니다.
수산 성채에는 모르드개라는 유다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야이르의 아들이었습니다. 야이르는 시므이의 아들이고, 시므이는 기스의 아들이었습니다.에스더 2:5 · 두루새김
그런데 본문은 그를 단순히 수산의 주민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유다인」이라는 정체성을 먼저 밝히고, 그의 집안이 예루살렘에서 끌려온 역사까지 덧붙입니다. 2열왕기 24:12–16에는 유다 왕 여호야긴, 곧 여고냐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집안은 바로 그 유배의 역사에 속합니다.
이때 유배는 단순히 먼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고, 어떤 권력 아래 놓이고,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정하는 현실입니다.
모르드개의 조상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기스」와 「베냐민 지파 사람」이라는 말도 눈에 띕니다. 사무엘상 9:1–2에서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은 베냐민 사람 기스의 아들로 소개됩니다. 에스더서에 나온 조상들의 이름이 사울 왕가와 직접적인 혈연관계를 입증하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스와 베냐민이 함께 나오는 것은 사울을 아는 독자에게 그의 집안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모두 죽었을 때 에스더를 자기 딸로 삼았던 것입니다. 에스더는 몸매가 곱고 얼굴이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습니다.에스더 2:7 · 두루새김
하닷사와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기른 한 유다인 여자의 두 이름입니다. 이 인물은 유다인 공동체와 페르시아 왕궁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적 세계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다만 본문은 그가 이름을 바꾼 이유나 어느 시점부터 에스더라는 이름을 사용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부모가 없었다는 사실을 한 번 말하고, 다시 부모가 죽었을 때 모르드개가 그를 자기 딸로 삼았다고 설명합니다. 원문의 이 반복은 에스더의 처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의 출생 가정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돌보고 길렀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친족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친족 관계를 넘어섭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기르고 보호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뒤이어 반복되는 모르드개의 관심과 에스더가 그의 말을 따르는 모습을 이해하는 바탕이 됩니다.
또한 에스더의 고아라는 처지도 구약 전체의 중요한 주제와 만납니다. 신명기 10:18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68:5는 하나님을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에스더 2장은 하나님께서 직접 에스더를 보호하셨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부모를 잃은 에스더를 모르드개가 딸로 삼아 기르고, 왕궁에 들어간 뒤에도 날마다 그의 안부를 걱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왕궁에서는 에스더의 아름다움이 그의 가치를 결정하지만, 독자는 이미 그 아름다움 뒤에 있는 한 사람의 역사와 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은 2:6을 「모르드개도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끌려왔습니다」라고 옮겼습니다. 다만 원문에서 끌려온 사람이 모르드개 자신인지, 앞에 나온 그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인지에는 해석상 어려움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관계절을 모르드개에게 직접 연결할 수도 있지만, 여고냐가 끌려간 때와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던 때 사이에는 백 년이 넘는 간격이 있으므로 조상의 유배를 가리킨다고 읽는 견해도 가능합니다. 본문은 그 연대 문제를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궁으로 이끌려 간 에스더 — 호의와 불안이 함께하는 자리
왕의 명령과 법이 알려지자 많은 젊은 여자가 수산 성채로 모여 헤개에게 맡겨졌습니다. 사람들은 에스더도 왕궁으로 데려가 여자들을 돌보는 헤개에게 맡겼습니다.에스더 2:8 · 두루새김
이 문장에서 에스더는 행동을 주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원문에서는 데려가다, 취하다는 뜻의 동사가 수동형으로 쓰여, 에스더가 왕궁으로 데려가졌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물론 원문이 수동형이라는 사실만으로 에스더가 몸으로 저항했거나 강제로 끌려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본문은 그가 자원해서 왕궁에 들어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 에스더를 추천했는지, 그가 왕궁으로 가기를 원했는지, 모르드개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에스더가 왕후가 되려고 적극적으로 경쟁에 나섰다고 읽는 것은 본문을 넘어섭니다.
헤개는 에스더를 마음에 들어 하며 잘해 주었습니다. 그는 에스더에게 몸을 가꾸는 물품과 정해진 몫의 음식을 서둘러 주었습니다. 왕궁에서 에스더를 시중들도록 정해진 여자 일곱 명도 붙여 주고, 에스더와 이 시녀들을 여자들의 궁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옮겨 주었습니다.에스더 2:9 · 두루새김
에스더는 왕을 만나기도 전에 궁중 관리에게 특별히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같은 궁중 제도 안에서도 에스더는 더 좋은 대우와 환경을 제공받습니다.
그러나 그 대우가 에스더를 왕궁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여자들이 머무는 궁에 머물며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이처럼 본문은 에스더가 누리는 유리한 조건을 보여 주면서도 그가 놓인 제도적 한계를 없애지 않습니다.
