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7–8장 · 에스라의 예루살렘길
하나님의 집을 세운 뒤 말씀을 가르칠 사람
에스라서는 7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책의 이름이 된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으로 사람들이 돌아왔고, 무너진 성전의 기초가 놓였으며, 오랜 방해 끝에 성전이 완성되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직무도 정비되었고, 백성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인물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능숙한 서기관 에스라입니다.
왜 성전이 완성된 다음에야 에스라가 등장할까요?
앞선 이야기에서 중심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집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관심은 그 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옮겨 갑니다.
그런데 에스라 7장은 율법 교사 한 사람의 등장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페르시아 왕이 그에게 막대한 자원과 행정적 권한을 부여하고, 하나님의 법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형벌을 집행하도록 명령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제국의 권력을 행사하는 일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성전은 완성되었지만, 이야기는 수십 년 뒤로 건너뛴다
이 일들이 있은 뒤,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다스릴 때였다. 에스라는 스라야의 아들이고, 스라야는 아사랴의 아들이고, 아사랴는 힐기야의 아들이며,에스라 7:1 · 본디새김
이 짧은 문장에는 상당한 시간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앞 장에서 성전은 다리오 왕의 통치 육 년째, 일반적으로 기원전 515년으로 이해되는 시기에 완성되었습니다. 에스라 7장의 아닥사스다는 통상 아닥사스다 1세로 이해됩니다. 그의 통치 칠 년째인 7절의 시점을 일반적인 페르시아 연대기와 연결하면 기원전 458년 무렵입니다.
따라서 성전 완공과 에스라의 귀환 사이에는 약 57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유다 사람들이 무엇을 경험했는지 에스라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에스라를 소개하는 첫 번째 방법은 족보다
그런데 서술자는 에스라가 무엇을 하려는지 바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먼저 그의 조상들을 길게 기록합니다. 스라야, 아사랴, 힐기야, 살룸, 사독, 아히둡, 아마랴, 아사랴, 므라욧….
그리고 마침내 아론에게 이릅니다.
북기는 아비수아의 아들이고, 아비수아는 비느하스의 아들이고, 비느하스는 엘르아살의 아들이고, 엘르아살은 우두머리 제사장 아론의 아들이었다.에스라 7:5 · 본디새김
출애굽기 28:1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구별하셨습니다. 민수기 3:10에서도 제사장의 직무는 아론과 그 자손에게 맡겨집니다. 에스라의 족보는 그가 바로 그 제사장 계열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족보는 모든 세대를 빠짐없이 기록한 완전한 명단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역대상 6:4–14의 제사장 족보와 비교하면 중간에 생략된 이름들이 있습니다. 또한 에스라 7:1의 스라야는 열왕기하 25:18–21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멸망 당시 붙잡혀 처형된 대제사장 스라야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스라야를 에스라의 바로 윗세대 아버지라고 이해하면 연대상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서 ‘아들’이라는 표현은 직접적인 부자 관계뿐 아니라 후손이라는 넓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론과 에스라 사이에 놓인 역사
아론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성막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제사장직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그 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가 왔고,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왕국은 멸망했고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그의 족보가 아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그가 유배 이전부터 이어져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 전통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족보만으로 그의 역할이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6절에서 서술자는 그를 제사장 계열의 후손으로만 소개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능숙한 서기관이라고 부릅니다.
제사장의 후손이지만, 그의 손에 있는 것은 율법이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준 모세의 율법에 능숙한 서기관이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손이 그 위에 있어, 왕은 그가 요청한 것을 모두 주었다.에스라 7:6 · 본디새김
‘능숙한 서기관’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는 율법을 다루는 일에 숙련된 사람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서기관은 문서를 기록하거나 복사하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법과 행정 문서를 다루는 서기관에게는 해당 문서의 내용과 적용을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의 전문성은 일반적인 행정 문서가 아니라 「모세의 율법」과 연결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본문은 그 율법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주신」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본문은 그 율법의 근원을 여호와야훼에게 둡니다.
