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3–4장 · 하만의 계획

한 사람의 분노가 온 민족의 죽음으로

에스더 3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모르드개 한 사람이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페르시아 제국에 사는 모든 유다인이 죽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하만이 잔인한 사람이었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한 사람의 분노가 어떻게 제국 전체의 법령으로 바뀌는지 차례로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83장 본문 읽기 →

모두가 절하는 자리에서 한 사람만 서 있다

에스더 3:1–4 본문 →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아하수에로 왕은 함므다다의 아들인 아각 사람 하만을 크게 등용하고 높여, 그의 자리를 왕과 함께 있는 모든 고관보다 위에 두었다.에스더 3:1 · 본디새김

이 장은 뜻밖의 인사로 시작합니다.

앞 장에서 모르드개는 왕을 해치려는 음모를 발견했고, 그의 공로는 왕실 연대기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으로 높아지는 사람은 모르드개가 아니라 처음 등장하는 하만입니다.

왕을 구한 사람은 왕궁 문에 머무르고, 하만은 모든 고관보다 높은 자리에 오릅니다.

하만이 왜 특별히 등용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왕은 그를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왕궁 문에 있는 모든 신하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도록 명령합니다.

이때 한 사람만 다른 행동을 합니다.

왕궁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은 모두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했다. 왕이 하만에 관하여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무릎을 꿇지도, 엎드려 절하지도 않았다.에스더 3:2 · 본디새김
그들이 날마다 모르드개에게 말해도 그가 듣지 않자, 그들은 모르드개의 말이 통할지 보려고 하만에게 알렸다. 모르드개가 그들에게 자기는 유다인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에스더 3:4 · 본디새김

그의 거절과 유다인이라는 정체성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무슨 논리로 연결되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가 신앙적 양심 때문에 거절했는지, 하만의 출신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모르드개의 거절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하만의 반응은 조금도 모호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노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를 한 사람에게만 향하게 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모르드개가 하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절할 수 없다는 신앙적 이유로 거절했다고 이해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람 앞에 엎드려 절하는 행위가 언제나 우상숭배인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23:7에서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 앞에 몸을 굽힙니다. 창세기 33:3에서도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에 일곱 번 몸을 굽힙니다. 그러므로 하만에게 절하는 행위 자체가 율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상 15:8에서 아각은 아말렉의 왕입니다. 반면 앞 장에서 모르드개는 베냐민 사람으로 소개되었고, 그의 계보에는 ‘기스’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에스더 2:5). 이 이름은 사울의 아버지 기스를 떠올리게 합니다(사무엘상 9:1–2). 사울은 바로 아말렉 왕 아각과 대면했던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따라서 모르드개와 하만의 대립은 사울과 아각,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오래된 갈등을 떠올리게 하는 문학적 연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에스더 3장은 하만이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아각의 실제 후손이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모르드개가 아각과 관련된 조상의 원한 때문에 절하지 않았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두 이름 사이의 연결은 의미 있는 정경적 연상일 수 있지만, 그것을 확인된 혈통이나 행동 동기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으로는 부족하다는 분노

에스더 3:5–6 본문 →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지도, 엎드려 절하지도 않는 것을 보고 분노로 가득 찼다.에스더 3:5 · 본디새김

하만의 분노는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역설을 보여 줍니다.

그는 왕국의 모든 고관보다 높아졌습니다. 왕궁 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절합니다. 그러나 그는 절하는 수많은 사람보다 절하지 않는 한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왜 절하지 않느냐고 직접 묻지 않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복종이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그의 분노는 예상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확대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만 해치는 것을 하찮게 여겼다. 그들이 모르드개가 어느 민족인지 그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하만은 아하수에로의 온 왕국에 있는 유다인 모두,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진멸하려고 꾀했다.에스더 3:6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가장 무서운 표현은 ‘한 사람만 해치는 것을 하찮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모르드개의 행동이 하만 개인에게 준 모욕이었다면, 그의 보복은 이제 모르드개가 속한 민족 전체를 향합니다.