에스더는 자기가 어느 민족, 어느 집안 사람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가 밝히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에스더 2:10 · 두루새김
왜 모르드개가 이렇게 명령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유다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했을 수 있습니다. 낯선 왕궁에서 에스더를 보호하기 위한 판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본문은 그런 이유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행동을 곧바로 믿음을 부끄러워한 행위나, 반대로 하나님의 지혜로운 계획을 알고 실행한 행동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에스더가 왕궁 안에서 자기 정체성의 일부를 감추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29:4–7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유배된 사람들에게 그곳에서 집을 짓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며, 자신들이 사로잡혀 간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유배지의 삶이 단순한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야 할 삶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에스더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는 제국 안에 남아 살아가는 유다인입니다.
다만 예레미야의 명령을 에스더의 모든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으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더가 왜 자기 민족을 숨겼는지까지 예레미야 29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두 본문이 연결되는 지점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땅을 떠난 자리에서도 계속 살아가며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궁 밖에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날마다 여자들이 머무는 궁의 뜰 앞을 오갔습니다. 에스더가 잘 지내는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에스더 2:11 · 두루새김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자기 딸로 길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를 직접 보호할 수 있는 공간에서 멀어졌습니다. 뒤따르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라는 표현은 앞으로 에스더가 어떤 처지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까지 보여 줍니다.
왕은 명령 하나로 제국의 수많은 여성을 궁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이 기른 한 여자의 안부조차 직접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왕이 행사하는 힘은 수많은 사람의 처지를 바꿀 수 있지만, 모르드개가 보여 주는 돌봄은 한 사람의 안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두 종류의 관계를 나란히 놓습니다. 사람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으는 권력과, 이미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걱정하는 돌봄입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이 헤개가 에스더에게 「잘해 주었습니다」라고 옮긴 부분에는 히브리어 헤세드(חֶסֶד)가 쓰입니다. 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변함없는 사랑이나 인애를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로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헤개가 에스더에게 베푸는 좋은 대우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직접 나타내는 말로 확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열두 달의 준비와 단 하룻밤의 만남
이제 본문은 왕후 선발의 구체적인 절차를 설명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열두 달 동안 몸을 가꾸는 과정을 거칩니다.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사용하고, 나머지 여섯 달은 향료와 그 밖의 몸을 가꾸는 물품을 사용합니다. 열두 달이라는 긴 시간은 왕실이 여성들의 외모와 몸을 관리하는 데 상당한 자원과 시간을 들였음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다음 절로 넘어가면 화려한 준비 과정의 이면이 드러납니다.
여자는 저녁에 왕에게 들어갔다가 아침에는 여자들이 머무는 두 번째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서는 후궁들을 돌보는 왕의 내시 사아스가스에게 맡겨졌습니다. 왕이 그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여 이름을 불러 찾을 때에만 다시 왕에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에스더 2:14 · 두루새김
이 「여자들이 머무는 두 번째 궁」은 후궁들을 돌보는 내시의 책임 아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과정에는 왕과의 성적 관계가 포함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 밤에 일어난 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왕이 선택하지 않은 여자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후궁들이 머무는 궁에 남아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왕후 선발을 낭만적인 이야기로만 읽기 어렵게 만듭니다.
여자들에게 허락된 것은 왕에게 들어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갈지 요청하는 일입니다(2:13). 반면 그들의 앞으로의 신분과 왕과의 관계는 왕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왕후가 되면 높은 지위를 얻지만, 그 자리에 이르는 과정은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사람의 호감을 얻은 에스더 — 왕후가 되지만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 에스더가 왕에게 들어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로, 모르드개가 자기 딸로 삼은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더는 여자들을 돌보는 왕의 내시 헤개가 권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를 좋게 여겼습니다.에스더 2:15 · 두루새김
본문은 에스더가 왕 앞에 들어가는 중요한 순간에 그의 가족관계를 다시 소개합니다.
이는 에스더를 단순히 왕의 선택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여자 가운데 한 명으로 보지 않게 합니다. 그는 아비하일의 딸이며, 모르드개의 손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왕에게는 그의 아름다움이 가장 먼저 보일 수 있지만, 독자에게는 그의 배경과 관계가 함께 보입니다.
다른 여자들은 원하는 것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헤개의 조언을 따르기로 합니다. 본문은 에스더가 궁중 제도와 왕의 취향에 익숙한 관리의 판단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헤개는 에스더를 「마음에 들어 하며 잘해 주었습니다」(2:9). 에스더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를 「좋게 여겼습니다」(2:15). 마침내 에스더는 다른 어느 처녀보다 「왕의 마음에 들었고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2:17). 이렇게 에스더를 좋게 여기고 잘해 주는 사람의 범위가 궁중 관리자에서 여러 사람을 거쳐 왕에게까지 넓어집니다.
마침내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린 지 7년째, 열째 달인 데벳월에 사람들이 에스더를 왕이 있는 궁으로 데려갑니다(2:16).
