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19–24장 · 시나이산의 언약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시다

하나님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행동은 더욱 뜻밖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시나이산에 올라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두려움에 쓰러지거나 황급히 산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 만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조금도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가까이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 가까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별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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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라는 초대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명령

출애굽기 24:1–2 본문 →

본문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 가운데 일흔 명과 함께 여호와야훼에게 올라와라. 너희는 멀리서 엎드려 절하여라.」출애굽기 24:1 · 본디새김

그런데 곧바로 제한이 주어집니다.

「모세만 홀로 여호와야훼에게 가까이 나아와야 한다. 그들은 가까이 나아와서는 안 되며, 백성은 그와 함께 올라와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4:2 · 본디새김

올라오라는 말씀과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씀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백성은 산 아래에 머뭅니다. 아론과 장로들은 산에 올라가지만, 모세처럼 가까이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모세만 홀로 특별한 접근을 허락받습니다.

이 구분은 출애굽기 19장의 시나이산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백성에게 산의 경계를 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19:12–13). 하나님이 내려오신 산은 아무나 자기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4장에서는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전에는 접근을 제한하는 말씀이 두드러졌다면, 이제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여전히 경계는 있지만, 그 경계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남이 가능해집니다.

이 장은 그 초대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곧장 산 위의 만남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먼저 산 아래에서 일어난 일로 시선을 돌립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가기 전에, 이스라엘과 여호와야훼 사이의 언약이 분명하게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무엇에 동의했는가

출애굽기 24:3 본문 →

모세는 백성에게 돌아와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전합니다.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에게 여호와야훼가 한 모든 말과 모든 법규를 전했다.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행하겠습니다.」출애굽기 24:3 · 본디새김

그 명령들은 단순히 모세가 후대에 전해 줄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으면서 받아들이는 삶의 규범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이 대답했다는 사실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한 모든 말을 기록했다.」 말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은 공동체가 자신들의 약속을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이후 7절에서 이 기록은 ‘언약서’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언약서에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의 법규가 포함되었는지를 이 장만으로 모두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 주어진 여러 법규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는 문서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언약의 내용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듣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말로 동의하는 것과 실제로 언약을 맺는 것은 같은 장면이 아닙니다. 이제 모세는 산 아래에 제단을 세웁니다.

제단 하나와 돌기둥 열둘

출애굽기 24:4–5 본문 →

모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한 모든 말을 기록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돌기둥 열둘을 세웠다.출애굽기 24:4 · 본디새김

그런데 제단은 하나입니다.

열두 지파는 서로 다른 역사와 가계를 지닌 집단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언약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각각의 지파와 별개의 언약을 열두 번 맺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열두 지파가 함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응답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모인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 앞에서 자신들이 하나의 백성임을 확인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9:5–6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와 거룩한 민족으로 삼겠다고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열두 돌기둥은 그 부르심이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실제 공동체 전체에 관계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눈에 보이게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젊은이들을 보냈다. 그들은 번제들을 바치고, 수소들을 잡아 여호와야훼에게 친교 제물로 바쳤다.출애굽기 24:5 · 본디새김

번제는 제물을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며, 친교 제물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드리는 제사로서 제물의 일부를 먹는 식사와도 연결됩니다. 레위기 3장과 7장에서 이런 제사의 구체적인 규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임명되고 그 직무를 위해 구별되는 절차는 뒤에 자세히 나타납니다(출애굽기 28–29장). 지금은 그 제도적 준비가 아직 서술되기 전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이후 제사장 제도의 모든 규정에 그대로 맞추려 하기보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는 특별한 상황으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제 제사에서 나온 피가 등장합니다.

여기서부터 언약은 말과 기록을 넘어, 백성의 몸에까지 관계되는 사건이 됩니다.

제단에 뿌린 피와 백성에게 뿌린 피

출애굽기 24:6–8 본문 →

모세는 제물의 피를 둘로 나눕니다.

절반은 대야에 담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립니다. 그런데 곧바로 남은 피를 백성에게 뿌리지 않습니다. 먼저 언약서를 읽습니다.

