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25장
이 장의 자리 · 25–32장 · 여러 민족을 향한 선언
남의 멸망을 기뻐한 나라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이 주변 나라들에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손뼉을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발을 구르며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나라는 유다가 다른 민족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웃고, 어떤 나라는 오래된 원한을 풀 기회로 삼습니다.
에스겔 25장은 바로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향하는 장입니다.
앞 장에서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바벨론 군대의 등장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에스겔의 얼굴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주변 나라들을 향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신 뒤, 그 심판을 바라보는 이웃 나라들의 태도까지 살피십니다.
한 나라가 심판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가 그 멸망을 즐기거나 이용할 권리를 주지는 않습니다.
이 장은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을 차례로 다룹니다. 네 나라에 대한 말씀은 모두 비슷한 구조를 가집니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거나 행했는지 밝히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네 나라의 죄가 정확히 같지는 않습니다.
암몬은 기뻐했습니다. 모압은 유다의 특별한 지위를 비웃었습니다. 에돔은 보복했습니다. 블레셋은 오래된 적개심으로 멸망시키려 했습니다.
예루살렘 밖으로 향하는 하나님의 시선
「사람의 아들아, 네 얼굴을 암몬 자손에게 향하고 그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에스겔 25:2 · 본디새김
예언자가 얼굴을 향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느 방향을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향할 대상이 달라졌다는 선언입니다.
에스겔 6:2에서는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얼굴을 돌리라고 하셨고, 13:17에서는 거짓 예언을 하는 여자들을 향해 얼굴을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예언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하나님의 심판을 들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암몬은 요단강 동쪽에 자리 잡았던 나라로, 이스라엘과 오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9:36–38은 암몬과 모압의 조상을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연결합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으로 소개됩니다(창세기 36:1). 블레셋은 이스라엘 서남쪽 해안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충돌했던 민족입니다.
따라서 이 장에서 다루는 적대감은 단순히 낯선 민족 사이의 충돌만은 아닙니다. 서로의 역사를 알고, 가까이에서 흥망을 지켜본 나라들 사이의 갈등입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시는 가운데 이웃 나라들까지 심판하십니까?
그 답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지역 신이 아니시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지만, 그분의 주권이 이스라엘의 국경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하는 다른 민족들의 행동도 판단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점은 아모스 1–2장과도 연결됩니다. 아모스는 다마스쿠스와 가자, 두로와 에돔, 암몬과 모압을 차례로 고발한 뒤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도 고발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어느 한 민족의 국경 안에서만 정의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라들이 서로에게 행한 잔혹한 행동, 사람들을 사고팔거나 전쟁에서 지나친 폭력을 행한 일, 형제 민족을 해친 일 등이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암몬 — 「아하」라는 한마디에 담긴 마음
「암몬 자손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의 말을 들어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내 성소가 더럽혀졌을 때 그곳을 두고, 이스라엘 땅이 황폐해졌을 때 그 땅을 두고, 유다 집이 유배되어 갔을 때 그들을 두고 네가 『아하.』 하고 말했으므로,」에스겔 25:3 · 본디새김
성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심이었고, 땅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기업이었으며, 백성은 그 땅에서 살아가던 언약 공동체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암몬은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은 성소가 더럽혀지는 일을 심판 가운데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암몬이 그 일을 즐기는 모습을 가볍게 보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의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관계되어 있지만, 암몬의 조롱은 그 뜻에 순종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아라, 내가 너를 동쪽 사람들에게 소유지로 넘겨주겠다. 그들이 네 안에 진을 치고, 네 안에 거처를 마련할 것이다. 그들이 네 열매를 먹고, 그들이 네 젖을 마실 것이다.」에스겔 25:4 · 본디새김
이것은 땅의 소유 관계가 뒤바뀌는 모습입니다. 암몬 사람들에게 생계를 제공하던 땅이 이제 다른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됩니다. 암몬 사람들이 누리던 수확물과 가축의 소산을 새로운 거주자들이 누립니다.
땅을 잃는다는 것은 그 땅에서 삶을 유지하던 기반을 잃는 것입니다.
「내가 랍바를 낙타의 거처로, 암몬 자손을 양 떼가 눕는 곳으로 만들겠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스겔 25:5 · 본디새김
한때 사람이 살고 권력이 행사되던 도시가 가축들이 머무는 장소로 그려집니다. 이것은 성읍의 황폐함과 기존 주민들의 지위 상실을 나타냅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네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마음 가득 멸시를 품고 이스라엘 땅을 두고 기뻐했으므로,」에스겔 25:6 · 본디새김
손뼉을 치는 행위 자체가 죄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행동 속에 담긴 멸시가 문제입니다. 타인의 파멸을 보고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마음입니다.
