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15–18장 · 바다를 건넌 뒤 광야
하루치 양식에 담긴 뜻
굶주린 사람에게 하늘에서 빵이 내린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아마 가능한 한 많이 모아 두고 싶을 것입니다. 내일도 먹을 것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6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에게 하늘에서 빵을 내려 주시면서 뜻밖의 규칙을 정하십니다. 날마다 그날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내일 먹으려고 남겨 둔 빵은 썩어 버립니다. 그러나 여섯째 날에는 두 배를 거두어 다음 날까지 보관해야 합니다. 그날에는 빵이 썩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백성을 이런 방식으로 먹이셨을까요? 필요한 만큼 한꺼번에 주시면 더 간단하지 않았을까요?
하루의 양식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한 주의 리듬을 거쳐 사십 년의 역사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고기 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이스라엘은 엘림을 떠나 신 광야에 이릅니다. 때는 이집트에서 나온 뒤 둘째 달 열닷샛날입니다.
그사이 이스라엘은 바다를 건넜고, 마실 물이 없는 광야를 지났으며, 엘림의 샘에서 쉬었습니다. 이제 다시 이동하던 그들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다.출애굽기 16:2 · 본디새김
여기서 눈에 띄는 표현은 「온 회중」입니다. 한두 사람이 불만을 품은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배고픔이라는 위기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불평하는 방식은 단순히 음식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고기 솥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야훼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 전체를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 냈습니다.」출애굽기 16:3 · 본디새김
그들이 벗어나고자 했던 이집트가 이제는 배불리 먹던 장소로 기억됩니다. 반대로 자신들을 구원한 사건은 굶겨 죽이기 위해 광야로 끌어낸 일처럼 묘사됩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이집트는 이스라엘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그들의 삶을 짓눌렀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의 말에서는 그 고통이 사라지고 고기 솥과 빵만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재의 굶주림 때문에 과거를 새롭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얻은 지금의 고통이 너무 커서, 노예였던 과거가 오히려 안전한 시절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것이 여호와야훼의 손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이제 그 손에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을 「굶겨 죽이려고」 이끌어 냈다고 비난합니다. 구원의 목적을 죽음으로 뒤집어 버린 것입니다.
배고픔은 실제였지만, 그 배고픔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이지만, 그 음식과 함께 배워야 할 것은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을 왜 이끌어 내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는 이 불평에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2:6–18에 따르면 첫째 달 열나흗날에 유월절이 있었고, 열닷샛날부터 무교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16장은 이집트 탈출을 시작한 지 대략 한 달이 지난 시점을 보여 줍니다.
하늘에서 빵을 비처럼 내리겠다
백성은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하늘에서 빵을 비처럼 내리겠다. 백성은 나가서 날마다 그날의 몫을 거두어야 한다. 그들이 내 가르침을 따라 걷는지 아닌지 내가 시험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16:4 · 본디새김
이집트에서 여호와야훼는 우박을 내리셨습니다(9:18–26). 그것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 자기 백성을 먹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비처럼」이라는 표현은 풍성하게 내려오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바로 다음 명령은 그 풍성함에 제한을 둡니다. 여호와야훼는 먹을 것을 공급하시되,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의 몫을 거두도록 하십니다. 한꺼번에 넉넉한 식량을 확보해 놓고 더 이상 공급자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 아닙니다.
백성은 실제로 나가서 음식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스스로 그 빵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노동은 필요한 음식을 받아들이는 행동이지, 그 음식의 근원을 만들어 내는 행동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주시고, 이스라엘은 거둡니다. 이 순서가 광야의 새로운 삶을 규정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규칙을 「내 가르침을 따라 걷는지」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앞 장에서도 마라의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신 뒤 백성을 시험하셨습니다(15:25). 여기서는 시험의 내용이 더욱 구체적입니다. 말씀하신 방식대로 음식을 거두는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가, 정해진 날에는 쉬는가 하는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음식을 주실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 심사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는 이미 빵을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 속에서 백성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지를 시험하십니다.
이어지는 6–12절에서는 백성의 불평이 여러 차례 다시 언급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이 그분께 하는 불평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여러분은 우리에게 불평합니까?」출애굽기 16:7 · 본디새김
모세가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저녁에는 여러분에게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실 때에 말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이 그분께 하는 불평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불평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하는 것입니다.」출애굽기 16:8 · 본디새김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한 주체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구원의 목적을 의심하는 백성의 불평은 궁극적으로 여호와야훼를 향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그 불평을 들으시고 즉시 백성을 벌하지 않으십니다.
