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5–18장 · 바다를 건넌 뒤 광야

지도자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사람입니다. 그는 파라오 앞에 섰고, 바다를 건넜으며,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거나 서로 다툼이 생기면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8장에서는 바로 그 모세에게 누군가가 찾아와 말합니다.

「네가 하는 일이 좋지 않다.」

뜻밖에도 이 말을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미디안의 제사장이며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입니다.

이 장의 처음과 끝에는 특별한 반복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드로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습니다. 마지막에는 모세가 이드로의 말을 듣습니다. 그 사이에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들은 내용에 응답하여 행동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을 듣는 사람과, 그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를 위해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는 사람이 한 장 안에 마주 서 있습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1018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의 소식이 이스라엘 밖으로 전해지다

출애굽기 18:1 본문 →

미디안의 제사장이며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는 하나님이 모세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한 모든 일, 곧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일을 들었다.출애굽기 18:1 · 본디새김

출애굽기 18장은 「들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드로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바다를 건너는 사건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겪은 위기를 직접 경험하지도 않았습니다.

본문은 이드로를 두 가지 신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는 모세의 장인이면서 미디안의 제사장입니다. 모세의 가족이라는 점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가까운 사람이지만, 종족과 종교적 배경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바깥에 있는 사람입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과 친족 관계를 지닌 집단으로 성경에 등장하지만(창세기 25:2), 이스라엘 자체는 아닙니다. 이드로가 어떤 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는지, 그의 제사장 직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였는지는 이 절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의 노래에서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이 여호와야훼의 일을 듣고 두려워할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15:14–16). 이제 실제로 이스라엘 밖의 한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일을 듣고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이드로는 기뻐하고 여호와야훼를 찬양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의 소식이지만, 이드로에게는 하나님이 행하신 선한 일을 알게 되는 소식입니다.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은 이스라엘만 알고 있는 비밀로 남지 않습니다.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도 그 일을 듣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드로는 그 소식을 들은 채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옵니다.

두 아들의 이름에 담긴 모세의 지난 삶

출애굽기 18:2–7 본문 →

이드로가 데리고 온 사람들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돌려보내진 뒤에 그녀를 데려왔다. 그녀의 두 아들도 데려왔다. 한 아들의 이름은 게르솜이었다. 모세가 「나는 낯선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왔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8:2–3 · 본디새김

출애굽기 4:20에서는 모세가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향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18장에 이르면 십보라가 어느 시점엔가 돌려보내졌고, 이제 이드로가 그녀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세에게 왔다고 합니다.

모세가 왜 십보라를 돌려보냈는지, 정확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이혼이나 부부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가족의 재회를 설명하면서 두 아들의 이름에 담긴 사연을 따로 소개합니다.

그는 본래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지만, 동족을 괴롭히는 이집트 사람을 죽인 뒤 파라오를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출애굽기 2:11–15). 미디안에서 그는 낯선 땅에 머무는 사람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에는 그 시절의 소외와 불안정한 삶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의 이름은 다른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아들의 이름은 엘리에셀이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내 도움이 되셨고, 파라오의 칼에서 나를 구해 내셨다.」라고 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8:4 · 본디새김

첫째 아들의 이름이 낯선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경험을 기억한다면, 둘째의 이름은 그 가운데 하나님이 모세를 도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는 자기 땅을 떠난 사람이었지만 버려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파라오의 칼을 피해 달아나야 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도 이집트를 떠났으며, 아직 자기 땅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파라오의 손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모세가 자기 가족의 이름에 담아 기억하던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제는 이스라엘 전체가 경험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드로는 가족을 데리고 모세가 진을 치고 있는 하나님의 산으로 찾아옵니다(18:5).

