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27장

이 장의 자리 · 25–32장 · 여러 민족을 향한 선언

세상의 보물로 가득 찬 배의 난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비싼 배가 항구를 떠납니다. 널판은 좋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돛대는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세워졌습니다. 이집트의 수놓은 아마포가 돛이 되었고, 먼 섬에서 가져온 자주색 천이 배를 장식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노련한 선원들이 노를 젓고, 지혜로운 항해사들이 배를 이끕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배가 깊은 바다 한가운데서 부서집니다.

에스겔 27장은 한 척의 배가 난파하는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그 배는 실제 배 한 척이 아닙니다. 지중해의 부유한 항구 도시 두로입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은 두로의 멸망을 선언하셨습니다. 27장에서는 그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얼마나 많은 나라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얼마나 풍요로웠는지를 먼저 보여 주십니다. 그런 다음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그리십니다.

왜 하나님은 심판받을 도시의 아름다움과 번영을 이렇게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실까요?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927장 본문 읽기 →

「나는 아름다움이 완전하다」 — 자기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도시

에스겔 27:1–4 본문 →

「너 사람의 아들아, 두로를 두고 애가를 불러라.」에스겔 27:2 · 본디새김

애가는 죽음이나 재앙으로 인한 상실을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두고 불렀던 노래도 애가였습니다(사무엘하 1:17–27).

에스겔이 이 노래를 부르도록 명령받은 것은 두로의 몰락이 선언된 시점입니다. 예언자는 앞으로 닥칠 멸망을 이미 일어난 비극처럼 노래합니다.

아직 그 배가 바다에 떠 있는데, 그 배의 장례 노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다의 어귀들에 자리 잡고, 많은 섬에 이르기까지 민족들과 장사하는 두로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두로야, 너는 말했다. 『나는 아름다움이 완전하다.』」에스겔 27:3 · 본디새김

이것은 다른 도시와 비교하여 조금 더 아름답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부족한 것이 없다는 평가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시선이 달라집니다.

「네 경계는 바다 한가운데 있다. 너를 지은 이들이 네 아름다움을 완성했다.」에스겔 27:4 · 본디새김

두로의 아름다움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기술과 노동,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본문은 실제로 그 아름다움을 인정합니다.

두로는 자신이 완전하다고 말하지만, 그 완전함은 수많은 다른 사람과 지역에 의존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반적인 도시는 땅에 경계가 있습니다. 성벽과 들판, 다른 도시와의 접경 지역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로는 바다 한가운데에 경계를 가진 도시로 묘사됩니다.

이 표현은 실제 두로가 해안과 섬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였다는 사실과 연결되지만, 동시에 뒤에 등장할 거대한 배의 이미지로 독자를 이끕니다. 이제 두로는 더 이상 육지에 고정된 도시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바다 위를 움직이는 한 척의 배가 됩니다.

그리고 그 배를 만드는 데 온 세상이 참여합니다.

한 척의 배를 만들기 위해 모여든 세계

에스겔 27:5–9 본문 →

「그들은 스닐의 사이프러스나무로 네 모든 널판을 만들었다. 네 위에 돛대를 세우려고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가져왔다.」에스겔 27:5 · 본디새김

스닐은 헤르몬산과 연결되는 이름입니다. 신명기 3:9에는 아모리 사람들이 헤르몬산을 스닐이라고 불렀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구약에서 크고 웅장한 나무로 자주 등장합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도 레바논에서 가져온 목재가 사용되었습니다(열왕기상 5:6–10).

6절에서는 바산의 참나무가 노가 됩니다. 바산은 튼튼한 나무로 알려진 지역이며, 이사야 2:13에서도 바산의 참나무가 높고 강대한 것들의 예로 등장합니다.

또한 갑판에는 상아와 키팀의 섬들에서 온 재료가 사용됩니다. 여기서 본디새김이 「바트아슈림」이라고 옮긴 말은 정확한 뜻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나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지만, 히브리어 본문의 형태와 문장 구성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따라 번역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정확한 수종이나 상아를 결합한 제작 방법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갑판이 귀한 재료로 꾸며졌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집트에서 온 수놓은 고운 아마포가 네 돛이 되어, 네게 깃발 구실을 했다. 엘리사의 섬들에서 온 청자색 천과 붉은 자주색 천이 너를 덮는 덮개였다.」에스겔 27:7 · 본디새김

배를 움직이는 도구가 동시에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장식이 됩니다.

