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이집트의 종살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보내심
출애굽기 4장은 모세의 예상이 틀렸다는 사실로 끝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믿지 않고 제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기록됩니다. 「백성이 믿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모세가 갑자기 담대한 지도자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다가 마침내 다른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표징을 주시고, 말할 능력을 약속하시고, 형 아론을 붙여 주십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려 하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까지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모세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이 장의 이야기는 모세가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증명하기보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하시며, 그 말씀을 맡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고, 손이 병들었다가 회복되다
「그들은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3:18).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의심합니다.
모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믿지 않고 제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당신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출애굽기 4:1 · 본디새김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가서 전해야 할 소식은 평범한 소식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나타나셨고,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셨으며, 그들을 구해 내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은 모세가 가시덤불 앞에서 경험한 일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모세에게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현현이 있지만, 백성에게는 그것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모세의 말만 있습니다.
그 간격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설명을 더 길게 하시는 대신, 모세에게 물으십니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말했다. 「네 손에 있는 그것이 무엇이냐?」 그가 말했다. 「지팡이입니다.」출애굽기 4:2 · 본디새김
손에 익숙한 물건이 두려운 존재로 바뀌다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그것을 땅에 던져라.」 그가 그것을 땅에 던지자 뱀이 되었다. 모세는 그 뱀 앞에서 달아났다.출애굽기 4:3 · 본디새김
모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미리 통제하거나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팡이를 던졌지만, 그 결과 앞에서는 자신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 익숙한 목자의 지팡이는 이제 그가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손을 뻗어 뱀을 움켜잡자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모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숙련된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팡이는 원래 모세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이었습니다. 장인의 양 떼를 치던 사람이 지니고 있던 일상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지팡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징에 사용됩니다.
5절에서 목적을 직접 밝히십니다.
「이는 그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인 여호와야훼가 네게 나타났다는 것을 그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4:5 · 본디새김
그러므로 표징의 목적은 모세 자신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어 두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께 그들의 관심을 향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몸에 생긴 병과 회복
두 번째 표징은 모세 자신의 몸에서 일어납니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다시 말했다. 「네 손을 품에 좀 넣어 보아라.」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 보니, 그의 손에 피부병이 생겨 눈처럼 하얘져 있었다.출애굽기 4:6 · 본디새김
하나님이 다시 손을 품에 넣으라고 명령하시자, 손은 본래의 살과 같아집니다. 첫 번째 표징에서는 모세의 손에 있던 지팡이가 변했습니다. 두 번째 표징에서는 모세 자신의 손이 변합니다.
표징의 전체 모습은 병의 발생과 회복을 함께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단순히 하나님이 질병을 일으키실 수 있다는 주장으로만 읽으면 표징의 절반을 놓치게 됩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변화시키시고 회복시키시는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표징도 말을 한다
「그들이 너를 믿지 않고 첫째 표징이 전하는 말을 듣지 않더라도, 둘째 표징이 전하는 말은 믿을 것이다.」출애굽기 4:8 · 본디새김
표징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표징이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지닌 것처럼 표현하십니다. 이는 표징이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건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표징 자체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5절에서 밝혀졌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표징은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된 독립적인 증거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 번째 표징까지 알려 주십니다.
「그들이 이 두 표징마저 믿지 않고 네 말을 듣지 않으면, 나일강 물을 떠서 마른 땅에 부어라. 네가 나일강에서 떠온 물은 마른 땅에서 피가 될 것이다.」출애굽기 4:9 · 본디새김
앞선 두 표징은 모세 앞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표징은 여기서 실행되지 않고 앞으로 행할 일로 제시됩니다. 나일강 물이 피가 되는 표징은 출애굽기 뒤쪽에서 실제로 이집트를 치는 재앙과 연결됩니다(출애굽기 7:14–25).