이런 감정 자체를 모두 동일한 죄로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안도하는 일과, 아무런 자비 없이 타인의 고통 자체를 즐기는 일은 다릅니다.
이제 하나님은 암몬의 손짓에 자신의 손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보아라, 내가 너를 향해 내 손을 뻗었다. 너를 민족들에게 약탈물로 넘겨주고, 너를 백성들 가운데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에서 없애 버리겠다. 내가 너를 멸절시키겠다. 그러면 너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스겔 25:7 · 본디새김
암몬의 손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는 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그 악의를 심판하는 손입니다. 이 장에서 「내 손을 뻗었다」는 표현은 에돔과 블레셋에 대한 심판에서도 반복됩니다(25:13, 16).
타인의 불행을 가볍게 여긴 사람도 자기 삶의 기반을 잃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드러내십니다. 이것은 불행을 당하면 반드시 과거에 남의 불행을 비웃었기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인과 법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암몬의 특정한 태도에 대해 선언하신 심판입니다.
암몬은 기뻐했습니다.
모압은 판단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35:21에서도 적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아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쪽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동쪽의 여러 집단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동쪽 지역에서 이동하며 목축 생활을 하던 집단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특정한 한 민족의 이름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압 — 「유다도 다른 민족과 다를 바 없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모압과 세일이 『보아라, 유다 집도 모든 민족과 다를 바 없다.』 하고 말했으므로,」에스겔 25:8 · 본디새김
실제로 유다는 다른 나라들처럼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성읍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다른 민족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은 단순히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 아닐까요?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은 다른 민족보다 본래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7:7–8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특별함은 자기 능력이나 군사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언약이 잘못을 저질러도 심판받지 않는 특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모스 3:2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아셨기 때문에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압과 세일은 유다의 몰락을 보며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특별한 관계마저 무의미한 것처럼 비웃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고 하더니, 결국 다른 나라들처럼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유다는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르고 심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유다의 언약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모압은 유다의 패배를 정확히 보았지만, 그 패배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습니다.
세일은 에돔과 연결되는 지명입니다. 창세기 36:8–9에서도 에서와 에돔이 세일 산지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8절은 모압과 에돔의 태도를 함께 언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9–11절에서는 모압이 직접적인 심판의 대상이 되고, 에돔의 죄는 12–14절에서 따로 다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보아라, 그 땅의 자랑거리인 벳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 곧 그 변두리 성읍들에서부터」에스겔 25:9 · 본디새김
그런데 하나님은 그 변두리 성읍들에서부터 모압의 옆구리를 열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본문의 「옆구리」는 나라의 측면이나 경계를 가리키는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적의 공격을 막아 주던 경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모압은 유다가 자기의 특별함을 믿다가 무너졌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모압 자신에게도 자랑거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성읍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랑거리가 무너지게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10절에서는 모압의 땅도 암몬과 함께 동쪽 사람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압에 심판을 행하겠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스겔 25:11 · 본디새김
모압은 유다의 패배를 보며 하나님과 유다의 관계를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 나라의 역사를 통해 여호와야훼의 주권을 마주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은 모압과 암몬을 연결하는 구문의 범위가 다소 까다롭습니다. 본디새김은 두 나라의 땅이 함께 동쪽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으로 읽습니다. 이어지는 「암몬 자손이 민족들 가운데서 기억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4–7절의 암몬 심판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이 표현을 모압의 운명에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지, 앞선 암몬 심판과 함께 모압의 심판을 설명하는 말로 읽어야 하는지는 구문의 연결에 따라 차이가 생깁니다.
에돔 — 형제의 불행을 보복의 기회로 삼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에돔이 유다 집에 보복을 행하고, 큰 죄를 지었으며, 그들에게 보복했으므로,」에스겔 25:12 · 본디새김
에돔에 대한 고발은 매우 짧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문장에는 「보복」이라는 말이 두 번 등장합니다. 이것은 앞의 암몬과 모압보다 한 단계 더 직접적인 행동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었고, 에돔의 조상으로 여겨졌습니다(창세기 36:1). 두 형제는 태어나기 전부터 긴장 관계에 있었고, 장자권과 축복을 둘러싸고 갈등했습니다. 그러한 조상의 이야기가 후대 두 민족의 모든 갈등을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에돔과 이스라엘이 서로 무관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민수기 20:14–21에서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갈 때 에돔이 자기 영토를 통과하도록 허락하지 않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오바댜 10–14절은 에돔이 형제 야곱에게 폭력을 행했고, 예루살렘이 재앙을 당하던 날에 방관하거나 기뻐하며, 도망가는 사람들을 막거나 넘겨주었다고 고발합니다. 에스겔 25:12는 그처럼 유다를 향한 에돔의 적대적 행동을 「보복」이라는 말로 압축합니다.
