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5–18장 · 바다를 건넌 뒤 광야
여호와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이스라엘은 두 번의 위기를 겪습니다. 처음에는 마실 물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르고, 다음에는 아말렉이 공격해 와 생존을 위협합니다.
한 장면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바위 위에 서 계시고, 다른 장면에서는 모세가 언덕 위에 서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의 공격까지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사실과 눈앞의 위기가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야훼의 지시를 따랐는데 왜 물이 없을까?
17장은 이스라엘의 이동을 설명하는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신 광야에서 출발하여 여러 구간을 거쳐 이동했다. 그들은 르피딤에 진을 쳤지만,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출애굽기 17:1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이동했다는 사실과 마실 물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 설명 없이 나란히 놓습니다. 이스라엘이 르피딤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물을 찾지 못했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상황 자체를 백성의 불순종에 대한 징벌로 이해할 근거는 없습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며 말했다. 「우리에게 물을 주시오. 우리가 마시겠소.」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왜 여러분은 나와 다툽니까? 왜 여호와야훼를 시험합니까?」출애굽기 17:2 · 본디새김
이 요구 자체는 부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은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3절에서는 그들의 자녀와 가축까지 언급됩니다. 목마름은 한 사람의 불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도움을 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모세에게 책임을 추궁합니다. 모세는 자신과 벌이는 다툼이 여호와야훼를 시험하는 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여호와야훼를 시험했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뜻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은 먼저 백성의 불평을 한 번 더 들려줍니다.
거기서 백성은 목이 말랐다. 백성은 모세에게 불평하며 말했다. 「나와 내 자녀들과 내 가축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도대체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습니까?」출애굽기 17:3 · 본디새김
앞 장에서도 굶주림 앞에서 비슷한 비난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갈등이 더욱 직접적입니다. 백성은 모세와 다투고 있으며, 그 다툼은 이제 모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으로 발전합니다.
목이 마르다는 사실과 여호와야훼를 시험한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본문은 갈증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생존의 위기를 경험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신실하심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그 차이는 7절에서 밝혀질 질문을 통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모세가 부르짖다
모세가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으며 말했다. 「제가 이 백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그들이 저를 돌로 쳐 죽일 것입니다.」출애굽기 17:4 · 본디새김
본문은 여기서 백성의 두려움에서 모세의 두려움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이스라엘을 이끌어 온 모세는 지금 두 방향에서 압박받습니다. 백성은 자신에게 물을 요구하지만, 자신에게는 그 물을 마련할 능력이 없습니다. 더욱이 그들의 분노는 언제든 자신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질문은 「이 백성에게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가 아니라 「제가 이 백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문제는 단순히 물을 마련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의심하며 자신을 공격하는 백성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야훼가 말씀하십니다.
나일강을 쳤던 지팡이로 바위를 치다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세 가지를 지시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백성 앞을 지나가고, 이스라엘 장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너와 함께 데려가라. 네가 나일강을 칠 때 사용한 네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출애굽기 17:5 · 본디새김
출애굽기 7:17–20에서 여호와야훼는 나일강의 물을 피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여호와야훼가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지팡이를 통해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집트에서는 강물이 있었지만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마실 물이 없었지만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됩니다.
여호와야훼는 물을 마실 수 없게도 하시고, 물이 없는 곳에서 마실 물을 나오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장로 몇 사람을 데려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비밀 의식처럼 물을 만들어 내는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질 사건임을 보여 줍니다.
「보아라. 내가 거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그 바위에서 물이 나와 백성이 마실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했다.출애굽기 17:6 · 본디새김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분 앞에 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친히 모세 앞에 서 계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임재는 백성의 확신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끝에는 축하나 감사의 노래가 없습니다.
모세가 그 장소에 이름을 붙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기적보다 백성의 행동을 기억하게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표현은 여호와야훼가 그 장소에 임재하셔서 모세가 행할 일을 주도하시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신실하심에 의문을 제기한 상황에서, 마치 여호와야훼가 그들의 질문에 직접 응답하시기 위해 그 자리에 서시는 것처럼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다만 본문이 법정이나 재판 장면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으므로 이를 확정적인 상징으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신약에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0:4에서 광야의 바위를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이는 출애굽기의 바위 사건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는 후대의 신학적 해석입니다. 출애굽기 17장 자체에서는 바위가 누구를 상징하는지보다, 여호와야훼가 그곳에서 물을 주셨다는 사실이 중심입니다.
맛사와 므리바 — 물을 얻었지만 남겨진 질문
그는 그곳의 이름을 맛사와 므리바라고 불렀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여호와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고 여호와야훼를 시험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7:7 · 본디새김
두 이름은 각각 백성이 여호와야훼를 시험한 일과 모세와 다툰 일을 기억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바위에서 물을 내신 사실보다, 그 과정에서 백성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가 지명에 남았습니다.