그는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이 듣도록 읽었다. 그들이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순종하겠습니다.」출애굽기 24:7 · 본디새김

피를 뿌리는 의식과 백성의 응답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이 놓여 있습니다. 백성은 자신들이 무엇을 약속하는지 들어야 합니다.

왜 백성은 두 번 대답하는가

3절에서 백성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7절에서 다시 대답합니다. 첫 번째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과 법규를 전한 뒤의 응답입니다. 두 번째는 기록된 언약서를 낭독한 뒤의 응답입니다.

두 번의 대답은 거의 같지만, 두 번째에는 ‘순종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덧붙습니다. ‘행하고 순종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은 듣는 일과 행하는 일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사람이 강하게 결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결심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이 장 자체는 아직 그 약속이 지켜질지 보여 주지 않습니다. 독자는 백성의 결의를 들었지만, 그들의 미래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왜 피를 둘로 나누었을까

이제 모세는 대야에 담아 두었던 피를 가져옵니다.

모세는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고 말했다. 「보십시오.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이 모든 말씀에 따라 여러분과 맺으신 언약의 피입니다.」출애굽기 24:8 · 본디새김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이고, 백성은 언약의 상대방입니다. 따라서 피를 양쪽에 뿌리는 행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의식적으로 확증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레위기 17:11은 생명이 피에 있다고 설명하면서 피가 속죄에 사용되는 이유를 밝힙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4:8이 직접 밝히는 의미는 ‘언약의 피’입니다. 따라서 이 의식을 곧바로 개인의 죄를 씻는 정결 의식으로만 이해하거나, 모든 죄가 이 순간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과 연결된 피를 통해 언약이 엄숙하게 확증됩니다.

이제 백성은 언약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그 언약의 피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앞부분에서 예고된 산 위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행하고 순종하겠습니다’를 글자 그대로 옮기면 ‘우리가 행하고 듣겠습니다’에 가깝습니다. 간혹 이 표현을 두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이해하기도 전에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따라가면 그런 설명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모세는 이미 3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7절에서는 언약서까지 읽었습니다. 백성이 아무것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순종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생각 없는 복종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실제 행동으로 따르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입니다. 이 장의 언약의 피는 이후 성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예레미야 31:31–34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다 집안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언약은 시나이산에서 맺었던 언약과 구별되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기록하겠다는 약속을 포함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자신의 피를 언약과 연결하여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26:28; 마가복음 14:24). 특히 마가복음 14:24의 언약의 피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24:8과 직접적인 언어적 연결을 가집니다. 히브리서 9:18–22도 첫 언약을 세울 때 피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회고하며 출애굽기 24장의 사건을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후대의 해석을 출애굽기 24장의 본래 장면에 모두 되돌려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이 장에서 피는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음을 확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다

출애굽기 24:9–10 본문 →

모세와 아론,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일흔 명의 장로들이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았다. 그의 발 아래에는 사피르 벽돌로 만든 바닥 같은 것이 있었고, 맑기는 하늘 그 자체와 같았다.출애굽기 24:10 · 본디새김

이전에는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거리를 두어야 했습니다. 이제 언약을 맺은 뒤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보는 경험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확히 무엇을 보았을까요?

본문은 의외로 하나님의 모습에 관해 거의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발 아래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묘사합니다.

「사피르 벽돌로 만든 바닥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슷한 모습을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하늘의 맑음에 관한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본 것을 일상에서 알고 있는 하늘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왜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발 아래를 묘사할까

하나님을 보았다면 왜 하나님의 모습 자체를 설명하지 않습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묘사의 초점이 하나님의 발 아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지만, 하나님이 어떤 얼굴을 하고 계셨는지, 어떤 옷을 입으셨는지, 신체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경험을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인간이 완전히 파악하고 묘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 서술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지만, 자신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내어 주지는 않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피르(⁨סַפִּיר⁩)’는 히브리어 사피르를 옮긴 말입니다. 고대의 푸른 보석을 가리키지만, 오늘날의 사파이어인지 청금석인지 완전히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보석 가운데 어느 것으로 이해하든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빛나는 바닥의 아름다움과 맑음입니다. 출애굽기 33:20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람이 자신을 보고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4:12, 15에서는 이스라엘이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4장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두 번이나 명시합니다. 이 본문들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조화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가지 가능한 이해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경험에도 서로 다른 방식과 범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4장의 지도자들이 본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현현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본질이나 모습을 완전히 파악했다는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의 각 본문이 하나님의 임재를 서로 다른 강조점에서 묘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 자체는 이런 문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먹고 마셨다