그에게 모르드개는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는 유다인이라는 집단의 구성원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느낀 적대감을 그 집단 전체에 적용합니다.

본문은 유다인들이 집단적으로 하만에게 반항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의 거절에 동의했다거나 조직적으로 행동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만은 모든 유다인이 자신의 적이라고 간주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도한 처벌이 아닙니다. 개인의 행동을 민족 전체의 죄로 바꾸고, 그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죽이려는 결정입니다.

또한 모르드개의 거절이 학살의 원인이 되었으므로 그가 모든 유다인의 고통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거절을 민족 전체의 죽음으로 확대하기로 선택한 사람은 하만입니다. 그 선택을 제국의 법으로 만들도록 허락한 사람은 왕입니다. 그 선택의 책임을 피해자가 될 유다인들에게 돌리는 것은 본문이 보여 주는 관계를 거꾸로 읽는 일입니다.

이제 하만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분노를 실행할 수 있는 날짜와 권한입니다.

죽음의 날짜를 제비로 정하다

에스더 3:7 본문 →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 십이 년째, 첫째 달인 니산월에 날을 하나씩, 달을 하나씩 짚어 가며 하만 앞에서 푸르, 곧 제비를 던졌다. 그렇게 정해진 달은 열두째 달인 아달월이었다.에스더 3:7 · 본디새김

서술자는 히브리어의 일반적인 제비라는 말만 사용하지 않고 ‘푸르(⁨פּוּר⁩)’라는 명칭을 먼저 소개한 뒤, 그것이 제비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낯선 명칭을 특별히 설명하는 이유는 이야기의 결말에서 드러납니다. 에스더 9:26은 유다인들의 구원을 기념하는 날이 ‘푸림’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를 바로 이 푸르와 연결합니다.

처음에는 유다인을 죽일 날을 정하는 데 사용된 제비가 훗날 구원을 기억하는 절기의 이름이 됩니다. 독자가 처음에는 그 의미를 다 알 수 없는 명칭을 서술자는 미리 기억하게 합니다.

그러나 3장에서는 아직 구원의 날이 아니라 죽음의 날을 정하는 과정입니다.

제비를 던지는 행위는 미래의 적절한 날짜를 결정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만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실행할 때를 제비에 맡깁니다.

제비를 던진 때는 첫째 달인 니산월입니다. 학살일은 열두째 달인 아달월입니다. 계획이 세워진 시점에서 실행일까지 거의 열한 달의 간격이 생기는 셈입니다.

아직 누구도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하만 자신도 그 날짜가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하만은 날짜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날짜가 정해졌다고 해서 그날의 결과까지 자신의 뜻대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은 날과 달을 짚어 가며 제비를 던졌다고 말하고, 그 결과로 열두째 달인 아달월을 제시합니다. 최종적인 처형일이 아달월 열사흗날이라는 사실은 13절에서 명시됩니다. 그날이 정확히 어떤 절차로 정해졌는지까지 7절이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면은 잠언 16:33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비는 사람의 손에서 던져지지만 그 결정은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 잠언을 에스더 3장에 직접 대입하여 하나님이 학살 날짜를 정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에스더 3장은 제비를 던진 사람이 하만 쪽 사람들이었다는 사실과 그 결과를 기록할 뿐, 하나님이 그 제비에 어떻게 관여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본문 사이의 연결은 인간이 우연과 운명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궁극적인 역사의 결과가 인간의 계산만으로 결정되는가 하는 신학적 질문에 있습니다.