모세가 살아남았던 나일강은 이집트의 삶을 지탱하는 강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강의 물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표징에 사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다음 대답을 보면, 표징만으로 그의 걱정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용된 차라아트는 성경에서 여러 종류의 피부 이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를 오늘날의 한센병으로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정한 질병의 의학적 진단이나 감염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입도 둔하고 혀도 둔합니다」
문제는 더 이상 백성의 믿음만이 아니다
처음 모세는 백성이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표징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세가 다른 문제를 제기합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에게 말했다. 「주님, 송구하지만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에도 줄곧 그랬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신 뒤에도 그렇습니다. 저는 입도 둔하고 혀도 둔하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4:10 · 본디새김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자신의 언어 능력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느끼는 부족함 사이에 여전히 간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입을 주신 분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문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말했다.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 또 누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이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나 눈이 보이는 사람이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드느냐? 나 여호와야훼가 아니냐?」출애굽기 4:11 · 본디새김
하나님은 사람의 입과 감각을 만드시는 창조주로서 자신의 권위를 말씀하십니다. 말을 하거나 듣거나 보는 능력, 그리고 그러한 능력의 결여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장애와 질병이 특정한 개인의 죄에 대한 벌이라는 뜻으로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장애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적합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모세는 자신의 언어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부족함이 자신의 부르심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가거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으면서 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출애굽기 4:12 · 본디새김
하나님의 약속은 모세의 모든 약점을 제거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말해야 할 때 함께하시고, 말할 내용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영역에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더는 부족함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그러나 모세는 마침내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말했다. 「주님, 송구하지만 부디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출애굽기 4:13 · 본디새김
이 말은 더 이상 특정한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사명 자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 달라는 요구입니다.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분노하여 말했다. 「네 형인 레위 사람 아론이 있지 않느냐? 그가 말하는 데는 능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보아라. 그가 지금 너를 만나러 나오고 있다. 그는 너를 보고 마음으로 기뻐할 것이다.」출애굽기 4:14 · 본디새김
하나님의 분노는 이 대화가 단순히 겸손한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상황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모세에게는 두려움과 한계가 있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태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노하신 뒤에도 모세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아론은 모세의 입이 되고,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이 된다
모세는 자기에게 말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아론이라는 사람을 그의 곁에 세우십니다. 모세는 과거에 자기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이 그를 기쁘게 맞이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역할은 단순히 모세를 대신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말들을 그의 입에 넣어 주어라. 나는 네 입과 그의 입과 함께 있으면서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출애굽기 4:15 · 본디새김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에게 주어지고, 모세는 아론에게 그 말을 전달하며, 아론은 백성에게 말하게 됩니다. 그 관계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매우 강한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다. 그가 바로 네 입이 되고, 너는 그에게 하나님이 될 것이다.」출애굽기 4:16 · 본디새김
이 말은 모세가 실제로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을 전달하는 관계를 설명하는 비유입니다. 출애굽기 7:1–2에서는 이 관계가 파라오 앞에서 다시 설명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파라오에게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세우셨다고 말씀하시고, 아론이 모세의 예언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아론의 능력이 하나님의 임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두 사람의 입과 함께하십니다. 모세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낀 일이 이제 두 사람에게 맡겨집니다.
하나님의 사명은 인간의 약함을 외면하지 않지만, 그 약함 때문에 사명 자체를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입도 둔하고 혀도 둔하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크바드 페 우크바드 라숀입니다. 카베드는 무겁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모세는 자신의 입과 혀가 무겁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이 느리거나 서툴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고, 말을 원활하게 하는 데 실제로 어려움이 있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만으로 특정한 언어 장애나 의학적 상태를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모세의 말이 객관적인 능력 평가인지, 자신이 맡은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부족함을 강조한 것인지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돌아가는 사람
모세는 장인에게 모든 일을 말하지 않는다
모세는 마침내 길을 떠날 준비를 합니다.
모세는 길을 떠나 자기 장인 예테르, 곧 이드로에게 돌아가서 말했다. 「부디 제가 이집트에 있는 제 형제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보게 해 주십시오.」 그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말했다. 「평안히 가거라.」출애굽기 4:18 · 본디새김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파라오에게 보내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야 한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형제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보러 가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모세가 장인을 속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가 자기 형제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인에게 전달한 말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의 전체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모세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명의 무게를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워했을 수도 있고, 장인에게 먼저 필요한 만큼만 설명했을 수도 있습니다.
장인은 말합니다. 「평안히 가거라.」 이 짧은 허락을 통해 모세는 미디안에서 이루었던 생활을 떠나 이집트로 돌아갈 길에 오릅니다.
목자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말했다. 「가거라. 이집트로 돌아가거라. 네 목숨을 노리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출애굽기 4:19 · 본디새김
이 말씀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달아났던 이유와 직접 연결됩니다. 그는 살인 사건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았습니다.
모세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모세는 자기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다가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자기 손에 들었다.출애굽기 4:20 · 본디새김
여기서 처음으로 그의 아들들이 복수로 언급됩니다. 출애굽기 2:22에서는 게르솜의 출생만 기록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8:4에서는 또 다른 아들 엘리에셀이 언급됩니다.
