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3–4장 · 하만의 계획

목숨을 걸고 말하기로 한 왕후

에스더 4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왕후 에스더가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던 에스더가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명령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왕후의 화려한 자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도시 한가운데서 울부짖는 모르드개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왕궁 안에 있는 에스더는 그 울음의 이유조차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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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문 앞에서 멈춘 애도

에스더 4:1–3 본문 →

모르드개는 일어난 일을 모두 알게 되었다.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 도시 한가운데로 나가, 크고 쓰라린 소리로 울부짖었다.에스더 4:1 · 본디새김

모르드개의 행동은 이전과 확연히 다릅니다.

그는 왕궁 문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왕을 해치려는 음모를 발견하고 에스더를 통해 그 사실을 알린 적도 있습니다. 왕궁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던 그가 이제는 도시 한가운데로 나가 옷을 찢고 울부짖습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재를 뒤집어쓰는 행위는 구약에서 극심한 슬픔과 재앙 앞에 선 사람이 보이는 애도의 표현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창세기 37:34). 욥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옷을 찢습니다(욥기 1:20).

모르드개 역시 죽음의 위협 앞에서 애도합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죽음은 이미 발생한 죽음만이 아닙니다. 아직 정해진 날짜가 오지 않았지만, 왕의 법령은 유다인 전체가 죽임을 당할 날을 지정해 놓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현재의 슬픔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의 슬픔은 사적인 공간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에서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는 왕궁 문 앞에서 멈춥니다.

그는 왕궁 문 앞까지만 갔다. 굵은 베옷을 입고는 왕궁 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에스더 4:2 · 본디새김

본문은 그 규정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명합니다. 왕궁 밖의 재앙과 애도의 모습이 왕궁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왕궁은 유다인 전체를 죽이라는 명령이 나온 권력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그 명령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의 모습은 왕궁 문 앞에서 가로막힙니다.

모르드개만 그렇게 슬퍼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방마다 왕의 명령과 법령이 이르는 곳에는 유다인들의 큰 애도와 금식, 울음과 통곡이 있었다. 많은 사람을 위해 굵은 베옷과 재가 깔렸다.에스더 4:3 · 본디새김

왕의 문서가 전달되는 범위와 유다인들의 고통이 퍼지는 범위가 일치합니다.

문서를 작성한 사람들에게는 행정적인 결정이었지만, 그 명령을 받은 유다인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금식은 성경에서 슬픔과 절박함,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태도와 연결되곤 합니다. 요엘 2:12–17에서는 금식과 함께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요청이 주어지고, 요나 3:5–9에서는 니느웨 사람들이 재앙의 경고를 듣고 금식합니다.

이제 이 위기가 왕궁 안의 에스더에게 전달되기 시작합니다.

에스더가 보낸 옷을 모르드개가 거절한 이유

에스더 4:4–9 본문 →

에스더의 시녀들과 내시들이 와서 에스더에게 알리자, 왕후는 몹시 괴로워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옷을 보내 그의 몸에서 굵은 베옷을 벗기고 갈아입히려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에스더 4:4 · 본디새김

이 장면에는 두 사람 사이의 정보 차이가 드러납니다.

모르드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습니다. 반면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입고 슬퍼하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 듣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이 행동을 모르드개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피상적인 대응으로만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스더는 ‘몹시 괴로워했다’고 묘사됩니다. 그는 모르드개의 처지를 염려하고 있으며, 그가 굵은 베옷을 벗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왕궁 문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를 해결하려는 시도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옷을 보낸 정확한 의도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벗는다고 해서 하만의 명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왕궁에 들어갈 수 있게 되더라도 유다인들의 처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애도는 개인적인 불편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닥친 위협에 대한 반응입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거절을 보고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는 왕이 자신을 시중들도록 세운 내시 하닥을 불러, 모르드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라고 명령합니다. 하닥은 왕궁 문 앞 도시 광장으로 나갑니다. 여기서부터 대화는 모두 전달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모르드개는 하닥에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설명하고, 하만이 유다인을 없애는 대가로 왕의 금고에 넣겠다고 약속한 은의 정확한 액수까지 알려 줍니다.