보복에는 대개 자신이 먼저 피해를 입었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하지만 본문은 에돔이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돔이 보복을 행함으로써 큰 죄를 지었다고 고발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에돔을 향해 내 손을 뻗어, 그곳에서 사람과 짐승을 끊어 버리겠다. 내가 그 땅을 데만에서부터 폐허로 만들겠고, 드단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칼에 쓰러질 것이다.」에스겔 25:13 · 본디새김
본문은 데만과 드단을 사용해 에돔에 닥칠 심판이 넓은 지역에 미칠 것임을 드러냅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손으로 에돔에 내 보복을 가하겠다. 그들은 내 분노와 내 격노에 따라 에돔에 보복을 행할 것이다. 그들은 내 보복을 알게 될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25:14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이스라엘은 심판받는 백성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포위되었고, 그 멸망이 선언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바로 그 이스라엘을 자신의 심판을 실행하는 수단으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본문은 즉각적인 군사 작전의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이 말씀을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죄 때문에 심판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더 이상 자신의 백성이 아니라고 선언하지 않으십니다. 그 관계는 심판 중에도 이야기 속에 남아 있습니다.
에돔이 보복한 것은 죄인데, 하나님이 보복하시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에돔의 보복은 유다에 대한 적개심에서 나온 행동으로 고발됩니다. 하나님의 보복은 에돔이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으로 선언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본문이 모든 보복 행위의 윤리적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손을 통해 보복하시겠다는 말씀은 심판의 주체와 실행자의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마음껏 풀어도 된다는 일반적 허가를 주지 않습니다. 강조점은 보복이 하나님께 속한 심판의 영역으로 옮겨졌다는 데 있습니다. 신명기 32:35에서도 하나님은 원수 갚는 일이 자신에게 속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복을 당한 기억이 있다고 해서, 자신이 행하는 모든 보복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블레셋 — 오래된 원한을 버리지 못하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보복을 행하고, 마음속에 멸시를 품고 보복하며, 오랜 적개심으로 멸망시키려 했으므로,」에스겔 25:15 · 본디새김
블레셋의 죄는 에돔의 죄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블레셋에 관해서는 그 보복의 뿌리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랜 적개심」입니다.
사사기에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일이 기록되어 있으며(사사기 13:1), 사무엘 시대에도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주요 적대 세력이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에서도 블레셋과의 전쟁이 반복됩니다.
본문은 시간의 흐름이 저절로 미움을 없애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오래전에 시작된 원한을 새로운 사건마다 되살릴 수 있습니다. 과거의 충돌은 다음 충돌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고, 그 충돌은 다시 미래의 보복을 낳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움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반응을 넘어, 상대를 바라보는 지속적인 태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향해 내 손을 뻗어, 그렛 사람들을 끊어 버리고, 바닷가에 남은 자들을 없애 버리겠다.」에스겔 25:16 · 본디새김
동쪽과 남쪽에 이어 해안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미칩니다.
「내가 분노 어린 질책으로 그들에게 큰 보복을 가하겠다. 내가 그들에게 내 보복을 가할 때,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스겔 25:17 · 본디새김
여기서는 「보복」이라는 말이 다시 두 차례 등장합니다. 에돔과 블레셋의 죄를 설명할 때 반복되던 낱말이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는 말로 이어집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이르면 사람들의 보복과 하나님의 보복이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알아 두는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졌다고 해서 여호와야훼가 무력해지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분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나라들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선언은 이 장에서 심판의 목적을 설명하는 동시에, 주변 나라들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유다의 몰락을 보고 여호와야훼의 권위가 사라졌다고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들이 의지하던 땅과 성읍과 힘도 자신의 심판 아래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그렛 사람들은 블레셋과 관련된 집단으로 등장합니다. 스바냐 2:5에서도 바닷가 주민들과 그렛 사람들이 블레셋 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을 크레타와 연결하는 해석이 있지만, 그 동일시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을 블레셋 심판의 대상 가운데 하나로 언급합니다.
맺음말 — 손뼉 치던 손과 심판을 향해 뻗은 손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도 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의 잘못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다른 민족들이 조롱하거나 이용하는 것 역시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적용은 무조건 분노하지 말라거나 모든 갈등을 덮고 화해하라는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제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과, 그 잘못을 빌미로 상대의 파멸을 즐기는 일을 구별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정의를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자신의 악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처음에 암몬은 자기 손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일도 아닌데 남의 불행을 기뻐하며 손뼉을 쳤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비웃음의 손뼉을 치던 나라가, 이제 자신을 향해 뻗어 오는 하나님의 손을 마주합니다.
그들이 남의 멸망을 바라보며 잊고 있던 사실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나라와 성읍과 땅도, 그들이 비웃던 유다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판단 앞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스겔 25장은 바로 그 손 앞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