이 질문이 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은 이미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고 있었고, 광야에서 먹을 것도 공급받았습니다. 그러나 물이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자체를 다시 문제 삼습니다.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다릅니다. 모세도 물을 구할 방법이 없어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르짖음은 여호와야훼에게 해결을 구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반면 백성의 다툼은 여호와야훼가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지 여부를 문제 해결의 조건으로 시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심한 장소가, 실제로는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난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후 신명기 6:16은 이 사건을 되돌아보며 맛사에서 했던 것처럼 여호와야훼를 시험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시편 95:8–9 역시 므리바와 맛사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보고도 그분을 시험했던 일을 경고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직 그 장소를 떠나지도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외부에서 적이 찾아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민수기 20:2–13의 므리바 사건과 구별할 필요도 있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물이 없는 상황과 바위, 모세, 백성의 다툼을 다루지만, 민수기 20장은 가데스에서 일어나며 모세의 행동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출애굽기 17장에서는 모세가 명령받은 대로 바위를 칩니다. 두 이야기를 곧바로 하나의 사건으로 합치면 각각의 중요한 특징을 놓치게 됩니다.
아말렉의 공격 — 이제 이스라엘도 싸워야 한다
아말렉이 와서 르피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웠다.출애굽기 17:8 · 본디새김
아말렉이 누구인지, 왜 공격했는지, 얼마나 큰 병력을 동원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말렉은 창세기 36:12에서 에서의 가계에 속한 인물로 등장하며, 이스라엘의 이후 역사에서도 여러 차례 적대적인 세력으로 나타납니다. 이곳의 아말렉은 그 이름을 지닌 집단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안정된 영토나 군사 체계를 갖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를 떠난 공동체로서 광야를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앞선 사건에서는 물이 부족했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적으로 등장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우리를 위해 남자들을 뽑고, 나가서 아말렉과 싸워라. 내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언덕 꼭대기에 서 있겠다.」출애굽기 17:9 · 본디새김
여호수아는 여기서 출애굽기 이야기 속에 처음 이름을 드러냅니다. 훗날 이스라엘을 이끌 중요한 인물이지만, 여기서는 아직 모세의 지시를 따라 군사적 역할을 맡는 사람입니다.
바다 앞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실 것이므로 백성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14:14).
그러나 이제는 여호수아가 사람들을 선발해 직접 싸워야 합니다.
두 사건 모두 여호와야훼의 구원과 연결되지만, 그 구원이 나타나는 방식은 다릅니다. 바다에서는 백성이 스스로 적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제로 무기를 들고 싸웁니다.
모세는 전투 현장으로 내려가는 대신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언덕 위에 서겠다고 말합니다. 이 지팡이는 이집트에서의 재앙과 바다의 구원, 바위에서 나온 물을 연결하던 물건입니다. 이제 그것은 전투 장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전투의 결과는 단지 그들이 얼마나 잘 싸우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5:17–18은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이 지쳐 있을 때 뒤처진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정보는 출애굽기 17장 자체에는 나오지 않지만, 같은 사건에 대한 후대의 성경적 회고로서 아말렉의 공격이 어떤 성격이었는지를 보충해 줍니다. 광야에서 지쳐 이동하는 백성, 그중에서도 뒤처진 사람들을 공격했다는 것은 단순한 정면 전투 이상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모세의 손이 내려갈 때마다 아말렉이 우세했다
모세가 손을 들 때마다 이스라엘이 우세했고, 손을 내릴 때마다 아말렉이 우세했다.출애굽기 17:11 · 본디새김
여호수아는 칼을 들고 싸웁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시선은 계속 언덕 위의 모세에게 돌아옵니다.
모세의 두 손이 무거워지자, 그들이 돌 하나를 가져다가 그의 밑에 놓았고 그는 그 위에 앉았다.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다른 한 사람은 저쪽에서 그의 두 손을 받쳐 주었다. 해가 질 때까지 그의 두 손은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출애굽기 17:12 · 본디새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도 오랫동안 손을 올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의 몸은 피로해집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했던 행동이 한 사람의 지속적인 힘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였지만, 혼자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조차 끝까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전장에서 싸우고, 모세는 언덕 위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을 받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역할도 다른 이들의 행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전쟁 이야기라면 가장 강한 전사나 가장 뛰어난 지휘관의 행동을 중심으로 승리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인 순간에 독자가 보는 것은 칼을 휘두르는 영웅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손을 들고 있을 힘조차 없어 돌 위에 앉아 있는 노인과, 그의 팔을 받쳐 주는 두 사람입니다.
