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27장

이 장의 자리 · 25–40장 · 성막과 제사장

재를 치우는 손과 등불을 지키는 손

하나님이 머무실 성소를 만드는 데에는 금과 아름다운 직물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재를 치울 솥과 삽도 필요합니다.

출애굽기 27장은 이 뜻밖의 물건들로 시작합니다.

앞서 하나님은 증언의 궤와 금으로 만든 등잔대, 그룹 무늬가 있는 휘장들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사를 드린 뒤 남는 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까지 명령하십니다.

장의 마지막에 이르면 또 다른 일상적인 작업이 등장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야훼 앞에」 등잔을 정돈해야 합니다.

재를 치우는 일과 밤새 등불을 돌보는 일.

이 두 작업 사이에서 하나님은 제단을 만들고, 성막을 둘러싼 뜰을 마련하며, 사람들이 들어오는 입구까지 정하도록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머무실 장소는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실제로 제사가 드려지고, 정해진 경계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며, 날마다 예배가 이어져야 합니다.

출애굽기 27장은 성막의 구조에서 그곳에서 이루어질 삶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927장 본문 읽기 →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제단

출애굽기 27:1–2 본문 →

「아카시아나무로 제단을 만들어라. 길이는 다섯 암마, 너비는 다섯 암마여야 한다. 제단은 정사각형이어야 하며, 높이는 세 암마여야 한다.」출애굽기 27:1 · 본디새김

앞서 성막 안쪽의 기구들은 주로 금으로 만들어지거나 금으로 입혀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제단은 구리로 입혀야 합니다.

이 제단은 뒤에 출애굽기 30:1–10에서 등장하는 향을 피우는 제단과 구별됩니다. 향을 피우는 제단은 금으로 입히며 성막 내부에 놓입니다. 반면 27장의 구리 제단은 번제와 다른 제물들을 드리는 장소가 됩니다. 출애굽기 40:6, 29에 따르면 이 제단은 성막 입구 앞에 놓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장 안쪽에는 증언의 궤와 속죄판이 있습니다. 그 바깥 성소에는 상과 등잔대가 놓입니다. 그리고 성막 밖의 뜰에는 제물을 바치는 제단이 놓입니다.

성막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가장 안쪽의 궤에 도달하기 전에 제단이 있는 공간을 먼저 만나게 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제단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구체적인 장소입니다. 제물의 종류와 제사 절차는 이어지는 출애굽기 29장과 레위기 1–7장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됩니다.

레위기 1:3–5에서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제물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오고, 제사장들이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후의 규정과 함께 읽으면 바깥 제단은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중요한 자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에는 공간적인 구별과 제사장의 직무가 따릅니다.

특히 출애굽기 29:38–46을 보면, 아침과 저녁에 정기적으로 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이 등장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과 연결됩니다.

왜 네 모서리에 뿔이 있는가

「제단의 네 모서리에 뿔들을 만들어라. 그 뿔들은 제단과 한 몸이어야 한다. 제단을 구리로 입혀라.」출애굽기 27:2 · 본디새김

뿔은 제단에 나중에 붙여 놓는 별도의 장식이 아닙니다. 제단 자체를 이루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왜 뿔을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출애굽기 27장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사 규정은 그 기능 가운데 하나를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29:12에서는 제물의 피를 제단의 뿔들에 바르라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4:25, 30에서도 속죄제의 피를 번제단의 뿔들에 바르는 규정이 나옵니다.

열왕기상 1:50–53에서는 아도니야가 제단의 뿔을 붙잡고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려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의 서사에서 나타나는 행위이며, 이 구절이 제단에 뿔을 만들도록 한 원래의 목적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제단의 구조는 실제로 이루어질 제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사를 드리는 일은 거룩한 순간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가 끝난 뒤에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제물을 바치는 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 안에서 죄와 정결, 감사와 헌신 등 여러 문제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제단을 단순히 죄를 용서받기 위한 한 가지 기구로만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번제와 화목제, 속죄제 등 다양한 제사가 제단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10장은 구약의 제사와 그리스도의 사역을 비교하면서, 반복되는 제사와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려진 희생 사이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7장의 제단을 직접적으로 십자가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본문이 말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유형론적 해석입니다. 먼저 이 제단이 이스라엘의 실제 제사와 예배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제단에서 가장 뜻밖의 물건은 재를 치우는 솥이다

출애굽기 27:3–5 본문 →

3절은 제단에 사용할 도구들을 열거합니다.