출애굽기 24:11 본문 →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지도자들을 해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먹고 마셨다.출애굽기 24:11 · 본디새김

앞서 시나이산에서 하나님께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위험한 것으로 경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인간은 그분 앞에 자기 뜻대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허락된 만남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해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특별히 기록될 만큼, 그 만남은 가볍지 않은 사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본 뒤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앞에서 일상적인 생명의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난 뒤 왜 먹고 마셨을까

5절에서는 친교 제물이 바쳐졌습니다. 친교 제사는 제물의 일부를 먹는 식사와 연결될 수 있는 제사입니다. 따라서 11절에서 지도자들이 먹고 마신 일을 언약을 기념하는 식사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인간에게 가장 평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평범한 행동이 시나이산 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운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분이 허락하신 자리에서는 사람이 그 앞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일은 반드시 인간의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그분 앞에서 생명을 누리는 만남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언약에 순종할 책임을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수행하는 일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 앞에서 사람이 먹고 마실 수 있는 만남까지 포함합니다.

하늘처럼 맑은 바닥이 펼쳐진 곳에서 사람들이 먹고 마십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보았지만, 모세에게는 아직 더 올라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신의 손을 뻗지 않으셨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손을 뻗는다는 말은 해를 가하거나 심판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왜 그들을 해치지 않으셨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앞서 바친 수소의 고기를 먹었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음식의 종류나 식사가 이루어진 구체적인 방식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언약의 식사로 읽을 수는 있지만, 제사의 모든 절차를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다고 쓰여 있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기록하고, 하나님도 기록하신다

출애굽기 24:12–14 본문 →

하나님은 다시 모세를 부르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산으로 내게 올라와 거기에 머물러라. 돌판들과, 내가 백성을 가르치려고 기록한 가르침과 명령을 네게 주겠다.」출애굽기 24:12 · 본디새김

앞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하신 모든 말씀을 기록했습니다(24:4).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자신이 기록하신 것을 모세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기록한 말씀과 하나님이 기록하신 것이 한 장 안에 함께 등장합니다.

모세가 기록한 언약서는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돌판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명령이 그분의 권위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 줍니다.

돌판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가

12절의 문장은 문법적으로 약간 복잡합니다. ‘돌판들’과 ‘가르침’과 ‘명령’이 나란히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서로 구별되는 선물들로 읽을 수도 있고, 가르침과 명령이 돌판에 기록된 내용을 설명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이 관계를 문법적으로 완전히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1:18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증언의 돌판 두 개를 주셨으며, 그 돌판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4:28과 신명기 10:4는 돌판의 기록을 십계명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24:12의 돌판을 하나님이 직접 기록하신 언약의 핵심적인 말씀을 담은 돌판으로 이해할 충분한 문맥적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가르침’과 ‘명령’이 돌판과 정확히 어떤 문법적 관계에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습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말은 「백성을 가르치려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도자 개인의 특별한 체험에 머물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배우고 따라야 할 가르침으로 주어집니다.

모세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모세와 그를 섬기던 여호수아가 일어났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다.출애굽기 24:13 · 본디새김

여호수아는 이미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등장했던 인물입니다. 13절은 두 사람이 함께 움직였음을 보여 주지만, 18절에서는 모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고만 기록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산의 어느 지점까지 동행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모세는 장로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우리를 기다리십시오. 보십시오. 아론과 훌이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소송할 일이 있는 사람은 그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출애굽기 24:14 · 본디새김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상은 계속됩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여전히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판단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간다고 해서 공동체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훌은 출애굽기 17:10–12에서 아론과 함께 모세의 팔을 받쳐 주었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모세가 자리를 비운 동안 공동체의 문제를 처리할 사람으로 언급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지만, 공동체의 모든 문제가 오직 자신 한 사람을 통해서만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없는 동안 필요한 일을 맡길 사람을 세워 둡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는 긴장도 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행하고 순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중재자인 모세가 한동안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납니다.

