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7–8장 · 에스라의 예루살렘길

하나님의 손과 사람의 책임

에스라 8장에는 흥미로운 긴장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보호를 왕에게 증언한 터라 군대와 기병을 요청하기가 부끄러워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에스라가 여행에 앞서 은과 금의 무게를 일일이 달고, 그것을 맡을 사람들을 지정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에는 다시 무게를 달아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 왜 이토록 꼼꼼하게 준비했을까요?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 것과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이 장에서 가장 자주 눈에 들어오는 표현은 「우리 하나님의 손」입니다. 에스라는 필요한 사람들을 얻은 것도, 여행길에서 보호받은 것도 하나님의 손이 자신들 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다른 손들도 등장합니다. 귀중한 예물을 넘겨받는 제사장들의 손, 여행자들을 위협하는 적들의 손아귀, 그리고 도착한 예물을 다시 넘겨받는 사람들의 손입니다.

읽는 시간 14분소단락 88장 본문 읽기 →

이름을 기록하는 일도 귀환의 일부다

에스라 8:1–14 본문 →

에스라 8장은 긴 명단으로 시작합니다.

비느하스 자손의 게르솜, 이다말 자손의 다니엘, 다윗 자손의 핫두스가 등장하고, 그다음에는 여러 가문의 대표들과 그들을 따라온 남자들의 수가 기록됩니다. 에스라 2장에도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그러나 에스라 8장은 그 명단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습니다. 이미 귀환한 사람들이 있었고 성전도 재건되었지만, 이제 또 다른 사람들이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귀환은 한순간에 끝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시기에 걸쳐 사람들이 돌아왔고, 먼저 돌아간 사람들과 나중에 돌아온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갔습니다. 8장에 등장하는 바로스, 바핫모압, 아딘, 엘람 등의 가문 이름은 에스라 2장에서도 확인됩니다. 이것은 새로운 귀환자들이 앞서 돌아간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비느하스와 이다말은 아론의 아들들로부터 이어지는 제사장 계보에 속하고, 다윗은 이스라엘 왕실의 조상입니다(출애굽기 6:23–25; 역대상 3장). 제사장 가문과 다윗 가문의 후손이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은 포로 생활을 겪은 뒤에도 이스라엘의 역사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다윗의 후손이 등장한다고 해서 왕정이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여행은 여전히 페르시아 왕의 통치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과거의 이스라엘과 이어지는 것은 왕국의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할 백성의 정체성입니다.

3절부터 14절까지 각 가문을 따라온 인원은 남자들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에스라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과 우리의 모든 재산」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합니다(8:21). 따라서 이 명단에 기록된 남자들이 전체 여행자의 전부는 아닙니다. 숫자로 정리된 가문들 뒤에는 함께 길을 떠나는 아이들과 다른 가족들도 있습니다.

명단 자체에도 몇 가지 불완전한 부분이 있습니다. 8:5와 8:10에는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의 이름이 빠져 있고, 8:13의 「나중에 온 이들」이 정확히 무엇을 기준으로 나중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명단이 끝나자마자 뜻밖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모였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없었다

에스라 8:15–20 본문 →

나는 그들을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았다. 우리는 거기서 사흘 동안 진을 쳤다. 내가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펴보았으나, 거기서 레위 자손은 찾지 못했다.에스라 8:15 · 본디새김

제사장들은 아론의 후손으로서 제사를 집전하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제사장을 돕고 성전의 여러 직무를 담당했습니다. 민수기 3–4장은 성막에서 맡는 역할에 따라 레위 사람들의 직무가 어떻게 구분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에스라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여행 인원을 늘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와 봉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람들을 데려가야 했습니다. 성전 건물이 이미 존재한다고 해서 그곳의 모든 직무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라는 이 문제를 발견하고도 그대로 출발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러 지도자와 분별력 있는 사람들을 불러 가시뱌의 잇도에게 보내고, 하나님의 집에서 섬길 사람들을 데려오게 합니다(8:16–17). 그 결과 레위 사람들과 성전 봉사자들이 합류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 위에 있어, 그들은 이스라엘의 아들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가운데 분별력 있는 사람인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 열여덟 명을 우리에게 데려왔다.에스라 8:18 · 본디새김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고백 안에는 에스라가 사람들을 파견한 일, 파견된 사람들이 잇도에게 찾아간 일, 그들의 요청에 사람들이 응답한 일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성전 봉사에 필요한 것은 혈통만이 아니었습니다. 맡겨진 일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20절은 성전 봉사자 220명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모두 이름으로 지명된 사람들」이었다고 덧붙입니다. 귀환 공동체는 이름 없는 인력의 집합이 아니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집을 섬기러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사람들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곧바로 출발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부족함을 해결한 다음에는, 사람의 준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섭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세레뱌는 특별히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히브리어 표현의 세부적인 연결 관계 때문에 이 말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본문이 필요한 봉사자들의 능력과 자질에 관심을 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군대를 요청하지 않은 이유

에스라 8:21–23 본문 →

아하와 강가에서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합니다.