「제단의 재를 치우는 데 쓸 솥들을 만들고, 삽들과 대야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불씨 그릇들을 만들어라. 제단의 모든 기구를 구리로 만들어라.」출애굽기 27:3 · 본디새김

이 도구들은 제물을 다루고, 불을 관리하며, 제단을 정리하는 일에 필요합니다. 불에 태워진 제물은 재를 남깁니다. 제단을 사용하면 그 자리를 정리해야 합니다. 불씨를 다루고 제물의 일부를 옮기기 위한 기구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일은 장엄한 종교 의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물이 타고 난 뒤의 재를 치우고, 제단을 다음 사용을 위해 관리하는 작업까지 동반합니다. 레위기 6:10–13은 제단의 재를 처리하고 불을 계속 관리하는 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규정합니다. 거기서는 제사장이 제단의 재를 치우는 행위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행해야 합니다.

그물 모양의 격자는 어디에 놓이는가

4–5절에서는 제단에 구리로 된 격자를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그 격자를 제단의 테두리 아래쪽에 놓아라. 격자는 제단의 절반 높이까지 이르러야 한다.」출애굽기 27:5 · 본디새김

본문은 그물 모양의 구리 격자를 만들고, 그 네 끝에 고리들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격자가 정확히 어떤 모양으로 제단에 고정되었는지, 테두리가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지, 절반 높이까지 이른다는 말이 위에서 아래로인지 아래에서 위로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특히 현대적인 석쇠를 떠올려 그것이 제단 안쪽의 특정한 높이에 수평으로 놓였다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격자가 제단의 어느 부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능했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제단은 불과 제물, 재를 다루는 실제적인 기구입니다.

불을 사용하는 제단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출애굽기 27:6–8 본문 →

이어서 하나님은 제단에 운반채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제단에 쓸 운반채들을 아카시아나무로 만들어 구리로 입혀라.」출애굽기 27:6 · 본디새김
「제단의 운반채들은 고리들에 끼워져야 한다. 제단을 나를 때 운반채들은 제단의 두 옆면에 있어야 한다.」출애굽기 27:7 · 본디새김

앞서 증언의 궤와 상에도 운반채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광야를 이동하는 백성입니다. 제단도 그들의 이동과 함께 옮겨질 수 있어야 합니다.

「널판으로 속이 빈 제단을 만들어라. 산에서 네게 보여 준 그대로 그들이 만들어야 한다.」출애굽기 27:8 · 본디새김

속이 빈 구조는 같은 외형을 속까지 꽉 채운 구조보다 가볍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운반채와 함께 생각하면 이동을 고려한 설계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본문은 제단의 빈 내부에 무엇을 채워 사용했는지, 실제로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졌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은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를 걷는 백성의 계속되는 삶 속에 자리 잡습니다.

왜 제단은 금이 아니라 구리인가

증언의 궤와 상, 등잔대에는 금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바깥의 제단과 그 도구들은 구리로 만들어지거나 구리로 입혀집니다.

이 차이를 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리는 심판을 상징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7장은 그런 상징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더욱 확실한 설명은 기구의 위치와 사용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막 안쪽의 기구들은 하나님 앞에 놓여 정해진 예배에 사용됩니다. 반면 바깥 제단에서는 실제로 제물을 바치고 불과 재를 다룹니다. 구리는 그러한 목적에 사용되는 재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막 안쪽의 기구와 바깥 제단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거룩함은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제단도 하나님께 구별된 기구입니다.

하나님은 성막 전체를 둘러싸는 뜰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여기서 ‘구리’로 옮긴 히브리어 네호셰트는 문맥에 따라 구리나 구리 합금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구절만으로 순수한 구리인지 청동인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뜰은 왜 사방을 둘러싸야 하는가

출애굽기 27:9–12 본문 →

「성막의 뜰을 만들어라. 남쪽을 향한 면에는 꼬아 만든 고운 아마실로 뜰의 둘레 휘장들을 만들어라. 그 한쪽 면을 두를 휘장들의 길이는 백 암마여야 한다.」출애굽기 27:9 · 본디새김

이 명령으로 공간의 범위가 갑자기 넓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제단 하나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성막을 둘러싸는 전체 공간을 설계합니다.

남쪽과 북쪽의 길이는 각각 백 암마입니다. 서쪽과 동쪽의 너비는 각각 쉰 암마입니다. 따라서 뜰은 기본적으로 길이가 너비의 두 배인 직사각형입니다.

돌담이 아니라 천으로 만든 경계

뜰을 둘러싸는 것은 높은 돌담이 아닙니다.

고운 아마실로 만든 휘장입니다. 그 휘장을 기둥에 걸고, 기둥들은 구리 받침으로 지탱합니다. 갈고리와 띠에는 은을 사용합니다.

이 구조는 성막이 광야에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돌담으로 둘러싼 뜰을 만들었다면 이동할 때마다 그것을 해체하고 다시 세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과 기둥과 받침으로 이루어진 구조는 분해하여 운반할 수 있습니다.

뜰은 성막과 제단이 놓인 특별한 공간을 바깥과 구별합니다. 이스라엘의 거주 공간과 하나님께 구별된 예배의 장소 사이에 경계를 만듭니다.