그는 소문만 전달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는 그들을 진멸하려고 수산에서 공포한 법령 문서의 사본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이고 설명하게 했다. 또 왕에게 들어가 은혜를 간청하고 자기 민족을 위해 왕 앞에서 청원하라는 명령을 에스더에게 전하게 했다.에스더 4:8 · 본디새김

에스더는 처음에는 모르드개의 슬픔을 알았지만, 이제는 그 슬픔의 원인이 되는 왕의 명령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모르드개는 문서를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설명하도록 합니다.

에스더는 단순히 소식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지금까지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과 친족을 밝히지 않았습니다(2:10, 20). 그러나 이제 모르드개는 바로 그 민족을 위해 왕 앞에서 청원하라고 말합니다. 에스더가 그 요청을 실행하려면, 자신과 유다인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야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가 왕궁에서 지켜 온 침묵이 더 이상 안전한 선택만은 아니게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단순히 왕후의 영향력을 사용하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감추어 왔던 자신의 정체성과 책임을 연결하라고 요청합니다.

이 요청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에스더의 대답에서 드러납니다.

왕후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길

에스더 4:10–12 본문 →

「왕의 모든 신하와 왕의 여러 지방 백성은 알고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부름을 받지 않고 안뜰로 왕께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같은 법에 따라 죽임을 당합니다. 다만 왕께서 금 홀을 내미시는 사람은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저는 왕께 들어가라는 부름을 받지 못한 지 삼십 일이 되었습니다.」에스더 4:11 · 본디새김

이 법은 왕후에게도 적용됩니다.

에스더는 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후라는 지위가 왕에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있어서 왕궁 문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있는 안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모두 왕궁의 규정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왕이 금 홀을 내미는지에 따라 허락 없이 들어온 사람의 생사가 갈립니다. 더욱이 그는 삼십 일 동안 왕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왕이 에스더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는 증거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이 왜 그동안 에스더를 부르지 않았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에스더의 말은 단순한 핑계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실제로 존재하는 법적 위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요청을 따르는 것은 그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유다인 전체를 죽이라는 법령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하면 에스더 자신이 왕 앞에 나아가기도 전에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에게는 위험이 없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네가 이런 때를 위해 왕후의 자리에 이른 것인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 4:13–14 본문 →

모르드개의 대답은 에스더를 향한 경고로 시작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답을 전하게 했다. 「왕궁에 있다고 해서 모든 유다인 가운데 너만 살아남으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지 마라.」에스더 4:13 · 본디새김

이 말은 에스더가 실제로 자신만 살아남으려 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후라는 지위가 그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의 정체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은 안전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밀이 앞으로도 에스더를 지켜 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궁의 지위를 자기 민족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도록 합니다.

「네가 이때 끝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유다인에게는 다른 곳에서 숨 돌릴 여유와 구원이 생길 것이지만, 너와 네 아버지 집안은 멸망할 것이다. 네가 이런 때를 위해 왕후의 자리에 이른 것인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 4:14 · 본디새김

첫째, 침묵하는 것도 선택이라는 사실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을 위해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끝내 침묵하는 것에도 의미가 생깁니다.

처음에 그의 침묵은 모르드개의 명령에 따른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명령을 내렸던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침묵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이전에는 정체성을 감추는 것이 에스더에게 주어진 행동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정체성과 연결된 공동체가 죽음의 위협에 놓여 있습니다.

둘째, 모르드개는 유다인에게 다른 곳에서 구원이 생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이 유다인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에스더가 행동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수단을 통해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모르드개가 유다인의 구원을 에스더 한 사람의 능력에만 맡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침묵이 아무런 결과도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에스더와 그 아버지 집안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셋째,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가 된 이유를 질문으로 남깁니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누가 알겠느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를 반드시 이 일을 위해 왕후로 세우셨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그런 목적을 위해 이 자리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한다는 것이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목적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의 민족은 죽음의 위협에 놓여 있습니다. 그가 왕후가 된 이유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질문은 숨겨진 운명을 알아맞히라는 요구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책임을 발견하라는 요청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신뢰는 구약의 여러 본문에서 반복됩니다. 예레미야 31:35–37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계를 강하게 선언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모르드개의 말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본문은 ‘다른 곳’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도 직접 사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경로에서 구원의 가능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으로 읽을 여지도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어느 한쪽을 본문의 유일한 의미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멸망이 어떤 경로로 닥칠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침묵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왕후라는 지위만으로 학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위험을 강조한 말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팔려 간 뒤 여러 사건을 거쳐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이 그곳에 이르게 된 일을 하나님이 생명을 보존하시기 위해 먼저 보내신 것으로 해석합니다(창세기 45:5–8). 요셉 이야기는 지나간 사건을 돌아보며 그 의미를 발견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반면 에스더 4장의 모르드개는 아직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미래 앞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저를 위해 다 함께 금식하십시오」 — 에스더가 처음으로 행동을 이끌다

