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9장

이 장의 자리 · 19–24장 · 시나이산의 언약

너희를 내게 데려왔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를 내게 데려왔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뜻밖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내려오시지만, 백성은 산에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산의 가장자리에 닿는 것조차 금지됩니다. 허락 없이 접근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가 거듭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에게 데려오셨는데, 왜 정작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막으십니까?

이 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 제사장들의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되도록 부름받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차이가 사라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919장 본문 읽기 →

이집트에서 시나이산까지 — 목적지에 도착하다

출애굽기 19:1–3 본문 →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바로 그날에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도착했다.출애굽기 19:1 · 본디새김

출애굽기는 여기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계속 이동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왔고, 바다를 건넜으며, 광야에서 물과 음식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한 산 앞에 진을 칩니다.

「셋째 달, 바로 그날」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어느 날짜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셋째 달의 첫날로 읽기도 하고, 이집트를 떠난 날에 대응하는 날짜로 읽기도 합니다. 본문이 그날의 정확한 일자를 명시하지 않으므로 한쪽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3:12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를 보내시면서, 그가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뒤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 약속이 실현되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산을 마주하고」 진을 쳤다고 말합니다(19:2). 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곧 하나님이 그곳에서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이동하는 백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백성이 됩니다.

그런데 먼저 산에 올라가는 사람은 모세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로 올라갔다. 여호와야훼가 산에서 그를 불러 말했다. 「야곱의 집안에 이렇게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라.」출애굽기 19:3 · 본디새김

이후 19장 전체에서 모세는 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반복합니다. 하나님께 올라가 말씀을 듣고, 백성에게 내려와 전하고, 백성의 응답을 하나님께 가져가며, 다시 내려와 그들을 준비시킵니다.

하나님과 백성은 이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직접 마주 서 있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사이를 오가며 말씀을 전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처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금지 명령이 아닙니다.

「너희를 내게 데려왔다」 — 출애굽의 목적

출애굽기 19:4 본문 →

「『너희는 내가 이집트에 한 일을 보았다. 나는 너희를 독수리들의 날개 위에 실어 날랐고, 너희를 내게 데려왔다.』」출애굽기 19:4 · 본디새김

이 말씀에는 세 가지 움직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직접 경험한 역사입니다. 여호와야훼는 파라오의 권력 아래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그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이미지입니다. 「독수리들의 날개 위에 실어 날랐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길을 개척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았음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은 땅에서 스스로 날아오를 수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실어 나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나면서 가나안 땅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땅은 조상들에게 약속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내가 너희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왔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내게 데려왔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는 단순히 어떤 지역이나 영토가 아닙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물론 약속의 땅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얻는 일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보다 앞서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이 순서는 출애굽기 6:7에서도 나타납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시나이산 앞에서 그 약속이 더욱 구체적인 관계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출애굽은 단지 어디에서 벗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 속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자신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그들이 어떤 백성이 되어야 하는지를 밝히십니다.

온 땅이 내 것인데, 왜 이스라엘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실까?

출애굽기 19:5–6 본문 →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자신에게 데려왔다고 말씀하신 뒤, 이제 그들이 어떤 백성이 될 것인지 밝히십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내 목소리를 참으로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될 것이다. 온 땅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9:5 · 본디새김

「그러니 이제」라는 말은 앞의 구원 사건과 뒤의 언약을 연결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언약을 지키도록 부름받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해 먼저 순종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은 백성에게 그 관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5절에는 분명히 조건이 있습니다.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듣고 그 말씀을 따르는 태도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보배로운 소유」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인 소유물 가운데서도 주인이 특별히 아끼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민족 가운데 하나님이 특별히 아끼시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라는 약속에 온 땅이 자신의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십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다스리시는 지역의 신이 아니십니다. 모든 민족과 온 땅이 그분의 권능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모든 민족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특별한 관계로 부르십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보배로운 소유가 된다는 말은 다른 민족이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한 민족을 특별히 구별하신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또 너희는 내게 제사장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말이다.」출애굽기 19:6 · 본디새김

「제사장들의 나라」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주요한 읽기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전체가 제사장적 성격을 지닌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며, 그분을 드러내는 특별한 역할을 맡는 공동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사장들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표현에 무게를 두는 읽기입니다. 이 경우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공동체라는 신분이 강조됩니다. 두 해석은 상당 부분 겹치지만, 첫 번째는 다른 민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행할 역할에, 두 번째는 이스라엘 전체의 거룩한 신분에 상대적으로 더 무게를 둡니다.