나는 그곳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고, 우리와 우리 아이들과 우리의 모든 재산을 위해 그에게 순탄한 길을 구하려는 것이었다.에스라 8:21 · 본디새김

이 표현이 인상적인 것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손이 함께한다고 믿으면서도 자신들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지 간절히 구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이들도 있었고 많은 재산도 있었습니다. 성전에 바칠 상당한 양의 은과 금까지 운반해야 했습니다. 여행 중 공격이나 약탈을 당할 가능성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왜 이런 상황에서 왕에게 군사적 보호를 요청하지 않았을까요?

길에서 적에 맞서 우리를 도와줄 군대와 기병을 왕에게 요청하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왕에게 이렇게 말한 터였다. 「저희 하나님의 손은 그를 찾는 모든 사람 위에 있어 그들에게 선을 베풀며, 그의 힘과 분노는 그를 버리는 모든 사람 위에 있습니다.」에스라 8:22 · 본디새김

에스라에게 이것은 단순한 여행 방식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전한 하나님에 관한 증언을 실제 삶에서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에스라는 자기 확신으로 위험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험 때문에 공동체 전체와 함께 금식합니다.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하나님께 증명해 보이려는 태도보다, 자신들이 의지한다고 고백한 하나님께 실제로 도움을 구하는 태도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식하며 이 일을 두고 우리 하나님에게 간구했고, 그는 우리의 간구를 받아들였다.에스라 8:23 · 본디새김

그 응답이 여행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31절에 가서 확인됩니다. 그사이에 본문은 뜻밖에도 상당한 분량을 은과 금의 관리에 할애합니다.

조금 더 깊이

22절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인간적인 보호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보편적인 규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느헤미야 2:9에서는 왕이 군대 지휘관들과 기병들을 느헤미야와 함께 보냅니다. 느헤미야서도 하나님의 선한 손을 강조합니다(느헤미야 2:8, 18). 그러므로 두 기록을 함께 읽으면 왕의 군사적 지원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 자체가 믿음의 정도를 결정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거룩한 것은 무게를 달아 맡긴다

에스라 8:24–30 본문 →

에스라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가운데 책임자를 따로 세웁니다.

나는 은과 금과 기물들의 무게를 달아 그들에게 넘겼다. 그것들은 왕과 그의 고문들과 고관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해 바친 예물이었다.에스라 8:25 · 본디새김

7장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하나님의 집을 위한 물품과 재정을 지원하도록 명령한 일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어집니다(에스라 7:15–20). 26–27절에는 은 육백오십 달란트, 은 기물 백 달란트, 금 백 달란트, 금 대접 스무 개와 귀한 구리 기물 두 개 등이 기록됩니다.

특히 구리 기물이 금처럼 귀하다는 설명은 기물의 가치를 단순히 재료의 종류만으로 판단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그 기물들의 제작 방식이나 용도를 더 설명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가치의 이유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여호와야훼에게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이며, 기물들도 거룩합니다. 은과 금은 여러분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 자원하여 바친 예물입니다.」에스라 8:28 · 본디새김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단순히 값지고 아름답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과 기물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구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므로 사사로운 재산처럼 취급할 수 없습니다.

거룩함은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일 뿐 아니라, 그것을 맡은 사람이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집 방들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 그리고 이스라엘 가문의 우두머리들 앞에서 무게를 달아 넘길 때까지, 이것들을 늘 살피고 지키십시오.」에스라 8:29 · 본디새김

첫째, 출발할 때 무게를 답니다. 무엇을 얼마나 맡았는지 분명히 합니다.

둘째, 여행하는 동안 살피고 지킵니다. 책임이 한순간의 전달 행위로 끝나지 않습니다.

셋째, 목적지에서 다시 무게를 달아 넘깁니다. 맡겨진 책임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확인합니다.

출애굽기 38:21–31에서도 성막을 위해 사용된 금속의 수량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성소를 위한 재물은 그 목적이 거룩하다는 이유로 수량과 관리가 불필요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4절의 원문은 열두 제사장 우두머리와 세레뱌, 하사뱌 및 다른 형제들의 관계를 정확히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에스라가 귀중한 예물의 운반을 혼자 맡거나 임의의 사람에게 넘기지 않고, 지정된 사람들에게 공동의 책임으로 맡겼다는 사실입니다.

출발할 때와 도착할 때의 사흘

에스라 8:31–34 본문 →

여행 준비가 모두 마무리되고, 첫째 달 열이튿날에 일행은 아하와 강을 떠납니다.