모세는 장인을 맞으러 나가 그에게 절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천막으로 들어갔다.출애굽기 18:7 · 본디새김

본문은 모세가 자신의 높은 지위 때문에 가족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제 그 천막 안에서 중요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9:1–2에서는 이스라엘이 시나이 광야에 도착하는 일이 뒤이어 서술됩니다. 그런데 18:5에서는 이미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진을 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1:6–18에서는 지도자들을 세우는 사건이 호렙에서의 체류 및 그곳을 떠나는 명령과 관련된 문맥에 나타납니다. 따라서 출애굽기 18장의 모든 사건이 반드시 17장 직후이면서 19장의 시나이 도착 이전에 일어났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가 실제 시간순서보다는 이드로의 방문과 공동체의 재판 질서를 한데 묶어 이 자리에 배치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출애굽기 구성에서 18장이 지닌 역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이 본격적으로 서술되기 직전에, 그 백성이 어떻게 서로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지가 먼저 등장합니다.

모세의 이야기를 들은 이방 제사장이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다

출애굽기 18:8–12 본문 →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 때문에 파라오와 이집트에 한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에게 닥친 모든 고난과,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구해 낸 일을 장인에게 이야기했다.출애굽기 18:8 · 본디새김

이드로는 이미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할 때 고난은 감추어야 할 불명예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 여호와야훼가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드로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좋은 일, 곧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손에서 구해 낸 일을 기뻐했다.출애굽기 18:9 · 본디새김

이드로는 이스라엘에게 어려움이 없었다고 생각해서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구해 내셨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합니다.

이드로가 말했다. 「너희를 이집트의 손과 파라오의 손에서 구해 내신 여호와야훼는 찬양받으실 분이다. 그분은 백성을 이집트의 손아래에서 구해 내셨다.」출애굽기 18:10 · 본디새김

그는 모세가 이룬 업적을 칭송하지 않습니다. 모세에게 위대한 지도자라는 찬사를 보내는 대신, 모세와 이스라엘을 구해 내신 여호와야훼를 찬양합니다.

「이제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굴었던 바로 그 일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모든 신들보다 크시다는 것을 알았다.」출애굽기 18:11 · 본디새김

「이제 나는 알았다.」

이 표현에는 변화를 경험한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굴었던 바로 그 일에서 여호와야훼의 위대함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백성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그 강한 나라의 권력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하나님을 위한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을 가져왔다.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하나님 앞에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음식을 먹으러 왔다.출애굽기 18:12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사적인 가족 식사가 아닙니다. 아론과 장로들이 참여하고, 여호와야훼의 구원을 찬양한 뒤 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이드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일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이드로가 모세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8:11의 히브리어 문장은 압축되어 있어 이집트의 교만과 여호와야훼의 우월함이 문법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드로가 이집트의 교만한 행동과 관련하여 여호와야훼의 위대함을 인식했다고 말하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 고백을 이드로가 미디안의 종교를 완전히 버리고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었다는 선언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의 종교적 삶이 그 이후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드로가 제물을 가져왔다고 말하지만, 그 제물을 바치는 구체적인 절차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드로가 제사를 직접 집례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 있는 백성

출애굽기 18:13–16 본문 →

다음 날 모세는 평소처럼 백성을 재판합니다.

이튿날 모세는 백성을 재판하려고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었다.출애굽기 18:13 · 본디새김

고대 사회에서 재판자가 앉고 재판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 자체가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온 백성의 사건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의 장인은 모세가 백성에게 하는 모든 일을 보고 말했다. 「네가 백성에게 하고 있는 이 일은 무엇이냐? 어째서 너 혼자 앉아 있고 온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출애굽기 18:14 · 본디새김

즉, 이드로는 모세의 수고만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 수고 때문에 백성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함께 봅니다.

모세가 장인에게 말했다. 「백성이 하나님께 여쭈려고 제게 오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이 제게 옵니다. 그러면 저는 한 사람과 그 상대 사이를 재판하고, 하나님의 규정들과 그분의 가르침들을 알려 줍니다.」출애굽기 18:15–16 · 본디새김

이 설명은 그가 왜 모든 사건을 직접 맡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할 일이기에 그 말씀을 듣는 자신에게 사건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드로는 모세의 설명을 듣고도 현재의 방식이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는 일의 목적은 정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루는 방식까지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5:25와 16:4, 23–30에서도 이미 하나님이 백성에게 규례를 주시고 그에 따라 살아가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에도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를 듣고 있었습니다. 다만 18장이 실제 사건의 엄격한 시간순서에 따라 놓여 있는지에는 앞서 살핀 것처럼 여지가 있습니다.