청자색 천과 자주색 천도 등장합니다. 이런 색상의 직물은 고대에 귀하고 값비싼 물품이었습니다. 엘리사의 섬들이 정확히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이 구절에서도 중요한 것은 먼 지역에서 귀한 재료가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재료만으로는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

8–9절에서는 배를 움직이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시돈과 아르왓의 주민들이 너를 위해 노를 저었다. 두로야, 네 안에 있던 네 지혜로운 이들, 그들이 네 항해사들이었다.」에스겔 27:8 · 본디새김

시돈은 두로와 함께 페니키아의 중요한 항구 도시였으며, 아르왓 역시 북쪽 해안의 항구 도시였습니다. 배를 움직이는 사람과 배가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하는 사람이 구별됩니다. 노를 젓는 사람에게는 힘과 숙련이 필요합니다. 항해사에게는 바다와 항로를 이해하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9절에서는 그발의 원로들과 숙련된 사람들이 배의 틈새를 수리합니다. 그발은 페니키아 해안의 도시로, 비블로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배는 좋은 재료만으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없습니다. 틈새를 막고 선체를 관리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 기술자들까지 두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귀한 재료만으로 이루어진 완전함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노동과 기술, 경험과 지혜가 함께 만들어 낸 완전함입니다.

방패와 투구가 완성한 아름다움

에스겔 27:10–11 본문 →

「페르시아와 룻과 풋 사람들이 네 군대에서 네 전사로 있었다. 그들은 네 안에 방패와 투구를 걸었다. 그들이 네게 위엄을 더했다.」에스겔 27:10 · 본디새김

여기서 배의 이야기에 갑자기 군대가 등장합니다.

이 지명들 가운데 일부는 정확한 역사적 집단의 범위를 정하는 데 논의가 있지만, 본문은 두로의 군사력이 여러 지역 출신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무기가 도시의 위엄을 더합니다.

앞에서는 귀한 나무와 아름다운 직물이 두로의 외형을 꾸몄습니다. 이제는 군대와 무기가 그 아름다움을 완성합니다.

「아르왓 사람들과 네 군대가 네 성벽 둘레에 있었고, 감마딤이 네 탑들에 있었다. 그들은 네 성벽 둘레에 자기 방패들을 걸었다. 그들이 네 아름다움을 완성했다.」에스겔 27:11 · 본디새김

「그들이 네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4절에서 이미 등장했던 표현이 다시 나옵니다. 앞에서는 배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완성했습니다. 이제는 군사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완성합니다.

여기서 에스겔은 배와 도시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겹쳐 놓습니다. 앞부분에서는 널판과 돛대와 노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벽과 탑이 등장합니다.

두로는 한 척의 배이면서 동시에 성벽과 탑을 가진 도시입니다. 예언자는 두 이미지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고 함께 사용합니다. 바다를 통해 교역하고, 군사력을 통해 자기 자신을 지키는 도시입니다.

두로를 지키는 사람들 역시 여러 나라에서 왔습니다. 외부에서 온 전사들과 여러 지역의 기술자들이 두로의 번영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장 전체에서 가장 긴 부분인 교역 목록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물건이 모인 도시 — 긴 교역 목록의 의미

에스겔 27:12–24 본문 →

12절부터 24절까지는 수많은 나라와 상품들이 등장합니다.

서쪽과 북쪽, 동쪽과 남쪽에서 물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배와 육로를 통해 여러 지역의 생산물과 재료들이 이동했습니다. 그 물건들은 두로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먼 지역에서 들어오는 금속과 가축 (27:12–14)

「네게 온갖 재물이 풍부하여 타르시스는 너와 거래했다. 그들은 은과 철과 주석과 납을 네 상품과 바꾸었다.」에스겔 27:12 · 본디새김

타르시스는 구약에서 먼 해상 교역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여기서는 멀리 있는 지역과의 활발한 교역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은은 귀금속으로 사용되며, 철은 도구와 무기 제작에 중요했습니다. 주석은 구리와 함께 청동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었고, 납 역시 여러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로의 교역은 단순히 사치품을 사고파는 일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도구와 무기, 건축과 생산에 필요한 재료도 거래되었습니다.

13–14절에는 사람과 청동 기물, 말과 승용마와 노새가 등장합니다. 야완과 두발과 메섹, 도갈마 집안이 교역 상대였습니다. 이 지명들은 대체로 아나톨리아와 그 주변 세계에 관련된 이름으로 이해되지만, 각각의 정확한 위치와 범위는 모두 확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13절에는 불편한 말이 하나 등장합니다.