이름을 지운 민족을 국가의 위협으로 만들다

에스더 3:8–9 본문 →

하만은 왕에게 나아가 자신의 계획을 제안합니다.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말했다. 「왕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의 모든 지방에서 여러 민족 사이에 흩어지고 나뉘어 있는 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들의 법은 다른 모든 민족의 법과 다르고, 그들은 왕의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을 그대로 두는 것은 왕께 이롭지 않습니다.」에스더 3:8 · 본디새김

하만은 자신이 모르드개 때문에 분노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왕에게 말할 때 그 민족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한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그는 그 민족이 제국의 여러 지방에 흩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유배와 이주를 통해 제국 곳곳에 살아가던 유다인들의 처지와 부합합니다. 그런데 하만은 그들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중립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흩어지고 나뉘어 있다’는 표현은 그들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다음 그들의 법이 다른 모든 민족의 법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 그 자체로는 곧 범죄를 뜻하지 않습니다. 여러 민족을 다스리는 제국 안에 서로 다른 관습과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본문도 왕의 문서가 지방과 민족마다 다른 문자와 언어로 전달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만은 문화적·법적 차이를 왕에 대한 불복종과 연결합니다.

‘그들의 법은 다르다’는 주장 다음에 ‘그들은 왕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주장이 이어집니다. 유다인들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관습과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과, 유다인 전체가 왕의 법을 어기고 있었다는 말은 같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확인된 구체적인 불복종은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행동뿐입니다. 그런데 하만은 그것을 근거로 모든 유다인이 왕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확인된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 대한 적대감을 제국 전체의 안보 문제로 바꾸는 주장입니다.

‘내가 그들을 미워합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왕에게 이롭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왕이 자기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 민족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제 유다인을 죽이는 일은 하만의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라 왕국을 위한 정책처럼 제시됩니다.

그리고 하만은 이 제안에 거액의 은을 덧붙입니다.

「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그들을 없애 버리라는 명령을 문서로 쓰게 하십시오. 저는 은 만 달란트를 달아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넘겨 왕의 금고로 들여보내겠습니다.」에스더 3:9 · 본디새김

만 달란트는 매우 큰 규모의 은입니다. 하만은 유다인들을 없애는 것이 왕에게 이롭다고 주장하면서 왕실 금고에 상당한 재물이 들어올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그는 왕이 자신의 사적인 분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국의 질서와 왕의 재정이라는 두 가지 명분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생명은 왕국의 이익과 교환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됩니다.

하만의 말에서 유다인은 더 이상 구체적인 얼굴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왕에게 이롭지 않은 하나의 집단이며,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에스더서의 독자는 하만이 말하지 않은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왕후 에스더 역시 유다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을 밝히지 않았습니다(2:20). 하만이 제안하는 학살의 대상에는 왕이 특별한 사랑을 보이며 왕후로 삼은 에스더도 포함됩니다. 왕은 자신이 사랑하는 왕후와 하만이 없애려는 민족 사이의 관계를 알지 못한 채 이 제안을 듣고 있습니다.

왕의 판단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지 위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무지를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이 은을 개인 재산으로 마련하려 했는지, 유다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충당할 생각이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13절에 재산 약탈이 허용된다는 내용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9절의 은이 어떻게 조달될 예정이었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10:17–19에서 여호와야훼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시고, 이스라엘에게도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분으로 소개되십니다. 에스더 3장의 하만은 그와 반대로 사람을 민족적 소속만으로 분류하고, 그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의 생명을 없애려 합니다.

왕의 반지가 하만의 손으로 넘어가다

에스더 3:10–11 본문 →

왕은 자기 손에서 인장 반지를 빼서, 함므다다의 아들인 아각 사람 하만, 곧 유다인들을 적대하는 자에게 주었다.에스더 3:10 · 본디새김

이 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행동은 왕이 반지를 건네는 순간입니다.

인장 반지는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물건입니다. 왕의 이름으로 작성한 문서에 인장을 찍으면 그 문서는 왕의 권위를 지닌 공식 명령이 됩니다.

하만은 왕에게 제안하는 사람에서 왕의 이름으로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하만은 단순히 왕의 고관이라고 소개되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을 적대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이 명칭은 하만이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 아닙니다. 서술자가 그를 규정하는 말입니다.