10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납니다. 백성은 자신들의 불평이 들렸다는 사실뿐 아니라, 자신들을 이끌어 오신 분이 여전히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을 마주합니다.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바라보며 죽음의 책임을 추궁하던 순간, 그들의 시선은 광야에 나타난 여호와야훼의 영광으로 옮겨집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불평을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는 해 질 무렵에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으로 배부를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출애굽기 16:12 · 본디새김
자신들을 죽이려고 광야로 이끌어 내셨다고 여겼던 하나님이 실제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먹이시는 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이지?」 — 이름도 모르는 음식
저녁이 되자 메추라기 떼가 진을 덮습니다. 백성은 고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새로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저녁이 되자 메추라기 떼가 올라와 진을 덮었다. 아침에는 진 둘레에 이슬이 한 겹 깔려 있었다. 깔려 있던 이슬이 걷히자, 광야 표면에 잘고 비늘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땅 위의 서리처럼 잘았다.출애굽기 16:13–14 · 본디새김
본문은 그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묘사합니다. 작고, 서리처럼 잘며, 비늘 같은 모습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물질인지는 아직 밝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서로 말했다. 「이게 무엇이지?」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에게 먹으라고 주신 빵입니다.」출애굽기 16:15 · 본디새김
그들에게 그것은 익숙한 밀이나 보리로 만든 빵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먼저 음식의 성분이나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은 그것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식품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을 먹이시기 위해 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이 독자에게 보여 주는 것은 낯선 음식을 앞에 둔 백성의 질문과 그 음식에 붙은 이름 사이의 말놀이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이전에 알지 못하던 양식을 받습니다.
이는 신명기 8:3에서 훗날 다시 해석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굶주리게 하셨다가 그들과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이신 까닭을,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빵을 먹어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빵은 스스로 생겨난 것도, 그들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먹는 빵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비늘 같은 것」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메후스파스(חַסְפַּס)는 성경에서 이곳에만(מָן) 등장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 말이 정확히 어떤 표면이나 모양을 묘사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에서 15절의 「이게 무엇이지?」에 해당하는 표현은 만 후입니다. 「만나」의 히브리어 이름 만과 소리로 이어집니다. 다만 이 연결이 그 이름의 역사적 어원까지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만나의 외형과 맛을 묘사하지만, 그것의 자연적 생성 원리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연식물이나 곤충의 분비물과 비슷하다는 설명만으로 본문이 서술하는 모든 특징을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날마다 나타나다가 일곱째 날에는 나타나지 않고, 보관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는 본문 자체의 주장으로 살펴야 합니다. 요한복음 6:31–35에서는 예수가 광야의 빵을 언급하시며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설명하십니다. 이는 출애굽기 16장의 본래 장면을 넘어, 그 사건을 예수와 연결하여 새롭게 해석하는 신약의 읽기입니다.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다
여호와야훼가 주신 빵을 거두는 데에는 분명한 규칙이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각자 먹을 만큼 그것을 거두어라. 너희 사람 수에 따라 한 사람에 한 오메르씩, 각자 자기 천막에 있는 이들의 몫을 가져가라.』」출애굽기 16:16 · 본디새김
이 명령에서 기준은 개인의 능력이나 욕심이 아닙니다.
먹어야 할 사람의 수와 필요한 양입니다.
각 천막에 있는 사람들을 고려해 한 사람당 한 오메르를 거두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가족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가져오는 총량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렇게 했다. 많이 거두는 이도 있고 적게 거두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오메르로 재어 보니, 많이 거둔 이에게도 남는 것이 없었고 적게 거둔 이에게도 모자라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 먹을 만큼 거두었다.출애굽기 16:17–18 · 본디새김
풍성하다는 것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이 쌓아 놓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장에서 풍성한 공급은 누구에게도 필요한 음식이 모자라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규칙에는 또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도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마십시오.」출애굽기 16:19 · 본디새김
광야에서 내일의 식량은 가장 큰 불안 요소입니다. 오늘 음식을 충분히 얻었다면, 내일을 위해 조금 남겨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몇몇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남겨 둔 만나에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납니다. 모세는 화를 냅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들이 왜 남겨 두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주어진 명령을 어겼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내일의 식량을 확보하려는 행동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이 이야기에서 문제는 그것이 여호와야훼가 정하신 공급 방식과 어긋났다는 데 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 받은 음식으로 내일까지 안전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보관한 양식은 오히려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본문은 준비나 저장 자체를 언제나 잘못된 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곧 이어지는 안식일 규정에서는 오히려 반드시 음식을 미리 보관해야 합니다.
