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25장
이 장의 자리 · 25–40장 · 성막과 제사장
하나님이 머무실 곳
이스라엘은 광야에 있습니다. 아직 자기 땅도 없고, 돌로 지은 성전도 없습니다. 이동할 때마다 장막을 거두고 다시 세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에게 집을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이 만든 공간에 머무르겠다고 하십니다. 아무 건물도 없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고, 바다를 가르셨으며, 시나이산에 영광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 이제 금과 나무와 천으로 자신을 위한 장소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그런 장소가 필요하신 것일까요?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물의 기둥도, 지붕도, 출입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궤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야 합니다. 그 위에는 그룹 둘을 세우고, 하나님은 그 사이에서 모세와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다음에는 빵을 놓아두는 상을 만들고, 아몬드꽃 모양으로 장식된 등잔대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담는 궤, 늘 놓여 있는 빵, 빛을 비추는 등잔대.
왜 이것들이 하나님이 머무실 장소의 첫 번째 기구들이 되었을까요?
출애굽기 25장은 건축에 필요한 물건을 나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열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떻게 머무시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시는지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위한 예물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이 장의 첫 명령은 성막을 만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물을 받으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나를 위한 예물을 거두게 하여라. 너희는 마음에서 우러나 기꺼이 내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의 예물을 받아라.」출애굽기 25:2 · 본디새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가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지위에 있는지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소를 만들라고 명령하셨다고 해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정해진 양을 강제로 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성소 건축은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예물은 기꺼이 내는 마음에서 받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곧바로 매우 구체적인 재료 목록이 등장합니다.
금과 은과 구리, 여러 색깔의 실과 고운 아마포, 염소털, 가죽, 아카시아나무, 기름과 향료, 보석들이 나열됩니다. 어떤 것은 구조물을 만드는 데 쓰이고, 어떤 것은 천을 짜거나 덮개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또 어떤 것은 조명과 예배, 제사장의 복장에 사용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7절에서는 에봇과 가슴패에 박을 보석까지 미리 언급합니다. 에봇과 가슴패의 구체적인 제작 명령은 뒤의 출애굽기 28장에서 등장합니다. 아직 성소의 설계도 모두 설명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그 안에서 섬길 사람의 옷에 들어갈 재료까지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질 예배와 봉사까지 고려된 공간입니다.
광야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재료를 어떻게 가지고 있었을까
금과 은과 보석이 광야 생활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2:35–36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떠날 때 이집트 사람들에게 은과 금으로 된 물품과 옷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장의 재료 목록을 출애굽 당시 가져온 재산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성막에 사용된 모든 금속과 직물, 가죽과 보석이 바로 그때 얻은 것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각 재료의 개별적인 입수 경로를 밝히지 않습니다. 이집트를 떠날 때 지니고 나온 물건들이, 이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머무실 성소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구원이 그들의 재산과 노동을 사용하는 방향까지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5절의 타하쉬 가죽이 어떤 동물의 가죽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7절의 쇼함 돌도 정확히 어떤 현대 광물에 해당하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3절의 구리 역시 순수한 구리인지 청동과 같은 합금인지 이 낱말만으로 판정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출애굽기 35:21–29에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마음에 감동을 받아 예물을 가져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36:5–7에서는 오히려 예물이 충분하고도 남아 더 가져오지 말라고 명령해야 할 정도가 됩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겠다」 — 성소의 진짜 목적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겠다.」출애굽기 25:8 · 본디새김
단수인 건물 안에 머물겠다는 표현이 아니라, 복수인 백성들 가운데 머물겠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공간을 인간이 마련해 드리는 것이 이 장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머무시기로 하셨기 때문에, 그분과 만나는 장소를 만들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소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소가 없던 때에도 이스라엘과 함께하셨고, 시나이산에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제 백성의 공동체 한가운데 자신의 임재를 나타낼 장소를 마련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한곳에 정착한 백성이 아닙니다. 광야를 이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막은 그들과 함께 옮겨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집니다.