앞 장에서는 안쪽 휘장이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했습니다. 이제는 뜰을 둘러싼 휘장들이 성막의 영역 전체를 바깥과 구분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공간이 여러 단계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뜰에는 입구가 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스무 암마의 문

출애굽기 27:13–16 본문 →

하나님은 뜰의 동쪽 면을 따로 설명하십니다.

「뜰의 동쪽 면, 곧 해 뜨는 쪽의 너비는 쉰 암마여야 한다.」출애굽기 27:13 · 본디새김

그런데 이 쉰 암마를 하나의 휘장으로 모두 막지 않습니다. 한쪽에는 열다섯 암마의 휘장이 있고, 다른 쪽에도 열다섯 암마의 휘장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스무 암마의 가림막을 설치합니다.

왜 입구만 색깔이 다른가

뜰을 둘러싸는 휘장들은 고운 아마실로 만듭니다.

그런데 입구의 가림막은 다릅니다.

「뜰 문에는 스무 암마의 가림막을 청색 실과 자색 실과 진홍색 실과 꼬아 만든 고운 아마실로, 무늬를 수놓는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라. 그 기둥은 네 개, 그 받침은 네 개여야 한다.」출애굽기 27:16 · 본디새김

이 색깔들은 성막의 다른 휘장과 기구에서도 사용되었던 재료입니다. 따라서 뜰 입구는 둘레의 휘장과 구별되는 모습으로 만들어집니다.

본문은 색깔의 상징적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청색은 하늘, 자색은 왕권, 진홍색은 피를 상징한다고 각각 확정하는 것은 이 구절의 근거를 넘어섭니다.

성막의 뜰은 바깥과 구별된 공간이지만, 입구를 통해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언제든 제한 없이 뜰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과 제물의 출입, 제사장들의 역할은 이어지는 제사 규정들과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공간에는 경계가 있지만,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길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길은 사람들이 임의로 휘장을 걷어 내어 만드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위치에 마련되는 입구입니다.

왜 동쪽인가

입구는 동쪽, 곧 해 뜨는 방향에 놓입니다.

이것을 창세기 3:24의 에덴동산 동쪽에 놓인 그룹들과 연결하여 읽는 해석이 있습니다. 두 본문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공간과 동쪽이라는 방향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7장은 왜 입구를 동쪽에 두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쪽 방향 자체가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을 상징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성막을 세울 때마다 이 방향과 구조를 따라야 합니다. 뜰이 완성되면 제단이 놓이고, 성막과의 관계 속에서 예배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뜰의 구조를 설명하신 뒤에 매우 작은 물건들까지 언급하십니다.

성막의 말뚝까지 지정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27:17–19 본문 →

17–19절에서는 뜰의 기둥에 필요한 은 띠와 갈고리, 구리 받침들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뚝이 등장합니다.

「성막의 온갖 일에 쓰는 모든 기구와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의 모든 말뚝은 구리여야 한다.」출애굽기 27:19 · 본디새김

말뚝은 성막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물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증언의 궤처럼 금으로 입혀져 있지도 않고, 그룹처럼 아름다운 형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제단처럼 제물이 올려지는 곳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막과 뜰을 고정하는 데 필요한 물건입니다.

천을 아무리 아름답게 짜도 기둥과 받침, 고정 장치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구조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성막을 세우는 일은 눈에 잘 띄는 아름다운 부분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선이 바뀝니다.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제단이나 뜰의 부품을 만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스라엘 자손에게 올리브기름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제작에서 관리로, 공간에서 시간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이동합니다.

성막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애굽기 27:20 본문 →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찧어서 얻은 맑은 올리브기름을 등불용으로 네게 가져오게 하여라. 등불을 늘 밝히기 위한 것이다.」출애굽기 27:20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의 제작 명령들과 문장부터 다릅니다.

앞에서는 제단을 만들고, 기둥을 세우고, 휘장을 준비하라는 명령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 만들어질 등잔대에 무엇을 공급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등잔대를 만드는 것과 등잔을 밝히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금으로 아무리 정교한 등잔대를 만들어도 기름이 없다면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또한 처음 한 번 기름을 채우는 것만으로 계속 빛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용한 기름은 줄어들고, 등잔은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성막의 건축에는 완성되는 순간이 있지만, 성막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에는 계속 이어져야 할 일이 있습니다.

왜 특별히 맑은 올리브기름인가

여기서 등불에 사용할 기름은 아무 기름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찧어서 얻은」은 올리브에서 기름을 얻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또한 기름이 맑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성막의 등불에 적합하도록 준비된 기름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이 기름을 얻기 위해 올리브를 찧는다는 사실을 인간의 고난이나 희생에 곧바로 대응시키는 것은 본문의 직접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은 등불에 사용할 기름의 종류와 상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누가 기름을 가져오는가

성막 안의 등불을 관리하는 사람은 뒤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기름을 가져오는 책임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어집니다.