핵심은 저장이라는 행동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신뢰하여 그분이 정하신 방식대로 행동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아침마다 각자 먹을 만큼 그것을 거두었다. 해가 뜨거워지면 그것은 녹았다.출애굽기 16:21 · 본디새김
그날의 양식을 거두기에 적절한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이 지나면 더는 거둘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새로운 생활의 리듬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섯째 날, 그 리듬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거두어 온 만나의 양이 초자연적으로 변하여 모두 일정한 양이 되었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각 가정의 사람 수에 맞추어 필요한 만큼 거두고 측정했기 때문에 남거나 부족하지 않았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반면 실제로 거둔 양과 최종적으로 측정한 양 사이에 특별한 조정이 일어났다고 이해하는 읽기도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고린도후서 8:15에서 출애굽기 16:18을 직접 인용합니다.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부족하지 않았다는 만나 이야기의 원리를, 어려운 성도들을 위한 물질적 나눔에 적용합니다.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공급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필요를 돌보는 삶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입니다.
왜 어떤 날에는 남겨 두면 썩고, 어떤 날에는 썩지 않을까?
여섯째 날 백성은 평소의 두 배인 한 사람당 두 오메르씩 거둡니다. 회중의 지도자들은 이 일을 모세에게 알립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일은 쉬는 날, 여호와야훼를 위한 거룩한 안식일이다.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아라. 남는 것은 모두 너희를 위해 아침까지 보관하여라.』」출애굽기 16:23 · 본디새김
평소에는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섯째 날에는 다음 날 먹을 음식을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합니다.
그들은 모세가 명령한 대로 그것을 아침까지 두었다. 그것은 악취가 나지 않았고 그 안에 구더기도 없었다.출애굽기 16:24 · 본디새김
20절에서는 남겨 둔 음식에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났습니다. 24절에서는 똑같이 아침까지 남겨 두었는데도 문제가 없습니다.
만나의 보관 가능 여부는 이 이야기에서 여호와야훼가 정하신 시간의 질서와 연결됩니다.
엿새 동안은 그날 먹을 양식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에는 음식을 거두지 않고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치 음식이 주어집니다. 이 날은 단순히 일이 없는 날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위한 거룩한 안식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출애굽기 20:8–11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이미 안식일에 따라 살아가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여기서 추상적인 원칙으로 먼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거두고, 요리하고, 보관하고, 쉬는 생활 속에서 안식일을 배웁니다.
이것은 창세기 2:2–3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마치신 뒤 일곱째 날에 쉬셨고, 그날을 복되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본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쉬십니다. 출애굽기 16장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먹을 것을 미리 마련해 주셨기 때문에 쉴 수 있습니다.
모세가 말했다. 「오늘 그것을 먹으십시오. 오늘은 여호와야훼를 위한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들에서 그것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출애굽기 16:25 · 본디새김
그날의 음식은 이미 전날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일곱째 날에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어진 것을 먹으며 쉬는 것입니다.
여섯 날 동안 만나를 거두는 행위가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응답이었다면, 일곱째 날에 거두러 나가지 않는 행위 역시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응답입니다.
신뢰는 언제나 더 많이 행동하는 것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멈추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빈 들판에서 배우는 안식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세의 말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일곱째 날에 백성 가운데 몇몇이 거두러 나갔지만 찾지 못했다.출애굽기 16:27 · 본디새김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섯째 날에 주어진 음식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수도 있고, 평소처럼 음식을 거두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너희는 언제까지 내 명령들과 내 가르침들을 지키기를 거부하겠느냐?」출애굽기 16:28 · 본디새김
여기서 「너희」는 복수입니다. 모세에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책망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 백성을 향합니다.
이 질문은 하루의 실수만을 지적하는 표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만나를 남겨 두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사람들도 있었고, 이제 안식일에 나가지 말라는 말씀을 어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면서도 그 공급을 둘러싼 말씀에는 계속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보아라. 여호와야훼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다. 그래서 그가 여섯째 날에 너희에게 이틀 치 빵을 주는 것이다. 각자 제자리에 머물러라.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자기 자리에서 나가지 마라.」출애굽기 16:29 · 본디새김
안식일은 이 장에서 백성이 스스로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강제노동 아래 살았습니다. 출애굽기 5장에서 파라오는 벽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짚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생산량은 줄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파라오는 필요한 자원을 줄이면서도 계속 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필요한 양식을 더 주시고 일을 멈추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주인 아래 살아가는 백성이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차이입니다.
이스라엘은 단지 이집트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정하신 질서 안에서 일하고 쉬는 법을 배우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29절의 「각자 제자리에 머물러라」, 「자기 자리에서 나가지 마라」는 명령도 이 문맥에서 읽어야 합니다. 이는 안식일에 어떤 이동도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는 완성된 법률 체계라기보다는, 그날 만나를 찾아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직접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백성은 일곱째 날에 쉬었다.출애굽기 16:30 · 본디새김
그동안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움직였습니다. 이집트를 떠나 걸었고, 바다를 건넜고, 광야에서 물을 찾았으며, 이제는 아침마다 음식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절에서는 움직임이 멈춥니다.