여호와야훼는 모세의 한계를 없애 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한계를 함께 감당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끄십니다.
조금 더 깊이
모세가 손을 드는 행동에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모세가 손을 드는 행동을 기도의 자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손을 드는 행위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시편 28:2; 63:4).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행동을 여호와야훼의 권능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겠다고 명시했으므로, 그의 손을 드는 행위는 지팡이와 분리해서 볼 수 없습니다. 두 해석은 반드시 서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의존과 간구를 표현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이 정확히 어떤 의식이나 기도 형식이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승리와 여호와야훼의 전쟁
여호수아는 칼날로 아말렉과 그의 백성을 꺾었다.출애굽기 17:13 · 본디새김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표현을 아말렉이 완전히 전멸했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패배를 말하며, 그 집단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뒤이어 아말렉과의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이 일을 기억하도록 책에 기록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들려주어라. 내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반드시 지워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7:14 · 본디새김
전투는 끝났지만, 여호와야훼의 선언은 미래를 향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여호와야훼가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반면 여호와야훼는 자기 백성을 공격한 아말렉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존속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뜻을 선언하십니다. 「기억을 지워 버린다」는 말은 아말렉이라는 이름을 역사책에서 언급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집단이 존속하고 이름을 남기는 일을 종식시키겠다는 심판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특정한 전쟁과 관련된 심판 선언입니다. 본문을 근거로 오늘날 어떤 민족이나 집단을 하나님의 적이라고 규정하거나,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 구절이 현대적 의미의 민족 말살 명령과 정확히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뒤에 나오는 신명기 25:19와 사무엘상 15장의 구체적인 표현 및 역사적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하는 문제입니다. 출애굽기 17장 자체에서 우선 확인되는 것은 여호와야훼가 아말렉의 공격을 이스라엘에 대한 일시적인 군사적 위협으로만 취급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는 전투를 지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거둔 승리의 의미를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칼이 아말렉을 꺾었다는 사실과, 그 전쟁이 궁극적으로 여호와야훼의 다스림 아래 있다는 사실은 함께 기억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야훼 닛시라고 불렀다.출애굽기 17:15 · 본디새김
그는 「여호와야훼는 나의 깃발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깃발은 전쟁에서 군대를 식별하고 모으는 상징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군인들은 깃발을 통해 자신들이 어느 편에 속해 있고 어디를 중심으로 모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 여호수아가 싸웠다는 사실은 부정되지 않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의 역할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을 통해 이스라엘이 의지해야 할 분은 여호와야훼입니다.
그가 말했다. 「손이 야의 보좌 위에 있으니, 여호와야훼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전쟁을 하신다.」출애굽기 17:16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겪은 전투는 단순히 모세나 여호수아 개인의 전쟁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자기 백성을 향한 공격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선언됩니다.
「손이 야의 보좌 위에」에 대한 해석이 갈립니다. 하나는 모세가 손을 여호와야훼의 보좌를 향해 들어 올린다는 의미로 보는 읽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호와야훼의 보좌에 손을 얹는 이미지를 맹세나 전쟁 선언으로 이해하는 읽기입니다. 또 다른 읽기는 「보좌」(כֵּס)에 해당하는 낱말이 본래 「깃발」을 뜻하는 말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합니다.
어느 하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더 깊이
「손이 야의 보좌 위에」는 문장 구조가 매우 압축되어 있습니다. 누구의 손인지, 손이 보좌 위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손을 들어 올린다는 동사나 맹세한다는 동사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손을 여호와야훼의 보좌를 향해 들어 올린다는 읽기의 경우 앞서 모세가 손을 들었던 장면과 연결됩니다. 맹세나 전쟁 선언으로 이해하는 읽기의 경우 누가 손을 얹는지, 어떤 맹세가 암시되는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집니다. 「깃발」로 읽는 경우 바로 앞의 「여호와야훼 닛시」라는 이름과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다만 이는 전해진 히브리어 본문의 낱말을 달리 읽거나 수정해야 하는 해석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임재
출애굽기 17장은 여호와야훼의 임재가 어려움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모든 어려움에 반드시 즉각적인 해결이나 승리가 주어진다는 보편적인 약속을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홀로 언덕 위에 서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끝날 때까지 그는 혼자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앉을 돌이 필요했고, 양쪽에서 손을 붙들어 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 아래에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가 끝난 뒤 모세는 제단을 세웠습니다. 그곳에 자신의 이름도, 여호수아의 이름도 새기지 않았습니다.
그 제단에 붙인 이름은 「여호와야훼 닛시」였습니다.
지친 손을 함께 받쳐야 했던 그날, 이스라엘이 바라보아야 할 깃발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였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