「야완과 두발과 메섹, 그들이 너와 장사했다. 그들은 사람과 청동 기물을 네 교역품과 바꾸었다.」에스겔 27:13 · 본디새김

이 문맥에서는 사람들이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노예 거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에스겔은 여기서 노예 거래에 대한 별도의 윤리적 논평을 길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목록 안에 그 사실을 기록할 뿐입니다.

두로의 번영을 이루던 교역망에는 값비싼 상품뿐 아니라 사람의 몸과 삶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뒤에서 두로가 여러 민족을 배불렸다는 찬사를 읽을 때 그 번영을 단순히 아름다운 성공담으로만 보지 않도록 합니다.

사치품과 식량이 한곳에 모이다 (27:15–20)

15절에서는 드단 사람들이 상아 엄니와 흑단을 가져옵니다. 16절에서는 아람 사람들이 노페크와 붉은 자주색 천, 수놓은 천, 고운 아마포, 산호와 카드코드를 가져옵니다. 이 가운데 노페크와 카드코드는 정확히 어떤 보석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값비싼 장식용 물품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17절에서 교역 목록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땅, 그들이 너와 장사했다. 그들은 민닛의 밀과 판나그와 꿀과 기름과 발삼을 네 교역품과 바꾸었다.」에스겔 27:17 · 본디새김

앞 장에서 두로가 예루살렘의 몰락을 기뻐했다고 했는데, 이제 우리는 두 지역이 이전에 서로 교역하던 관계였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특히 밀과 꿀과 기름은 일상적인 식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물품들입니다.

상업 도시의 부는 단지 귀한 물건을 쌓아 두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서로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두로는 그런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에스겔은 두로와 거래했다는 이유로 유다와 이스라엘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목록은 서로 다른 정치적 관계에 있던 나라들조차 경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8–20절에서는 다마스쿠스의 포도주와 양털, 여러 지역의 철과 향료, 탈것에 사용하는 덮개가 이어집니다. 여기서도 몇몇 물품의 정확한 뜻은 불확실합니다.

향료와 금, 화려한 옷감으로 가득한 시장 (27:21–24)

마지막 교역 목록에서는 아라비아와 게달, 스바와 라아마, 하란과 간네와 에덴, 아시리아와 길맛 등이 등장합니다. 양과 염소 같은 가축에서부터 최상품 향료와 보석과 금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열거됩니다. 여러 색상의 옷감과 화려한 겉옷, 상자에 담긴 물건들도 등장합니다.

이 목록에서 몇몇 지명의 정확한 위치나 물품의 뜻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특히 23–24절의 지명들을 모두 하나의 분명한 교역 경로 위에 배열하기는 어렵습니다.

에스겔은 물품을 제공한 지역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 이 이름들이 쌓일수록 두로의 모습도 커집니다. 많은 지역의 물건과 노동, 기술과 교역이 한곳에 집중된 거대한 세계가 떠오릅니다.

목록을 짧게 줄이면 두로의 부가 얼마나 컸는지는 설명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도시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없습니다.

에스겔은 독자가 수많은 지명과 물품을 따라 읽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 배에 실리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가득 찼기 때문에 무거워진 배

에스겔 27:25 본문 →

「타르시스의 배들이 네 교역품을 실어 날랐다. 너는 바다 한가운데서 가득 차고, 몹시 무거워졌다.」에스겔 27:25 · 본디새김

두로가 부유해졌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부는 배에 실린 짐입니다. 짐이 많아지면 배가 무거워집니다. 두로의 번영이 이제 선박의 물리적인 상태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문이 배의 무게 때문에 반드시 침몰했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뒤에서 배를 부수는 직접적인 원인은 동풍으로 묘사됩니다.

앞에서는 무거움이 부와 성공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무거움이 위험한 바다 한가운데 있는 배의 상태로 나타납니다.

두로가 자기 번영의 증거라고 여겼던 가득 찬 화물창은, 난파를 앞둔 배의 무게가 됩니다.

그는 부를 직접 악이라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많은 물건을 싣고 교역한다는 사실 자체를 저주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부가 모든 것을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는 도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줍니다.

배에 상품이 가득 찼다는 사실은 배가 침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그 배가 깊은 물로 나아갑니다.

노를 젓던 이들이 데려간 곳, 동풍이 부순 곳

에스겔 27:26–27 본문 →

「너를 저어 가던 이들이 너를 큰물로 데려갔다. 동풍이 바다 한가운데서 너를 부수었다.」에스겔 27:26 · 본디새김

두 문장으로 거대한 배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이 사람들이 앞서 8절에서 등장한 노 젓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배를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술과 능력이 배를 안전하게 지켜 주지는 못합니다.

