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26장

이 장의 자리 · 25–32장 · 여러 민족을 향한 선언

바다를 지배하던 도시가 바다에 삼켜지다

예루살렘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두로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두로는 예루살렘의 폐허를 바라보며 자기 도시가 더욱 번영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 장의 특별한 점은 심판이 한 도시의 패배를 넘어, 그 도시가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 자체를 무너뜨린다는 데 있습니다.

두로에게 다른 민족들은 교역의 상대였고, 바다는 부를 가져다주는 통로였으며, 높은 성벽은 안전의 보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관계와 환경을 심판의 이미지로 바꾸십니다.

에스겔 26장은 이런 역전을 네 장면으로 펼칩니다. 두로가 예루살렘의 몰락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보여 준 다음, 밀려오는 군대를 묘사하고, 바다의 통치자들이 부르는 애가를 들려준 뒤, 마지막에는 도시를 깊은 구덩이로 내려보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726장 본문 읽기 →

「내가 가득 차겠구나」 — 다른 도시의 폐허에서 번영을 꿈꾸다

에스겔 26:1–2 본문 →

십일 년째 어느 달 초하루에 여호와야훼의 말이 내게 왔다.에스겔 26:1 · 본디새김

「십일 년째」는 에스겔서에서 사용되는 여호야긴 왕의 유배를 기준으로 한 연대에 속합니다(에스겔 1:2). 예루살렘이 함락된 시기와 맞물리는 해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살렘을 두고 『아하. 민족들의 문들이 부서졌다. 내 쪽으로 돌아섰다. 그 성읍이 황폐해졌으니 내가 가득 차겠구나.』 하고 말했으므로,」에스겔 26:2 · 본디새김

고대 도시에서 성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드나들고, 물자가 이동하며, 공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민족들의 문이라는 표현에는 여러 민족이 연결되는 통로 또는 접촉점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통해 이루어지던 교역이나 물자의 이동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가 가득 차겠구나」라는 말이 그 기대의 방향을 보여 줍니다.

두로는 예루살렘이 잃어버린 것을 자신이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로는 지중해 동부 해안에 자리한 페니키아의 중요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바다를 통한 교역과 항해로 잘 알려져 있었고, 주변 여러 지역과 경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5:1–12에는 두로 왕 히람과 솔로몬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로는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공급했고, 양국은 물자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두로는 예루살렘이 몰락하자 그 빈자리를 자기 번영의 기회로 받아들입니다.

두로가 고발받는 이유는 단순히 상업적으로 성공하려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두로가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보며 기뻐했고, 그 황폐함을 자기 이익의 근거로 여겼다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 점에서 앞 장의 암몬이 외쳤던 「아하」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두로의 반응에는 좀 더 분명한 경제적 계산이 담겨 있습니다.

두로는 예루살렘의 폐허를 보면서 그곳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삶보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두로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시작됩니다.

두로가 가장 잘 알고 있던 바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1절에는 몇째 달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예언이 예루살렘 함락을 전후하여 정확히 어느 달에 선포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2절에서 두로가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말하고 있으므로, 본문의 상황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이미 알려졌거나 그 결과가 확실해진 때를 전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에서 「내 쪽으로 돌아섰다」는 표현의 주어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돌아선 것이 교역인지, 사람들인지, 어떤 이익이나 기회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오는 민족들

에스겔 26:3–6 본문 →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한다. 바다가 제 파도를 일으키듯, 내가 많은 민족을 일으켜 너를 치게 하겠다.」에스겔 26:3 · 본디새김

두로의 눈에는 예루살렘의 몰락이 새로운 기회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두로 자신이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대 두로에는 해안의 거주지와 바다 쪽 섬에 자리한 요새화된 도시가 있었습니다. 특히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위치는 강력한 방어상의 이점을 제공했습니다. 육지에서 공격하는 군대는 성벽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바다는 외부의 위협을 막아 주는 자연적인 방어선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바다를 공격의 비유로 사용하십니다.

파도는 한 번 밀려왔다가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파도가 물러가면 다른 파도가 밀려옵니다. 본문은 많은 민족을 바로 그런 파도에 비유합니다.

여기서 「많은 민족」이 정확히 어느 나라들을 가리키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군대를 가리킬 수도 있고, 여러 시기에 걸쳐 두로를 공격할 세력들을 폭넓게 묘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두로가 의지하던 지리적 환경이 심판의 언어로 바뀐 것입니다.

「그들이 두로의 성벽들을 허물고 그 탑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나는 그곳의 흙을 긁어내고, 그곳을 맨바위로 만들겠다.」에스겔 26:4 · 본디새김

여기서 파괴는 단순히 건물이 무너지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도시가 자리 잡았던 땅의 표면까지 벗겨지는 모습입니다. 바위 위에 성벽과 탑을 세워 강력한 도시를 이루었던 두로가 다시 맨바위만 남는 장소가 됩니다.