그의 주장은 왕국의 이익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야기의 실제 출발점은 모르드개에 대한 분노와 유다인 전체를 없애려는 적대감입니다.

왕이 하만에게 말했다. 「그 은은 네게 준다. 그 민족도 네게 주니, 네가 좋다고 여기는 대로 처리해라.」에스더 3:11 · 본디새김

왕은 유다인들에게 실제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인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묻지도 않습니다.

왕은 한 민족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하만의 판단에 맡깁니다.

특히 ‘네가 좋다고 여기는 대로’라는 표현은 이 장의 비극적인 특징을 드러냅니다. 왕이 요구하는 것은 정의에 대한 검토가 아니라 하만의 판단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만이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왕의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하만은 학살을 계획한 사람이며, 왕은 그 계획이 제국의 법률이 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역할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이어질 명령에 책임이 있습니다.

앞 장에서 왕궁의 내시들이 왕을 해치려 했을 때는 사건을 조사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했습니다(2:23). 그런데 이번에는 한 민족 전체가 왕의 법을 어긴다는 주장 앞에서 그러한 조사가 기록되지 않습니다.

왕은 한 사람의 음모를 확인할 때는 조사를 명령했지만, 한 민족의 생사를 결정할 때는 인장 반지를 건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말에서 ‘그 은은 네게 준다’는 표현의 구체적인 재정적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왕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인지, 그 돈에 대한 처분권을 하만에게 맡긴 것인지, 다른 행정적인 의미가 있는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한 장의 문서가 사람들을 죽일 권한을 부여하다

에스더 3:12–14 본문 →

왕이 반지를 건네자 곧바로 행정 절차가 시작됩니다.

첫째 달 열사흗날에 왕의 서기관들이 소집되었다. 하만이 명령한 모든 내용이 왕의 태수들과 각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들, 각 민족의 고관들에게 보낼 문서로 작성되었는데, 지방마다 그 지방의 문자로, 민족마다 그 민족의 언어로 쓰였다. 그 문서는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작성되고 왕의 인장 반지로 봉인되었다.에스더 3:12 · 본디새김

하만의 명령이 왕의 명령이 되는 것입니다.

왕은 직접 문서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서기관들이 작성합니다. 지방의 관리들이 그 문서를 받아 실행합니다.

이처럼 책임과 실행이 여러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명령의 출발점에는 하만의 적대감이 있지만, 문서를 받아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 명령이 왕의 공식적인 법령으로 전달됩니다.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가 사용된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이 명령은 특정 지역에만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국 전체에 있는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됩니다.

문서들이 전령들의 손을 거쳐 왕의 모든 지방으로 보내졌다.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어린아이들과 여자들까지 모든 유다인을 열두째 달인 아달월 열사흗날, 그 하루에 몰살하고 죽이고 멸절시키며,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라는 내용이었다.에스더 3:13 · 본디새김

이것은 개인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라는 명분조차 벗어납니다. 유다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죽음의 이유가 됩니다.

더욱이 재산을 약탈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이는 사람들을 죽이라는 명령에 경제적 동기를 더하는 조치입니다. 명령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유다인을 제거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의 재산을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유다인에 대한 적대감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공격할 유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유다인을 죽이는 일은 누군가의 사적인 폭력이 아니라 왕의 법령에 따라 허용된 행위가 됩니다.

14절은 이 법령의 사본이 지방마다 공포되어 모든 민족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날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준비’라는 말은 보통 앞으로 다가올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을 갖추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민족을 죽이기 위한 준비가 됩니다.

제국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날짜를 정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번역하고, 전령을 보내고, 실행 준비를 명령합니다.

모든 과정이 행정적인 언어로 기록됩니다.

본문은 서기관들과 전령들이 하만의 계획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그 명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가 하만과 같은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수행한 행정 절차가 학살 명령을 제국 전체에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잔혹한 일이 벌어질 때 그것을 실행하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감정이나 동기를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 사람은 증오하고, 다른 사람은 허락하고, 또 다른 사람은 문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결합할 때 엄청난 폭력이 가능해집니다.