따라서 에스라의 권위는 두 방향에서 설명됩니다. 하나는 아론으로 이어지는 제사장 계열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호와야훼가 주신 율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제사장 계열에 속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율법 지식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이 아니라 말씀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지도자
말라기 2:7은 제사장의 입술이 지식을 지켜야 하며, 사람들이 그의 입에서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제사장의 역할이 제물을 드리는 일에만 한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에스라 역시 이러한 전통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제사장 계열에 속하지만, 7장에서 그의 중심적인 임무는 제사를 직접 집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왕의 도움보다 먼저 등장하는 하나님의 손
본문은 왕의 호의와 지원을 우연한 정치적 행운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에스라 위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손과 연결합니다.
왕은 실제로 명령을 내리고 자원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서술자는 그 행동이 이루어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발견합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네 달의 여정
아닥사스다 왕 칠 년째에 이스라엘 자손들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들, 성전 봉사자들 가운데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에스라 7:7 · 본디새김
예루살렘에는 이미 성전이 있고, 그곳에서 예배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바벨론에 남아 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다시 그 공동체에 합류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바벨론을 떠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전히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었고,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귀환은 한 번의 이동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시기에 걸쳐 이루어진 과정이었습니다.
첫째 달에서 다섯째 달까지
첫째 달 초하루가 바벨론에서 올라오는 여정의 시작이었고, 그의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 위에 있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에스라 7:9 · 본디새김
날짜상으로는 네 달의 간격입니다. 긴 이동에는 사람들을 모으고, 물자를 정리하고, 이동 중에 머무는 시간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에스라 8:15는 에스라가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사람들을 모아 사흘 동안 머물렀다고 기록합니다. 8:31에서는 첫째 달 열이틀에 그 강가를 떠났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7:9의 첫째 달 초하루는 바벨론에서 올라가는 전체 여정의 시작을 가리키고, 8:31의 날짜는 아하와 강가에서의 출발을 가리키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6절에서는 왕이 에스라의 요청을 들어준 일이 하나님의 손과 연결되었습니다. 9절에서는 먼 길을 지나 예루살렘에 도착한 일이 하나님의 선한 손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곧바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연구하고, 실행하고, 가르치다
에스라가 이런 도움을 받은 것은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행하며, 이스라엘에서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에스라 7:10 · 본디새김
마음을 굳혔다는 표현
에스라가 자신의 마음을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 준비하고 굳게 정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바로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행하며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하다’는 단순히 읽는 것보다 넓다
그는 율법의 내용을 찾고 살피며, 그것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이해하려 했습니다. 율법을 연구한다는 것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백성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알아 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연구는 단순한 지적 관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알기 전에 실행해야 한다는 뜻일까?
본문의 순서는 분명합니다.
연구하고, 실행하고, 가르칩니다.
그는 율법을 이해한 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그것을 실행하려 합니다. 그런 뒤에 가르치는 일이 나옵니다.
이것은 에스라에게 지식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가르치려는 것은 자신과 무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도 적용해야 하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입니다.
물론 이 순서를 모든 교사는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실천한 다음에야 가르칠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에스라 7장은 그의 실제 삶이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했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가 어떤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는지 말합니다.
신명기 6:6–9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일상의 여러 자리에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1:8도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밤낮으로 되새겨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켜 행하라고 말합니다. 이 두 본문에서 말씀을 아는 일은 실제 생활과 연결됩니다. 에스라 7:10도 바로 이러한 흐름 안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손과 에스라의 결심을 연결할까?
10절은 앞선 9절의 하나님의 도움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에스라가 율법을 연구하고 실행하며 가르치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 위에 있었다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에스라가 충분히 노력했으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성공으로 보상하셔야 했다는 뜻으로 읽으면 본문을 단순화하게 됩니다. 이 절은 에스라의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움직였다는 일반 법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뒤에 나오는 왕의 편지를 읽으면 그 도움이 어떤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순한 여행 허가증이 아닙니다.
왕은 에스라를 어떤 사람으로 이해했을까?
11절부터는 새로운 문서가 시작됩니다.