그리고 에스더는 선택을 받습니다.
왕은 다른 어떤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했습니다. 에스더는 다른 어느 처녀보다 왕의 마음에 들었고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왕은 에스더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았습니다.에스더 2:17 · 두루새김
1장에서 왕관은 와스디가 왕 앞에 나올 때 쓰도록 명령받은 물건이었습니다. 이제 왕관은 와스디 대신 에스더의 머리에 놓입니다.
왕후의 자리는 바뀌었고, 에스더의 신분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에스더를 위해 큰 잔치가 열립니다. 왕은 각 지방 사람들을 쉬게 해 주고 선물도 넉넉히 줍니다(2:18). 한 사람이 왕후가 된 일이 제국 전체의 축하 행사가 됩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이른 대로 여전히 자기 집안과 민족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던 때처럼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에스더 2:20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에스더의 처지가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왕후가 되었다고 해서 자기 정체성을 공개할 수 있는 처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에스더는 왕궁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출신을 감추라는 모르드개의 명령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궁중의 신분 질서는 달라졌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계속됩니다.
이제 에스더는 왕궁 안에 있고, 모르드개는 왕궁 문에 있습니다. 둘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지만 여전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관계가 곧 왕의 목숨을 구하는 데 사용됩니다.
조금 더 깊이
1장에서 왕이 대규모 잔치를 베푼 시기는 통치 삼 년째였습니다. 이제 사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에스더가 왕후가 됩니다. 이때의 「사랑」을 오늘날의 서로 주고받는 연애 감정과 완전히 같은 의미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궁중 선발이라는 상황에서 왕이 에스더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이고 그를 더 좋아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9절에서 본문은 처녀들이 다시 모인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선발이 있었는지, 이미 모인 여성들이 한 번 더 모였다는 뜻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왕후가 된 뒤 왕이 또다시 왕후를 뽑으려 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왕궁 문은 단순히 궁전의 출입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성문과 주요 관문은 행정 업무와 공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궁의 행정 업무와 연결된 자리에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왕의 목숨을 구한 사람 — 그러나 보상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 무렵 모르드개가 왕궁 문에 앉아 있을 때, 왕궁 출입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화를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해칠 계획을 꾸몄습니다.에스더 2:21 · 두루새김
왕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왕을 보호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왕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두 내시가 왜 화를 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모르드개에게 알려집니다.
이 일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에스더 왕후에게 알렸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밝히며 왕에게 전했습니다.에스더 2:22 · 두루새김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과 집안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모르드개에게서 들었다는 사실은 밝힙니다. 「모르드개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밝히며」라는 표현은 그의 공로가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로써 모르드개의 이름이 왕실의 공식 기록에 남을 조건이 마련됩니다.
조사해 보니 그 일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두 사람은 나무에 매달려 처형되었습니다. 이 일은 왕 앞에서 날마다 일어난 일을 적는 왕실 기록에 남겨졌습니다.에스더 2:23 · 두루새김
하지만 왕의 목숨을 구한 모르드개가 그 자리에서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본문이 모르드개가 상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서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독자가 기대할 수 있는 보상 장면을 일부러 들려주지 않습니다. 훗날 에스더 6:3에서 왕이 모르드개에게 어떤 영예와 상이 주어졌는지 묻고, 신하들이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답하면서 그 빈자리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그러므로 2:23의 기록은 사라진 사건이 아닙니다. 아직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사건입니다.
두루새김의 「날마다 일어난 일을 적는 왕실 기록」에 남겨졌다는 말은 그 사건이 잊히지 않고 왕실 문서에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성경의 역대상·역대하가 아니라 페르시아 왕실의 사건을 기록한 문서를 가리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처형에 사용된 나무의 구체적인 형태나 방법을 밝히지 않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의 처형 방식과 관련하여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목매달았는지 찔러 매달았는지를 이 구절만으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맺음말 — 왕관은 빛나고, 이름은 기록 속에 남는다
그런데 앞으로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왕후가 된 에스더도, 기록에 이름이 남은 모르드개도 모두 필요합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사실과 모르드개의 공로가 기록된 사실은 지금으로서는 서로 별개의 사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를 읽으면 그 사건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그때 독자는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알 수 없었던 의미를 뒤늦게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우연한 만남과 사람들의 좋은 대우를 하나님이 직접 일으키셨다고 본문보다 앞서 확정해서도 안 됩니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승인을 뜻하지도 않고, 어떤 일이 당장 보상받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 역시 모든 사건의 이유를 지금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과 같지는 않습니다.
왕관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만, 왕실 기록에 적힌 이름은 책 속에 남아 있습니다.
에스더는 왕후가 되었고, 모르드개는 왕궁 문에 앉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합니다. 왕실의 관리들은 음모를 조사하고 두 사람을 처형한 뒤, 그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곳에서 멈춥니다.
왕의 생명을 구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그 이름을 다시 부르지 않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