에스더 4:15–16 본문 →

모르드개의 말을 들은 에스더는 다시 답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이전의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령합니다.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모두 모으십시오. 저를 위해 다 함께 금식하고, 사흘 동안 밤낮으로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십시오. 저와 제 시녀들도 그렇게 금식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저는 법에 어긋나더라도 왕께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죽게 된다면 죽는 것이지요.」에스더 4:16 · 본디새김

3절에서는 유다인들이 죽음의 위협 때문에 금식했습니다. 그들의 금식은 슬픔과 절박함의 표현이었습니다. 16절에서 에스더는 그 금식을 자신이 앞으로 행할 행동과 연결합니다.

슬픔의 표현이 공동의 행동을 위한 준비로 발전합니다.

그는 왕후의 권위를 내세워 유다인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 앞에서 공동체의 참여를 요청합니다. 에스더는 왕궁 안에 있고, 다른 유다인들은 왕궁 밖에 있습니다. 그들의 위치는 다르지만 같은 금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왕궁의 안과 밖이 하나의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게다가 에스더의 시녀들도 함께 금식합니다. 그들이 모두 유다인이었는지는 본문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금식하겠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갈 방법을 찾아낸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앞서 설명한 법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나아가면 죽임을 당할 수 있고, 왕이 금 홀을 내밀어야만 살아남습니다.

바뀐 것은 에스더의 결정입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택에서 벗어납니다.

여기서 「제가 죽게 된다면 죽는 것이지요」라는 말은 죽음을 바란다는 뜻이 아닙니다. 죽음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결의입니다.

그의 결단은 성공을 보장받은 사람의 결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행동하기로 한 사람의 결단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에스더 4장에는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직접적인 서술이 없습니다. 반면 그리스어 에스더서의 추가 부분 가운데 이 장 뒤에 놓이는 부분에는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하나님께 구원을 구하는 기도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 전승의 기도를 통해 에스더 이야기가 후대의 신앙 공동체에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지금 주어진 히브리어 본문의 4장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사실처럼 옮겨서는 안 됩니다. 그 금식의 의미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에스더가 실제로 어떤 말로 기도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다니엘 3:16–18에 등장하는 세 유다인의 태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 앞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실 수 있음을 말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더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두 본문은 서로 직접 인용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상황과 행동의 내용도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자기 생존에 대한 확실한 보장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주제적 연결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뒤바뀌는 명령과 순종

에스더 4:17 본문 →

모르드개는 떠나가서 에스더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모두 행했다.에스더 4:17 · 본디새김

에스더 2:20에서는 에스더가 자신을 기른 모르드개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4:17에서는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명령대로 행동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길러 왔고 보호했으며, 왕궁에서도 그의 안부를 살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따라 자신의 민족을 감추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에스더는 자신의 처지와 공동체의 위기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을 이끄는 사람이 됩니다.

에스더는 공동체의 참여를 요청하고, 행동의 순서를 정하고, 자신이 감수할 위험을 직접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그 결정을 실행합니다.

이것은 에스더의 성장이 실제 행동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맺음말 — 닫힌 문 앞에서 시작된 대화가 한 사람의 결단으로 끝나다

에스더 4:1–17 본문 →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후가 된 이유를 먼저 확정한 뒤 행동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질문은 에스더에게 자신의 자리를 다시 보게 했습니다. 왕후라는 지위는 더 이상 자신을 안전하게 만드는 신분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왕의 금 홀은 아직 에스더를 향해 내밀어지지 않았습니다. 왕이 그를 받아 줄지도 알 수 없습니다. 유다인들을 죽이라는 법령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명령대로 행동하러 떠납니다.

에스더는 아직 왕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왕의 부름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왕궁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에스더는 그 문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