에스라 6:19부터 이어지던 히브리어 서술은 7:12–26에서 다시 아람어로 바뀝니다. 이 부분에는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내린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들의 왕 아닥사스다가, 제사장이며 하늘의 하나님의 법에 통달한 서기관인 에스라에게 보낸다. 이제,」에스라 7:12 · 본디새김
「왕들의 왕」은 페르시아 왕의 제국적 권위를 나타내는 칭호입니다. 광대한 지역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자신의 명령을 여러 지방의 관리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능숙한 서기관이었습니다. 12절에서는 왕도 그를 하늘의 하나님의 법에 통달한 서기관으로 소개합니다.
다만 여기서 ‘통달한’으로 옮긴 아람어 게미르(גְּמַר)의 문법적 연결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에스라의 숙련도를 나타내는 말로 읽을 수 있지만, 뒤의 공문서 인사 표현과 연결하여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앞의 읽기를 따릅니다.
어느 쪽이든 편지 전체에서 에스라가 하나님의 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왕이 허락한 귀환 — 13절
「내가 명령을 내린다. 내 왕국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가운데 너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자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가게 하라.」에스라 7:13 · 본디새김
이 명령은 고레스의 귀환 칙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이끄는 귀환이 제국에 의한 강제 이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에스라는 단지 자신이 여행할 수 있는 허락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함께 돌아갈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권한도 얻습니다.
왕과 일곱 고문이 파견한 사람 — 14절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법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살피고,」에스라 7:14 · 본디새김
이 절에는 왕과 일곱 고문이 에스라를 파견했다는 사실이 이어집니다. 일곱 고문은 페르시아 왕실의 고위 자문 집단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 1:14에서도 페르시아와 메대의 일곱 고관이 왕 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왕실의 공식적인 후원과 권한 아래 유다와 예루살렘을 살피도록 보내집니다. 에스라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법을 기준으로 살피라고 합니다.
여기서 「네 손에 있는」이라는 표현을 문자적으로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있다는 장면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라가 그 법을 소유하고 다루며, 그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그가 어떤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문서들이 지금의 모세오경과 정확히 동일한 형태였는지는 이 절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왕이 에스라의 율법 지식을 그의 공식적인 임무와 연결했다는 점입니다.
에스라에게 맡겨진 은과 금은 누구의 것인가
15절부터 왕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재물들을 설명합니다.
왕과 고문들이 자원하여 바친 은과 금이 있고, 바벨론 지방에서 얻을 은과 금도 있으며, 백성과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집을 위해 자원하여 바치는 예물도 있습니다. 그는 여러 출처에서 모인 재물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져가는 책임을 맡습니다.
성전은 이미 완성되었는데 왜 또 재물이 필요할까?
성전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제사와 예배에 더 이상 자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제물을 구입해야 하고, 예배에 사용하는 기물도 필요합니다. 정기적인 예배가 계속되려면 물품과 재정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이 은으로 수소와 숫양과 어린양, 그것들과 함께 바칠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을 성실히 구입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너희 하나님의 집 제단 위에 그것들을 바쳐라.」에스라 7:17 · 본디새김
수소와 숫양과 어린양,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은 모세의 율법에 규정된 제사와 연결됩니다. 민수기 15:1–13은 희생제물과 함께 바치는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의 규정을 보여줍니다.
자원한 예물과 왕의 명령이 만나는 자리
15–16절에는 「자원하여 바친」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반면 17절에서는 그 재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왕이 명령합니다.
재물의 제공에는 자발적인 헌신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사용에는 정해진 목적과 책임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여러 사람이 바친 재물을 자신의 개인 재산처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을 위해 맡겨진 재물입니다.
남은 재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 18절
「남은 은과 금으로 너와 네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을, 너희는 너희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라.」에스라 7:18 · 본디새김
왕은 모든 지출 항목을 하나하나 결정하지 않습니다. 남는 재물에 관해서는 에스라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판단의 여지를 줍니다. 그 판단의 기준은 「너희 하나님의 뜻」입니다.
왕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법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제 그가 재물을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그 법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판단하도록 맡깁니다. 그런 점에서 에스라의 율법 지식은 재판이나 교육뿐 아니라 재정 관리와도 연결됩니다.