이동하는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하나님.
성소와 성막은 같은 말일까
8절에는 ‘성소’가, 9절에는 ‘성막’이 등장합니다. 두 표현이 가리키는 공간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강조점은 조금 다릅니다. 성소는 하나님께 구별된 장소라는 특징을 드러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장에서는 그 두 의미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르시겠다고 하십니다.
거룩함과 가까움이 서로 배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모형대로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모든 것, 곧 성막의 모형과 그 모든 기구의 모형대로 너희는 그렇게 만들어라.」출애굽기 25:9 · 본디새김
본문은 모세가 그 모형을 어떤 방식으로 보았는지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이미 완성된 성막을 직접 보았는지, 특별한 계시를 통해 설계를 전달받았는지 이 표현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막의 구조와 기구를 임의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참여는 자발적이지만, 무엇을 만드는지는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리는 사람의 열심이 예배의 대상이나 방식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까지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은 구체적인 제작 명령을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성막의 벽이나 지붕이 아니라, 그 안에 놓일 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상 8:27에서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 가운데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을 다 담을 수 없는데 자신이 지은 집이 어떻게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겠느냐고 고백합니다. 신약의 요한복음 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주제에서 성막의 약속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지만, 이것은 출애굽기 본문의 직접적인 진술이 아니라 그 약속을 그리스도와 연결해 읽는 정경적 해석입니다. 출애굽기 25장의 고유한 의미는 먼저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가장 먼저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궤다
「그들이 아카시아나무로 궤를 만들게 하여라. 그 길이는 두 암마 반, 너비는 한 암마 반, 높이는 한 암마 반이어야 한다.」출애굽기 25:10 · 본디새김
지금 하나님이 만들라고 하시는 것은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직사각형의 상자입니다. 본문은 치수를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만, 치수 자체에 별도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궤의 몸체는 아카시아나무로 만들지만, 안쪽과 바깥쪽을 모두 순금으로 입혀야 합니다. 이것은 궤가 단순히 물건을 운반하거나 보관하는 평범한 상자가 아니라, 특별히 구별된 기구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궤를 금으로 입히라는 명령에 이어 운반을 위한 장치도 만들라고 하십니다. 네 개의 금고리를 달고, 아카시아나무로 운반채를 만들어 금으로 입힌 뒤 그 고리에 끼우라는 것입니다.
「운반채들은 궤의 고리들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궤에서 빠져나와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5:15 · 본디새김
우선 이 궤가 이동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여행하는 백성이고, 성막도 그들과 함께 옮겨져야 합니다. 운반채가 정해진 위치에 있고, 그것을 이용해 운반해야 합니다.
민수기 4:15에서는 거룩한 물건들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그것들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후속 규정과 함께 읽으면, 운반채는 단순히 편리하게 들기 위한 장치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거룩한 기구를 정해진 방식으로 다루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다만 25:15가 운반채를 항상 끼워 두어야 하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는 않으므로, 그 목적을 접촉 방지 하나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거룩함과 이동성이 같은 물건 안에서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 궤 안에는 무엇을 넣는가
「내가 네게 줄 증언을 궤 안에 넣어라.」출애굽기 25:16 · 본디새김
여기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언약의 증언을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출애굽기 31:18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증언의 돌판 둘을 주시는 장면이 등장하며, 34:28에서는 돌판에 기록된 말씀을 십계명과 연결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모습을 형상으로 만들어 보관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주실 증언을 궤 안에 넣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0:4–6에서 형상을 만들어 다른 신처럼 섬기지 말라고 하신 명령과 함께 읽을 때 더욱 두드러집니다.
성소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궤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언이 담깁니다.
그런데 이 궤는 단지 과거에 주신 말씀을 보관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궤 위에서 앞으로도 모세와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궤 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 두 그룹 사이의 자리
이제 하나님은 궤 위에 놓일 속죄판을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순금으로 속죄판을 만들어라. 그 길이는 두 암마 반, 너비는 한 암마 반이어야 한다.」출애굽기 25:17 · 본디새김
속죄판의 길이와 너비는 궤의 윗면과 같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궤 위를 덮는 판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이 판은 단순한 뚜껑이 아닙니다.