첫째 달 열이튿날,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아하와 강을 떠났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 위에 있었고, 그는 길에서 적과 매복한 자들의 손아귀로부터 우리를 건져 냈다.에스라 8:31 · 본디새김

8:23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받아들이셨다고 말했고, 8:31은 그 응답이 여행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알려 줍니다. 하지만 본문은 실제로 몇 차례 공격을 받았는지, 어떤 위험을 만났는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해 주셨는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아하와 강가에서는 사흘 동안 머물며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8:15). 예루살렘에서도 사흘 동안 머뭅니다(8:32). 첫 번째 사흘은 출발하기 전 공동체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흘은 도착 후 맡은 것을 넘기기 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넷째 날, 마침내 은과 금과 기물들의 무게를 다시 답니다.

모든 것을 수와 무게에 따라 넘겼으며, 그때 모든 무게가 기록되었다.에스라 8:34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앞에서 읽었던 25–29절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때 에스라는 은과 금을 달아 사람들의 손에 맡겼습니다. 이제 그것들이 예루살렘에서 다시 무게를 달아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겨집니다.

출발지에서 시작된 책임이 목적지에서 완수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이것은 에스라서 첫 장과도 연결됩니다. 에스라 1:7–11에서는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여호와야훼의 집 기물들을 고레스 왕이 돌려보내도록 하며, 그 기물들의 수를 기록합니다. 그때도 성전 기물들의 이동은 단순한 물자 운송이 아니었습니다. 빼앗기고 흩어졌던 것들이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건이었습니다. 에스라 8장에서는 다른 시기의 귀환자들이 성전 예물을 운반하지만, 마찬가지로 기물의 이동과 수량 기록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제사를 드렸는가

에스라 8:35 본문 →

귀환자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예물을 인계한 다음 제사를 드립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배민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번제를 바쳤다. 온 이스라엘을 위한 수소 열두 마리와 숫양 아흔여섯 마리, 어린양 일흔일곱 마리, 속죄제물인 숫염소 열두 마리였다. 모두 여호와야훼에게 바친 번제였다.에스라 8:35 · 본디새김

실제로 귀환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가 아닙니다. 바벨론에는 여전히 많은 유다 사람들이 남아 있었고, 그보다 앞서 귀환하여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온 사람들은 자기들만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위한 제사를 드립니다.

수소 열두 마리와 숫염소 열두 마리는 이 표현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열두 지파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둘이라는 수는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뜻을 담기에 적절합니다. 성전 봉헌식에서도 이스라엘 지파의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칩니다.

귀환 공동체는 자신들을 새롭게 출발한 독립된 종교 집단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 이전의 이스라엘과 이어지는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했다는 뜻이지만, 그것이 죄의 문제까지 저절로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귀환한 백성은 하나님의 보호를 감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속죄가 필요한 공동체로 섭니다.

그리고 제사의 대상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왕의 허락과 지원을 받아 돌아왔지만, 자신들의 귀환을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하신 분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예물을 전달한 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순서는 이 여행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분명히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숫염소 열두 마리를 분명히 「속죄제물」이라고 부르면서 마지막에는 모든 제물을 묶어 「번제」라고 말합니다. 레위기 1장과 4장에 따르면 번제와 속죄제는 구별되는 제사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두 표현을 완전히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의 「번제」를 전체 제물에 대한 넓은 묶음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문면의 긴장을 모두 해소하는 유일한 설명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제사의 세부 절차를 설명하기보다 귀환자들이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여러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손과 페르시아 왕의 명령

에스라 8:36 본문 →

마지막 절에서는 여행을 마친 사람들이 왕의 명령을 지방 관리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들을 왕의 태수들과 강 건너편의 총독들에게 전달했다. 그 관리들은 백성과 하나님의 집을 지원했다.에스라 8:36 · 본디새김

여기서 「강 건너편」은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 표현으로,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역을 가리킵니다. 유다도 그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에게 예루살렘으로 갈 권한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위한 재정과 여러 행정적 지원에 관한 명령을 내렸습니다(에스라 7:11–26).

에스라는 왕의 군사적 보호는 요청하지 않았지만, 왕의 명령과 지원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을 믿으면서도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 체계 안에서 주어진 권한을 사용합니다. 에스라 8장에서는 하나님의 손과 왕의 명령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함께 등장합니다. 에스라는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돌보심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에스라 8:1–36 본문 →

하나님의 손이 함께한다는 고백은 사람들의 손을 필요 없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사람들의 손이 얼마나 성실하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아하와 강가에서 제사장들의 손에 맡겨졌던 은과 금이 먼 길을 지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다시 저울에 올리고, 수와 무게를 확인하고, 기록했습니다.

그 저울 위에는 귀한 예물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 길을 지나온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다는 사실도 함께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들과 함께했고, 그들은 자기 손에 맡겨진 것을 하나님의 집에 온전히 돌려놓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