거대한 번영을 만드는 데는 많은 사람과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번영이 무너지는 장면은 놀랄 만큼 짧게 묘사됩니다.

두로는 바다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바다에서 항해했고, 교역했고, 부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바다를 잘 안다는 것이 바다를 지배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27절에서 앞서 길게 열거되었던 모든 것이 다시 등장합니다.

「네 재물과 네 상품과 네 교역품, 네 선원들과 네 항해사들, 네 틈새를 수리하는 이들과 네 교역품을 거래하는 이들, 네 안에 있는 네 모든 전사가, 네 가운데 있는 네 온 무리와 함께, 네가 무너지는 날에 바다 한가운데로 떨어질 것이다.」에스겔 27:27 · 본디새김

처음에 그들은 두로의 아름다움과 번영을 완성하는 요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바다에 떨어지는 대상으로 열거됩니다.

처음에는 사람과 물건이 하나씩 배 안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다로 떨어집니다.

화물만 침몰한 것이 아닙니다. 그 화물을 둘러싸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함께 무너집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근동의 문헌과 성경에서 동풍은 종종 파괴적인 바람으로 묘사됩니다. 특히 시편 48:7에는 동풍이 타르시스의 배들을 부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본문이 직접적인 인용 관계에 있는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큰 배라도 동풍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공통된 이미지가 있습니다. 본문은 동풍을 하나님이 직접 보내셨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 전체가 하나님이 선포하신 두로 심판의 일부라는 점에서, 난파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이사야 2:12–17에서는 높고 교만한 것들이 하나님의 날에 낮아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 목록에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바산의 참나무, 높은 탑과 견고한 성벽, 타르시스의 배들이 등장합니다. 이사야에서는 높고 강한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낮아집니다. 에스겔에서는 바로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배가 바다에서 부서집니다. 두 본문을 하나의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으로 합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높이 여기는 성취도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공통된 주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에서 내려 뭍에 선 사람들

에스겔 27:28–31 본문 →

「네 항해사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너른 들판들이 흔들릴 것이다.」에스겔 27:28 · 본디새김

앞에서는 두로가 바다 한가운데 있는 도시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도시의 몰락을 알리는 소리가 육지까지 퍼집니다. 두로와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은 육지에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로의 교역에 참여했고, 그 도시의 번영에 의존했습니다.

「노를 잡은 모든 이와 선원들과 바다의 모든 항해사가 자기 배에서 내려와 뭍에 설 것이다.」에스겔 27:29 · 본디새김

두로라는 배는 바다 한가운데서 부서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뭍으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통곡합니다.

30–31절에는 여러 애도 행동이 이어집니다. 머리에 흙먼지를 끼얹습니다. 잿더미에서 뒹굽니다. 머리를 밀고 굵은 베를 두릅니다.

이런 행동들은 구약에서 죽음과 큰 재앙을 슬퍼할 때 등장하는 애도 관습과 연결됩니다. 욥기 2:12에서도 욥의 친구들이 욥의 고통을 보고 울며 자기 머리 위로 티끌을 날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로의 파괴는 그 도시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에게도 상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도시라 해도, 그 도시 안에는 실제 사람들이 살았고, 그 도시와 연결된 수많은 삶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슬픔이 이 노래 안에 자리를 얻습니다.

두로는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했지만, 동시에 사람을 상품으로 삼는 경제에도 참여했습니다. 따라서 두로의 몰락을 슬퍼하는 일과 그 도시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심판받는 대상이라도 그 상실은 실제 상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다는 사실이 그 안에서 사라진 모든 것을 하찮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심판받는 자의 파멸을 즐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두로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자기 번영의 기회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로의 몰락을 애가로 노래하게 하십니다. 하나는 남의 폐허에서 자신의 이익을 발견하는 시선입니다. 다른 하나는 심판받는 도시의 폐허에서도 실제 상실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의 요한계시록 18장에도 중요한 연결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바벨론의 몰락을 두고 상인들과 배를 탄 사람들이 애도합니다. 금과 은, 보석과 고운 옷감 등 다양한 상품들이 열거되고, 사람의 몸과 생명도 거래의 목록에 등장합니다(요한계시록 18:11–13). 또한 배를 부리는 사람들과 선원들이 멀리 서서 그 도시의 멸망을 바라보며 울부짖습니다(18:17–19). 이는 에스겔 27장의 두로 애가와 매우 가까운 문학적·주제적 연결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두로를 향한 고대의 심판 이미지를 사용하여, 부와 권력으로 자신을 높이는 제국적 세계의 몰락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에스겔 27장을 처음부터 요한계시록의 바벨론에 대한 예언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의 본문은 먼저 실제 고대 항구 도시 두로를 향한 애가입니다. 그 본래의 의미를 이해한 뒤에야, 후대 성경이 이 이미지를 어떻게 새롭게 사용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누가 두로와 같으냐」 — 찬사가 애가로 바뀌다