「그곳은 바다 한가운데서 그물을 펼치는 곳이 될 것이다. 내가 말했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그곳은 민족들의 약탈물이 될 것이다.」에스겔 26:5 · 본디새김

국제적인 교역의 중심지였던 도시가 평범한 어업의 장소로 묘사됩니다. 도시가 누리던 거대한 상업적 지위와 권세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6절에는 「들에 있는 그 딸 성읍들」이 등장합니다. 이 표현은 두로 본도시에 속하거나 그 영향 아래 있던 주변의 정착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섬의 중심 도시뿐 아니라 육지에 있는 주변 지역까지 공격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 공격을 수행할 강력한 왕의 이름을 밝히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24:7–8에서는 예루살렘이 흘린 피가 「맨바위」 위에 놓였다고 했습니다. 26:4에서는 두로 자체가 「맨바위」가 됩니다. 두 자리의 히브리어 표현은 같습니다. 앞에서는 감추어지지 않은 피를, 여기서는 모든 것을 잃은 성읍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시편 107:23–30은 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그들은 바다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보지만, 폭풍이 일어나면 지혜와 기술만으로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그때 그들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고 그들을 안전한 항구로 이끄십니다. 에스겔 26장과 직접 같은 사건을 설명하는 말씀은 아니지만, 두 본문에는 공통된 신학적 주제가 있습니다. 바다는 인간에게 큰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인간이 그것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느부갓레살의 군대 — 상업의 도시를 전쟁의 도시로 바꾸다

에스겔 26:7–12 본문 →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보아라, 내가 북쪽에서 왕들의 왕인 바벨론 왕 느부갓레살을 말과 병거와 기병, 군대와 수많은 백성과 함께 두로로 데려오겠다.」에스겔 26:7 · 본디새김

여러 왕국을 지배하거나 종속시킨 제국 통치자의 강대한 권세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느부갓레살은 자기 제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왕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 전쟁을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봅니다.

바벨론 왕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순종하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국의 왕은 자기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지만, 하나님은 그 왕의 행동을 자신의 심판과 연결하십니다.

8절부터는 군대가 두로를 공격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들에 있는 딸 성읍들을 공격하고, 포위벽을 세우고, 흙더미를 쌓으며, 큰 방패로 접근합니다.

포위벽과 흙더미는 성벽에 접근하거나 성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방패들은 공격하는 병사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9절에서는 성벽을 들이받는 기구까지 등장합니다.

「그의 말들이 워낙 많아 그 말들이 일으킨 먼지가 너를 뒤덮을 것이다. 뚫린 성읍에 들어가듯 그가 네 성문들로 들어올 때, 기병과 바퀴와 병거 소리에 네 성벽들이 흔들릴 것이다.」에스겔 26:10 · 본디새김

상업 도시의 일상적인 소음이 전쟁의 소리로 바뀝니다. 한때 상품을 싣고 온 사람들과 물자가 드나들었을 성문으로 이제 적군이 들어옵니다.

남의 문이 무너진 것을 번영의 기회로 여겼던 도시가, 자기 문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11절에서는 말들의 발굽이 거리를 짓밟고, 백성이 칼에 죽으며, 강한 기둥들이 무너집니다.

12절에서는 주어가 바뀝니다.

「그들이 네 재산을 약탈하고 네 상품을 빼앗으며, 네 성벽들을 무너뜨리고 네가 아끼는 집들을 헐어 버릴 것이다. 네 돌과 목재와 흙을 물속에 넣을 것이다.」에스겔 26:12 · 본디새김

두로는 육지에서 얻은 자재들을 사용해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돌과 목재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도시를 구성하던 물건들이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가 바다에 버려집니다.

건설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파괴입니다.

여기서 두로의 몰락은 군사적 패배를 넘어, 한 도시가 오랫동안 만들어 낸 문명의 형태가 해체되는 사건으로 그려집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29:18–20에서도 느부갓레살의 두로 공격을 하나님을 위해 수행한 일로 표현하지만, 그 군대가 두로에서 기대한 보상을 얻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9절의 「자기 칼들로 네 탑들을 헐어 버릴 것이다」라는 표현은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칼은 일반적으로 사람과 싸우는 무기이지, 거대한 탑을 허무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하르보트(⁨חֶרֶב⁩)는 보통 칼들을 뜻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철제 파괴 도구를 넓게 가리킨다고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여기서 「강한 기둥들」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종교적 의미를 가진 돌기둥일 수도 있고, 도시의 힘과 위세를 나타내는 기념 기둥일 수도 있습니다. 7–11절에서는 느부갓레살을 가리키는 「그」가 주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그들이」라고 말합니다. 한 가지 읽기는 느부갓레살이 이끄는 군대의 병사들이 직접 약탈과 파괴를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한 왕이 군대를 이끌고 오지만 실제 행동은 여러 병사가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읽기는 3절의 「많은 민족」이라는 넓은 표현이 다시 등장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느부갓레살뿐 아니라 여러 공격 세력이 두로의 파괴에 관여하는 그림이 됩니다. 그러나 주어가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한 후대 정복자까지 이 구절에 명시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노랫소리가 사라지고 그물만 남다