조금 전까지 그것은 모세의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이 「네 손에 있는 그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을 때, 모세는 단순히 지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본문은 그것을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부릅니다.
물건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물건이 이야기 안에서 맡는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모세가 양 떼를 치며 사용하던 지팡이는 이제 하나님의 표징을 행할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팡이가 신성한 물건으로 변하여 독립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파라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파라오의 마음과 하나님의 맏아들
파라오가 거절할 것을 알고도 보내시는 하나님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 주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네가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설 때, 이것을 명심하여라. 내가 네 손에 맡긴 모든 이적을 반드시 파라오 앞에서 행하여라. 그러나 나는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겠다. 그는 백성을 보내 주지 않을 것이다.」출애굽기 4:21 · 본디새김
성경은 파라오의 저항을 하나님의 주권과 무관한 독립적인 힘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보내 주기를 거절한 책임을 면제하지도 않습니다. 두 사실이 어떻게 철학적으로 조화되는지를 출애굽기 4장이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야기 안에서 하나님은 파라오의 저항을 모르고 모세를 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저항까지 알고 계시면서 모세를 보내십니다.
따라서 모세가 앞으로 파라오의 거절을 경험할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맏아들이다
이어서 하나님은 파라오에게 전할 말씀을 알려 주십니다.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맏아들이다.」』」출애굽기 4:22 · 본디새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맏아들은 가문의 계승과 상속에서 특별한 지위를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순서만 나타내지 않습니다. 특별한 관계와 지위, 책임을 드러내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맏아들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파라오가 자기 소유인 것처럼 부리는 백성을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맏아들을 놓아주지 않는 왕에게 주어지는 경고
그러나 하나님은 파라오가 거절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게 내 아들을 보내어 나를 섬기게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너는 그를 보내기를 거절했다. 보아라. 내가 네 아들, 네 맏아들을 죽이겠다.」』」출애굽기 4:23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파라오의 노동력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보내라는 요구는 바로 그 관계를 인정하라는 요구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선언한 직후, 파라오의 맏아들이 언급됩니다. 이 두 문장은 분리해서 읽을 수 없습니다. 파라오는 하나님의 맏아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기 맏아들의 죽음을 경고하십니다.
이 경고는 앞으로 이집트에 임할 마지막 재앙과 연결됩니다(출애굽기 11–12장). 그러나 출애굽기 4장의 이 자리에서는 아직 그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던 왕권의 대표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왕권을 향해 맏아들의 죽음을 선언하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섬기게 보내라는 요구를 먼저 하십니다. 파라오의 거절이 그다음에 등장합니다.
왜 맏아들이 죽어야 합니까? 권력자의 거절에 대해 그의 자녀가 죽는 일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습니까? 출애굽기 4장은 이 문제를 상세한 논증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대신 앞으로 전개될 재앙과 유월절 이야기의 중요한 긴장을 미리 제시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독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죽음의 위협을 만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단지 감정이 일어나는 장소만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며 의지를 결정하는 중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파라오가 감정적으로 화를 낸다는 뜻보다 그의 결정이 굳어져 이스라엘을 보내려 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이 파라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시겠다고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한 구절만으로 파라오가 아무런 책임도 없는 수동적인 인형처럼 행동한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는 파라오 자신이 마음을 완강하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출애굽기 8:15, 32). 그의 마음이 완강해졌다는 서술과 하나님이 그 마음을 완강하게 하셨다는 서술도 함께 나타납니다(출애굽기 7:13, 9:12).
길 위에서 모세를 죽이려 하신 하나님
이 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
24절은 갑작스럽게 시작됩니다.
길을 가던 중, 묵는 곳에서 여호와야훼가 그를 만나 그를 죽이려 했다.출애굽기 4:24 · 본디새김
앞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명령을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길 위에서 누군가를 죽이려 하십니다.
본문은 누구를 죽이려 하셨는지 이름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를’이라는 대명사만 사용합니다.
십보라가 무엇을 했는가
25절에서 십보라가 행동합니다.
십보라는 부싯돌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의 포피를 잘라 그의 발에 대고 말했다.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의 신랑입니다.」출애굽기 4:25 · 본디새김
여기서 할례는 창세기의 언약과 연결됩니다.