기물은 하나님 앞에 넘겨주어야 한다 — 19절
「네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데 쓰도록 네게 주어진 기물들은 예루살렘의 하나님 앞에 넘겨주어라.」에스라 7:19 · 본디새김
기물들은 에스라에게 주어졌지만, 그에게 영구적으로 속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 표현에는 인간의 관리 책임과 하나님의 소유라는 관점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은 에스라 8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는 은과 금과 기물들을 무게를 달아 맡기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 다시 무게를 확인하여 넘겨주는 과정이 기록됩니다(에스라 8:24–34).
왕의 금고에서 제사장들의 세금까지
「네 하나님의 집에 더 필요한 것 가운데 네가 마련해야 할 것은 왕의 보물 창고에서 내어 주어라.」에스라 7:20 · 본디새김
아닥사스다의 지원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예물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왕은 이 명령을 강 건너편의 재무관들에게 직접 전달합니다.
「나 아닥사스다 왕이 강 건너편에 있는 모든 재무관에게 명령을 내린다. 제사장이며 하늘의 하나님의 법을 다루는 서기관인 에스라가 너희에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성실히 이행하라.」에스라 7:21 · 본디새김
이제 에스라에게 주어진 권한은 단순히 왕의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의 권한이 아닙니다.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 지방의 재무관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다시 말해, 에스라가 받은 지원은 개인적인 호의만이 아니라 제국의 행정 체계를 통해 실행되는 공식적인 조치입니다.
‘무엇이든’이라는 말에는 한계가 있다
21절의 「무엇이든」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무제한의 재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다음 절이 구체적인 지급 한도를 제시합니다.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은 백 밧까지 주고, 소금은 정해진 분량 없이 주어라.」에스라 7:22 · 본디새김
달란트는 중량을 나타내는 단위이며, 고르와 밧은 곡물이나 액체 등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이러한 단위들을 현대의 무게나 부피로 환산할 때에는 어느 시대의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레위기 2:13은 곡식제물에 소금을 빠뜨리지 말라고 규정합니다. 소금은 제사에서 실제로 필요한 재료였습니다. 그러므로 소금을 별도의 제한 없이 공급하게 한 명령은 성전의 제사 활동이 계속되는 데 필요한 물품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유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한 것은 모두 하늘의 하나님의 집을 위해 정확히 이행하게 하라. 어찌 왕의 나라와 왕의 아들들에게 진노가 닥쳐야 하겠느냐?」에스라 7:23 · 본디새김
왕이 실제로 밝히는 관심은 자신의 나라와 왕실의 안녕입니다. 성전이 제대로 운영되고 하늘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사가 이루어진다면, 왕실이 그분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스라 6:10에서 다리오가 왕과 왕의 아들들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도록 성전을 지원한 것과 연결됩니다. 페르시아 왕들이 성전을 지원하는 데에는 종교적 이유와 통치의 안정에 관한 관심이 함께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왕이 여호와야훼를 개인적으로 얼마나 깊이 믿었는지까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말라
「또 우리는 너희에게 알린다. 너희는 모든 제사장과 레위 사람, 노래하는 사람, 문지기, 성전 봉사자들과 이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사람들에게 조공과 세금과 통행세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에스라 7:24 · 본디새김
이들은 에스라 2장에서 귀환자의 명단에 기록되었고, 성전 재건과 예배의 회복 과정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했던 사람들입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한 것입니다.
4:13에서는 예루살렘의 재건이 왕에게 들어올 조공과 세금과 통행세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고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 자신이 성전 봉사자들에게 바로 그 부과 항목들을 면제하라고 명령합니다.
두 대목은 고발자들의 주장과 왕의 명령을 각각 전하므로 정책이 뒤집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전과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세금이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해집니다.
그에게는 더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권한도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는 일이 재판의 권한으로 이어지다
「너 에스라야,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재판관들과 법관들을 임명하여 강 건너편의 모든 백성 가운데 네 하나님의 법들을 아는 모든 사람을 재판하게 하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너희가 그 법들을 가르쳐라.」에스라 7:25 · 본디새김
이 절에서 에스라의 역할은 다시 확장됩니다.
14절에서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법」이 등장했습니다. 25절에서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지혜가 에스라의 직무를 설명하는 데 나란히 사용됩니다.