백성은 기름을 공급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등잔을 돌봅니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직접 수행하는 일과 공동체가 제공해야 할 것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성소 안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는 소수의 사람에게 맡겨지지만, 그 봉사가 계속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에는 공동체 전체가 참여합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 등불을 지키는 사람들

출애굽기 27:21 본문 →

「만남의 천막 안, 증언을 가리는 안쪽 휘장 바깥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야훼 앞에 그 등잔을 정돈해 두어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다.」출애굽기 27:21 · 본디새김

다시 말해 지성소가 아니라 성소에 해당하는 공간입니다. 이것은 앞서 출애굽기 26:35에서 등잔대를 상 맞은편에 놓으라고 명령하신 내용과 일치합니다.

앞서 하나님은 증언의 궤 위에서 모세와 만나고 이야기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25:22). 그때 ‘만나겠다’는 동사와 여기 ‘만남’이라는 명사는 같은 히브리어 어근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만남의 천막’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건물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만나고 말씀하시겠다는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그 만남의 장소에서 제사장들은 밤 동안 등잔을 정돈해야 합니다.

「늘 밝히라」는 것은 낮에도 밤에도 끊임없이 켜 두라는 뜻인가

20절에는 「등불을 늘 밝히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타미드(⁨תָּמִיד⁩)입니다. 이 단어는 지속적이거나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늘’이라는 말을 반드시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 한순간도 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21절은 관리하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정합니다. 레위기 24:2–4에서도 같은 등불 규정이 반복되며,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잔을 정돈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구절들을 함께 읽으면 밤 동안 등불을 정기적으로 밝히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한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출애굽기 27장만으로는 낮 동안 모든 등잔이 어떤 상태였는지까지 상세하게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왜 등불이 필요한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불처럼 나타내시는 분이라면, 왜 사람이 기름을 가져와 등불을 켜야 할까요?

출애굽기 24:17에서 여호와야훼의 영광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산꼭대기에서 집어삼키는 불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의 작은 등잔이 만들어 내는 빛을 필요로 하신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성소는 실제로 사람이 봉사하는 장소입니다. 제사장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등잔은 성소 안의 정해진 공간을 비추는 실제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한 그 등불을 관리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수행하는 예배의 직무가 됩니다. 21절은 등잔을 단지 ‘성막 안에’ 정돈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 정돈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특별한 순간에만 거창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저녁 등잔을 살피고, 아침까지 정해진 일을 수행하는 봉사도 포함합니다.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는 이 명령이 당시의 한 번뿐인 특별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후속 세대에도 이어져야 할 언약적 의무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후대의 모든 역사적 상황에서 동일한 성막이 존재하고 동일한 방식의 등불 관리가 영원히 계속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규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지속적인 예배의 질서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아직 제사장으로 구별되지 않았다

하지만 출애굽기의 서술을 따라가면 이들은 아직 제사장으로 임명되는 모든 절차를 마치지 않았습니다. 다음 장인 출애굽기 28장에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섬길 수 있도록 거룩한 옷을 만들라는 명령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29장에서는 그들을 제사장으로 구별하는 절차가 설명됩니다.

지금까지는 성막과 제단과 뜰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곳에서 누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3:3에서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장면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 1:12–20에서는 일곱 금 등잔대가 등장하며, 본문은 그 등잔대들이 일곱 교회를 나타낸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출애굽기 27장의 등잔대가 본래부터 일곱 교회를 상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출애굽기의 등잔대는 성소를 밝히고 제사장들이 관리하도록 주어진 기구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등잔대라는 익숙한 성소의 이미지를 가져와 교회들에 대한 새로운 환상 속에서 사용합니다.

성막의 가장 중요한 일은 완성된 뒤에 시작된다

출애굽기 27:1–21 본문 →

성막은 완성되는 순간에 모든 목적을 이루는 건축물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등불을 밝히며, 정해진 예배를 지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들의 책임과 봉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반드시 남들이 주목하는 순간에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책임도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봉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모든 반복적인 노동이 그 자체로 제사장의 직무와 동일하다는 뜻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성막과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실제로 등잔에 기름을 붓고 불을 밝히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 모든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시선은 성소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증언을 가리는 휘장 바깥, 상 맞은편에는 금으로 만든 등잔대가 놓일 것입니다. 저녁이 되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곳에서 등잔을 살피게 됩니다. 백성이 가져온 맑은 올리브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아침까지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정돈해야 합니다.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성막의 성소 안에 등잔대가 놓일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름을 가져올 백성과, 저녁부터 아침까지 그 등불을 정돈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머무실 거처는 그렇게, 아름답게 세우는 손뿐 아니라 날마다 돌보는 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