레위기 16:14–16에 따르면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피를 가지고 이 속죄판과 관련된 속죄 의식을 행합니다. 따라서 이 판은 물리적으로 궤를 덮는 역할을 하면서, 이스라엘의 죄를 다루는 제사 의식과도 연결됩니다. 다만 출애굽기 25장 자체가 속죄일의 의식이나 피의 사용법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에서 속죄판의 역할은 22절에 이르러 더욱 직접적으로 밝혀집니다.
그룹은 어떤 존재인가
「금으로 그룹 둘을 만들어라. 속죄판의 양 끝에 금을 두드려 그것들을 만들어라.」출애굽기 25:18 · 본디새김
성경에서 그룹은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한 영역에 관련된 존재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신 뒤 그룹들을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소의 가장 거룩한 기구 위에도 그룹들이 등장합니다.
창세기에서는 그룹들이 인간이 생명나무로 접근하는 길에 있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자리와 관계됩니다. 두 본문 모두 그룹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출애굽기 25장은 그들이 길을 막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날개를 펴서 속죄판을 덮고, 서로 마주 보며, 얼굴을 속죄판으로 향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또한 별도의 조각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속죄판과 한 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궤 위의 장식은 분명하게 지정되어 있지만, 본문은 그룹의 얼굴이나 몸이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까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사람의 얼굴인지, 동물의 모습이 섞인 형상인지, 구체적인 형태를 이 구절들만으로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고대 근동의 왕좌와 성소에는 날개 달린 수호 형상들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그룹들이 하나님의 왕권과 거룩한 임재에 관계된다는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성경 자체에서도 사무엘상 4:4와 시편 80:1은 여호와야훼를 그룹들 위에 좌정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그룹들에게 기도하거나 제물을 바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둘 사이에서 말씀하실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그룹 사이에서 들리는 음성이다
「내가 거기서 너와 만나겠다. 속죄판 위, 곧 증언의 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도록 내가 네게 명령할 모든 것을 너와 이야기하겠다.」출애굽기 25:22 · 본디새김
본문은 그 사이에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두 그룹의 모습은 자세히 지정하지만, 그 사이에 어떤 신상을 세우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만나는 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형상 속에 갇힌 신이 아니라, 자신의 말씀으로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와의 만남은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성소의 중심은 소수의 지도자만 누리는 신비로운 체험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관계에 있습니다.
궤 안에는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증언이 보관됩니다. 궤 위에서는 하나님이 앞으로도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소의 중심에는 이미 주신 말씀과 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늘 놓여 있는 빵
궤와 속죄판 다음에는 상을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상도 아카시아나무로 만들고 순금으로 입힙니다. 그 둘레에 금테를 만들고, 네 모서리에 고리를 달며, 운반채를 만들어 이동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상에는 접시와 종지, 병과 대접 같은 여러 그릇이 함께 만들어집니다. 본문의 명칭만으로 각각의 기구가 정확히 어떤 모양이었고 어떤 액체를 담았는지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특히 부어 바치는 행위와 관련된 표현이 어떤 그릇들에 걸리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음식과 제사에 사용되는 그릇들을 갖춘 예배의 기구입니다.