본문은 여기서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제사장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실제로 제사를 집례하게 된다는 뜻이나, 특정한 종교적 통치 체제를 갖춘다는 뜻으로 좁혀서는 안 됩니다.

거룩함은 여기서 단순히 도덕적으로 착하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구별되어 속한다는 의미가 중심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과 뜻에 걸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요구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거룩함의 출발점은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이나 도덕적 우월성이 아닙니다.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들은 한때 파라오의 노동력을 이루는 집단이었습니다. 이집트의 권력 아래에서 자신들의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의 보배로운 소유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더 이상 이집트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누구라고 부르시는가에 의해 규정됩니다.

이스라엘은 특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특별한 관계로 부르셨기 때문에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레위기 20:26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구별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출애굽기 19:5–6에서 선언된 관계가 이스라엘의 실제 삶과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한 신명기 7:6–8에서는 이스라엘이 보배로운 백성으로 선택된 이유가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사랑하시고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시작되는 특별한 관계가 이스라엘의 우월성이나 공로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 주는 본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의 베드로전서 2:9에서는 「제사장들의 나라」와 「거룩한 민족」이라는 출애굽기 19장의 언어가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에 적용됩니다. 이는 출애굽기 19장을 직접 인용하고 그 표현을 새로운 공동체에 적용한 후대의 정경적 읽기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9장 자체의 직접적인 대상은 시나이산 앞에 선 이스라엘이며,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언약 백성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이 본래의 중심입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 순종을 약속하다

출애굽기 19:7–9 본문 →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장로들을 부르고,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온 백성이 함께 대답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행하겠습니다.」 모세는 백성의 말을 여호와야훼에게 전했다.출애굽기 19:8 · 본디새김

모세는 장로들을 불러 말씀을 전달했지만, 응답은 온 백성의 응답으로 서술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모세 개인이나 몇몇 지도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이 관계에 참여합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십계명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세부적인 명령을 받게 될지 충분히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모두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과 언약의 관계에 관한 선언입니다. 백성은 그 말씀에 대해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보아라,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네게 오겠다. 내가 너와 말할 때 백성이 듣고, 너를 또한 영원히 믿게 하려는 것이다.」 모세는 백성의 말을 여호와야훼에게 알렸다.출애굽기 19:9 · 본디새김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백성에게 그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면, 그의 권위는 개인적인 주장에 머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의 임재는 모세 개인의 종교적 경험만이 아닙니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공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자신을 알리시려 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나타나시지는 않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그 임재를 가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제 그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모두 행하겠습니다」라는 응답을 무모하고 성급한 약속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반복하여 어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더욱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 자체가 백성의 응답을 거짓되거나 경솔한 것으로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아직 모든 계명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여호와야훼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공동체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왜 옷을 빨고 경계를 지켜야 할까?

출애굽기 19:10–15 본문 →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백성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별하여라. 그들은 자기 옷을 빨아야 한다.」출애굽기 19:10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는 백성이 셋째 날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겉모습을 단정하게 하라는 일반적인 예절 규정으로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이 행동을 백성을 성별하는 일과 연결합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일상적인 활동과 구별해야 합니다.

옷을 빠는 행동은 그 준비를 몸으로 드러내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머릿속의 생각이나 감정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실제 생활과 몸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15절에서는 「여자에게 가까이 가지 마라」는 명령도 나옵니다. 이 표현은 성관계를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관계 자체가 죄악이거나 본질적으로 더러운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명령은 셋째 날의 특별한 만남을 준비하는 일시적인 기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후대의 정결 규정에서도 성관계는 일정 기간 의식적 부정함을 가져올 수 있지만(레위기 15:18), 그것이 곧 도덕적 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특별한 만남을 위해 평소의 생활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준비만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너는 백성이 넘지 못하도록 산 둘레에 경계를 정하고 이렇게 말하여라. 『산에 올라가지도, 그 가장자리에 닿지도 않도록 조심하여라. 산에 닿는 자는 누구든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한다.』」출애굽기 19:12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는 셋째 날에 시나이산으로 내려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임재로 인해 산은 특별히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그 장소를 평범한 땅처럼 취급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3:5에서도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가 서 있는 땅이 거룩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비슷한 일이 한 사람의 경험을 넘어 이스라엘 전체의 경험이 됩니다.