「네가 하는 일이 좋지 않다」 — 좋은 목적과 잘못된 방식

출애굽기 18:17–18 본문 →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하는 일이 좋지 않다.」출애굽기 18:17 · 본디새김

이드로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모세 혼자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너도 너와 함께 있는 이 백성도 반드시 지쳐 버릴 것이다. 이 일이 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너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8:18 · 본디새김

판결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공동체에 필요한 재판이 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부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앞 장에서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아론과 훌이 그 손을 받쳐 주었습니다(17:12). 이번에는 그의 손이 아니라 그에게 맡겨진 일이 무겁다고 합니다.

모세는 앞선 전투에서 혼자 손을 들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공동체의 재판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것이 언제나 더 충성스럽거나 책임감 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렇게 하는 방식 자체가 공동체를 지치게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11:14–17에서는 모세가 백성 전체의 부담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하자, 여호와야훼가 장로 일흔 명을 세워 모세와 함께 백성을 짊어지게 하십니다. 이는 출애굽기 18장과 비슷한 문제를 다루지만, 같은 사건은 아닙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드로의 조언을 따라 재판의 책임을 나누며, 민수기에서는 백성을 이끄는 짐을 함께 질 장로들이 세워집니다. 두 본문은 공동체를 이끄는 책임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어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 줍니다.

모세가 내려놓아야 할 일과 계속 맡아야 할 일

출애굽기 18:19–20 본문 →

이드로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내 말을 들어라. 내가 네게 조언하겠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너는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고, 네가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가라.」출애굽기 18:19 · 본디새김

이드로가 제안하는 것은 모세의 권한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모세가 맡은 고유한 역할을 분명하게 하는 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말씀을 전달하고 중요한 사건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모든 개인 간의 작은 분쟁까지 직접 재판하다 보면, 자신의 중요한 역할에 충분히 집중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들에게 규정들과 가르침들을 일러 주고, 그들이 걸어갈 길과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어라.」출애굽기 18:20 · 본디새김

하나님의 가르침은 단지 분쟁이 발생했을 때 옳고 그름을 가려 주는 판결 기준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재판은 문제가 발생한 뒤 그 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나 가르침은 사람들이 애초에 어떤 기준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는 단순히 모세의 일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다른 지도자들이 각각 무엇을 맡아야 하는지 구분하고 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하고, 재판을 맡을 사람들은 그 뜻에 따라 사건을 판단해야 하며, 모세는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역할을 지속해야 합니다.

이렇게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능력만으로는 재판관이 될 수 없다

출애굽기 18:21–22 본문 →

이드로는 재판을 맡을 사람을 세우라고 하면서 네 가지 자질을 제시합니다.

「너는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고 부당한 이익을 미워하는 남자들을 살펴 뽑아라. 그들을 백성 위에 세워 천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 백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 쉰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 열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로 삼아라.」출애굽기 18:21 · 본디새김

첫째는 능력입니다.

재판을 맡으려면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한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판을 맡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그 권한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으려면 자신보다 더 높은 기준을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는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재판관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결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을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넷째는 부당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드로는 단순히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당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을 요구합니다. 재판관이 부정한 이익을 멀리하는 정도를 넘어, 그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뜻입니다.

능력이 있어도 진실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종교적 경건을 말해도 부당한 이익을 탐한다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드로가 제시하는 기준은 기술적 능력과 도덕적 성품을 함께 요구합니다.

이어서 그는 그들을 천 명, 백 명, 쉰 명, 열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로 세우라고 말합니다. 이 숫자가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정확히 해당 인원수에 따라 나누었다는 뜻인지, 여러 규모의 공동체를 맡는 직책을 나타내는 것인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재판의 책임을 여러 수준으로 나누어 맡기려는 구조입니다.

「그들이 언제든지 백성을 재판하게 하여라. 큰 사건은 모두 네게 가져오고, 작은 사건은 모두 그들이 재판하게 하여라. 네 위에 놓인 짐을 가볍게 하여라. 그들이 너와 함께 질 것이다.」출애굽기 18:22 · 본디새김

백성은 더 이상 모든 사건을 들고 모세 한 사람에게만 몰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재판을 맡은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 있으므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집니다.