「그 상 위에 임재의 빵을 놓아 언제나 내 앞에 있게 하여라.」출애굽기 25:30 · 본디새김
히브리어 레헴 파님은 글자 그대로 옮기면 ‘얼굴의 빵’입니다. 그러나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 곧 그분의 임재 앞에 놓이는 빵을 뜻합니다. 본문은 곧바로 「언제나 내 앞에 있게 하여라」라고 명령하여 그 의미를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도 음식을 드셔야 하는가
고대 세계의 여러 종교에서는 신들에게 음식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신들이 인간처럼 음식을 필요로 하거나, 제물을 통해 신들의 필요를 채워 준다는 관념도 존재했습니다. 출애굽기 25장은 빵을 놓으라고 명령하지만, 하나님이 그 빵을 드시거나 음식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편 50:12–13에서 하나님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며, 자신이 제물의 고기를 먹거나 피를 마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으로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임재의 빵을 하나님이 배고프실 때 드실 음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 전체의 증언과 맞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5장이 직접 강조하는 것은 그 빵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예배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후 레위기 24:5–9에서는 그 빵에 관한 더 구체적인 규정이 주어집니다. 고운 가루로 빵 열둘을 만들고, 여섯 개씩 두 무더기로 놓습니다. 안식일마다 새롭게 차려 놓으며, 물린 빵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습니다.
열두 개의 빵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레위기 24장 자체가 열두 개의 숫자를 열두 지파라고 직접 풀이하지는 않으므로, 그것은 문맥에서 도출하는 상징적 해석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왜 성소 안에 상이 있어야 할까
궤 안의 증언은 언약의 말씀을 간직합니다. 상 위의 빵은 하나님 앞에 계속 놓여야 합니다. 여기서 성소는 하나님께 한 번 제사를 드리고 떠나는 장소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어지는 예배의 질서가 마련되는 곳입니다.
이후 출애굽기 26:33–35를 보면 궤는 휘장 안쪽의 지성소에 놓이고, 상은 휘장 바깥 성소의 북쪽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궤와 상은 같은 공간에 나란히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가장 안쪽의 궤와, 그분 앞에 빵을 놓아두는 상은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일을 보여 줍니다.
이제 하나님은 빵을 놓는 상 맞은편에 놓일 기구를 말씀하십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등잔대입니다.
금으로 만든 나무가 빛을 비춘다
등잔대에 관한 명령은 유난히 깁니다.
줄기와 가지, 잔과 둥근 마디, 꽃의 모양까지 세밀하게 규정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등잔 일곱 개를 올려놓는 받침대가 아닙니다. 하나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는 구조를 가진, 식물의 모습을 닮은 기구입니다.
「그 양옆에서 가지 여섯이 뻗어 나와야 한다. 등잔대의 한쪽 옆에서 가지 셋이, 다른 쪽 옆에서 가지 셋이 뻗어 나와야 한다.」출애굽기 25:32 · 본디새김
등잔대의 중심에는 줄기 하나가 있습니다. 따라서 중심 줄기와 여섯 가지에 모두 등잔을 놓으면 일곱 개가 됩니다.
왜 하필 아몬드꽃일까
「한 가지에는 아몬드꽃 모양의 잔 셋과 둥근 마디 하나와 꽃 하나가, 다른 한 가지에도 아몬드꽃 모양의 잔 셋과 둥근 마디 하나와 꽃 하나가 있어야 한다. 등잔대에서 뻗어 나오는 여섯 가지를 이렇게 만들어라.」출애굽기 25:33 · 본디새김
이러한 장식은 등잔대를 단순한 금속 기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식물을 닮은 형태로 만듭니다. 금은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자라지도 않고 꽃을 피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금을 사용하여 가지와 꽃을 가진 형태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생명의 모습을 닮은 금속 기구가 빛을 내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나무를 떠올려도 될까
이 장면은 창세기 2–3장의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9에서는 하나님이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동산에서 자라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생명나무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25장의 등잔대도 나무의 모습을 닮았고, 앞서 궤 위에는 창세기 3:24에 등장했던 그룹들과 같은 이름의 존재들이 놓입니다. 따라서 성막의 장식과 에덴동산 사이에서 문학적·신학적 연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시는 장소, 생명과 관련된 나무의 이미지, 거룩한 영역에 놓인 그룹들이 서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출애굽기 25장은 등잔대를 ‘생명나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등잔대가 창세기의 생명나무를 상기시킨다는 해석은 가능하지만, 등잔대의 모든 장식을 에덴의 특정 부분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은 본문이 제공하는 근거를 넘어섭니다.