그들은 모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엿새 동안 아무 말씀이 없었다

출애굽기 24:15–16 본문 →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자 구름이 산을 덮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시나이산 위에 머물렀고, 구름이 엿새 동안 그 산을 덮었다. 일곱째 날에 여호와야훼가 구름 속에서 모세를 불렀다.출애굽기 24:16 · 본디새김

왜 엿새가 지난 뒤 일곱째 날에 부르셨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독자에게 여섯과 일곱이라는 배열은 낯설지 않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여섯 날 동안 창조가 이루어지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쉬십니다. 출애굽기 20:8–11에서도 안식일 명령은 이 창조의 시간 구조와 연결됩니다. 여기서도 엿새가 지난 뒤 일곱째 날에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반복을 통해 창조와 안식의 시간 구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이 일곱째 날을 안식일이라고 명시하거나, 모세가 엿새 동안 특정한 정결 의식을 행했다고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머무르지만, 모세는 기다린다

출애굽기 25:8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소를 만들라고 명령하시며, 자신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사용되는 ‘거하다’도 24:16의 ‘머물렀다(⁨שָׁכַן⁩)’와 같은 동사입니다. 이 동사에서 이스라엘의 성막을 가리키는 말도 나옵니다.

24장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시나이산 위에 머뭅니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머무실 장소를 마련하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이 산 위에 머무는 동안 모세는 엿새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곳에 계신다는 사실과, 모세가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올라왔지만, 그 부르심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점까지 자기 뜻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백성에게는 집어삼키는 불, 모세에게는 들어가야 할 구름

출애굽기 24:17–18 본문 →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여호와야훼의 영광은 산꼭대기에서 집어삼키는 불처럼 보였다.출애굽기 24:17 · 본디새김

여기서 시점이 바뀝니다.

앞에서는 모세가 산 위에서 경험하는 일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산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엇을 보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19:18에서 여호와야훼가 불 가운데 시나이산에 내려오셨다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신명기 4:24에서는 여호와야훼를 집어삼키는 불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불은 단순히 따뜻한 빛을 뜻하지 않습니다. 강렬하고 두려우며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모세가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 산으로 올라갔다. 모세는 산에서 사십 일과 사십 밤을 지냈다.출애굽기 24:18 · 본디새김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면서도 가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구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산 아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같은 산을 바라보면서도 사람들의 경험은 서로 다릅니다. 백성은 불처럼 보이는 영광을 봅니다.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두 경험 모두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됩니다.

사십 일과 사십 밤

본문은 모세가 상당한 기간 산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그는 단지 잠깐 올라갔다가 하나님의 말씀 몇 마디를 듣고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산에 머뭅니다.

백성에게는 기록된 언약의 말씀이 남아 있고, 아론과 훌이 공동체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보이지 않습니다. 산 위에는 구름과 불처럼 보이는 영광만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처음 맞닥뜨리는 중요한 기다림의 시간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기간은 이후 출애굽기 34:28과 신명기 9:9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사십이라는 수는 성경에서 긴 기간의 시험이나 준비, 특별한 사건과 연결되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십’을 단순히 상징적인 숫자라고 단정하여 실제 시간에 대한 서술을 지워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간 사람

출애굽기 24:1–18 본문 →

그분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허락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을 보는 경험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장에서는 두 가지가 같은 언약 관계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집니다.

산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모세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산꼭대기를 덮은 구름과, 집어삼키는 불처럼 보이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입니다.

그 광경 속으로 모세가 들어갑니다.

조금 전까지 모세는 백성 앞에 서서 언약서를 읽어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백성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가까이 부르셨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도 산 위에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머물러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은 모세가 구름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가 무엇을 들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멈춥니다.

산 아래에서는 언약을 맺은 백성이 기다리고, 산 위에서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 구름 속에 머뭅니다.

그 사이에 시나이산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 위에는, 사람들에게는 집어삼키는 불처럼 보이지만 모세에게는 들어오라는 부르심이 들려온,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머물러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