또한 큰 사건과 작은 사건을 구별하는 방식은 모든 판단이 동일한 수준의 책임과 어려움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작은 사건을 맡을 사람에게는 실제로 판단할 권한을 줍니다. 큰 사건은 모세가 맡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업무량을 나누는 것보다 더 깊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모세가 다른 사람의 판단을 신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을 세워 놓아도 모든 결정을 다시 모세가 직접 확인하고 고쳐야 한다면, 그 구조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드로의 조언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길 줄 아는 지도력도 요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6:18–20에서는 각 성읍에 재판관들을 세워 백성을 공정하게 재판하도록 명령하며, 재판을 왜곡하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이드로가 제시한 재판관의 자질이 이스라엘의 후대 율법과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목표는 모세의 편안함이 아니라 백성의 평안이다

출애굽기 18:23 본문 →

이드로는 조언의 마지막에 그 결과를 설명합니다.

「네가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 네게 그렇게 명령하시면, 너는 견뎌 낼 수 있고 이 모든 백성도 저마다 자기 자리로 평안히 갈 것이다.」출애굽기 18:23 · 본디새김

먼저 이드로는 자기 조언을 하나님의 확정적인 명령처럼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그렇게 명령하시면」이라는 조건을 붙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로 문제를 살피고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명령하시는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직접 이드로에게 이 제도를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24절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 조언을 승인하셨다는 별도의 장면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드로의 말이 곧바로 하나님의 직접 계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모세가 그 조언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새로운 재판 체계를 세웠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공동체 질서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뿐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살피고 판단한 사람의 지혜를 통해서도 형성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장면에서는 재판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판단받고, 공동체 안에서 평안히 돌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재판은 지도자가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 가운데 발생한 갈등을 판단하고, 사람들이 다시 평안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좋은 지도 체계는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체계가 아니라, 공동체 사람들이 공정한 판단을 받고 평안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체계입니다.

모세가 장인의 말을 듣다

출애굽기 18:24–27 본문 →

모세는 장인의 말을 듣고 그가 말한 모든 것을 행했다.출애굽기 18:24 · 본디새김

그는 이스라엘을 이끌어 온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을 전해 주시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치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모든 것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밖에서 온 사람의 관찰과 조언이 자신과 공동체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모세는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능력 있는 남자들을 뽑아 백성 위에 우두머리들로 세웠다. 천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 백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 쉰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 열 명을 맡는 우두머리들로 삼았다.출애굽기 18:25 · 본디새김

이 구절은 21절에서 이드로가 제안한 구조를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그것은 조언이 단순한 말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26절에서는 그들이 언제든지 백성을 재판하고, 어려운 사건만 모세에게 가져왔다고 기록합니다.

모세 한 사람에게 몰리던 일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졌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에게서 하나님의 율법을 배웠다는 주장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드로가 제안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모세가 맡고 있던 재판과 가르침의 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사건은 신명기 1:9–18에서도 다시 언급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수가 많아져 자신 혼자서는 그들의 부담과 다툼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또한 재판관들이 공정하게 판단하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강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출애굽기 18장이 지도자들을 세우는 과정과 이드로의 조언을 보여 준다면, 신명기 1장은 그 체계 안에서 어떤 재판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두 본문은 서술의 초점이 다르지만,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공정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로 평안히 돌아가도록

출애굽기 18:1–27 본문 →

그 변화가 지향하는 모습은 이드로의 마지막 조언에 담겨 있습니다. 「이 모든 백성도 저마다 자기 자리로 평안히 갈 것이다.」 이드로는 하나님의 구원 소식에 응답했고, 모세는 사람의 지혜로운 조언에 응답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들은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드로는 자기 땅으로 떠납니다.

그가 떠난 뒤에도 이스라엘에는 모세가 있고, 이제는 새롭게 세워진 여러 재판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온 백성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공동체 곳곳에서 사람들이 사건을 판단하고, 어려운 일만 모세에게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들려준 이방인의 지혜는, 한 사람이 모든 짐을 지던 공동체를 여러 사람이 책임을 함께 지는 공동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드로는 그 변화가 시작된 곳을 떠나 자기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