에스겔 26:13–14 본문 →

「내가 네 떠들썩한 노랫소리를 그치게 하겠다. 네 수금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26:13 · 본디새김

군대가 도시를 공격한 뒤 갑자기 음악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전쟁은 사람들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하지만, 그것만으로 도시의 멸망이 완전히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낸 삶의 소리가 있습니다. 일하고, 거래하고, 잔치를 열고, 노래하며 살아가는 일상입니다. 하나님은 그 소리까지 그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에서는 기병과 병거의 소리가 성벽을 흔들었습니다. 13절에서는 노랫소리와 수금 소리가 사라집니다.

전쟁의 소음이 일상의 음악을 몰아낸 것입니다.

「내가 너를 맨바위로 만들겠다. 너는 그물을 펼치는 곳이 될 것이다. 다시는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 여호와야훼가 말했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26:14 · 본디새김

4–5절에서 등장했던 맨바위와 그물이 다시 나옵니다. 이제는 전쟁과 약탈과 음악의 중단을 모두 보여 준 뒤에 같은 이미지가 반복됩니다. 국제 교역의 권력도, 화려한 건물도, 도시를 가득 채우던 소리도 사라졌습니다.

그물만 펼쳐집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은 두로가 「다시는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21절도 사람들이 두로를 찾아도 다시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역사 속 두로는 실제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레살은 두로를 오랫동안 포위했지만, 에스겔 29:18은 그와 그의 군대가 두로를 공격한 수고에 대해 기대한 보상을 얻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보다 후대인 기원전 332년에는 알렉산드로스가 두로를 공격했습니다. 그는 육지와 섬 사이에 제방을 쌓았고, 두로는 함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두로는 이후에도 다시 거주되고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따라서 26:14를 두로라는 지리적 장소에 그 후로 단 한 채의 건물도 세워지지 않았다는 문자적 역사 진술로 이해한다면, 실제 역사와 긴장이 생깁니다. 하나는 예언의 파괴 묘사가 고대 심판 신탁에서 사용되는 극단적인 언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다시는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는 도시의 모든 후대 거주 가능성보다, 두로가 누리던 권세와 영광의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을 강조합니다. 또 다른 읽기는 섬의 중심지와 육지의 정착지들을 구별하고, 서로 다른 시기의 파괴가 예언의 여러 요소에 대응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이 해석을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며, 14절과 21절의 절대적인 표현을 모두 설명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남습니다. 본문을 충실하게 읽으려면 이 긴장을 감추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이사야 23장에도 두로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23:8은 두로가 왕관을 씌우던 도시이며, 그 상인들이 고관과 같은 지위를 누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영광스러운 자들의 교만을 낮추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이사야 23:9). 그러나 두 예언을 완전히 동일한 역사적 시간표로 합쳐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23장은 두로의 심판 이후 다시 교역하는 모습도 말하며(23:15–18), 에스겔 26장은 훨씬 더 절대적인 소멸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왕좌에서 내려와 땅에 앉는 바다의 통치자들

에스겔 26:15–18 본문 →

두로의 파괴가 선포된 뒤, 시선이 도시 밖으로 이동합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두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치명상을 입은 자가 신음하고 네 안에서 살육이 벌어질 때, 네가 무너지는 소리에 섬들이 흔들리지 않겠느냐?」에스겔 26:15 · 본디새김

두로는 여러 해상 교역로를 통해 다른 지역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섬들이 흔들린다는 말은 두로와 관계를 맺고 있던 해상 세계 전체가 충격을 받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바다의 모든 통치자가 자기 왕좌에서 내려와, 겉옷을 벗어 놓고 수놓은 옷을 벗을 것이다. 그들은 두려움을 옷처럼 입고 땅에 앉아, 순간마다 떨며 너를 두고 경악할 것이다.」에스겔 26:16 · 본디새김