여기서 법은 단순히 외워야 할 조항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판단하고 공동체의 삶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지혜와 연결됩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재판관 임명권을 주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낯선 제도가 아닙니다.
신명기 16:18–20은 각 성읍에 재판관들과 관리들을 세우고 공정하게 재판하도록 명령합니다. 출애굽기 18:13–26에서도 모세가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판결하는 일을 맡다가 여러 지도자를 세워 그 책임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제사와 절기에 관한 규정만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분쟁, 재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규정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가르치는 일은 공동체의 실제 생활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그의 권한은 누구에게까지 미칩니까?
‘강 건너편의 모든 백성’은 누구인가?
25절의 문장 구조에는 해석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본문은 강 건너편의 모든 백성과 하나님의 법을 아는 사람들을 이어서 말합니다.
이를 본디새김처럼 읽으면, 강 건너편 지역의 주민 가운데 하나님의 법을 아는 사람들이 재판의 대상이라는 뜻이 됩니다. 다른 읽기에서는 재판의 범위를 더 넓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문장과 연결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에스라가 유프라테스강 서쪽의 모든 주민을 종교적 구별 없이 재판할 수 있는 전면적인 통치권을 받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지역에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 집단이 살고 있었고, 페르시아 제국의 지방 행정 체계도 존재했습니다. 또한 본문은 에스라가 기존의 모든 총독과 관리들을 대신한다거나, 그들이 행사하던 권한을 전부 빼앗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명령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법을 아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재판관을 세우고 율법을 가르칠 공식적인 권한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지만, 그 구체적인 관할 범위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
왕은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곧바로 처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그들에게 법을 가르치라고 명령합니다.
10절에서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실행하며 가르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25절에서 왕은 그에게 율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칠 권한을 부여합니다.
에스라 자신이 마음을 정했던 일이 이제 공식적인 사명과 연결됩니다.
물론 이 명령을 곧바로 오늘날의 자유로운 종교 교육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교육은 왕의 명령과 재판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에게 필요한 능력은 단순히 법을 알고 잘못을 찾아내는 능력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능력도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왕의 법, 그리고 엄중한 형벌
「누구든 네 하나님의 법과 왕의 법을 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사형이든 추방이든 재산 몰수든 감금이든 형벌을 철저히 집행하게 하라.」에스라 7:26 · 본디새김
이는 단순한 종교 교육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권한입니다.
여기서 본문은 에스라가 실제로 이러한 형벌을 모두 집행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왕이 그러한 형벌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명령과 실제 집행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왕의 법과 하나님의 법은 같은 것인가?
이 절은 「네 하나님의 법과 왕의 법」을 함께 언급합니다. 그러나 두 법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이 둘이 함께 언급되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적 권위가 유다 공동체의 종교적·법적 질서를 지원하고 강제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법의 모든 조항이 왕의 법과 동일해졌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또한 왕이 하나님의 법을 어느 범위까지 이해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위반에 어떤 형벌을 적용하도록 의도했는지도 이 구절만으로 모두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형벌의 종류를 열거하지만, 각 형벌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죄목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왜 강제력과 연결되었을까?
고대 사회에서 종교적 규범과 공동체의 법적 질서는 오늘날처럼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왕의 입장에서는 유다 공동체가 자신들의 법을 따라 질서 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일이 제국의 안정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제도가 작동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지, 강제적 종교 통치나 엄격한 형벌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에스라 7장은 고대 페르시아 왕이 부여한 실제적인 권한을 기록합니다. 그 권한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상황에서 그러한 권력 행사가 정당하다는 보편적 원칙이 확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 절은 왕의 편지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라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사형이나 추방을 명령하시는 장면이 아닙니다. 서술자가 이 명령을 기록하고, 뒤에서 왕의 호의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해서 왕의 형벌 체계 전체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법령과 동일시할 수도 없습니다.
에스라에게 주어진 권한의 무게
이것은 율법에 대한 전문성이 실제 권력과 결합하는 장면입니다.