여러 부분을 한 몸으로 만들어라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어라. 등잔대는 두드려 만들어야 한다. 그 받침과 줄기와 잔들과 둥근 마디들과 꽃들은 등잔대와 한 몸이어야 한다.」출애굽기 25:31 · 본디새김
31절과 36절에서 이 명령이 강조됩니다. 등잔대의 받침과 줄기, 가지와 장식을 따로 만든 뒤 단순히 조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를 하나로 두드려 만들도록 명령합니다.
여기서 하나라는 사실을 곧바로 이스라엘의 일치나 신학적 통일성에 대한 상징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먼저 구체적인 제작 방식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등잔은 무엇을 비추는가
「그 등잔대의 등잔 일곱을 만들어라. 그 등잔들을 켜서 등잔대 앞쪽을 비추게 해야 한다.」출애굽기 25:37 · 본디새김
이것은 기름을 사용하는 등잔들과 관계되는 기구입니다. 앞서 6절에서 하나님이 등불을 밝힐 기름을 예물로 받으라고 명령하셨던 이유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후 출애굽기 27:20–21에서는 등잔을 밝히기 위한 기름과 등불을 관리하는 일이 더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출애굽기 전체에서 하나님은 이미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고, 시나이산에서는 자신의 영광을 집어삼키는 불처럼 드러내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인간이 만든 작은 등잔의 불빛에 의존하신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등잔은 하나님이 정하신 성소 안에서 필요한 빛을 제공합니다.
특히 이어지는 출애굽기 26:35에서 이 등잔대가 상 맞은편, 곧 성소의 남쪽에 놓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등잔대의 빛은 그 공간이 예배와 봉사의 장소로 기능하도록 합니다.
순금 한 키카르
「순금 한 키카르로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출애굽기 25:39 · 본디새김
키카르는 고대의 무게 단위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상당한 양의 귀금속이 사용되는 정교한 기구라는 사실입니다.
금의 가치는 그 빛을 내도록 만들어진 기구의 역할 안에서 의미를 얻습니다.
성소의 기구들은 아무리 값비싸도 그 자체가 예배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에 따라 사용되어야 하는 물건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아몬드와 관련된 표현이 정확히 꽃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지, 또는 열매까지 포함한 형태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의 묘사만으로 오늘날 사람들이 상상하는 특정한 아몬드꽃 모양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둥근 마디’가 식물의 특정 부위인지 단순한 장식 형태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닮은 구조에 꽃과 관련된 장식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왜 마지막에 다시 모형을 강조하시는가
이 장은 특별한 명령으로 끝납니다.
「살펴보고, 산에서 네게 보여 주는 그것들의 모형대로 만들어라.」출애굽기 25:40 · 본디새김
9절에서도 하나님은 성막의 모형과 모든 기구의 모형대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40절에서 다시 같은 주제가 등장합니다.
이 반복은 25장 전체를 하나의 틀 안에 넣습니다.
따라서 중간에 등장한 치수와 재료, 장식과 제작 방법은 단순한 기술자의 참고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구체적인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인 헌신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함께 요구됩니다.
히브리서 8:5에서는 이 40절의 명령을 직접 인용하여 성막을 하늘의 것과 관계된 모형으로 해석합니다. 다만 출애굽기 25장의 직접적인 초점은 하늘의 성소가 정확히 어떤 구조인가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고, 모세가 하나님이 보여 주신 설계에 충실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두 그룹 사이에는 아무 형상도 없다
성막을 성막 되게 하는 것은 먼저 그 안에 있는 값비싼 재료나 아름다운 외형이 아니라, 그곳에서 이스라엘과 만나고 말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은 건물의 외형보다 그 안에서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물론 본문이 건물보다 기구를 먼저 설명하는 이유를 직접 풀이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순서가 오직 하나의 신학적 의미만을 갖도록 설계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성막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궤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상 위에는 빵이 없으며, 등잔대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아직 산 위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 완성될 장소에서 무엇을 하실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서 너와 만나겠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금빛 궤 위, 두 그룹 사이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