이 경계는 단순히 백성을 거부하는 장벽으로만 기능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여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지켜야 할 질서이기도 합니다. 그 점은 뒤이어 하나님이 같은 경고를 반복하시는 장면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나팔이 울리면 산에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일까?

「『산에 닿은 자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거나 화살에 맞아 죽어야 한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 숫양 뿔나팔이 길게 울릴 때 그들은 산에 올라와도 된다.』」출애굽기 19:13 · 본디새김

바로 앞에서는 산에 올라가거나 닿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런데 나팔이 길게 울릴 때에는 올라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21–24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백성이 산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한 가지 읽기는 나팔 소리가 특정한 시점에 접근 금지가 해제되는 신호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산에 올라온다」는 표현을 산기슭 가까이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허락의 대상이 백성 전체인지, 특별히 부름받은 사람들인지를 구별하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가까이 나아가는 일은 인간이 자기 판단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와 부르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 날이 되자, 그들이 준비해 온 만남이 실제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나팔 소리가 접근 금지가 해제되는 신호라는 읽기의 경우 13절의 허락은 뒤에 이루어질 제한적인 접근이나 특정한 시점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17절에서는 모세가 백성을 하나님을 만나도록 진에서 데리고 나오고, 그들이 산기슭에 섭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나팔 신호가 백성이 산 앞에 모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만 히브리어 원문은 「그들이 산에 올라갈 것이다」라는 방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표현하므로, 이를 단순히 산기슭에 접근하는 것으로만 제한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본문은 나팔 신호의 정확한 시점과 허락받은 사람들의 범위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하나의 해석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온 백성이 떨고, 온 산이 떨다

출애굽기 19:16–19 본문 →

셋째 날 아침이 되자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쳤으며, 산 위에는 짙은 구름이 있었고, 뿔나팔 소리가 몹시 크게 울렸다. 진 안에 있던 온 백성이 떨었다.출애굽기 19:16 · 본디새김

눈으로는 번개와 구름을 봅니다. 귀로는 천둥과 뿔나팔 소리를 듣습니다. 몸으로는 떨림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스라엘에게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듣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감각으로 그 사건을 마주합니다.

모세는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그들을 진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들은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섰다.출애굽기 19:17 · 본디새김

하나님이 이렇게 두려운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도 모세는 백성을 그분에게서 멀리 도망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도록 데리고 나옵니다.

백성은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오시지만, 백성은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도망칠 수도, 마음대로 다가갈 수도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섭니다.

시나이산 전체에서 연기가 났다. 여호와야훼가 불 속에서 그 위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산의 연기는 가마의 연기처럼 솟아올랐고, 산 전체가 몹시 떨렸다.출애굽기 19:18 · 본디새김

16절에서는 「온 백성이 떨었다」고 말합니다. 18절에서는 「산 전체가 몹시 떨렸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두려움과 산의 진동이 같은 동사로 표현된 것입니다.

사람은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자신의 작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거대한 산마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떱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산이 무섭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산조차 떨게 하시는 분이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뿔나팔 소리는 점점 더 커져 몹시 크게 울렸다. 모세가 말할 때 하나님은 소리로 그에게 대답했다.출애굽기 19:19 · 본디새김

하나님의 임재는 단지 인간을 압도하는 현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온 산을 뒤덮은 구름과 불, 천둥과 나팔 소리는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놀라운 현상은 말씀을 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의 「소리」를 뜻하는 콜(⁨קוֹל⁩)은 문맥에 따라 목소리나 천둥 같은 소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19절에서 하나님이 어떤 형태의 소리로 대답하셨는지는 정확히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장은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현상을 묘사하지만, 백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신명기 4:11–12는 이 사건을 돌아보면서 이스라엘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소리는 들었지만 형상은 보지 못했다고 강조합니다. 신명기 4:10–14는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모으시고 말씀을 듣게 하신 일을 회고합니다. 그 목적은 백성이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그 자녀들에게도 가르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셨는데, 왜 모세를 다시 내려보내실까?