그러한 권한에는 상당한 책임이 따릅니다. 누군가의 재산과 자유, 심지어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에스라가 이후 이 권한을 어떻게 행사했는지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가 반드시 공정하게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고 칭찬하거나, 반대로 그 권한을 남용했다고 비난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능력이 사람들을 판단하는 권한과 연결될 때, 그 말씀을 먼저 자신의 삶에서 실행하려는 태도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서술자는 독자에게 에스라가 어떤 권력을 받았는지 보여주기 전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대하려 했는지 먼저 알려줍니다.
왕의 편지가 끝나자, 에스라가 직접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는 찬양받기를.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집을 아름답게 하려는 이런 뜻을 왕의 마음에 두었다.에스라 7:27 · 본디새김
이 절에서 에스라서의 서술 방식이 크게 바뀝니다.
앞에서는 에스라가 어떤 사람인지 삼인칭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아닥사스다가 보낸 편지가 인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에스라 자신이 일인칭으로 말합니다.
그의 첫 반응은 자신에게 권한을 부여한 왕을 찬양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라는 고백
에스라는 하나님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라고 부릅니다. 그 조상들은 모세의 율법을 받았고, 성막과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으며, 불순종으로 인해 심판과 유배를 경험했습니다. 에스라는 바로 그 역사를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5절에서는 에스라의 조상들이 아론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27절에서는 그가 여호와야훼를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가문의 계보를 통해 조상들과 연결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신앙의 고백을 통해 조상들의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아름답게 하려는 뜻’은 무엇인가?
성전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에스라가 찬양하는 것은 왕이 이제 처음으로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왕이 성전을 더욱 아름답고 존귀하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은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는 일만을 뜻한다고 볼 필요가 없습니다. 성전이 제대로 운영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포함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 왕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에스라 1:1에서는 여호와야훼가 고레스의 마음을 일깨우셨습니다. 6:22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왕의 마음을 백성에게 돌리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7:27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왕의 마음에 성전을 아름답게 하려는 뜻을 두셨다고 말합니다.
페르시아 왕들은 실제로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입니다. 그들은 명령을 내리고 재정을 지원하며, 때로는 예루살렘의 건축을 중단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스라서의 신앙적 서술은 그들의 결정을 역사에서 가장 높은 권위로 보지 않습니다.
왕의 마음과 행동도 여호와야훼의 일하심 아래 있다고 이해합니다.
에스라는 왕의 정치적 의도를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지원을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받아들이고, 그 일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7:12–26의 아람어 문서가 끝나고 27절부터 히브리어 서술이 다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었으므로, 그는 힘을 냈다
또 왕과 그의 고문들, 왕의 힘 있는 모든 고관들 앞에서 내게 은혜를 베풀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손이 내 위에 있어 나는 힘을 냈고, 나와 함께 올라갈 우두머리들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았다.에스라 7:28 · 본디새김
앞의 두 경우에는 왕의 지원과 안전한 도착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서는 에스라 자신의 행동이 강조됩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었다는 사실은 에스라를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움직이게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셨으므로 에스라는 행동했다
에스라가 받은 왕의 허가와 재정적 지원은 그것을 실제로 수행할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귀환을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필요하고, 함께 이동할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권한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실제로 시작합니다.
‘힘을 냈다’는 말의 깊이
그는 왕의 권한을 받았지만, 앞으로 함께 이동할 사람들을 모으고 예루살렘에서 율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일에는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책임을 감당할 힘이 필요합니다.
에스라는 그 힘을 자신의 타고난 능력에서만 찾지 않습니다. 자신 위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손과 연결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힘을 냈다」는 표현은 여호수아 1장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어야 할 때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여호와야훼가 그와 함께하신다는 약속과 연결되었습니다(여호수아 1:5–9).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사람들을 모으다
성전을 세우는 일은 예배의 장소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일은 그 장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삶을 세워 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실행하며 가르치려던 사람이, 이제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아직 그들은 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이 장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만 에스라가 자신 위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여 힘을 얻었고, 함께 올라갈 사람들을 모았다고 말합니다.
에스라 7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왕에게서 권한을 받은 장면이 아니라, 그가 받은 은혜에 힘입어 함께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갈 사람들을 모으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