이스라엘이 쉬는 날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중단되는 날이 아니라, 그 돌보심을 믿고 일손을 놓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쉬는 동안에도 먹을 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이게 무엇이지?」가 대대로 기억해야 할 이름이 되다
안식일 이야기가 끝난 뒤, 서술자는 다시 만나 자체로 돌아옵니다.
이스라엘 집안은 그것을 만나라고 불렀다. 그것은 고수씨 같고 희었으며, 그 맛은 꿀을 넣은 얇은 과자 같았다.출애굽기 16:31 · 본디새김
15절에서 이스라엘은 처음 보는 음식을 두고 「이게 무엇이지?」라고 물었습니다. 이제 그 질문과 연결된 이름이 공동체의 언어가 됩니다.
고수씨는 외형을, 꿀을 넣은 과자는 맛을 설명하는 비교입니다. 이 두 비유를 통해 독자는 그 음식의 특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고기 솥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빵은 맛까지 좋은 음식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서 새로운 명령을 전달합니다.
모세가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그것을 한 오메르 가득 너희 대대로 보관하여라.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던 때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빵을 너희 후손이 보게 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16:32 · 본디새김
19절에서는 만나를 다음 날 아침까지도 남겨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남겨 둔 음식이 썩었습니다. 이제는 한 오메르를 특별히 보존하도록 명령합니다.
앞서 저장이 금지된 것은 날마다 먹을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관하도록 명령받은 만나는 먹기 위해 남겨 두는 음식이 아닙니다.
후손이 보도록 남겨 두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2–13장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통해 구원의 사건을 후손에게 가르치도록 하신 명령과도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때 만나 한 오메르는 추상적인 설명보다 구체적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33–34절에서는 아론이 항아리에 만나 한 오메르를 담아 여호와야훼 앞, 곧 「증언 앞」에 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루의 식량이 이스라엘 역사의 기억 속에 자리 잡습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이야기의 이 지점에서는 아직 성막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증언의 돌판을 담을 궤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이후 시내산에서 명령을 받고 제작하게 됩니다. 따라서 34절을 이 순간 이미 증언의 궤가 존재했다는 뜻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이 절은 훗날 이루어진 보관 행위를 이곳에서 미리 요약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또는 독자가 나중에 알게 될 성소의 제도를 기준으로 만나 보관 장소를 설명한 서술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 보관이 언제 실행되었는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하루치 양식이 사십 년의 역사가 되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갑작스럽게 시간이 멀리 앞으로 이동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를 때까지 마흔 해 동안 만나를 먹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경계에 이를 때까지 만나를 먹었다.출애굽기 16:35 · 본디새김
4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날마다 그날의 몫」을 거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날그날 필요한 양식을 얻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십 년 뒤 어떤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처음 주어진 것은 하루치 양식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그 하루하루가 사십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사십 년치 음식을 창고에 쌓아 두지 않았습니다. 매일 그날의 몫을 거두면서 오랜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물론 이 말이 이스라엘이 사십 년 동안 언제나 순종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들이 여러 차례 하나님을 거역하고, 광야에서 심판을 경험했다는 사실도 전합니다.
그러나 이 장의 결말이 강조하는 것은 백성의 완전한 순종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지속적인 공급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6장은 마지막으로 오메르의 크기를 설명합니다.
한 오메르는 한 에파의 십분의 일이었다.출애굽기 16:36 · 본디새김
이 설명은 오메르라는 단위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 그 크기를 알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 오메르는 한 사람이 하루에 먹도록 정해진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보관할 만나의 양이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 5:11–12에서는 이 이야기의 다음 단계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기 시작하자 만나가 그쳤습니다. 광야에서 주어진 만나는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먹이기 위한 공급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광야에서는 만나를 주셨고, 땅에 정착한 뒤에는 그 땅의 소산을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언제나 같은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백성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공급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시편 78:23–25 역시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내려 백성을 먹이셨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같은 시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도 계속 불신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합니다(78:32). 공급을 경험했다는 사실과 공급하시는 분을 지속적으로 신뢰하는 일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이 보여 주는 믿음의 모습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배고픔을 해결하실 뿐 아니라, 그들이 매일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치십니다. 평소에는 저장하지 말라는 말씀을 따라야 했고, 여섯째 날에는 저장하라는 말씀을 따라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반대되는 행동이지만, 두 행동의 바탕에는 같은 신뢰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처음 만나를 보았을 때 이스라엘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는 그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야훼가 자기 백성을 먹이신 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물체를 보고 던진 질문이었지만, 훗날에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빵을 한 오메르 담아 대대로 보관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작은 분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항아리는, 여호와야훼가 자기 백성을 사십 년 동안 먹이셨다는 사실을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