왕좌는 권력의 자리입니다. 그 옷은 지위와 부를 드러냅니다. 수놓은 옷을 벗고 두려움을 입는다는 표현은 두로의 몰락이 주변 통치자들의 자기 이해를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 줍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과 부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로처럼 강력한 도시도 무너질 수 있다면, 자신들의 권력도 영원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땅에 앉아 애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너를 두고 애가를 부르며 네게 말할 것이다. 『어찌 네가 망했는가, 바다에서 온 이들이 살던 곳아, 칭송받던 성읍아. 너와 네 주민들은 바다에서 강했고, 그곳의 모든 주민에게 너희에 대한 공포를 안겨 주었다.』」에스겔 26:17 · 본디새김

이 표현은 두로의 번영이 단순한 경제적 성공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 도시에는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할 만큼의 힘과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두로의 상업적 성공과 정치적·군사적 위세가 함께 묘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힘은 사라졌습니다.

두로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보며 자신이 더 가득 차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바다의 통치자들은 두로의 몰락을 보며 자기들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남의 몰락을 기회로 보는 시선과, 남의 몰락에서 자기의 취약함을 발견하는 시선이 대조됩니다.

지금까지는 바다 위의 도시와 바다를 둘러싼 세계가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바다 아래의 깊은 곳이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의 전치사가 바다에서 사람들이 왔다는 유래를 가리키는지, 바다 쪽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거주했다는 방향을 나타내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마지막의 「그곳의 모든 주민」이 도시의 주민을 가리키는지, 바다와 연결된 다른 주민들을 가리키는지도 문법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애가가 두로를 바다와 깊이 연결된 강력한 도시로 회상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심연이 도시를 덮고, 땅 아래로 내려가다

에스겔 26:19–21 본문 →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람이 살지 않는 성읍들처럼 황폐한 성읍으로 만들 때, 심연을 네 위로 끌어올려 많은 물이 너를 뒤덮을 때,」에스겔 26:19 · 본디새김

처음에 바다는 공격하는 군대의 비유였습니다. 마지막에는 도시 전체를 삼키는 깊은 물이 됩니다.

바다를 통해 살아가던 도시가 바다에 삼켜지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옛적의 백성에게로 내려보내겠다. 너를 오래전부터 폐허가 된 곳들처럼 땅 아래 깊은 곳에,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머물게 하여, 네 안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겠다. 그리고 나는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아름다움을 두겠다.」에스겔 26:20 · 본디새김

두로는 높은 성벽과 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다의 통치자들은 높은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는 통치자들이 왕좌에서 내려와 땅에 앉았습니다.

이제 두로 자체가 땅 아래로 내려갑니다.

처음에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제는 낮은 곳에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이 하강의 이미지는 도시가 누리던 지위와 위세의 완전한 상실을 나타냅니다.

두로는 한때 살아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과 폐허의 세계에 속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장면을 개인의 죽음 이후 상태에 관한 상세한 가르침으로 읽지 않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두로라는 도시를 의인화하여 깊은 곳으로 내려보냅니다. 죽은 개인들이 어떤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는지, 그곳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를 설명하려는 본문은 아닙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아름다움을 두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짧은 문장은 두로의 몰락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 전체의 소멸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로는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땅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 아름다움을 두십니다.

「내가 너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겠다. 너는 더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찾아도, 너는 영원히 다시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26:21 · 본디새김

두로는 한때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 주던 도시였습니다. 17절의 애가가 바로 그렇게 회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던 강대한 도시가, 그 도시의 몰락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교훈이 됩니다.

두로는 자신이 누리던 위세와 안전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위세가 다시는 찾을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 도시의 영화로움은 자기 안에서 영원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은 반드시 실제 지형 전체가 물속에 영원히 잠기는 사건을 예고한 것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어지는 20절에서 바다의 심연은 땅 아래의 깊은 곳과 결합되어 죽음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누구에게 그 아름다움이 주어지는지는 명시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이해할 여지는 있습니다. 심판받는 두로와 대조되는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문은 이 문장에서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을 직접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회복 사건을 확정하기보다, 하나님이 심판 속에서도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에 아름다움을 두신다는 선언 자체를 주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에스겔 28장에 이르면 이러한 문제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두로의 지도자는 자신을 신처럼 여기고, 바다 한가운데 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합니다(28:2). 26장은 그 교만의 결과를 먼저 보여 주는 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 가득 차리라던 도시의 마지막 모습

에스겔 26:1–21 본문 →

처음에 두로는 다른 도시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자신이 빈자리가 됩니다. 남의 폐허를 보고 「내가 가득 차겠구나」라고 말했던 도시가, 모든 것을 잃고 맨바위만 남는 도시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 바위 위에는 더 이상 강대한 해상 제국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바다의 파도만 밀려오고, 그물이 펼쳐져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