누구의 발이며, 피의 신랑은 누구인가
더 어려운 부분은 십보라가 아들의 포피를 「그의 발에」 댔다는 표현입니다.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피의 신랑」이라는 표현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할례의 피로 인해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할례 행위 자체와 연결된 의례적 표현으로 보거나, 십보라가 피와 관련된 이 사건에 대해 느낀 고통과 충격을 드러내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보라가 이 말을 어떤 감정과 의도로 했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야훼는 그에게서 물러났다. 그때 십보라는 할례를 두고 「피의 신랑」이라고 말했다.출애굽기 4:26 · 본디새김
따라서 할례와 위협의 해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관계를 설명하는 모든 세부 사항까지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에게도 요구하시는 것
이 배치는 독자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모세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우지 않는 특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모세는 언약의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전해야 할 메시지 역시 그 언약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신과 가족의 삶에서도 언약의 표징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야기의 맥락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은 작은 실수만 해도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보편적인 법칙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정한 위기의 상황을 묘사하며, 그 이유와 대상을 완전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이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사명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위기에서 결정적으로 행동한 사람은 모세가 아닙니다.
십보라입니다.
모세는 앞서 자기 형제들을 구하려고 행동했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자기 가족에게 닥친 위기에서 아내가 행동합니다. 모세의 생존과 사명은 다시 한 번 다른 사람의 행동과 깊이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일반적으로는 24절의 ‘그를’이 모세를 가리킨다고 이해합니다.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모세이며, 그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맏아들의 죽음이 언급되었고, 이어지는 행동이 아들의 할례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모세의 아들을 대상으로 이해하는 읽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본문은 대상과 이유를 모두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표징으로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된 남자아이에게도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습니다(창세기 17:9–14). 따라서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고, 그것이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협이 임했다고 이해하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특히 창세기 17:14에서 할례받지 않은 남자는 언약을 어긴 것으로 간주된다는 말씀을 고려하면, 이러한 해석에는 문맥적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4장은 그것이 실제로 하나님이 죽이려 하신 직접적인 이유였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왜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25절의 「그의 발」은 모세의 발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십보라가 아들의 할례를 통해 모세에게 닥친 위협에 대응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른 인물이나 위협의 대상과 연결하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또한 히브리어에서 ‘발’이 특정한 문맥에서는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반드시 그런 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어 하탄 다밈은 문자적으로 ‘피들의 신랑’ 또는 ‘피의 신랑’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십보라가 모세에게 분노해서 말한 것인지, 안도하여 말한 것인지, 특정한 의례적 선언을 한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두 형제가 다시 만나고, 백성이 믿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만남
27절에서 아론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가 아론에게 말했다. 「모세를 만나러 광야로 가거라.」 아론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그를 만나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출애굽기 4:27 · 본디새김
앞서 모세가 가시덤불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던 그 산이 이번에는 형제가 다시 만나는 장소가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이 만나러 오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아론에게 모세를 만나러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을 서로에게 보내셨습니다.
앞서 하나님은 아론이 모세를 보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형제들의 재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동역의 출발점이 됩니다.
받은 말씀을 빠짐없이 전하다
28절에서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명령하신 표징들을 모두 알려 줍니다. 그리고 29절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읍니다.
아론은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한 모든 말을 전했다. 또 백성의 눈앞에서 표징들을 행했다.출애굽기 4:30 · 본디새김
모세가 혼자 경험했던 하나님의 능력이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 앞에서 나타납니다.
모세가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다
백성이 믿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 자손을 살폈고 그들의 고난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몸을 굽혀 엎드렸다.출애굽기 4:31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출애굽기 4장의 처음으로 독자를 돌아가게 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믿지 않고 제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앞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그들이 믿은 것은 이미 완성된 구원에 관한 보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들을 살피셨으며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몸을 굽혀 엎드렸다’는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경의를 표현하는 반응입니다.
조금 더 깊이
30절에서 표징을 행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히브리어 문장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앞 문장에서 아론이 말하는 주체로 등장했으므로 아론이 표징을 행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앞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표징을 행하라고 명령하셨으므로 모세가 행했다고 이해하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본문은 이 대목에서 표징을 행한 사람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반복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믿었다」
모세는 자신이 보냄받은 사람으로 적합한지 끝까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모세가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 그가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어진 약속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말씀은 여러 사람의 행동과 응답을 통해 공동체에 전달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살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4장은 이 장면에서 멈춥니다.
이집트의 강제 노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파라오는 아직 백성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도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고통을 하나님이 보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앞에 몸을 굽힙니다.
이것은 아직 해방의 축제가 아닙니다.
고통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드리는 경배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