출애굽기 19:20–24 본문 →

여호와야훼가 시나이산 위, 산꼭대기로 내려왔다. 여호와야훼가 모세를 산꼭대기로 부르자 모세가 올라갔다.출애굽기 19:20 · 본디새김

그런데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자마자 하나님은 그를 다시 내려보내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내려가 백성에게 경고하여라. 그들이 여호와야훼를 보려고 밀고 들어오다가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쓰러져 죽지 않게 하여라.」출애굽기 19:21 · 본디새김

이미 산 둘레에 경계를 정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모세도 그 명령을 백성에게 전달했고, 그들은 셋째 날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또 경고하십니까?

처음 경계를 정하라고 하셨을 때는 아직 하나님이 산에 내려오시기 전이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여호와야훼가 실제로 산에 내려오셨습니다. 온 산에 연기가 솟고, 뿔나팔 소리가 울리며, 하나님이 모세에게 응답하십니다. 백성이 그 광경을 보고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위험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백성이 듣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19:9). 그러나 백성이 경계를 넘어 그분을 보려고 밀고 들어오는 행동은 금지하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시는 일은 그분이 정하신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제사장들도 성별해야 한다

「여호와야훼에게 가까이 오는 제사장들도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덮치지 않도록 자신을 성별해야 한다.」출애굽기 19:22 · 본디새김

하나님께 가까이 오는 특별한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도 거룩함을 소홀히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까이 오는 역할을 맡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성별해야 합니다.

6절은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민족으로 부름받았음을 말합니다. 22절은 그 공동체 안에서도 하나님께 접근하는 역할과 범위에 구별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제사장들의 나라라는 사실이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거룩한 부르심과 공동체 안의 구별된 역할은 함께 존재합니다.

모세의 대답과 하나님의 재차 명령

모세가 여호와야훼에게 말했다. 「백성은 시나이산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희에게 『산에 경계를 정하고 그 산을 성별하여라.』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19:23 · 본디새김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도 다시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말했다. 「내려가라. 그리고 너와 아론이 함께 올라오너라. 제사장들과 백성은 여호와야훼에게로 올라오려고 밀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덮칠 것이다.」출애굽기 19:24 · 본디새김

하나님은 경계가 이미 정해졌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백성이 실제로 그 경계를 지키도록 다시 경고하게 하십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아론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습니다. 반면 다른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그 순간 허락된 접근의 범위가 다릅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각자가 따라야 할 질서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마음대로 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아직 출애굽기 28–29장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과정이 나오기 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미 「제사장들」이라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시점에 이스라엘 가운데 종교적 의무를 맡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뒤에 제도화될 제사장 직무를 염두에 둔 서술이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이들의 신분과 임명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확히 누구였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 절에서 모세는 다시 내려온다

출애굽기 19:25 본문 →

모세는 백성에게 내려가 그들에게 말했다.출애굽기 19:25 · 본디새김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 말했다고 하는데, 정작 무엇을 말했는지는 이 절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바로 다음 장인 출애굽기 20장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19장의 마지막 문장은 독자를 그 말씀을 듣게 될 자리까지 데려다 놓습니다.

이스라엘은 단지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전달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자신에게 데려오시고, 보배로운 소유로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주어질 율법은 단순한 사회 규칙의 목록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질 언약적 관계의 내용입니다.

산 아래에 선 백성

출애굽기 19:1–25 본문 →

출애굽기 19장을 읽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산 아래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보배로운 소유로 삼으시려 하십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하나님을 백성의 소유로 삼는 관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자신에게 데려오신 것은 그들을 멀리 내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산에서 다시 내려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산기슭에 서 있습니다. 산 위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과 불이 있고, 그들은 곧 말씀하실 분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되려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