에스더서가 보여 주는 제국의 법은 강력합니다. 그러나 그 강력함이 그 법의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서술자는 죽음을 뜻하는 동사 하나로 명령을 요약하지 않습니다. ‘몰살하고 죽이고 멸절시키며.’ 이 반복은 명령이 얼마나 전면적인지를 강조합니다. 학살 명령이 작성된 날은 첫째 달인 니산월 열사흗날입니다(3:12). 출애굽기 12:6에는 첫째 달 열나흗날에 유월절 양을 잡으라는 명령이 있고, 레위기 23:5도 그 날짜를 유월절로 정합니다. 따라서 학살 명령이 기록된 날짜는 유월절 바로 전날입니다. 본문은 이 날짜의 인접성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만이 유월절을 모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날을 선택했다거나, 서술자가 명시적으로 출애굽 사건과 대조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받은 일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에스더 3장에서는 또 다른 이방 제국에서 유다인 전체를 멸절시키라는 명령이 유월절 직전에 작성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파라오의 명령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다니엘 3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을 거부한 세 사람은 죽음의 위협을 받지만, 이야기 안에서 왕의 명령이 곧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 두 본문을 모르드개의 거절에 직접 대입하여 그 행동의 모든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구약의 중요한 관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은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 3장의 유다인들은 아직 그런 구원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구원 선언이 아니라 왕의 학살 명령입니다.

왕과 하만은 술을 마시고, 수산 도시는 혼란에 빠지다

에스더 3:15 본문 →

전령들은 왕의 명령으로 재촉을 받아 떠났고, 그 법령은 수산 성채에도 공포되었다. 왕과 하만은 술을 마시려고 앉았고, 수산 도시는 혼란에 빠졌다.에스더 3:15 · 본디새김

왕과 하만에게 명령은 이미 처리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막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권력이 만들어 내는 거리감을 보여 줍니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과 그 결정 아래 살아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왕은 학살 대상이 될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하만은 그들을 모두 모르드개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었습니다.

왕과 하만에게는 문서 한 장으로 끝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걸린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 장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에스더 3장에도 하나님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역사 속에서 언제나 안전한 위치에 놓이는 것은 아닙니다. 유다인들은 이미 유배를 겪었고, 페르시아 제국의 여러 지방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민족 전체가 멸절될 수 있는 위협 앞에 놓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특별히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당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만이 주장한 ‘그들은 왕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도 서술자가 확인해 준 사실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장에서 유다인들이 위협받는 상황을 곧바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에스더 3장은 이 질문에 즉시 대답하지 않습니다. 서술자는 기적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하만이 제비를 던질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습니다. 왕이 반지를 건네는 순간 하늘에서 개입하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실제로 위험에 노출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지금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에스더서는 인간들이 자기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위험을 가져오는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독자는 아직 결말을 알지 못하는 인물들과 함께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설명하는 문장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책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수산 주민들이 왜 혼란스러워했는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왕과 하만이 술을 마시는 동안 도시가 혼란에 빠졌다는 대비는 분명합니다.

맺음말 — 술잔을 든 두 사람과 혼란에 빠진 도시

에스더 3:1–15 본문 →

하만의 적대감은 왕의 반지를 통과하면서 제국의 법이 되었고, 그 법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공적인 의무이자 허용된 행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왕궁 문 앞의 한 사건이 제국의 모든 지방에 전달될 명령이 된 것입니다.

왕과 하만은 술을 마시려고 앉았습니다.

수산 도시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왕과 하만에게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받은 도시에서는 이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내린 명령은 열두째 달의 어느 날에 실행될 예정입니다.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부터 사람들의 삶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왕과 하만의 술잔은 평온하게 놓여 있지만, 그들이 서명한 문서 한 장이 온 도시의 평온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