에스겔 27:32–36 본문 →

「그들은 울부짖으며 너를 향해 애가를 부르고, 너를 두고 이렇게 애도할 것이다. 『누가 두로와 같으냐, 바다 한가운데서 잠잠해진 그곳과 같으냐?』」에스겔 27:32 · 본디새김

이 질문은 앞부분의 자랑과 연결됩니다.

3절에서 두로는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름다움이 완전하다.」 겉으로 보면 두로의 자기 평가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질문의 마지막이 모든 것을 바꿉니다.

앞에서는 노랫소리와 교역의 소음, 선원들의 움직임으로 가득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앞 장 26:13에서 하나님이 두로의 노랫소리를 그치게 하겠다고 하신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아름다움이 완전하다고 말하던 도시가, 이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가를 부르는 사람들은 그 도시가 얼마나 많은 이에게 유익을 주었는지도 기억합니다.

「『네 상품들이 바다에서 나올 때, 너는 많은 민족을 배불렸다. 네 풍부한 재물과 교역품으로 땅의 왕들을 부유하게 했다.』」에스겔 27:33 · 본디새김

두로는 상품을 이동시켰고, 다른 지역에 물건을 공급했으며, 많은 나라가 그 교역을 통해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로의 몰락은 단순히 한 도시의 손실이 아니라 여러 나라가 누리던 교역 관계의 붕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모든 것이 바뀝니다.

「『네가 깊은 물속에서 바다에 부서졌을 때, 네 교역품과 네 온 무리가 네 안에서 쓰러졌다.』」에스겔 27:34 · 본디새김

앞에서는 상품들이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이제는 상품들이 바다에 가라앉습니다. 바다가 부를 가져다주던 통로였다면, 이제는 그 부를 삼키는 장소가 됩니다.

에스겔은 두로의 번영을 모두 허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상품과 재물이 있었고, 여러 나라가 그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기대가 허상이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번영도 영원한 번영은 아닙니다.

35절에서는 섬들의 주민들과 왕들이 경악하고 두려워합니다. 앞 장 26:16–18에서 바다의 통치자들이 왕좌에서 내려와 떨던 모습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서는 조금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민족들 가운데 있는 상인들이 너를 두고 쉿쉿 소리를 냈다. 너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너는 영원히 더는 없다.』」에스겔 27:36 · 본디새김

앞에서는 사람들이 두로를 위해 통곡했는데, 마지막에는 그 도시를 바라보며 쉿쉿 소리를 내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변화는 두로의 몰락을 바라보는 세상의 반응이 한 가지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아름다움이 완전하다고 자랑하던 두로의 세계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쉿쉿 소리는 문맥에 따라 놀라움이나 경악, 조롱과 멸시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상인들의 반응이 정확히 어느 감정에 더 가까운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의 「너는 영원히 더는 없다」는 표현은 심판의 완전성을 강조합니다. 앞 장에서도 두로의 완전한 소멸을 선언하는 강렬한 언어가 등장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두로라는 장소에 사람들이 계속 거주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표현을 그 후 어떤 형태의 도시도 다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문자적인 역사 진술로 단순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애가의 마지막 선언으로서 그 의미가 중요합니다.

맺음말 — 마지막까지 바다에 남아 있는 소리

에스겔 27:1–36 본문 →

두로가 잃어버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 주기 위해, 예언자는 먼저 그 도시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 줍니다. 에스겔 27장은 죄를 고발하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한 도시의 몰락을 애도하는 노래입니다. 두로는 수많은 나라의 재료와 상품으로 아름다움을 완성했지만, 그 모든 것을 실은 배가 가라앉는 순간에는 어느 것도 그 배를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에스겔의 노래가 끝날 무렵, 바다 위에는 더 이상 화려한 돛을 펼친 두로의 배가 보이지 않습니다.

해안에는 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바다에는 상품과 재물이 가라앉아 있고, 그들과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사라졌습니다. 한때 그 바다를 가득 채웠던 교역과 항해의 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해안에서 울려 퍼지는 애가입니다.

두로가 처음에 자랑했던 아름다움은 완전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그 도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쓰라린 통곡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